성전 건축에 대한 다윗의 소망
사무엘하 7:1-15
1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2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3나단이 왕께 고하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4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5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6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7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8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9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10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사무엘하 7:1-15
1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2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3나단이 왕께 고하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4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5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6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7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8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9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10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1. 다윗이 성전을 세우려 할 때에 나단이 격려함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함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평안하게 해 주시고 사방의 모든 대적을 다 파하게 해 주시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해 주신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대적을 파한 것도 하나님께서 해 주셨고, 나라가 평안한 것도 하나님께서 해 주셨고, 나라가 견고하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감사하는 동시에 ‘내가 이제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 은혜에 보답해야겠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으면 짐승만도 못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또 보답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자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휘장 가운데 있고 다윗은 백향목 궁에 거하여 그 양심이 편치 않았습니다. 성전이 자기 집보다 나아야겠는데, 오히려 자기 집이 성전보다 나았기 때문에 심령이 편
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송하다는 것입니다. 성전을 먼저 짓고 자기 집을 지었어야 하는데, 성전보다 자기 집을 먼저 지은 데에 대해 상당히 죄송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성전을 지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믿음을 쓴 것입니다. 자기 집보다는 성전이 앞서야 합니다. 학개 1장 3-6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찌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생각지도 돌보지도 않고, 자기 집 짓는 데만 급급한
사람들은 다 이렇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주 섭섭해 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전부터 먼저 짓고 그 다음에 자기 집을 지어야 합니다. 또 만일 자기 집을 먼저 지었으면 ‘빨리 성전을 지어야겠다, 하나님의 성전보다 내 집을 먼저 지었으니 빨리 성전 짓는데 힘을 기울
여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또 성전을 짓다가 채무가 있으면 그 채무부터 갚아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재산을 주시면 그 재산으로 먼저 생활하고, 생활하고 남은 것은 저축하지 말고 성전을 짓느라 얻은 부채부터다 갚아주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저축하는 것이 양심을 쓰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 빚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 빚이 있으면 개인 빚 다 갚고 저축을 해야 하는데, 개인 빚을 안 갚고 저축하는 것은 양심을 비뚤게 쓰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재산을 주시면 최소한도 내에서 자기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성전 건축으로 인한 부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개인
저축하는 데에 급급한 사람들은 양심을 안 쓰는 것이고 하나님께 복을 못 받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개인 빚이 있으면 개인 빚 다 갚고 저축을 해야 하는데, 개인 빚을 안 갚고 저축하는 것은 양심을 비뚤게 쓰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재산을 주시면 최소한도 내에서 자기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성전 건축으로 인한 부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개인
저축하는 데에 급급한 사람들은 양심을 안 쓰는 것이고 하나님께 복을 못 받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다윗과 같은 신앙만 가졌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윗이 시편132편 3-5절에 말하기를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라고 하였는데,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이렇게 사모했습니다. 성전 사모하기를 집에 가서 자지도 졸지도 않고 하는 사람은 신령한 성소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또 이런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 짓는 것을 첫째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다윗이 가지고 나간 것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간절히 사모한 신령한 성소는 영적 성소입니다. 다윗은 보이지 않는 신령한 영적 성소를 이만큼 사모하고 또 발견하려고 힘쓰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성소를 건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성소를 내가 건축해야겠다’고 작정한 것입니
다.
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지 않는 자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역대하 32장 22-25절에 보면 히스기야는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수하에서 구원을 받았고, 열국이 예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게 되었고, 열국의 목전에 존대하게 되었고, 또 병들어
죽게 되었지만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병에서 건져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그 받은 바 은혜에 보답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은혜를 주신 다음에 그 은혜에 보답지 않으면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과 그 가족과 그 백성에게 다 같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역대하 32장 26절에 “히스기야가 그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에 보답하지 않는 것이 죄이고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입니다.
시편 49편 20절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존귀하게 해 주셨고 평안함과 그 외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하
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보답하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물질은 성전 건축을 위한 것이므로 바로 사용해야 함
또 예배당도 물론 성전이지만 영적으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구원운동, 복음운동에 우리가 힘을 써야 합니다. 김현봉 목사님께서는 물질을 주신 목적은 먼저 먹고 살게 하기 위함이요, 그 다음에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쓰라고 주셨다고 했습니다. 물질을 주시면 생활하기 전에 십일조부터 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저축하는 데만 열심을 내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쓰지 않는 사람은 구멍 뚫어진 전대 꼴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뒤로 다 빠져나가게 만드십니다.
또 예배당도 물론 성전이지만 영적으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구원운동, 복음운동에 우리가 힘을 써야 합니다. 김현봉 목사님께서는 물질을 주신 목적은 먼저 먹고 살게 하기 위함이요, 그 다음에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쓰라고 주셨다고 했습니다. 물질을 주시면 생활하기 전에 십일조부터 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저축하는 데만 열심을 내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쓰지 않는 사람은 구멍 뚫어진 전대 꼴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뒤로 다 빠져나가게 만드십니다.
어떤 성도가 계를 드는데 열심이 났습니다. 교회에서 계를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열심히 계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방을 가니까 계가 깨졌다고 합니다. 거의 타게 되었는데 깨졌다고 하면서 그 다음에는 진짜 회개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 말 안 듣고 계하느라 연보도 못하고, 몇 백 만원 타면 뭘 하려고 했는데 그만 깨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참 잘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이 안 깨지면 무엇이 깨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 때문에 계를 깨지게 만드십니다. 조금씩 저축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저축하는 데만 열심이 나서 모든 돈은 전부 다 계에 넣고 연보도 못하고 아이들도 변변히 못 먹이고 의복도 변변히 못 입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을 계에만 돈을 넣다가 ‘꽝’하고 깨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께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바로 쓰는 것이 중요하지, 갖다 쌓아놓으면 안 됩니다. 쌓아놓으면 이 다음에 누가 가질지 모릅니다. 갈 때는 그저 빈 손 들고 가는 것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믿는 일을 위해서 쓰는 것이 가져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이 자기가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쌓아놓은 것은 누가 가질지도 모르고 헛된 것입니다. 물질에 대해서 바로 하지 못하면 다른 것도 바로 못합니다. 물질이 첫 계단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
시면 첫째 십일조부터 떼고, 그 다음에 자기 생활을 하고, 그 다음에는 성전 짓는 것부터 먼저 하고, 혹시 성전을 짓다가 빚을 진 교회는 빚부터 먼저 물어주고 그 다음에 저축을 조금씩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또 저축하는 데만 너무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복음과 진
리운동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 가지고 개척교회도 세우고, 선교사도 보내고, 문서 선교도 하고, 성경 강해서도 보내고, 방송 선교 등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시면 첫째 십일조부터 떼고, 그 다음에 자기 생활을 하고, 그 다음에는 성전 짓는 것부터 먼저 하고, 혹시 성전을 짓다가 빚을 진 교회는 빚부터 먼저 물어주고 그 다음에 저축을 조금씩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또 저축하는 데만 너무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복음과 진
리운동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 가지고 개척교회도 세우고, 선교사도 보내고, 문서 선교도 하고, 성경 강해서도 보내고, 방송 선교 등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재정을 가지고 하나님께 바로 해야 믿음이 바로 섭니다. 성도들이 성전 짓는 것을 첫째로 한다면, 얼마 지나면 예배당을 다 지을 수 있습니다. 원조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 예배당을 짓느라 빚을 졌어도 교인들이 빚부터 먼저 갚고 다른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힘을 쓰면 다 갚을 수 있습니다. 걱정이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시험에 들 정도로 무리하게 빚을 지지 말고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계획을 세워서 일하면 하나님께서 그 빚을 다 갚게 해 주십니다.
힘을 쓰면 다 갚을 수 있습니다. 걱정이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시험에 들 정도로 무리하게 빚을 지지 말고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계획을 세워서 일하면 하나님께서 그 빚을 다 갚게 해 주십니다.
2.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복을 베푸심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심
본문 3절에 “나단이 왕께 고하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나단이 그 말을 듣고 아주 좋게 여겼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성소를 건축하겠다고 하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너무 좋아서 나단이 성소를 짓겠다는 마음 자체가 벌써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는 증거라고 했습니다.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심
본문 3절에 “나단이 왕께 고하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나단이 그 말을 듣고 아주 좋게 여겼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성소를 건축하겠다고 하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너무 좋아서 나단이 성소를 짓겠다는 마음 자체가 벌써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는 증거라고 했습니다.
본문 4-7절에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밤에 나단 선지에게 나타나셔서 성전 건축을 하라 말하지 않았다고 다윗에게 가서 전하라 하셨습니다.
본문 9절 중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 곳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므로 함께 있는 이것이 영적 성전인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곳이 하나님의 성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보이는 성전 건축하는 것이 첫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 신령한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보이는 성전만 건축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보이는 성전을 건축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건축할 것은 보이지 않는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은 하나님께서 건축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신령한 성전을 건축하시는데 사람은 이용만 당하면 됩니다.
에스겔 11장 16절에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고 열방에 흩었으나 그들이 이른 열방에서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 잡혀 간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계시는데 예루살렘 성전에서 멀리 바벨론으로 떠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는 백성이며 성소는 우리 가운데 있으니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보지 않으십니다. 바벨론에 포로잡혀 간 사람들이 거기서 회개하고 믿음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거기서 성소가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교만하여 회개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만 자랑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은 도리어 악하고 흉악한 무화과 같이 여기시고 벌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성소가 되고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보이는 성전만 지었다고 하면 그것은 껍데기만 한 것입니다. 보이는 성전을 짓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하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하시는 것을 알고 그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해 주시는데, 그 뜻을 거역하지 말고 배반하지 말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영적 성전 생활이 중요합니다.
다윗을 존귀케 해 주겠다고 하심
다윗이 영적 성전을 건축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8-12절에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
자를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
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다윗을 애굽에서 뽑아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시고 둘째, 다윗과 함께 하시고 셋째, 대적을 물리쳐 주시고 넷째, 이름을 존귀케 해주시고 다섯째, 한 곳, 즉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백성을 심어 거기 거하고 옮기지 않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전과 같이 악한 종류가 해하지 못하게 하시고 일곱째는 여호와가 너희를 위해 집을 든든히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가나안 땅과 같은 복된 자리로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영적 성전을 건축하는 사람을 이렇게 복된 자리로 인도해주십니다. 여덟째는 장수하게 해 주신다는 것이고 아홉째는 네 나라를 견고케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네 몸에서 날 자식들, 네 후계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견고케 해 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또 자녀들이 잘 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 성전을 건축하고 보이는 성전도 건축하려고 하고 믿음을 쓰는 사람은 자녀도 잘 되서 후대가 견고해집니다. 여기서 자녀 가운데는 믿음의 자녀도 포함됩니다. 믿음의 자녀도 많이 주시고 육신의 자녀나 믿음의 자녀에게 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견고케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약속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며 다윗의 나라가 견고케 될 것을 언약하심
본문 13절에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것을 가리킵니다.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하였는데, 영원히 견고케 한다는 말은 이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네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영원히 견고해진다는 것입니다. ‘네 자손’이라는 말은 물론 솔로몬을 가리키지만, 그리스도께서 네 후손 가운데 나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성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신령한 이스라엘을 건
축할 것이라는 약속이 담긴 것입니다.
본문 14-15절에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그는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신령한 영적 성전을 먼저 건축하고, 또 보이는 하나님의 성전과 구원운동을 잘 해나가는 사람은 아버지의 혜택을 받게 되고 아들의 은총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그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영적 성전 건축하
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또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다윗이 영적 성전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보이는 성전을 건축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은총을 입혀 주시고 아들의 혜택을 받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시고 회개를 시키셔서 전에 사울 왕 같이 멸망시키지는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신령한 성전을 건축하고 또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해나가는 사람은 범죄를 하여도 아주 멸망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니까 혹시 가다가 범죄할 수 있는데 그러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이 와서 때리므로 회개하지 않을수 없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원수를 들어서 징계하시는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을 들어서 징계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범죄할 때에는 누구를 들어서 징계하셨습니까?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나 다윗수하의 사람들을 들어 징계하셨습니다. 또 원수, 사울 왕의 족속 시므이를 통해서 다윗을 저주하게 만드셨는데 그것도 사람 막대기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들어서, 대적을 들어서, 나아가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들어서라도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회개시키십니다. 다윗이 범죄한 후 아들 한 명이 죽었는데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징계하신 것입니다.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신령한 영적 성전을 먼저 건축하고, 또 보이는 하나님의 성전과 구원운동을 잘 해나가는 사람은 아버지의 혜택을 받게 되고 아들의 은총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그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영적 성전 건축하
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또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다윗이 영적 성전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보이는 성전을 건축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은총을 입혀 주시고 아들의 혜택을 받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시고 회개를 시키셔서 전에 사울 왕 같이 멸망시키지는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신령한 성전을 건축하고 또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해나가는 사람은 범죄를 하여도 아주 멸망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니까 혹시 가다가 범죄할 수 있는데 그러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이 와서 때리므로 회개하지 않을수 없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원수를 들어서 징계하시는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을 들어서 징계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범죄할 때에는 누구를 들어서 징계하셨습니까?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나 다윗수하의 사람들을 들어 징계하셨습니다. 또 원수, 사울 왕의 족속 시므이를 통해서 다윗을 저주하게 만드셨는데 그것도 사람 막대기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들어서, 대적을 들어서, 나아가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들어서라도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회개시키십니다. 다윗이 범죄한 후 아들 한 명이 죽었는데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징계하신 것입니다.
영원히 견고케 하시려 징계하심
그런데 하나님께서 안 믿는 사람은 왜 징계하지 않으십니까? 왜 그들이 잘 됩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바로 믿어보려는 사람이 오히려 더 징계를 많이 받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되는 대로 믿는 사람은 왜 징계를 안 받습니까”라고 합니다. ‘조금만 잘
못해도 우리를 징계한다면, 안 믿는 사람은 밤낮 잘못하는데 왜 그들은 더 잘 됩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되는 대로 믿는 사람은 이름만 갖다 걸쳐놓고 성경도 안 지키고 그저 예배당만 한 번 갔다 와서 별의 별 짓을 다하고 돌아가도 돈만 잘 벌고 몸도 건강하고 자
녀들도 잘 되고 뭐든지 다 잘 된다는 것입니다. 죽을 때도 평안하게 잘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 몇 가지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안 믿는 사람은 이다음에 지옥에 보내므로 가만 둬두는 것입니다. 지옥에 갈 사람은 간섭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다음에 지옥 보내는 것으로 영원히 징벌을 받을 것이니까 가만 내버려 둬두는 것입니다. 쓸 만해야 훈련도 시키고 채찍질도 하지, 쓸모없는 사람을 뭐 하러 채찍질하겠습니까? 말이나 소 같은 것은 쓰려고 할 때에 채찍으로 때리기도 하고 훈련도 시킵니다. 개도 훈련시킵니다. 그러나 돼지는 채찍이 없습니다. 돼지는 아무리 잘못해도 채찍으로 안 때리고 밤낮 먹여서 살만 뚱뚱하게 합니다. 잡아먹을 것이니까 채찍질할 필요가 없습니다. 쓸 필요가 있는 것을 채찍질하고 잘못되었다고 바로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쓸 필요가 없는 것을 무엇 때문에 고치겠다고 때리느냐는 말입니다. 괜히 채찍질만 하는 것이고 괜히 수고만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세 가지의 징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죽을 때 한꺼번에 징계 받는 사람이 있고, 또 중간에 가끔 한번씩 징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할 때 얼마 동안은 받아주시다가 가끔 한 번씩 징계를 받는 사람, 날마다 징계하여 매일 징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편 73편 14절에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73편 3-14절에 보면 악한 사람은 죽을 때도 잘 죽습니다. 살이 찌고 눈이 솟아나오고, 소득은 마음의 소득보다 많고, 또 자녀들은 잘 되고, 재산은 날마다 더하고, 항상 평안하며 죽을 때도 고통이 없이 잘 죽습니다. 재앙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라는 것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당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얼마 동안은 받아주시다가 이따금 한 번씩 징계하시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통 한 일 년이나 몇 달에 한 번씩 징계하십니다. 또 잘못한 것이 많이 있지만 다 모아두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한 번씩 때리시는 것이 보통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보통 이하는 아무리 못되게 돌아가도 가만 두었다가 죽을 때 가서 곰국을 단단히 먹여서 쩔쩔 매게 만드시고, 회개를 하지 않으면 죽을 지경에 빠지게 해서 회개시켜 데려가십니다.
매일 아침마다 재앙을 당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특별반입니다. 특별반에 들어가면 고생이 많습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매일 아침마다 맞고 종일 재앙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징책을 받고 또 분초마다 받는 것은 특급반입니다. 욥기 7장 18절에 “아침마다 권징
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시킬 때에도 세 종류의 학생이 있습니다. 대다수는 보통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예외가 있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말 안 듣는 학생들입니다. 그런 경우 그 학생들이 공부 시간에 장난을 하던지, 칠판을 안 쳐다보던지, 땅을 보고 있어도 가만 놔둡니다. 개꼬리 삼 년이 되어도 황모가 못되니까 아예 예외로 하고 아무리 잘못해도 가만 내버려둡니다. 그 다음에는 특별반이 있습니다. 특별반이라는 것은 특별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되는 학생을 따로 뽑아, 몇 시간씩 공부를 더 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학생들을 다 보낸 다
음에 남아서 서너 시간씩 특별공부를 더 시켜서 좀 더 좋은 상급학교에 보내려고 하는 모양 같습니다. 특별반에 들어간 학생들은 고생을 죽도록 합니다. 남들이 다 집에 갈 때 집에 가지도 못하고 서너 시간을 더 하다가 밤에 들어갑니다. 어쩌다 집에 일찍 들어가면 매를 맞
고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고생을 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또 선생님들한테도 더 많이 간섭 받고 놀래야 놀 수가 없고 안 할 수가 없으니 별 수 없는 것입니다.
음에 남아서 서너 시간씩 특별공부를 더 시켜서 좀 더 좋은 상급학교에 보내려고 하는 모양 같습니다. 특별반에 들어간 학생들은 고생을 죽도록 합니다. 남들이 다 집에 갈 때 집에 가지도 못하고 서너 시간을 더 하다가 밤에 들어갑니다. 어쩌다 집에 일찍 들어가면 매를 맞
고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고생을 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또 선생님들한테도 더 많이 간섭 받고 놀래야 놀 수가 없고 안 할 수가 없으니 별 수 없는 것입니다.
육신으로 볼 때에는 어느 학생이 제일 좋겠습니까? 육신의 평안으로 볼 때에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학생들이 제일 평안합니다. 또 육신적으로 제일 고생이 많은 반은 특별반입니다. 집에도 못가고 간섭만 자꾸 받고 고생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누가 제일 희망이 있습니까? 특별반이 제일 희망이 많습니다. 육신으로 볼 때에 가장 평안한 학생들은 자기 마음대로 먹고 놀지만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도 졸업은 다 시켜 줍니다.
신자들 가운데도 세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외가 있고 보통이 있고 특별반이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반에 들어간 사람은 매일 아침마다 징책을 당하고, 종일 재앙을 당하고, 어떤 때는 분초마다 징책 받기도 합니다. 어느 반에 들어가면 좋겠습니까? 조금 잘못해도 가만 내버려두는 곳에 가고 싶습니까? 예배당을 나가기는 나갑니다. 별 짓 다해도 하나님께서 가만 내버려두시고 간섭도 않으시고 돈도 잘 벌게해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일도 잘되게 해 주시는 등 다 잘되게 해 주십니다. 가만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천당을 가기는 갑니다. 졸업장도
타기는 탑니다. 어느 반에 들어가면 좋겠습니까? 특별반은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거기 갔다가는 죽어납니다. 종일 재앙을 당하고 아침마다 질책을 당하고 분초마다 당합니다. 그래도 특별반을 가야 희망이 있습니다. 보통보다는 특별반을 가야지 이다음에 하늘나라 갔
을 때에도 아주 고상하다는 것입니다.
특별반에서는 이따금 하나씩 죽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스테반이 죽었고, 야고보도 죽었고, 또 베드로도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고, 바울도 순교 당했고, 주기철 목사도 순교 당했습니다. 특별반에서 훈련 받다가 죽은 것입니다. 죽어도 좋습니까? “예!” 하십시오.
죽으면 순교자의 반열에 올라갑니다. 특별반에 올라가서 순교자의 반열에 올라가는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여러가지로 훈련시키십니다. 여기 다윗이 말한 인생채찍이나 사람 막대기는 보통인 것 같습니다. 보통반도 이렇게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으
로 때립니다. 혹은 특별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믿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주 징계하시고 또 매일 징계하시는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징계가 오면 특별반에 들어온 줄 알고 힘은 들지만 희망이 있는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죽으면 순교자의 반열에 올라갑니다. 특별반에 올라가서 순교자의 반열에 올라가는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여러가지로 훈련시키십니다. 여기 다윗이 말한 인생채찍이나 사람 막대기는 보통인 것 같습니다. 보통반도 이렇게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으
로 때립니다. 혹은 특별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믿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주 징계하시고 또 매일 징계하시는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징계가 오면 특별반에 들어온 줄 알고 힘은 들지만 희망이 있는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한 분이, 자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자기는 너무 환난이 많고 환난이 계속 닥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여러 가지 환난이 오는 것으로 알라고 했습니다. 자기보다 더 한심한 사람도 징계를 별로 안 받는데, 바로 믿으려는 자기는 왜 받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려 하시는 줄로 알고 우리는 언제나 감사히 생각해야겠습니다. 어떠한 징계나 막대기, 채찍이 와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주려고 주신 줄 알아야겠습니다. 특별반에서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니까 감사함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한 대 맞으면 면류관이 하나 올라가는 것입니다. ‘한 대 맞으면 한 개 올라간다, 올라간다’하라는 것입니다. 맞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올라간다, 올라간다’하라는 것입니다. 또 한 대 더 맞으면 ‘올라간다’고 하면 때리는 사람이 ‘올라가긴 뭐가 올라가는가’해도 맞으면서 올라간다고 하면, 그 사람도 눈치가 있어서 ‘올라가는 것이 있나보다’하면서 그만 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망을 가지고 여러 가지 연단을 잘 받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가서 특별 반열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자리에 참여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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