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7일 금요일

사무엘상 7:13-17 이스라엘의 회복과 사무엘의 치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이스라엘의 회복과 사무엘의 치리
사무엘상 7:13-17

13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15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16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 자기 집이 있음이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1. 하나님을 경멸히 여겨서 징계를 받음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봄으로 죽음

사무엘이 아직 사사로 있기 전,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였는데, 그때 언약궤를 전장에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에게 패하여 언약궤를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언약궤가 일곱 달 동안 블레셋 사람의 땅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블레셋에 큰 재앙을 내리셨기 때문에 블레셋 방백들이 궤를 이스라엘로 다시 돌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궤가 벧세메스에 이르렀는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보다가 (오만)칠십 인이 죽었고 많은 사람들이 애곡하였습니다. 그리고 궤를 기럇여아림으로 옮겼습니다(삼상 6:19-21).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보았는데 사람이 죽은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궤를 경멸히 여긴 태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존중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떨지 않고, ‘잠깐 들여다보자’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들여다 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무시했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하늘에서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옵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게 할 때에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붙들어서 죽음

역대상 13장 6-10절에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 이름으로 일컫는 궤라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
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 하니라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직 성전을 짓기 전에 다윗이 기럇여아림에 있던 언약궤를 메어 다윗 성으로 가지고 오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몇 년 동안 아비나답의 집에서 있었는지 생각해봅시다. 사무엘이 아직 사사로 일하기 전에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돌아와 기럇여아림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아 사사로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삼상 7:2-6). 사무엘이 나이 들어 늙었을 때(삼상 8:5) 사울을 왕으로 뽑았고, 사울의 재위 기간이 40년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동안 다스리고 예루살렘으로 옮겨 다윗 성에 거하게 되었습니다(삼하 5:1-10). 그리고 나서 다윗 성으로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궤가 약 100년 동안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습니다.

1)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려고 함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려고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을 하며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 수레를 끌던 소가 뛰므로 수레에 실은 궤가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궤가 떨어질까 봐서 웃사가 손으로 궤를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궤를 붙든 웃사가 죽었습니다. 사실은 궤를 위하려고 붙든 것입니다. 소가 뛰어서 수레에 실은 궤가 위태하고 떨어질 염려가 있으니까 손으로 붙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웃사는 하나님의 진노로 죽었습니다. 예전에 자동차에 냉장고를 싣고 오다가 잘 매지 않아서 떨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조 목사가 자기 집에 좋은 냉장고가 있으니까 가져가라고 해서 청년들이 갔는데, 잘 매지 않아 커브 길에서 그만 떨어진 것입니다. 천천히 왔으면 괜찮은데 급히 도니까 넘어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궤가 떨어질까 봐 손으로 붙든 모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죽였습니다. 왜 죽이셨겠습니까? 이것도 하나님의 궤를 무시한 것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말씀 앞에서 두렵고 벌벌 떨림으로 경외해야 하는데, 그것을 붙든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사람이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가 붙들려다가 죽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면 다 벌을 받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한 죄가 큰 죄입니다. 웃사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궤만 생각하고 붙들었다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성을 침범하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2) 여호와의 궤를 어깨에 메지 아니하고 수레에 실음

또 언약궤를 새 수레에 싣고 간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왔는데, 하나님의 궤는 고핫 사람이 메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메고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4장 11절에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찌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고핫 자손이 메고 가는 것인데, 그렇게 가기가 힘드니까 수레에 싣고 간 것입니다. 먼저 이방의 블레셋 사람들이 새 수레에 싣고 온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몰라서 싣고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옮길 때에는 반드시 레위 자손 중, 고핫 사람이 메야 됩니다. 힘들어도 메고 가야 합니다. 수레에다 싣고 거저먹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도 메고 가야지 싣고 가는 것처럼 거저 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궤를 힘들어도 어깨에 메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갈 때에 힘이 들어가고 땀이 들어가고 노력이 들어가고 정력이 들어가야 합니다. 수레에 싣고 가면 쉽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노력하며 십자가를 지고 수고도 하면서 메고 나가는 것입니다.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저 먹으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그저 예수를 쉽게 믿겠다는 생각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주일날이나 삼일 저녁에 예배당에 앉았다가 가는 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메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메야 합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나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유치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책임을 지고 하나님의 궤를 메고 가는 것입니다. 유년부, 중고등부, 청년부에서 반을 맡을 때도 하나님의 궤를 메고 가는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피와 땀을 흘리고 수고하면서 하나님의 궤를 메고 가야 합니다. 집사, 권찰, 장로, 목사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가는 것입니다. 아무 책임 없이 그저 왔다 갔다만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전 주간에 기도원 연보를 했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궤를 메고 가는 것입니다. 연보하는 것도 자기의 힘을 다 해서 메고 가는 정신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봉사하는 것도 힘을 다 해서 메고 가는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거저 먹는 것은 안됩니다. 소가 끄는 수레에 싣고 나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레에 실으면 거저 먹는 것입니다. 소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소는 이성도 없고 영혼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잘 끌고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후다닥 뛰었습니다. 그때 웃사가 붙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에 대해서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웃사와 같이 하나님께 징벌을 받습니다. 요새 소를 사다가 수레를 만들어서 싣고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나가기 힘드니까 돈 주고 하자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는 하지도 않고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합니다. 교회 일 혹은 기도원의 일을 하는데, 안 믿는 사람을 사서 하는 것은 전부 소 수레에 싣고 가는 것인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언약궤를 존중히 여겨야 함

사무엘상 2장 30절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
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겨 주시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는 경멸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존중받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하나님을 계속 존중히 여기면 됩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벌벌 떨며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도 벌벌 떨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존중히 여기십니다. 얼마 안 있으면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고 멸시하고 하나님의 거룩을 침범하며 거룩하게 여기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멸시하십니다. 천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언약궤에 손해가 나지 않도록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궤는 신성한 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신성한 교회입니다. 웃사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제가 하려고 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하나님의 언약궤는 교회와 같습니다. 언제나 교회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인 줄 알고 거룩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하지 않으려고 힘을 쓰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잘못될까봐 벌벌 떨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께서안 보시는 것처럼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기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믿고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성찬 예식에 잘못 참여하여 징계를 받음

고린도전서 11장 29-32절에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찬 예식에 참여할 때에도 자기를 잘 살피고 믿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분변치 못하여 먹고 마시면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찬 예식에
잘못 참여하면 약한 자가 생기고 병든 자가 생기며 징계가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잠자는 자가 있다는 것은 죽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찬 예식에 잘못 참여했다가 이렇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약하고 병들고 또 죽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징계가 온 것이었습니다. 성찬예식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생각할 때에 우리가 존중히 여기고 두려워해야겠습니다. 경외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없이 분변치도 못하고 먹고 마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 것입니다. 약하고 병든 자, 죽은 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경홀히 여겨서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을 무시하며 하나님을 경홀히 여긴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아야겠습니다. 신약시대에나 구약시대에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벌벌 떨며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보시는 줄 알고 살피시는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벌벌 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는 줄 믿고,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야 합니다.

2. 이스라엘의 회복

본문 13-14절에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
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셨습니다. 원수가 꼼짝 못합니다. 아모리 사람이 전에는 이스라엘을 침략하려 했지만 이제는 꼼짝 못합니다. 이방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한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손이 도와주셨습니다. 믿음을 잘 지키면 원수가 두려워합니다. 원수가 무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면 원수가 손을 대지 못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시고 빼앗겼던 것을 도로 돌아오게 해주셨습니다. 빼앗겼던 성읍,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도로 찾게 해 주셨습니다. 회개하고 믿음을 잘 지키면 잃어버렸던 것도 도로 찾게 해 주십니다. 더욱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언제
나 하나님 앞에 우리가 경외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궤에 대해서 경외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에 벌벌 떨지 않으면 징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줄 알고 하나님을 날마다 경외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역대상 13장 14절에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옮기다가 웃사가 죽자 감히 메고 올 수가 없어서 오벧에돔의 집에 들여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습니다. 그동안에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권속들의 소유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에서 돌아와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도 여러 해 동안 있었는데, 그때에는 많은 복을 내려 주셨을 것입니다(삼상7:1-2). 그의 집에 20년 동안 머물었으므로 그 집과 자손들에게 많은 복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니까 그 집이 창성하고 잘 돼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는 것을 듣고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왔습니다(삼하 6:12). 메고 나가야 합니다. 메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3. 사무엘의 치리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순회하며 다스림

본문 15-16절에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에 그냥 둔 것 같습니다. 사무엘은 가르치고 다스리는데 힘을 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치고 다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다스리며 잘못 나가는 사람을 치리하고 바로 인도하는 일을 사무엘이 하였습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돌아다니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치고 다스렸습니다.

본문 17절에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 자기 집이 있음이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고 하였는데, 라마는 사무엘의 아버지 집이 있는 곳입니다. 사무엘상 1장 19절에 “그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가 사무엘이 어렸을 때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성막에 사무엘을 바쳤습니다. 그리하여 엘리 제사장 앞에서 수종을 들었는데, 사무엘이 거기서 많이 배우고 연단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실로에서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직접 부르셔서 사명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블레셋과 전쟁할 때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나갔는데, 전쟁에 패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이 죽었고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습니다. 또 며느리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는 블레셋에 빼앗겼습니다. 그 바람에 실로는 아주 황폐해진 것 같습니다. 언약궤가 있었을 때는 실로가 하나님의 집이요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언약궤가 떠난 다음에는 황폐한 곳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무엘도 실로에 있지 않고 자기 집이 있는 라마에 온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는 하나님께 바쳐져서 실로에 있었지만 그다음에 자기 집에 돌아온 것 같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언약궤가 어디에 있습니까? 기럇여아림에 있습니다. 기럇여아림은 실로 부근에 있는 큰 도시입니다. 그곳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약궤는 아비나답의 집에 있고 사무엘은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치는 일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언약궤를 다른 곳에 가져가겠다는 생각은 안 한 것 같습니다. 언약궤는 가져오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다스리는 것이 중요합니
다. 이를 보면 사무엘이 언약궤를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경외는 했겠지만, 백성을 가르치고 다스리는 것을 더 중히 여긴 것 같습니다. 한 곳에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벧엘과 길갈, 미스바 등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곤 한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있는 곳이 라마였는데, 아마 아버지의 집에 돌아온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르치시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시곤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집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원래는 부모님의 집이 나사렛에 있었는데,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래서 가버나움이 예수님의 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방을 다니시며 전도하다가 자기 집, 즉 가버나움으로 가시곤 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실 때 어느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와서 고쳐주기도 하셨습니다. 사무엘도 이렇게 사방으로 다니면서 말씀을 가르치고 다스리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오곤 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언약궤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고 백성을 말씀대로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백성을 다스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무엘이 이것을 일생동안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중요함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받은 말씀 그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고 책망 받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과 심령을 부흥시켰습니다. 언약궤만
중히 여긴 것이 아니라, 심령을 부흥시키는 일을 한 것입니다. 물론 사무엘이 언약궤도 경외하였을 것입니다. 기럇여아림에 있는 언약궤에 관심을 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또 다스려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가만두지 말고 책망하여 바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을 전도해서 부흥되어야 합니다. 반장을 맡은 사람은 자기 반의 아이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일 년 내내 한·두 명, 세 명만 가르치고 부흥이 안 되면 안 됩니다. 한 명이 두 명 되고, 두 명이 세
명 되어야 합니다. 처음에 세 명 맡았으면 나중에는 네 명, 다섯 명은 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안 되면 제대로 일을 못한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고 힘을 쓰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메고 나가면 반드시 부흥이 됩니다. 

연초에 학생 하나를 맡아서 연말까지 그대로 있는 반장이 있었는데, 그 반장이 신학교 졸업을 하고 교회를 맡아서 나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너는 교회에 나가도 안 된다, 한명짜리가 무슨 교회가 되겠는가?” 했는데, 말을 안 듣고 시골에 가서 교회를 한다고 나갔습니다. 얼마 있다가 와서 교회가 되지 않아 생활이 곤란해졌는데, 다른 교단에서 그 교단으로 오면 원조를 해주겠다고 했나 봅니다. 그래서 “네가 교회를 제대로 부흥시킬 생각은 안 하고 돈을 받으려고 교단을 배반하고 다른 교단에 가는 것이 되겠느냐? 우리 신학교 졸업 하고 우리 교단을 배반하고 돈 받으려고 다른 교단 가는 것이 말이 되느냐? 우리는 보조해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일 년 내내 한명짜리 보조해줘야 교회가 되지 않을 것이 뻔한데, 보조를 해주겠습니까? 하나님의 돈으로 교회가 될 곳에 보조를 해주어야지, 안 될 곳에 보조해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되지 않을 곳에 하나 차려 놓고 보조해달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성도가 20명이 되면, 교단에서 인정해서 보조해 주고 입당 예배도 해줍니다. 20명은 되어야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0명도 안 되어서 고생만 하다가 그 다음에 다른 교단에 가서 보조를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교단에 가서도 폐나 끼치는 사람이지 교회가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언약궤를 메고 십자가를 지고 일심정력을 다하면서 나가야 되는데, 메지 않으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거저먹으려고 해서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무엘이 한 것을 본받아서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심방을 가서도 성경 말씀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또 무슨 문제가 있으면 성경말씀대로 해결해줘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찾아서 읽어 주고 이대로 하면 된다고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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