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7일 화요일

신명기 8:1-20 광야 길을 걷게 하신 목적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광야 길을 걷게 하신 목적
신명기 8:1-20

1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3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5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7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켈 것이라 10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
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11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13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면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16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18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19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20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니라

1.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생명이 살고 번성함

본문 1절에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면 생명이 살고, 명령을 지켜 행하지 못하면 죽습니다. 죽고 사는 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번성합니다. 창성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열조에게 맹세한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복지를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면 영도 살고. 육도 살고, 번성하고,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반면에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쇠잔하고, 죽고, 가나안 땅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가나안 복지에서 살지 못하고, 곧 낙원에서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서 행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명령을 행하면 영육이 살고, 번성하며,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2. 광야 길을 걷게 하신 목적
본문 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40년 동안 너로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광야 길을 걷게 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낮추시며 시험하사 명령을 지키는지 알려 하심

‘너희를 낮추시고,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광야 길을 걷게 하신 목적은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명령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알게 하려고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본문 15-16절에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위험한 광야, 불뱀과 전갈이 있는 광야, 간조한 땅, 물과 식물이 없는 땅으로 너희를 인도를 하셨는데, 그 목적은 본문 16절에 너를 낮추시고, 너를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고 그 길로 인도를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먹을 게 없는 곳으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마실 물이 없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셨습니다. 또 위태위태한 곳으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전갈과 불뱀이 있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셨습니다.
사자들과 표범산이 있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셨습니다. 아가서 4장 8절에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보아라”고 하셨습니다. 사자 굴과 표범 산으로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셨습니다. 까딱하면 사자한테 잡혀 먹히고, 까딱하면 표범한테 뜯어 먹히는 곳으로 성도들을 인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길을 안 걷게 해 주실 수 있었습니다. 40년을 안 걸리고 호렙산에서 19일, 애굽에서는 22일, 혹은 한 달이면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홍해 바다 위쪽 길로 가게 하셨으면, 홍해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약 한달이면 갈 수 있는 길을 40년이나 걸리게 하셨습니다. 시내산까지 두 달이 걸리게 하시고, 시내산에서 머문 기간이 일 년이 걸리게 하시고, 거기서 가나안 입성까지 38년간 걸리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어려운 길, 험한 길, 불뱀이 있는 길, 전갈이 있는 길, 먹을 것이 없는 길, 마실 물이 없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왜 이런 험한 길로 인도하십니까? 왜 우리를 여러 가지 고난이 많은 길로 인도하십니까? 어떤 때는 원수가 있는 곳, 잡아 삼키려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또 일이 잘되다 안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시면 되는데 안 도와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되겠는데 허락을 안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한 달이면 다 될 텐데 몇 년이 지나도 안 됩니다. 고통이 많은 길, 험산준령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
니다. 원망과 불평이 많은 길로 인도를 하십니다. 고난과 십자가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잘 해주실 수 있는데 잘 해주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왜 이러한 길로 인도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를 좋은 길을 가게 하지 않으시고, 거친 광야 길을 걷게 하시는 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좋은 밥을 먹지 못하게 하고, 잡곡밥을 먹게 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평안하고 순탄한 길을 걷게 하지 않고, 역경의 길, 고난의 길, 험한 길을 걷게 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본문 2절에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셔서 명령을 순종하는지 안 하는지를 아시려는 것입니다. 

평안하고 일이 잘 되어 나갈 때는 다 믿음이 있고, 순종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할 때 믿는 지 안 믿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국난사충신(國難思忠臣)이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나라가 어지러우면 충성스런 신하를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나라가 평안 할 때는 전부 다 충신이고, 애국자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어렵고 어지러워질 때 진짜로 충성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 낮추시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믿기 힘든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또 바치기 힘든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교만하면 망하기 때문에 낮추는 곳으로 인도를 하십니다. 바울을 왜 낮추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까? 고린도후서 12장 7-9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에게 가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면 가시가 있는 것도 빼주셔야 하는데 왜 가시를 주셨습니까? 바울이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교만할까봐 낮춘다고 하셨습니다. 가시가 있어야 낮아집니다. 가시가 없으면 교만해 집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랑하셔서 교만하면 망할까봐 낮추시느라고 바울에게 가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 특별 기도를 했지만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가시가 없어지면 망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약해져야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해 집니다. 내가 너무 강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떠납니다. 내가 약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머뭅니다. 강한 사람은 가만히 내버려 두
면 부러지고 깨지고 망하게 되므로 약해져야 합니다. 바울을 약하게 만드시느라고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진다고 하셨기 때문에, 바울이 크게 기뻐함으로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자기가 잘 한 것을 자랑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 잘못한 것, 부족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고후 12장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궁핍, 능욕, 약한 것, 핍박, 곤란을 기뻐했습니다. 약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강하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능욕과 핍박과 궁핍과 곤고를 당해야 낮아집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머물게 됩니다. 일이 일사천리로 술술 풀려 나가면, 능력이 그 사람 속에 머물지 않습니다. 가다가 난관이 닥치고, 시험이 닥치고, 정지를 당하고, 갈 길이 막히고, 돈이 떨어지고, 먹을 것이 떨어지고, 빚더미에 올라앉고, 함정에 빠져
야 낮아집니다. 일이 순조롭게 잘 되기만 하면 안 됩니다. 

예배당 지을 때도 술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 지을 때 순탄하게 잘 되었습니까? 우리 예배당을 지을 목수가 돈을 받고 달아났습니다. 그래서 빚을 삼천만 원을 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술술 됐으면 잘했다고 교만할 텐데, 빚더미에 앉게 되었으니 힘써서 기도하고 낮아지고 겸손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창광교회를 사랑하셔서 목수가 달아나게 만드신 것입니다. 교회를 연단시키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순풍에 돛을 달고 가는 배처럼 순조롭게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가면 만들어 지는 것이 없습니다.낮추시는 것도 없고, 시험하시는 것도 없고, 말씀 순종하는지 안 하는지 시험을 못해보시면 마침내 복 주실 것이 없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이스라엘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험한 길, 죽을 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광야 길로 걷게 하십니다. 광야 길을 걷게 하는데, 험한 길, 위험한 길, 불뱀 있는 길, 전갈 있는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갈 수 없는 길로 가라시며 감당하기 힘든 가시를 주십니다. 그러나 가시를 주셔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가시를 줬다고 생각을 하는데, 결국은 감당할 수 있는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고후 10장 13절에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주십니다. 가시도 감당할 수 없는 가시는 안 주십니다. 거기서 낮추시는 것입니다. 낮출 때 낮아져야 합니다. 바울의 가시는 눈병이
라고 했습니다. 눈병으로 눈이 축축하고, 시원치 않고, 작은 글자가 안 보여서 큰 글자로 편지 마지막에 사인을 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교회에서는 할 수 있으면 눈이라도 빼줄 생각을 할 정도로 눈병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많은 지장이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멸시를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왜 그런 눈병이 나느냐, 너같이 될까봐 안 믿겠다, 난 예수 안 믿어도 너보다는 낫다’고 하면서 멸시를 받았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낮추시는 것입니다. 너를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가시가 없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시가 없다고 뽐내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서 낮아져야 합니다. 마침내 복 주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바칠 수 없는 것을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낮아져야 하는 길로, 가시를 주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해져서 망합니다. 망할까봐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낮아지는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2) 시험을 주시는 이유

그런데 복을 받을 자격을 만들려고 시험을 주실 때, 합격이 되어야 복을 주십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한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나 자격을 갖추고, 시험을 치고, 합격이 되어야만 상급이 있는 것입니다. 무시험으로 올라가기만 하고, 다 받는 것은 시원치 않습니다. 반드시 시험을 쳐서 통과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순종하지 못할 것을 순종하도록 만드십니다. 믿지 못할 것을 믿도록 만드십니다. 아브라함도 순종하지 못할 것을 순종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라가 90세이고 아브라함이 100세인데 아이 낳는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90세 할머니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 진짜 믿는 것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사정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100세가 된 사람이 아이를 낳습니까?’라고 하면서 안 믿으면 낙제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믿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바칠 수 없는 것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100세에 난 아이인데 바칠 수 있습니까? 바칠 수 없는 것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바치나, 안 바치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나, 안 순종하나를 보셨습니다. 그런데 순종했습니다. 합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안 한다고 하셨는데 왜 시험하셨냐고 물어 보는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에 시험을 받지도 아니 하시고, 시험을 하지도 않으신다’고 했는데, 왜 시험을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악으로 시험하지 않으시고 악한 자에게 시험받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나 못 살게 하시려고 시험하는 것이 아니고, 낮추고 시험해서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 ‘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이 이삭이 불에 타 죽어서 재가 되면 무효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에 한 말씀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이 왜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가, 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많아지겠다고 말씀 하셨는데 결혼도 하기 전에 번제로 죽이라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도 믿을 것이 있고 안 믿을 것이 있나’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에 하신 말씀이 꼭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이삭의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많아질 것도 믿고, 이삭을 바치라는 것도 순종을 했습니다. 지금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서 전에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믿는가를 보시려고 이 시험을 주신 것입니다. 독자 바치라는 말에 순종하나, 안 하나를 보시려고 시험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합격을 했습니다. 시험이 고등고시보다 더 어렵습니다. 생명 전체를 다 바쳐놓고, 자기 아들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고, 또 죽어도 다시 살리는 것을 믿어야 하는 굉장히 큰 시험입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이 합격을 했습니다. 믿지 못할
것을 믿었고, 순종하지 못할 것을 순종했고, 이기지 못할 시험을 이겨서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 하는 길,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야 하는 길, 바칠 수 없는 것을 바쳐야 하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바칠 수 없는 것을 바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십니다. 그것을 못 바치면 끝이 납니다.

예배당 짓는 일들, 예배당 사는 일들이 교단에 있습니다. 이일은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당을 지으려고 복권을 샀습니다. 1억짜리 당첨되면 예배당을 지으려고 복권을 샀는데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칠 수 없는 것을 바쳐서 예배당을 지어야 합니다.
피땀이 들어가고, 생명이 들어가고, 독자를 바치는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복권으로 예배당을 지으려고 합니까? 또 돈 많은 사람이 오면 좋겠다,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오면 예배당을 짓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교회 나옵니까? 안 나옵니다. 교회에는
피와 땀이 들어가야 합니다. 바칠 수 없는 것을 바쳐야 합니다. 믿을수 없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독자를 바쳐서 지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 하는 길로, 바칠 수 없는 것을 바쳐야 하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임

본문 15절에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불뱀과 전갈이 있는 위험한 광야와 물이 없는 간조한 땅으로 인도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너희를 낮추시고 시험하사, 명령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 16절에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낮추시고 시험해서 마침내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너희를 낮추시고, 시험하셔서, 명령을 순종하는지 안 순종하는지 보시려고, 마침내 복 주시려고 고난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많은 고난을 겪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불뱀과 전갈이 있어서 쏘아
죽이려고 하는 길로 인도를 하셔도 감사해야 합니다. 사자굴과 표범산과 아마나와 스닐의 꼭대기와 헤르몬 산으로 인도를 하셔도 감사한 것입니다. 그 길로 인도해 주셔야 우리가 낮아집니다. 시험을 당하고 나서 낮아집니다. 자기가 믿음이 없는 것도 알게 되고, 말씀에 힘써 순종하는가 안 하는가도 알게 되고, 진짜로 믿는지 안 믿는지도 알게 됩니다. 가만히 두면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 줄로 알고, 순종하지 않으면서 순종하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험이 오면 믿음이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거꾸러져야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지키기 어려운 곳으로 인도합니다. 지키기 쉬운 것은 누가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어려운 말씀을 지켜야 되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 때 지키면 진짜 믿는 것이고, 안 지
키면 안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나, 안 믿나’를 아시려고, 믿음 지키기 어려운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믿기 어려운 길로 인도하실 때에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그리고 바치기 어려운 것을 바치게 하십니다. 쉬운 것을 누가 못 바치겠습니까? 연보하라고 하면, 호주머니에 있는 것을 바치고, 다 바쳤다고 하는데, 그것이 다 바친 것입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다 바쳤다고 그것이 다 바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호주머니에 있
는 것을 바치라는 것이 아니고, 바치기 어려운 것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힘든 것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네가 힘써서 네 힘에 맞도록 바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연보를 해도 자기 힘에 맞도록 하면 됩니다. 쌀 한 가마니를 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은 한 가마니를 지고 가면
되고, 반 가마니를 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은 반 가마니를 지고 가면 되고, 반의 반 가마를 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지고 가면 됩니다. 자기의 힘을 다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있습니다. 한 가마니를 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반 가마니를 지면 안 됩니다. 두 말 지고 갈
실력자가 한 말 지고 가면 안 됩니다. 곧 한 가마니를 바칠 사람은 한 가마니를 바쳐야 합니다. 반 가마니를 바칠 사람은 반 가마니를 바쳐야 합니다. 호주머니를 들여다보고 쓰다 남은 것을 다 바치면 안 됩니다. 

3. 만나를 먹이신 목적

본문 3절에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왜 먹을 것이 없는 땅으로 인도를 하셨습니까? 그것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떡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는 줄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또 자기들이 도저히 당할 수 없는 원수들이 많은 곳으로 인도를 하셨는데 그것은 살려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하려고 그곳으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마태 4:4)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시려고, 먹을 것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시고
만나를 내려서 먹여주셨다는 것입니다. 떡이 없어도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떡이 없어도 사는 줄을 알게 하시려고 떡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살려 주셨습니까? 만나를 내려 주셔서 살려 주셨습니다. 떡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살리시면 삽니다. 사는 것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께 있고 떡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는 한자성어가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하늘에 있다는 뜻인데, 사람이 사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떡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떡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면 살게 됩니다. 무엇으로 살려 주십니까? 만나를 먹여 주셔서 살려주십니다. 또 누구를 통해서 먹을 것을 물어다 주십니까? 까마귀를 통해서 아침과 저녁에 떡과 고기를 물어다 주어서 살려 주십니다. 

그릿 시냇가에 떡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까마귀들을 시켜서 떡과 고기를 물어다가 엘리야를 살려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살리려고 하시면 떡이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 집에 양식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가루 두어 푼 하고 기름 한 병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르밧
과부가 그것으로 떡 두 개 만들어서 아들하고 먹고 죽으려고 나왔던 것입니다. 떡 두 개 만들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그것을 먹게 해 달라고 했을 때 줄 수 있습니까? 넉넉하면 하나 줘도 괜찮겠지만 다 모아도 떡 두 개 밖에 만들 것이 없습니다. 또 기름은 한 병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엘리야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같으면 주겠습니까? 흉년이라 가루가 조금 남아서 떡 두 개 만들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식구가 한 덩이 하나씩 먹고 죽으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종이 와서 갖다 달라고 하면 주겠냐는 것입니다. 아마 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가 그 떡을 엘리야를 주고 굶어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안 죽는다고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죽는다는 말씀대로 안 죽었습니다. 또 3년 6개월 동안에 그 가루가 모자랐습니까? 안 모자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자라지 않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고, 그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기름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시려면 희한한 능력으로 살리실 수 있습니다. 까마귀를 통해서 물어다가 살리고, 사르밧 과부의 집에 기름과 가루가 3년 6개월 동안 떨어지지 않도록 하시고, 만나를 내려주셔서 살리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는 것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으로 삽니까? 하나님으로 삽니다. 하나님께서 살려 주심으로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셔서 산다 하면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7절에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줄을 알게 하시려고 그 길로 인도를 하신 것입니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
앗은 사람의 힘으로는 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골리앗과 싸워야 하는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사람의 창과 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있는 줄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야 알게 될 것 아닙니까? 사람의 힘대로 다 할 수 있게
하면, 자기들이 실력이 있어서 잘 해서 된 것으로 알고,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인간의 생각으로는 살 수 없는 불가능한 곳으로, 하나님께서 안 살려 주시면 절대 살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 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살려 주셔서
우리가 사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도 먹을 것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제는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왜 그 길로 인도 했습니까? 사람이 사는 것이 떡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셔야 사람은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서 그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으면 죽었어야 되는데 안 죽었습니다. 안 죽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자기 힘이나 세상 자연법칙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 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낮추시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많은 곳으로 인도 하면 자기 능력 가지고도 잘 먹는데 낮아지겠습니까? 먹을 것이 없어서 죽게 되었을 때 낮아지는 것입니다. 물어 없어 목말라서 죽게 되었을 때 낮아지는 것입니다. 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낮아져야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서 살려주셔 서 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으로서는 전혀 살 수 없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물질이 많은 풍성 한 곳, 샘물이 좋은 곳으로 인도했으면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줄 알겠습니까? 아닙니다. 자기가 잘 해서 잘 사는 줄 알고, 그 지방이 무슨 풍성해서 잘 사는 줄 알고, 개천물이 좋아서 사는 것으로 알고,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
으로서는 살 수 없는 땅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는 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도 그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좋은 곳으로, 풍성한 곳으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 쉬운 곳, 평탄한 길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불편한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까딱하면 죽을 곳, 사자굴과 표범산, 거친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거친 광야는 아주 살기 힘든 곳입니다. 광야에 들어가면 동서남북을 모르기 때문에 길을 찾지 못해서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길을 헤매다가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미국의 국경지대 같은 곳에는 멕시코에서 미국 국경을 넘어서 오려는 사람들을 멕시코 사람들이 돈 받고 국경을 넘게 해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부쯤에서 넘어 가라고 국경을 넘게 해주는데 사막지대라서 길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막에서 며칠 동안 헤매도 사람이 사는 곳이 나오지 않아서, 거기서 기진맥진 하다가 쓰러져서 죽은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길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안 죽은 것은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려 주셔야 되는 줄을 알게 하시려고 그런 사막지대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 것임

1) 영적 양식인 말씀으로 산다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 양식인 말씀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영이 사는 것이 진짜입니다. 사람의 중생한 영이 살려면 말씀을 먹어야만 점점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는 것이 말씀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많이 주십니다. 말씀의 양식을 풍성하게 주시는데 이것을 받아먹어야 영이 사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사경회에도 영이 사는 사람 많이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쏟아 부어 주시는데. 이것을 잘 받아먹으면 영이 삽니다. 영이 새 생명을 얻습니다.

2)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떡도 주셔서 살린다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는 말의 뜻은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떡도 주셔서 살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 첫째 뜻이고 그 다음에는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떡도 주셔서 살리신다는 뜻이 둘째입니다. 떡으로‘만’이라고 하였는데 ‘만’자가 그래서 들어간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과 떡을 둘 다 가지고 산다는 것은 롯의 신앙임

어떤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의 해석을 영혼은 말씀으로 살고 육신은 떡으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육신은 떡으로 살고 영혼은 말씀으로 사니까 떡으로‘만’자가 들어 갔다는 것입니다. 그 해석이 맞습니까? 영혼은 말씀으로 살고, 육신은 떡으로 사는 것이라는 해석
이 맞습니까? 그 해석은 안 맞습니다. 왜 안 맞습니까? 그것은 말씀과떡을 다 가지고 산다는 것 아닙니까? 말씀과 떡, 둘 다 있어야만 산다는 사상인데, 성경의 사상은 그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말씀만 순종하면 산다고 했지, 한 손에는 말씀 붙들고, 한 손에는 떡 붙들고 산다
는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롯의 신앙입니다. 롯의 신앙은 한 손에는 하나님 붙들고 한 손에는 양치기 좋은 소돔 고모라 들판, 곧 물질을 붙드는 신앙입니다. 롯은 둘 다 가지겠다는 것입니다. 롯도 물론 자기 삼촌한테 배워서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기긴 했지만, 물질도 있어야 되겠다는 신앙입니
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다”고 할 때 소돔 고모라로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먼저 선택하라고 할 때 소돔 고모라로 가겠다는 것은 염치없는 행동입니다. 제대로 하려면 “삼촌이 먼저 택하십시오. 나는 삼촌이 가라는 곳으로 가겠습니다.”라고 했어야 정당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를 봐서도 삼촌의 나이가 100세가 되어가고, 롯은 조카니까 좀 더 젊지 않았겠습니까? 한 20세 이상 차이가 났을 것입니다. 그러면 삼촌이 늙어서 생활을 잘 못할 것이니까 “삼촌이 먼저 좋은 곳으로 가시고 저는 젊었으니까 아무데나 보내주십시오.”라고 했어야 롯의 신앙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촌 따라다니면서 지금까지 살았으면서 먼저 좋은 곳으로 가겠다고, 욕심으로 소돔 고모라를 먼저 선택해서 간 것입니다.

어떤 순사가 자기 삼촌을 고스톱한다고 잡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삼촌이 “네가 나를 잡으러 왔느냐”고 하니까 조카가 “가만히 계세요 제 월급이 올라갑니다”라고 했답니다. 삼촌을 잡아 가면서도 자기 월급만 올라가면 된다는 이 사람이 롯과 비슷한 사람입니다. 삼촌이
산골에 가서 어떻게 되던지 혼자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좋은 곳을 선택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소돔 고모라로 가서 잘 됐습니까? 쫄딱 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가지 않는 가나안 땅 헤브론 산골로 갔습니다. 산간벽지로 갔지만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아브라함은 산골로 갔어도 점점 창성해서 양치는 일군이 318명이나 됐습니다. 이들이 그돌라오멜 사대 연합국을 가서 쳐부수고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으로 사는 사람은 이렇게 됩니다. 둘 다 가지고 살겠다는 사람은 롯과 같이 망하고, 하나님 한 분으로만 살겠다는 사람은 아브라함같이 창성하고 강해지고 번성해 나갑니다.

그러므로 둘 다 가지고 살겠다는 생각은 그만 두어야 합니다. 하나만 가지고 살아야지 어떻게 둘 다 가지고 살겠습니까?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동쪽에서 먹고 서쪽에서 잔다는 뜻으로 원래 자기 잇속을 차리느라 절개도 없이 이리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오늘날에는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말로 쓰입니다. 이 말에는 유래가 있습니다. 중국의 제(齊)나라에 시집가야 할 나이에 이른 한 처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처녀에게 혼사자리가 두 곳에서 났습니다. 동쪽에 있는
신랑은 부자이지만 사람이 변변치 않고, 서쪽에 있는 신랑은 사람은 좋은데 먹을 것이 없고 아주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어디로 보내야 되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동쪽으로 보내면 신랑감이 변변치 못하기 때문에 원망을 듣지 않겠나를 걱정했습니다. 또 서쪽으로 보냈다가는 사람은 괜찮은데 먹을 것이 없어 쫄쫄 굶고 다니다가 원망 듣지 않겠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딸을 데려다가 “두 군데 중에 어디로 가겠느냐”고 물어 보니까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더랍니다. 그래서 “대답하기 곤란하면 저고리 소매를 걷어라. 왼쪽을 걷으면 동쪽으로 가겠다는 줄 알고, 오른쪽 소매를 걷으면 서쪽으로 간다는 것으로 알겠다”고 했더니, 한 쪽 소매만 걷지 않고 둘 다 걷더랍니다. 한쪽 소매만 걷어야 어디로 갈 지 알 것인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만 걷지 왜 둘 다 걷었느냐”고’라고 물었더니 그 처녀가 대답하길 “밥은 동쪽 신랑네 가서 먹고 잠은 서쪽에 가서 자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처녀가 시집 갔을 것 같습니까? 못 갔을 것입니다. 어떻게 가겠습니까? 누가 밥만 먹여주고 서쪽 신랑한테 자라고 하겠습니까? 우리도 둘 다 가지겠다고 저고리 양쪽 소매를 걷어 놓은 처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둘 다 가지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한 분만 붙들고, 하나님 한 분이 살려 주시는 줄로 알고, 하나님 한 분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입니다. 그렇게 하면 떡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떡은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주셔서 살리십니다. 그래서 ‘만’자가 들어간 것입니다. 떡이 ‘필요없다’가 아닙니다. 하나님 한 분만 붙들고 살면 떡이 필요할 때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주셔서 살린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갖다 주십니까? 까마귀를 통해서,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주셔서 살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떡을 주셔서 살리십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시는 벙법

왜정 말단에 신사참배 바람이 불어 올 때에 대구에 있는 어떤 목사는 신사참배 한번 하고 너무 원통해서 다시는 안 하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으면 잡으러 올 것 같아서 제일 깊은 산골에 들어가서 회개하면서 있었더랍니다. 산간벽지 제일 깊은 산골에 들어 갔으니까 먹을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땅을 파고 콩 종자를 얻어다가 조금 심었답니다. 파봐야 얼마나 팠겠습니까? 조금만 파고 콩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콩이 얼마나 낫는지 나무가 부러지도록 많이 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포기 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가지고 일년 먹고도 남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목사님이 신사참배를 한번 했지만, 그래도 회개하고 말씀 지키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먹을 것 주어서 살리신 것입니다. 먹을 것을 주어서 살려야 되겠기에 콩 심도록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많이 심을 수 있었겠습니까? 또 힘이있습니까? 또 산골에, 산간벽지에 무엇을 많이 심을 데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조금 심어도 먹고 남을 만큼 주신 것입니다. 보통 콩이 한 나무에 열 개나 스무 개씩 열립니다. 그런데 열 나무만 심었어도 보통 콩 농사지은 사람들 백 개, 이백 개, 아니 몇 백 개 심은 것만큼 많이 수확했습니다. 농사 많이 지으면 풀 뽑느라 힘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조금 심고도 수확이 많았으니 그 목사님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살리시려면 이렇게 살리십니다.

6.25사변 당시 1951년에 제주도에 피난 갔다가 부산의 고려신학교를 갔는데 말 그대로 빈손 들고 갔습니다. 피난민이 무엇을 가지고 갔겠습니까? 그런데 학생들이 식당에 가서 밥 먹는다고 갔습니다. 그래서 나도 식당에 내려가서 밥을 그냥 먹었습니다. 계속 그냥 먹었더니 ‘제주도에서 온 학생들 몇 사람이 돈 안내고 밥을 먹는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불러다가 ‘왜 돈 안 내고 먹느냐, 이제부터는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 먹었습니다. 안 먹고 공부만 했습니다. 하루 지나가고 이틀 지나가고 사흘 지나가고. 안 먹고 공부만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학교도 걱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이제는 “밥 먹으라”고 합니다. “왜 먹으라고 합니까”라고 물어보니까 미국에서 가난한 고학생들을 보조하는 원조가 좀 왔답니다. 하나님께서 원조 보내주셔서 그것으로 대신할 것이니 먹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또 먹었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미국 사람들을 감동시키셔서 미국에서 보내줘서, 그것으로 얼마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또 의복도 보내주고 양말도 보내주고 다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보내준 미제양말만 신었습니다. 미제 양발과 양복과 와이셔츠까지 전부 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인데도 그렇게 살려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미제 양말 한 켤레 받아서 열흘도 신고 스무 날도 신었습니다. 빨 새가 없습니다. 언제 빨겠습니까?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 사람들 한 켤레만 가지고 신기 때문에 냄새가 나서 못 배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정 그러면은 양말을 더 줘라, 한 켤레밖에 없는데 어떻게 빨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안 주면 자기들이 냄새가 나서 자기들이 걱정이지 정작 나는 냄새가 나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미제 양말 몇 켤레 더 얻어 신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신기합니다. 우리가 말씀만 사모하고 말씀만 순종하고 말씀만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필요하면 떡도 주셔서 살리시는데, 떡은 덤으로 줘서 살리신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영혼은 말씀으로, 육신은 떡으로”라고 해석하는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은 롯의 신앙으로 가다가 쫄딱 망하는 길입니다. 그것은 안 됩니다. 하나님 한 분만 붙들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영혼을 살려 주시는데, 말씀을 주셔서 살려 주시고, 떡도 필요하면 얻을 기회를 주셔서 살리십니다. 일 해서 벌게 하셔서 살게 만드십니다. 우리가 신학교 가서 배우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며칠 있다가 나가서 동네 포로수용소에 가서 전도하라고 해서 전도했습니다. 부산에 선교사가 많지 않았는데, 우리에게 봉급을 주어서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전도한 것입니다.

거저먹는 것은 며칠 안 됩니다. 계속 거저먹는 걸로 알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일해서 먹고 살게 하십니다. 아까 대구 산골 가서 농사를 지은 그 목사님도 일을 해서 먹고 살지 않았습니까? 일만 하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먹을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일은 안하고 ‘하나님께서 주시겠지’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일 해서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신 말씀 하나만 해도 굉장한 것입니다. 이 말씀 하나만 해도 마귀의 권세를 깨뜨릴 수 있는 말씀입니다.

4. 의복과 신발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본문 4절에 “이 이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29장 5-6절에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너희로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십 년 동안 의복과 신이 해어지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애굽에서 입고 나온 의복이 사십 년 동안 입어도 해어지지 않았고, 또 애굽에서 신고 나온 신도 그대로 사십 년간 신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니면 사십 년 동안 그 해어진 의복과 신을 신지 않도록 계속 하나님이 누구를 어떻게 통해서든 주셨겠습니까?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 것 같습니까? 애굽에서 입고 나온 의복과 신을 사십 년간 입고 신어도 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첫째고, 둘째는 사십 년간 하나님께서 계속 필요한 것을 누구를 통해서든지 주셨다는 것이 둘째인데, 어느 것이 맞는 것입니까?

둘째가 맞습니다. 물론 애굽에서 신고 나온 신과 의복을 사십 년간 하나님의 능력으로 낡아지지 않고 헤어지지 않게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잘 안 맞습니다. 왜 안 맞습니까? 애굽에서 나올 때 아이가 나왔습니다. 아이가 작은 의복 입고 작은 신발 신고 나왔는데 이젠 어른이
되었는데 아이 신발이 어떻게 어른에게 맞겠습니다. 신발과 의복이 커지지 않았겠습니까? 다섯 살 때 나왔으면 다섯 살짜리 아이가 사십 년이 흘렀으니 마흔다섯 살이 되었겠는데 마흔다섯 살이 된 성인이 어떻게 다섯 살짜리 아이의 의복이나 신을 신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신발이 커졌을 리가 없습니다. 신발과 의복이 어떻게 커졌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십 년 간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낡아진 옷을 입지 않도록 계속 옷을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사십 년 동안 신발도 바산 왕 옥을 격파하고 헤브론 왕 시혼을 격파하고 그 나라를 점령 할 때에 거기서 많이 얻어서 계속해서 낡아지지 않는 신을 신었다고 해야 맞는 해석입니다.

나도 사십오 년 전에 피난 나왔지만 지금까지 낡아진 옷을 입지 않고 해어진 신발을 신지 않았습니다. 내가 언제 해어진 신발을 신었습니까? 내가 언제 낡아진 옷을 입었습니까?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주시든지 입고 또 신도록 해 주셨습니다. 6.25사변 때도 신학교에 가서 미국서 보내준 신발도 얻어 신고 의복도 얻어 입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낡아진 신발 신지 않고 낡은 옷 입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 말씀만 순종하면 옷 걱정 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만 잘 순종하면 신발 걱정 할 것 없습니다. 무슨 걱정을 하겠습니까?

러시아 알마타에 선교사로 간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서 신발을 사 신을 돈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신던 구두를 좀 보내주었습니다. 나도 얼마 안 신던 구두 하나를 보냈는데, 지난달에 가서 보니까 오석진 목사가 내가 보낸 신발을 신고 있습니다. 오목사가 발
크기가 나랑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보내주신 것을 신는다”는 겁니다. 몇 번 안 신고 보내 줬으니까 새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나오면 또 하나 줄 것이니 달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만 해도 오래 신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음에 낡아지면 또 준다
고 말해주었습니다. 거기 간 사람들 발 벗고 삽니까? 신 없어서 해어진 신 신고 삽니까? 거기 간 사람들 의복 해어진 의복 입고 삽니까? 사십 년간 낡아진 옷 안 입고 해어진 옷 안 입었습니다. 이번에 알마타에 갈 신학교 졸업생이 두 분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의복 하나 주고 싶은 사람은 줘도 되고, 신도 하나 주고 싶은 사람은 줄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집에 두면 뭐하겠습니까? 국을 끓어 먹겠습니까? 가난한 사람 주고 없는 사람 주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순종하면 의복 걱정 있습니까? 없습니다. 또 신발 걱정 있습니까? 없습니다. 또 집 걱정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 없습니까?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입히고, 하나님께서 주셔서 신기고, 하나님께서 집을 주셔서 살게 만드시는 것입니
다. 하나님께서 그것 하나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도해서 살려 주시는 줄 알게 하려고 먹을 것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줄 알게 하려고 물 없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물 없는 곳으로 가면 죽습니다. 산악 지대에서는 며칠만 물을 못 먹으면 쓰러져 죽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물이 없어서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서 살려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죽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살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반석에서 물을 내주신 것입니다.

또 반석에서 물 내어 주셨다는 것의 신령한 뜻이 하나 있는데, 반석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로부터 생수가 나오는데 그 생수를 먹어야 영원히 산다는 의미로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절에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
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습니다. 반석에서 물 내 먹었는데 반석은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생수가 나와서 모든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또 그때 반석에서 물이 나와서 육신의 목마름도 해갈시켜 주었습니다. 영적인 면과 육적인 면을 살려 주셨는데, 말씀만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 주실 줄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든든합니까? 든든합니다. 지내보셨습니까? 나는 45년 지내 봤습니다. 확실합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확실히 먹을 것도 주시고, 마실 물도 주시고, 의복도 주시고, 힘도 주시고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새는 얼마나 좋은 물을 주셨는지 광주 기도원 물이 설악산 물과 같다고 합니다. 여간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미심쩍어서 국가에서 하는 검사소에 검사를 의뢰를 했습니다. 예배당 옆에 있는 물 2개와 물탱크와 개천물 등 4개의 물을 다 검사했는데 하나에 만 삼천 원
씩 주고 한 것입니다. 4개를 검사한 것에 대한 회답이 왔는데 전부 합격입니다. 대장균이 없습니다. 또 어떤 불순물도 없습니다. 탁도를 재 보면 개천물은 0.02, 그 다음엔 우물은 0.03, 물탱크 물은 0.03인가 0.04인데 다 아주 좋은 것입니다. 병에다 파는 물들, 다이아몬드 물, 석수, 또 미군들이 먹는 크리스탈, 장흥에서 뽑아내는 물보다 좋습니다. 우리 기도원이 그 물들 보다 좋다고 하니 그 물들을 사먹지 말고 우리 기도원에 와서 길어다 드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물 값은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그러면 더 좋은 물도 먹으면서 선교도 잘 되는 것입니다.

5. 순종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가나안 땅도 주심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물을 주셨는데 말씀대로 바로 하려고 하면 물도 좋은 것. 의복도 좋은 것, 신도 좋은 것으로 주시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걱정입니다. ‘의복이 없어서 걱정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이다 신이 없어서 걱정이다’고 하지 말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다 주시겠는데 왜 순종 안 합니까?

본문 5절에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하는 것처럼 너를 때때로 징계하시는데 사랑으로 한
징계니까 감사히 받고, 명령을 지키고 그 도를 행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7-10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씀 순종하면 옥토를 주십니다. 본래 옥토가 아닌데 옥토로 만들어 주십니다. 샘과 분천, 시내 물이 졸
졸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 또 감람유, 감람나무 소산지, 석류나무 소산지, 무화과, 포도 의 소산지로 먹을 것이 넉넉해서 결핍함이 없고 남아돈다고 했습니다. 또 그 산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고 너는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배부를 때 하나님 떠나면 망합니다. 옥토를 주고 배부를 때 더 하나님을 찬송하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6. 풍성할 때에 두려워할 것과 잊지 말 것

본문 11-14절에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찌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라고 하였는데 배부른 때가 위험한 때입니다.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또 양 떼와 소 떼가 번성하고 은금이 증식되고 소유가 풍성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주면 마음이 교만합니다. 조금만 넉넉해지면 교만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껍데기만 섬기게 되지 실제로는 하나님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하나님께서 주시면 교만하고, 조금만 좋은 집에 살면 교만하고, 조금만 은금이 많아지면 교만하고, 조금만
배부르면 교만하고 심령이 하나님을 떠납니다.

언제나 겸손해야 생명이 있습니다. 온유하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언제나 죄인 가운데 괴수인 줄 알고, 할 수 없는 자인 줄 아는 자리에 늘 서야 됩니다. 그런데 조금만 넉넉해지고 있으면 교만해집니다. 교만해져서 세상에 자기밖에 없는 줄 알고, 자기 생각이 제일인 줄 압니
다. 그래서 자기가 한마디 한 것이 절대적인 줄 알고, 안하무인격으로 다른 사람을 다 무시하고 자기 생각만 제일인 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자기중심적이라 윗사람도 아무것도 아니고, 아랫사람도 물론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교만이 어디서 나옵니까?

배부르고 은금이 증식된 데서 나옵니다. 돈을 조금 모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만이 나옵니다. 그런데 교만하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됩니까? 사람이 배가 부르면 교만하기 쉽고 교만하면 그 다음엔 망합니다. 틀림없는 코스입니다. 이 코스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망합니다. 조금 넉넉하면 교만하고, 교만해서 제가 제일인 줄 알고 안하무인이 되고 그 다음에 망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회개하면 괜찮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 하셔서 살려 줄 것이고 회개 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그러므로 절대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망하고 싶으면교만하십시오. 언제나 자기는 부족한 줄 알아야 됩니다. 나는 죄인 중 괴수인 줄 언제나 알아야 되고,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보고 그 들보를 빼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그래야지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티를 빼라, 왜 티가 있느냐 이렇게 하는 것은 벌써 교만입니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못 보니까 망하게 되지 않습니까? 죄인 가운데 괴수가 누구입니까? 나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죄인 가운데 괴수인 줄 알고 언제나 겸손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윗사람을 존경하고, 부모를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넉넉하다고 해서 교만하면 망합니다.

본문 15-16절에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 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
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너를 위험한 광야, 또 불뱀과 전갈이 있는 광야, 간조한 땅, 물이 없는 광야로 인도한 목적은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안 살려 주시면 못 삽니다. 물이 없는데 어떻게 살겠습니까? 또 불뱀과 전갈이 있어서 물리면 살아나올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 살려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를 지켜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살게 해 주신 줄 알게 해 주시려고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를 낮추시고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시려고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환난, 핍박, 불뱀, 독사, 전갈, 사자, 표범 등을 다 만나게 하시는데, 그런 곳으로 인도하셔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거기로 인도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줄 알게 하시려고. 또 너를 낮추시고, 그 다음엔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런 곳으로 인도하신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17-18절에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
다. 돈 좀 벌어 놓고는 ‘이것은 내 힘과 내 능력으로 벌었다. 내가 뭐 잘했더니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을 누가 벌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을 주셨기 때문에 번 것이지, 내가 잘해서 번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물 좀 얻었다고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망합니다. 재물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게 하셨고, 또 재물 얻을 능을 주셨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얻게 된 것을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쓸 줄도 알아야 합니다.

7. 여호와를 떠나 우상을 섬기면 멸망함

본문 19에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 떠나서 우상 섬기면 정녕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우상 섬기게 되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하고 우상을 섬기지 않도록 힘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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