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1일 토요일

여호수아 8:14-35 축복과 저주의 율법 선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축복과 저주의 율법 선포
여호수아 8:14-35

14아이 왕이 이를 보고 그 성읍 백성과 함께 일찍이 이르러 정한 때에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고 성읍 뒤에 복병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15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 패하여 광야 길로 도망하매 16그 성 모든 백성이 그들을 따르려고 모여서 여호수아를 따르며 유인함을 입어 성을 멀리 떠나니 17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으며 성문을 열어 놓고 이스라엘을 따랐더라 18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 19그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 처소에게 급히 일어나 성읍에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20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 본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할 수 없이 되었고 광야로 도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따르던 자에게로 돌이켰더라 21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 복병이 성읍을 점령함과 성읍에 연기가 오름을 보고 다시 돌이켜 아이 사람을 죽이고 22복병도 성읍에서 나와 그들을 치매 그들이 이스라엘 중간에 든지라 혹은 이편에서 혹은 저편에서 쳐죽여서 한 사람도 남거나 도망하지 못하게 하였고 23아이 왕을 사로잡아 여호수아 앞으로 끌어 왔더라 24이스라엘이 자기를 광야로 따르던 아이 모든 거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25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 26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27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28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29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 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질 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 30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31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그 위에 드렸으며 32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33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 대로 함이라 34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35모세의 명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인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거하는 객들 앞에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1. 이스라엘이 아이 성을 정복함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

이 성을 가리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여호수아가 손에 단창을 들고 아이 성을 가리키니 멀리서 이스라엘 복병이 보고 쏟아져 나와 그 성읍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다 열어놓고 나갔으므로성이 텅텅 빈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을 쫓아 모든 사람이 다 따라 나간 것을 보면 이 성 주민 모두가 군인으로 훈련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전쟁할 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아이까지 다 따라가는 것입니다. 강병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 백성을 전부 다 군대로 삼아놓고 마지막 한 사람이 죽기까지 싸운다고 해서 전쟁에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벌써 하나님께서 아이 성을 여호수아의 손에 붙여 놓으셨습니다. “다 네 손에 주었다”고 1절에 말했고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고 18절에도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벌써 전쟁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다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놓으셨기 때문에 아무리 아이 성 사람들 전체가 다 군대가 되어서 싸운다고 할지라도 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대로 되는 것입니다. 힘으로도 못하고 능으로도 못하고 전체가 다 달라붙어도 못하고 하나님께 절대적인 주권이 있는 것이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면 되는 것이고 안 주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복병을 못 보게 만드신 하나님

복병 삼만 명을 성 뒤에 매복시키고 그 다음에 오천 명은 나중(아침)에 보내서 두 번을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 성 사람들이 왜 못봤겠습니까? 아이 성 사람들이 어제 전쟁을 했는데 내일 또 올 것으로 생각하고 파수 서지 않았을 것 같습니까? 지금은 전쟁 중이고 원
수 몇 십만 명이 와서 진을 치고 있고 자기들은 일만 이천밖에 되지 않는데 파수를 서지 않았을 것 같습니까? 파수 안 서는 전쟁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쟁할 때에는 더욱 더 사방에 보초를 세워놓아야 됩니다. 뒤에도 세우고 앞에도 세우고 산 꼭대기에도 세우고 그 부근에 다 세워놓아서 발자국 소리만 나도 연락을 해서 나가서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왜 성 뒤에다 보초를 안 세워놓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웠을 것으로 봐야 됩니다. 세우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안 세웠다면 정상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매복한 군병을 보초들이 못 봤겠습니까? 잠들게 하는 신을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29장 10절에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고 하였는데 머리는 덮어서 생각이 안 나고 눈은 감았기 때문에 보지 못합니다. 또 엘리사가 도단에 있을 때에 아람 군대가 왔는데 그 때 엘리사가 기도하자 그들이 눈을 뜨고도 엘리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잠들게 하실 수도 있고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보고도 못 본 것처럼 눈을 뜨고도 못 보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엘리사가 그들을 데리고 사마리아 성으로 데리고 들어갈 때까지 여전히 알지 못하고 있다가 여호와께서 저희의 눈을 여시자 비로소 사마리아 성에 갇힌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왕상6:8-23). 눈을 뜨고도 모른 것입니다. 보면 다 아는 줄로 아는데, 보아도 다 아는 것이 아니고 또 안다고 해도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닙니다. 머리를 덮었기 때문에 생각이 매사에 삐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되고 하나님께서 해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명한 위치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매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매복케 하지 않으셨어도 이기게 하실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매복해서 싸웠습니까? 맞대결하고 나갔어도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시면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사람들에게 잠들게 하는 신을 부어 주었는지 하여간 매복하는 것을 다 모르게 만들어 놓았고 그 다음에 오천 명이 오는 것을 또 모르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흐리멍텅한 상태에서 이스라엘군이 공격하다가 도망쳐 나가자 “야, 이젠 우리가 또 이기겠다”해서 남녀노소 아이들까지 다 따라갔습니다. 성문을닫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조금 있다 들어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다 쫓아 보내고 다 물리치고 도로 들어오면 되는데 성문을 무엇 때문에 닫겠습니까? 그러자 열린 성문으로 텅텅 빈 성에 복병이 들어가서 불을 놓고 성밖으로 다시 나와서 아이 사람들을 치고, 또 도망하던 여호수아의 군대가 돌아서서 아이 성 사람들을 공격하니 아이 성 사람들은 이제 오갈 데가 없이 다 죽게 된 것입니다.

본문 25-27절에 “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 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아이 사람 일만 이천을 다 죽이기까지 여호수아는 손에 잡은 단창을 내리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아말렉 전쟁에서 손을 들고 있었을 때 이스라엘이 이긴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언제나 손을 드는 생활을 해야 되고 그 다음에 받들어 주는 사람은 받들어 주
는 생활을 해야 되고 나가서 싸울 사람은 싸워야 됩니다. 손을 드는 사람, 아론과 훌처럼 받들어 주는 사람, 나가서 싸우는 사람 등이 전쟁에 다 필요한 것입니다.

언제나 교역자는 손을 들어야 되고 교인들은 교역자를 받들어 줘야 되고 나가서 싸울 사람은 싸워야 됩니다. 그래야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호와의 전쟁에 승리합니다. 그런데 본문 27절에 보면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라고 하였는데 아이 성에서 탈취한 물건은 이스라엘이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절에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한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리고성과 달리 이번에는 탈취한 물건을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리고성에서는 하나도 가지면 안 되고 다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지라고 하신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바치라고 할 때 바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실 것은 반드시 주십니다. 바치라고 할 때에 아낌없이 바치고 명령대로 순종해서 전적으로 다 바치니까 아이 성에 가서는 이제는 너희가 가져라 수고 많이 했다 하시며 여리고 성에서 수고한 것을 다 보충시켜 주시고 또 이번에 수고한 것도 보충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바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충시켜 주십니다. 성경에 바치면 더 많이 주신다고 하였는데 마가복음 10:29절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라고 백 배를 받는다고 하였고 고린도후서 9장 10절에는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연보할 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께 꾸이는 것이고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모든 것을 더 내려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리고 성에서 바치라고 할 때 완전히 바쳤더니 여기서는 풍성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면 흔들어 넘치도록 주신다고 하였고 또 말라기 3장에는 하나님께서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아이 성의 것을 다 주셔서 백성들이 많이 취했습니다.

본문 28-29절에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때 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질 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아이 왕을 잡아서 나무에 매달아서죽이고 저녁까지 있다가 내려서 아이 왕의 시체 위에다가 돌무더기를 쌓았는데 그것이 오늘까지 있다고 하였습니다.

2.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침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림

본문 30-31절에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그
위에 드렸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아이 성을 다 정복했습니다. 왕을 나무에 매달아 죽이고 가져다가 시체를 던지고 돌무더기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에발 산에 단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과 아이성을 정복한 후 모세가 명령한 대로 또 여호와의 율법 책에 있는 대
로 에발 산에 단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낸 그대로 충성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말할 줄을 모르면 말할 줄 모르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최권능 목사는 말을 할 줄을 몰라서 “예수 천당” 두 마디로 일흔 다섯 교회를 세웠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
하고 권능에 있는 것입니다. 다듬지 아니한 돌로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있는 그대로 죽도록 충성하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그대로 꾸미지 말고 순수하고 진실한 심령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쟁에 승리해서 원수를 물리치고 이제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번제는 그리스도께서 구속해 주실 것을 상징하는 제사입니다. 불에 태워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인데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와 같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해서 우리가 이번에 승리했습니다. 그저 주님의 은혜뿐입니다”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세계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번제를 드리고 또 화목제를 드렸는데 사람과 화목하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해야 되고 사람과 화목해야만 됩니다. 화목제사를 드리면서 이제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아간이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아간의 지파, 가족, 족속들이 화목을 못할 염려가 있습니다. 그래도 다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아간이 처벌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지 사람이 한 것이 아니므로 화목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과 화목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사람과도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섭섭한 것이 있으면 다 풀어야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인 줄로 알아야 됩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절대 안 떨어지는데 아간이 망한 것도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된 것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남은 가족과 먼 친척, 또 족속들이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이제는 모든 사람과 화목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돌에다가 율법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본문 32절에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여호수아가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돌에 기록했습니다. 아마 십계명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가 돌을 갖다 세워
놓고 십계명을 기록했는데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고, 후대에도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깨우침과 경책함을 받고 생명 길로 걸어가고 또한 오실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하라고 이렇게 율법을 돌에 기록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축복과 저주하는 모든 율법을 낭독함

본문 33-34절에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 대로 함이라 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파가 열두 지파이므로 여섯 지파씩 나누어서 여섯 지파는 그리심 산에 세워놓고 여섯 지파는 에발 산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그 가운데 서서 율법의 모든 말씀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읽을 때에 축복의 말씀을 읽으면 그리심 산에 선 사람이 “아멘”하고 저주의 말씀을 읽을 때에는 에발 산에 선 사람이 “아멘”을 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27장 11-15절에 “모세가 당일에 백성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절반씩 나누어서 열두 지파 중 여섯 지파는 그리심 산에 세우고 또 다른 여섯 지파는 에발 산에 세우고 여호수아는 그 가운데 서서 율법 책을 읽었는데 양쪽에 다 들린 것으로 보아 두 산이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15절에 있는 말씀,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하면 에발 산에 선 사람이 “아멘”해야 됩니다. 또 16절에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면 그 때 에발 산에 있는 모든 백성은 “아멘”해야 됩니다. 17절에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하면 에발 산에 있는 사람들이 또 “아멘”을 해야 합니다. 18절에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할 때에도 에발 산에 있는 사람들은 “아멘”을 해야 합니다. 19절에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하면 에발 산에 있는 모든 백성은 “아멘”해야 합니다. 20절에 “계모와 구합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하면 에발 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을 해야 합니다. 21절에 “무릇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하면 에발 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을 해야 합니다. 22절에 “그 자매 곧 그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과 구합하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하면 에발 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을 해야 합니다. 23절에 “장모와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하면 에발 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을 하고 24절에 “그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하면 에발 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을 해야 합니다. 또 25절에 “무죄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면 에발 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을 해야 합니다. 26절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하면 에발 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른쪽 그리심 산에 선 사람은 어느 때에 “아멘”을 합니까? 축복의 말씀을 들을 때에 “아멘”해야 합니다. 만약 “부모를 공경한 자는 복을 받을 것이요”하면 그리심 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을 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요”하면 그리심 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라”하면 오른쪽 그리심 산에 있는 사람이 “아멘”을 하라는 것입니다. 복을 받는다는 말이 많은데 그 때마다 그리심 산에 있는 사람이 “아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자는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받을 것이요”하면 오른쪽 그리심 산에 있는 사람이 “아멘”하고 “길을 잃은 소경을 인도해 주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요”하면 그리심 산에 있는 사람이 “아멘”해야 합니다.

에발 산에 선 사람이 저주의 말이 나와서 아멘 할 때에는 나는 내가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아멘을 해야 합니다. 그저 아멘하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할 때에는 부모를 경홀히 여기지 않아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
면서 아멘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를 경홀히 여기지 않고 공경하게 됩니다. 부모 공경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라 할 때에도 부모 공경하기로 결심하고 아멘 하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경홀히 안 여기니 잘 섬길 것이 아닙니까?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
라 할 때에는 다시는 뇌물을 안 받는다는 결심을 가지고 아멘을 하는데 뇌물을 안 받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라 할 때에도 나는 뇌물을 안 받는다는 결심을 하면서 아멘 하는 것이므로 결국은 마찬가지입니다.

“아멘”하면서 율법을 지킬 결심을 함

이렇게 모든 율법을 다 읽었는데 모세의 율법이 전부 613가지입니다. 613가지를 다 읽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적극적으로 하라고 하는 것이 248가지이고 소극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은 365가지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십계명에도 하지 말라는 것이 더 많지 않습니까? 하라는 것은 부모 공경하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 2가지이고 나머지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쳐야 하는 것이 더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할 때에는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아멘”해야 됩니다.
또 “선을 행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할 때에는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선을 행할 결심을 가지고 “아멘”을 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할 때에는 악을 행하지 않을 결심을 가지고 “아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아멘”, 저기서 “아
멘”하는데 여기는 죄를 떠나는 것이고 저기는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죄를 떠났으니까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멘”할 때에 그저 입으로만 “아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할 때에는 나는 그런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아멘”하고 그 다음에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면 부모를 경홀히 여기지 않을 결심을 하면서 “아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라”할 때에는 부모를 공경할 결심을 가지고 “아멘”을 하는 것입니다.

이 613가지에서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 248가지와 “축복을 받는다는 말씀” 365가지를 나누어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다 해당되는 말씀도 있습니다. “부모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하는 것이 있는데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는 성경말씀
도 있습니다. 말라기 3장에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한 말씀도 있다는 것입니다. 왼쪽으로는 “악을 행하면 저주 받는다”할 때 “아멘”하면서 악을 자꾸 떠나라는 것이고 오른쪽은 “선을 행하면 복을 받는다” 할 때 선을 행할 결심을 하고 “아멘”하면서 올라가는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충성하면 복을 받는다고 할 때에는 하나님께 충성할 결심을 하고서 “아멘”하라는 것입니다.
“아멘”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번 하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올라가면서 하는 것이지 그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멘”하면서 올라갑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복을 받는다”고 할 때에는 “아멘” 하면서 올라가고 공경한다는 것입니다. 또 “주일을 잘 지켜라”하면 “아멘” 하면서 생명 내놓고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을 못 지키던 사람이 “아멘” 한 번 하고서 잘 지키는 것입니다. 또 늦어지는 사람이 “아멘”하고는 예배에 안 늦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라” 하면 봉사하기로 결심을 하
고서 “아멘”하고 봉사를 잘 합니다. “아멘” 한 번 하는 데에 한 보따리씩 쌓이는 것입니다. “아멘” 한 번 하는 데에 한 보따리 쌓이고 두 번 하면 두 보따리가 쌓이는 것입니다. 봉사 한 번 하면 한 보따리, 두 번 하면 두 보따리, 세 번 하면 세 보따리가 쌓이는데 “아멘”하면서 자꾸 쌓여 올라가는 것입니다. “전도 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다”라 결심을 하고 전도하면 한 보따리 쌓이고 또 전도하면 또 쌓이는 것입니다. 자꾸 쌓이는데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갈 때에 그것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아멘”을 많이 안 한 사람은 쌓인 것이 없습니다. 한 반 보따리 그저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멘”하면서 열 보따리, 스무 보따리, 서른 보따리 계속 쌓은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쌓았습니까? 우리 기도원 봉사하는 사람 중에 밥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고천 기도원에서 18년을 밥을 했고 광주기도원에서 금년까지 5년을 해서 23년째 밥을 했는데 “아멘” “아멘” 하면서 밥을 하고 또 “아멘”하고 밥을 했으면 보따리 23개를 쌓아놓은 것입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갈 때에 그것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보
따리 조금 쌓는 것이 좋습니까? 많이 쌓는 것이 좋습니까? 많이 쌓는 것이 좋습니다. 봉사한다고 하면 아예 발 벗고 나서서 일심정력으로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선을 많이 행해가지고 가야 되겠다. 하나님을 위해서 좀 더 충성을 다해야 한다 할때 “아멘”. 전도하다가 감옥
에 갇히고 매 맞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면 전도하다가 감옥에 갈 결심을 하고 ‘아멘’하면서 매를 맞고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이 축복이 있다고 하면 모든 것을 바칠 결심을 하고 “아멘”하고 바치고 또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보따리, 두 보따리 해서 많이 쌓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이 쌓아서 가는 사람이 있고 얼마 쌓지 못하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에 보따리를 좀 많이 만들라는 것입니다.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다가 가지 말고 사는 동안에 아멘 보따리를 좀 많이 만들어서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할머니들도 좀 만드십시오. 하나님께 가지고 갈 것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아멘” “아멘” 하면서 만들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쌓아 가지고 가면 됩니다. 그런 사람은 일심정력하는 사람으로 놀 새도 쉴 새도 없습니다. 오늘도 “아멘” 생활, 내일도 “아멘” 생활, 아침에도 “아멘” 생활, 저녁에도 “아멘” 생활을 하면 계속 쌓이는 것입니다. 계속 선을 이루어 나가고 의를 이루어 나
가고 계속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고 계속 봉사를 해나가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참 수고 많이 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봉사해야 할 때 “아멘”으로 하면 보따리가 하나씩 쌓이지만 봉사를 안 하고 뻔뻔주의로 돌아가는 사람 은 보따리가 없습니다. 어
떻게 하든지 “아멘” 생활을 매일 해야 합니다.
왼쪽 에발 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할 때에는 죄를 떠나면서 “아멘”입니다. 오늘도 죄를 떠나면서 “아멘”. 내일도 죄를 떠나면서 “아멘”.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다 버리면서 “아멘”. 거룩하지 못한 맘을 버리면서 “아멘”하니까 거룩해지고 깨끗해지고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못된 생각을 버리니까 못된 생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계속 “아멘”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져 나갑니다. “아멘”하면서 모든 더러운 것을 다 멀리 떠나보내고 합당치 않은 것을 다 멀리 떠나보내고 점점 거룩해지고 깨끗해지고 점점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그리심 산 사람들은 “아멘”하면서 점점 쌓아가고 많은 것을 더해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아멘”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면서 매일 “아멘”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라고 하면 “예 하겠습니다.”하고 “아멘”하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보따리가 쌓이는 것입니다. 안 하면 그것은 “아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충성을 “아멘”으로 다해야 됩니다. 죄를 떠날 때는 에발 산에 가서 “아멘”을 하고 의를 이루어 나갈 때는 그리심 산에 가서 “아멘”을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에발 산 생활, 오후에는 그리심 산 생활을 하는데 이것은 떠나는 동시에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하나님 앞에 가기 전에 “아멘”을 많이 하고 가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에발 산에서 “아멘”을 많이 하고 죄를 멀리 떠나는 것입니다. 술 다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담배 다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전의 못된 것 다 끊어버렸습니다. 오른쪽에서 “아멘” 많이 하는 사람은 주일 잘 지키고 십일조 잘 드리고 하나님께 충성 잘 하고 연보 잘 하고 하나님께서 시키는 것을 잘 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보따리 쌓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아멘” “아멘”하면서 “아멘” 생활로 보따리를 많이 쌓아가는 것입니다. “아멘” 생활이 좋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멘” 생활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에 많은 보따리를 쌓아가지고 가야겠습니다. 보따리에는 모든 하나님의 선물이 가득 찼습니다. 풀어놓으면 번쩍합니다. “아멘” 생활할 때 보따리가 많이 생기고 자꾸 쌓여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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