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1일 토요일

여호수아 9:1-27 기브온 사람과의 약조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기브온 사람과의 약조
여호수아 9:1-27

1요단 서편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 해변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이 일을 듣고 2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려 하더라 3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의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4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5그 발에는 낡아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하고 6그들이 길갈 진으로 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원방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7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중에 거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약조할 수 있으랴 8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묻되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뇨 9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심히 먼 지방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명성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10또 그가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 11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 나라의 모든 거민이 우리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고 가서 그들을 맞아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당신들의 종이니 청컨대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하라 하였나이다 12우리의 이 떡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들의 집에서 오히려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취하였더니 보소서 이제 말랐고 곰팡이 났으며 13또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 부대도 새 것이더니 찢어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여행이 심히 길므로 인하여 낡아졌나이다 한지라 14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15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16그들과 언약을 맺은 후 삼일이 지나서야 그들은 근린에 있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라 함을 들으니라 17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제 삼일에 그들의 근린에 있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라 함을 들으니라 18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 19모든 족장들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20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을 인하여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21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었더라 22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거늘 어찌하여 우리는 너희에게서 심히 멀다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23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영영히 종이 되어서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리라 24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 모든 거민을 당신들의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을 인하여 우리 생명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25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26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27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로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1. 기브온 사람들이 화친을 청함

본문 1-2절에 “요단 서편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 해변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이 일을 듣고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왕들이 요단 강, 산지, 평지, 레바논 대해까지 헷 사람, 아모리 사람, 가나안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 등이 다 모여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려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브온 사람들이 화친하려고 왔습니다.

본문 3-7절에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의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그 발에는 낡아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하고 그들
이 길갈 진으로 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원방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중에 거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약조할 수 있으랴”라고 하였는데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와 싸우지 아니하고 와서 화친하려고 작정을 하고 멀리서 온 것처럼 위장을 했습니다. 어떤 모양으로 왔다고 했습니까?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진 기운 가죽 부대에다 포도주를 싣고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옷은 낡은 옷을 입고 떡은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해 가지고 길갈 진의 여호수아에게로 와가지고 “우리가 원방에서 왔나이다 우리와 약조 하사이다”라고 했습니다. 약조하자는 말은 죽이지 않기로 서로 화친하자는 것입니다.

2. 기브온 사람들과 화친 조약을 맺음

속아 넘어간 이스라엘 사람들

본문 7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중에 거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약조할 수 있으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거하는 듯 하다는 것을 보니까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알만하게 만들어 놓으셨는데도 속아넘어간 것입니다.

본문 8-13절에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묻되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뇨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심히 먼 지방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명성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또 그가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 나라의 모든 거민이 우리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
고 가서 그들을 맞아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이니 청컨대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하라 하였나이다 우리의 이 떡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들의 집에서 오히려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취하였더니 보소서 이제 말랐고 곰팡이 났으며 또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 부대도 새 것이더니 찢어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여행이 심히 길므로 인하여 낡아졌나이다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우리 중에 거하는 듯하다고 하자 심히 먼 지방에서 왔다고 하였고 여호와의 명성과 그가 애굽에서 행한모든 일과 또 요단 강 동편에 있는 바산 왕 옥과 헤스본 왕 시혼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듣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장로들이 갔다 오라고 해서 왔는데 여행을 위하여 떡을 떠날 때에 뜨거운 것을 가지고 떠났는데 지금은 다 말라서 곰팡이가 났고 포도주를 담은 가죽 부대는 새 것을 가지고 떠났는데 이제는 찢어지게 되었고 처음에 떠날 때 옷은 새 것이었는데 여행이 심히 멀므로 인하여 낡아졌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는 이것을 봐도 알 것 같습니다. 이유가 맞지 않습니다. 가죽 부대가 다 닳아지도록 오려면 몇 달을 와야 됩니다. 가죽 부대는 몇 년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신과 옷도 오래 입는 것인데 몇 달 동안에 이렇게 낡아질 리가 없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알만 한 것입니다. 거짓말 한 것이 다 드러난 것입니다. 얼마나 멀리서 왔기에 가죽 부대가 다 닳아지도록 왔겠는가? 얼마나 멀리서 왔기에 옷이 다 닳아져서 이렇게 되었는가? 또 얼마나 멀리서 왔기에 더운 떡이 말라서 곰팡이가 났겠는가? 또 몇 달 동안
왔으면 무엇을 먹고 왔는가? 다 알만 한데도 그만 그 말에 속았습니다.

본문 7절에도 “너희가 우리 중에 거하는 듯하니”라고 한 것을 보면 알만 한 것입니다. 우리 중에 거한다는 증거가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속은 것은 정신을 안 차리고 있다가 속은 것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갔다면 안 속을 수가 있습니다. 깨어 있는 신앙을 가지고 똑똑한 정신을 가지고 나가면 안 속을 수 있는데 그만 흐리멍텅한 정신을 가지고 나가다가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속일 때에 이렇게 속입니다. 진리에 대해서도 이렇게 속이고 또 모든 일에 대해서도 이렇게 속입니다. 또 가나안 정복 하는 일에도 이렇게 속이고 하나님의 일에 방해 놓느라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만 한 증거가 있는데도 그만 정신을 안 차리고 몰라본 것입니다.

속아 넘어간 이유-기도하지 않음

본문 14-15절에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여호와께 묻지 않고 그들과 화친한 것이 잘못한 것입니다. 여호와께 물어봤으면 알 수 있었겠는데 기도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생각으로만 화친하여 그만 올무에 걸린 것입니다. 알 만한 증거를 다 주셨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을 텐데 기도 안 하고 사람의 생각대로 하여 기브온 사람과 약조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23장 32절, 34장 12절, 민수기 33장 55절, 신명기 7장 2절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3장 32-33절에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로 내게 범죄케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고 하여 그들과 약조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4장 12절에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들이 너희 중에 올무가 될까 하노라”. 또 민수기 33장 55절에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 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을 남겨두면 그 사람들이 너희 눈에 찌르는 가시가 되고 결국은 너희가 그로 말미암아 상당한 고난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7장 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이제 가나안땅에 들어가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들과 약조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과 약조한 것을 보면 그들이 멀리서 몇 달 동안 왔다고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가나안 사람이 아닌 줄로 알고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그만 약조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올무가 되었습니다. 알만한 증거를 주셨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증거가 여러 가지가 드러
났는데 이 사람들이 깨어있지 못하다가 이런 올무에 걸려서 그만 잘못된 서약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 사람들은 찾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바로 해야 되는데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고 잘못 해 놓으면 그것이 올무가 되고 가시가 되고 덫이 되고 회중의 원망거리가 되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까 두렵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을 인하여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라고 하였는데 큰일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만 하도록 해놓으셨지만 찾으려고 애를 쓰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므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길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도를 했어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기도도 안 해보고 또 사실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아 속아 넘어갔습니다. 요새 우리도 사실을 자세히 알아보면 안 속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사실을 확실히 알아보지 아니하고 대강 넘어가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 속아 넘어간 것들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확실히 사실을 잘 살펴보았다면 안 속았을 텐데 그만 정신을 안 차리고 있다가 그저 잘 되겠거니 하고 있다가 속아 넘어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손해 본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 12살 났을 때 부모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도 그렇습니다. 확실하게 예수와 동행하였더라면 안 잃어버렸을 것인데 그저 동행 중에 있으려니, 친척 중에 있으려니 하고 사흘 길을 내려간 것입니다. 그리고는 찾으니 어디서 만나겠습니까? 확실히 찾아보고 알아보고 했
다면 안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공연히 그저 대강 생각하고 추측해서 되겠거니 했다가 그만 마귀에게 속습니다. 예수님이 마귀 들렸다고 잡으러 온 것도 확실히 알아봤으면 마귀 안 들린 것을 알 것인데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공연히 나돌아가는 말을 듣고 마귀 들렸다고 하니까 온 식구가 잡으러 간 것입니다. 확실히 알아보지 않고 하다가 올무에 걸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결혼하는 것도 확실히 알아보지 않고 하다가 연령도 속고 학력도 속고 직업도 속아 넘어가서 결혼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할 걸, 어찌할 걸, 이렇게 할 걸하며 ‘걸, 걸’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 알아보고 할 것이지 왜 확실히 알아보지 않고 속습니까? 잘 알아보고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누가 결혼하겠다고 오면 잘 알아보고 하라고 말해줍니다. 누구에게나 그 말을 다 해줍니다. 어저께도 어떤 성도에게 잘 알아보고 하라고 해주었습니다. 이 다음에 후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 알아보지 않고 무엇을 “척”하는 것에 속아 나중에 후회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전세 얻는 것도 그만 확실히 알아보지 않고 했다가 담보 잡힌 것을모르고 전세 돈 다 넘어간 사람이 많습니다. 확실하게 알아보고 하지않다가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알아보지 않고 하다가 잘 되겠거니, 괜찮겠거니 하고 있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것입니다. 그래서확실하게 알아보고 하라는 것입니다.

교역자도 확실히 알아보고 모셔야 되는데 이단들과 신비주의자들도 광명한 천사인 체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알아보지도 않고 따라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한번 와서 설교 잘하면 천사와 같이 생각을 해서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혹시키는 사람이 많은데 알아보지 않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7절에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그 자초지종을 전부 다 알아보고 따라가야지 임시로 몇 마디만 들어보고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탄도 광명한 천사의 노릇을 일시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들어보고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

1) 성경말씀으로 찾음 하나님의 뜻을 무엇으로 찾습니까?
첫째는 성경말씀으로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면 만능이고 또 형통하고 안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그것은 안됩니다. 가다가 올무와 덫이 되고 함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이나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하는 것을 항상 배워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할까? 바로 하면 되는 것이고 바로 못하면 실패합니다. 바로 하면 다 되고 만능입니다.

2)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로 찾음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찾으려고 애를 쓰면 하나님께서 찾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사르밧 과부에게 찾아가라고 하셨을 때 과부네 주소와 성명을 안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르밧 무슨 동네 몇 번지에 아무 과부한테로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조건 “사르밧 과부한테로 가라” 한 마디뿐입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갔습니다. 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과부를 찾게 해 주실 것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소를 아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입니다. 주소, 성명을 알았더면 엘리야가 죽습니다. 그 동네 아무개 과부를 찾으러 돌아다니다가는 잡혀 죽는 것입니다. 그 때에 엘리야를 잡으려고 전국을 다 수배하는 중에 있었는데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면 잡아 죽이는 것입니다. 사르밧에 과부가 많을텐데 어느 과부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고 가니 마침 성 밖에 과부 의복을 입은 여자가 하나 나와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 과부가 아닐까?’ 그런데 저 과부인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만약 아니면 죽습니다. ‘가서 말을 한 번 해봐야 되겠다.’ 말을 해 보면 아는 것입니다. “그릇에 물을 좀 담아 주십시오.”라고 하자 과부가 그릇에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런데 아무 소리 없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시 불러서 “여보시오, 올 때 떡도 한개 가져다 주십시오.”라고 하며 하나님의 보낸 과부인지 아닌지 반응을 보았습니다. 그 때 과부가 ‘별 사람을 다 보겠다. 물 좀 달라고 하더니 왜 떡까지 달라고 하느냐? 무슨 떡이 있다고 달라고 하느냐? 염치 없는 사람이 하나 왔다. 이 흉년에 어떻게 떡을 주겠느냐?’라고 했으면 그 과부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떡을 갖다 달라고 하자 곧 순종하는 태도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떡을 해 달라고 하니 떡 두어 개 만들 것밖에 없어서 자기와 아들이 떡 하나씩 먹고 죽으려고 떡 구을 나뭇가지를 주우러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하나님께서 보내신 과부인줄 알
아본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에 그 떡을 내게 먼저 하나 해오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삼년 육 개월 동안 그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에 기름이 다하지 않는다고 하셨다”고 하였습니다(왕상 17:14). 그러자 과부가 그 말을 받아서 그대로
믿고 순순히 가서 떡을 하나 해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과부가 확실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찾고, 과부의 공궤를 잘 받아 흉년에 다락방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오래 있는 동안에 설상가상으로 아들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잘 모시면 복을 받아야 되겠는데 과부의 외아들이 죽었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과부가 뭐라고 하였습니까?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와가지고 내 죄를 생각나게 해서 우리 아들이 죽었습니까?”라고 하며 원망했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네 집에 있으면서 성경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성경을 안 배웠으면 몰랐을텐데 성경을 계속 가르쳐 주니까 죄가 생각이 난 것입니다. 우상 섬긴 것도 죄요, 안식일을 못 지킨 것도 죄라는 것을 알았는데 지금 아이가 덜컥 죽자 가슴이 철썩 내려앉은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또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셨나이까?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재앙을 지금도 내리고 있는데 재앙을 또 내리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엘리야도 과부의 아이가 죽는 바람에 정신을 바짝 차렸고 과부도 이제는 속이 바짝 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살아난 것을 보고 과부가 “우리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에게 있는 말씀은 진실한 줄을 알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오랫동안 그 집에 있으면서 과부가 처음에는 엘리야를 잘 존경했지만 오래 있는 동안에 점차 존경심이 떠난 것 같습니다. 사람이 점점 보였을 것 같습니다. 먹고 가만히 기도만 하고 별로 하는 일도 없고 또 엘리야를 오래 보다보니 이래저래 존경하는 마음이 떠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과부가 이와 같이 해이해져 엘리야를 무시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또 엘리야도 오래 있는 바람에 조금 해이해졌는데 그것을 깨우치느라고 과부의 아들을 죽여서 엘리야를 깨우치고 과부도 깨우치시느라고 과부의 아들을 죽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살아나는 바람에 엘리야도 정신이 바짝 들어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고 과부도 정신이 바짝 들어서 하나님의 종을 잘 모셨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보내주었는데 내가 인간적인 면만 보고 처음처럼 존경하지 못했음을 마음을 깨닫고 회개하여 바로 섰습니다. 분명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찾을 만하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택하려고 고향으로 갈 때 누구를 데려와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누구의 딸인지를 모릅니다. 무조건 가서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만 믿고 갔습니다. 가서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이삭의 아내를 찾아야 되겠는데 누구한테 물어
봐야 압니까? 남의 처녀를 찾아다니다가는 괜히 매나 맞을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이 하나님께 내가 우물 가 곁에 섰다가 물을 길러 나오는 처녀를 보고 나로 물을 좀 마시게 하라고 했을 때 ‘그 처녀가 물을 주고 나귀한테도 물을 주면 그 처녀가 주께서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처녀인 줄로 알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하자마자 한 처녀가 나와서 “물을 좀 달라”고 하니 “주여 마시소서”하고 당신의 나귀에게도 물을 주겠다고 물을 길러갔습니다. 분명하지 않습니까? 물을 다 먹고 나귀에게 물을 다 먹인 후에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라반이 브두엘에게 나은 브두엘의 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종이 아브라함의 동생네 집으로 간 것입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동생을 찾아간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라반을 만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니 그 집에서 또 좋다고 하였습니다. 부모도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되는 것이 좋다, 또 그 처녀도 좋다고 했으니 리브가가 가겠다고 하면 보내겠노라하고 물어보니 리브가가 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안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게 리브가를 만나게 해주시고 또 그
집에서도 허락을 해주고 또 오겠다고도 해서 마침내 이삭의 아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딱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면 딱딱 맞는 것입니다. 또 어떤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까? 빌립에게 광야로 가라고 하셔서 가 보니 수레를 타고 가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났습니다. 가까이 가라고 하셔서 가 보니 이사야 성경책을 읽으면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읽
는 것을 아십니까?” 하자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좀 가르쳐 주십시오.”해서 빌립이 수레에 올라서 가르치면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복음임을 가르쳐주자 거기서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렇게 신앙 양심을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가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3) 신앙양심, 성령의 감동, 신앙경험으로 찾음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이 첫째는 성경말씀, 둘째는 하나님의 인도하는 바와 하나님의 섭리, 셋째는 신앙양심, 넷째는 성령의 감동으로, 다섯째는 신앙경험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신앙양심과 성령의 감동으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데에 있었다는 것을 다 알지 않았습니까? 또 멀리서 와서 가죽부대가 다 닳아졌다고 해도 자세히 살펴보면 거짓말이 다 환하게 드
러납니다. 그렇기에 잘 알아보고 신앙양심을 쓰고 사실을 밝히 알아보고 성경말씀을 적용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나가면 하나님의 뜻이 확실히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면 다 됩니다. 그러면 삽니다. 그러면 형통합니다. 그러면 만능입니다. 그러면 앞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면 앞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찾아야 함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성경말씀, 하나님의 섭리, 신앙양심, 기도와 성령의 감동, 신앙경험입니다. 여기 본문에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찾아야 됩니다. 자기가 잘 찾아야 되는데 하나님의 뜻은 원리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원리원칙에 맞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 기도하다가 생각나는 것을 가지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저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전체 사상에 맞아야 되고 원리원칙에 맞아야 되고 제도에 맞아야 되고 모든 섭리에 맞아야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 저렇게 하라고 하셨다 하는 것은 발람의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발람이 가렵니까 가지 마렵니까 기도할 때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가라고 해서 가니까 갈 때 당나귀가 책망을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면 이제라도 안 가겠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습니다. 가서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말씀만 하라고 해서 그 말씀만 전했습니다. 모압왕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했는데 축복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도해보고 가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갔더라도 발람이 망했습니다. 그래서 발람의 기도하지 말고 발람의 걸음 걷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해서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원칙에 맞아야 되고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제도에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령 “가정의 자녀”라고 하면 가정의 부모와 형제, 자매와의 관계 속에서 사랑과 가정의 법도와 질서에 맞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도망가고 기도하다가 아버지위에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도에 맞아야 하고 또 그 환경에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십니다. 어떤 며느리가 기도해보니까 이 집에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해서 보따리를 싸서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나가냐고 묻자 마귀 새끼들이 자기를 붙든다면서 뿌리치고 달아났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 며느리는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관적인 감정으로 가고 싶은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속상한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가야합니까 가지 말아야 합니까?’ 하면서 자기 마음에 나오는 대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은 자기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윗사람도 있고 아랫사람도 있고 인도자도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모세의 인도를 내내 받다가 모세가 떠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 여호수아도 갈렙과 제사장과 나팔 부는 사람도 있고 언약궤 메는 사람, 레위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있어서 요단 강을 건너가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다 제도대로 인도한 것입니다. 제도를 벗어나서 자기 혼자 이스라엘 밖에 나가서 큰 소리 치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궤를 멜 사람은 메고 나팔 불 사람은 불고 전군이 될 사람은 전군이 되고 후군이 될 사람은 후군이 되어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또 자녀는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을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 않았습니까? 이삭이 아브라함의 인도를 거역하고 뛰쳐나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란다 저렇게 하란다 했으면 이삭이 이삭의 구실을 못합니다. 야곱도 야곱의 구실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순종하는 것이 큰 복이요 큰 은혜라는 것입니다. 또 잘 됩니다.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상고하지 못했습니다. 그 지방 사람들과 약정하지말라고 여러 곳에 있는데 그것도 보지 않고 다 잊어버리고 멀리서 왔다고 하니까 속아서 약조를 했습니다.

3. 화친 조약으로 인하여 기브온을 치지 못함

한번 서원한 것은 지키라

본문 16절에 “그들과 언약을 맺은 후 삼일이 지나서야 그들은 근린에 있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라 함을 들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조약을 맺은지 삼일 후에 기브온 사람들이 원방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고 인근에 사는 사람들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쳐서 멸해야 되겠는데 맹세한 것 때문에 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회중이 족장들을 원망을 했습니다. 시편 15편4절에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이미 서원을 했으므로 해로울지라도 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속아서 맹세하였다고 해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됩니다.

성경에 위반되는 서원을 했다면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위반되고 어긋나는 것은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맹세를 일단 해놓으면 나중에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을 알고 고치고 싶어도 맹세해 놓으면 못 고치니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언
제든지 옳은 것은 옳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고 나가야 되는데 한번 맹세해 놓으면 고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맹세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그러면 잘못 맹세한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문제입니다. 맹세한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잘못 맹세한 것은 고칠 수 있다고 하였는데 만약 고치면 손해가 막심한 것입니다. 고치기도 힘들고 고치면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비방이 들어오고 부끄러움을 당하고 손해가 그만큼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웬만큼 손해가 나더라도 한번 약속한 것을 변치 않고 나가야 합니다.

고난이 조금 온다든지 경제적인 손해가 좀 난다든지, 자기 인격에 손해가 난다든지 매를 맞고 핍박을 당하더라도 한번 작정해놓은 것은 그대로 해야 합니다. 한번 서원한 것은 그대로 나가야 됩니다. 결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알아보지 않고 결혼했다가 속았어도 그래도
일단 서원하고 결혼했으니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속았다고 도망가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속았어도 결혼했으니까 거기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속여서라도 결혼해야하겠습니까? 속여서 결혼하면 손해가 막심합니다. 속여서 데려오면 평생 상대방에게 속이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 삽니다. 자녀들에게도 “너희 아버지가 결혼할 때 나를 속여서 초등학교를 졸업해놓고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속였다.”라고 말하게 되어 아이들에게도 손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웬만한 서원한 것은 고치지 않고 다 지켜야 합니다. 경제적인 손해를 보고서라도 한번 서원했으면 지키고 인격에 손해를 보더라도 한번 서원했으면 지켜야 됩니다.

서원한 것이 하나님께 죄가 되는 경우

그러나 완전히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거나, 이렇게 나가면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어그러지는 경우에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손해가 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큰 것이기에 그때는 “전에는 내가 잘못했다”고 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웬만한 것은 그저 손해가 나더라도 한번 서원한 것은 지켜야 됩니다. 그리고 약속도 한번 한 것은 지켜야 합니다. 고치면 좋겠다고 생각되도 일단 한번 약속한 것은 지켜야 되고 웬만하면 안 고쳐야 됩니다. 특별한 사유가 아닌 경우에는 한번 약속한 것은 지켜야 됩니다.

그러나 헤롯 왕이 한번 서원한 것 때문에 세례 요한을 죽였는데 그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출 때 네가 달라는 것은 나라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헤롯이 말하니 그 아이가 자기 어머니한테 가서 묻자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서원한 것 때문에 세례 요한의 머리를 베어서 주었지만 그것은 아주 잘못한 것입니다. 서원한 것이 큽니까? 하나님의 사람인 세례 요한의 머리 자르는 것이 큽니까? 세례요한의 머리를 벤 것은 아주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서원한 것을 어기는 것보다 세례 요한의 머리 벤 것이 아주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 때는 여러 사람 앞에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서원을 잘못 했는데 사과를 드린다. 이럴 줄은 모르고 한 것이다. 아까 한 말은 취소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자를 수는 없다. 다른 것을 달라고 하면 내가 주겠다.”고 하며 고쳐야 합니다. 위신이 좀 떨어져도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을 죽여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죽이면 죄가 얼마나 큽니까? 필생의 죄가 되고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을 것인데 자기 서원 하나를 지키느라고 하나님의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서원은 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웬만한 것은 한번 서원하고 약속한 것은 변치 말고 그대로 지켜야 됩니다. 그리고 서원한 것은 변치 않고 나가되 변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차선책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입니다. 기브온 사람과 잘못 약조는 취소해야 되는데 이것을 취소하면 손해가 막심합니다. 하나
님 앞에 서원한 것을 지키라는 말씀을 못 지키는 것이 됩니다. 차선책은 이 사람들이 서원한 것은 지키되 나무 패고 물 긷는 사람으로 두어서 이스라엘 구원운동에 이용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저 무조건 죽이지 않고 살려 놓으되 이스라엘 백성들과 약조도 하는 대등한 관
계로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영영히 종이 되어서”라고 했는데 아예 이들을 저주받은 백성으로 취급을 해놓았기 때문에 서로 교류가 안 되는 것입니다. 살린다고 약조를 했기 때문에 살려놓되 저주받은 백성으로 살려놓은 것입니다.
나무 패고 물 길으면서 하나님의 성전에 이용하는 사람으로 살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살았으나 사실은 죽은 목숨인 것입니다. 저주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이용하는 종이 된 것입니다. 잘못 맹세했지만 도리어 차선책으로 해결하여 하나님의 일
에 도움이 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취소해야 될 것은 취소해야 됩니다. 이것은 취소하지 않아도 될 일이기 때문에 취소하지 않은 것이고 취소해야 될 것은 아무리 서원했어도 고칠 것은 고쳐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분명히 어긋나는 것은 고쳐야 됩니다. 어긋나는 데도
불구하고 서원했다고 그냥 나가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아예 서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맹세하면 이렇게 걸려드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맹세하지 말고 아닌 것은 아니라 옳은 것은 옳다하며 나가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신앙의 자유를 써서 옳은 길을 계속 따라가야 되겠는데 맹세해서 옳은 길을 못 따라가면 얼마나 손해가 납니까? 또 맹세를 취소해도 손해가 많습니다. 하여간 우리는 맹세하지 말고 무엇이나 자세히 잘 알아보고 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모든 것을 해나가야겠습니다.

가나안 족속하고 약조하지 말라고 한 목적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과 교류할까봐 그런 것입니다. 결혼도 하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도 섬길 것을 우려해서 약조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한 단계 확실하게 낮춰서 이들을 이스라엘 사람과 상대가 되지 못하
고 그저 종살이만 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 사람들로 한 단계 아래의 신분으로 내려가 있으므로 그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본 받을 수도 없고 또 섬길 수도 없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데 어떻게 우상을 섬기겠습니까? 이것은 잘못 맹세한 약조를 취소하지 않고 서원한 것을 지키기 위한 차선책으로 기브온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그 백성들의 위치를 뚝 떨어뜨려 놓은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우상 섬기는 것과 그들과 결혼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아예 인간 이하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결혼할 대상이 못되고 우상을 감히 섬길 수도 없이 해 놓은 것입니다.

서원한 것은 그대로 지키되 차선책으로 이들을 종으로 삼아놓았습니다. 그러나 잘못 서원했기 때문에 손해는 많습니다. 회중이 다 원망하고 자기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20절). 그러나 취소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을 하는 것이므로 차선책으로 거기
에 대해 손해를 보지 않고 유익이 되는 방침으로 나무를 패며 물 긷는 자로 삼아놓은 것 입니다.

4. 기브온 사람들을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로 삼음

본문 20-27절은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을 인하여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었더라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거늘 어찌하여 우리는 너희에게서 심히 멀다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영영히 종이 되어서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리라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 모든 거민을 당신들의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을 인하여 우리 생명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여 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로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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