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푼 다윗
사무엘하 9:1-13
1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2사울의 종 하나가 있으니 그 이름은 시바라 저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저에게 묻되 네가 시바냐 가로되 종이 그로소이다 3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4왕이 저에게 묻되 그가 어디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고하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5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저를 데려오니 6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대답하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7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
을찌니라 8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9왕이 사울의 사환 시바를 불러서 이르되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10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아들을 공궤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 다섯이요 종이 스물이라 11시바가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온갖 일을 종에게 명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12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무릇 시바의 집에 거하는 자들은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13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사무엘하 9:1-13
1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2사울의 종 하나가 있으니 그 이름은 시바라 저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저에게 묻되 네가 시바냐 가로되 종이 그로소이다 3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4왕이 저에게 묻되 그가 어디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고하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5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저를 데려오니 6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대답하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7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
을찌니라 8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9왕이 사울의 사환 시바를 불러서 이르되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10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아들을 공궤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 다섯이요 종이 스물이라 11시바가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온갖 일을 종에게 명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12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무릇 시바의 집에 거하는 자들은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13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1. 다윗이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을 찾음
사울과 다윗의 대조적인 후대(後代) 양상
본문 1절에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하고 찾은 것을 보면 사울의 집이 비참하게 되고, 남은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왕이었지만, 그 집이 다 망하고 남은 사람이 얼마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울이 믿음을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렇게 남은 사람이 없을 만치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을 떠나서 죄악으로 나간 결과는 이와 같이 비참합니다. 아무리 사울이 왕이고 큰 세력을 얻고 본토에서는 푸른 나무와 같이 무성했었지만 얼마 안가 다 없어졌습니다. “남은 사람이 없느냐”하고 찾을 정도가 된 것을 보면 얼마나 비참합니까?
시편 37편 9절에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도 행악하는 자는 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땅을 차지하고 행악하는 자는 아무리 무성한 나무와 같이 잘 된다고 할지라도 잠시 후에 보면 다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37편 25절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의 자손은 빌어먹는 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시편 37편 28절에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시편 37편 35-36절에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은 다 이렇게 됩니다. 악인이 한때는 푸른 나무와 같이 무성하고 세력이 있지만 잠시 후에 보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자세히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합니다.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며, 의인의 자손은 빌어먹는 법이 없고, 의인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버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핍박을 받고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이 어느 순간에 죽을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뢰하고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며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또 정직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존귀하게 해 주셨습니다. 또 다윗의 후손인 솔로몬왕 때에 얼마나 번성했습니까? 다윗의 자손은 내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신앙의 후대와 악인의 후대가 대조적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집에 남은 자인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풂
다윗이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고 하였는데 ‘오히려’ 라는 말은, 남은 사람이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또 별로 없으니까 찾아보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고 하였는데 다윗이 요나단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
문에 그 사랑을 갚으려고, 그 신세를 갚으려고 이렇게 찾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여러 해 후에 나라가 평안해진 다음 신세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난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무릇 시바의 집에 거하는 자들은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었습니다. 므비보셋이 절뚝발이가 된 때는 언제입니까? 아버지가 죽을 때입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이 전사당한 소식을 듣고 유모가 므비보셋을 데리고 도망치다가 떨어뜨려 그가 절뚝발이가 된 것입니다. 그때 므비보셋이 5살이었고 그 아이가 자라,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으니 상당히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동안 왕으로 있었고 7년 6
개월 후에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어 나라를 평정하는데 또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대적을 다 물리치고 나라를 평정하느라 여러 해가 걸린 것입니다. 10년은 더 걸린 것 같습니다. 5살 난 아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도록 까지이니 그동안에 요나단의 아들은 거친 들판에 가서아무도 알지 못하는 쓸쓸한 곳에 붙어 살았을 것입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어디에 있었다고 하였습니까?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로드발 땅은 결핍한 땅입니다. 이곳은 목자가 없는 요단 광야 곁에 있다고 합니다. 로드발은 목자도 없는 결핍한 요단 광야 곁에 있는 땅으로 황무지와 비슷한 곳입니다.
므비보셋이 요단 들판 곁에, 살기가 아주 곤란한 로드발 땅,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돌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될 때에 돌봐주는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전에 요나단에게 신세진 것을 생각해서 찾아보는 사람은 귀한 사람입니다.
왜정시대에 최희선 선교사는 미국 의학박사의 신분으로 평북 선천에 와서 선교를 하며 일생동안 희생했습니다. 선천 미동병원에 선교하러 다니셨는데 선천에서 100리나 가야 하는 응봉동에 매봉이라는 아주 깊은 산골이 있었습니다. 윤 할머니 고향이라서 아는데 최희선
목사가 자기 고향에 와서 선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산간벽지에 와서 거기서 잔다는 것입니다. 산간에 이불이라는 것이 변변히 있었겠습니까? 또 먹는 것은 고구마, 강냉이 등, 해 주는 대로 잡쉈다고 합니다. 거기서 자면서 전도한 것입니다. 미국 박사면 굉장합니다. 또 월급은
보통 사람의 5배나 받으면서 미국에서도 일류 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한국에 와서 고생을 많이 한 것입니다.
6.25 후에는 부산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도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때는 나도 같이 전도했습니다. 부산에서 내가 학교 다닐 때에 최희선 목사 집에 가서 포로수용소에서 전도하는 일, 또 시장에 가서 전도하는 일 등을 했는데 그때에 최희선 목사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한번은 끝나고 나가려 바깥에 있는데 누가 불렀습니다. 들어가니까 이거 하나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보니까 밀감 하나를 주는 것입니다. 미제 밀감을 하나 주면서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밀감을 보았고 또 미제는 처음 보았는데 그 생각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에 가니까 최희선 목사는 세상을 떠나고, 그 사모님하고 딸이 있는데 그 딸이 소아마비에 걸려서 아직도 아프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골 어디에 있다고 하기에 이영훈 목사와 찾느라고 하루 종일 걸렸습니다. 산골이라서 찾기가 힘들었지만 여러 시간 걸려 찾았습니다. 가니까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모릅니다. 사모님은 93세라 하였고, 딸은 소아마비지만 자동차 운전도 하고 다녔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프다고 합니다. 그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종일 딸과 할머니 둘이 앉아서 저리 가서 자고, 이리 가서 자고 하는 모양입니다. 사모님이 예전에는 한국말을 잘 하셨는데 다 잊어버려서 이영훈 목사님이 통역을 하면서 이전의 얘기를 조금 하였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밀감 하나 준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대단히 반가워했고, 선물도 하나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너무 감격에 넘쳐 눈물을 다 흘리셨습니다. 그날 다녀오면서 우리가 오늘 좋은 일 했다고 말하면서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전에 신세진 사람들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교역자의 가정을 찾아보는 일, 신세진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찾아가서 돌봐주는 일은 믿음 쓰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개는 신세 진 것을 다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조금 잘 되면 전에 신세진
것은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다 잊어버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올챙이가 자라서 개구리가 되었는데, 개구리가 되면 올챙이였을 때를 다 잊어버립니다.
금년 크리스마스 때 조금 섭섭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해마다 아현 교회 사모님을 찾아가서 무엇을 조금 드리곤 했는데 금년에는 드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 금일봉을 드리고 오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사모님이 상당히 기뻐
하십니다. 해마다 갔더니 요 근래에 와서는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청소해 놓고 ‘이 목사가 오겠거니’하고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이전에 가면 지저분하게 해놓고 그랬는데 근래 몇 년은 다 청소해서 깨끗하게 하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여러 해 가던 것을 못가서 섭섭합니다. 조금 더 살아계셨다면 좀 더 찾아뵐 수 있었을 텐데 섭섭하고 안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윗이 인간적인 면에서도 바로 함
본문 3-4절에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왕이 저에게 묻되 그가 어디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고하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
에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7장 27절에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
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뻐더와 양과 치스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 함께한 백성으로 먹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보면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이 다윗이 마하나임에 피난 갔을 때에
여러 곡식과 여러 그릇을 가져다가 왕에게 대접한 내용이 나옵니다.
마하나임은 요단 강 건너편에 황무지와 같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므비보셋은 귀향살이를 간 것과 비슷한 피난지에 가서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의 집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습니까? 요나단의 아들이 거기가 있었는데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불러오라고 한 것입니다. 찾아가기도 힘든데 요단 강 건너편 들판을 지나 결핍한 땅에 가서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시바를 보냈을 것 같습니다. 시바는 사울의 종이었지만 잘 삽니다. 아들이 15명이고 종이 20명입니다. 종살이하던 시바는 지금 종을 20명이나 두고 아들 15명과 잘 사는데, 주인의 아들은 로드발 땅,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가 있었습니다. 알면서도 잘 돌봐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울 왕이 살아 있을 때에는 벌벌 떨면서 굽실거리며 돌아다녔지만, 일단 사울 왕이 죽고 나니까 주인의 아들을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되어서 사울이 왕이었을 때 요나단에게 신세진 일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의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느냐”하고 찾은 것이 아니고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고 하면서 찾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이 요나단의 자손에게만 은총을 베풀려고 한 것이 아니고 사울의 자손 중에서 누구나 다 은혜를 베풀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만일 요나단의 자손에게만 은혜를 베풀려고 하였다면 “요나단의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느냐”라고 했을 텐데,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라고 한 것을 보면 요나단의 자손이 아니더라도 사울의 집에 누구든지 있으면 은총을 베풀어 주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전에 이스보셋이 왕이 되지 않았었다면 이때 불려 왔을 것입니다. 이때 왔다면 왕자처럼 일생동안 대접을 잘 받았을 텐데, 그만 이스보셋이 왕이 된 것입니다. 이스보셋은 왕이 되고 나서 2년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왕이 되지 않아야 될 사람이 왕이 되면 신세를 망치는 것입니다. 오히려 왕이 되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왕이 되지 않았다면 평생 복을 누릴 뻔 했는데, 아브넬 바람에 왕이 되었다가 아브넬은 먼저 죽고 이스보셋은 2년 만에 죽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고 선으로 악을 갚는 일, 도리어 선대하는 일,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을 선대하는 일을 다윗이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또 요나단의 자손에 대해서는 자신이 신세진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해서 갚아주려고 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입니까? 다윗이 인간적인 면에서도 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 면에서 먼저 바로 해야 하고, 인간적인 면에서도 바로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바로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러 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2. 므비보셋이 다윗 왕에게 나옴
므비보셋이 다윗 왕 앞에서 낮아짐
본문 5-6절에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저를 데려오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대답하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이 겸
손하게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전에는 누가 엎드려 절했습니까? 다윗이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20장 41절에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편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땅에 엎드려 세 번을 절했습니다.
전에는 다윗이 요나단에게 엎드려 절했지만 지금은 요나단의 아들이 다윗에게 엎드려 절했습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낮추실 때는 낮아져야 합니다. 언제나 우월감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머리를 숙여야 할 때는 숙여야 합니다. 또 자기가 아랫사람에게 머리를 숙여야 할 때는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전의 것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므비보셋이 보기에
다윗은 전에 자기 아버지에게 엎드려 절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가 엎드려 절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에는 낮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므비보셋이 엎드려 절했는데 “종이 여기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대접을 받게 생긴 것입니다. 만일 사울 왕 때만 생각하고, 또 자기 아버지 때만 생각해서 엎드려 절하지 않았다면 다윗이 돌봐 주겠습니까? 낮아져야 할 때는 낮아져야 하고 머리를 숙여야 할 때는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도 머리를 숙여야 될 때는 숙여야 합니다.
또 존경해야 될 때는 존경해야 합니다. 아랫사람이라도 그것을 잘해야 합니다. 옛날만 생각하고 나가면 자기만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지만 얼어 죽게 되면 양반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곁불이라도 쬐면서 사는 것이 상책이지, 곁불이라고 안 쬐면 자기만 손해가 나는 것입니다. 옛날에 숯불 쬐던 것만 생각하고 곁불을 안 쬐면 되겠습니까? 장작불 쬐고 숯불 쬐는 것은 옛날 일입니다. 지금은 곁불밖에 없습니다. 왕겨로 불 피우는 것이 곁불입니다. 그 불은 시원치 않습니다. 왕겨불은 피워도 불빛이 미약하고 미지근해서 뜨겁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숯불같이 좋은 불을 쬐던 사람이 곁불을 쬐면 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추울 때는 곁불이라도 쬐면 얼어 죽지 않습니다.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조금 미지근해도 얼어 죽지 않습니다.
캐나다의 토론토는 영하 36도로 내려가는 때가 많습니다. 그것 이상 올라갈 때도 있고 이하로 내려갈 때도 많습니다. 이런 날씨에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가지 못하면 얼어 죽습니다. 히터가 꺼지고 아마 한 시간만 서 있으면 아마 얼어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와 성냥을 가지고 다녀야 된다고 합니다. 고장이 났다하면 촛불을 켜놔야 합니다. 자동차 안에 촛불만 켜놔도 얼어 죽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에 촛불을 켜놔야 그 열이 얼마 안 날 것 같은데 그래도 촛불을 켜고 있으면 얼마는 가는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차가 지나가면 손을 들고 다른 차를 타고 가서 사고 난 차를 끌어 가는 것입니다. 손을 들었는데 다른 차가 서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살인 죄에 걸린다고 합니다. 법이 그렇답니다. 겨울에 손을 들면 꼭 세워줘야 합니다. 안 세워주면 살인 죄에 걸립니다.
그러니까 낮아져야 할 때는 낮아져야 합니다. 낮아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자기 아버지 생각만 하고, 양반일 적만 생각하면서 ‘곁불 안 쬔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낮아져서 곁불을 쬐는 것이 상책입니다. 대학교 나왔다는 간판만 가지고 낮은 일을 하지 않는 사
람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낮은 일을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명륜동 상가에 와세다 대학을 나온 어떤 사람이 지게를 지고 갑니다. 일본의 와세다 대학이라면 굉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직장이 없으니까 지게를 가지고 나와서 지게 짊어지는 생활을 하는 것입
니다. 그래도 잘 삽니다. 아들도 다 건강합니다. 지게라도 져서 생활 하는 것이 상책이지, ‘난 와세다 대학 나왔다’고 하면서 버티고 있으면 누가 알아줍니까? 굶어야 자기가 굶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대학교를 나왔어도 직장이 없으면 지게라도 지고 살아야 합니다. 또 여자는 대학교를 나왔다고 뽐내고 다니지 말고 직장이 없으면 낮아져서 아무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식모살이라도 해야 합니다. 남자는 아무리 낮은 일이라도 일하면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캐나다에서 수상은 대통령과 같은 위치인데, 수상하던 사람이 3년 마다 하는 투표에서 떨어졌습니다. 즉, 야당이 수상이 된 것입니다. 여당에서 수상하던 사람이 떨어졌는데 그 다음에 수상된 야당 사람이 자기와 대결하던 여당 사람을 장관으로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잘했다고 합니다. 즉, 말하면 대통령하던 사람이 장관이 된 것입니다. 자기와 대결하던 사람 아래로 가서 장관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이미 수상을 했어도 선거에서 서로 대결하여 떨어졌으면 그 사람을 존경하고 수상으로 대접하면서 굽실굽실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같으면 할 것 같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수상이었지만 일단 떨어진 다음에는 장관이라도 하라고 하면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수상으로 섬기고, 자기 아래사람을 수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나라가 참 복 받을 나라입니다.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에는 낮아질 줄 아는 사람, 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 아주 귀중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양반이 얼어 죽어도 곁불은 안 쬔다’는 정신을 가지고 나가기 때문에 전부 파괴주의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끝까지 죽기까지 싸우다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싸우다 죽으면 자기도 손해이고, 나라도 손해이고 다 손해입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섭섭한 것만 늘 생각하고, 자기네 것만 늘 생각하는데 과거의 섭섭한 일은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론 섭섭한 것도 많이 있었습니다. 여기 므비보셋도 섭섭한 것을 생각하면 많지 않습니까? 무엇이 섭섭하겠습니까? 자기가 왕이 되지 않은 것이 섭섭했을 것입니다. 왕이 되지 않은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쳐도 다윗에게 섭섭한 것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 신세를 저렇게 진 사람이, 이제 왕이 됐다고 해서 몇 십 년 동안 내버리고 하나도 돌보지 않았다, 로드발 땅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이렇게 비참하게 지냈는데 하나 돌보지 않다가 이제 와서 뭘 오라고 하느냐, 난 못간다, 차라리 와서 죽여라’고 하면서 섭섭해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 같으면 ‘죽으면 죽었지, 돌봐 주려면 좀 미리 돌봐주지, 몇 십 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것은 무엇이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를 찾아준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잘못한 것, 섭섭한 것을 생각하면 일이 하나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섭섭한 것, 대접 못 받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겠습니다.
다윗이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고 하였는데 ‘오히려’ 라는 말은, 남은 사람이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또 별로 없으니까 찾아보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고 하였는데 다윗이 요나단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
문에 그 사랑을 갚으려고, 그 신세를 갚으려고 이렇게 찾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여러 해 후에 나라가 평안해진 다음 신세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난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무릇 시바의 집에 거하는 자들은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었습니다. 므비보셋이 절뚝발이가 된 때는 언제입니까? 아버지가 죽을 때입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이 전사당한 소식을 듣고 유모가 므비보셋을 데리고 도망치다가 떨어뜨려 그가 절뚝발이가 된 것입니다. 그때 므비보셋이 5살이었고 그 아이가 자라,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으니 상당히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동안 왕으로 있었고 7년 6
개월 후에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어 나라를 평정하는데 또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대적을 다 물리치고 나라를 평정하느라 여러 해가 걸린 것입니다. 10년은 더 걸린 것 같습니다. 5살 난 아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도록 까지이니 그동안에 요나단의 아들은 거친 들판에 가서아무도 알지 못하는 쓸쓸한 곳에 붙어 살았을 것입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어디에 있었다고 하였습니까?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로드발 땅은 결핍한 땅입니다. 이곳은 목자가 없는 요단 광야 곁에 있다고 합니다. 로드발은 목자도 없는 결핍한 요단 광야 곁에 있는 땅으로 황무지와 비슷한 곳입니다.
므비보셋이 요단 들판 곁에, 살기가 아주 곤란한 로드발 땅,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돌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될 때에 돌봐주는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전에 요나단에게 신세진 것을 생각해서 찾아보는 사람은 귀한 사람입니다.
왜정시대에 최희선 선교사는 미국 의학박사의 신분으로 평북 선천에 와서 선교를 하며 일생동안 희생했습니다. 선천 미동병원에 선교하러 다니셨는데 선천에서 100리나 가야 하는 응봉동에 매봉이라는 아주 깊은 산골이 있었습니다. 윤 할머니 고향이라서 아는데 최희선
목사가 자기 고향에 와서 선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산간벽지에 와서 거기서 잔다는 것입니다. 산간에 이불이라는 것이 변변히 있었겠습니까? 또 먹는 것은 고구마, 강냉이 등, 해 주는 대로 잡쉈다고 합니다. 거기서 자면서 전도한 것입니다. 미국 박사면 굉장합니다. 또 월급은
보통 사람의 5배나 받으면서 미국에서도 일류 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한국에 와서 고생을 많이 한 것입니다.
6.25 후에는 부산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도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때는 나도 같이 전도했습니다. 부산에서 내가 학교 다닐 때에 최희선 목사 집에 가서 포로수용소에서 전도하는 일, 또 시장에 가서 전도하는 일 등을 했는데 그때에 최희선 목사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한번은 끝나고 나가려 바깥에 있는데 누가 불렀습니다. 들어가니까 이거 하나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보니까 밀감 하나를 주는 것입니다. 미제 밀감을 하나 주면서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밀감을 보았고 또 미제는 처음 보았는데 그 생각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에 가니까 최희선 목사는 세상을 떠나고, 그 사모님하고 딸이 있는데 그 딸이 소아마비에 걸려서 아직도 아프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골 어디에 있다고 하기에 이영훈 목사와 찾느라고 하루 종일 걸렸습니다. 산골이라서 찾기가 힘들었지만 여러 시간 걸려 찾았습니다. 가니까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모릅니다. 사모님은 93세라 하였고, 딸은 소아마비지만 자동차 운전도 하고 다녔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프다고 합니다. 그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종일 딸과 할머니 둘이 앉아서 저리 가서 자고, 이리 가서 자고 하는 모양입니다. 사모님이 예전에는 한국말을 잘 하셨는데 다 잊어버려서 이영훈 목사님이 통역을 하면서 이전의 얘기를 조금 하였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밀감 하나 준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대단히 반가워했고, 선물도 하나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너무 감격에 넘쳐 눈물을 다 흘리셨습니다. 그날 다녀오면서 우리가 오늘 좋은 일 했다고 말하면서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전에 신세진 사람들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교역자의 가정을 찾아보는 일, 신세진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찾아가서 돌봐주는 일은 믿음 쓰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개는 신세 진 것을 다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조금 잘 되면 전에 신세진
것은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다 잊어버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올챙이가 자라서 개구리가 되었는데, 개구리가 되면 올챙이였을 때를 다 잊어버립니다.
금년 크리스마스 때 조금 섭섭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해마다 아현 교회 사모님을 찾아가서 무엇을 조금 드리곤 했는데 금년에는 드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 금일봉을 드리고 오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사모님이 상당히 기뻐
하십니다. 해마다 갔더니 요 근래에 와서는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청소해 놓고 ‘이 목사가 오겠거니’하고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이전에 가면 지저분하게 해놓고 그랬는데 근래 몇 년은 다 청소해서 깨끗하게 하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여러 해 가던 것을 못가서 섭섭합니다. 조금 더 살아계셨다면 좀 더 찾아뵐 수 있었을 텐데 섭섭하고 안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윗이 인간적인 면에서도 바로 함
본문 3-4절에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왕이 저에게 묻되 그가 어디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고하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
에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7장 27절에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
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뻐더와 양과 치스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 함께한 백성으로 먹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보면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이 다윗이 마하나임에 피난 갔을 때에
여러 곡식과 여러 그릇을 가져다가 왕에게 대접한 내용이 나옵니다.
마하나임은 요단 강 건너편에 황무지와 같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므비보셋은 귀향살이를 간 것과 비슷한 피난지에 가서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의 집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습니까? 요나단의 아들이 거기가 있었는데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불러오라고 한 것입니다. 찾아가기도 힘든데 요단 강 건너편 들판을 지나 결핍한 땅에 가서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시바를 보냈을 것 같습니다. 시바는 사울의 종이었지만 잘 삽니다. 아들이 15명이고 종이 20명입니다. 종살이하던 시바는 지금 종을 20명이나 두고 아들 15명과 잘 사는데, 주인의 아들은 로드발 땅,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가 있었습니다. 알면서도 잘 돌봐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울 왕이 살아 있을 때에는 벌벌 떨면서 굽실거리며 돌아다녔지만, 일단 사울 왕이 죽고 나니까 주인의 아들을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되어서 사울이 왕이었을 때 요나단에게 신세진 일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의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느냐”하고 찾은 것이 아니고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고 하면서 찾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이 요나단의 자손에게만 은총을 베풀려고 한 것이 아니고 사울의 자손 중에서 누구나 다 은혜를 베풀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만일 요나단의 자손에게만 은혜를 베풀려고 하였다면 “요나단의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느냐”라고 했을 텐데,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라고 한 것을 보면 요나단의 자손이 아니더라도 사울의 집에 누구든지 있으면 은총을 베풀어 주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전에 이스보셋이 왕이 되지 않았었다면 이때 불려 왔을 것입니다. 이때 왔다면 왕자처럼 일생동안 대접을 잘 받았을 텐데, 그만 이스보셋이 왕이 된 것입니다. 이스보셋은 왕이 되고 나서 2년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왕이 되지 않아야 될 사람이 왕이 되면 신세를 망치는 것입니다. 오히려 왕이 되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왕이 되지 않았다면 평생 복을 누릴 뻔 했는데, 아브넬 바람에 왕이 되었다가 아브넬은 먼저 죽고 이스보셋은 2년 만에 죽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고 선으로 악을 갚는 일, 도리어 선대하는 일,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을 선대하는 일을 다윗이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또 요나단의 자손에 대해서는 자신이 신세진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해서 갚아주려고 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입니까? 다윗이 인간적인 면에서도 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 면에서 먼저 바로 해야 하고, 인간적인 면에서도 바로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바로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러 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2. 므비보셋이 다윗 왕에게 나옴
므비보셋이 다윗 왕 앞에서 낮아짐
본문 5-6절에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저를 데려오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대답하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이 겸
손하게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전에는 누가 엎드려 절했습니까? 다윗이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20장 41절에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편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땅에 엎드려 세 번을 절했습니다.
전에는 다윗이 요나단에게 엎드려 절했지만 지금은 요나단의 아들이 다윗에게 엎드려 절했습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낮추실 때는 낮아져야 합니다. 언제나 우월감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머리를 숙여야 할 때는 숙여야 합니다. 또 자기가 아랫사람에게 머리를 숙여야 할 때는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전의 것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므비보셋이 보기에
다윗은 전에 자기 아버지에게 엎드려 절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가 엎드려 절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에는 낮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므비보셋이 엎드려 절했는데 “종이 여기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대접을 받게 생긴 것입니다. 만일 사울 왕 때만 생각하고, 또 자기 아버지 때만 생각해서 엎드려 절하지 않았다면 다윗이 돌봐 주겠습니까? 낮아져야 할 때는 낮아져야 하고 머리를 숙여야 할 때는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도 머리를 숙여야 될 때는 숙여야 합니다.
또 존경해야 될 때는 존경해야 합니다. 아랫사람이라도 그것을 잘해야 합니다. 옛날만 생각하고 나가면 자기만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지만 얼어 죽게 되면 양반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곁불이라도 쬐면서 사는 것이 상책이지, 곁불이라고 안 쬐면 자기만 손해가 나는 것입니다. 옛날에 숯불 쬐던 것만 생각하고 곁불을 안 쬐면 되겠습니까? 장작불 쬐고 숯불 쬐는 것은 옛날 일입니다. 지금은 곁불밖에 없습니다. 왕겨로 불 피우는 것이 곁불입니다. 그 불은 시원치 않습니다. 왕겨불은 피워도 불빛이 미약하고 미지근해서 뜨겁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숯불같이 좋은 불을 쬐던 사람이 곁불을 쬐면 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추울 때는 곁불이라도 쬐면 얼어 죽지 않습니다.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조금 미지근해도 얼어 죽지 않습니다.
캐나다의 토론토는 영하 36도로 내려가는 때가 많습니다. 그것 이상 올라갈 때도 있고 이하로 내려갈 때도 많습니다. 이런 날씨에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가지 못하면 얼어 죽습니다. 히터가 꺼지고 아마 한 시간만 서 있으면 아마 얼어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와 성냥을 가지고 다녀야 된다고 합니다. 고장이 났다하면 촛불을 켜놔야 합니다. 자동차 안에 촛불만 켜놔도 얼어 죽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에 촛불을 켜놔야 그 열이 얼마 안 날 것 같은데 그래도 촛불을 켜고 있으면 얼마는 가는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차가 지나가면 손을 들고 다른 차를 타고 가서 사고 난 차를 끌어 가는 것입니다. 손을 들었는데 다른 차가 서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살인 죄에 걸린다고 합니다. 법이 그렇답니다. 겨울에 손을 들면 꼭 세워줘야 합니다. 안 세워주면 살인 죄에 걸립니다.
그러니까 낮아져야 할 때는 낮아져야 합니다. 낮아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자기 아버지 생각만 하고, 양반일 적만 생각하면서 ‘곁불 안 쬔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낮아져서 곁불을 쬐는 것이 상책입니다. 대학교 나왔다는 간판만 가지고 낮은 일을 하지 않는 사
람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낮은 일을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명륜동 상가에 와세다 대학을 나온 어떤 사람이 지게를 지고 갑니다. 일본의 와세다 대학이라면 굉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직장이 없으니까 지게를 가지고 나와서 지게 짊어지는 생활을 하는 것입
니다. 그래도 잘 삽니다. 아들도 다 건강합니다. 지게라도 져서 생활 하는 것이 상책이지, ‘난 와세다 대학 나왔다’고 하면서 버티고 있으면 누가 알아줍니까? 굶어야 자기가 굶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대학교를 나왔어도 직장이 없으면 지게라도 지고 살아야 합니다. 또 여자는 대학교를 나왔다고 뽐내고 다니지 말고 직장이 없으면 낮아져서 아무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식모살이라도 해야 합니다. 남자는 아무리 낮은 일이라도 일하면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캐나다에서 수상은 대통령과 같은 위치인데, 수상하던 사람이 3년 마다 하는 투표에서 떨어졌습니다. 즉, 야당이 수상이 된 것입니다. 여당에서 수상하던 사람이 떨어졌는데 그 다음에 수상된 야당 사람이 자기와 대결하던 여당 사람을 장관으로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잘했다고 합니다. 즉, 말하면 대통령하던 사람이 장관이 된 것입니다. 자기와 대결하던 사람 아래로 가서 장관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이미 수상을 했어도 선거에서 서로 대결하여 떨어졌으면 그 사람을 존경하고 수상으로 대접하면서 굽실굽실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같으면 할 것 같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수상이었지만 일단 떨어진 다음에는 장관이라도 하라고 하면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수상으로 섬기고, 자기 아래사람을 수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나라가 참 복 받을 나라입니다.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에는 낮아질 줄 아는 사람, 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 아주 귀중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양반이 얼어 죽어도 곁불은 안 쬔다’는 정신을 가지고 나가기 때문에 전부 파괴주의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끝까지 죽기까지 싸우다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싸우다 죽으면 자기도 손해이고, 나라도 손해이고 다 손해입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섭섭한 것만 늘 생각하고, 자기네 것만 늘 생각하는데 과거의 섭섭한 일은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론 섭섭한 것도 많이 있었습니다. 여기 므비보셋도 섭섭한 것을 생각하면 많지 않습니까? 무엇이 섭섭하겠습니까? 자기가 왕이 되지 않은 것이 섭섭했을 것입니다. 왕이 되지 않은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쳐도 다윗에게 섭섭한 것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 신세를 저렇게 진 사람이, 이제 왕이 됐다고 해서 몇 십 년 동안 내버리고 하나도 돌보지 않았다, 로드발 땅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이렇게 비참하게 지냈는데 하나 돌보지 않다가 이제 와서 뭘 오라고 하느냐, 난 못간다, 차라리 와서 죽여라’고 하면서 섭섭해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 같으면 ‘죽으면 죽었지, 돌봐 주려면 좀 미리 돌봐주지, 몇 십 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것은 무엇이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를 찾아준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잘못한 것, 섭섭한 것을 생각하면 일이 하나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섭섭한 것, 대접 못 받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겠습니다.
다윗 왕이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풂
본문 7절에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생각하기를 ‘므비보셋이 전에 할아버지, 사울 왕 때를 생각하면 무서워하지 않을까’라고 여긴 것입니다. ‘보복이나 하지 않겠나’라고 생각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무서워 할 만한 처지에 있는 므비보셋을 위로해주고 도리어 은총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믿음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과거 사울왕을 생각하면 보복을 해야겠지만 다 용납해주고 잘못한 것을 잊어버리고, 그 손자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사무엘상 22장 7-8절에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새의 아들은 다윗을 가리킵니다.
다윗이 전에는 밭과 포도원을 주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는 줄 수 없었지만 세월이 바뀌기 때문에 반드시 줄 날도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새의 아들이 밭과 포도원을 주지 못하지만, 먼 장래는 줄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준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사유재산도 상당히 많았을 텐데 그 밭을 다 주면 상당히 많을 것 같습니다.
옛날 왕 쯤 되면 선물 받은 것만 해도 굉장히 많았을 것이고, 재산도 상당히 많았을 것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적도 있었습니다. 또 바꿔주겠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보면 나봇의 포도원 말고도 바꿔 주겠다는 재산이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 그것도 부족하여 재산
만 주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왕자들 중 하나와 같이 다윗의 상에서 항상 왕자와 같이 취급을 받으면서 세상 끝날까지 왕과 같은 생활을 하게 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8절에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이 너무 감사하고 감격이 넘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과거의 것은 다 잊어버리더라도 현재를 보았을 때에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3. 사울의 밭과 종을 므비보셋에게 줌
본문 9-11절에 “왕이 사울의 사환 시바를 불러서 이르되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을 공궤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
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이요 종이 스물이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온갖 일을 종에게 명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시바에게 ‘네 주인의 밭을 므비보셋에게 다 주었으니
까 이제 너는 그 주인의 아들을 잘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조금 잘못한 것 같습니다. 시바는 종살이 해먹을 만한 처지가 아닙니다.
시바는 종을 스물이나 두고 사는, 상당히 재산이 많은 사람입니다. 옛날 사울 왕 때에는 시바가 사울을 잘 섬겼지만 사울 왕이 죽고 나서는 상당한 재산이 있었고, 종도 스물이나 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을 잘 섬기라고 하면 잘 섬기겠습니까? 물론 왕의 명령이니까 섬기긴 섬길 것입니다. 그래도 잘 섬기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시바는 시바대로 그냥 살게 내버려 놓고, 다른 사람을 종으로 두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하나 데려와서 므비보셋의 토지를 농사하며 잘 공궤하라고 했으면 잘 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전에 사울왕의 종이였던 사람을 므비보셋의 종으로 하려니까 가다가 사고가 난
것입니다. 그래도 왕의 명령이니까 시바는 그대로 하겠다고 순종을 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종살이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전에 종살이 했다고 늘 종으로 부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것도 또 하나 배워야겠습니다. 종살이하던 사람이 잘 되면 그 다음에도 그 사람을 종
살이 취급하면 안 됩니다. 잘 된 것은 잘 된 것으로 알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시바가 왕의 명령을 순종해서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겠다고 한 것은 사울의 토지를 자기가 농사하면 자기의 수입도 상당히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현재도 재산이 많지만 왕의 토지를 경작하면 왕을 공경하게 되는 것이고 자기에게도 소득이 많이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니
까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을 존경하여 종의 위치에 서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럴 사람이 못 됩니다. 왕이 시켰으니까 하겠다고 작정을 한 것이고 또 자기에게 유익이 많아지니까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시바는 므비보셋을 진정한 주
인으로 공경하면서 종노릇할 만한 정도가 아닙니다.
다윗이 시바를 므비보셋의 종으로 줬기 때문에 시바가 주인을 참소했고 주인의 것을 다 빼앗으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6장 3-4절을 보면 “왕이 가로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시바가 왕께 고하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
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왕이 시바더러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시바가 가로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나로 왕의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 왕이 피난을 갈 때에 시바가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 자기 주인을 모함하고 참소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종을 시키지 않아야 할 사람에게 종을 시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바가 므비보셋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섬기긴 섬겼지만 속에는 딴 궁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습니다. 자기가 아무것도 없을 때에는 제대로 하다가 형편이 조금 나아지고 기회가 생기면 그 위에 올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것을 다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키는 사람을 잘 시켜야만 되겠습니다.
4.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음
본문 12-13절에 “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무릇 시바의 집에 거하는 자들은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므비보셋은 다윗 왕에게 큰 은총을 받아 자기 아버지가 왕이 된 것처럼 왕자와 같은 대우를 내내 받으면서 나갔습니다. 또 자기 할아버지의 토지를 다 차지하여 상당한 재산도 있게 되었습니다. 또 농사해서 해마다 수입도 굉장히 많았을 것입니다. 다윗 왕이 얼마나 잘한 것입니까? 자기가 신세진 사람 요나단의 아들에게 이렇게 잘해 주었을 때, 다윗의 마음도 상당히 기뻤을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을 쓴 것이고 양심을 쓴 것입니다.
또 사울의 집에 대해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고 선으로 갚아주는 일을 한 것입니다. 요나단에 대해서는 아들에게 신세를 갚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고 자기 마음도 기쁠 것입니다. 또 모든 사람이 다윗 왕을 볼 때에 잘했다고 존경하며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이렇게 인륜관계가 바로 되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사이의 인륜관계가 바로 되어나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 전체가 바로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또 자신들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문제도 잘 되어 나가고, 다윗의 후대도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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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7절에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생각하기를 ‘므비보셋이 전에 할아버지, 사울 왕 때를 생각하면 무서워하지 않을까’라고 여긴 것입니다. ‘보복이나 하지 않겠나’라고 생각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무서워 할 만한 처지에 있는 므비보셋을 위로해주고 도리어 은총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믿음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과거 사울왕을 생각하면 보복을 해야겠지만 다 용납해주고 잘못한 것을 잊어버리고, 그 손자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사무엘상 22장 7-8절에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새의 아들은 다윗을 가리킵니다.
다윗이 전에는 밭과 포도원을 주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는 줄 수 없었지만 세월이 바뀌기 때문에 반드시 줄 날도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새의 아들이 밭과 포도원을 주지 못하지만, 먼 장래는 줄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준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사유재산도 상당히 많았을 텐데 그 밭을 다 주면 상당히 많을 것 같습니다.
옛날 왕 쯤 되면 선물 받은 것만 해도 굉장히 많았을 것이고, 재산도 상당히 많았을 것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적도 있었습니다. 또 바꿔주겠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보면 나봇의 포도원 말고도 바꿔 주겠다는 재산이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 그것도 부족하여 재산
만 주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왕자들 중 하나와 같이 다윗의 상에서 항상 왕자와 같이 취급을 받으면서 세상 끝날까지 왕과 같은 생활을 하게 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8절에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이 너무 감사하고 감격이 넘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과거의 것은 다 잊어버리더라도 현재를 보았을 때에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3. 사울의 밭과 종을 므비보셋에게 줌
본문 9-11절에 “왕이 사울의 사환 시바를 불러서 이르되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을 공궤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
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이요 종이 스물이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온갖 일을 종에게 명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시바에게 ‘네 주인의 밭을 므비보셋에게 다 주었으니
까 이제 너는 그 주인의 아들을 잘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조금 잘못한 것 같습니다. 시바는 종살이 해먹을 만한 처지가 아닙니다.
시바는 종을 스물이나 두고 사는, 상당히 재산이 많은 사람입니다. 옛날 사울 왕 때에는 시바가 사울을 잘 섬겼지만 사울 왕이 죽고 나서는 상당한 재산이 있었고, 종도 스물이나 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을 잘 섬기라고 하면 잘 섬기겠습니까? 물론 왕의 명령이니까 섬기긴 섬길 것입니다. 그래도 잘 섬기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시바는 시바대로 그냥 살게 내버려 놓고, 다른 사람을 종으로 두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하나 데려와서 므비보셋의 토지를 농사하며 잘 공궤하라고 했으면 잘 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전에 사울왕의 종이였던 사람을 므비보셋의 종으로 하려니까 가다가 사고가 난
것입니다. 그래도 왕의 명령이니까 시바는 그대로 하겠다고 순종을 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종살이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전에 종살이 했다고 늘 종으로 부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것도 또 하나 배워야겠습니다. 종살이하던 사람이 잘 되면 그 다음에도 그 사람을 종
살이 취급하면 안 됩니다. 잘 된 것은 잘 된 것으로 알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시바가 왕의 명령을 순종해서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겠다고 한 것은 사울의 토지를 자기가 농사하면 자기의 수입도 상당히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현재도 재산이 많지만 왕의 토지를 경작하면 왕을 공경하게 되는 것이고 자기에게도 소득이 많이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니
까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을 존경하여 종의 위치에 서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럴 사람이 못 됩니다. 왕이 시켰으니까 하겠다고 작정을 한 것이고 또 자기에게 유익이 많아지니까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시바는 므비보셋을 진정한 주
인으로 공경하면서 종노릇할 만한 정도가 아닙니다.
다윗이 시바를 므비보셋의 종으로 줬기 때문에 시바가 주인을 참소했고 주인의 것을 다 빼앗으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6장 3-4절을 보면 “왕이 가로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시바가 왕께 고하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
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왕이 시바더러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시바가 가로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나로 왕의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 왕이 피난을 갈 때에 시바가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 자기 주인을 모함하고 참소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종을 시키지 않아야 할 사람에게 종을 시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바가 므비보셋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섬기긴 섬겼지만 속에는 딴 궁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습니다. 자기가 아무것도 없을 때에는 제대로 하다가 형편이 조금 나아지고 기회가 생기면 그 위에 올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것을 다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키는 사람을 잘 시켜야만 되겠습니다.
4.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음
본문 12-13절에 “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무릇 시바의 집에 거하는 자들은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므비보셋은 다윗 왕에게 큰 은총을 받아 자기 아버지가 왕이 된 것처럼 왕자와 같은 대우를 내내 받으면서 나갔습니다. 또 자기 할아버지의 토지를 다 차지하여 상당한 재산도 있게 되었습니다. 또 농사해서 해마다 수입도 굉장히 많았을 것입니다. 다윗 왕이 얼마나 잘한 것입니까? 자기가 신세진 사람 요나단의 아들에게 이렇게 잘해 주었을 때, 다윗의 마음도 상당히 기뻤을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을 쓴 것이고 양심을 쓴 것입니다.
또 사울의 집에 대해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고 선으로 갚아주는 일을 한 것입니다. 요나단에 대해서는 아들에게 신세를 갚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고 자기 마음도 기쁠 것입니다. 또 모든 사람이 다윗 왕을 볼 때에 잘했다고 존경하며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이렇게 인륜관계가 바로 되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사이의 인륜관계가 바로 되어나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 전체가 바로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또 자신들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문제도 잘 되어 나가고, 다윗의 후대도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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