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 귀환 때 돌아온 자들의 명단 1
에스라 2:1-35
1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의 자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2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3바로스 자손이 이천일백칠십이 명이요 4스바댜 자손이 삼백칠십이 명이요 5아라 자손이 칠백칠십오 명이요 6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팔백십이 명이요 7엘람 자손이 일천이백오십사 명이요 8삿두 자손이 구백사십오 명이요 9삭개 자손이 칠백육십 명이요 10바니 자손이 육백사십이 명이요 11브배 자손이 육백이십삼 명이요 12아스갓 자손이 일천이백이십이 명이요 13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륙 명이요 14비그왜 자손이 이천오십륙 명이요 15아딘 자손이 사백오십사 명이요 16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팔 명이요 17베새 자손이 삼백이십삼 명이요 18요라 자손이 일백십이 명이요 19하숨 자손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0깁발 자손이 구십오 명이요 21베들레헴 사람이 일백이십삼 명이요 22느도바 사람이 오십륙 명이요 23아나돗 사람이 일백이십팔 명이요 24아스마웻 자손이 사십이 명이요 25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이 칠백사십삼 명이요 26라마와 게바 자손이 육백이십일 명이요 27믹마스 사람이 일백이십이 명이요 28벧엘과 아이 사람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9느보 자손이 오십이 명이요 30막비스 자손이 일백오십륙 명이요 31다른 엘람 자손이 일천이백오십 사 명이요 32하림 자손이 삼백이십 명이요 33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이 칠백이십오 명이요 34여리고 자손이 삼백사십오 명이요 35스나아 자손이 삼천육백삼십 명이었더라 36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이요
에스라 2:1-35
1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의 자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2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3바로스 자손이 이천일백칠십이 명이요 4스바댜 자손이 삼백칠십이 명이요 5아라 자손이 칠백칠십오 명이요 6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팔백십이 명이요 7엘람 자손이 일천이백오십사 명이요 8삿두 자손이 구백사십오 명이요 9삭개 자손이 칠백육십 명이요 10바니 자손이 육백사십이 명이요 11브배 자손이 육백이십삼 명이요 12아스갓 자손이 일천이백이십이 명이요 13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륙 명이요 14비그왜 자손이 이천오십륙 명이요 15아딘 자손이 사백오십사 명이요 16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팔 명이요 17베새 자손이 삼백이십삼 명이요 18요라 자손이 일백십이 명이요 19하숨 자손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0깁발 자손이 구십오 명이요 21베들레헴 사람이 일백이십삼 명이요 22느도바 사람이 오십륙 명이요 23아나돗 사람이 일백이십팔 명이요 24아스마웻 자손이 사십이 명이요 25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이 칠백사십삼 명이요 26라마와 게바 자손이 육백이십일 명이요 27믹마스 사람이 일백이십이 명이요 28벧엘과 아이 사람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9느보 자손이 오십이 명이요 30막비스 자손이 일백오십륙 명이요 31다른 엘람 자손이 일천이백오십 사 명이요 32하림 자손이 삼백이십 명이요 33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이 칠백이십오 명이요 34여리고 자손이 삼백사십오 명이요 35스나아 자손이 삼천육백삼십 명이었더라 36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이요
1. 바벨론에서 처음으로 귀국한 지도자들
‘유다 도’로 지위가 격하된 ‘유다 나라’
본문 1-2절에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의 자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의 지도자들입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여기 ‘유다 도로 돌아와’라고 하였는데, ‘유다 도’라고 한 것은 과거 ‘유다 나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유다 나라가 범죄했기 때문에 바벨론에 점령을 당하였고 이제는 바벨론 나라의 한 ‘도’가 되었습니다. ‘나라’가 한 ‘도’로 그 지위가 내려간 것입니다.
지도자 스룹바벨 - 1차 포로 귀환
돌아온 사람들 중 스룹바벨은 지도자 중 한 사람입니다. 또 예수아라고 하는 사람은 스가랴 3장 2-3절에 보면 여호수아라고 하였는데,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호수아를 여기에서는 예수아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나 대제사장 예수아나 같은 이름입니다.
역대상 3장 19절에 “브다야의 아들들은 스룹바벨과 시므이요 스룹바벨의 아들은 므술람과 하나냐와 그 매제 슬로밋과”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백성이 세 번 잡혀갔기 때문에 포로가 세 번 본국으로 돌아왔는데, 1차 포로가 돌아올 때에는 스룹바벨이 용서를 해서 돌아왔습니다. 또 제2차 포로 귀환은 에스라가 용서를 해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3차 포로 귀환은 에스라 다음의 지도자인 느헤미야가 용서를 해서 돌아왔습니다. 지금 본문은 1차 포로 귀환 때를 말합니다. 에스라 7장에서부터는 에스라가 나오는데, 그 시기는 2차 포로 귀환 때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1차 포로 귀환 때의 지도자는 스룹바벨입니다.
또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으로서 스룹바벨과 함께 백성들을 인도해서 돌아왔습니다. 또 ‘느헤미야와’라고 하였는데, 느헤미야는 3차 포로 귀환할 때에 돌아왔는데 지금 명단에도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느헤미야가 1차 포로 귀환 때에 왔다가 바벨론에 다시 돌아가서 얼마 동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3차 포로 귀환 때 다시 돌아온 것 같습니다.
또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라고 하였는데, 모르드개는 에스더 때에 있던 그 모르드개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의 여러 지도자들과 각계각층의 모든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여기 여러 가족의 명단이 나옵니다.
2. 귀국한 가계와 그 자손들의 수
가계, 즉 계통을 형성한 유다 백성
본문 3-35절에 “바로스 자손이 이천 일백 칠십이 명이요 스바댜 자손이 삼백 칠십 이 명이요 아라 자손이 칠백 칠십 오 명이요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 팔 백십이 명이요 엘람 자손이 일천 이백 오십 사 명이요 삿두 자손이 구백 사십 오 명이요 삭개 자손이 칠백 육십 명이요 바니 자손이 육백 사십 이 명이요 브배 자손이 육백 이십 삼 명이요 아스갓 자손이 일천 이백 이십 이 명이요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 육십 륙 명이요 비그왜 자손이 이천 오십 륙 명이요 아딘 자손이 사백 오십 사 명이요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팔 명이요 베새 자손이 삼백 이십 삼 명이요 요라 자손이 일백 십 이 명이요 하숨 자손이 이백 이십 삼 명이요 깁발 자손이 구십 오 명이요 베들레헴 사람이 일백 이십 삼 명이요 느도바 사람이 오십 륙 명이요 아나돗 사람이 일백 이십 팔 명이요 아스마웻 자손이 사십 이 명이요 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이 칠백 사십 삼 명이요 라마와 게바 자손이 육백 이십 일 명이요 믹마스 사람이 일백 이십 이 명이요 벧엘과 아이 사람이 이백 이십 삼 명이요 느보 자손이 오십 이 명이요 막비스 자손이 일백 오십 륙 명이요 다른 엘람 자손이 일천 이백 오십사 명이요 하림 자손이 삼백 이십 명이요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이 칠백 이십 오 명이요 여리고 자손이 삼백 사십 오 명이요 스나아 자손이 삼천 육백 삼십 명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여러 자손이 가계대로 돌아왔는데, 전부 33가계가 됩니다. 여러 가계가 돌아왔는데, 바로스 자손, 스바댜 자손, 아랏 자손, 여압 자손, 삿두 자손 등등 자기의 가계 계통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니까 12지파로 내려가던 것이 바벨론으로 가서 여러 가계로 더 분화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그 가계대로 지금 돌아온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는 12지파가 나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러 가계가 나오는데, 전부 합하여 대강 계산한 숫자로 보면 91가계가 됩니다. 그런데 왜 가계대로 돌아왔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총 합계가 얼마라고 하지 아니하고 각 가계대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본문 23절부터는 벧엘과 아이 사람, 믹마스 사람, 기랴다임 사람, 아스마웻 사람 등 등 지방을 따라서 돌아왔습니다. 어떤 가계는 조상의 이름을 따라서 형성되었고 또 어떤 가계는 그 지방을 따라서 형성되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본문 16절에 보면 히스기야와 같이 조상 중 훌륭한 사람의 이름을 따라서 가계를 형성하였습니다.
가계(오늘날의 교단)을 기록한 목적 - 진리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데 왜 가계를 기록하였습니까? 이것은 신약시대의 각 교단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여러 교단이 갈라져서 그 교단대로 숫자를 계수해온 것이 많습니다. 그러면 단은 왜 갈라졌습니까? 교단이 갈라지는 원리는 진리가 다르기 때문에, 교리 때문에 갈라지는 것입니다.
감리교와 장로교가 갈라진 까닭
감리교와 장로교의 다른 점은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이 세상에 내려 왔는데, 제가 예수님을 믿으려면 믿고 제가 안 믿으려면 안 믿는 것이 감리교의 구원 교리입니다. 그러나 장로교의 구원 교리는 예수님을 안 믿을 수가 없게, 하나님께서 끝까지 예수님을 믿게
하셔서 구원시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각 교단은 그런 교리에 입각해서 성경을 해석합니다.
예를 들면 감리교에서는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멸망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구원의 밧줄이 위에서부터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붙잡으면 위에서 당겨주어서 건져주고 제가 안 붙잡으면 안 건져준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밧줄이 내려와서 ‘붙잡아라. 붙잡으면 산다’는 것이 감리교 알미니안의 신앙입니다. 그리고 장로교는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와서 우리의 허리를 둘러 감고 하나님께서 끌어당기심으로 올려주신다고 봅니다. 이 경우 밧줄을 매어놓았기 때문에 안 붙잡으려고 해도 안 붙잡을 수가 없고 안 가려고 해도 안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로교의 신앙입니다. 그러니 이 둘이 얼마나 다릅니까? 장로교에서는 그런 주장을 토대로 해서 모든 성경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석 전체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는데 교단이 갈라지는 이유는 교리가 달라서 분리되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깨달은 진리가 다르고 주장하는 것이 다르므로 만나면 서로 싸움만 하겠기에 “너는 너대로 옳은 것을 믿어라. 우리는 우리대로 한다”고 하며 갈라지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12지파와 신약시대의 12지파
그런데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신약시대에도 12지파가 있는데, 그것은 신약시대의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지파를 말하는 면도 있지만 구약의 이스라엘 지파와는 다릅니다. 단 지파가 빠졌고 단 지파 대신에 므낫세가 들어갔습니다. 또 구약 12지파는 르우벤 지파가 제일 첫 지파인데, 요한계시록 7장에는 유다 지파가 제일 처음으로 나옵니다. 유다 지파에서 예수님께서 나셨고 예수를 믿어서 구원 받은 사람들을 기록하려니까 유다 지파가 먼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도 구원 받은 성도들 간에 깨달은 진리가 다르고 영혼이 만들어지는 것이 다릅니다. 이렇게 깨달았으면 그렇게 만들어지고 또 저렇게 잘못 깨달았으면 만들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만들어지기가 힘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릅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신, 구약 성경의 모든 진리를 전부 100개라고 하면 그 백 개 가운데 절반을 잘못 깨달은 교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파는 삼분지 이를 바르게 깨닫고 삼분지 일은 잘못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어떤 교파는 성경을 삼분지 일만 바로 깨닫고 삼
분지 이를 잘못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 깨달은 것은 헛된 것이므로,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만들어지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성경에 대해서 삼분지 일만 만들어지는 사람, 절반만 만들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삼분지 이를 바로 붙잡고 만들어나가는 사람, 그 다음에 진리의 십분지 팔을 바로 붙잡고 만들어나가는 사람, 십분지 구(90%)의 진리를 바로 붙잡고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리가 아닌 것은 헛된 것입니다. 헛된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있고 몸과 생명과 재산을 다 바쳤어도 진리가 아닌 것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은 만들어지는 바가 없습니다. 진리를 바로 붙잡고 만들어나가는 것만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계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도 다릅니다. 진리를 붙들고 이 세상에서 얼마나 자기가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구체적인 지위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지파, 여러 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대로 또 만들어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다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집을 짓는 것도 자기들이 깨달은 대로 짓습니다. 요새는 서양 사람들을 다 따라가지만 한국 사람은 옛날로 말하면 한국식 집을 지었습니다. 그것이 좋다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사람은 중국 사람의 집, 또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의 집 짓는 법을 각각 배우고 그 깨달은 대로 집을 짓습니다. 한국 사람의 기와집은 아름답지만 마루방만 밝게 만들어놓고 안방은 구석에 있습니다. 채광이 별로 좋지 않게 만들어놓았습니다. 또 댓돌을 놓아 방을 높게 만들어놓았는데, 댓돌 두 계단을 거쳐야만 방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또 일본 사람의 집이 한국의 집과 다른데, 그 사람들은 성냥개비를 가져다가 세워놓은 것과 같이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의 집들이 다 다를 것입니다.
요새는 아마도 서양 집의 스타일이 제일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대부분 그렇게 짓습니다. 의복도 나라마다 다릅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도 각계각층으로 다른 것입니다. 진리를 많이 깨닫고 믿는 사람과 진리를 잘못 깨닫고 믿는 사람이 다른 것입니다.
천주교의 95가지 잘못된 일
천주교에서는 성경을 잘못 깨달은 것이 95가지입니다. 교황 무오설과 마리아 무죄설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교황은 오류가 없고 마리아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도 죄인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까? 마리아도 우리와 같은 죄인입니다. 또 베드로를 숭배하는 것과 면죄부를 판 일 등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들입니다. 또 사제에게 가서 자기의 죄를 자복하면 사제가 그 죄를 사해준다는 고해성사(告解聖事)라는 것이 있는데, 사제에게는 죄를 사해주는 권세가 없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성경을 잘못 깨달은 것이 95가지입니다. 교황 무오설과 마리아 무죄설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교황은 오류가 없고 마리아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도 죄인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까? 마리아도 우리와 같은 죄인입니다. 또 베드로를 숭배하는 것과 면죄부를 판 일 등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들입니다. 또 사제에게 가서 자기의 죄를 자복하면 사제가 그 죄를 사해준다는 고해성사(告解聖事)라는 것이 있는데, 사제에게는 죄를 사해주는 권세가 없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것들이 루터 때에 95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에서는 교회에서 구원을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다고 하며 구원이 교회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신교는 구원이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고 하는데, 서로 입장이 다른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교회를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 데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고 믿습니다. 그래도 천주교에서도 사도신경은 우리와 같습니다. 그 사람들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독생자를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을 믿습니다. 주기도문도 같이 합니다. 그 만큼 천주교에서도 교회의 권위와 전통을 성경의 가치만큼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다릅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성령이 아버지께로부터만 나온다고 믿습니다. 아들에게로부터는 성령이 나오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서방 교회는 성령이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고 아들에게로부터 나오신다고 믿습니다. 성부께로부터 성령이 나오시고 성자께로부터 나오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희랍 정교회(동방 교회)는 아버지께로부터만 나온다고 믿고 있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찾는 것이 중요함
그리고 같은 장로교라고 해도 원리는 같지만 지엽적인 문제에서는 각기 다릅니다. 장로교에도 천년왕국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고,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새 천년왕국을 안 믿는 장로교가 많습니다. 천년왕국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잘못 믿는 것입니다. 헛된 것입니
다. 실제로 천년왕국이 없다고 하면 천년왕국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잘못 믿은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있든지 없든지,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둘 다 맞을 리는 없습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천년왕국이 있으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잘못 믿어 헛된 것이고,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면 아무것도 아니고 잘못 믿은 것이 됩니다. 또 천년왕국이 없다고 하면 있다고 믿은 것이 헛된 것이 됩니다.
그리고 같은 장로교라고 해도 원리는 같지만 지엽적인 문제에서는 각기 다릅니다. 장로교에도 천년왕국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고,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새 천년왕국을 안 믿는 장로교가 많습니다. 천년왕국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잘못 믿는 것입니다. 헛된 것입니
다. 실제로 천년왕국이 없다고 하면 천년왕국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잘못 믿은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있든지 없든지,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둘 다 맞을 리는 없습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천년왕국이 있으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잘못 믿어 헛된 것이고,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면 아무것도 아니고 잘못 믿은 것이 됩니다. 또 천년왕국이 없다고 하면 있다고 믿은 것이 헛된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바로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장로교에서도 중생한 영혼이 죄를 짓는다는 교파가 있고 안 짓는다는 교파도 있습니다.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중생한 영혼이 죄를 안 지으면 죄를 짓는다고 믿은 사람이 잘못 믿은 것이고 헛되게 믿은 것이 됩니다. 또 죄를 지으면 안 짓는다고 믿은 사람이 헛되게 믿은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혼이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중생한 영혼이 죄를 안 짓는다고 믿습니다. 죄는 육체의 부패성이 짓는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중생한 영혼이 죄를 짓는다고 믿는 장로교가 많습니다.
또 신사 참배를 죄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죄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교에서도 조상 숭배하는 것을 죄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죄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새 순복음 교회에서는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효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장로교에 요새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죄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다릅니다. 그것이 죄라면 죄가 아니라고 한 사람이 잘못 믿은 것이고 죄가 아니면 죄라고 한 사람이 잘못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나아가 해방 신학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잘못되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약한 자들을 해방시키시러 오셨다. 바로 사회 구원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는 것이 예수님의 정신이다’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잘못된 것으로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는 죄에서 해방, 마귀에게서 해방, 즉 우리에게 영적 해방을 주러 오셨지 제도적인 해방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다”라고 믿습니다.
이처럼 장로교도 다 다릅니다. 주일날 무엇을 사면 죄라고 믿는 교파가 있고 주일날 무엇을 사고 일을 해도 죄가 아니라고 믿는 교파가 있습니다. 그리고 추도 예배를 죄라고 믿는 교파가 있고 추도 예배는 괜찮다고 믿는 교파가 있습니다. 다 다릅니다. 우리는 추도 예배는 성경위반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에 추도 예배하는 것이 없습니다. 또 죽은 사람을 기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주일날에 선거하고 화폐개혁할 때에 돈 신청하는 것이 죄라고 우리는 믿었으나 그것이 괜찮다고 믿은 교회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교회마다 교단마다 입장과 의견이 다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한 번 중생했다가도 타락하면 지옥에 간다고 믿는 교파도 많습니다. 일단 성도가 예수를 믿고 중생했어도 그 사람이 다시 타락하면 지옥에 간다고 믿는 것입니다. 천주교, 감리교, 루터 파에서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 중생한 사람은 죄를 지어도 지옥에 안 간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장로교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셔서라도 그 사람을 회개시키셔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깨달은 정도에 따라 영혼의 만들어지는 분량이 다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바로 깨닫고 믿느냐에 따라서 영혼이 만들어지는 것이 다릅니다. 성경, 즉 바른 진리를 많이 깨닫고 믿는사람은 많이 만들어지고, 바른 진리를 적게 깨닫고 믿는 사람은 아무리 이런 저런 힘을 써도 적게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다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가도 만들어진 정도가 다릅니다. 하늘나라는 이 세상에서 영혼이 만들어진 대로 가는 것이므로, 많이 만들어진 사람은 많이 자라나서 가고 적게 만들어진 사람은 적게 만들어져서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세상에서 만들어진 대로 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만들어진 대로 가는 것이 아니고 다 같다’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각계각층, 여러 교파, 교단에서 진리를 깨달은 면이 여러가지로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배우고 깨달은 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면에 있어서도 가계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지파가 다르고 가계가 다릅니다. 본문에서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바로 깨닫고 믿느냐에 따라서 영혼이 만들어지는 것이 다릅니다. 성경, 즉 바른 진리를 많이 깨닫고 믿는사람은 많이 만들어지고, 바른 진리를 적게 깨닫고 믿는 사람은 아무리 이런 저런 힘을 써도 적게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다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가도 만들어진 정도가 다릅니다. 하늘나라는 이 세상에서 영혼이 만들어진 대로 가는 것이므로, 많이 만들어진 사람은 많이 자라나서 가고 적게 만들어진 사람은 적게 만들어져서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세상에서 만들어진 대로 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만들어진 대로 가는 것이 아니고 다 같다’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각계각층, 여러 교파, 교단에서 진리를 깨달은 면이 여러가지로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배우고 깨달은 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면에 있어서도 가계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지파가 다르고 가계가 다릅니다. 본문에서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은 육체의 가계, 신약은 영적인 계통
구약에 이스라엘 역사는 육체의 가계입니다. 육체대로 모든 진리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그것을 영적으로 나타내므로 영적으로 모든 면이 다르게 됩니다. 예수를 다 믿지만 자기의 신앙 생리에 맞는 것이 있고 안 맞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의 깨달은 진리에 맞고 안 맞고, 내 신앙 생리에 맞고 안 맞는 것이 저마다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해보면 우리의 신앙과 맞는 사람들이 있고 또 안 맞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 맞으면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물고기도 짠물(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있고 단물(민물)에 사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같은 물고기라도 살고 있는 물에 따라 그 종류가 다릅니다. 그래서 각계각층, 또 여러 가계가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육체적으로 이것을 나누어놓았기 때문에 자기의 훌륭한 조상을 따라서 가계가 내려오기도 하고 또 지방을 따라서 가계가 내려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계가 있었습니다.
가계가 많이 번성한 까닭
그런데 가계에 따라서 많이 번성된 가계도 있고 적게 번성된 가계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으로부터 다 시작을 하였지만 몇십 년, 몇백 년 내려가다 보니까 많이 창성한 가계가 있고 얼마 창성하지 못한 가계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가계는 본문 6절에 보면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 팔백 십이 명이요”라고 하였는데, 이 가계는 이천 팔백 명이라는 숫자로 보아 많이 창성한 가계입니다. 또 어떤 가계는 본문 24절에 “아스마웻 자손이 사십이 명이요”라고 하였는데, 사십 이 명입니다. 다른 가계의 숫자는 삼천 명에 도달하는데 이들은 사십 이 명만 있는 것입니다. 또 본문 20절에 깁발 자손은 구십 오명, 본문 29절에 느보 자손은 오십 이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일 많은 가계는 본문 35절에 “스나아 자손이 삼천 육백 삼십 명이었더라”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스나아 자손입니다. 백 명이 안 되는 가계도 있고 천 명이 좀 안 되는 가계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믿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고 상당한 창성한 가계들입니다. 믿음을 잘 지킨 계통은 하나님께서 많이 번성하게 해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해주신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러면 네 자손이 창성해 진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죄를 떠나 말씀만 힘 있게 따라가면 많이 창성케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본문에서 많이 창성한 가계는 죄를 멀리 떠나며 말씀을 많이 받고 말씀대로 많이 순종한 가계인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길을 걸어간 가계, 독자까지 바치면서 걸어간 가계는 많이 창성한 것 같고, 창성하지 못한 가계는 롯의 신앙의 길을 걸어간 가계인 것 같습니다.
가계 수가 백 명 이하인 가계는 다 롯의 신앙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 사람들을 가다가 재앙이나 징계를 만나 폭삭 망하고 가다가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바람에 그만 창성하지 못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다 망하지 않았습니까? 롯의 신앙은 하나님과 세상(재물)을 겸하여 가지겠다는 것입니다. 한 손은 하나님을 붙들고 한 손은 세상을 붙들고 나가는 신앙이 롯의 신앙입니다. 그들은 잘될 것 같아도 가다가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오기 때문에 안 됩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창성케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라함의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진리를 확실하게 많이 붙들고 죄는 멀리 떠나고 죄와 더불어 싸우기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말씀을 바로 붙들고 끝까지 달음박질을 하고 힘써 독자까지 바치면서 희생의 정신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창성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죄를 멀리하지 아니하며 한 손은 하나님을 붙들고 한 손은 세상을 붙들고 나가면 잘 안 됩니다. 말씀대로 힘 있게 따라가지 못하는 자는 창성하지 못합니다. 힘쓰지 않는 교회, 죄와 더불어 싸우지 않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을 힘 있게 따라가지 않는 교회는 잘되어나가지 못합니다. 힘써서 믿는 일을 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말씀의 길을 걸어가지 않는 교회는 창성하지 못합니다. 일시적으로 창성을 해도 얼마 가면 다 없어집니다.
껍데기만 창성하다가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오면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와 같이 아무리 조상이 훌륭해도 본문 16절에서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 팔 명이요”라고 한 것처럼, 후대가 믿는 일을 잘못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 스나아 자손과 같이 아무리 이름 없는 가계라고 해도 믿는 일을 잘하면 많이 창성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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