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4일 화요일

에스라 2:36-70 일차 귀환 때 돌아온 자들의 명단 2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일차 귀환 때 돌아온 자들의 명단 2
에스라 2:36-70

36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이요 37임멜 자손이 일천오십이 명이요 38바스훌 자손이 일천이백사십칠 명이요 39하림 자손이 일천십칠 명이었더라 40레위 사람은 호다위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사 명이요 41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일백이십팔 명이요 42문지기의 자손들은 살룸과 아델과 달문과 악굽과 하디다와 소배 자손이 모두 일백삼십구 명이었더라 43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44게로스 자손과 시아하 자손과 바돈 자손과 45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악굽 자손과 46하갑 자손과 사믈래 자손과 하난 자손과 47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르아야 자손과 48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갓삼 자손과 49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베새 자손과 50아스나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부심 자손과 51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 52바슬룻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 53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 54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더라 55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하소베렛 자손과 브루다 자손과 56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57스바댜 자손과 하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미 자손이니 58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이 삼백구십이 명이었더라 59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60저희는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도합이 육백오십이 명이요 61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에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이름한 자라 62이 사람들이 보계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63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64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65그외에 노비가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 66말이 칠백삼십륙이요 노새가 이백 사십오요 67약대가 사백삼십오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이었더라 68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69역량대로 역사하는 곳간에 드리니 금이 육만 일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이었더라 70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그 본성들에 거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그 본성들에 거하였느니라

1. 귀국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그리고 성전 봉사자들

제사장 4가계가 창성하여 돌아옴

본문 36-39절에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 칠십삼 명이요 임멜 자손이 일천 오십 이 명이요 바스훌 자손이 일천 이백 사십 칠 명이요 하림 자손이 일천 십칠 명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라 2장에는 바벨론에서 제1차로 돌아온 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제사장들은 4가계(家系)로, 모두 4,289명이었습니다.

이들이 많이 창성하였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 섬기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많이 창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으로 많이 돌아왔습니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자손들이 많이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들이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 하나님 섬기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제사장의 자손들이 창성하여 많이 돌아왔습니다. 신앙을 잘 지키는 지파가 많이 창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믿는 것을 전문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렇게 포로에서 돌아온 제사장들의 수가 많아진 것처럼, 창성할 수있습니다. 성도가 전문적으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여기서 배워야겠습니다. 

성도가 전문적으로 예수님을 섬기며 따를 때에 창성함

안 믿는 사람들 중에 “저 사람은 예수장이다”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장이’라는 말이 좋은 말이라고 합니다. 전문가라는 뜻입니다.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을 ‘장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석수장이라고 하면 석수 전문이고, 땜장이라고 하면 땜 전문입니다. 돌장이라고 하면 돌 전문이고, 미장이라고 하면 바르는 것이 전문입니다. 전문가가 ‘장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장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진짜 성도입니다. 예수 믿는 일에 전문가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가짜다. 개예수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안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짜 성도라는 뜻으로, ‘개예수’라는 말을 쓴다고 합니다. 살구도 개살구가 있지 않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도 다 아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가짜다. 아무개는 진짜다. 저 사람은 예수장이다’, 이렇게 다 알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전문으로 믿어야 합니다. 다 집어치우고 아예 전심전력을 기울여 믿는 일을 첫째로 해야 합니다. 믿는 것을 원업으로 하고, 세상 일은 부업으로 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전문적으로 믿는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만드시는 것처럼, 복을 받는 사람이 그 자손 가운데 많아지게 됩니다. 또 번성도 많이 하게 됩니다. 복된 자리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 신학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그 교회가 부흥이 안 되고 자손들이 믿음을 못 지킵니다. 그러나 믿는 일을 전력을 기울여 하는 사람들의 교회는 부흥이 됩니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의 자손들이 많아집니다. 우리가 믿는 일을 전문으로 해야 되겠습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지 않아 번성하지 못함

본문 40-42절에 “레위 사람은 호다위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사 명이요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일백 이십 팔 명이요 문지기의 자손들은 살룸과 아델과 달문과 악굽과 하디다와 소배 자손이 모두 일백 삼십 구 명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레위 자손은 9가계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가계를 전부 합해도, 341명밖에 안 됩니다.
레위 자손이 상당히 많아야 되겠는데, 얼마 안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레위 지파가 왜 이렇게 자손이 적어진 것입니까? 아마도 바벨론에 가있는 동안에 레위 지파가 특별히 한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직무를 맡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성전이 없었으니, 제사장들은 제사를 지냈어도 레위 지파 사람들은 별로 한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직무를 별로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바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입니다. 충성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할 일 자체가 마땅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이렇게 번식을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 몇 명밖에 못 왔습니다. 할 일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직무를 잘 감당하지 못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번식도 못하고, 돌아올 때도 많이 못 돌아옵니다. 

우리는 자기 직무를 잘 감당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할 일이 많아야 합니다. 사람이 할 일이 없으면 못씁니다. 일이 많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맡아서 할 일에 충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 받들어나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번식도 하고, 또 좋은 자리에 많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많이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복됨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봉사를 많이 하는 그 가계, 그 집, 그 자손이 복됩니다. 우리는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봉사하지 않고 건들건들 돌아가기만 하면 점점 쇠퇴해집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봉사해야 합니다.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봉사를 해야 합니다. 교회에 가서 봉사하고, 예배당을 짓는데 봉사하고, 전도하는 데 봉사하고, 심방하는 데 봉사하고, 주일 학교에 봉사해야 합니다. 봉사하는 곳에서 자신이 창성해지고, 자기가 전도한 사람이 창성해지고, 또 자손들이 창성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앞장서 나가야 합니다.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 없습니다. 하여간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안 하려고 합니다. 봉사를 하지 않으려고 살살 뺍니다. 손짓 하나 하지 않고, 빗자루 하나 안 들고, 봉사하지 않으려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할 일이 있는데, 하나 하지 않고 돌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봉사하려고 앞장을 섭니다. 빗자루도 먼저 가서 들고,
아예 앞장을 서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은 자기가 다 하려고 합니다. 힘이 드는 것도 자기가 다 하려고 하고, 어떻게 하든지 어깨를 들이대고 메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봉사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결국 잘됩니다. 전도하려고 하고, 구제하려고 하고, 선한 사업을 하려고 하고, 남을 도와주려고 하고, 심방을 하려고 하고, 그렇게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봉사하지 않고 노라리나 하는 사람들은 희망이 없습니다. “힘들다. 모임이 있다. 무슨 일이 있다”라고 하면서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봉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점점 쇠퇴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봉사해야 합니다. 해야 믿음의 실력이 늘고, 해야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를 위해서 힘써 봉사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새벽 기도도 힘써 참여하고,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으려고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인도하려고 힘을 써야 하며 교회에 와서 봉사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강조하는데 봉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 청소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저도 오늘 청소를 했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빗자루를 가지고 전부 다 쓸었습니다. 장영두 집사와 둘이 가서 “쓰레받기 잡아라. 내가 쓸 거니까”하며 다 쓸었습니다. 화장실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들이 하지 않으면 제가 다 합니다. 그러니까 장로가 하기 전에 먼저 하고, 목사가 하기 전에 먼저 하고, 집사가 하기 전에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또 형제가 먼저 하고, 집사가 더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먼저 하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넘칠 듯 많으면, 다 내어다 쏟아야 합니다. 그런데 쓰레기통이 차고 넘쳐도 못 본체 하고, 발로 툭툭 차며 돌아가면 안 되겠습니다. 다 넘어가고 있는데 가만 내버려두고, 보고도 못 본체 하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레위 사람들처럼 봉사할 직분이 있는데 봉사를 하지 않고 돌아가는 사람은 전부 다 쇠퇴해집니다. 영적인 부분, 심령이 쇠퇴해집니다. 영의 역사가 쇠퇴해지는 것입니다. 복 받는 데로 나가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직무를 잘 감당하는 사람이되어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일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 일에 참여하려고 애를 써야 하고, 한 몫 들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청년 시절부터 교회를 나갔는데, 한 열 여섯 살쯤부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잔칫집이 있다고 해서 가면 알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 부모가 교회에 나가지 않고 아이들만 나갔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알아주는가 하면 조 장로 아들, 김 장로 아들, 그
장로의 딸, 이런 아이들만 알아줍니다. 학교에 가면 꿈쩍도 못하는 것들이 교회에 가면 우리를 보고 본체만체 하는 것입니다. 결혼식 날에가면 “누구 오너라. 아무개 오너라”고 하는데, 나보고 오라는 곳은 없습니다. 조가 네가 많고 김가 네가 많습니다. 조가 네 패하고 김가 네
패가 대부분입니다. 그 다음에 이가 네는 몇 사람이 없으니까 또 누가알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잔칫집에 가서 혹시 한 그릇을 얻어먹을 때도 있고 못 얻어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 가기를 작정했습니다. 결혼식 할 때는 가봐야 쓸 데가 없습니다. 없어도 괜찮은 것이고 가봐야 본체만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식은 관두고 어디만가는가 하니 상갓집만 가는 것입니다. 상갓집이 있으면 먼저 가는 것입니다. 상갓집에는 그 사람들이 안 옵니다. 장로 아들, 장로 딸, 집사들이 안 가니 우리만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상갓집에 가면 대접을 잘해줍니다. 아이들이라도 왔다는 것입니다. “얘, 오너라. 오너라”고 하면서 반가워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어디를 가느냐 하면 귀신 들린 집에 가는 것입니다. 마귀 들린 집이 있어도,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자주 다닐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매일 가는 것입니다. 밥 먹고 할 일이 없으니깐 전부 거기 가는 것입니다. 매일 가서 예배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전도하러 가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예배당 가서 청소를 하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일할 것이 있으면 우리가 다해치우는 것입니다. 장로님, 목사님이 보기 전에 다 해치우는 것입니다.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을 많이받았습니다. 그때 나와 같이 다니면서 상갓집에 가고, 청소하고, 예배당고치고, 전도했던 사람들 중에 목사가 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잔칫집에 가서, 잘 얻어먹던 사람들은 이북에서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한번 보면 좋겠는데, 나오지를 못해서 얼굴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보면 봉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발 벗고 나서서 하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좀 하려고 하고, 전도하여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려고 해야합니다. 예배당, 교회에 가서 봉사하려고 하고, 자기 직무를 다 하려고애를 써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제사장은 번식을 했는데 레위 지파는별로 하지 못했습니다. 왜 번식을 못 했습니까? 레위 지파는 할 일이없었습니다. 제대로 할 일을 못했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얼마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를 다 합해도 341명밖에 안됐습니다.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의 귀환

본문 43-54절에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게로스 자손과 시아하 자손과 바돈 자손과 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악굽 자손과 하갑 자손과 사믈래 자손과 하난 자손과 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르아야 자손과 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갓삼 자손과 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베새 자손과 아스나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부심 자손과 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 바슬룻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 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 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는 느디님 사람들의 가계인데, 전부 35가계입니다. 

느디님 사람들은 본래 이방 기브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와 아이 성을 정복했다는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여호수아를 속이고 이스라엘과 동맹하였습니다. 그런데 후에 그들의 거짓말이 드러나게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 살이를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봉사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느디님 사람들이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수9:3-27). 그 사람들이 이번에 여러 가계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많이 번식하지는 못했습니다. 

본문 55-58절에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하소베렛 자손과 브루다 자손과 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스바댜 자손과 하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미 자손이니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이 삼백 구십 이 명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솔로몬의 신복이라는 것은 솔로몬의 종이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즉, 솔로몬의 종들의 자손, 그 신복의 자손이 10가계라는것입니다. 다시 말해 10지파로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도 얼마 번식하지 못했습니다.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종들의 가계를 다 합해서 392명밖에 되지않습니다. 얼마 번식을 못했고, 또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 하나님의말씀을 순종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솔로몬의 신복들의경우, 솔로몬의 신복이라고 하는 자만심이 마음속에 있지 않았겠는가생각합니다. 또 느디님 사람들은 본래 성전에서 나무를 패며 물 긷는일을 했는데, 바벨론에서 지내는 동안 성전이 없어서 하나님을 위해봉사를 별로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이 돌아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보계(譜系)가 불확실한 사람들

본문 59-63절에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없으니 저희는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도합이육백오십이 명이요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에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이름한 자라 이 사람들이 보계 중에서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는 보계가 불확실한 사람들입니다. 보계가 불확실한 사람들이 있는데, 일반 백성 가계 가운데 3가계와 제사장 가계 가운데 3가계입니다. 이 사람들은 보계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족보가 확실치 않은 사람들을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제사장이라도 보계가 확실치 않은 자들은 부정하게 여겨서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보계가 확실해야 합니다. “무슨 보계다. 나의 소속은 어디이다”라고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밝히지 않고 어물어물하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듯이 나가면 안 됩니다. 불확실하게 나가는 것은 부정입니다. 깨끗하지 못한 것입니다. 양심을 안 쓰는 것입니다. 우리는언제나 확실하게 양심을 쓰며 나가야 합니다. 모든 일을 확실하게 해나가야지, 양심을 안 쓰고 어물어물하면서 여기도 한 몫 저기도 한 몫두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구는 것은 비양심적입니다. 부정합니다.하나님 앞에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실한 태도를 취해야겠습니다. 또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부정하게 여겼다고 했는데,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는 기구입니다. 제사장들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사용하였습니다. 하여간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깨달아서 그 깨달은 바에 확실
히 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진리를 확실히 깨달아서 자기 자리에 확실하게 서야 합니다. 진리를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보계가 불확실하게 돌아가면 부정합니다. 양심을 안 쓰는 것이기 때문에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양심을바로 써서 진리를 확실히 깨닫고 “나는 이 진리가 옳다. 나는 여기에있다. 나는 여기에 속한다”라고 해야 합니다. 확실한 진리를 깨달아 그말씀에 서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에 깨끗하게 되어 성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귀국한 노비와 그 가축들

본문 64-67절에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 삼백 육십 명이요 그외에 노비가 칠천 삼백 삼십 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 말이 칠백 삼십 륙이요 노새가 이백사십오요 약대가 사백 삼십 오요 나귀가 육천 칠백 이십 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돌아온 회중의 합계가 얼마입니까? 사만 이천 삼백 육십 명입니다. 그런데 실수로는 사만 이천이 안 된다고 합니다. 등록한 모든 숫자는 실수로 이만 구천 팔백십팔 명입니다. 즉, 처음에 등록할 때에는 사만 이천 삼백 육십 명이 돌아왔다고 등록을 했는데, 실제로 떠날 때 돌아온 사람은 이만 구천팔백 십 팔 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간다고 했다가 안 온 사람이얼마입니까? 만 이천 오백 사십이 명입니다. 그 사람들은 오겠다고 등록을 해놓고 안 왔습니다. 신청은 하고 안 온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왜 안 온 것입니까? 오겠다고 신청을 했으면 와야 되는데, 신청만 해놓고 안 왔습니다. 실제로 떠나려고 할 때에 쏙빠졌습니다. 왜 신청해놓고 안 왔는가 하니, 고생할까봐 그런 것입니다.좋다고 하는 바람에 가려고 했는데, 가만 생각하니 가서 살 길이 태산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갈 길을 생각하니 그 먼 길을 어떻게 가겠는가, 싶은 것입니다. 몇 천리 되는 길입니다. 가는 데는 넉 달이 걸립니다. 그러니 넉 달 동안을 걸어서 먼 길을 가야 되겠고 도착할 곳은황무지인데, 가서 뭘 먹고 살 것인지 염려를 하게 된 것입니다. 바벨론에는 이미 직장이 있고, 집도 있는 상태입니다. 기반이 딱 잡혀 있습니다. 아주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집도 없고 할 일도 마땅히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살겠느냐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살 길이 막연합니다. 피난 생활하는 것과 같습니다. 피난민들이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가겠다고 등록은 해놓고, 못 간 사람들이 있고 그만 둔 사람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여러 가지 사정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가족 가운데 안가겠다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호주는 신청을 했는데, 집에 가서 이야기를 해보니 안 가겠다는 것입니다. 목을 매달고 못 간다는 것입니다. 누가 못 간다고 그랬겠습니까? 아내들, 아들들, 딸들이 못 간
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청을 했다가 떨어진 사람이 만 이천 오백 사십 이 명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 성령께서 감동을 시키셔서 가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을 생각해보니 고생할 것이 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 주저앉은 것입니다.감동을 받고 하려고 했다가 주저앉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사람들은 복을 발로 차 내버린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가면 고생할 것같아도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으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인데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그러므로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생을 해도 바벨론 나라에서 종 살이하는 것보다 나은 것입니다. 영적 자유와 해방과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그 생명 운동에 참여해야지, 일시적으로 육신의 평안만을 추구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적생명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말씀 순종하는 데에 참여하지 못하면 뭐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평안히 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감동을 시키실 때에, 또 하나님의 명령이내려질 때에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가다가 무슨 환난을 당하든지, 넉달 동안 고생을 죽도록 하든지, 가나안 땅 황무지에 가든지, 이러한 것들에 개의치 말라는 것입니다. 뭘 먹고 살까 염려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으니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복으로주신 줄 알고 여러 가지 환난을 달게 받으면서 가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일단 작정했으면 갈 것이지, 무슨 사정이 많습니까? 다 집어치우고 가는 것입니다. 매달려도 다 집어치워야 합니다. 매달린다고 못 가면 그것은 하나님의 복된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입니다.

3. 귀국한 자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예물을 드림

예물은 자원하여 힘써 즐거이 드려야 함

본문 68-69절에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역량대로 역사하는 곳간에 드리니 금이 육만 일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을 건축할 때에 사용하라고 즐거이, 역량대로 예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원리는 즐거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역량대로, 자기 힘대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힘이 되는 대로,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대로 해야 합니다. 남아 있는 대로 하면 안 됩니다. 한 가마니 질 수 있는 사람은 한 가마
니를 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반 가마니를 진다고, 자기도 반 가마니를 지면 매를 맞습니다. 그리고 반 가마니를 질 수 있는 사람은 반 가마니를 지고, 쌀 두 말을 질 수 있는 사람은 두 말을 지고, 한 말을 질수 있는 사람은 한 말을 져야 합니다. 역량대로 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예물을 바칠 때에 자기 역량대로 바쳐야 합니다. 연보를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경제적으로 주신 역량대로 해야지, 남이 조금한다고 자기도 조금하면 안 됩니다. 한 번하고 지나가면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또 한 가마니를 질 수 있는 역량을 주셨는데, 반 가마니를 지면 하나님께 죄 짓는 것이 아닙니까? 한 가마니를 지라고 했는데 왜 반 가마니만 지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 가마니를 지라고 했는데, 왜 한 말을 지고 나가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 농사를 했는데, 아버지가 우리 형은 한 가마니를 지라고하고, 저는 그때 얼마 졌는지 조금 진 것 같습니다. 한 두어 말 진 것같습니다. 아버지도 한 가마니를 지셨습니다. 그때에 우리 형이 한 가마니를 질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동생과 같이 한다고 두 말을 졌다고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버지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한 가마니를질 수 있는데, 또 한 가마니 지라고 아버지가 그랬는데, 한 가마니가 힘들겠다고 “동생과 같이 두 말을 지겠습니다”라고 하면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겠습니까? 책망을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한 가마니를 져야 하나님의 일이 제대로 되어나가고, 또 반 가마니 질 사람은 반 가마니를져야 일이 제대로 되어나갑니다. 또 두 말을 지어야 할 아들은 두 말을 져야 일이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한 가마니를 질 사람이 반 가마니만 지면 하나님의 일이 제대로 안 됩니다. 그 사람은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주셨는가를 생각하고 힘써해야 합니다. 연보를 할 때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역량대로 힘써 해야지, 남이 하는 대로만 하면 안 됩니다. 또 세상에다가 쌓아놓고 조금만 바치면 되는 줄 알고 나가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자기 힘을 다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부득이해서 하지 말고 즐거움으로감사해서 해야 합니다. 

바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바치는 것이지, 제가 자기 어머니 뱃속에서 가지고 나왔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얼마나 감사합니까? 감사함으로, 즐거움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이 귀한것입니다. 자기 역량대로 예물을 드리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족장들이 전부 얼마나 바쳤습니까? 금이 육만 일천 다릭입니다. 그것은 미국 돈으로 사십 오만 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또 은 오천 마네는 미화로 십 오만 불이라고 합니다. 또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입니다. 사실 많이 바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난한 가운데서 자기 힘대로 다 바쳤다는 것입니다. 힘대로 다 바쳐서 이제 그것을 가지고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70절에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그 본성들에 거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그 본성들에 거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돌아가서 자기 옛날 본성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바벨론에서 새로 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 사람들은 이제 처음으로 자기 고향에 온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고향이구나’하면서, 자기 아버지 고향, 본성으로 돌아가 거기에 거하게되었습니다. 이제 이 돌아온 사람들의 숫자와 그 배경을 생각하며 교훈을 얻어야겠습니다. 또 역량대로 힘써서 즐거이 예물 드린 것을 보고 배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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