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1일 토요일

역대하 10:1-19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의 분국(分國)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의 분국(分國)
역대하 10:1-19

1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2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 일을 듣고 애굽에서부터 돌아오매 3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고하여 가로되 4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5르호보암이 대답하되 삼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6르호보암 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7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이 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 하고 선한 말을 하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8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9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0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이 백성들이 왕께 고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시기를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11내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하리라 하소서 12삼일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하여 이르기를 삼일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왕이 포학한 말로 대답할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14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더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하리라 하니라 15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 16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너희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온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17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 왕이 되었더라 18르호보 암왕이 역군의 감독 하도람을 보내었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저를 돌로 쳐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19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1. 백성들이 르호보암 왕에게 요구함

여로보암을 우두머리로 세워 자신들의 의견을 표함

본문 1-4절에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 일을 듣고 애굽에서부터 돌아오매 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9장 31절에 “솔로몬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부친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온 이스라엘 백성이 세겜으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을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으로 갔는데, 그때에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이 백성의 두목이 된 것 같습니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을 배반하고 솔로몬 왕을 대적하다가 애굽으로 도망쳐 있었는데, 솔로몬이 죽었다는 것을 듣고 돌아왔습니다. 그가 온 백성이 세겜에 모여서 왕을 삼고자 하는 자리에 지금 왔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 때에 이스라엘을 건설하느라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백성들이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대단히 힘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제 솔로몬 왕이 이 세상을 떠났으니 이전에 여러 가지 고역과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을 많이 지고 나간 것으로부터 건져달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짐을 좀 가볍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왕을 섬기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이러한 요구가 정당한 것인가는 문제입니다. 또 솔로몬 왕 때에 여러 가지 건축물을 건설하려고 백성들이 일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기에 그들이 많은 혜택을 입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세계 1등 국가가 되었고 많이 번영하였습니다. 부요한 나라가 되어서 자기들도 말할 수 없는 존귀 가운데 이르렀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지금 그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라가 잘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며 세계의 으뜸이 되었던 것, 이런 것들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평안하게 일 많이 하지 않고 부담을 적게 가지고 사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또 일은 조금 하고 먹는 것은 많이 먹기를 원합니다. 즉, 백성들의 요구는 일은 적게 하고 소득은 많이 차지하려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평안한 것만 원하고,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 하고, 자기 뜻대로만 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세금을 적게 내겠다는 것, 소득은 많이 받겠다는 것, 백성들의 요구는 보통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는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의 존재입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 왕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반대하다가 쫓겨 피난을 갔던 사람인데, 이제 그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원할 리가 없습니다. 솔로몬왕을 반대하던 사람이 그 아들이 왕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르호보암왕을 반대하는 사람이 백성의 두목으로 서서 지금 이러한 요구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사태는 르호보암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2. 르호보암이 노인들의 교도를 버리고 소년들의 교도를 좇음

경험 많고 성경말씀에 능통한 노인들의 교도를 따라야 함

본문 5-11절에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르호보암 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이 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 하고 선한 말을 하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이 백성들이 왕께 고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시기를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하리라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대답한다고 삼 일 후에 다시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삼일 동안에 왕이 의논을 하는데 자기 부친이 살아계실 때에 상대하던 노인들과 의논을 하였습니다. 노인들은 뭐라고 답변하였습니까? 열왕기상 12장 7절을 보면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는 “왕이 만일이 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 하고 선한 말을 하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르호보암 왕이 자기와 같은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뭐라고 답변하였습니까?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다’는 것은 부친보다 더 심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즉, ‘나는 더 심하게 너희들을 다룰 것이다. 부친이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의 새끼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것보다 더 심하게 고역을 시키고 더 할 것이다. 또 내 부친이 무겁게 했지만 나는 더 무겁게 할 것이다. 또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때렸지만 나는 전갈로 콱콱 쏘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대답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르호보암은 이 둘 중에 하나로 답변을 해야 하는데, 노인들의 의견과 젊은 사람들의 의견이 각각입니다. 이 백성의 종이 되어 백성을 섬기며 그들에게 좋은 말로 하라는 것이 노인들의 교도입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백성들의 종이 되는 것이 무슨 왕이겠느냐, 강경하게 나가라, 막대기로 때려야 백성들이 말을 듣지 가만 놓아두면 못쓴다, 그래서 부친 때보다 더 강하게 나가겠다고 대답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삼 일 후에 백성들이 다 모여 왔을 때, 소년들의 말대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본문 12-14절에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왕이 포학한 말로 대답할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더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이 대답을 잘하였습니까? 좋은 방법이 있었는데, 그만 그 좋은 방법을 버리고 경험도 없고 철도 없는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했기 때문에 일이 다 틀어졌습니다. 노인들은 많은 경험이 있습니다. 노인들은 솔로몬 왕 때부터 백성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많은 경험이 있고 백성들을 어떻게 인도해야 할 지 다 알고 가르쳐준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 르호보암 왕이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저 젊은 기분에 강경하게 나가야 된다고 해서 일이 다 틀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가 갈라졌습니다. 

언제나 노인들의 교도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노인들의 교도대로 하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노인들이 가르치는 대로 하는 것이 왜 잘되느냐 하면 좋은 말을 하고 백성들의 종이 돼서 섬기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러 오셨습니다. 종이 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는 예수님께서 종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영광의 권세가 있지만 그 보좌와 권세를 다 내놓으시고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종이 되셨고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종살이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시다가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입니다. 

이것을 젊은 사람들이 배워야 합니다. 특별히 젊은 교육자들이 강단에서 내리 다 죽이면 되는 줄 알고 내리 죽이고, 교인들을 무시하며 나가다가 그만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 교역자들이 나갈 때 내가 이 말을 몇 번 해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이 많은 사람도 교역자로 나갈 때 이 말을 해줬습니다. 르호보암이 젊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강경책으로 나가다가 실패했으니까 노인들의 말을 들어서 백성의 종이 되어 백성을 섬기고 좋은 말을 해주면 되니 이대로 하라고 여러분한테 몇 번을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대로 하는 것이 빠졌습니다. 이것을 전제로 하고 그 다음 방편으로 백성들의 종이 되어 섬기며 좋은 말로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백성의 종이 되셔서 섬기시고 좋은 복음을 전해주셨지만 그 다음에는 죽으시기까지 복종을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백성들의 종이 되셨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섬기시다가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죽으시기까지 복종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 더 있어야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언제나 노인들의 교도를 가르치며 그것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교역자뿐 아니라 교인들도 언제나 종이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고 좋은 말을 해주며 지내야 합니다. 또 하나 빠진 것인 하나님의 말씀을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 그것을 잘 따르면 만사가 잘됩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는 것이 하나 더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마음과 같이 진짜가 됩니다. 

가정에서도 결혼해서 싸우지 않고 잘 사는 법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서로가 종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원리가 같습니다. 예수님을 호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살림살이를 잘 차려서 산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 해가지고 왔다, 나다”라고 하면서 나가면 안 됩니다. 낮아져서 종살이를 해야 합니다. 여자는 보따리를 싸서 그 집의 식모살이로 취직하러 가는 것이고 남자는 그 집의 머슴살이를 하러 간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가서 섬기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호주로 모시고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는 것입니다. 결혼식을 할 때 다른 얘기를 시시하게 할 필요가 없고 이 말을 해주면 됩니다. 섬기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정에서도 이대로 하면 모든 관계가 잘됩니다. 낮아져서 종이 되어 섬기면 잘되는 것입니다. 또 교회에서도 낮아져서 종이 되어 상대를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 선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선한 말이라고 해서 백성들에게 아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원리 원칙에 따라 선한 말을 해야 함

요새 어떤 교역자들은 이것을 잘못 알아서 성도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해줘야 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무엇을 해야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겠는가, 듣기 싫은 말은 안 해줘야 되겠다, 강단에서 백성들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지 말고 듣기 좋은 말만 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책망하는 말은 일절 다 없애고, 회개하라는 말도 다 없애는 것입니다. 그저 잘된다, 복 받는다, 축복해준다, 사랑해준다는 식으로,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좋게만 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강단에서는 죄가 없어지고 밤낮 복만 받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가기만 하면 복을 삼태기처럼 받아옵니다. 또 목사가 한 번 축복해주면 복이 이, 삼십 배가 됩니다. 무슨 복, 무슨 복 하면서 많은 복을 줍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복을 받는가 하면 사실은 못 받습니다. 눈에만 풍성하고 귀에만 풍성한 복이지, 실제로는 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복을 받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하는데 복만 자꾸 말해줄 뿐 받는 법은 얘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 받는 법은 모릅니다. 법대로 해야 되는데 법을 안 가르쳐주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 농사하는 법은 안 가르쳐 주고 ‘농사하면 잘 먹는다, 콩도 먹고 쌀이 나오면 찹쌀로 인절미도 해먹고 팥도 해먹고 고구마도 캐먹고 강냉이도 따먹고 땅콩도 먹는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리 농사를 해서 보리 차를 먹고 호박도 따먹고 오이도 따먹고 고추 먹고 밤낮 먹으니까 풍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농사는 안 합니다. 농사하는 것은 힘드니까 농사하는 것은 안 가르칩니다. 땅 파는 것을 누가 좋아하고 돈 내서 비료 주는 것, 김매는 것, 논에 물을 대는 것, 농약을 치는, 그 냄새 나는 것은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십자가를 지고 힘 드는 일을 피땀 흘리며 해야 농사가 되겠는데 일하는 것은 듣기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냥 먹으라고 하면 좋아합니다. 

우리 기도원에 와서 봉사하는 사람들 중에 좋아서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툴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할 때에 좋아하느냐 하면 사과, 복숭아를 따다 주면 좋아합니다. 수도를 파야 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 기도원에 수도가 전부 17개입니다. 17개도 자꾸 적어서 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목욕물은 그 이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여간 가정이나 국가나 기도원이나 할 것이 없이 다 일을 해야 됩니다.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일을 계속해서 해야만 어느 정도 운영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안하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원리 원칙을 알고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됩니다. 원리 원칙은 노인들의 교도가 원리 원칙입니다. 백성들의 종이 되어 백성을 섬기고 좋은 말을 해주는 것, 듣기 좋은 말을 해서 아부하라는 말이 아니고 적당한 말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경에 맞는 말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백성들이 정신을 차리고, 회개할 바는 회개하고, 자기 의무도 감당할 줄 알며, 또 해야 될 것을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잘된다, 복 받는다는 것은 나쁜 말입니다. 비가 새고 있는데도 잘 된다고 하고 고름이 났는데도 잘된다는 말만 하면 나중에 째고 약을 먹고 치료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안 하고 잘된다고만 하면 선한 말입니까? 선한 말이라는 것은 병이 걸렸으면 침을 맞아라, 약이 써도 먹어라 하는 것이 선한 말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선한 말이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 뜻대로 바로 말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온유하게 오해가 가지 않도록 사랑으로 얘기해줘야 합니다. 강압적으로 한다거나 무자비하게 포악한 말로 하지 말고, 마음이 상하게 하지 말고, 감당하지 못할 것은 아무리 해줄 말이 있어도 조금 이따가 해줘야 합니다. 그 사람이 수술을 해야 할 만 한
병이 걸렸어도 혈압이 높은 사람이거나 너무 저혈압인 사람이거나 건강상 수술할 때에 다른 문제가 생길 염려가 있을 때에는 수술하는 것을 연기해야 합니다. 보신(補身)해서 감당할 만한 정상의 상태일 때 수술을 해야지, 병이 났다고 무조건 째치우면 사람을 많이 죽이게 됩니다. 맹장 수술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혈압을 재지 않고 하다가 그만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말이고 필요한 말이라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람 같으면 자라난 다음에 해줘야 합니다. 

주일에 한 번 교회에 안 나왔다고 강단에서 내리 죽여서 다리가 부러진다고 저주를 하면, 그 사람이 정신을 바짝 차려서 회개하고 바로 설 것 같습니까? 그러면 좋지만 주일날 빠지는 신앙 형편에 회개할 만한 신앙 정도가 되겠습니까? 예배당에 나가면 다리가 부러진다는데 어떻게 나갑니까? 내 다리가 안 부러지려면 다시는 교회에 안 나가야겠다 하면서 안 나옵니다. 또 다리가 부러질지 손이 부러질지 어떻게 압니까? 주일날 안 나와서 다리가 부러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리가 부러졌겠습니까? 공갈 협박인 것입니다. 강단에서 다른 사람을 그렇게 내리치는 것이 아닙니다. 강단에서 그러지 말고 개인적으로 말을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을 정도가 안 되면 조금 두었다가 슬슬 주일날 어디 갔느냐, 주일 잘 지켜야 복 받는다고 듣기 좋게 감동이 되게 권면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언제든지 종이 되어 듣기 좋은 말, 선한 말을 하는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어디서나 원리 원칙,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종이 되는 것, 섬기는 것, 이것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대로 가면 왜 안 되겠습니까? 젊은 사람들이 하라는 것은 강경책으로, 백성들을 탄압하고 강압적으로 해서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리 원칙대로 해야지 강압적으로 한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원리 원칙대로 말해주고 어긋나는 것은 회개시켜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의 의견보다 보통 나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낫습니다. 왜 나은가 하면 사람은 많은 세월을 지나가면서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저렇게 나가다가 망했다고 아는 것입니다. 누가 망한 것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많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순종하면 장수한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장수한다는 것은 가다가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부모를 순종 하지 않고 나가다가는 한계에 도달하여 거꾸러집니다. 부모 순종도 부모가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은 것을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또 선생도 나이가 많지 않습니까? 자기보다 나이 많은 부모나 그 외에 인도해주는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좋습니다. 젊은 생각에, 자기가 생각하기에 잘될 것 같아도 그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다가 망할 때가 많습니다. 될 것 같지만 안 됩니다.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인도하는 사람은 오랫동안 경험을 하고 또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습니까? 원리 원칙대로 인도합니다. 원리 원칙에 어긋나서 일시적으로 잘될 것 같아도 가다가 실패합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장수하지 못합니다. 목회하는 사람도 장수하지 못하고 실패할 것이고 또 사업하는
사람도 장수하지 못하고 실패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노인들의 교도, 원리 원칙인 성경대로 바로 가르쳐주는 것을 잘 쫓아서 하면 실패하지 않고 그 길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을 68세 때부터 만난 것 같습니다. 목회하는 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물어보고 인도받으며 하였는데, 그때 김 목사님의 인도대로 하지 않았다면 100% 실패했을 것입니다. 김 목사님의 인도대로, 무조건 하라는 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 덕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둘째는 김 목사님이 인도해주시는 대로 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별로 된 것은 없지만 이만큼이라도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왜 목회하다가 실패하는가 하면, 윗사람의 인도를 받지 않고 제가 생각하는 대로 나가면 잘될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척 보면 압니다. 인도를 받는 것이 자기에게 유익합니다. 또 가다가 실패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그 일을 유지하고 목회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김 목사님의 목회 방법을 인도 받지 않았으면 벌써 다 쫓겨났을 것이고 몇 십 년 전에 명륜 교회에서도 쫓겨나고 다른 교회에서도 수십 번을 쫓겨났을 것입니다. 인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인도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가다가 문제입니다. 선생이 없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도해줄 사람이 없는 사람이 제일 불쌍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저희들끼리 모여서 하는 것은 경험이 없는 데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나이만 많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의 경험이 풍부하고 성경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오랫동안 여러 경험을 많이 하고 성경말씀을 많이 알고 있으며 원리 원칙대로 바로 가르쳐준 이 노인들은 종이 되어 섬긴 예수님의 정신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 말
씀대로 하는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그래도 한 80점 정도는 됩니다. 말씀대로 끝까지 나가는 것을 했으면 100점이 되었을 텐데 그래도 이 정도도 참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내가 이 성경을 펼쳐놓고 어떤 목사한테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대로만 하면 성공할 것이고, 이대로 못하면 실패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가 그대로 하겠다고 해서 그대로 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목사가 갔는데 2주도 못 되어서 제 마음대로 해치워 결국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분명히 내가 가르쳐주었는데 왜 그대로 하지 않았는지, 그것이 문제입니다. 왜 쫓겨납니까? 

지금도 노인들이 르호보암 왕에게 좋은 의견을 주었지만 왕이 그 의견을 안 따라간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교역자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가정에 가서 첫째는 종이 되고, 둘째는 섬기고, 셋째는 좋은 말만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가 빠졌는데 말씀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잘됩니다. 영감의 집에 가서 영감의 종이 되고, 영감이 좋아하는 대로 잘 섬기고, 좋은 말을 해줘야 합니다. 잘 위로해 주고 좋게 해줘서 성경말씀도 말해주는 것입니다. 자기부터 먼저 성경대로 하면서 그렇게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기도원에 갔다 오면 사람이 좋아지니까 “기도원 갔다 왔더니 이 할머니가 좋아졌다, 나도 늘 가야겠다”고 하면서 미리 보따리 싸놓고 언제 갈까 하면서 기다립니다. 남자들도 집에 가서 할머니의 종이 되고, 잘 섬기고, 좋은 말을 해주고, 하나님 말씀대로 자기부터 먼저 지키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모든 형편이 좋아집니다. 틀림없이 잘됩니다. 아이들도 부모에게 이렇게 해야 합니다. 교회도 잘되는 법, 가정도 잘되는 법을 따라가야 합니다. 국가도 대통령을 이렇게 나가는 사람으로 찍어줘야 합니다. 호통치고 자기 자랑하는 사람을 찍어줄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백성들의 종이 되어 백성들을 잘 섬기며, 누가 백성들을 위로해
주며, 좋은 길로 인도하겠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세상 나라 사람들 중에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있으니까 누가 원리 원칙대로 잘 하겠느냐 이것을 봐서 찍어줘야 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나라가 잘되고 백성을 잘 살게 만들고 또 공산당을 잘 막고 경제부흥하게 만들어주겠는가, 이렇게 하려는 사람을 찍어줘야 합니다. 잘한다고 떠들기만 하는 사람은 믿을 수 없습니다. 

본문 13-15절에 “왕이 포학한 말로 대답할세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더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하리라 하니라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포악한 말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분열의 원인

열왕기상 11장 29-32절에 “그 즈음에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저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 아히야가 그 입은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에 찢고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취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뺀 성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벌써 전에 아히야에게 예언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열 지파를 찢어서 여로보암한테 주고 솔로몬의 아들은 두 지파만 다스리게 하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열 지파를 찢어서 다른 사람에게 주시겠다고 했느냐면 먼저 솔로몬의 죄 지은 것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어떤 죄를 지었습니까? 열왕기상 11장 3절에 “왕은 후비가 칠백 인이요 빈장이 삼백 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갈라지게 된 원인은 솔로몬의 죄 때문인데, 솔로몬이 늙었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변하여 타락이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33절에 “이는 저희가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숭배하며 그 아비 다윗의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치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나의 법도와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이렇게 갈라지게 된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갈라져서 북쪽 이스라엘, 남쪽 유다로 나누어지게 됐는데, 첫째 원인은 솔로몬 왕이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전에 두 번씩이나 솔로몬 왕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해주셨지만 솔로몬 왕이 늙었을 때에 왕비들을 여러 나라에서 많이 들여서 향락주의로 나가며 타락이 되었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왕비들이 시키는 대로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히야를 보내셔서 나라를 찢어 열 지파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네 아들은 두 지파만 가지고 나라를 세운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언해놓으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둘째 원인은 르호보암 왕이 노인들의 교도를 버리고 젊은 사람들의 교도를 좇아서 포악한 말로 강압적으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패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갈라졌습니다.

3. 이스라엘 열 지파가 르호보암 왕을 배반함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의 분국 - 세 가지 원인

본문 16-19절에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너희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온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 왕이 되었더라 르호보암 왕이 역군의 감독 하도람을 보내었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저를 돌로 쳐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고 하였습니다. 열 지파가 그만 다윗의 집을 배반해서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나라가 분열한 셋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셋째 원인은 여로보암이 와서 충동한데 있는 것 같습니다. 

자, 이스라엘 나라가 남, 북으로 분열된 원인을 세 가지로 합시다. 첫째는 솔로몬 왕이 우상을 섬긴 것, 둘째는 르호보암 왕이 노인들의 교도를 버리고 젊은 사람들의 교도를 좇아가서 포악한 말로 하고 너희 멍에를 무겁게 하겠다고 한 것, 셋째는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이 와서
백성을 충동시킨 것입니다. 

지금 여로보암의 충동에 모든 백성들이 다 넘어간 것 같습니다. 멍에를 가볍게 하라는 안도 누가 낸 것 같습니까? 그 안 자체도 여로보암이 낸 것 같습니다. 그가 애굽으로 피난을 갔다 와서 백성들의 두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충동을 시켜서 우리가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하자며 요구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뭘 압니까? 여로보암이 우리가 얼마나 수고했느냐, 솔로몬 왕 때 멍에를 무겁게 했는데 가볍게 하자며 나갈 때에 백성들이 들어보니 다 좋은 것입니다. 멍에를 가볍게 하고, 세금을 적게 하자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모르고 다 따라간 것입니다. 이렇게 충동하는 사람이 있으면 백성들은 모르고 따라갑니다. 

아무튼 이 세 가지 원인 때문에 남북이 갈라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일 여로보암이 애굽에서 안 왔다면 이런 안건도 없었을 것입니다. 안건도 낼만한 자격이 있어야 내는 것이고 또 통솔력이 있어야 다 따라오는 것인데, 여로보암이 그런 자격이 되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하여간 이러한 원인들 때문에 북쪽 열 지파가 한 나라로 따로 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을 배반하고 찢어져 나갔습니다. 열 지파가 북쪽으로 찢어져 나가 나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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