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5일 수요일

에스라 10:1-4 소망 있는 생활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소망 있는 생활
에스라 10:1-4

1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
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2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
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
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3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
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4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
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1. 에스라가 통회할 때에 많은 백성들이 동조함

지도자 에스라가 통회할 때에 백성들도 함께 통곡함

본문 1절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고 하였습니다. 

큰 통회가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에스라가 죄를 원통히 여기면서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아 있다가 그 다음 에스라
9장에서 죄를 자복했습니다. 모든 죄를 낱낱이 들어 기도한 것입니다.
그 죄로 인해 하나님께 심히 통곡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에 많은 사람들이 그 죄로 인해서 함께 통곡하였습니다. 통회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통회 운동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오게 됩
니다. 에스라가 회개를 하니까 모든 백성이 같이 와서 심히 통곡하였
습니다. 한 사람이 회개를 하면 또 다른 사람이 와서 회개합니다. 지도
자 에스라가 회개를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하였습니다. 지도자
가 기도하니까 많은 사람이 기도하고, 지도자가 통회하니까 많은 사람
이 통회하였습니다. 

사무엘 때에도 통회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사무엘상 7장 3-6절에 “사
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
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
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
죄하였나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
에 금식을 하며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큰 회개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운
동을 한 것입니다. 모든 이방 신을 다 버리고 마음을 여호와께로만 향
하였습니다. 물을 가져다 붓고 금식하며 큰 통회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언제나 죄를 원통히 여기면서 통회 운동이 일어나고 회개 운동이 일어
나면 하나님의 생명 역사가 그곳에 임하게 됩니다.

인도자가 죄에 대해 통곡할 때에 동조하는 사람이 생김

교회는 이렇게 회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모
든 죄를 회개하면서 바로 서려고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회개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교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회개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하면 그 교회는 냉랭하고 쌀쌀
하며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성전을 떠나지 않고 늘 하
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역자들이 처음에 개척 교회를 할 때에 성전을 떠나지 않고 늘 성
전에 뭉개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 교인들도 그것을 본받아서 뭉개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큰 은혜가 넘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거기에
오는 사람들이 심령이 다 녹아져 변화되고 새로운 성령의 역사가 있게
됩니다. 처음에 개척 교회할 때나 교회를 맡을 때에는 이렇게 예배당
에 가서 몇 년 동안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예배당에 가서 일심전력으
로 일을 하면 교인들도 따라옵니다. 통회하면 교인들도 통회합니다. 인
도하는 사람이 일심전력을 다해서 기도를 하면 교인들도 많이 와서 기
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도하는 사람이 기도를 하지 않으면 교인
들도 안 합니다. 통회할 때에는 통회하는 사람이 모여오고, 회개할 때
는 회개하는 사람이 모여옵니다. 기도할 때는 기도하는 사람이 모여오
게 되어 있습니다. 변화 산에는 모세와 엘리야 즉, 변화된 사람들이 모
여왔습니다. 그러니까 유유상종(類類相從)인 것입니다. 같은 사람들이
모여옵니다. 회개할 때에는 회개하는 사람이 모여오게 마련입니다. 그
러므로 교회는 회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야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역사가 있게 됩니다. 

또 성경말씀으로 인해 벌벌 떠는 사람이 있어야 성경말씀으로 떠는사람이 생깁니다. 에스라 9장 4절에 “이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 이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인하여 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벌벌 떨 때에 그 말씀으로 인하여 떠는 자가 왔습니다. 말씀으로 인해서 떠는 믿음을 보고 같이 떨었던 것입니다. 에스라가 말씀으로 인해 떠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떠는 자가 모여왔고, 에스라가 통회하니까 통회하는 사람들이 모여왔고, 자복하니까 자복하는 사람이 모여왔습니다. 또 에스라가 기도하니까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여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씀으로 인해
떠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과거에는 에스라가 말씀으로 인해 떨지 않았습니다. 에스라가 이렇게
말씀으로 벌벌 떨며 기가 막혀 앉아 있기 전까지는 그저 말씀을 어기
고 보통으로 나간 것입니다. 어느 정도 가책은 받았겠지만 말씀으로
인해 떨지도 않고 죄를 통한히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에스라가
말씀으로 인해서 떠니까 떠는 사람들이 생겼고, 죄를 통한히 여기니까
또 죄를 통한히 여기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통곡을 하니까 또 통곡
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우리도 죄의 값이 사망인 줄 알고 통회하는
사람들이 되고 그런 교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엎드려 울면서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죄를 자복하고 심히 통곡한 것입니다. 죄에 대해 이만큼
통한이 여기는 마음, 백성들의 죄를 자기의 죄처럼 여기어, 공동 책임
을 지고 심히 통곡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특별히 인
도자가 죄에 대해서 이만큼 통한이 여기고 죄를 원통히 생각하며 나가
면 동조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많은 백성이 같이 통곡하면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2. 범죄 처리에 대한 스가냐의 제안

스가냐는 오히려 소망 있음을 말함

또 좋은 의견을 제출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스가냐라는 사람이 와
서 ‘우리가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오히려 소망이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본문 2-3절에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
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
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
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소망이 있습니다. 언제까지 소망이 있느냐하면 그 일이 끝나기까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까지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범죄하고 일이 다 틀어져서 반드시 하나님께 벌을 받아야 마땅해도, 심판이 임하기 전까지는 오히려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소망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소망이 없는 것 같아도 소망이 있습니다. 다 죽게 되어도 소망이 있습니다. 저주를 받은 것 같아도 오히려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다 죽을 것 같아도 오히려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순종만 하면 소망이 생김

나사로는 죽은 뒤로 나흘이 지났지만 살아났습니다. 소망이 있었습니
다. 어떻게 소망이 있겠습니까? ‘내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고 하였습니다. 믿으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안 풀어졌어도 믿으면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40-41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죽은지 나흘이 되었지만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어떻게 하면 소망이 있습니까? 돌을 옮겨놓으면 소망이 있
습니다. 믿으면 소망이 있고 돌을 옮겨놓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아무리
죽어서 장사지내고 나흘이 지났어도 돌을 옮겨놓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돌을 옮겨놓는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순종하
면 다 틀어지고 깨진 것 같아도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질그릇같이
희망이 아주 없어도 믿으면 오히려 소망이 있고 돌을 옮겨놓으면 소망
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순종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
로 바로 순종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바로 순종할 수 있습니까? 나사로의 무덤에 와
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까? 돌을 옮겨놓는 것이 바
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옮겨놓으라고 하셨으면, 옮겨놓는
것이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뭐라고 하였습니까?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기 때문에 썩어서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옮
겨놓아도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냄새가 나는데 옮겨놓아야 뭐하겠느냐
는 것입니다. 그러나 옮겨놓으면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옮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하는 것이 돌을 옮겨놓는
것입니까? 이방 여자를 내보내야만 돌을 옮겨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희망이 있습니다. 죄는 회개해야 소망이 있습니다. 끊어버리고 회개해야 소망이 있습니다.

또 떡 5개, 물고기 2마리는 어떻게 해야만 소망이 있습니까? 다 갖다
바치면 소망이 있습니다. 한 사람 점심밖에 안 되고, 떡도 보리떡으로
좋은 떡이 아닙니다. 물고기는 큰 물고기도 아닌데다가 달랑 2마리였
습니다. 조그마한 멸치나 꽁치새끼 같은 것입니다. 떡 5개는 반찬으로 먹으려고 가져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이것을 가지고 남자만 5천명인 사람들이 먹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소망이 있습니까? 떡 5개, 물고기 2마리를 바치면 오히려 소망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까?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야 오히려 소망이 있습니다. 떠날 것은
떠나야 소망이 있습니다. 떠날 것을 떠나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야 소망이 있습니까? 독자를 바쳐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바로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요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바로 하는 것입니까?
니느웨로 가야 소망이 있습니다. 다시스로 가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니느웨로 가야 오히려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나니’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또 죄는 회개하면서 끊어버려야 소망이 있습니다. 끊어버리면 사는데
왜 끊어버리지 않습니까? 끊어버리면 됩니다. 떠날 것은 떠나고 죄를
회개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바칠 것은 바쳐야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베드로와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소망이 있습니까? 다 집어
치우고, 하던 일을 버리고 따라가면 소망이 있습니다. 다 버리고 예수
님을 따라가면 오히려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독사를 잡아라, 손으로 뱀의 꼬리를 잡아라,
뱀을 잡으면 지팡이가 된다’라고 하셨는데, 독사를 잡아야 소망이 있습
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어 모세를 물려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망
쳐야 합니까? 뱀을 때려 죽여야 합니까? 도망을 치면 소망이 있습니
까? 도망을 치면 뱀이 어떻게 됩니까? 사람보다 빨리 따라와서 뭅니다.
때려죽이려고 하면 와서 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소망이
있습니까? 꼬리를 잡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또 뱀도 소망이 있습니다.
꼬리를 잡으니까 뱀이 지팡이가 되었는데 오히려 그 지팡이가 나중에
홍해를 가르는 큰 유익을 주게 됩니다. 뱀을 때려 죽였으면 홍해를 무엇으로 건너겠습니까? 또 반석을 치라고 하셨는데, 뱀을 때려 죽여서 생긴 지팡이 없었으면 무엇을 가지고 반석을 치겠습니까? 지팡이가 필요합니다. 뱀도 하나님께 바로 순종하면 지팡이가 되어서 홍해도 건너고 반석에서 물도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잘하면 오히려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뱀과 매일 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팡이를 잡고 꼬리를 잡
으면 되는데, 왜 싸웁니까? 뱀하고는 싸울 바가 못 됩니다. 뱀하고 싸
워야 싸움이 됩니까? 사람끼리 싸움이 되지, 뱀하고 사람하고 어떻게
통할 수 있습니까? 대화가 안 됩니다. 뱀도 말합니까? 창세기 3장에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뱀이 말을 못하는 줄 알면 안 됩니다. 뱀도 말하
기는 하는데 쓰지 못할 말만 합니다. 우리가 뱀하고 말할 필요는 없습
니다. 답변이나 해주고 성경말씀대로만 말해주면 됩니다. 뱀이 아담에
게 “동산의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라고 할 때에 아담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다 먹지 말라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이냐, 말을 왜
그렇게 하느냐,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
니까 뱀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아담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무슨 눈이 밝아지느냐,
마귀가 들어간 모양이다’라고 하며 뱀을 책망하고 말씀만 붙들고 나갔
다면, 그 뱀이 꼼짝 못하고 항복을 하여 아담의 종이 될 뻔 했습니다.
그런데 뱀하고 대화를 하다가 미혹을 받아서 막대한 손해를 보았습니
다. 성경말씀을 확실히 붙잡고 나가지 못할 때에는 마귀에게 걸려들어
서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확실히 붙들고 나갈 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꼬리를 잡으라고 하실 때에는 꼬리를 잡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면 뱀이 지팡이가 됩니다. 그 지팡이가 무엇에 쓰였습니까?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내는 데에 쓰였습니다. 반석에서는 물을 두번 냈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반석을 치라고 하셨고 두 번째는 호렙산 기슭, 시내 광야에서 물을 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나와서 얼마 후에 물을 냈습니까? 출애굽기 17장 6절에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하고 2개월 후에 시내 광야, 호렙산 반석에서 물을 나게 만드신 것입니다.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경험대로 나가면 소망이 없음

처음에는 쳐서 물을 냈고 40년이 지난 다음 가데스바네아에서는 하
나님께서 “반석에서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민수기 20장 8절
에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
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
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찌니라 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
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반석에서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지
팡이를 두 번 쳐서 물을 냈습니다. 이것은 말씀대로 한 것입니까? 말
씀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해주신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막대기로 쳤겠습니까? 40년 전에 친 경험이 있으니까 이번
에도 치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경험이 좋은 면도 있지만, 모든 일을 경험으로 하려고 하면 이렇게
됩니다. 과거의 경험만 쓰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인도
를 받아야 합니다. 교역자들은 보통 처음에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어떻
게 하든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애를 쓰는데, 여러 해가 지나면
애도 쓰지 않고 전에 했던 경험을 가지고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
에 반석을 쳐서 물을 냈으니까 이번에도 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의 경험으로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힘을 새롭게 쓰고 나무를 새로이 가져다 하나님의 역사를 새로이 따라가고 새 생명의 길로 걸어가려고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전의 경험으로 하려고만 하면 결과는 다 틀어집니다. 그렇게 때문에 날마다 새로운 세계를 발
견하고 새로운 힘을 써서 새 생명의 길을 걸으려고 해야 합니다.

이전에 했던 경험만 가지고 하려고 하면 그 교역자는 희망이 없습니
다. 어떤 교역자가 희망이 없습니까? ‘오랜 경험이 전에 있으니 이번에
도 치면 되는가 보다’하는 교역자는 힘이 없습니다. 전에는 쳐서 됐지
만 이번에는 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번에는 명하라고만 하셨는데, 치긴 왜 칩니까? 무조건 생명을 내놓고
들어서야 갈라지지, 전에 했던 데로 막대기를 백 번 친 들 되지 않습
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 강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새 사람이 되고 시온 산에도 새롭게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을 날마다 바로 깨닫고 그 인도대로 바로 순종하면 소망이 있고, 바로
순종하지 못하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면 뱀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뱀은 꼬리를 잡아야 합니다. 모세
를 물려고 마주 오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미워해서도 안 되고 마
주해도 안 됩니다. 도망을 쳐도 안 됩니다. 그리고 죽여도 안 됩니다.
되는 방법은 꼬리 잡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뱀의 꼬리를 잡으려면 힘
이 듭니다. 뱀을 잡으려면 꺼림칙한데, 누가 뱀 잡기를 좋아하겠습니
까? 뱀은 독이 있는데 잡다가 잘못 잡으면 일이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실 때에는 잡아야 합니다.
두려워할 것 없이 가서 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뱀의 꼬리
를 잡도록 만들어놓으셨기 때문에 잡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잡지
못하게 하시고 잡으라고 하실 리가 없습니다.

뱀은 갑자기 몸을 꼬지 못합니다. 보통 꼬리를 잡으면 쑥 돌아서 물 것 같지만 갑자기 돌이키지를 못합니다. 곧은 데는 잘 가지만 커브 도는 것은 잘못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뱀을 만날 때에는 곧장 뛰면 잡히는 것입니다. 꼬불꼬불하게 뛰면 뱀이 못 잡습니다. 한 번 돌이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모양입니다. 뱀은 앞만 보고 옆은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잡게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뱀이 커브를 빨리 돌지
못하고 앞만 보고 옆과 뒤는 보지 못하니까 뒤에서 꼬리를 잡으면 됩
니다. 하여간 방법이 다 있습니다. 안 물릴 방법을 하나님께서 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방법을 쓰지 않고, 몰아서 돌아다닙니까? 물
릴까봐 두려워서 꼬리를 못 잡는 사람, 꼬리를 잡아도 방법을 몰라서
물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흔들고 돌리는 것을 잘못해서 물리면
안 됩니다. 꼬리를 잘 잡아야 합니다. 

오늘 왜 이렇게 뱀 이야기를 오래 하느냐하면, 사람들 속에도 마귀가
들어가면 이와 같이 되기 때문입니다. 뱀 속에 마귀가 들어간 것이나
사람 속에 마귀가 들어간 것이나 비슷합니다. 독사와 같이 물려고 빡
빡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때는 마주 가서 싸우면 물립니다. 뒤로
가서 꼬리를 잡아야 합니다. 꼬리를 잡으면 뱀이 지팡이가 되는 것입
니다. 그리고 지팡이가 되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홍해도
가를 수 있고 반석에서 물도 낼 수 있습니다. 필요하게 사용할 수 있
는데, 꼬리는 안 잡고 마귀 역사만 자꾸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꼬리를 잡아놓으면 마귀 역사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역사만 있게 됩니다. 일시적으로 마귀의 종노릇을 하던 사람도 꼬리만
잡아놓으면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말씀대로만 바로 순종하면 오히려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소망이 있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독사가 되고 마귀가 되고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어도 하나님께 바로 순종만하면 오히려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을 바로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죄는 무자비하게 무조건 끊어버리고,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은 떠나고, 그 다음 물을 막았던 돌은 옮겨 놓고, 뱀은 꼬리를 잡고, 떡 5개 물고기 2마리를 바치면 오히려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또 니느웨로 가라고 하실 때에는 니느웨로 가고, 바벨론으로 돌아오라고 하실 때에는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오히려 소망이 있습니다. 어떠한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소망이
있기 때문에 순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고 할 때에는 떠나야 않아야 소망이 있기 때문에, 떠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소망이 있으니까 소망을 놓지 말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바
로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대로 취하지 않은 세상 것을 버려야 소망이 있음

본문 3-4절을 다시 읽으면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
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
서”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소망이 있습니까? 모든 아내와 그 소
생을 다 보내기로 작정할 때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취하지 않은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어기고 취한 것을 다 내
보내야만 소망이 있습니다. 이방 여자를 두면 소망이 없습니다. 아무리
회개를 하였다고 해도 이방 여자를 그냥 두면 소망이 없고 내보내야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도 이방 여자를 내보내야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방 여자가 누구입니까? 세상의 딸들입니다. 세상의 딸들이
우리 가정이나 속에 들어온 것을 보면 내보내야 합니다. 이방 여자는
왜 데려왔습니까? 육신의 정욕대로 데려온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
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
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속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돈이나 명예나 권세 등 욕심으로 취한 것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세상의 것을 속에 끌어들이고, 가정에 끌어들인 것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다 이방 여자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2절에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
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
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음녀는 땅의 임금들과 더불어 음행을 했
다고 하였습니다. 음행을 했다는 것은 세상과 더불어 짝했다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모든 것들을 철저히
끊어버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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