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의 회개 기도
에스라 9:7-15
7우리의 열조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열방 왕들의 손에 붙이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 같으니이다 8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간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로 종 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성하게 하셨나이다 9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복역하는 중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바사 열왕 앞에서 우리로 긍휼히 여김을 입고 소성하여 우리 하나님의 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을 주셨나이다 10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배반하였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11전에 주께서 주의 종선지자들로 명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12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저희 딸을 너희 아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강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유전하여 영원한 기업을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13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경하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14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일을 행하는 족속들과 연혼하오리이까 그리하오면 주께서 어찌 진노하사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하시지아니하시리이까 15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에스라 9:7-15
7우리의 열조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열방 왕들의 손에 붙이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 같으니이다 8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간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로 종 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성하게 하셨나이다 9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복역하는 중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바사 열왕 앞에서 우리로 긍휼히 여김을 입고 소성하여 우리 하나님의 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을 주셨나이다 10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배반하였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11전에 주께서 주의 종선지자들로 명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12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저희 딸을 너희 아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강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유전하여 영원한 기업을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13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경하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14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일을 행하는 족속들과 연혼하오리이까 그리하오면 주께서 어찌 진노하사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하시지아니하시리이까 15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1. 에스라의 자복 기도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망하게 된 가운데에서 살 길을 열어주심
본문 7-8절에 “우리의 열조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열방 왕들의 손에 붙이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 같으니이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간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로 종 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성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전부 망하는 가운데 빠졌는데, 하나님께서 잠깐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처소에 단단하게 박힌 못과 같이 우리 눈을 밝히시고 신령한 눈을 뜨게 만드시며, 종 노릇하는 데에서 돌아오게 만드셔서 조금 소성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게 만들어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해주시고, 영적 성소를 건축하게 만들어주시고, 심령을소성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죄를 범하면 다 망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서 건져주심으로 살 길을 조금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는눈을 밝혀 주시고, 귀가 열리게 만들어주시고, 죄와 마귀에서 해방을 받아 자유롭게 해주셨습니다. 영의 자유, 영의 생명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영을 소생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것에 대해 원통히 여김
본문 10-11절에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계명을 배반하였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로 명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살 길을 열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이방 백성들로 더불어 가증한 일을 행하고, 이방 여자와 더불어 혼인하는 일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염치없는 일입니까? 육신의 정욕대로 기울어지고, 안목의 정욕대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께서 좋게 해주셨음에도 결국 이런 죄를 범한 것에 대해 원통히 생각하였습니다.
본문 12절에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저희 딸을 너희 아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강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유전하여 영원한 기업을 삼게 되리라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자녀와 여자를 저희 아들에게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너희 아들을 위해서 저희 딸을 데려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3-16절 상반절에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
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자와 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믿지 않는 자와 혼사를 하려고 합니까? 또 믿는 사람들끼리도 결혼하기 전에 사귀며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남녀가 사귀고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결혼하려고 정혼을 했으면 빨리 결혼을 해야 합니다. 데리고 돌아다니면 죄만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해야지, 바로 하지 못하면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또 이방 사람과 타협하지 말고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나와 그곳과 구별될 수 있도록 따로 있어야 합니다. 죄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풍속 습관을 따라가지 말고 구별된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를 어기는 사람과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성경을 어기는 교회는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대로만 나가야 합니다. 성경을 어기는 교회는 속화된 교회입니다. 성경대로 나가지 못하는 교회는 속화된 교회이므로 타협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나가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 생활을 바로 할 수 있고 자기 영이 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스라엘을건설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가 다시 돌아오게 하신 목적은 참된 이스라엘, 신령한 이스라엘을 세우시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포로 생활을 하다가 돌아왔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타협을 하게 되면 또 다시 포로로 잡혀가게됩니다. 그러면 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망하지 않으려면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용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는 독사처럼 여겨야 합니다. 나아가 독사보다도 무서운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사자보다도 무서운 것이고 독약과 같은 것입니다. 죄는 죽이는 것입니다. 사망인 것입니다. 따라서 죄와 섞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 그대로만 지켜야지, 절반씩 타협해놓으면 아무리 잘되는 것 같아도 결과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타협하면 안 되고 악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쌓으면 피할 길이 없음을 자복함
본문 13-14절에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경하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일을 행하는 족속들과 연혼하오리이까 그리하오면 주께서 어찌 진노하사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경하게 해주시고 백성들을 이만큼 남겨 두셨다는 것입니다. 좋은 신앙 생활과 좋은 진리의 세계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죄를 지어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가증한 일을 행하며, 이방 사람과 연혼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진노를 쌓으면, 어찌 멸망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주의 멸망을 피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멸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복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감히 한 사람도 설 수 없음을 자복함
본문 15절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는 의롭도소이다’라는 것은 우리가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의를 인해서 받은 것이고, 돌려보내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의로우신 은혜로 말미암아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주셨는데도 범죄를 했으니 이제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주 앞에 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에스라 10장 11-12절에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회 무리가 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방 여자들을 다 쫒아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 여자를 아내로 데려와서 아이도 낳고 오랫동안 살았는데 쫒아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냥 두면 안 되고 아예 쫒아내야 합니다. 자기 아내나 자녀를 사랑했어도, 성경에 위반되는 것은 다 쫓아버려야 합니다. 성경에 위반되는 사항을 가진 사람을 집에 데려다놓았으면 어서 쫓아내야 합니다.
에스라 때의 회개 운동이 참으로 산 운동이고 생명 있는 운동이고 힘 있는 운동입니다. 이래야 참 이스라엘이 건설됩니다. 이렇게 해야 죄가 다 물러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될 수 있고 정화되어서, 참된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성경에 어긋나는 것을 다 잘라버려야 합니다. 다 끊어버리고, 말씀대로 세우는 교회로 자라난다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사는 것임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열조의 죄로 말미암아 다 망했을 사람들입니다. 일제 때 다 망했고, 6.25 사변때 다 망했습니다. 이북은 아직도 교회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가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안다고 해도 신령한 영적 세계를 모르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신령한 눈을 조금 뜨게 만들어주시고, 영의 자유를 누리게 만들어주시고, 영혼을 조금 소성하게 만들어주 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복역하는 중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바사 열왕 앞에서 우리로 긍휼히 여김을 입고 소성하여 우리 하나님의 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을 주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울이 무엇입니까? 살 수 있는 곳, 안식처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살만한 곳에서 살 수 있게 만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장소에서 살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살리시고 살 곳을 마련해주셨습니다. ‘내가 여기 있는 곳이 좋사오니’라고 할 수 있는 곳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다 퇴락하고 멸망하는 가운데서 성전을 짓게 만들어주시고, 우리의 영이 안식을 누리면서 살만한 곳을 발견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은혜인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생명의 골짜기로 인도해주신 것입니다. 종살이를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주시고, 소경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귀머거리에게 귀를 열리게 해주시며, 마른 나무로 하여금 꽃을 피우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죽을 생명을 소성하게 만들어주셨는데 얼마나 감격이 넘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몸을 바쳐 더욱 충성해야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인본주의를 사용하지 말아야 함
주의 계명을 어기고 죄를 짓다가 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역자들도 주의 계명을 범하고 죄를 짓다가 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를 지으면 망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죽은 사람도 많고 비참하게 된 사람도 많습니다.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악을 행하면 쫒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망하고, 의인은 사자와 같이 담대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의에 서야 합니다. 양심을 똑바로 쓰고 죄를 용납하지 말며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해나가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인본주의를 쓰지 말고, 세상 것을 용납하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 세상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유년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슬라이드 영화도 보여주고, 무용도 하는데 그것이 옳습니까? 요새 교회에서 성경에 있는 내용으로 삼손과 드릴라, 모세의 십계명, 예수님의 일대기, 또 쿼바디스 등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을 영화화할 때 영화를 성경대로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거짓말로 꾸며서 양념을 좀 넣고 만든다는 것입니다. 고춧가루도 치고, 조미료도 넣어야 맛이 있으니까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가 연애를 했다고 나온다니,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이것은 지금 기독교를 몰락시키려고 하는 마귀의 역사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예수님의 사진이 예수인 줄 알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예수님을 인식하면 신령한 세계에 들어갈 때 그 사진이 큰 방해물이 됩니다. 그림으로 보면 빨리 인식되지만 거기까지밖에는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 배후의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데 큰 장벽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신령한 신앙세계에 제일 큰 방해물입니다. 성경을 영화로 만들어놓은 것은 절대로 보면 안 됩니다. 성경 영화를 보면 그것이 사실인 줄 알아 그 생각이 자꾸 나고 나중에는 옳은 줄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그런 영화를 상영해서도 안 되고 슬라이드를 상영해서도 안 됩니다.
성경 내용도 이야기로 재미나게 꾸며서 만들어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도 성경을 가감한 것입니다. 성경 동화를 하나 예로 들자면, 어떤 성경 동화에서는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갔다 나온 때가 다리오 왕 때라고 알려줍니다.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렸고 그 다음 다리오 왕이 고레스에게 말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레스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다니엘이 가서 이사야서를 읽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고레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레스가 그 말을 듣고 유다 백성을 포로로 돌려보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 성경이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딱딱 맞아 떨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되었습니다. 성경에 다리오라는 사람이 세 명인데, 고레스의 장인 다리오, 손자 다리오, 그리고 또 다리오가 나옵니다. 그런데 추측해서 성경말씀이라고 하면서, 가설을 사실인 것처럼 만든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감동을 시켰다고 했는데, 감동시킨 것은 다 빼버리고 인간의 생각을 살로 붙여서 꾸며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기준으로 잘못된 것을 회개하고, 성경대로 믿고, 성경을 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한 것은 다 끊어버리고 인본주의를 떠나야 합니다. 인본주의를 용납하면 안 됩니다. 교회 안에 세상주의가 들어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주의를 끊어버려야 하나님께서 같이 하십니다. 교회에 육체주의, 세상주의가 들어오면 교회가 안 됩니다. 신비주의는 영적 운동 같지만 육신의 감정 운동입니다. 육신의 감정으로 느껴지는 것을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하나님의 지시인 줄 알고 나가기 때문에 나중에는 다 망하고 맙니다. 망하는 길은 감정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비주의로 나가지 말고 성경말씀대로만 나가야 합니다. 신비주의로 기도하는 사람은 무엇을 보기도 하고, 음성도 듣고, 무슨 지시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러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을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래라 저래라’고 하셨다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을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줄로 알고 하다가 그만 실패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주권과 감동으로 쓰여진 것을 알아야 함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감동은 다 무시하고 동화로 각색하여 들려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 그대로 알려줘야 합니다. 알아듣지 못해도 그대로 해야 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성경말씀에 나오면 그대로 가르쳐줘야 합니다. 회개가 뭔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또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을 몰라도 괜찮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가 자기 집에 가서 아버지 보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했답니다. 아버지가 깜짝 놀라서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니까 교회에서 배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자기 부인보고 물어보니까 설명을 잘해주더랍니다. 다음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아버지가 회개할 것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이 어디 있는지 내가 믿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감동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말씀 그대로 하지 않고 다 편집을 시켜서 듣기 좋게 양념을 가미해서 가르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경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지금은 몰라도 크면 다 알게 됩니다. 찬송가도 이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꽃이 피는 동산에 나비가 날아오고’라고 부르면 뭐합니까? 하늘나라에 가는데 무슨 나비가 필요합니까?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내 평생소원 이것 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께로 가리라’고 이 한 마디만 부르며 알아도 본전은 다 뺀 것입니다. 다른 것 백 자를 알아도 구속의 도리가 깊이 들어가 있지 못하고, 생명을 살리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말씀 한 마디가 잘못 가르치는 동요나 동화 백 자보다 낫습니다. 그러므로 찬송가는 찬송가 그대로 불러주고, 성경도 그대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켜서 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그대로 가르쳐주면 아이들은 성경 그대로 하려고 합니다. 또 거짓 동화로 알려주면 그대로 알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거짓 이야기를 가르쳐주면 무슨 생명이 있겠습니까? 교회는 성경을 배우러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감동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동화나 연극이나 하고, 음식이나 사다 먹고, 구경이나 하고 돌아다니면 유년 시절에는 교회에 나와도 유년부를 졸업하면 교회에 안 나옵니다. 그러다가 중, 고등부가 되면 점점 다 떨어져서 대학교에 가면 아예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도 졸업 맞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믿음이 들어가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처녀가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부르시더랍니다. 왜 부르시느냐고 하니까 산에 올라가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산에 올라 갔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안 가겠느냐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프다니까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아랫집에 내려가서 밥을 먹으라고 해서 그 밤에 남의 집에 가서 몰래 훔쳐 먹었답니다. 그 다음에 또 산으로 올라가라고 해서 또 올라갔답니다. 한참동안 밤새 돌아다니는데 이제 서울로 가라고 했답니다. 자기는 대구에 살아서 서울을 모른다고 하니까 서울에 가서 식모살이를 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그때 대구에서 사경회를 인도하던 중이었는데 그 처녀가 나를 찾아와서 이 이야기를 하며 서울에 식모살이 할 곳을 인도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니, 자기는 분명히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네가 느껴지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주의
다. 느껴지는 것이 감정이니 그 감정에 따라가지 말고 성경을 따라가라. 그것을 따라가면 안 된다. 마귀의 역사니까 절대 따라가지 말고 성경만 따라가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길래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집에 가서는 산에도 가지 말고, 서울도 가지 말고, 잘못 가르치는 교회에 나가지 말고 바로 가르치는 교회에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시더랍니다. ‘예’하고 대답하자 오늘은 빨래를 하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양말, 버선 저고리를 다 담아가지고 대문간으로 나갔는데 이제는 그만두라고 그러시더랍니다. 그래서 대문간에 나가다가 그만두고 들어왔답니다. 하나님께서 양말을 빨라고 하셨다면서 왜 다시 그만 두라고 하시겠습니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기분만 조금 바뀌어도 싹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정주의로 나가지 말고 성경말씀대로만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꿈을 꾼 것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얼마 전에 자기가 천당을 다녀왔답니다. 자기가 공중에 가뿐하게 들려서 올라가는데 여간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결에 ‘깨면 안 되겠다. 깨면 안 되겠다’하고 올라가는데 숨이 확 돌아와서 깨어났다는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은 천당 간 것이 아니니까 믿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용문산에서 성령 운동만 40년을 했다는 목사가 입 하나만 가지고 맨손으로 이북을 통일하겠다고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북으로 갔다가 망신만 당하고 돌아왔습니다. 국가에 손해만 주고, 경찰력만 소모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노라고 하면서 이렇게 나가다가는 결과가 뻔합니다. 통일이 되었습니까?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버지께서 정해놓으신 때가 있는데, 정해놓으신 연월일시에 가야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그때까지는 아무리해도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가면 그때에는 되게 해주십니다. 그때가 언제인 줄은 우리가 모릅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은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니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것을 기다리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열어주시는 대로 순종하면 모든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열어주시면 거기에 가서 전하면 됩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또 사마리아에 가면 사마리아의 증인, 유다 나라에서 가면 유다 나라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땅 끝까지 열어주시면 거기 가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독교의 사명이 통일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통일이 될 것이고, 뜻이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정하신대로 될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영적 신앙을 결부시켜서 사회 운동, 정치 운동으로 돌아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직 성경대로 나가야 함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성경대로 나가야 합니다. 성경을 어긴 것은 죄인 줄로 알고, 비성경적인 것들과는 절대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대로만 나가야 틀림이 없습니다. 정로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탈선된 것은 마귀가 침범하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나가면 마귀가 와도 침범하지 못하고, 절대 실패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탈선되면 다 실패합니다. 신 신학, 신비주의, 감정주의, 혹은 하나님께 지시받는다는 것은 다 실패합니다. 그것은 전부 마귀의 속임에 미혹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위반되는 것을 취한 일이 있는지, 성경에 위반된 사건에 대해 관련되는 것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으면 다 끊어버리고 쫒아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라도 성경에 위반되면 잘라버려야 합니다. 아들이라도 하나님 말씀에 의해서 쫓아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독자를 바치라고 하실 때에 아브라함이 단 마음으로 바쳤는데, 이처럼 아들을 내보내는 것은 아브라함의 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참 신앙인 것입니다. 자기는 성경말씀보다 아내가 더 중요하고 아들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은 신앙을 제대로 갖춘 것이 아닙니다. 아내보다 말씀이 더 중하고, 아들보다 말씀이 더 중해야 합니다. 말씀하고 아들하고 어느 것을 가지겠느냐고 하면 말씀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내놓고 아들을 가지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눈과 같이 아내가 귀중하고, 손과 같이 아들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성경에 위반되면 다 잘라버려야 합니다. 눈이라도 빼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손이라도 잘라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회개해야 진짜 회개인 것입니다. 가만 두는 것이 무슨 회개입니까?
어떤 청년이 회개하느라고 손을 진짜 잘랐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이 쉽지 않습니다. 진짜 잘라야 될지 알면서도 아까워서 못 자르는 사람이 99.9%입니다. 보통은 ‘진짜 잘라야 될지 알면서도 손을 어떻게 자를 수 있겠느냐? 말씀에 어긋나도 어떻게 자르겠느냐?’하고 못 자릅니다. 정말로 자르는 사람은 만의 하나 몇 십만에 한 명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못 자를까봐 겁내지 마십시오. 나는 자를까봐 겁나는 것이 아니고 못 자를까봐 겁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자기 손가락을 자른 그청년은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난 그런 사람이 있으면 데려다 쓰고
싶습니다. 성경말씀을 순종하다가 손까지 자르는 사람인데 얼마나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또 얼마나 힘이 있는 사람입니까? 그런 사람을 바로 가르쳐놓으면 그 사람을 당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사실 잘라야 될 줄 알면서도 못 자르고 ‘좀 봐 주십시오’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 생명이 없고 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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