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5일 수요일

에스라 9:1-6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에스라가 애통해 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에스라가 애통해 함
에스라 9:1-6

1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가로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2그들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3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4이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 이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인하여 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5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6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1. 유다 백성들과 두목들의 범죄 사실이 알려짐

하나님의 큰 구원 역사가 일어날 때에 마귀 역사도 들어옴

본문 1절에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가로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에 대해서 통한하게 여기며 회개하는 모습이 에스라 9장과 10장에 나와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잘되자 마귀가 아나니아 부부를 이용하여 죄악의 씨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또 이스라엘 나라가 애굽에서 나올 때 일이 잘되므로 고라 당을 통해서 죄악의 씨가 들어왔습니다. 그외에도 여러 가지 죄악이 들어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서 떠나가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에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되어 나갈 때에 마귀가 역사합니다. 마귀가 힘을 써서 죄악을 그 속에 넣고 가증한 일을 행하게 합니다. 또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원망한 것처럼 원망 죄도 들어오게 합니다. 초대 교회 시절 고린도 교회에도 음행 죄가 들어오고 여러 가지 죄가 들어왔었습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려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귀의 역사는 언제나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되는 면만 보지 말고 죄악의 요소를 들여와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 운동을실패하게 하려는 마귀의 역사가 있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을 잘모르면 전체가 썩어지고 파괴되며 다 멸망하여 그만 두게 됩니다. 하
나님의 큰 구원 역사가 일어날 때마다 마귀는 가만히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대로 놔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과 믿음에 경계를 두어야 함

1) 우상을 섬기거나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안 됨

이렇게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또 백성들과 두목들 속에 마귀가 들어갔습니다. 마귀가 그들로 하여금 가증한 일을 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사람들의 딸들을 취해서 아내로 삼게 하였습니다. 가나안 사람, 헷 사람, 브리스 사람, 여부스 사람, 암몬 사람, 모압 사람, 애굽 사람, 아모리 사람 등 전부 8이방 족속의 가증한 일을 이스라엘 백성이 본받았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도 가담하였고 모든 백성들이 가담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며 나가는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타협주의인 것입니다. 세상과 교회는 유브라데 강으로 경계선을 두어, 서로 갈라놓아야 합니다. 교회에 세상이 못 들어오게 해야 하는데, 지금 이방 여러 족속들의 가증한 일들이 그만 이스라엘 백성들에
게 들어온 것은 교회가 세속화되어 세상을 따라가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타협주의가 들어왔습니다. 가증한 일을 본받았다는 것은 이방 풍속과 습관, 이방인의 우상 숭배, 하나님의 백성에게 합당치 않은 음식을 먹는 일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까? 쪽발갈라지지 않고 새김질하지 않는 짐승과 비늘 없는 물고기, 지느러미 없는 물고기는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도 슬슬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은 모양입니다. 이방 사람들이 먹으니 자기들도
가져다 먹는 것입니다. 또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우상의 제물도 먹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8절에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라고 하였는데, 이방 사람들이 제사하는 데에서 그 제물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방의 가증한 일을 좇아 한 것입니다. 

에스겔 8장에 보면 성전 제단을 등지고 25인이 동방 태양을 향해 절했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세상에 새로 나오는 문화, 신출 세력을 숭배하고 우상화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가느라 혈안이 되어, 하나님보다 세상의 신 문명을 더 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또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것은 자기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아 곡하는 것으로, 성도가 육신의 욕망을 가지고 살다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곡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도는 영적 욕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성경말씀을 새김질하는 생활을 해야 하고, 쪽발 갈라진 것과 같이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 지느러미와 비늘과 같이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의 역사를 막으며 나가야 합니다. 세상과 타협하면 안 됩니다. 

성도가 술을 먹고 담배를 피는 것이 옳습니까?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고 해서 술을 먹어도 된다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입니다. 그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보여주기 위하여 벌어진 표적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은 표적이지, 포도주 먹는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는데 예수님의 신령한 뜻을 보여주려고 만드신 것입니다. 

또 성경에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 조금 먹는 것은 괜찮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한 잔에 안 취하면 백 잔을 먹어도 안 취해야 타당합니다. 그러나 백 잔에 취하는 것은 한 잔 먹었을 때에 그만큼 취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 23장 31절에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주를 보지도 말라고 하였는데, 포도주를 먹으면 안 되겠습니다. 단, 디모데전서에 보면 위병에 걸려 포도주가 약으로 필요할 때에는 먹어도 괜찮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약주로 먹는 것은 안 됩니다. 약으로는 쓰일 수는 있으나, 술로 먹는 것은 가증한 일입니다. 성찬식을 할 때에 포도즙을 담갔는데 알코올이 생겼다고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사다 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담글 필요는 없습니다. 포도 주스는 알코올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술 먹는 사람은 술 종류인 포도주, 맥주 다 끊어야 합니다. 그것은 전부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2) 믿지 않는 사람과 혼사하지 말아야 함 본문

2절에 “그들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7장 3-4절에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방인과 혼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안 믿는 사람과 결혼하지 말고 믿는 사람들끼리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이방 사람들의 여자로 아내를 삼고 또 이방여자를 며느리로 삼는 사람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성경 위반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 으뜸이 되어 거룩한 백성과 이방 사람이 서로 섞였다고 했습니다. 타협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것들과 거룩하게 구별되어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거룩한 기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방 사람들과 섞어서
타협주의가 되었습니다. 혼합이 된 것입니다. 신앙을 양보하고 성경을 범하고 이방 사람과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 나갔습니다. 

요새는 비늘 없는 고기, 쪽발 안 갈라진 것, 새김질 안하는 짐승을 먹어도 괜찮습니다. 구약의 의식은 도말했기 때문에, 지금은 의식을 좇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의식이 내포하고 있던 진리는 지켜나가야 합니다. 즉, 성도가 새김질 생활과 구별된 생활을 하고 전신갑주를 입고 비늘과 지느러미처럼 앞으로 전진하는 생활을 하라는 신령한 뜻은 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방 사람과의 결혼은 요새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끼리 결혼해야 합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이 믿겠다고 하면서 교회에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데려다놓고 믿기로 작정했느냐고 묻고, 작정했다고 하면 믿는 것으로 간주해서 결혼식을 해도 좋을 것같습니다. 그러나 한 번 나오지도 않고, 믿으라고 해도 안 믿겠다고 하는 사람과는 결혼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 믿음을 권면할 것이라고 하더라도, 안 믿는 사람과 결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교회 목사님이 받아준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믿으라고 해도 안 믿는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는데, 그 목사는 세상과 타협하는 것입니다. 타협했기 때문에 받아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아주면 진짜 교인과 가짜 교인 중에 하나는 묻어가게 되는 것인데, 그 한 몫
을 보려고 받아주는 것입니다. 그 목사가 인본주의를 써서 교인 하나를 붙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성경 원리 원칙대로 해나가야합니다. 성도가 나가면 할 수 없는 것이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언제나성경대로 할 수 있는 데 까지 나가고, 그 이상은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겠다든지 죽겠다든지 뒤로 나가 넘어간다든지 해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성경대로 끝까지 나가서 그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성경대로 할 수 있습니다. 손해가 날까 봐, 달아날까 봐다 따라가면 성경대로 말씀을 지킬 수 없습니다. 내내 끌려가게 됩니다. 성경대로 끝내야 끌려가지 않습니다. 

아무튼 거룩한 백성들이 구별된 생활을 하며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야겠는데, 이방 사람들과 섞이게 된 것입니다. 기름에 물을 타 놓은 것처럼 혼합주의가 된 것입니다. 세상이 교회로 들어오고 교회가 세상을 붙잡은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마귀가 세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끌어다 잡아 놓아, 하나님의 나라가 혼돈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어떻게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게 되었습니다. 

2. 에스라가 죄를 통한히 여길 때에 동조자들이 생김

에스라가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죄와 같이 통한히 여김

본문 3-6절에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이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 이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인하여 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라가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라고 하였는데, 사정을 모르고 있다가 유다 백성들이 이렇게 범죄한 것을 듣고 너무 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몸에 불붙는 것과 같은 안타까움이 있어서 속옷과 겉옷을 다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다 잡아 뜯었습니다. 머리털과 수염을 뜯었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고 기가 막혔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너무 속이 상하고 기가 막힐 때에는 머리털과 수염을 다 잡아 뜯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에스라가 죄를 얼마나 통한히 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죄를 너무나 통한히 여겼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잡아 뜯은 것입니다. 몸에 불이 붙으면 입고 있던 옷을 다 찢어 벗어 내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 사람들이 보는데 속옷과 겉옷을 다 찢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나면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생명이 다 죽게 되었는데, 부끄러운 것은 둘째 문제입니다. 그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습니다. 죽게 생겼는데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습니까? 다 멸망하는 마당인데, 다 잡아 뜯으면 어떻습니까? 하여간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데 에스라가 지금 자기 죄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때문에 이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자기 죄와 같이 생각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몸과 같이 여겼기 때문에 이런 태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9장에 있는 바울의 태도와 같은 것입니다. 로마서 9장 1-3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스도에게 끊어진 것이 자기가 끊어지는 것과 같다는 바울입니다. 이러한 심정은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을 자기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같이 느껴야 합니다. 자기 몸이 끊어지는 것 같은, 그런 자리에 나가야만 바로 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그리스도에게서끊어지는 것은 자기가 끊어지는 것이고,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잘못되면 자기가 잘못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죄를 지으면 벌 받을 것을생각해서, 자기가 벌 받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안타깝게 여겨야 합니다. 통한히 여기는 신앙이 바른 신앙입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야만 참된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 32절에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해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에서 제거당하면 자기도 제거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자기 이름을 지워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다음 절인 33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하셨습니다. 범죄하는 사람만 지워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범죄하면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버리신다는 것은 범죄하면 그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빛과 광채가 지워지고 인격이 지워진다는 뜻입니다 생명책에 범죄하면 지웠다가, 회개하면 다시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몇백 번씩 썼다, 지웠다 해야 할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창세 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다시 지우거나 기록하는 변동이 없습니다.
이미 설명하였듯이 범죄하면 지워버리신다는 말은 범죄하면 그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빛과 광채와 인격이 지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름은 생명책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열매, 은사, 축복이 다 소멸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을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면 그 축복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썼다 지웠다만 하고 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변동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 천당에 가게 되어 있고 구원을 받게 되어 있는데, 그 사람이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 주신 축복, 은사, 광채를 다걷어 가셔서 부끄러운 자리로 내려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들의 경우에는 징계를 내려서라도 그 사람을 회개시켜 하늘나라로 데려가십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죄를 통한히 여겨야 함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된 그 세계에 들어가서 그 세계가 잘못되면 자기가 잘못되는 줄 알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잘되면 자기가 잘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일이 잘못되면 자기가 잘못된 줄알고 애통하고 통한히 여기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죄에 대해서 통한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난 사람입니다. 

은혜 속에 있을 때에는 죄를 미워하고 그 죄에 대해 통한히 여기는 마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죄에 대하여 감각이 무뎌지면 벌써 심령이 마비가 된 것입니다. 양심이 마비가 된 증거이며 화인 맞은 것입니다. 타락된 증거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죄를 통한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책망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음행 죄를 범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1-2절에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통한히 여기지 않고 물리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바울이 책망하였습니다. 바울은 죄에 대해서 통한히 여기기를 다른 사람이 지은 죄를 자기가 지은 죄같이 생각했습니다. 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겨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떠난 것을 통한히 여기기를 자기가 그 은혜에서 떠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까지 통회하였습니다. 

우리도 죄에 대해서 통한히 여기는 마음을 늘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의 축복에서 떠난 것입니다. 유브라데 강이 다 마를 때가 된 것입니다. 통한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때이고, 구별된 생활을 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통한히 여기는 마음이 없을 때에는 세상과 죄와 타협한 때이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리 떠난 때입니다. 우리는 항상 죄에 대해서 에스라와 같이 불붙은 심정으로 통한히 여기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죄에 대해서 에스라, 바울, 모세와 같이 통한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죄를 가장 미워하는 마음, 원수보다도 더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강도보다 더 미워하고 살인자보다 더 미워해야 합니다. 죄 값은 곧 사망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일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장사했습니까? 자기가 배나 남겼는지 안 남겼는지를 보려면, 다 기울였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다 못 기울였으면 배나 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의 일, 텔레비전 보는 것 등, 다른 일들에 힘을 많이 기울이고 정작 달란트 장사에는 힘을 조금만 기울였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일심전력으로 기울이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달란트 장사가 시원치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가 부족한 것을 깨닫고 옛사람을 날마다 쳐서 복종시키며 충성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일심전력을 다 기울이고 피땀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또 그렇게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가면 언제나 하나님의 감동이 있습니다. 

이렇게 진리의 말씀과 감동, 두 개가 겸해서 나가야 합니다. 감동만 가지고 나가도 안 되고, 감동은 없고 성경만 가지고 나가도 안 됩니다. 성경말씀이 있으면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와 영감이 합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 진리 안에 있는 감동, 감동 안에 있는 말씀이 역사해야 합니다. 감동으로 말씀 속에 들어가고, 말씀이 감동으로 이루어나가야만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감동이 없을 때에는 큰 일이 난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심령이 완악해지고 강퍅해지고 둔해지며 양심이 마비가 될 때에 감동이 다 끊어집니다. 그리고 그러면 생명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상한 심령을 가지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회개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에스라가 ‘나의 하나님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라고 하였는데, 손을 쳐드는 것처럼 심령을 들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그 앞에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도달해서 그 얼굴 앞에 엎드리면,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얼굴이 뜨듯하여 하나님을 쳐다보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은 쳐다보지 못하고 거꾸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을 보면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발견했기 때문에 예수님 성상 앞에 거꾸러졌다고 하였습니다. 

또 다니엘 10장을 보면 다니엘이 예수님의 성상을 발견했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거꾸러지고 힘과 기운이 다 빠져 죽은 사람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얼굴이 뜨듯하여 하나님을 감히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참으로 만난 증거입니다.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여기서 우리의 죄라고 하였는데, 공동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 지은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지은 것은 우리의 세계에 들어가면 우리 것입니다. 자기가 안 지어도 예외가 될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머리까지 넘치고 우리의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라고 한 것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면 죄가 많이 발견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발견한 것만큼, 가까이 한 것만큼 죄악은 많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빛이 밝아지면 작은 먼지가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태양 광선이 비치면 방안에 있는 먼지가 많이 보입니다. 그전에는 안 보였던 것들인데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게 되면 많은 죄악이 발견됩니다. 아무튼 우리는 항상 죄에 대해 벌벌 떨며 원통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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