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5일 수요일

에스라 8:24-36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에스라 8:24-36

24그때에 내가 제사장의 두목 중 십이 인 곧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 형제 십 인을 따로 세우고 25저희에게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또 그곳에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기명들을 달아서 주었으니 26내가 달아서 저희 손에 준 것은 은이 육백오십 달란트요 은기명이 일백 달란트요 금이 일백 달란트며 27또 금잔이 이십 개라 중수는 일천 다릭이요 또 아름답고 빛나 금같이 보배로운 놋그릇이 두개라 28내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기명들도 거룩하고 그 은과 금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 29너희는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골방에 이르러 제
사장의 두목들과 레위 사람의 두목들과 이스라엘 족장 앞에서 이 기명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 30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은과 금과 기명을 예루살렘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가려 하여 그 중수대로 받으니라 31정월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쌔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32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기서 삼 일을 유하고 33제사일에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은과 금과 기명을 달아서 제사장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의 손에 붙이니 비느하스의 아들 엘르아살과 레위 사람 예수아의 아들 요사밧과 빈누이의 아들 노아댜가 함께 있어 34모든 것을 다 계수하고 달아보고 그 중수를 당장에 책에 기록하였느니라 35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수송아지가 열둘이요 또 수양이 아흔 여섯이요 어린 양이 일흔일곱이요 또 속죄제의 수염소가 열둘이니 모두 여호와께 드린 번제물이라 36무리가 또 왕의 조서를 왕의 관원과 강 서편 총독들에게 부치매 저희가 백성과 하나님의 전을 도왔느니라 

1. 금품과 기명들을 제사장에게 맡겨 가져가게 함

하나님의 교회는 성도들의 정성과 피땀과 진액을 짜 바친 희생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함

본문 24-25절에 “그때에 내가 제사장의 두목 중 십이 인 곧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 형제 십 인을 따로 세우고 저희에게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또 그곳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기명들을 달아서 주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물질문제를 바로 처리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가 잘되는 법입니다. 본문에서 물질을 잘 취급하였는데, 그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연보를 하고 성전을 짓고 한 것이 다 물질을 가지고 한 것인데, 왕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다 주겠다고 해도 받지 않고 자기 힘대로 연보한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지을 때에 바사왕 고레스가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크게 지으라고 하며 경비를 지원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그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 네 역량대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니 옛날 솔로몬 성전과 비교하면 아주 보
잘 것이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보잘 것이 없어서 통곡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조그맣게 지었습니다.

그러면 바사 나라에서 거저 준다는데 왜 따로 지은 것입니까? 그것은 자신들이 낸 연보로 하지 않고 거저 주는 것으로 지으면, 하나님앞에 아름다운 성전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역량대로 지은 것입니다. 에스라 2장 69절에 “역량대로 역사하는 곳간에 드리니 금이 육만 일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역량대로 연보해서 지은 것입니다.
우리도 역량대로 해서 짓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하나님 성전이 바로 되어 나갑니다. 믿는 일이 바로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저 주는 것을 얻어다가 크게 짓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역량대로 연보해서 지었습니다. 클 필요가 없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 3만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크게 지을 실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 나라가 도와준다고 무조건 크게 지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합당한 성전이 못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도들의 정성과 피땀과 진액을 짜 바친 희생의 터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와 교역자의 진액과 성도들의 희생위에 세워야 예수님께서 거기 계십니다. 이러한 것들 없이 누가 도와준다고 해서 그 도움을 받아 크게 지으면 거기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도 자기 역량대로 연보해서 하나님의성전을 지었던 것입니다.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하고 생각할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가 있었지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축복하셔서 5천명을 먹이시고도 열 두 바구니가 넘게 거둘 수 있었습니다. 역량대로 연보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서 하나님 일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실력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다 기울여서 구원 운동을 해야, 자기 영혼도 자라나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며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전이 이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교회 재정은 분명하게 처리해야 함

본문 26-27절에 “내가 달아서 저희 손에 준 것은 은이 육백 오십 달란트요 은기명이 일백 달란트요 금이 일백 달란트며 또 금잔이 이십개라 중수는 일천 다릭이요 또 아름답고 빛나 금같이 보배로운 놋그릇이 두 개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많은 은을 보통 사람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제사장 두목에게 맡겼습니다. 

교회에서 회계를 할 때에 그 교회 장로들이 일을 맡는 것이 좋을 것같습니다. 장로들이 원 회계를 맡고 집사 가운데 신임할 만한 집사가 같이 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다음 부회계나 장부 정리는 누가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책임자는 교회에서 인정할 만한 사람이 해야
합니다. 본문에도 ‘달아서’라고 했는데, 세밀하고 철저하게 장부를 기록해야 합니다. 또 현금 맡은 사람을 따로, 장부 맡은 사람을 따로 두고, 돈은 은행에 맡겨야 합니다. 회계 집사가 자신의 집에 가져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돈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개인이 쓰면 안 됩니다. 은행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로 낼 돈도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다음 주에 바쳐야겠다고 생각하며 써버리는 사람이 있는데,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십일조는 즉시 가져다가 바치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하나님 것을 십일조로 떼어놨으면 안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정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재정이 불분명하면 하나님 일이 제대로 되지 못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 20-21절에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고하였습니다. 연보를 디도에게 맡겼는데, 디도 혼자 받은 것이 아니고 고린도후서 18절에 보면 ‘저와 함께 형제를 보낸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재정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도 조심해야 하고 사람 앞에서도 조심해야 합니다. 조금도 흠이 없이 다른 사람에게 오해받지 않도록 공명정대하게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기 돈보다 교회 돈을 더 아껴 써야 합니다. 필요해도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겪어나가려고 하다가 나중에 하나씩 사나가야 합니다. 우리도 여러 해 미루다가 금번에 복사기를 구입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복사하러 나갔다 오면서 너무 시간을 보내게 되는 바람에 5년 가까이 버티다가 부득이 사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5천명을 먹이신 다음에 부스러기를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부스러기라도 아끼라는 것입니다. 모아놓았다가 필요한 곳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게 해주시려고 열두 바구니를 거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그 말씀에는 부스러기와 같은 사람도 교회에 필요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똑똑하고 총명하고 말 잘하고 지식 많은 사람만 필요한 것이아니라 부스러기와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 이용당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스러기를 잘 모을 줄 알아야 교회가 됩니다. 예수님 때에도 부스러기를 다 먹지 않았습니까? 세리, 창기, 바리새교인들, 갈릴리 뱃사공, 죄 많은 여자 막달라 마리아 등 동네에서 사람 취급도 안하는자들을 예수님께서 다 모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학자나 제사장이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스러기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셨습니다. 그런데 부스러기들을 모으시는 바람에 저와 같은것도 한 몫을 하게 됐습니다. 여러분들도 부스러기를 모으시는 바람에들어온 줄 알아야 합니다. 훌륭한 사람을 모집할 것 같으면, 여기 몇사람 있을지는 몰라도 대개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갈 것 같습니다. 시간도 부스러기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시간에 기도하고 성경보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 재정도 부스러기 돈을 버리지 말고 아껴야 합니다. 그렇다고 교역자 월급을 깎지는 마십시오. 교인들은 교역자를 잘 대접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역자는 안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교역자가 많이 받으려고 하면 그 교회는 벌써 틀렸습니다. 잘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납니다. 많이 받으려고 하는 정신이 이미 틀린 것입니다.
희생 정신으로 나가며 조금 주면 조금 주는 데서 살고, 많이 주면 많이 주는 대로 하나님 앞에 바로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많이 안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15절에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이라고 한 것은 대접을 안 받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대접을 안 받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교역자 대접을 잘하려고 해야 합니다. 성경에도 아낌없이 냉수 한 그릇대접한 것도 그 상을 잃지 않는다고 했는데, 교역자가 하나님의 일하는데 경제적으로 곤란을 안 당하도록 모든 것을 잘 대접해야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교역자를 위해 눈이라도 빼서 주겠다는 정신을 가졌습니다. 복 받은 교회입니다. 바울은 바울대로 죽을지언정 대접을 안받겠다고 작정하고 나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반대로 된 교회는 복을 못 받습니다. 물질에 대해서 교역자도 교인도 하나님께 바로 못합니다. 

본문 28절에 “내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기명들도 거룩하고 그 은과 금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해서 하나님께 바쳤다는 뜻입니다. 너희도 구별해서 하나님께 바친 자들이고, 하나님께 드리는 이 물질도 하나님께 즐거이 드린 예물이기 때문에 구별되고 거룩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가 조심하고 재정을 분명히 하라는 말입니다.

본문 29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골방에 이르러 제사장의 두목들과 레위 사람의 두목들과 이스라엘 족장 앞에서 이 기명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족장 앞에서 이 기명을 달기까지 삼가 지키라는 것은, 맡을 때 달아서 맡았으므로 이제 예루살렘에 가서 달아 그대로 다 내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령 백 달란트를 맡았으면 4개월 동안 보관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내놓을 때 역시 백 달란트를 달아서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받은 대로, 가감 없이 내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삼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30절에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은과 금과 기명을 예루살렘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가려 하여 그 중수대로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각각 중수대로 받았습니다. 내놓을 때는 또 달아서 그대로 다 내놓아야 합니다. 물질에 대해서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령한 일에 대해서도 충성을 못합니다. 물질에 대해서 바로 해야 합니다.

물질에 대해서 바로 해야 함

누가복음 16장 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불의의 재물은 세상 재물입니다. 그러면 친구는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세상 재물이 왜 불의의 재물이라는 것입니까? 세상 재물은 다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놓으면 다 불의의 재물이라는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재물이지, 자기가 이 세상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습니다. 임시로 맡겨놓은 것뿐입니다. 내가 돈을 벌었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임시로 내게 맡겨놓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것을 맡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바로 불의한 재물이며, 그 사람은 불의한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임시로 맡겼는데, 자기 것이라고 안 내놓으면 얼마나 불의한 사람입니까? 자기 것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불의한 재물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친구를 사귀라. 예수 그리스도를 사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없어질 때에 영원한처소로 너희를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재물을 맡고 있는 동안에 그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바로 쓰면, 예수님을 깊이 사귈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하늘나라에 가서도 상급을 받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것은 무엇입니까? 물질입니다. 큰 것은 신령한 일입니다. 물질에 충성된 자는 신령한 일도 충성할 수 있지만,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령한 일에도 충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6장 11절에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재물이 불의한 재물인데,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하면 참된 것, 진리와 신령한 것을 어떻게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는 것입니다. 참된 것은 진리 면과 신령한 것인데 진리와 신령한 것을 맡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누가복음 16장 12절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물질은 남의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남의 것, 곧 물질을 가지고 충성하지 않으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너희의 것은 신령한 것, 영원한 것입니다. 물질은 우리가 세상에 올 때에 가지고 오지 못했고, 또 세상을 떠나갈 때에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남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다고 하면, 어떻게 너희의 신령한 것과 영원한 것을 줄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양심을 비뚤게 쓰는데, 남의 것을 가지고 제 것을 만들어놓고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것을 줄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역량대로, 양심을 써서 연보하라

그러므로 에스라 2장 69절 말씀처럼 지극히 작은 물질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 앞에 바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역량대로 연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역량대로 연보할 줄 아는 사람, 자기 힘을 다 기울여서 연보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나님의 신령한 것도 받을 수 있고 믿는일도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양심을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이만큼 주셨으니까 바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다’라고 하며 힘을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주셨는데 조금 바치면,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도적놈의 심리입니다. 시꺼먼 속을 가지고는 은혜 받기가 어렵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많이 주셨으면 많이 주신 그 자에게 많이 요구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질도 하나님께서 많이 주셨다면 그것을 가지고 믿는일을 하라고 많이 주신 것입니다. 물질을 준 목적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 주신 목적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첫째는 그것을 가지고 먹고 살라고 주셨고,
둘째는 그것을 가지고 믿는 일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쌓아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필요할 때에 쓰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가지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점점 많이 쌓아서 부에다 부를 더 쌓으려고 돈버는 데에만 급급해 나가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양심을 안 쓰는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많이 쓰면서 돈을 모으는 것은 괜
찮습니다. 많이 주시면 많이 쓰면서 조금씩 더 올라가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일하는 어떤 사람은 처음에 십일조를 드리다가 하나님께서 조금 더 주시니까 십이조를 하고, 하나님께서 조금 더 많이 주시니까 십삼조, 즉 십 분의 삼을 바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십 분의 오를 바치게 되었고 나중에는 십 분의 구를 바쳤다고 합니다. 자기는 십 분의 일만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가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금 주시면 절반 쯤, 십 분의 오 쯤 바치면 얼마나 하나님의 일이 잘되겠습니까? 잘될 것 같습니다. 또 십 분의 구 쯤 바치면 하나님 일이 참 잘됩니다. 그러나 돈을 잘 못 벌어서 그저 겨우 자기 먹을 것만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그 재물로 첫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기 먹으라고 주신 것이니 그것으로 생활부터 해야 합니다. 그러나 돈 좀 잘 버는 사람이 있어서 자기 생활하고 남는 것의 한 절반, 또는 생활하고 남는 것의 한 십 분의 구 쯤 되면 바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일이 아주 잘될 것 같습니다. 어떤 교회의 장로가 있었는데 ‘목사님이 한 십 억을 들여서 예배당을 증축하자고 했다고 합니다’라는 말을 듣자 “십 억 가지고 뭘 하겠습니까” 한 십 오 억 들여서 합시다. 내가 내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선뜻 돈을 내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교회는 크리스마스 날 개인적으로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오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날 한 끼 나눠먹어야 되겠는데,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오는 사람, 또 쌀 몇 가마니를 가지고 오는 사람이 있어서 잘 나눠먹는다고 합니다. 어찌됐든 잘 버는 사람이 자기 몫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양심을 쓰는 것입니다. 역량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건축을 할 때도 일 년에 자기에게 얼마나 주셨는지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다쓰고, 또 쌓아놓지만 말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얼마주신 것에서 생활비를 빼고 남는 것으로, 한 절반을 뚝 자르든지 삼분의 일을 잘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십니다,

어떤 교회의 한 집사가 자기 사업하던 것을 다 팔아서 땅을 샀는데, 그 절반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합니다. 힘을 많이 쓴 것 같습니다. 그런 집사가 있으면 교회가 됩니다. 그런 교인들이 있으면 교회가 되어 나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칭찬해주지 마십시오. 칭찬해주면 그것은 독약을 먹이는 것과 같은데, 칭찬해주지 말고 없는 데서만 한 마디씩 해주는 것입니다. 있으면 아예 말을 안해야 합니다. 칭찬은 독약을 먹이는 것이기 때문에, 아예 칭찬해주면 안 됩니다. 

아무튼 우리는 재정에 대해서 이제 힘써, 역량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역자부터 역량대로 해야 합니다. 교역자부터 역량대로 안하고 힘써서 안하면 교인들이 어떻게 힘써 하겠습니까? 어떤 교역자는 자기 재산은 하나도 안 내놓고 교회에 가서 그저 몸으로만
일한다고 합니다. 연보 하라고 할 때 도저히 안할 수는 없으니까 형식적으로 조금 하고, 자기는 몸으로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교역자는 그 교회에서 이익을 볼 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교회가 안 됩니다. 그런 교역자는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합니다. 자기 생명과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진액을 다 바치며 희생이 들어가야만 교회가 되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리셔서 하시는 교회인데, 자기 것을 희생하지 않고 어떻게 교회가 되겠습니까? 교회가 안 됩니다.

2.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 행한 일

은과 금과 기명을 계수하고 그 중수를 달아 책에 기록함

본문 31-34절에 “정월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쌔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기서 삼 일을 유하고 제사일에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은과 금과 기명을 달아서 제사장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의 손에 붙이니 비느하스의 아들 엘르아살과 레위 사람 예수아의 아들 요사밧과 빈누이의 아들 노아댜가 함께 있어 모든 것을 다 계수하고 달아보고 그 중수를 당장에 책에 기록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계수하고 달아보고 그 중수를 책에 기록하였는데, 그 일을 여러 사람이 했습니다. 한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회계를 여러 사람이 해야 합니다. 그것이 좋습니다. 회계, 부회계, 건축 회계, 부회계, 선교부 회계, 부회계 등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달아보고 재볼 때도 다 같이 해야 합니다. 잴 때 공동으로 재고, 그것을 책에다 다 같이 기록한 후에 현금을 취급하는 집
사가 은행에 저금을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연보를 취급할 때 그 교역자의 장인, 아내 등 자기 식구끼리 모여서 했다고 합니다. 다 계수한 후에는 교역자의 부인이 가지고 들어간다고 합니다. 다른 집사들은 연보만 했지, 재정에는 관계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교회에 시험이 일어났습니다. 말썽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목사 부인이 왜 제직회에 가서 앉아있느냐는 것입니다. 목사 부인이 이것 저것, 재정이니 뭐니 간섭하고 다니는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사모는 목사를 잘 도우며 자기 가정 일에 힘쓰고 교회에서는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 일을 간섭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목사 부인이 제직회에 가서 계수한 헌금을 가지고 들어가면 어떻게 합니까? 목사 부인 때문에 목사가 쫓겨날 지경이 된 것입니다. 누가 교회 일을 물어오면 잘모르겠으니 목사님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해야지, 사모가 목사 옆에 앉아서 왈가왈부하며 시시콜콜 간섭하며 오히려 가르치려고 하면 곤란합
니다. 목사에게 누군가 무엇을 의논하러 오면 목사 부인은 조용히 다른 곳으로 가 있는 것이 좋습니다. 아예 건너 방에 가든지 부엌에 가든지 바깥에 나가든지 안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의논이 됩니다. 목사의 부인은 교회 일에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교회가 잘되어 나갑니다.

번제와 속죄제를 드림

본문 35-36절에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수송아지가 열둘이요 또 수양이 아흔여섯이요 어린 양이 일흔일곱이요 또 속죄제의 수염소가 열둘이니 모두 여호와께 드린 번제물이라 무리가 또 왕의 조서를 왕의 관원과 강 서편 총독들에게 부치매 저희가 백성과 하나님의 전을 도왔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돌아와서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로 수송아지 열둘, 수양 아흔여섯, 어린 양 일흔일곱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수염소 열둘로 속죄제를 또 드렸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백성들이 번제와 속죄제를 제일 먼저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왕의 조서를 관원과 강 서편 총독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전을 도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속죄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늘 앞세우고 나가야 합니다. 앞에 놓고, 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에 감격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해나가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시작도 예수님으로 말미암고, 진행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고, 결과도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해나가야겠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구속의 세계에서 일하며 나가야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