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5일 수요일

에스라 8:1-23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나아가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나아가라
에스라 8:1-23

1아닥사스다 왕이 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보계가 이러하니라 2비느하스 자손 중에서는 게르솜이요 이다말 자손 중에서는 다니엘이요 다윗 자손 중에서는 핫두스요 3스가냐 자손 곧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스가랴니 그와 함께 족보에 기록된 남자가 일백오십 명이요 4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스라히야의 아들 엘여호에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이백 명이요 5스가냐 자손 중에서는 야하시엘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삼백 명이요 6아딘 자손 중에서는 요나단의 아들 에벳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오십 명이요 7엘람 자손 중에서는 아달리야의 아들 여사야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칠십명이요 8스바댜 자손 중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바댜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팔십 명이요 9요압 자손 중에서는 여히엘의 아들 오바댜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이백십팔 명이요 10슬로밋 자손 중에서는 요시뱌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일백육십 명이요 11베배 자손 중에서는 베배의 아들 스가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이십팔 명이요 12아스갓 자손 중에서는 학가단의 아들 요하난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일백십 명이요 13아도니감 자손 중에 나중된 자의 이름은 엘리벨렛과 여우엘과 스마야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육십 명이요 14비그왜 자손 중에서는 우대와 사붓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칠십 명이었느니라 15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유하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하나도 없는지라 16이에 모든 족장 곧 엘리에셀과 아리엘과 스마야와 엘라단과 야립과 엘라단과 나단과 스가랴와 므술람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 요야립과 엘라단을 불러 17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거한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수종들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18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저희가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19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 형제와 저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20또 느디님 사람 곧 다윗과 방백들이 주어 레위 사람에게 수종들게 한 그 느디님 사람 중 이백 이십 명을 데려왔으니 그 이름이 다 기록되었느니라 21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22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음이라 23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1. 에스라와 같이 귀국한 자들

남자답게 강건한 신앙을 가진 자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수 있음

본문 1-14절에 “아닥사스다 왕이 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보계가 이러하니라 비느하스 자손 중에서는 게르솜이요 이다말 자손 중에서는 다니엘이요 다윗 자손 중에서는 핫두스요 스가냐 자손 곧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스가랴니 그와 함께 족보에 기록된 남자가 일백 오십 명이요 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스라히야의 아들 엘여호에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이백 명이요 스가냐 자손 중에서는 야하시엘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삼백 명이요 아딘 자손 중에서는 요나단의 아들 에벳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오십 명이요 엘람 자손 중에서는 아달리야의 아들 여사야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칠십 명이요 스바댜 자손 중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바댜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팔십 명이요 요압 자손 중에서는 여히엘의 아들 오바댜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이백 십 팔 명이요 슬로밋 자손 중에서는 요시뱌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일백 육십 명이요 베배 자손 중에서는 베배의 아들 스가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이십 팔 명이요 아스갓 자손 중에서는 학가단의 아들 요하난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일백 십 명이요 아도니감 자손 중에 나중된 자의 이름은 엘리벨렛과 여우엘과 스마야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육십 명이요 비그왜 자손 중에서는 우대와 사붓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칠십 명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는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자들을 각 족장과 그들의 계보(系譜)대로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제2차 포로 귀환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2차 포로 귀환자의 명단에는 남자들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남자만 올라왔습니까? 여자는 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2차 포로 귀환 때에도 1차 귀환 때와 마찬가지로 여자와 어린아이가 같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남자의 이름만 기록한 것입니다. 1차 귀환 때에는 남, 녀 외에도 노비 등 귀환자의 면면을 다 헤아린
것 같습니다. 에스라 2장 65절에 “그외에 노비가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노비가 나왔는데, 노비라 하면 남, 녀 종을 다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래하는 남녀가 있다고 하였는데, 그 역시 노래하는 자가 남, 녀 함께 다 올라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1차 포로 귀환 때에는 남, 녀를 다 헤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2차 포로 귀환 때에는 남자들의 수만 세었습니다. 이것은 남자답게 강건한 신앙을 가지 자가 예루살렘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령한 뜻, 영적인 뜻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3절에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도 남자답게 강건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여기에 포함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라도 남자답게 강건하지 못하고 슬슬 뒷걸음질이나 치며 소극적인 사람은 여기에 포함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늘의 신령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데 있어서, 바벨론을 용기 있게 떠나는, 남자다운 강건함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8장에는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8장 4절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8장 2절에 나오는 ‘거기’라는 곳은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바벨론에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나와 시온산성을 향하여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강건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벨론에서 용기 있게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발목을 잡히면 안 됩니다. 얽매이는 것과 거리끼는 것을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마귀가 자꾸 올가미를 걸어서 끌고 가는데, 그 올가미에 걸리지 않아야 합니다. 용기 있게 나오라는 것입니다. 벗어버리고 나와야 합니다. 

예전에 제가 도둑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만주에 가면 버드나무가 유명합니다. 길가에 버드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습니다. 어렸을 때에 만주에 간 적이 있는데, 버드나무 가지가 죽 내려와서 땅 아래까지 닿았습니다. 그래서 그 속에 사람이 들어가 있어도 모릅니다. 버드나무 가지가 땅에까지 닿아 있으니 사람이 그 속에 쑥 들어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지나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적이 버드나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지나갈 때에 그 속에 도적이 있어도 모르고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나무 옆을 지나갈 때에 도적이 올가미를 가지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의 목을 끌어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올가미로 사람이 지나갈 때 쓱 잡아당기면 사람이 끌려서 그 버드나무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도적이 그 사람의 돈을 다 빼앗고 가라고 합니다. 버드나무가 쭉 늘어서 있는데, 어느 버드나무에서 올가미가 나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고 지나가야 하느냐 하면, 막대기를 이마에 대고 가야 합니다. 막대기를 이마에 길게 대고 가다가 올가미가 나오면 벗겨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귀는 우리에게 올가미를 걸어 잡아 당겨 잡아먹고 다 빼앗으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막대기를 대고 가다가 다 벗겨 내버리야 합니다. 걸리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여러 가지의 올가미를 가져다가 겁니다. 근심, 걱정의 올가미와 물욕, 사욕, 정욕의 올가미를 가져다 걸어버립니다. 그리고 잡아끌어 갑니다. 한 번 걸려들면 안 끌려가려고 해도 별 수가 없습니다. 목을 걸어서 끌고 가기 때문에 별 수 없이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마귀에게 다 빼앗기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올가미를 벗겨 내버릴 준비를 하고 다녀야 합니다. 마귀가 올가미를 걸면 ‘주여, 맡아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네 모든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께 모두 다 맡기고 용기 있게 걸어 나가는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에스라와 같이 바벨론에서 남자답게 용기 있게 나오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나와서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2. 성전에서 봉사할 자를 모집함

레위 사람들이 신앙의 용기를 잃어버림

본문 15-19절에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유하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하나도 없는지라 이에 모든 족장 곧 엘리에셀과 아리엘과 스마야와 엘라단과 야립과 엘라단과 나단과 스가랴와 므술람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 요야립과 엘라단을 불러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거한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수종들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저희가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 형제와 저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라고 하였습니다. 아하와는 바벨론에서 유다 사람들이 포로 생활하던 곳입니다. 그리고 지금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출발하기 위하여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다 모였습니다. 그들이 다 모여서 삼 일동안 장막에 유하며 떠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리 중에서 살펴보니 백성과 제사장들 중에 레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성전에서 봉사할 사람들이 필요한데, 제사장은 있지만 레위사람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레위 사람을 모집하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봉사할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가서 데려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레위 사람들은 왜 오지 않았습니까? 제사장보다 레위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말입니다. 제사장은 레위 사람들 중 아론의 자손만이 해당됩니다. 그러니 전체 레위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레위 사람들이 안 왔다는 것입니다. 왜 안 왔습니까? 그때 바벨론에서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성전이 없었기 때문에 레위 사람들이 성전 봉사를 70년 동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다 해이해졌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직무를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역할에 대하여 중요하게 생각지도 않게 된 것입니다. 성전 봉사를 하려고 해도 성전이 없기 때문에 자기들의 직무를 이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신앙이 퇴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사모하는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는 결심도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즉, 세상에 서 평안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레위 사람들이 신앙의 용기를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자기 직무를 감당하지 않는 사람은 점점 쇠퇴해지고, 잘 감당하는 사람은 창성해지며 복을 받음

자기의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레위 사람들은 자기의 할 일을 안했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자기의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레위사람들과 같이 쇠퇴해집니다. 1차 포로 귀환 때에도 레위 사람들은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레위 사람 몇 사람이 갔다고 했습니까? 74명입니다. 처음에도 몇 사람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레위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지내며 완전 쇠퇴해졌습니다. 2차 포로 귀환 때인 이번에는 하나도 안 왔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직무를 감당하지 않은 사람은 점점 쇠퇴해지고 약해진다는 것이 여기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직무를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고 교회를 위하여 충성되게 자기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은 점점 그 수가 많아지고 창성해집니다. 제사장은 바벨론에서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기에 제사장들은 이번에 얼마나 많이 왔습니까? 1차 포로 귀환 때에 사천 이백 팔십 구 명이 왔다고 했습니다. 제일 많이 왔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의 직무를 잘 감당한 제사장은 열두 지파 가운데 제일 많이 번성하여 제일 많이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많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레위 사람은 직무를 감당하려고 해도 성전이 없어서 안했기 때문에 점점 쇠퇴해져서 처음에는 몇 명이 안 왔고 이번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창성해지고 복을 받습니다. 심방하는 사람이 복을 받고 주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헌금하는 사람이 복을 받고 하나님의 일하는 사람이 창성합니다. 하다못해 교회에서 청소하는 사람이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일하지 않겠다고 슬슬 뒤꽁무니 빼는 사람은 차차 약해져서 마지막에는 그림자도 없어지게 됩니다. 여기에서도 그림자도 없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앞장서서 남자답게 나가야 합니다. 앞장서서 나가지 않으면 미약해집니다. 앞장서서 해야, 힘이 납니다. 하지 않으면 힘이 없어지고 점점 약해집니다. 

성전 봉사의 직무를 맡길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을 데려옴

그러면 이제 레위 사람들이 안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루살렘에 가면 성전에서 봉사할 일들이 있기 때문에 레위 사람들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레위 사람들을 모집하러 다른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가시뱌 지방으로 갔습니다. 당시에 가시뱌 지방에 레위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모양입니다. 

본문 17절에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거한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수종들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가시뱌 지방에서 잇도라는 사람이 족장을 하면서, 레위 사람들을 잘 가르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레위 사람 학교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레위 사람을 교육하는 기관이 하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책임자에게 가서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신학교에 가서 교역자를 한 명 보내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교역자가 필요하니 한 명 보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성전에서 수종들 사람이 없기 때문에 거기서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8-19절에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저희가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 형제와 저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라고 하였습니다. 전부 몇 명을 데리고 왔습니까? 38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면 느디님 사람은 몇 명을 데리고 왔습니까? 

본문 20절에 “또 느디님 사람 곧 다윗과 방백들이 주어 레위 사람에게 수종들게 한 그 느디님 사람 중 이백이십 명을 데려왔으니 그 이름이 다 기록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20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사람이 모자라기 때문에 이렇게 데리러 다녀 모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교회를 세워나가야겠는데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돈이 모자랍니까? 아니면 사람이 모자랍니까? 사람이 모자랍니다. 성전 지을 수 있는 사람만 온다면, 돈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전 지을 사람이 있으면 다 주시는 것입니다. 에스라와 같은 사람이 나서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하면, 왕도 주고 모사도 주고 백성들도 주고 해서 재물이 다 생기는 것입니다. 왕의 창고에서까지 다 가져가라고 나오는데, 문제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수종들 사람이 모자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기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수종들 사람을 잘 길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수종드는 일에 있어서 어떤 사람을 길러야 되는가 하면, 용기있게 바벨론을 떠나 고난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려는 정신이 있는 자를 길러야 합니다. 성전에서 수종드는 일에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 희생 정신을 가지고 충성하는 사람,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
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여간 레위 사람 38명과 성전에서 봉사할 느디님 사람 220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3. 금식하며 평안한 길을 간구함

에스라와 모인 무리가 길을 나서기 전에 하나님께 금식 기도를 함

본문 21절에 “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린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남자들 뿐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도 다 온 것입니다.
그리고 금식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기도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희망이 없는 자입니다. 이제 곧바로 가면 2천리이고 돌아가면 3천리나 되는 먼 길을 가야 합니다.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가려면 넉 달이나 걸립니다. 중간에는 사막도 있고 강도 떼도 만날지 모릅니다. 

에스라 8장 31절에 “정월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쌔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고 하였습니다.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가 많고 강도가 많습니다. 가다가 대적이 일어나고 매복했던 강도가 일어나서 다 빼앗아 가면 꼼짝 못하고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다 죽이면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태로운 길을 갈 때에는 생명이 왔다 갔다 합니다. 무사히 갈 수 있겠습니까? 가는 사람이 이번에는 몇 명이 안 됩니다. 다 합하면 이번에는 몇 명입니까? 다 합하면 몇 천 명이 되겠습니까? 삼백 명과 이백 명, 칠십 명, 다 이러했는데 천 명 단위가 없어서 다 합해도 천 명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강도들이 무기를 가지고 몇 백 명이 한꺼번에 나타나서 다 죽이고 빼앗아 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넉 달 동안 가면서 무엇을 먹겠습니까? 식량도 가져가야 합니다. 길에 대적과 매복한 강도들이 많은데 어떻게 무사히 가겠습니까? 잘못되면 죽고, 죽지 않는다고 해도 재물을 다 빼앗기게 될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이 되어 생명이 위급할 때가 되었는데 그때에는 무엇이 제일입니까? 기도 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금식 기도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만 매달려야 함

기도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위태로울 때에 기도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돌아다니면서 의논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사람과 의논하지 말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도움을 구하지 말고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매달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쓸데없습니다. 도와주는 것 같지만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손해만 줍니다. 평안할 때는 친구가 많지만 위태로울 때에는 친구가 없습니다. 

요즘 전두환 대통령이 친구가 있습니까? 예전에는 친구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가면 전부 다 떠받들고 그랬는데, 요즘은 친구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밖에는 매달릴 곳이 없습니다. 괜히 도와준다고 해도 겉으로 그런 것입니다. 평안하니까 그러지, 진짜 죽게 될 상황이 되면 슬슬 다 돌아서고 맙니다. 사람들은 모두 슬슬 돌아섭니다. 전부 쓸데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살고 안 도와주시면 죽습니다. 부모도 못 도와줍니다. 하나님 밖에는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하나님께만 매달려야 합니다. 위태로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가 이 길에 달렸습니다. 잘못하면 죽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금식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가야겠다고 해서 모두가 아하와 강가에 모여서 금식 기도를 한 것입니다. 

금식 기도할 때에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 앞에 그 목소리가 상달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함
유다 백성들이 삼 일 동안 금식 기도를 한 것 같습니다. 금식 기도를 할 때에 중요한 것, 첫째는 겸비입니다. ‘스스로 겸비하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겸비해져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금식 기도를 하는 제일 중요한 목적은 자기를 낮추고 자기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상달케 하는데 있습니다. 자기를 낮추기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일이 잘못된 것이 다른 사람 누구 때문에 그렇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모두 다 자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기가 낮아지지 않고 죽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금식 기도하면서 자기를 낮추어놓고 자기 하나를 죽여놓으면 일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안 죽어서 그런 것입니다. 일평생 원수가 자기이고 대적이 자기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금식 기도를 할 때에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 앞에 그 목소리가 상달되도록 간절히 기도를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그 능력으로 모든 것을 통과 할 수 있습니다. 승리하며 고난을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야 통과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아무리해도 점점 더 시험이 커지기만 할 뿐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마귀의 종 노릇을 하다가 망하고 맙니다. 우리는 언제나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22-23절에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에스라가 왕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자에게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고 왕에게 증거한 일이 있습니다.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다는 것입니다. 왕에게 구하면 왕이 줍니다. 몇 백 명의 군사를 풀고 보병과 마병을 주어서 유다 사람들을 보호하여 예루살렘까지 데려다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에스라가 전에 왕 앞에서 증거한 말이 맞지 않게 됩니다. 예전에 왕 앞에 증거하기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지켜주시며, 권능과 능력으로 자기를 찾는 자에게는 선을 베푸신다’고 하였는데, 정작 위태롭게 되니까 왕에게 마병과 보병을 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전에 증거한 것이 맞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송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 확실한데, 군대의 보병과 마병을 달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신앙 양심이 그것을 허락합니까? 

그런데 걱정이 들기는 한다는 것입니다. 마병과 보병을 구하면 왕이 주기는 줄 텐데 말입니다. 구하는 것은 모두 다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양심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또 과거에 왕 앞에 증거한 것이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할 수 없이 하나님 앞에만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왕에게 한 마디만 하면, 왕이 마병과 보병 몇 백 명을 보내주어서 잘 보호해주겠지만 그것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마병과 보병을 왕에게 요청하여 보호해달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금식하면서 간절히 간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입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남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면 안 됩니다.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고 권세를 의지하고 나가는 것은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습니다.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 때에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 권세 있는 자에게 도움을 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아 17장 5-6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믿으면 안 되고 또 세상 권세를 의지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사람을 믿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이 되어서 그만 저주 받는 가운데 들어가고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광야의 건건한 곳, 사람이 거하지 못하는 곳에 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17장 7-8절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잘 의지가 안 되면 금식을 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면 그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물가에 심은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 없이 결실이 그치지 않게 맺히는 것처럼, 무슨 일이 와도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 지켜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입니다. 에스라도 왕에게 한 마디 요청만 하면 마병과 보병들이 와서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이지만,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금식하며 구하였더니 그 응답하심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대적이 우리를 멸망시키지 않을까 하고 두려움과 염려가 많았습니다. 가다가 죽지 않을까 염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해결을 얻었습니까? 기도하는 자리에서 해결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벌써 어려운 길을 다 통과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푹 놓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응답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같이 하시는 역사가 일어났고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면 되지, 다른 것이 뭐가 필요가 있겠는가 하면서 하나님은 내 편이시고 나와 같이 하신다는 것을 의지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나간다고 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가지고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벌써 다 해결이 된 것입니다. 광야를 통과할 때에 대적들이 꼼작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눌러놓으셨기 때문에 대적들이 벌벌 떠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 가운데 대적들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면 어떠한 대적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에서 살인을 한 다음에 그 사면 도시에 와서 죽을까봐 벌벌 떨었지만, 하나님의 명령대로 벧엘로 올라갈 때에 그 사면 사람들이 벌벌 떨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사면에서 사람들이 다 와서 죽이면 꼼작 못하고 다 죽게 되는 것인데,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고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씀대로 올라갔습니다. 즉, 성경말씀대로 순종해서 올라가고 예전의 사람들이 벧엘에 제단을 쌓기 위해 올라간 것처럼 올라갔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사면의 사람들로 야곱의 아들들을 두렵게 여기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이 일도 지금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예루살렘의 자리로 올라가는 야곱의 자손들을 사면 모든 고을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침략하지 못했습니다. 그와 같이 에스라와 같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사면의 모든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고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무리가 넉 달 동안 평안히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 속에서 안식을 누리며 예루살렘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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