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9일 목요일

역대상 11:1-19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
역대상 11:1-19

1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보고 가로되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2전일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니 다윗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어 4다윗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예루살렘 곧 여브스에 이르니 여브스 토인이 거기 거하였더라 5여브스 토인이 다윗에게 이르기를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6다윗이 가로되 먼저 여브스 사람을 치는 자는 두목과 장관을 삼으리라 하였더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두목이 되었고 7다윗이 그 산성
에 거한 고로 무리가 다윗 성이라 일컬었으며 8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그 남은 성은 요압이 중수하였더라 9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10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두목은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윗의 힘을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세워 왕을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11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수효가 본 이러하니라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은 삼십 인의 두목이라 저가 창을 들어 한 때에 삼백 인을 죽였고 12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세 용사 중 하나이라 13저가 바스담밈에서 다윗과 함께 하였더니 블레셋 사람이 그곳에 모여와서 치니 거기 보리가 많이 난 밭이 있더라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되 14저희가 그 밭 가운데 서서 그 밭을 보호하여 블레셋 사람을 죽였으니 여호와께서 큰 구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15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바위로 내려가서 아둘람 굴 다윗에게 이를 때에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쳤더라 16그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7다윗이 사모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18이 세 사람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고 19가로되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1. 온 이스라엘이 다윗을 왕으로 삼음

본문 1-2절에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보고 가로되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전일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2장 1-4절 상반절에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찌니라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되었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또 자기와 함께한 종자들과 그들의 권속들을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에 거하게 하니라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을 삼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사울 왕이 죽은 다음에 다윗이 먼저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되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 나라는 다윗을 왕으로 삼지 않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다윗을 따라왔는데, 다윗은 유다 지파의 왕으로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다 지파 이외의 열 지파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지 않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7년을 지낸 것입니다. 그래도 다윗은 북쪽 이스라엘을 점령할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헤브론에서 고요하게 왕 노릇을 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이스라엘 전국의 왕을 삼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윗은 그들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전국이 다윗에게로 돌아올 것을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예정한 때가 이를 때까지는 인간의 생각으로 나가지 않고 아주 고요하게 기다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해주시는 대로 기다리면서 자기에게 맡기신바, 그 일만 잘해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7년 6개월 만에 이스보셋이 죽고 나라 전체가 다 다윗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다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돌아와서 다윗에게 자신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만 믿었고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임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하려고 하지않고,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마침내 다 돌아오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을 기다리는 신앙, 믿는 신앙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예정대로 섭리하셔서 친히 일해주실 줄을 믿고 자기가 맡은 일만 충성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대로 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예정대로 친히 이루어 나가시니까, 하나님의 예정과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믿고 끝까지 순종해야 되겠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 작든지 크던지, 만족하며 욕심을 부리지 말고 고요하게 충성해나가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대로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대로 기다리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왕도(王都)로 삼음

본문 4-8절에 “다윗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예루살렘 곧 여브스에 이르니 여브스 토인이 거기 거하였더라 여브스 토인이 다윗에게 이르기를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다윗이 가로되 먼저 여브스 사람을 치는 자는 두목과 장관을 삼으리라 하였더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두목이 되었고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한 고로 무리가 다윗 성이라 일컬었으며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그 남은 성은 요압이 중수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여브스 토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을 다윗이 빼앗아 점령을 하고 왕도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왕도로 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예루살렘을 점령하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씀하였습니까? “먼저 여브스 사람을 치는 자는 두목과 장관을 삼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먼저 나가서 쳤습니까?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앞장서서 한 요압이 두목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왕도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거기에 앞장서서 원수를 쳐서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왕도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누가 먼저 와서 치겠느냐’, 이것입니다. 먼저 앞장서서 생명을 내어놓고 치는 사람이 두목과 장관이 되는 것입니다. 요압이 토인을 쳐서 점령한 후 두목과 장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건설하는데,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은 이렇게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뒷전으로 돌아가지 말고,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 앞장서서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쳐 물리치고 그 땅을 정복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두목과 장관으로 세우십니다. 

오늘날의 두목은 어떤 사람입니까? 앞장서 나가는 사람입니다. 앞장서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생명을 바쳐놓고 전적으로 힘써 나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도 높은 사람이 되고 큰 자가 됩니다. 평안하게 뒷전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워 벌벌떨면서, 육신의 안일주의로 나가고 생명을 우상화하며 나가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도 큰 자가 되지 못합니다. 우선 앞장서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나가는 사람, 적진을 향해서 달려 나가는 사람, 적전상륙을 하는 사람, 강하고 악한 원수를 정복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도 큰 자가 되고, 두목과 장관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갔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지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강성하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과 모든 일을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일,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일, 뜻인 줄 알면 앞장서 나가는 일, 이런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3. 다윗을 도운 용사들

다윗이 말씀대로 행할 때에 용사들이 다윗의 힘이 되어줌

본문 10절에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두목은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윗의 힘을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세워 왕을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을 도와준 사람들입니다. 용사들이 와서 다윗에게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니까 여러 용사들이 다윗에게 와서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용사들이 다윗의 힘을 도운 것이 다윗이 창성한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또 여러 용사들이 와서 다윗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다윗이 점점 창성하고 강성해졌습니다. 

본문 11-14절에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수효가 이러하니라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은 삼십 인의 두목이라 저가 창을 들어 한 때에 삼백인을 죽였고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세 용사 중 하나이라 저가 바스담밈에서 다윗과 함께 하였더니 블레셋 사람이 그곳에 모여와서 치니 거기 보리가 많이 난 밭이 있더라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되 저희가 그 밭 가운데 서서 그 밭을 보호하여 블레셋 사람을 죽였으니 여호와께서 큰 구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삼십 인의 두목 학몬 사람 야소브암이 다윗에게 힘이 되어준 용사들 중 첫 번째 사람입니다. 야소브암은 창을 들어 삼백명을 죽였습니다. 한 사람이 삼백 명을 죽인 것을 보면 야소브암은 정말 큰 용사입니다. 이런 용사가 와서 블레셋 사람을 쳐 죽인 것입니다. 

사무엘하 23장 8절에는 800명을 죽인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이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장의 두목이라 저가 한때에 팔백 인을 쳐죽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새도 한 사람이 800명 죽이는 용사가 있습니까? 300명 죽이는 용사가 있습니까? 요새도 있습니다. 교회에 시험이 들어와서 교회가 혼란스럽고 흔들릴 때, 한 사람이 나와 굳세게 말하면 300명, 800명, 몇 천 명이 다 바로 설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800명을 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나가서 잘 말하면 잘못 되는 것이 바로 설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고려파 교단에 소속되어 있을 때, 총회에서 예배당 문제로 서로 소송하였기 때문에 행정보류를 했었는데, 그 다음 한, 두해 있다가 다시 행정보류를 취소하고 총회로 들어가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예배당 문제로 소송 중에 있는데 들어가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들어가자’, ‘들어가면 안 된다’는 두 의견이 나와서 이 두 가지 의견을 가지고 서로 변론하였습니다. 저는 들어가면 안 된다는 측에 속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저 사람 변론하다가 결국 나 혼자 남아 변론하게 되었습니다. 또 들어가자는 측에서도 목사 한 분만 남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하면 이쪽으로 표가 기울어지고, 상대편 목사님이 말하면 저쪽으로 표가 기울어졌기 때문에, 밤새도록 변론했습니다. 날이 밝아질 때까지 또 각자 변론하다가 결국 투표를 했는데, 우리가 이겼습니다. 밤새도록 한 효과가 난 것입니다. 피곤해서 그만두었다면 우리가 지는 것입니다. 

세계기독교 역사를 보면 주후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세계의 목사들이 모였는데, 아리우스파하고 아타나시우스파하고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아리우스파가 주장하면 그리로 다 기울어졌습니다. 그런데 아리우스파는 이단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은 육신과 비슷한 몸을 입고 나왔지만 육신이 아니다. 예수님의 몸은 우리와 같은 육신이 아니다, 신이다’라고 주장을 했는데, 아타나시우스파에서는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동질(同質)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또 이리로 다 기울어졌습니다. 그때 아타나시우스의 변론으로 수백 명이 넘어 왔습니다. 아타나시우스가 나오지 않았으면 이단으로 다 넘어갈 뻔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300, 800명을 당한다는 말이 요새도 맞습니다. 

매우 위태로운 어떤 교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을 반대하는 파가 있었고 또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목사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반대는 안하지만 속으로 반대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아주 유력합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사람들보다 유력합니다. 유력한 사람들이 반대를 많이 한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님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 강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없다고 합니다. 숫자만 많지 가만히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만 강하게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보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을 지지하는 사람이 강하게 나서야지 반대하는 사람이 강하면 되겠냐고 했습니다. 목사님을 지지하는 사람의 수가 많기는 한데 나서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보고 그렇게 하면 교회가 안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을 위해서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지, 저 사람들은 반대하고 나서는데 여기는 왜 나서는 사람이 없느냐. 한 사람이 나서서 강하게 나가면 다 따라올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흔들릴 때 한 사람이 나와서 성경을 가지고 이치에 맞게 강하고 합리적으로 주장을 하면 상대편이 쏙 들어갑니다. 그러면 800명도 당하는 것이고 300명도 당하는 것입니다. 몇 천도 당할 수 있습니다. 진리와 하나님의 뜻에 딱 맞춰서서 강하게 나가면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다윗을 도와서 나라를 세워 나가는데 강하게 나가는 용사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나라가 잘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세운 지도자 한 명이 하나님 나라 건설에 크게 쓰임 받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바른 종을 도와나가는 사람이 많으면 반대하는 사람이 몇 백 명이 있어도 도와서나가는 강한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이뤄져나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잘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신의주에서 이기선 목사님이 진리 운동을 시작하실 때 이기선 목사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잘했다, 못했다’ 뒤에서 공론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장로가 나와서 “이기선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의주가 이기선 목사님을 중심으로 아주 견고하게 진리 운동을 하는 힘 있는 근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일당 몇 백, 몇 천이 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야소브암 외에 누가 한 명 나갔습니까? 삼마가 나갔습니다. 삼마는 무엇을 한 사람입니까? 녹두밭을 잘 보호한 사람입니다. 사무엘하 23장 11-12절에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이 떼를 지어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되 저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삼마는 녹두밭을 보호했다고 합니다. 또 본문 12절에 엘르아살은 보리밭을 보호했다고 합니다. 다윗과 함께 하다가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오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도망쳤는데 여기 엘르아살은 혼자 남아서 ‘이 보리밭을 빼앗기면 안 된다’고 하면서 생명을 내어놓고 보리밭을 지켰습니다. 다른 전우들은 다 도망쳤지만 거기서 생명을 내놓고 싸워서 원수를 물리치고 이겼습니다. 보리밭을 보호한 것은 양식을 보호한 것입니다. 보리밭을 빼앗기면 무엇을 먹고 살겠습니까? 무엇을 먹고 전쟁하겠습니까?
또 여기서 보리밭을 보호한 것은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를 보호한 것과 같습니다. 엘르아살은 진리를 보호하는 싸움을 한 것입니다. 진리를 양보하지 않은 것입니다. 진리 운동을 하다가 동역자들이 다 도망치고 뒤로 물러가도 진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생명을 내어놓고 원수와 싸운 것입니다. 그런 용사도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여러 동지와 일을 하다가 전부 낙오자가 되어서 도망치고, 두려워서 도망쳐도 혼자서 끝까지 싸우는 것입니다. 진리를 빼앗기지 않고 세워나가는 용사들이 신약시대에 많이 있습니다.

4.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옴

다윗이 하나님의 기업인 고향의 물을 사모함

본문 15-19절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바위로 내려가서 아둘람굴 다윗에게 이를 때에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쳤더라 그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이 사모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이 세 사람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고 가로되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 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일을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아둘림굴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군대는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했습니다. 아둘림은 산성이 있는 곳인 모양입니다. 그 산성에 다윗이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베들레헴을 침범해서 베들레헴이 블레셋 사람의 수하에 들어갔습니다. 

다윗이 베들레헴의 물을 사모하여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라고 하였더니 세 사람이 가서 물을 떠왔습니다. 요셉밧세벳과 엘르아살, 삼마가 다녀왔습니다. 삼마에 대한 기록은 사무엘하 23장 11-12절에 있습니다. 이 세 용사가 생명을 내어놓고 군대를 충돌하며 들어가서 물을 떠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고 가로되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들레헴의 물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옛날에 다윗이 자기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자라날 때 마셨던 좋은 물이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베들레헴이 원수의 수하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좀 길어와서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 고향에서 마셨던 물을 육신적으로만 먹고 싶어한 것이 아닙니다. 베들레헴은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인데, 그곳의 물도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성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고, 또 베들레헴에 있는 물도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좋던, 나쁘던 다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사모하고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물을 사모했던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사모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오직 하늘나라임

그러나 육신적으로만 ‘고향에 한 번 가면 좋겠다. 고향 물 한 번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은 다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은 육신의 고향을 사모합니다. 이북에서 나온 사람들은 고향 한 번 가고 싶은
생각이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남한에 사는 이북 사람들이 고향을 사모해서 추석날 임진 강에 가서 북쪽을 바라보며 제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죄만 짓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고향을 가겠습니까? 또 제사하면 조상들이 와서 먹겠습니까? 괜히 하나님께 죄만 짓는 것입니다. 

우리 고향이 어디라고 했습니까? 고향 한 번 찾아봅시다. 히브리서11장은 고향 장인데 고향에 가고 싶으면 11장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 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고향이 어디입니까? 하늘에 있는 본향, 즉 하늘나라가 고향이라는 것입니다. 전에 있다가 나온 바, 그곳이 고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우리의 고향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고향은 하늘인 줄 알면 됩니다. 땅 위의 고향은 고향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이 나의 고향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 떠나면 하늘나라에 가는 줄 알면 됩니다. 그곳이 우리의 고향인 것입니다. 본향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늘나라를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세상 고향을 사모하지만 예수님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가 자기 고향인 줄 아십시오. 이남 사람도 ‘나는 제주도가 고향이다, 경상도가 고향이다, 전라도가 고향이다, 강원도가 고향이다’하는 지방색을 다 버려야 합니다. 지방 관념을 가지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고향 사람만 좋아해서 투표할 때도 자기 지방 사람에게만 투표하는데, 그러한 지방 관념을 다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육에 속한 것이고 신앙이 아닙니다. 또 그렇게 나가면 눈이 어두워집니다. 지방 관념을 가지면 눈이 어두워져서 다른 지방 사람들의 좋은 것을 보지 못하고 사리판단을 바로 하지 못합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원수가 많이 생깁니다. 자기 지방만 자꾸 위하니까 다른 지방 사람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을 분열시키는 것이고 원수를 많이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 눈이 어두워지는 것이고 육에 속한 것이며 신앙도 바로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지방 관념으로 무엇을 하면 안 됩니다. 지방 관념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의 고향이 어디입니까? 하늘나라입니다. 베들레헴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업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베들레헴도 기업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기업에 원수가 와서 점령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도로 찾아야겠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의 우물도 먹어야 되겠다는 다윗의 마음은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자기 고향의 물을 마셔야 되겠다는 것을 신앙적으로 보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고향을 사모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언제든지 육신의 고향을 사모하지 말고 신앙의 기업,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 신령한 기업을 사모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구원 받은 성도들, 신령한 기업을 사모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다윗이 생명을 내어놓고 물을 떠온 용사들의 노고(勞苦)를 하나님께 돌림

세 용사가 생명을 내어놓고 블레셋 군대의 진을 뚫고 들어가서 물을 길어 왔습니다. 사실 다윗이 용사들에게 목숨을 걸고 물을 가져오라고 시킨 것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사모하는 것은 좋으나 부하들이 가다가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원수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그곳을 뚫고 나가다가 자칫하면 죽는 것입니다. 원수의 진을 뚫으려면 죽을 수도 있는데 부하를 거기로 보낸 것은 다윗이 조금은 실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향을 사모하는 것은 좋으나 하나님의 기업인 부하들을 이렇게 위태한 상황에 빠지게 한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 용사는 윗사람이 명령했기 때문에 무조건 원수의 진을 돌파하여 물을 길러 왔습니다. 아주 훌륭한 용사들입니다. 윗사람의 명령이라고 하면 생명을 내어놓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부하들이 참 귀한 부하들입니다. 아주 귀한 부하들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다윗이 깨달았습니다. 일을 시킬 때 까지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떠 오면 좋겠다고 했지만, 정작 물을 떠왔다는 보고를 받은 다음에는 아찔한 것입니다. 아주 무시무시한 원수와 싸워가며 물 떠온 것을 생각하니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해졌습니다. ‘내가 이
물을 어떻게 먹겠는가. 이 사람들이 생명을 내어놓고 피 흘릴 각오를 하고 떠 온 것을 내가 어떻게 마시나. 내가 먹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바쳐야 되겠다’하고 생각해서 그 물을 하나님께 부어 전제로 바쳤습니다. 물을 부어 드리는 제사를 전제라고 합니다. 부하가 이렇게 윗
사람을 위해서 생명을 내어놓고 충성한 것은 상당히 좋지만 윗사람으로서 그 물을 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생명인 피와 같은 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부어드린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잘한 것입니다. 다윗은 부하를 사랑하고 아끼며 부하를 귀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나라가 강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사모하고 또 아랫사람은 생명을 내어놓고 왕의 명령을 순종합니다. 또 윗사람은 물을 길어오게 한 것을 후회하면서 부하들이 생명을 내어놓고 가져온 피와 같은 물을 마실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부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랫사람, 윗사람이 다 바로 한 것입니다. 생명을 내어놓고 윗사람의 명령을 순종한 것과 또 순종한 것을 귀히 여겨 자기가 받지 않고 하나님께 돌린 것이 다 귀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니까 다윗의 나라가 점점 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이렇게 하면 왕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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