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5일 일요일

열왕기하 13:1-19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와 요아스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와 요아스
열왕기하 13:1-19

1유다 왕 아하시야

왕이 되어 십칠 년을 치리하며 2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3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더니 4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저희의 학대 받음을 보셨음이라 5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6저희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저 두었더라 7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진멸하여 타작 마당의 티끌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과 병거 십 승과 보병 일만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아니하였더라 8여호아하스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것과 그 권력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9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0유다 왕 요아스의 삼십칠 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륙 년을 치리하며 11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였더라 12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유다 왕 아마샤와 싸운 권력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3요아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그 위에 앉으니라 14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15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활과 살들을 취하매 16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 17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 곧 쏘매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18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19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1. 여호아하스의 범죄와 징계 받은 일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아니함

본문 1-2절에 “유다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이십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라고 하였습
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어서 17년을 지냈습니다.

본문 3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더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본문에는 북쪽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았다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2절에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6절에 “저희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저 두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또 11절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호아하스 왕의 아들 요아스왕 때에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대 나라를 분열시켜서 북쪽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한 사람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인데, 그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는 금송아지 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벧엘과 단에서 금송아지 섬기는 죄를 처음에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범했는데, 여로보암 이후의 북쪽 나라 왕들이 내내 그 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죄는 회개할 때도 있었고 우상을 타파할 때도 있었지만,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는 북쪽 나라 왕들이 내내 떠나지 못하고 그냥 섬겨 내려왔습니다. 북쪽 나라에 여러 대가 내려갔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여로보암이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제1대 왕입니다. 그리고 2대가 나답, 3대가 바아사, 4대가 엘라, 5대가 시므리, 6대가 오므리, 7대가 아합, 8대가 아하시야, 9대가 요람, 10대가 예후, 11대가 여호아하스, 12대가 요아스입니다. 12대까지 내려가도록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예후가 혁명을 일으켜 아합의 집을 다 때려 부셨지만 그래도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떠나지 못한 것입니까?

여로보암의 죄 -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 하며 백성들로 섬기게 함

여로보암의 죄는 금송아지를 벧엘에 만들어놓은 다음, 그것을 우상이라고 하면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섬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금송아지가 하나님이라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니까 백성들이 다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남쪽 유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것이 하나님이라고 알려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들이 이렇게 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살고 있는 그 지역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왜 그 지역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까? 지금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왕들은 가다가 혁명을 하고 가다가 혁명을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다 나라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서 하나님을 섬기면 자신들에게 불리합니다. 원칙대로 하면 예루살렘의 성전에 가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북쪽 나라가 남쪽 나라에 밀리게 됩니다. 전부 다 남쪽 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니까 북쪽 나라 왕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리한 것입니다. 북쪽 나라의 여러 좋지 않은 사정들이 남쪽 나라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 백성들이 남쪽 나라에 오가다보면 하나님을 섬기려고 갔다가 안 돌아오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가서, 다윗이나 솔로몬이 섬기던 그 하나님을 생각하면, 옛날 솔로몬 왕이 생각나게 될 것입니다. 또 다윗의 정통이 진짜 왕이라는 인식이 백성들에게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즉, 백성들이 남쪽 나라로 드나들게 되면 북쪽 나라의 정권 유지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 북쪽 나라에서는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을 섬기게 한 것입니다. 이 죄가 큰 죄입니다. 그래서 북쪽 나라는 하나님께 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요새로 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데 성경대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 중심으로 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기 중심으로,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 교회나 자기 교파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성경대로 섬기지 못하고 이렇게 잘못 섬기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성경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인본주의로 섬기는 것은 벧엘의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또 성경적으로 섬기지 못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면 그것도 벧엘의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중심, 자기 교파 중심,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다 벧엘의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와 같은 것입니다. 또 성경대로 섬기지 못하고, 신비주의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벧엘의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왜 같습니까?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묵시를 받았다. 음성을 들었다. 음성을 듣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주관적인 감정으로 깨달아 느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이다, 또 하나님의 묵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부 다 주관적인 감정과 판단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기 감정적인 주관이나 환상에서 나오는 것을 하나님이라고 하니까 그것이 우상입니다. 참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벧엘의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튼 타락한 이스라엘이 이렇게 금송아지를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셔서 학대 받게 만드셨습니다.

징계 중이라도 회개하며 간절히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심

본문 4-5절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저희의 학대 받음을 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람 사람들에게 붙이셔서 징계를 받게 만드셨습니다. 그때에 여호아하스 왕이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 간구하는 것을 들으시고 저희 학대 받음을 보시고 이스라엘에 구원자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또 징계 중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회개하고, 간구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구원자를 보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징계가 많고,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지고, 원수의 발 아래에 밟혔다고 할지라도 거기에서 부르짖는 길이 있습니다. 거기서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구원자를 보내셔서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자로 누구를 보내실지 사람은 모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가운데 있지만, 그럼에도 아람 왕의 학대에서 건져내어주시는 것입니다. 긍휼을 베푸셔서, 구원자를 보내어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때에 전에 짓된 죄에서 완전히 떠나야 함

본문 6절에 “저희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저 두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건져주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죄에서 완전히 떠나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또 죄 가운데 머물렀습니다. 죄를 범했기 때문에 징계가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징계가 온 다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죄에서 떠나야겠는데, 다시 또 죄 가운데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다음에는 더욱 더 진노하셔서 더 큰 징계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범죄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아람 왕 하사엘과 그 아들 벤하닷 등 원수를 동원시키셔서 이스라엘을 학대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학대를 받고, 고통을 받고, 징계를 받을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또 학대 받음을 보시고 구원자를 보내셔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고난 가운데에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건짐 받은 다음에 다시 전에 지은 죄를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전보다 더 크게 진노 하시고 더 큰 징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진멸하여 타작 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과 병거 십 승과 보병 일만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람 왕을 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진노하시고 징계를 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작 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시고, 마병 오십과 병거 십 승과 보병 일만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아니하셨습니다. 다 진멸하셨습니다. 마병 오십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병거 십 승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아람 군대는 몇 십만 몇 백만은 되겠는데, 여기는 일만밖에 남겨두지 아니하고 다 진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 하셨습니다. 징계를 받으면서 회개했으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때에 전에 짓던 죄에서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떠나지 아니하고 다시 또 그 죄를 짓고 나가면 전보다 더 심한 매를 맞습니다.

본문 8-9절에 “여호아하스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것과 그 권력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아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2.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치세(治世)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교통함

본문 10절에 “유다 왕 요아스의 삼십칠 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륙 년을 치리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남쪽 나라와 북쪽 나라 왕의 이름이 요아스로, 서로 같습니다. 남쪽 나라인 유다 나라 요아스 왕이 먼저입니다. 삼십칠 년에 먼저 왕이 되었는데, 북쪽 나라에서는 삼십칠 년 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똑같으니까 남쪽 나라 요아스 왕인지, 북쪽 나라 요아스 왕인지 분별하기가 힘이 듭니다. 과거에도 같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아하시야라는 왕이 두 명 있었습니다. 유다 나라 6대 왕,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의 8대 왕이 아하시야 왕입니다.
이 경우에는 이스라엘 나라 왕이 먼저이고 유다 나라 왕이 나중입니다. 남쪽 나라에서 북쪽 나라를 본받았습니다. 그래서 남쪽 유다 나라가 타락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교회를 본받아서 정통의 보수적인 교회가 타락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북쪽 나라는 왜 타락을 했습니까? 북쪽 나라에서는 벧엘에서 금송아지를 섬기고, 7월 15일 절기를 8월 15일로 고쳐 지켰습니다. 성경에는 7월 15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을 고친 것입니다. 그리고 남쪽 나라에서는 레위 사람만 제사장이 되었는데, 북쪽 나라에서는 아무 사람이나 제사장이 되기를 원하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로 보아 북쪽 나라는 타락한 것입니다.
북쪽 나라가 성경을 떠났기 때문에 타락이 된 것입니다. 남쪽 나라는 그래도 성경적으로 믿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배하고, 7월 15일 절기를 지키고, 레위 사람을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남쪽 나라에서는 성경대로 바르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 왕의 아버지인 여호사밧 왕이 선한 왕이었지만 북쪽 나라와 타협하며 나갔습니다. 여호사밧이 남쪽 나라의 선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쪽 나라 아합 왕의 집과 혼사를 하고 아합의 집에 왔다 갔다 하며 소통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사밧 왕의 아들 여호람이 북 이스라엘 아합 왕의 딸과 결혼하여 생긴 아들의 이름을 아하시야로 지은 것입니다. 

아무튼 성경대로 바로 믿는 교회가 타락한 교회를 본받다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다음에 회개를 했는데, 요아스왕 때에는 여호야다 제사장이 있어서 유다 나라를 어느 정도 바르게 세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쪽 이스라엘 나라가 유다 나라를 본받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정통 교회가 잘못된 교회를 본받았고, 그다음에는 타락한 교회가 바르게 하는 교회를 본받은 것입니다. 유다 나라가 북쪽 나라를 본받았고, 또 북쪽 나라가 유다 나라의 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 서로 교통하고 타협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북쪽 나라에서 조금 잘되면 남쪽 나라에서 우리도 같이 하자고 하고, 유다 나라가 조금 잘될 때에는 이스라엘 나라에서 우리도 그와 같이 하면 되겠다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아스라는 이름만 같이 한 것이지, 내용은 같지 않습니다. 바르게 하는 교회는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는데, 타락한 교회는 외모만 본받는 것입니다. 내용은 아닙니다. 하여간 요하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십륙 년을 치리했습니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함

본문 11절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은 유다 왕 요아스와 이름은 같지만 처음부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의 길을 떠나지 않고 악한 길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2-13절에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유다 왕 아마샤와 싸운 권력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아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 되고 여로보암이 그 위에 앉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여로보암이 또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2의 여로보암입니다. 첫 번째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1대 왕이고, 두 번째 여로보암은 13대 왕입니다. 13대 왕의 이름이 또 여로보암인 것입니다.

3. 이스라엘 요아스 왕과 엘리사의 관계

살고 죽는 것, 병이 낫고 안 낫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

본문 14-17에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활과 살들을 취하매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 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 곧 쏘매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도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실 때가 되면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좋은 사람은 병이 나지 않는다, 병은 다 죄 값으로 난다’라고 하는 신비주의자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엘리사와 같이 믿음이 좋은 사람도 때가 되면 죽을 병이 생기게 되어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십니다. 엘리사가 기도만 해도 모든 병이 다 낫지만,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면 자기 자신이 가야 합니다. 기도하면 모든 병이 다 낫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도하면 나을 병은 낫습니다. 그러나 안 나을 병은 안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실 것이면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그렇습니다. 바울이 심한 눈 병이 있었는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병이 낫지 않았습니다. 세 번을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다시 그런 기도를 하지 말아라’고 하셨습니다. 또 디모데의 위(胃)에 병이 나서 낫지를 않아, 바울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낫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의 눈의 병과 디모데의 위의 병은 다 은혜로 주신 것이고 가시로 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기도를 해주어서 병이 얼마나 많이 나았습니까? 바울의 손수건만 병자 위에 놓아도 병자가 다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기의 병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의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능력이 없어서 못 고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낫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시를 사랑으로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엘리사도 죽을 병이 생긴 뒤에는 아무리 기도를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야한다고 하시면 가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사람만 병이 든다’라고 생
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선지자라도 병이 들 수 있습니다. 병이 들었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청년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청년의 어머니도 아들과 같이 열심히 잘 나왔는데 약방을 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감기가 걸려서 감기약을 달라고 했더니 목사도 병이 들 수 있냐고 하였답니다. 목사도 병이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든 사람이 기도해주면 자기의 병은 안 나아도 기도 받는 사람의 병은 나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낫지 못했지만 바울이 기도해서 다른 사람들의 병이 많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안 나을 사람은 안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실 사람은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다 낫는 것이 아닙니다. 가야 할 때는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병이 나을 때에는 자기가 기도해도 낫고 누가 기도해도 다 낫습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노릇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이것은 전에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한 말입니다. 열왕기하 2장 12절 상반절에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할 때에 엘리사가 자기 선생을 보고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에게 와서, 엘리사가 자기 선생에게 한 말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신기합니다. 어떤 연관이 있는 것입니까? 엘리사가 자기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하면서 섬기며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했던 것은 스승인 엘리야를 이스라엘을 견고하게 지켜주고 세워주는 하나님의 사람인 줄로 알고 존경했기 때문입니다. 선생으로 받들어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접을 자기가 또 받게 된 것입니다. 수십 년 후에 자기가 받게 된 것입니다. 정수리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까지 흐른다는 말처럼 자기가 윗사람에게 한 대로 자기도 그대로 대접을 받게 됩니다. 엘리사는 윗사람을 선생으로, 아버지로 섬기고 이스라엘을 세워나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경했기 때문에 몇 십 년 후에 자기가 그대로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부모를 고려장한다는 것은 죽기 전에 산 채로 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고려장을 한 사람은 자기가 죽을 때에도 고려장을 하게 됩니다. 자기 부모를 자기가 죽기 전에 내버렸으니까 자기도 죽기 전에 내버려지게 됩니다. 자신이 부모를 대접한 대로 자기 자식이 그대로 합니다. 어머니가 죽어 가는데, 깊은 산골에 내다버리고 돌아섭니다. 그것을 아들이 보고 배워서 늙은 다음에 자기 부모를 내 버리게 됩니다. 자기가 윗사람에게 한 대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윗사람을 박대했으면 자기도 언젠가 박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시어머니를 박대한 며느리는 며느리가 들어오면 그대로 받습니다. 그대로 받아야만 그때가 되어서야 시어머니 박대한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할 날이 옵니다. 또 부모를 박대한 자식은 자기 자식한테 그대로 받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잘 섬긴 사람은 자기 아들에게 또 그대로 받습니다.
어떤 가정이 하나 있었는데, 부모를 잘 섬기는 가정이었습니다. 어느 날 부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자식이 환갑이 되었습니다. 그 자식도 아들들이 여럿이고 각자 흩어져서 사는데 어머니가 환갑을 한다고 자식들이 멀리서 다 모였습니다. 그때 자식들이 와서 하는 것을 보니까 부모에게 지극하게 잘했습니다. 제가 그 부모가 자기 부모에게 하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손자들이 그것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심은 대로 거두는구나’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하는 것처럼, 자기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하는 것처럼, 부모가 한 대로 자식이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윗사람에게 잘해야 자기도 대접 받을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시부모에게 잘해야 자기도 다음에 며느리에게 대접을 받게 됩니다. 시부모를 천대하면 자기도 천대 받을 것입니다. 시간 문제입니다. 반드시 때가 되면 자기도 천대 받게 될 것 입니다. 엘리사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가 선생 엘리야를 아버지로 모시고 이스라엘을 지켜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아 존경하며 섬겼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를 그렇게 대하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윗사람에게 잘못하면서 아랫사람이 나에게 잘할 것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부모에게 잘못하면 내 자식에게 대접받는 것을 절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망상입니다. 팥 심었는데 콩 나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팥을 심었으면 팥이 나와야지 왜 콩이 나오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내 자신이 한 대로 거두고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범사에 선을 행하고, 윗사람을 대접할 줄 알고, 부모를 공경할 줄 알고, 자기를 인도하는 사람을 존경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진리를 잘 지켜야 함

이스라엘이 잘되었던 것은 엘리야가 또 엘리사가 기도해주어서 그런 것입니다. 또 그가 가르쳐주는 교훈 때문에 이스라엘이 견고하게 서나가고, 진리가 서나가고, 교회가 서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왕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를 높여 말하는 것입니다. 또 진정으로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마병이여”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이제 세상을 떠나게 될 엘리사 앞에 와서 존경을 표하며 엘리사가 지금까지 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떠난 다음에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지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왕이 이렇게 했다는 것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선지자의 일을 66년 동안 했다고 합니다. 활동 초기인 20년 동안에는 많은 일들을 했고, 기름 부음 받은 이후로 45년간은 침묵을 지키면서 이스라엘을 보호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유익을 주고 원수를 막아주는 일을 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진리운동, 구원역사가 잘되어나가도록 믿음을 잘 지켜야겠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진리를 세워나가야겠습니다. 이 진리를 헐어 무너뜨리려는 원수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비진리, 인본주의, 타락한 교회, 이방 세력 교회가 순수한 신앙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항상 지키고 보호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으로 세워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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