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이 생의 허무함과 연약함을 탄식함
욥기 14:1-22
1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2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3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을 들어 살피시나이까 나를 주의 앞으로 이끌어서 심문하시나이까 4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5그날을 정하셨고 그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6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로 쉬게 하사 품군같이 그날을 마치게 하옵소서 7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찌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8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찌라도 9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10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즉 그가 어디 있느뇨 11물이 바다에서 줄어지고 하수가 잦아서 마름같이 12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13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14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 놓이기를 기다렸겠나이다 15주께서는 나를 부르셨겠고 나는 대답하였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아껴보셨겠나이다 16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살피지 아니하시나이까 17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18무너지는 산은 정녕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 가고 19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 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소망을 끊으시나이다 20주께서 사람을 영영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 보내시오니 21그 아들이 존귀하나 그가 알지 못하며 비천하나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22오직 자기의 살이 아프고 자기의 마음이 슬플 뿐이니이다
욥기 14:1-22
1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2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3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을 들어 살피시나이까 나를 주의 앞으로 이끌어서 심문하시나이까 4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5그날을 정하셨고 그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6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로 쉬게 하사 품군같이 그날을 마치게 하옵소서 7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찌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8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찌라도 9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10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즉 그가 어디 있느뇨 11물이 바다에서 줄어지고 하수가 잦아서 마름같이 12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13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14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 놓이기를 기다렸겠나이다 15주께서는 나를 부르셨겠고 나는 대답하였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아껴보셨겠나이다 16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살피지 아니하시나이까 17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18무너지는 산은 정녕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 가고 19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 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소망을 끊으시나이다 20주께서 사람을 영영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 보내시오니 21그 아들이 존귀하나 그가 알지 못하며 비천하나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22오직 자기의 살이 아프고 자기의 마음이 슬플 뿐이니이다
1. 인생은 고난이 많으며 잠깐 동안 사는 것임
본문 1-2절에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한 번 태어난 뒤로 사는 날이 적다는 것입니다. 괴로움은 가득하고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히 가고 머무름이 없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년 수가 칠십이고 건강하면 팔십인데,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입니다. 이 세상은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또 빠르게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인간의 일생이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만 세세토록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일생이라는 것은 풀과 같아서 잠시 잠깐이면 끝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이 떨어집니다. 인간의 영광이라는 것은 풀의 꽃과 같고 일생이라는 것은 풀과 같아서 잠시 지나가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옵니다. 잠깐 지나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을 들어 살피시나이까 나를 주의 앞으로 이끌어서 심문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풀과 같이 아무것도 아닌 인간을 무엇이관대 이렇게 심문하시고 살펴보시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25장 4-6절에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달이라도 깨끗지 못하고 별도 명랑치 못한데, 하물며 구더기와 같고 벌레와 같은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깨끗하다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인생은 하나님 앞에 깨끗하다고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놓이면 다 부정하고 더러운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5-6절에 “그날을 정하셨고 그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정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너는 몇 살까지 살다가 오너라’하고 정해 놓으셨습니다. 또 그 달 수도 정하셨습니다. ‘몇 달, 몇 년 살다가 오너라’, 이렇게 계획하셔서 연월일시, 달과 날, 시간까지 다 정해놓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세상에서 몇 년 살고 언제까지 살다가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시간에 오너라’하시며 다 정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을 정하셨고 그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사람이 넘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한 때까지만 살고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 이상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리고 안 믿는 사람은 지옥에 가고 마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로 쉬게 하사 품군같이 그날을 마치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서 눈을 돌이키셔서 가만히 놔두시고 징계하시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품꾼은 그 하루가 잘 마쳐지기를 원합니다. 한 날을 마치면 자기가 할 일을 다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도 품꾼과 같이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기한을 다 마치고 하나님 앞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2. 인생의 허무함과 하나님께 대한 소망
인생의 허무함
본문 7-10절에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찌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찌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즉 그가 어디 있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체만 두고 하는 말입니다. 육체만으로 볼 때 사람은 나무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찍히면 다시 나고, 자르면 그 옆에서 싹이 나서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무가 많습니다. 버드나무도 자르면 다시 새 가지가 올라옵니다. 또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그 뿌리에서 또 다시 나오는 것이 많습니다. 풀은 말라서 죽지만 뿌리에서 다시 나오는 것처럼, 나무도 위에 것은 죽어도 뿌리에서는 다시 새 가지나 잎이 돋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카시아 나무의 뿌리 같은 것도 돋아나는 가지마다 싹이 나옵니다. 또 원 나무가 죽어도 그 뿌리에서 다시 새 가지를 뻗어 성장하는 나무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아주 없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본문 11-12절에 “물이 바다에서 줄어지고 하수가 잦아서 마름같이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한 번 죽어서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일어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죄악의 하늘이 없어져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까지,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날까지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잠도 깨어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하늘이 없어질 날이 옵니다. 그때에는 성도가 다 일어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4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처음 하늘, 죄악의 하늘, 죄악의 땅은 없어지고 신천지(新天地)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하여 이 죄를 다 없앨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마귀를 무저갱에 잡아가두시고 죄가 없는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자던 성도가 다 부활해서 예수님을 맞아 올라가고 이 세상은 천년왕국이 됩니다. 죄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육체를 볼 때에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만 두고 보면 나무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한 번 찍히더라도 다시 새 가지가 나오는데, 육체가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죄악의 하늘, 죄악의 땅이 심판해서 없어지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이 생기기 전까지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생겨야 그때 비로소 일어납니다.
성도가 다 일어나고 천년왕국이 되고 불신자는 천년왕국 끝에 일어나서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여간 육체만 보면 사람은 나무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이 있고 심판이 있고 성도의 부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욥의 소망
본문 13절에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음부에 감춘다’는 말은 무덤에 감춘다는 뜻입니다. 즉,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무덤에 감추어달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가 쉴 때가 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 하옵소서’라고 하였는데, 기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는 한 번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나무만도 못한 것입니다. 또 그 잠을 깨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한이 있습니다. 아예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없어질 때, 죄악의 하늘과 땅이 심판을 받는 날, 새 하늘과 새 땅이 생길 때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기한을 정해두었다가 그 기한이 되면 다시 부활할 것을 소망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입니다. 무덤에 장사 지내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부활한다는 소망을 가지고 그 기한까지 머무른다는 것입니다. 그 기한까지 감추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성도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무덤이 터지고 다시 부활합니다.
진노가 쉬는 기한이 있는데, 그 기한이 되면 다시 부활합니다. 욥기19장 25-26절에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
서 하나님을 볼 것을 가르치는 동시에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시편 16편 10절에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하는 동시에 성도의 부활도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성도는 어떠한 일이 닥쳐도 즐겁고 안전하며 죽어도 소망이 있습니다. 이는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에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 놓이기를 기다렸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부활하는 날까지는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싸우는 날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싸움을 계속 싸워나가야만 합니다. 잘 싸우지 못하면 마귀에게 정복당하고 마귀의 종이 됩니다. 그리고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놓이기를 기다리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마귀와 죄악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의 자유에 이르는 자리에 들어가기를 언제나 원한다는 뜻입니다. 여러 가지 얽매인 것들과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생명의 자유, 영의 자유로 달음박질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주께서는 나를 부르셨겠고 나는 대답하였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아껴보셨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주님이 자신을 언제나 불러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부르실 때에 대답할 것을 언제나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욥이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언제나 아껴보시는 주님이신 줄을 믿은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성도를 아껴보시고 또 불러주시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런 자리에 있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 마음은 과거에도 그런 자리에 있었고 또 앞으로도 그런 자리에 있기를 심히 원하는 마음입니다.
3. 엄중한 하나님의 주권
사람이 소망을 가지고 살지만, 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임
본문 16-17절에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살피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걸음을 세어보시며 잘못한 것을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허물을 주머니에 봉해놓으신다는 것입니다. 죄악을 봉지에 싸매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8-19절에 “무너지는 산은 정녕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 가고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 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소망을 끊으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무너지는 산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고 무너지면 흩어지고 맙니다. 바위는 그 자리에서 굴러가게 되어 있고 물가에 도달합니다. 또 물이 흐르면서 돌은 닳아집니다.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버리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장마라서 물이 넘칠 때에는 땅의 티끌을 다 씻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사람의 소망이 다 끊어집니다. 아무리 사람이 소망을 가지고 잘하려고 해도 걷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산이 무너지는데 사람이 걷잡을 수 있겠습니까? 장마 물이 강에 넘치는데, 어떻게 그것을 사람이 막을 수 있겠습니까? 폭포수가 계속 내리치면 돌은 다 닳아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을 사람이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소망을 가지고 나가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의 소망을 다 무효케 만들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될 것이고,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소망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서 단단히 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다 무너지고 맙니다. 인간의 소망은 하루아침에 다 무너집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시면 되는 것이고, 안 해주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되든지 안 되든지 주의 뜻대로 이루어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나가야지, 사람이 계획을 세워놓고 소망을 가지며 그대로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3-17절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였습니다.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하였습니까? ‘아무 도시에 가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해서 돈을 좀 많이 벌어야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들으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 없어질지 모릅니다. 돈을 번다고 해도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인데, 많이 번다고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가지고 갈 수 있습니까? 죽을 때 가지고 갈 수도 없습니다.
매일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함
그리고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이라고 하였는데,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데려가시는 것이 뜻이면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이고, 또 주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허탄한 자랑입니까? 믿는 일을 잘하지 못하고 세상 것이나 잘되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다 허탄한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지 못하고 제 뜻대로 해서 잘되었다고 하는 것이 다 허탄한 자랑입니다. 그것은 다 악한 것입니다. 허탄한 계획, 허탄한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그저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또 이것, 저것을 할 수 있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하면서 그날, 그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데려가실지 모르고, 사람이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다 허탄한 자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날, 그날 믿음으로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인생이 자기의 소망한 대로 다 되지 않습니다. 계획은 하지만 그 계획대로 다 하지는 못 합니다. 계획대로 다 되는 사람은 백 명에 한 명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만 명에 한 명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다 계획을 세우고 나가지만, 계획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주시는 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되는 것이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4. 죽음의 비애(悲哀)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면 사람이 어찌할 수 없음
본문 20절에 “주께서 사람을 영영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 보내시오니”라고 하였습니다. 기한이 되면 주께서 사람을 이겨서 쫓아 보내십니다. 이것은 세상을 떠난다는 뜻이고 세상을 떠나면 얼굴빛이 변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데려
가시면 사람이 그것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대로 그저 순종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내신 법칙을 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 섭리적인 역사는 어길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못 어깁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겨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데려가시고, 부자도 데려가시고, 권세가 많은 사람도 데려가심으로 다 이기십니다.
지금 북한의 김일성도 여러 명의 의사가 붙어서 건강을 관리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 말로는 몇 백 명이 들러붙어서 관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몇 백 명이 붙어서 관리를 해도 하나님께서 ‘오너라’하시면 즉시 세상을 떠나가는 것입니다. 얼굴빛이 변해서 검어지고 건강이 악화되어 죽으면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를 아무리 많이 데려다놓아도 하나님의 때가 다 되었기 때문에 얼마 안 남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누가 이기겠습니까? 다 쫓아 보내시고 떠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본문 21절에 “그 아들이 존귀하나 그가 알지 못하며 비천하나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들이 존귀해지나 그 아버지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비천하나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떠나면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천당에 가면 세상 것을 간섭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존귀 하든지 비천하든지 세상 것은 다 끝났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것이고, 안 믿는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것이므로 이 세상 아들이 잘되어도 모르고 잘 안 되어도 모릅니다. 또 자기가 세워놓은 것을 팔아 먹어도 모릅니다.
아버지가 해놓은 것을 팔아먹는 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전에 혜화동에 가면 수도 의과대학이 있었는데, 어떤 아들이 그것을 고려 대학에 팔았습니다. 아버지가 세워놓은 의과대학을 아들이 팔아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그것을 압니까? 알지 못합니다. 아들이 비천해져도 알지 못하고 존귀해져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면 끝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천당에 가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살게 됩니다. 그때에는 이 세상 것을 가지고 간섭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지옥에 갔으면 거기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지, 세상의 자기 아들이 잘되고 못 되고를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본문 22절에 “오직 자기의 살이 아프고 자기의 마음이 슬플 뿐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당하는 고통은 오직 세상에서만 아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할 때에는 마음이 아프고 살이 아프고 마음이 슬플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음으로
이기면 도리어 자기의 구원이 되고 고난으로 인해 조금 더 연단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더욱 영광스런 가운데 서게 됩니다. 살이 아프고 마음은 슬프지만, 그러한 고난 속에서 욥은 정금같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살이 아프고 마음이 슬프지만 연단을 잘 받으면 정금같이 만들어져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의 소망입니다. 육신적으로는 말할수 없는 고통이 오고 마음에는 슬픔이 닥치지만 그것을 잘 참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믿음으로 이기면 연단이 되고 잘 만들어져서 금이나 정금보다 귀하게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갈 때에 영광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슬프고 아픈 고통이 오더라도 믿음으로 잘 연단을 받아 자기를 정금같이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복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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