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파수(把守)하려는 욥
욥기 13:1-28
1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통달하였느니라 2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한 내가 아니니라 3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4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데없는 의원이니라 5너희가 잠잠하고 잠잠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6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보라 7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궤휼을 말하려느냐 8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좇으려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려느냐 9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10만일 가만히 낯을 좇을찐대 그가 정녕 너희를 책망하시리니 11그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 위엄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겠느냐 12너희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의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13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임하든지 내가 당하리라 14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15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 16사곡한 자는 그의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17너희는 들으라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설명을 너희 귀에 담을찌니라 18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스스로 의로운 줄 아노라 19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20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21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옵시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마옵실 것이니이다 22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나로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23나의 불법과 죄가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24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우시고 나를 주의 대적으로 여기시나이까 25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래시며 마른 검불을 따르시나이까 26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나로 나의 어렸을 때에 지은 죄를 받게 하시오며 27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한정하시나이다 28나는 썩은 물건의 후패함 같으며 좀먹은 의복 같으니이다
욥기 13:1-28
1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통달하였느니라 2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한 내가 아니니라 3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4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데없는 의원이니라 5너희가 잠잠하고 잠잠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6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보라 7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궤휼을 말하려느냐 8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좇으려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려느냐 9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10만일 가만히 낯을 좇을찐대 그가 정녕 너희를 책망하시리니 11그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 위엄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겠느냐 12너희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의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13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임하든지 내가 당하리라 14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15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 16사곡한 자는 그의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17너희는 들으라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설명을 너희 귀에 담을찌니라 18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스스로 의로운 줄 아노라 19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20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21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옵시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마옵실 것이니이다 22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나로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23나의 불법과 죄가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24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우시고 나를 주의 대적으로 여기시나이까 25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래시며 마른 검불을 따르시나이까 26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나로 나의 어렸을 때에 지은 죄를 받게 하시오며 27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한정하시나이다 28나는 썩은 물건의 후패함 같으며 좀먹은 의복 같으니이다
1. 욥이 친구들의 말을 비판함
자신의 특수한 환경과 진리를 변호함
본문 1-2절에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통달하였느니라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한 내가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친구들이 욥에게 여러 가지로 조언을 많이 하였습니다. 지금 욥의 세 친구는 욥에게 위로를 해주고, 여러 가지 보편적인 진리를 권면하려고 온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특수한 환경에 있기 때문에 특수한 진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욥은 보편적인 진리는 자신도 알고 통달한 것이기 때문에 “이미 보았고 귀가 들은 것이라 너희만 못한 내가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전능자 하나님께 말씀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의논하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에 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하나님께 의논하자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찌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의논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와서 위로해 줘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데없는 의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의 고난당하는 것을 위로해주고 잘못된 것을 고쳐주려고 왔는데, 그것은 욥을 진정으로 고쳐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욥은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데없는 의원(醫員)이니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욥의 세 친구가 말하는 것이 진리이긴 하지만, 그것들은 욥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보편적인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의 세 친구가 하는 말은 욥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와 같이 된것이고 쓸데없는 의사와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욥은 특수한 병에 걸렸는데, 그의 친구들은 보통 병에 걸린 줄로 알고 보편적인 방법으로 말을 해준 것입니다. 그래서 욥에게는 그것이 거짓말이 되며 병을 고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특별한 병에 걸려서 열이 높다고 합시다. 그러면 보통 상식으로는 해열제를 먹어서 열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욥의 상황은 내장에 특별한 병이 나서 열이 높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보통 상식으로 해열제를 먹으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욥의 병이 낫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욥에게는 친구들이 쓸데없는 의사이고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해열제를 먹으면 병이 낫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 됩니다. 무슨 병인지 진단을 바로 하고 거기에 대한 치료를 해야만 병이 낫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부적인 부분에만 약을 발라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사람을 속이는 것과 같고 쓸데없는 의사와 같다는 것입니다.
한의사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탈장 증상이 있었습니다. 탈장은 장이 아래로 내려가는 병입니다. 탈장은 수술을 해서 장이 내려가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의사가 약을 먹으면 틀림없이 낫는다고 해서 먹었는데, 낫지를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의사가 또 약 한 재를 더 먹으면 낫는다고 하여 먹었답니다. 이번에는 녹용을 섞은 약을 먹으면 꼭 낫는다고 하여 몇 십만 원을 주고 먹었는데 역시 병이 낫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한 후에 나았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으면 될 것인데, 괜히 한약 몇 재를 먹느라 고생한 것입니다. 게다가 약 값까지 많이 들어서 헛된 수고만 한 것입니다. 탈장과 같은 것은 한약으로 안 낫습니다. 공연히 잘못된 이야기를 듣는 바람에 돈을 많이 쓰고 병만 키운 것입니다. 그렇게 수고만 하다가 결국 병이 낫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욥도 이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병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친구들은 욥이 왜 환난을 당하는지 바로 알고 거기에 대해 바른 진리를 말해줘야 하는데, 그것은 다 덮어놓고 “죄 때문에 당한다. 회개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데 회개해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아무리 생각해도 회개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쓸데없는 의사이고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속이려는 변명은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고 비판함
본문 5절에 “너희가 잠잠하고 잠잠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잠하고 잠잠하면 어리석음이 들어나지 않는데, 자꾸 말하기 때문에 도리어 너희의 어리석음이 다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잠잠하면 어리석은 것이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떠들면 그것은 전부 다 헛된 것만 말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헛된 처방이나 말해주고 마는 것입니다. 잠잠한 사람이 도리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알면 좋지만, 바로 알지 못하고 떠들어대는 사람은 도리어 일만 저지르고 더 큰 사고만 만듭니다. 의사로 말하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약 쓰고 저 약 쓰다가 병만 더 중하게 만드는 격입니다. 바로 치료할 것도 치료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본문 6-8절에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보라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궤휼을 말하려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좇으려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려느냐”고 하였습니다. 욥의 세 친구는 지금 욥에게 말하는 목적이 하나님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너희가 하나님을 위해서 변론하겠느냐. 너희 입술의 변명을 들어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不義)를 말하려느냐’라고 하였는데, 지금 친구들이 하는 말은 불의입니다. 옳은 말이 아닙니다. 욥은 너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면서 왜 불의를 말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또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좇으려느냐’라고 한 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드러내려고, 영광을 드러내려고 말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너희가 지금 나와 싸우려는 것이냐는 뜻입니다.
본문 9절에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같이 그를 속이려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사람을 속이는 것처럼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되지도 않는 합당치 않은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님은 속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만일 가만히 낯을 좇을찐대 그가 정녕 너희를 책망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순종하려고 하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너희를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1절에 “그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 위엄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의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고 그 위엄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너희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의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너희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이 진리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사실 재 같은 속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군사가 전쟁할 때에 토성을 쌓고 방어하면 맥을 못 춥니다. 그러
므로 너희가 하는 말은 재와 같이 아무 가치가 없는 말들이며, 너희가 방어하는 방어는 토성과 같아서 제대로 방어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욥 자신이 받을 심판은 하나님께만 있다고 함
본문 13절에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 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임하든지 내가 당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욥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와서 나를 도와주려고 하지만 도리어 나를 괴롭게 하는 것 밖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헛된 소리만 하는 쓸데없는 의사들이니까 나를 가만히 좀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임하든지 내가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당할 것은 내가 당한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해나갈 것이니까 너희는 나를 가만히 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한다는 것은 불의한 말들이고 다 쓸데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니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지금 욥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임하든지 자신이 다 당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안 고쳐줘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2. 욥이 죽을지라도 의를 파수하겠다고 함
본문 14-16절에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 사곡한 자는 그의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생명 전체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자기 손으로 생명을 더 연장시키려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생사를 하나님께만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신다고 해도 내가 원망하지 아니하고, 또 하나님을 멀리 떠나지 아니하며,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셔도 나는 하나님만을 의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끝까지 그를 의뢰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4-16절에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 사곡한 자는 그의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생명 전체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자기 손으로 생명을 더 연장시키려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생사를 하나님께만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신다고 해도 내가 원망하지 아니하고, 또 하나님을 멀리 떠나지 아니하며,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셔도 나는 하나님만을 의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끝까지 그를 의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고 한 것은 그래도 의를 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의뢰입니다. 잘될 때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송하며 감사하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잘못될 때에도, 죽을 고비에 빠졌을 때
에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죽어도 옳은 진리를 붙잡고 죽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인다고 하실지라도 나는 끝까지 하나님을 의뢰한다’라는 생각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죽을 고비에 빠졌는데도 끝까지 나를 의지하는구나’라고 하시며 아주 기뻐하십니다. 또 그런 사람에게 옳은 진리를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셔도 사랑해서 죽이시는 것이겠지, 미워해서 죽이겠는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죽이시면 천당을 준비해놓으시고 그 천당으로 데려가시는 것이니까 더 좋다. 세상에서 살아도 좋고, 죽으면 더 좋다. 이 세상의 하루가 짧아지면 내세의 하루가 길어진다.
죽을지라도 하나님을 의뢰하고 옳은 진리를 절대 떠나지 아니하며 진리를 변백하고 증거하면서 죽을 것이다’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잘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잘못되면 감사하지 않습니다. 입이 뚱 나와 가지고 ‘두두두두’하고 돌아갑니다. 왜 그렇게 구는 것입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섬기느라고 이렇게 힘을 많이 들였는데 왜 이 모양이 됐느냐? 남 보기에 부끄럽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부끄럽기는 무엇이 부끄럽습니까? 우리는 비참한 상태에 빠지고 또 죽을 지경이 되었어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진리를 붙들고 나가야 합니다.
안 믿는 친척이 와서 “지금까지 진리, 진리 하더니 된 것이 무엇이냐? 남 보기 부끄러우니 그런 소리 그만 두라”고 비방합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들도 되는 대로 믿는 사람들이 바로 믿는 사람을 비방합니다. “너는 주일 날 지키느라고 열심히 하고, 바로 믿으려고 하지만 이 꼴이 됐구나. 다 죽게 됐구나. 나는 너와 같이 안 했어도 잘만 산다. 진리, 진리 소리 듣기 싫다. 그만 둬라”고 비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도 욥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뢰하고 끝까지 진리를 붙들며 나가려는 것입니다. 그 진리 안에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의 신앙입니다. 다 없어져서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으로 사는 신앙입니다.
우리도 바른 진리를 끝까지 붙들고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박국 3장 17-19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 없어졌어도 기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죽어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죽어도 기쁜 것입니다. 또 죽어도 진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나가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욥의 신앙은 이런 신앙입니다.
본문 16절에 “사곡한 자는 그의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곡(邪曲)이라는 것은 경건치 않고 잘못된 것으로, 비 진리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잘못된 길로 걸어가는 자는 하나님 앞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욥은 바른 진리를 가지고 나가기 때문에 그 진리가 반드시 그의 구원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지라도 하나님만 의뢰하니까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될 것이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의뢰하는데, 하나님께서 왜 구원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또 바른 진리를 끝까지 붙들고 나가는데, 하나님께서 왜 구원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본문 17절에 “너희는 들으라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설명을 너희 귀에 담을찌니라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스스로 의로운 줄 아노라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지금까지 의와 진리를 지켜 나갔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바로 쓰고 진리를 지키며 불의한 길을 걷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는 것은 잘못된 것을 말해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욥이 두 가지 일을 하나님께 청구함
본문 20-21절에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 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옵시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마옵실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자신에게 이 두 가지를 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두 가지를 하나님께 청구했습니다. 첫째는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옵시며’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징계를 그 손으로 자신의 몸에 대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즉, 징계를 거두어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징계가 너무 심해서 고통이 극심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하시는 징계에 대해 ‘나에게서 거두어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마옵실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위엄으로 두렵게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20-21절에 “오직 내게 이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옵소서 그리 하시면 내가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아니하오리니 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옵시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마옵실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자신에게 이 두 가지를 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두 가지를 하나님께 청구했습니다. 첫째는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옵시며’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징계를 그 손으로 자신의 몸에 대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즉, 징계를 거두어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징계가 너무 심해서 고통이 극심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하시는 징계에 대해 ‘나에게서 거두어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마옵실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위엄으로 두렵게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두 가지 요구입니다. 첫째는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몸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거두어주시고 고통을 주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에 하나님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하나님을 뵈올 수 없는 그런 자가 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욥이 이 두 가지 요구를 하나님께 했습니다. 우리도 이 두 가지를 하나님께 요구해야 되겠습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4. 욥이 고난 중에 어렸을 때의 죄를 생각함
본문 22-23절에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나로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나의 불법과 죄가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알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욥을 치셨으므로 심히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죄가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나의 불법과 죄가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이것은 죄를 알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욥은 지금까지 의를 지키느라 많은 노력을 했고 의를 행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재앙을 받는지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우시고 나를 주의 대적으로 여기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욥을 돌보지 아니하시고 대적과 같이 내려치시기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욥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의뢰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적과 같이 돌보지도 아니하시고, 사정도 안 봐주시고, 아무리 기도해도 안 들어주시며, 내려치시기만 하십니다. 그러나 욥은 ‘내가 여기서 죽어도 하나님만 끝까지 의지하고 의뢰하겠습니다. 진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겠습니다’라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래시며 마른 검불을 따르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욥 자신이 가을에 떨어져 날리는 낙엽과 같고 마른 검불과 같다는 것입니다. 검불은 짚이나 풀, 잎사귀 같은 것들인데, 바람에 잘 날아갑니다. 지금 욥이 그러한 낙엽과 같고 마른 검불과 같다는 것입니다. 욥이 낮아지고 겸손해졌습니다. 많은 고난 속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는 나무 잎사귀 하나가 떨어지는 것과 같고 바람에 날아가는 검불과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나로 나의 어렸을 때에 지은 죄를 받게 하시오며”라고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의 죄를 받게 하는 줄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를 생각해도 죄가 생각나지 않으니까, ‘어렸을 때에 알지 못하고 지은 죄가 많이 있을 텐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억하셨다가 지금 징계하시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징계를 받을 때에 죄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슨 죄 때문에 내가 징계를 받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죄가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옳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옳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또 무슨 죄가 있
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무슨 죄 때문에 이 고난을 당하는지 찾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욥은 어렸을 때 자기가 알지 못하고 지은 죄 때문에 지금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 여쭤보는 것입니다. ‘아마 내가 어렸을 때에 지은 죄 때문에 이렇게 고난을 당하는가보다’라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징계가 임할 때에는 여러 면으로 죄를 찾아보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27절에 “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한정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내 발을 착고(着錮)에 채웠다’는 것은 독창이 나서 재에 눕고 기왓장으로 긁고 있는데도 발을 착고에 채운 것처럼 걸어 다닐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착고에 채우지는 않았지만 독창이 나서 걸어 다닐 수 없는 것이 마치 발을 착고에 채운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한정하시나이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도록 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독창이 나서 마당 안에서만 다닌다든지, 또 방 안에서만 다닌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즉, 돌아다니는 구역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독창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나가서 다닐 수 없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나는 썩은 물건의 후패함 같으며 좀먹은 의복 같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는 좀먹은 의복과 같고 썩은 물건의 후패(朽敗)함 같다고 하였습니다. 욥이 얼마나 비천한 자리에 처한 것입니까? 좀먹은 의복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자신은 좀이 먹고 여기 저기
구멍이 뚫어져 쓸 데가 없는 의복과 같다는 것입니다. 독창으로 온 몸이 다 터져서 좀먹은 의복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한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썩은 물건의 후패함과 같이 독창이 터져서 냄새가 나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자신은 검불과 같으며 낙엽과 같은 자인 줄 알았습니다. 욥이 이렇게 낮은 자리, 비천한 자리에서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우리도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그러한 기도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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