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욥의 발언
욥기 12:1-25
1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너희만 참으로 사람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3나도 너희같이 총명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 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4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 받는 자가 되었으니 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5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 6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 7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8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9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10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11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같이 귀가 말을 분변하지 아니하느냐 12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13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14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지 못하느니라 15그가 물을 그치게 하신즉 곧 마르고 물을 내신즉 곧 땅을 뒤집나니 16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으므로 17모사를 벌거벗겨 끌어가시며 재판장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 18열왕의 맨 것을 풀어 그들의 허리를 동이시며 19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가시고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며 20충성된 자의 말을 없이 하시며 늙은 자의 지식을 빼앗으시며 21방백들에게 멸시를 쏟으시며 강한 자의 띠를 푸시며 22어두운 가운데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23만국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열국으로 광대하게도 하시고 다시 사로잡히게도 하시며 24만민의 두목들의 총명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로 유리하게 하시며 25빛 없이 캄캄한 데를 더듬게 하시며 취한 사람같이 비틀거리게 하시느니라
욥기 12:1-25
1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너희만 참으로 사람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3나도 너희같이 총명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 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4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 받는 자가 되었으니 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5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 6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 7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8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9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10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11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같이 귀가 말을 분변하지 아니하느냐 12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13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14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지 못하느니라 15그가 물을 그치게 하신즉 곧 마르고 물을 내신즉 곧 땅을 뒤집나니 16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으므로 17모사를 벌거벗겨 끌어가시며 재판장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 18열왕의 맨 것을 풀어 그들의 허리를 동이시며 19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가시고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며 20충성된 자의 말을 없이 하시며 늙은 자의 지식을 빼앗으시며 21방백들에게 멸시를 쏟으시며 강한 자의 띠를 푸시며 22어두운 가운데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23만국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열국으로 광대하게도 하시고 다시 사로잡히게도 하시며 24만민의 두목들의 총명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로 유리하게 하시며 25빛 없이 캄캄한 데를 더듬게 하시며 취한 사람같이 비틀거리게 하시느니라
1. 욥이 친구들의 말을 반박함
욥의 친구들이 보편적 원리에 근거하여 욥을 공격함
본문 1-3절에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만 참으로 사람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나도 너희같이 총명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 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너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욥을 공격했습니다. 죄가 없으면 고난을 당하지 않을 텐데, 고난당하는 것을 보니까 욥이 지은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욥이 그것에 대한 반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 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라고 하였는데, 친구들이 말한 보편적 원리를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잠언 25장 26절에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굴복하지 아니하고 바른 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잠언 26장 4-5절에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미련한 자가 어리석은 말을 할 때에 그것에 피동되면 그와 같은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정당한 말에는 응대해야 하지만, 말 같지도 않은 말에는 대답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필요할 때에는 정당한 대답을 해주어야 함
그러나 필요할 때에는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말 같지 않은 것에 대답을 하면, 그와 같은 사람이 됩니다. ‘언불청(言不聽) 도불행(道不行)’이라는 말이 있는데, 말 같지도 않는 것은 듣지를 말고 길이 아닌 곳에는 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리석은 말을 거침없이 할 때에는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그냥 두면 자기가 옳은 것같이 생각하여 교만해지므로, 필요할 때에 정당한 대답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욥이 잠잠하다가 이제 필요할 때가 되어 대답을 하였습니다. 욥은 자기가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욥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욥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욥은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나아갔고 하나님께서는 욥의 기도를 들어주셨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욥이 도리어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본문 4절에서 ‘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욥이 완전히 의롭고 순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죄 때문에 이 재앙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죄 때문에 재앙을 받는 것이 아닌데, 지금의 재앙이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욥이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평안한 자는 재앙 받는 사람을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재앙을 받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즉, 아무리 죄가 없다 할지라도 재앙을 받으면 다른 사람 앞에서 멸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족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실족만 하면 멸시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멸시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하여간 죄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실족만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습니다.
2. 악인이 평안하고 의인이 재앙 받는 경우가 있음
이 세상에서는 일시적으로 악인이 평안한 경우가 있음
본문 4-6절에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 받는 자가 되었으니 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이 세상에서는 도리어 강도의 장막이 더욱 형통하는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도리어 평안한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원리만을 말했습니다. 보편적인 하나님의 원리는 죄가 있으면 재앙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또 죄를 회개하면 형통하게 되며 죄악을 버리면 생명과 평안이 온다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의 말은 늘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그와 같은 것을 누가 알지 못하느냐? 이 세상에는 물론 그런 것이 있지만 그와 같지 않은 것도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강도의 장막이 형통한 것도 있고, 하나님을 진노케 한 자가 평안한 것도 있고, 의롭고 순전한 자가 재앙을 만나는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웃음거리가 되는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욥의 친구들은 보편적인 원리 한 가지만을 가지고 욥을 괴롭게 하고 공격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리는 그 한 가지만이 아닙니다. 다른 원리도 있다는 것입니다. 강도의 장막을 형통하게 해주시는 원리, 하나님을 진노케 한 자가 평안하게 되는 원리, 악한 자가 잘되는 원리, 의로운 자가 재앙을 만나며 웃음거리가 되는 일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악인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있음
그러나 악한 자는 잠깐 있다가 멸망합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전까지는 강도의 장막이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할 수 있지만, 얼마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시편 37편 35절에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 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이 본토에서는 푸른 나무와 같이 잘되었으나 얼마쯤 지내보니 다 없어져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악한 사람이 잘되는 수가 있습니다. 크고 푸른 나무와 같이, 굉장히 성공하고 창창하며 잘되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오기 때문에 얼마 후에 보면 다시 찾을 수 없을 만큼 그 존재가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또 욥기 21장 7-13절에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 보냄이 양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그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도 악한 사람이 잘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13절에 보면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이 일시적으로는 잘되어나갑니다. 자손들이나 사업이나 재산이 다 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면 ‘아, 형통하게 지내는구나’했다가 ‘그러나 너는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게 될 것이다’하는 말씀대로 될 것임을 알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악한 사람이 일시적으로 잘되는 경우가 있지만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갈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짐승이나 공중의 새나 바다의 고기나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동물이 전부 이런 원리 아래 있습니다. 그 원리는 악한 자가 잘되고 좋은 것이 잘못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양육강식을 허락하심
본문 7-10절에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짐승들 가운데서도 악한 짐승이 잘되고 비교적 순한 짐승이 잘못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바다의 고기들도 악한 고기가 다른 고기를 잡아먹고, 좀 순한 고기는 다 잡혀 먹힙니다.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곤충이나 동물들도 다 그렇습니다. 새들도 사나운 새나 악한 새가 다른 새를 잡아먹고 비교적 순한 새가 잡혀 먹힙니다. 그러한 원리는 어디에나 다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든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는 이렇게 악한 자가 잘되는 약육강식의 일이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즉, 악한 자가 잘되고 순한 자가 그 악한 자에게 잡혀 먹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원리가 어디에나 다 있다는 것을 욥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놓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한 생물이 더욱 번성함
그런데 실제로 보면 남을 잡아먹는 것들이 번성하지 않습니다. 잡혀 먹히는 짐승들이 번성합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지만 고양이보다 쥐가 많습니다. 매가 꿩을 잡아먹지만 매보다 꿩이 많습니다. 그리고 새매가 참새를 잡아먹지만 밤낮 잡아 먹어도 새매보다 참새가 더 많고,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 먹지만 큰 물고기보다 작은 물고기가 많습니다. 큰 물고기는 남을 잡아 먹어도 큰 물고기 자체는 얼마 없습니다. 공룡 같은 동물들도 지금 다 멸종을 하지 않았습니까? 공룡이나 맘모스 같은 것들은 당시에 제일 큰 짐승이었습니다. 하여간 언제나 잡혀 먹히는 것이 번성하여 나갑니다. 호랑이가 토끼 같은 것을 잡아 먹지만 호랑이보다 토끼가 더 많습니다. 밤낮 잡혀 먹혀도 토끼가 더 많은 것입니다. 바다의 생물들도 보면, 고래가 멸치 같은 것을 잡아먹는데 고래보다는 멸치가 더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 고래가 몇 마리나 될 것 같습니까? 아무리 잡아먹어도 멸치가 더 많습니다. 또 그보다 작은 물고기들은 새우를 잡아먹지만 새우는 그들보다 더 많습니다. 새우젓 한 통에 들어가는 새우가 몇 마리입니까? 또 새우의 먹이가 되는 생물들은 새우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밤낮 잡아 먹어도 잡혀 먹히는 것이 더 많은 것입니다.
이렇게 순한 것으로 이기게 만들어놓으신 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원리를 그렇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한다’는 원리가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강퍅한 자는 남을 잡아먹지만 결과적으로 번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는 잡혀 먹히지만 땅을 차지하게 되며, 그 땅에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제비나 잠자리, 두꺼비들은 파리를 잡아먹지만, 이들보다 파리가 더 번성합니다. 밤낮 잡아먹어도 파리가 더 많은 것입니다. 또 개구리를 잡아먹는 뱀보다 개구리가 더 많습니다. 자꾸 잡아먹어도 개구리가 더 많습니다. 동, 생물계의 이런 원리들이 하나님의 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한 자가 남을 잡아먹으며 일시적으로 평안하고, 또 형통합니다. 그러나 사실 악한 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가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생물의 지혜와 권능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
본문 10-12절에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같이 귀가 말을 분변하지 아니하느냐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생물들의 생기를 혼이라고 했는데, 일본 성경에는 생기(生氣)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물에는 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혼, 즉 생기는 감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생기와 인생들의 영이 다 여호와의 손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이나 동물들의 생기는 다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셨고 또 하나님께서 기르시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늙은 자는 많은 경험이 있고 오랫동안 살아 보았으므로 지혜가 있습니다. 또 명철이 있습니다. 여기서 ‘장수한다’는 것은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늙은 자보다 장수하는 자가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장수하는 자는 많이 지내보았으니까 명철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사건이 하나 생기면, 그것이 예전에 경험해본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답이 바로 나오게 됩니다. ‘과거에는 어떻게 되었다’고 하면서 많이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그 일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오랫동안 지내는 과정에서 지혜와 명철을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와 권능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모략과 명철도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무(無)’요, ‘공(空)’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만 지혜가 있고 하나님께만 권능이 있습니다. 모략과 명철도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인간의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3. 하나님께서 절대적 주권으로 모든 것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심
모든 능력과 지혜는 하나님께만 있음
본문 14-16절에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지 못하느니라 그가 물을 그치게 하신즉 곧 마르고 물을 내신즉 곧 땅을 뒤집나니 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모략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어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도와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나가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허시면 다시 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헐든지 무엇을 파괴시키시면 사람이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속박을 하여 가두는 것처럼 가둬놓으시면 사람은 놓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가두시면 놓이지 못합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한 번 갇힌 사람이 거기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 한 번 이루어놓으신 것을 누가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능력과 지혜가 하나님께만 있고, 남을 속이는 자도 하나님의 수중에 있고 속는 자도 하나님의 수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모사를 주권적으로 이끌어 가심
본문 17절에 “모사를 벌거벗겨 끌어가시며 재판장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사(謀士)를 벌거벗기시고 끌고 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또 재판장으로 어리석게 만드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고 명철이 있으며 모략이 능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모사를 벗기고 끌고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의 시대에 유명했던 모사인 아히도벨 같은 사람은 그의 모략이 하나님께 여쭈어 받은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모략을 잘했는지, 아히도벨의 모략은 천하에 당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붙었기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그가 압살롬에 가서 모략을 베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붙어서 모략을 잘 베풀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략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후새의 모략을 듣게 하셨고 아히도벨의 모략을 듣지 않게 만드셨습니다. 그리하여 아히도벨은 자기의 모략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보고 고향 집에 돌아가서 목을 매어 죽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모략을 내어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어주셔야 해먹는 것입니다. 모략을 잘 베푼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다른 사람이 그 모략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모략대로 하려고 해도 되지를 않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아무리 좋은 모략이고 좋은 계획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루어지도록 역사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지지 않도록 만드시면 그것은 다 헛된 것이 됩니다. 그래서 모사가 벌겨 벗고 끌려 갈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대
로 하면 되기는 되는데, 그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모사를 벌거벗겨 끌어가시며 재판장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사(謀士)를 벌거벗기시고 끌고 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또 재판장으로 어리석게 만드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고 명철이 있으며 모략이 능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모사를 벗기고 끌고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의 시대에 유명했던 모사인 아히도벨 같은 사람은 그의 모략이 하나님께 여쭈어 받은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모략을 잘했는지, 아히도벨의 모략은 천하에 당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붙었기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그가 압살롬에 가서 모략을 베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붙어서 모략을 잘 베풀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략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후새의 모략을 듣게 하셨고 아히도벨의 모략을 듣지 않게 만드셨습니다. 그리하여 아히도벨은 자기의 모략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보고 고향 집에 돌아가서 목을 매어 죽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모략을 내어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어주셔야 해먹는 것입니다. 모략을 잘 베푼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다른 사람이 그 모략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모략대로 하려고 해도 되지를 않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아무리 좋은 모략이고 좋은 계획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루어지도록 역사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지지 않도록 만드시면 그것은 다 헛된 것이 됩니다. 그래서 모사가 벌겨 벗고 끌려 갈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대
로 하면 되기는 되는데, 그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좋겠다고 의논을 했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고양이가 오는 것을 알고 구멍으로 피하여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아, 좋다. 그렇게 하자’고 결정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방울을 달 쥐가 없는 것입니다. 방울을 달 쥐가 있어야 쥐들이 피해를 보지 않겠는데, 모략이 좋다고 찬성은 하였으나 가서 방울을 달 쥐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방울을 달기 위해 고양이에게 가다가는 잡혀 먹히게 되는데, 어떻게 달 수 있겠습니까? 모략이 아무리 좋아도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모략이 이와 같은 것 같습니다. 사람의 모략은 아무리 좋은 모략이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략을 들어주지 않으시면 그 모략은 쓸 데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결과적으로 모사를 벌겨벗겨 끌고 가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재판장도 어리석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재판을 바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권력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는 분도 하나님이심
본문 18-19절에 “열왕의 맨 것을 풀어 그들의 허리를 동이시며 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가시고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열왕이 맨 것을 풀어 동이신다’는 것은 속박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왕들의 속박된 것들을 다 풀어 도리어 왕들의 허리를 동이신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가시고 권력 있는 자를 넘어 뜨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충성된 자란 신임 받는 자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아무리 신임을 받는 자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면 그 말이 성공하지 못합니다. 늙은 자의 지혜를 빼앗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교만한 방백들을 멸시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자가 띠를 띠면서 강하게 돌아가도, 하나님께서 그 띠를 푸시고 강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낮추신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잘하는 것 같고 지혜가 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와 권세 있는 자를 꺾어놓으십니다. 또 신임을 받는 자 같아도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그 띠를 다 풀어놓으시고 낮추시며, 그의 말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만드십니다. 모사로 벌거벗겨지고 끌려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권력 있는 자를 다 엎어지게 만드십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낮추십니다.
다니엘 4장 37절에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낮추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4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큰 세력을 가지고 교만하다가 망한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바벨론이 하루저녁에 다 망했습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 왕은 사람들에게 쫓겨나서 풀을 먹고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됩니다. 교만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믿음을 잘 지키지 아니하고 교만하면, 아무리 권세가 있고 모략을 잘 풀며 지혜와 총명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 세력을 다 꺾어 낮추십니다. 띠를 다 풀어서 힘을 못 쓰게 만드시고, 거꾸러뜨리시며 쓰러지게 만드십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인간이 무엇을 잘할 것 같고 망하지 않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십니다. 인간의 잘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다 거꾸러뜨림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람이 몇 가지 잘하는 것을 가지고 뽐내다가는 얼마 안 가서 다 망하고 그만 두게 됩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망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뛴다, 난다 해도 다 쓸데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겠습니다. 더욱 믿음에 서야겠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천하에 제일 가는 지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솔로몬은 천하의 으뜸인 지혜자이며, 그의 나라는 세계 일등 국가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제일 부유한 나라였고 제일 강한 나라였습니다. 솔로몬이 여러 면에서 얼마나 잘했는지, 솔로몬만큼 잘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범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많은 것들을 한 번에 돌이키셨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섬기는 것을 그만 등한시하고 우상을 섬기며 범죄할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신하인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주신 것입니다.
절대적 주권은 하나님께만 있으며, 인간은 겸손해야 함
본문 20-23절에 “충성된 자의 말을 없이 하시며 늙은 자의 지식을 빼앗으시며 방백들에게 멸시를 쏟으시며 강한 자의 띠를 푸시며 어두운 가운데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만국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열국으로 광대하게도 하시고 다시 사로잡히게도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잘한다고 하는 것을 가지고 나가면 안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부족한 줄 알고 언제나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또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려고 힘을 쓰고 ‘어떻게 서야 바로 서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바로 순종하고 바로 충성하겠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항상 하나님께 바로 서려고 힘을 쓰고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안 해주시면 할 수 없는 자인 줄 알고, 하나님께 늘 매달리고 간절히 사모하며 늘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날마다 찾고 찾아서 성경대로 바로 믿으려고 하고 바른 길을 걸어가려고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집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만 도와 주지 않으시면 아무리 잘되었고, 세계 일등의 모사라 하더라도, 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자라 할지라도, 하루아침에 다 없어지는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겠습니다. 믿음이 약해지고 기도하는 것이 좀 떨어지고 말씀 사모하는 것이 좀 없어지는 사람은 얼마 못 갑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바로 서려고 힘을 쓰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이 아니면 살지 못하는 줄 아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교만하면 그것은 곧 망하는 것입니다. 교만 그 다음은 즉시 멸망입니다. 잠언 18장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그 다음에는 멸망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언제나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하나님께 바로 서려고 벌벌 떠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심
본문 24-25절에 “만민의 두목들의 총명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로 유리하게 하시며 빛 없이 캄캄한 데를 더듬게 하시며 취한 사람같이 비틀거리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두운 가운데서 은밀한 것을 다 들어내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죽음의 그늘에서 광명한대로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 어둡고 숨은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은밀하게 죄 짓는 것, 하나님께 바로 하지 못하는 것들을 다 들어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나라를 크게 해야겠다고 여기시면 크게 하시고, 다시 멸하시려면 멸망시키십니다. 열국으로 방대하게 하시려면 방대하게 하시고, 사로잡히게 하시려면 또 사로잡히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대로 되는 것입니다. 바벨론과 같이 교만한 나라를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십니다.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죄를 짓는 나라를 사로잡혀 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습니다. 광대하게도 하시며 다시 사로잡혀 가게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두목들의 명철을 다 빼앗아서 어둡게 만드시고 그들이 범사를 바로 하지 못하게 만드시며 거친 들로 유리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고 교만하게 나가면, 이렇게 두목들의 명철을 다 빼앗으시고 그들로 거친 들에 나가 유리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길 없이 캄캄한 데를 더듬게 하시고 취한 사람과 같이 비틀거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또 만국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있는 자를 보시고 하나님께 바로 순종하는 자를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면 잘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교만하며 믿음을 져 버리면 이렇게 두목들로 하여금 어둡게 만들어서 바른 길로 가지 못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거친 길로 유리하게 만드셔서 캄캄한 곳을 더듬게 하시고 취한 사람과 같이 비틀거리다가 결과적으로는 망하게 만드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항상 두려워하며 말씀을 순종하고 교만하지 않은 겸손한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도 언제나 겸손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면 교만입니다. 또 ‘내가 금년에는 집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만한 것입니다. 집사가 되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교회의 직분이라는 것은 명예직이 아닙니다. 교회의 직분은 봉사의 직분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봉사를 잘해야만 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교회 집사들은 교회에 일이 있으면 남들보다 먼저 나와야 합니다. 기도원 봉사도 먼저 나가서 더 많이 하고, 초상이 났으면 먼저 가서 돌아보고, 예배당 짓는 일도 먼저 나서야 합니다. 직분이라는 것은 남보다 먼저 나가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직분이 봉사의 직무인 줄 알면 됩니다. 그러므로 집사의 자격은 봉사를 잘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이 첫째 자격입니다. 집사들이 화장실 청소도 잘해야 합니다. 우리 집사들 화장실 청소 당번을 시켜야겠는데, 집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화장실 청소부터 먼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봉사하는 자리에 선 사람이 집사이지, ‘나 집사다, 에헴’하면서 앉아 있는 사람이 집사가 아닙니다. 그렇게 나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남보다 발 벗고 나서서 봉사를 많이 해야만 집사의 자격이 있습니다.
또 겸손하여 지극히 낮은 자리에 내려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낮은 자리에 내려가셨듯이, 우리도 낮은 자리에 내려가야 합니다. 집사가 되지 않았다고 섭섭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교만한 마음이 들어간 것입니다. 섭섭한 마음이 그 증거입니다. 왜 섭섭합니까? 얼마나 봉사를 잘했다고 섭섭합니까? 집사를 명예직으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교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셔야 살고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잘되는 것 같아도 하루아침에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