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1일 화요일

시편 14:1-7 의인(義人)들을 지키시는 하나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의인(義人)들을 지키시는 하나님
시편 14:1-7

1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 7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1. 어리석은 자의 사상(思想)과 언행(言行)

무신론자(無神論者)들의 허상

본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신론(無神論) 사상은 어리석은 자의 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계신데, 없다고 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그것은 아버지가 계신데 없다고 하는 것이고, 태양이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것이며, 공기가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정신이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며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우주를 주관하시며 심판하실 하나님께서 계시는데, 그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잠언 1장 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근본적인 지혜를 버린 자입니다. 따라서 무신론자들은 근본적인 지혜를 버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또 누가복음 24장 25-26절에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더디 믿는 자가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는 자가 어리석은 자입니다. 십자가의 구속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부활의 권능을 믿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반면 어리석은 자는 부패한 죄에까지 내려갑니다. 옛 사람대로 사는 것입니다. 또 그 소행이 가증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미워하실만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악만 행하고 선은 행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습니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들은 그렇게 부패하게 살다가 죄 값으로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인지 모릅니다. 

인간의 의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러운 옷과 같음

본문 2-3절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살펴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치우쳐서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이 죄악의 길로만 나갔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4장 6절에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들 중에 공자나 맹자와 같이 의인이 더러 있긴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의 같고 의인 같지만, 하나님 앞에 갖다놓으면 전부 더러운 옷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원죄(原罪)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죄는 인류(人類)가 하나님 앞에 정죄를 받은 것인데, 인류의 시작인 아담이 인류를 대표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계약을 범함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약을 어기고 그것을 따먹은 것은 아담 혼자만 범죄한 것이 아니고 전 인류가 범죄한 것입니다. 즉, 인류의 대표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기 때문에 전 인류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부패성이 가득하며, 하나님 앞에서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이 선(善)을 한 가지 행했다고 해도, 이미 정죄를 받은 사람이 행한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이 외부적으로만 선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선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예를 들어 형무소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형무소 안에서 선을 행한다고 해서, 국가에서 그 사람을 의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형무소에 들어간 사람은 이미 재판을 받아서 죄인으로 인정된 사람입니다. 즉, 국가에서 정죄를 받은 사람이 형무소에서 선한 일, 의를 몇 가지 행했다고 해서 의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다 정죄 받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몇 가지 의를 행한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인정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사람의 속에는 누구
나 부패성이 가득합니다. 따라서 외부적으로 선한 일을 몇 가지 행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한 일이라고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마음속에는 남을 미워하고 도적질하려 하며 살인 욕구가 가득한데, 외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떡 한 개를 주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인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도 선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죽이려는 생각으로 떡 한 개를 줬다는 것은 선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 앞에 부패성이 가득하며 이미 정죄를 받았기 때문에, 사람이 아무리 선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선으로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의인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했습니다.

의인이 되는 방법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의인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어야 의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 구약 성경을 다 행하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다 물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완전 무죄한 의를 행하셔서 믿는 사람에게 그 의
를 입혀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의를 받아 하나님의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세상에 의인은 한 명도 없으며 선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치우쳐서 곁길로 가고 악을 행합니다. 무지한 자만 가득 남아 있습니다. 로마서 3장 10-15절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고 하였습니다. 이 성구는 시편 14편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은 없지만, 사람이 십자가의 구속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

본문 4절에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기업이고 하나님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성도를 핍박하는 자는 아주 어리석은 자입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손해를 주는 자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징계하셔서 심판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기업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를 도와주는 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그에게 상을 주십니다. 그러나 성도를 핍박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그 사람에게 반드시 심판을 행하십니다. 성도를 핍박하고 교역자를 비방하다가 망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러한 자들이 다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성도와 교회를 도와주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교회를 도와나가려 하고 성도를 도와주려 하며 교역자를 도와주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협력하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지혜로운 자가 되고 복 받는자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좋은 사람들은 먼저 다 불러 가시고 되지 못한 사람들만 남겨놓으시는 것 같습니다. 껍데기 같은 자는 좀 더 만들어서 오라고 남겨놓으시는 것 같고 좋은 사람들 먼저 데려가시는 것 같습니다. 조 장로 부인도 상당히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
면 조 장로 부인이 교회를 잘 받들고 충성하며, 교역자를 받들어 주려고 힘을 썼습니다. 모든 사람 앞에 덕을 끼치고 의로운 길을 걸어간 것 같은데 먼저 갔습니다. 아까 어떤 사람이 자기가 먼저 죽어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조 장로님 부인을 먼저 데려가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우리가 아직 되지 못해서 안 데려가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먼저 죽으려고 해도 죽을 자격이 없습니다. 열매도 잘 익은 것을 먼저 따 먹지, 시퍼렇게 덜 익은 것을 누가 먹겠습니까? 따줘도 먹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잘 익어서 먹음직하고, ‘이만 하면 괜찮다’하는 열매를 먼저 따가는 것입니다. 하여간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교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돈이 좀 생기면 자기를 위해서 다 쓰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조금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미련한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6-21절에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부자가 여러 해 동안 먹고 사용할 돈을 쌓아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영혼에게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서만 쌓고 하나님을 위해서 부요하지 못한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부요한 자, 믿는 일을 제대로 해나가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2. 여호와는 의인의 피난처이시요 구원자이심

본문 5절에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가 하나님의 심판이 올 때에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가 지금은 잘되는 것 같아도 반드시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두려워하고 두려워 할 날이 옵니다. 

악을 행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세대에 계신 것이 아니고 의인의 세대에 같이 하십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함께 하십니다. 악인의 세대라는 것은 악인들이 권세를 잡고 자기의 주장과 힘을 쓰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인의 세대라는 것은 의인들이 힘을 써서 의를 이루어나가고 하나님의 일에 협력하며 봉사하는 일을 잘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악을 행하는 무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같이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두, 세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리에 같이 계시고, 복음을 위해 일하는 데 같이 하십니다. 영적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데에 같이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예배당을 지을 때 하나님께서 같이 계셔주신 것에 대해 늘 감사합니다. 사고가 났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셔서 그 발을 붙들어주시고 부러지지 않게 해주시며 생명을 보호해주셨습니다. 이번에 예배당 공사를 하는데 사고가 두 번 났습니다. 화재가 한 번 나고, 한번은 천정 공사와 콘크리트 공사를 할 때에 사람이 떨어졌습니다. 바깥 콘크리트 공사는 우리 예배당만큼 높은데 콘크리트 계단을 하다가 무너져 떨어진 것입니다. 보통은 공사를 하다가 높은 데에서 떨어지면 거의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셔서 보호해주셨습니다. 다리 하나도 부러지지 않도록 해주시고 머리도 부딪히지 않도록 해주셨습니다. 보호해주셨습니다. 두 사람이 떨어졌는데 한 사람은 거의 다 나았습니다. 그리고 황 씨는 아직도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지금은 거의 다 나았다고 합니다. 얼굴의 상처는 다 낫고 소변을 잘 못 봤다고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잘 본다고 합니다. 허리 아픈
것이 조금 있는데 몇 주간만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려고 하면 반드시 능력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알아야 합니다. 또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을 쓰려고 하는 곳에, 믿는 일을 하려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보호도 해주시고 앞 길도 열어주시며 믿는 일이 되도록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초자연적 능력, 이적과 기적과 능력 등,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증명해주십니다. 

본문 6절에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는 주를 위해서 환난과 핍박, 궁핍을 받는 성도를 가르칩니다. 불의한 자들은 성도들이 믿는 일을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못하게 막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아무리 성도를 빠뜨리려 하고 멸망시키려 해도, 하나님께서 성도의 피난처가 되어 주셔서 성도들에게 안심과 위안과 평안한 심령을 주십니다. 또 악한 자가 와서 손도 못 대도록 해주십니다. 보호하시며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통사고가 나도 하나님께서 데려가실 사람만 데려가시고, 더 두실 필요가 있는 사람은 데려가지 않으십니다. 손으로 속히 낫게 만들어주시고 건져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니까 교통사고가 났다고 겁낼 것도 없고, 날까봐 두려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루 종일 교통사고를 내려고 해도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데려가실 때가 되어야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또 데려가실 때가 되면 아무리 사고를 안 내려고 하더라도 데려 가십니다. 그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십니다. 

본문 7절에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온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피난처이시고 구원이십니다. 그리고 야곱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말미암아 자유와 해방을 얻을 때에 심령에서부터 찬송이 나오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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