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1일 화요일

시편 16:1-11 성도의 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도의 복
시편 16:1-11

1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4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8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9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1. 주 외에는 복이 없음

본문 1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환난 때,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을 믿고 보호를 의탁하며, 주님께로 피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환난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 풍파, 시험, 고통, 근심, 걱정이 가득 찬 세상입니다. 그리고 한숨, 눈물, 사망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야만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아니면 마귀로 인해 다 삼켜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날개 속으로 피해 들어가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께 피하나이다!’라고 하며 언제나 하나님 안으로 피하여 모든 환난을 주님으로 말미암아 다 이기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본문 2절에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밖에 나의 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복의 전부입니다. 주님께만 우리의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복이십니다. 그리고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체가 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면 복을 떠나는 것이고, 하나님을 찾으면 복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하면 복이 멀어진 것이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복이 가까워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복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피난처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며 보호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참된 복이십니다. 영적 생명과 평안을 주시고 영생을 주십니다. 또 우리에게 속죄, 칭의, 영원한 나라와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복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와 영적 평강을 주시기 때문에 복이십니다. 주 외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 우리의 복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복이라고 하며 받들고 나가는 것들이 있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하나도 복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오복(五福)은 부귀(富貴), 장수(長壽),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강녕(康寧)입니다. 강녕은 건강하게 사는 것, 장수는 오래 사는 것, 부귀는 부해지는 것, 유호덕은 덕을 세우는 것, 고종명은 죽을 때 편안히 잘 죽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마음이 편안치 않고 마음에 근심, 걱정만 닥치면 그것은 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가 어떤 이에게 오래 살고 부해지며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덕담을 건네니, 그 말을 들은 이가 무슨 그런 욕을 하느냐고 했답니다. 오래 살면 욕도 많고 아들과 돈이 많으면 걱정이 많아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욕, 걱정, 이 세 가지가 다 따라오는 것입니다. 아들이 많으면 걱정도 많아 어디 가서 실수는 하지 않을까 근심하게 되고, 돈이 많으면 근심이 많고, 오래 살아도 고생이 많습니다.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팔십 세 정도로 오래 살아도 수고와 슬픔 뿐이며 잠시 잠깐이면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전도서 5장 11절에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고 하였습니다. 재산 많은 것이 복을 받은 것 같아도, 먹는 자도 많아지고 재산 때문에 싸우고 다투면서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요새 신문을 보면 돈 때문에 감옥에 들어갑니다. 또 서로 싸우고 물고 찢으며 자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된 복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심령이 평안하고 마음이 평안합니다. 또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는 것처럼 품어주시고, 영을 살려주시고, 은혜 가운데 살도록 하시므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살게 됩니다. 

은혜 가운데 살아야지, 은혜를 떠나고 하나님을 떠나면 물고기가 물을 떠난 것과 같고 젖 먹는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을 떠난 것과 같습니다. 양이 목자를 찾을 때 참된 행복이 있고, 물고기가 물 안에 있으며,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속에 있어야 참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찾아야만 참된 행복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며 서로 물고 찢고 여러 가지 환난과 두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8장 8절에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도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고, 만약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 하루 동안에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복은 영원한 복입니다. 금생과 내세의 복이며 영적 복입니다. 그래서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라는 것입니다. 여러 설명보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속에 있어 근심, 걱정 없이 평안함을 누리는 것과 꼭 같은 이치라는 것을 떠올려보십시오. 어머니 같고 아버지 같은 하나님 품속에 있는 자는 참되고, 복된 자리에 들어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복뿐 아니라 영적 복도 받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대한 참된 복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입니다. 

2. 성도를 즐거워하고 우상을 미워함

본문 3절에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셔서 하나님의 전으로 삼으시고, 그 가운데 늘 계셔서, 그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시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의 기업이요 성전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땅 위에 있는 성도는 존귀합니다.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라고 하였는데, 성도는 아주 존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즐거움이 성도에게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20절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면 예수님께서도 그 가운데 계십니다. 예수님과 성도 사이가 영적으로 교통이 되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에 아버지가 기뻐하였습니다. 잃어버렸던 양 한 마리를 찾아도 즐거워하는데, 탕자가 돌아오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잃어버렸던 탕자가 돌아올 때에는 온 집안, 온 동네가 즐거워하는 것처럼 참으로 즐겁습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성도들 간의 신앙 교제는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셔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되므로, 참으로 즐겁다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 즉 마귀를 섬기는 사람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심판하시기 때문에 괴로움이 더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귀가 괴로움을 더해줍니다. 다른 신들 자체가 괴로움을 주는 것입니다. 또 자신의 영이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영이 사는데, 다른 신을 섬기면 영이 살지 못하고 점점 저주 가운데로 내려가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마귀는 본래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이 그들의 진정한 낙이기 때문에, 마귀를 섬기고 예물을 드리는 사람은 괴로움이 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전제(奠祭)란 물이나 포도주 같은 것을 부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당시에 다른 신을 섬기는 자 중에는 자기 피를 흘려서 혹은 자녀를 죽여서 그 피를 우상에게 붓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
지자 때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우상을 섬길 때 자기의 피를 흘리면서 우상에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를 가져다 부으며 우상 섬기는 일을 아주 미워하십니다. 그것은 다 가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아주 잘못된 것인 줄 알고 멀리 떠나야 합니다. 

3. 여호와는 나의 산업
여호와 한 분으로 나의 모든 산업이 됨

본문 5-6절에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네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산업이시기 때문에 여호와 한 분만 계시면 우리는 살 수 있고 만족할 수있습니다. 산업은 자기 기업체라는 뜻인데, 기업체에서 먹을 것도 나오고 소득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님 한 분만 계시면 다른 것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린아이가 다른 아무것이 없어도 어머니 한 분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것과 같고, 또 양이 목자 한 분만 바로 찾아 만나면 살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양의 기업은 좋은 목자이고 젖 먹는 어린아이의 기업은 자기의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기업은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목자라면 양을 잘 먹이지 않겠습니까? 또 짐승도 잘 막아주지 않겠습니까? 양에게 필요한 잔잔한 물가와 푸른 풀밭으로 인도해주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한 분만 기업으로 삼으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 즉 우리 육신의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모든 것까지 하나님께서 다 주십니다. 하나님 속에는 모든 것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만을 기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다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성도가 누릴 모든 분깃을 주심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니’라고 하였는데, 잔은 마음 그릇을 상징합니다. 즉, 누릴 소득이 여호와 한 분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한 분이면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성도에게 분깃으로 아름다운 땅을 측량줄로 재어 나눠주셨다고 했는데, 요새로 말하면 땅을 만 평씩 혹은 천 평씩, 또는 곡식 열 가마니 혹은 몇 십 가마니를 주신 것입니다. 의복으로 말하자면 몇 벌씩 분깃을 주신 것입니다. 군대에서도 분깃으로 의복도 주고 구두도 주고 담요도 주고 식량도 내주듯,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분깃을 다 내어주셨습니다. 신령한 분깃도 주시고 또 이 세상의 분깃도 주신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에서는 보이지 않는 분깃, 신령한 분깃에 더 비중을 둔 것 같습니다.

또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나안 복지에 있는 분깃을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받는 분깃을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분깃을 안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복 받는 분깃, 복을 누리는 분깃, 안식을 누리는 분깃, 신령한 양식을 먹을 분깃, 안식처의 분깃 등을 하나님께서 다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처에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신령한 양식으로 늘 충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단 잠을 잘 수 있다는 것과 관련하여, 시편에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잠을 잘 자는 것도 분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잠을 못 자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이튿날 생활에 지장이 많습니다. 그것이 아주 무서운 막대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룻밤만 못 자면 그 이튿날 흐리멍덩하고 자꾸 졸음이 옵니다. 자려고 해도 잠은 안 오고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잠을 잘 자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잠만 잘 자면 아침에 거뜬하고 전날 피곤하던 것도 없어져서 무슨 일이든지 잘할 수 있습니다. 하여간 그것도 하나님의 분깃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많이 자는 사람은 자기 분깃보다 더 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의 분깃을 취하는 것이므로 좋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깃이 많습니다. 마음대로 성경을 보며 배울 수 있는 것도 분깃이고, 마음대로 기도할 수 있는 것도 분깃입니다. 평안함을 누릴 수 있는 것도 분깃이고, 믿는 일을 할수 있는 것도 분깃입니다. 이북에서는 믿는 일을 하려고 해도 못합니
다.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라디오 방송이라도 들으면 좋겠는데, 이남 방송은 듣지 못하게 고정시켜 놓아서 돌릴 수도 없다고 합니다. 내가 6. 25 사변 때까지 이북에서 살다 피난 나왔는데, 그때에도 라디오 채널을 돌리지 못하도록 고정시켜 놓았었습니다. 그런데 아마 지금까지도 그런 모양입니다. 새로 만들어 내는 것도 평양 것만 듣게 만들고, 어디 여행을 한 번 가려 해도 동사무소에서 증명을 해줘야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증명을 해달라고 하면 잘 안 해준다는 것입니다. 탈북했던 김만철 씨가 개성에 사는 자기 매부가 세상을 떠났는데 못 가봤다고 말한 것처럼, 여행 허락을 안 해주니 한 동네에 갇혀 사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돼지를 가둬놓고 다른 데 못나가게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대로 나다닐 수 있으니, 그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분깃인 것입니다. 생각하면 그 외에도 우리에게 주신 분깃이 참 많습니다. 영적 생활을 할 수 있는 분깃,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분깃, 새벽 기도를 하는 분깃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이런 분깃들을 스스로 찾아 누리지 못하면, 그 만큼 하나님의 분깃을 내어버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모든 분깃은 실로 아름다운 것임

하나님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영적 안식 세계는 안식을 누릴 수 있는 분깃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 것, 그것이 분깃이고 기업입니다. 세상 환경에 구애 받음 없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예수님으로 즐거워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
받은 신령한 분깃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 분깃이 아니고, 예수님을 모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분깃입니다. 그것이 신령한 분깃이고 즐거워하는 분깃이며 낙원에 있는 분깃입니다. 그런 분깃이 참 아름답습니다. 높은 산이나 거친 들이나 어디든지 내 주 예수를 모시고 즐거워하는 생활이 분깃인 것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되는 분깃, 신령한 분깃,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고 또 하나님께서 그것을 지켜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는 일을 하려고 조금만 힘쓰면 하나님께서 다 지켜주셔서 그 분깃을 내내 누려 나가게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실로 아름답도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깃은 실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4. 주와 동행하며 교훈을 받는 자의 복

본문 7절에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받고 밤마다 기도를 많이 하니까 자기 심장에 깨닫는 바가 많다는 것입니다. 밤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아 기도하는 것은 새김질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새김질하는 것은 받은 말씀을 다시 꺼내가지고 되새기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그대로 하려고 결심하며, 또 회개하는 것입니다. 되지 못한 것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양심적으로 생각하면서 회개할 바를 찾고 바로 서려고 노력하며,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어떻게 걸어가야 되겠는가?’를 기도하는 가운데 찾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이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밤에 기도도 안 하고 TV나 보면서 잠만 자고 세상 것을 따라다니는 사람은 짐승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고, 밤에 기도하면서 생각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길을 걸어가려고 해야 합니다. 바로 서려고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하면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라는 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매일 하나씩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어떤 면은 내가 잘못했다. 어저께 그 말을 내가 잘못 말한 것 같다’라고 하면서 매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실수했다. 내 눈이 바로 보지 못하고 내 입술이 바른 말을 하지 못하고 내 귀가 바로 듣지 못하고 내 마음이 진실하지 못했구나. 앞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라고 결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점점 깨달아 가면서 바로 서게 됩니다. 희망 있는 사람이 됩니다.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하는 그 자리에 들어갑시다.

본문 8절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맘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훈도 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교훈을 받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과 동거, 동락, 동행하기를 힘쓰면 하나님께서는 내 우편에 계시고 우리는 요동치 않게 됩니다. 우편에 계시다는 것은 능력의 손으로 나를 붙들어주신다는 뜻입니다. 늘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새김질하며 기도하는 생활은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생활인데,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편에서 능력의 손으로 나를 보호해주시기 때문에 영영히 요동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바로 배웠기 때문에 탈선되지 않습니다. 또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주셔서 하나님의 보호가 늘 같이 합니다.

본문 9절에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하나님을 항상 모시고 사는 사람은 세 가지의 축복이 옵니다. 첫째는 마음이 기쁘고, 둘째는 마음이 기쁘기 때문에 영도 즐겁게 됩니다. 셋째는 육체도 안전히 거한다는 것입니다. 즉, 영이 즐겁고 마음이 즐거우며 육체도 안전히 거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5. 부활 신앙

본문 10절에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부활의 소망,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27절에 베드로가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부활하실 것, 무덤에 장사를 지냈지만 썩지 않고 다시 부활하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구약의 다윗을 통해서 예언되었는데,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베드로가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도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마음이 기쁘고 영이 즐겁고 육체가 안전하게 되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떠한 일이 닥쳐도 언제나 즐겁고 안전합니다. 죽어도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이 다음에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죽어도 살고, 영원히 안 죽는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안전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요동치 않는 자리에 있게 됩니다. 

본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생명의 길을 내게 보여주셨으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생명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앞에 있습니다. 언제나 주의 앞에는 기쁨만이 있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생명만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생명도 주시고, 기쁨도 주시고, 영생도 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주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의 큰 복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영원한 생명을 받아서 모든 것을 다 이겨나가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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