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9일 목요일

역대상 15:1-29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가져옴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가져옴
역대상 15:1-29

1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 2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하고 3이스라엘 온 무리를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여호와의 궤를 그 예비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하여 4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모으니 5그핫 자손 중에 족장 우리엘과 그 형제 일백이십 인이요 6므라리 자손 중에 족장 아사야와 그 형제 이백이십 인이요 7게르솜 자손 중에 족장 요엘과 그 형제 일백 삼십 인이요 8엘리사반 자손 중에 족장 스마야와 그 형제 이백 인이요 9헤브론 자손 중에 족장 엘리엘과 그 형제 팔십 인이요 10웃시엘 자손 중에 족장 암미나답과 그 형제 일백십이 인이라 11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12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족장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케 하고 내가 예비한 곳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13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이에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 하고 15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16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하여 그 형제 노래하는 자를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 크게 내라 하매 17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 형제 중 베레야의 아들 아삽과 그 동종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 18그 다음으로 형제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문지기 오벧에돔과 여이엘을 세우니 19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20스가랴와 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마아세야와 브나야는 비파를 타서 여청에 맞추는 자요 21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과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 22레위 사람의 족장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주장하여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요 23베레갸와 엘가나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요 24제사장 스바냐와 요사밧과 느다넬과 아미새와 스가랴와 브나야와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요 오벧에돔과 여히야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더라 25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26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렸더라 27다윗과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 두목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28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각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29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어다보다가 다윗 왕의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심중에 업신여겼더라

1.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 모실 처소를 예비함

하나님을 모시고, 그 말씀을 받으며,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생활이 중요함

본문 1절에 “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세운 다음에 하나님의 궤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고 장막을 치며 거기에 하나님의 궤를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자기를 위한 궁궐을 세운 다음에 하나님을 모실, 하나님의 궤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왕궁만 짓고 하나님의 궤 모실 처소를 예비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모실 처소를 예비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그것을 중요시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긴 돌 비석 두 개가 있고, 그 위에 속죄소가 있으며, 영광의 그룹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그룹 사이 속죄소 위에 임재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궤를 모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것을 언제나 영접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를 늘 모시며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생활, 그리스도의 속죄를 언제나 영접하는 생활을 늘 해야겠습니다. 이것을 못하면 아무리 자기 왕궁을 잘 지었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왕궁을 지어 놓고 아무리 왕 노릇을 한다고 해도 몇 년이나 왕 노릇 하겠습니까? 다윗이 40년 동안 왕 노릇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남는 것이 없고 다 헛된 데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왕이 되어 아무리 아름다운 왕궁을 지었다고 해도 하나님 모시는 일을 하지 않으면 다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헛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궤 모실 처소를 예비하는 일이 중요한 것임을 명심하여 나가야겠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과 그 말씀을 모시고 그것을 생명으로 삼고 나가는 생활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기만 위해서 살면 안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모시는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시간,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것을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는 믿음을 늘 가져야 되겠습니다. 하루를 살 때에도 자기를 위해서만 생활하지 말고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기도하는 시간, 또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시간, 말씀을 새김질하는 시간,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면서 구속주를 영접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우리 생활 전체가 이 세상을 위하지만 말고 하나님을 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접하고 말씀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대해서 늘 감사하는 신앙과 감사함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그런 신앙이 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전면에서 자기만 위하지 말고 하나님 위하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즉, 처소 예비하는 것에 대해 늘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든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할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시간도 하나님을 위해서 바쳐야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도 자기를 위해서만 쓰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좀 쓰려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시간과 정력과 예배드리는 일 등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힘쓰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2. 다윗이 레위 인을 모아 법궤를 메어오게 함

하나님을 섬길 때에 그 말씀에 맞게 섬겨야 함

본문 2절에 “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법대로 섬겨야 합니다.
본문 13절에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궤를 메지 않고 소에게 싣고 가다가 하나님께서 충돌하셨기 때문에 웃사가 그만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메어서 운반하게 되어 있고, 그것도 레위 사람 가운데 고핫 자손만이 메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궤를 메어서 옮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에 성경말씀에 맞는 방법으로 섬겨야 합니다. 성경말씀에 어긋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도리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충돌함으로 막대한 손해가 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만 성경말씀에 맞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어떻게 해야만 성경말씀에 맞도록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까에 대하여 우리가 늘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바로 배우고 성경대로 하는 바른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 일입니다.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성경말씀에 맞지 않는 열심은 도리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시려고 하고 또 열심으로 모셔 오는 도중에 있었으나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기돈의 타작 마당에서 웃사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제사, 맞는 예배,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의 말씀에 맞도록 섬기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로 모여 하나님을 섬기게 함

본문 3절에 “이스라엘 온 무리를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여호와의 궤를 그 예비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하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올리는 것은 불과 몇 사람만 있으면 다 멜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스라엘 온 무리를 오벧에돔의 집에 모았다고 하였습니다. 석 달 전에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다가 웃사가 기돈의 타작 마당에서 소가 뛰므로 궤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궤를 붙잡았다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웃사를 죽이셨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자기 성으로 그 궤를 가져올 수 없다고 생각해서 석 달 동안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궤를 놔두게 하였습니다(대하 13:13-14). 웃사가 죽는 바람에 그만 다윗 성에 모시기가 너무 두려워서 모시지 못하고 도중에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궤를 옮겨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가 석 달 동안 있는 동안에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궤를 석 달 동안 모시고 있으면서 그 집과 모든 소유에 복을 풍성히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시면 복을 받습니다. 석달만 모셨어도 하나님께서 큰 복을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궤를 모신 사람의 복은 이렇게 큽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셨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신 것이고 그리스도라는 속죄주를 모신 것입니다. 이렇게 모시면 석 달만 잘 모셔도 하나님의 큰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집이 복이 있고 말씀대로 사는 집이 복이 있고 그리스도의 속죄에 감격해서 감사함으로 사는 집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궤를 모시면 복을 받는구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간 있는 동안에 저렇게 큰 복을 받았는데 나도 빨리 모셔야 되겠다’라고 생각해서 궤를 빨리 모셔올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 모은 것은 하나님 모시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알게 해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는 것은 다윗 혼자서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하나님 궤 모시는 데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궤 모시는 데에 동참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막에 모시려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궤 섬겨야 될 것을 알게 해주고, 또 섬기기로 작정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다 모은 것입니다. 다윗만 모시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복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몸을 성결케 하고 궤를 운반하게 함

본문 4-12절에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모으니 그핫 자손 중에 족장 우리엘과 그 형제 일백 이십 인이요 므라리 자손 중에 족장 아사야와 그 형제 이백 이십 인이요 게르솜 자손 중에 족장 요엘과 그 형제 일백 삼십 인이요 엘리사반 자손 중에 족장 스마야와 그 형제 이백 인이요 헤브론 자손 중에 족장 엘리엘과 그 형제 팔십 인이요 웃시엘 자손 중에 족장 암미나답과 그 형제 일백 십 이 인이라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족장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케 하고 내가 예비한 곳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불러 왔습니다. 그 중에 궤는 그핫(고핫) 자손이 메어야 합니다. 그런데 므라리 자손도 왔습니다. 므라리 자손은 게르솜 자손과 같이 성전에서 성막을 옮길 때에 수종 드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도 이백 이십 인씩, 또 게르솜 자손 중에도 요엘과 그 형제 일백삼십 인과 엘리사반 자손 중에 이백 인, 헤브론 자손 중에 팔십 인, 웃시엘 자손 중에 일백 십 이 인을 불러 모았습니다. 메는 것은 몇 사람만 메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데에 수백 명, 근 천 명이 모여 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사장을 세웠습니다. 

본문 11-12절에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족장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케 하고 내가 예비한 곳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위해서 수종을 들 자는 몸을 성결케 하고 궤를 메어 올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늘 회개하며 거룩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날마다 죄에서 멀리 떠나는 생활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깨끗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모시는 일에 힘을 써야겠습니다. 더러운 욕심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올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욕심, 모든 더러운 것, 모든 부정한 것을 다 회개하고 거룩한 마음, 성결한 몸을 예비해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올리는 데에 힘을 써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궤를 운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운동 해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궤(교회)를 어깨에 메고 가라

본문 13-15절에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 하고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고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궤를 소에 싣고 가다가 하나님께 벌을 받아 웃사가 죽었습니다.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뛰므로 법궤가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흔들릴 때에 법궤가 떨어질까 봐 웃사가 법궤를 붙잡았는데,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웃사를 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이렇게 소에 싣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메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소에게 실은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왜 소에게 실었겠습니까? 이방 사람이 전에 한 번 블레셋 나라에서 싣고 온 것을 보고 이방 사람이 한 방식을 본받은 것입니다. 또 소에게 싣는 것이 어깨에 메는 것보다 쉬우니 일을 손쉽게 하고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맡긴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도 이방 사람의 풍속을 따라서 하면 안 되고, 혈육에다가 교회를 맡겨도 안 됩니다. 또 예수를 쉽게 믿으려고 해도 안 됩니다. 어깨를 들이대고 일심정력을 다해서 메고 나가야만 되게 되어 있지, 쉽게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쉽게 섬기려 하고, 예수님을 쉽게 믿으려 하고, 하나님의 일을 쉽게 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쉽게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쉽게 하는 것을 다 좋아합니다. 쉽게 먹으려고 합니다. 기도는 그저 조금 하고, 성경은 이따금 한 번씩 보면서 쉽게 믿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안하고,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라고 하면 안 나옵니다. 청소하라고 하면 안 하는 것입니다. 쉽게만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요새 사람들입니다. 우리 기도원에서 이번에 이불들을 전부 들어내서 수선할 것은 수선하고, 호청도 거의 다 새로 했습니다. 이불이 약 70개 되고, 요 개수도 이불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 호청을 거의 다 새로 했는데, 다음에는 지퍼를 달아서 호청만 벗겨서 빨려고 합니다. 그러면 안이 전부 똑같은 크기여야 하는데 전에 해놓은 것이 크기가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그것을 나누어서 큰 것은 큰 것대로 모아놓고, 중간 크기와 작은 크기는 그것대로 모아서 대(大), 중(中), 소(小)로 써놓으라고 했습니다. 다음에 세탁해서 끼울 때는 대는 대끼리, 중은 중끼리 끼우고, 소는 소대로 끼우면 됩니다. 그리고 너무 큰 것이 대, 여섯 개 되었는데 자르기가 아까워서 그것은 특대(特大)라고 해서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이불과 요를 완성해서 식당에 쭉 쌓아놓았는데 지난 토요일에 교역자 한 이십여 명이 식사하러 왔을 때 내가 가서 점심식사 후에 그것을 여자 기숙사에 다 쌓아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다 쌓았으려니 하고 식사 후에 가 보았더니 모두 산으로 올라가고 한 대, 여섯 명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이 이렇게 해서야 되겠나 싶어서, 방송을 했습니다. 자기 몸 편안한 것만 위하는 사람은 교역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일부러 방송을 한 것입니다. 이불을 나르지 않은 사람은 필요하지 않은 줄로 알고 공급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전부 도로 내려와서 모였습니다. 왜 다 내려왔느냐고 하자 아까는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목사는 안 해도 되고 전도사만 일하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으니 망정이지, 하여튼 쉽게 먹으려는 것, 즉 어떻게 하면 편안할까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내가 안 해도 되겠거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깨에 들이대고 메어야 합니다. 교역자들이 전부 어깨에 이불과 요를 들이 메고 올라가서 옮겨놓았습니다. 메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궤도 메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쉽게 하려고만 하지 말고, 와서 땀을 흘리고 어깨에 메고 일심정력을 해야 합니다. 쉽게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기도하는 것도 좀 힘을 쓰고 노력을 하고 어깨에 메고 나가는 것과 같은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시간도 힘써 미리 준비해서 참여하고 전심전력과 일심정력을 들여서 드려야 합니다. 힘을 하나도 안 쓰고 그저 누워 있다가 ‘예배 시간이 다가오니 이제 가자. 늦었는데 빨리 가자’는 식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배 시간에 늦는 사람들은 시원치 못한 이들입니다. 어깨에 메야 되겠는데, 쉽게 해결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늦은 사람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가 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가 되지 않으려면 늦지 않게 오되, 고핫 자손처럼 어깨를 들이대고 하나님의 궤를 메고 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어깨를 들이대고 힘을 써서 메고 나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한 몫 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전도할 때 한 몫 메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청소하는 데에 한 몫 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 몫 메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궤를 메는 사람이 아닙니다. 차희남 집사님이 세상을 떠났는데, 한 몫 메던 집사가 떠났습니다. 세상 떠나는 날 청소하느라고 자기 집에서부터 비닐 주머니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오늘 청소하겠다고 비닐 주머니를 가지고 와서 거기에다가 종이를 주워서 담고 빗자루로 청소를 다 하고는 그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몫을 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집 소파는 기도원에 기증해 내놓았습니다. 거기에 앉아서 쉬고 얘기도 할 수 있으니 죽으면서도 목사님들을 대접하고 간 것입니다. 하여간 한 몫 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청소할 때에 한 몫 멜 수 있습니다. 새벽 기도하는 데에 한 몫 메야 합니다. 전도하는 데에도 한몫 멜 수 있습니다. 

이제 대청소를 한 번 해야겠는데, 그 때 한 몫을 메시길 바랍니다. 대청소를 하려면 의자 전체를 다 뒤로 가져가야 하고 전부 물로 닦아야 하므로 상당히 힘이 들고 사람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하여간 한 몫 메는 일이 필요합니다. 한 몫을 메야 하나님을 모실 수 있고 또 메야만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메지 않는 사람은 복을 못 받습니다. 언제나 한 몫 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또 유년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 한 몫을 메시길 바랍니다. 전도해서 한 몫을 메야 합니다. 한 몫 메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또 새로 나오는 교인을 가르치는 사람도 한 몫 메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간다고 하였습니다. 

3. 감사 찬송을 하면서 하나님의 궤를 옮김

본문 16-24절에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하여 그 형제 노래하는 자를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 형제 중 베레야의 아들 아삽과 그 동종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 그 다음으로 형제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문지기 오벧에돔과 여이엘을 세우니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스가랴와 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마아세야와 브나야는 비파를 타서 여청에 맞추는 자요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과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 레위 사람의 족장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주장하여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요 베레갸와 엘가나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요 제사장 스바냐와 요사밧과 느다넬과 아미새와 스가랴와 브나야와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요 오벧에돔과 여히야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더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데 감사 찬송을 하면서 옮깁니다. 노래하는 데에는 레위 사람 헤만과 아삽이 언제나 앞장을 섭니다. 헤만과 아삽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데에 제일 앞장을 서서 모든 사람을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악기인 비파, 수금, 제금 등을 울려서 소리를 내며 즐겁게 모든 사람들이 찬송을 하면서 하나님의 궤를 옮깁니다. 

4. 문지기 오벧에돔의 신앙

여기서 오벧에돔은 석 달 동안 하나님의 궤를 모셨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기한이 다 되어서 하나님의 궤를 더 모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올라가려고 할 때에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궤를 사랑하여 거기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어떻게 하든지 귀중히 여기면서 하나님을 존경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내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이 그것을 보고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궤를 석 달 모시던 사람인데, 이제도 떠나지 않을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구나. 너는 궤 앞에서 문지기 노릇을 해라”고 하여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궤 앞에서 문지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 성에 와서 아주 즐겁게 그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궤를 석 달 동안 모시면서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데에 가도 괜찮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궤를 사랑하는 마음과 위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기 때문에 문지기 자리라도 좋았던 것입니다. 그가 복을 많이 받았지만 자기 집에서 향락 생활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또 안일주의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궤 앞에 가서 문지기라고 하면 좋겠습니다”하고 그 자리에 단 마음으로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 교회 문지기로 일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 문지기하는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일본에서 어느 판사가 교회의 장로가 되었는데, 교회에 나오면 신발장 옆에서 사람들이 벗은 신을 정리하여 신발장에 올리고 내리는 일을 한답니다. 한국 사람이 일본 교회에 몇 번 나갔는데 무슨 사건이 생겨서 재판을 받으러 갔답니다. 그런데 그 재판장이 교회에서 늘 보던 그 사람이더랍니다. 판결을 받은 다음 교회에 나가서 보니 여전히 벗어놓은 자기 신을 신발장에 놓아주던 사람이 그 사람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판사입니까?”라고 물으니 “그렇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서는 판사더라도 교회에 들어와서는 교인들 신을 신발장에 올려놓아 주는 일을 맡은 것입니다. 

오벧에돔이 그와 같습니다.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복을 많이 받았지만 하나님의 궤가 너무 귀중하고 하나님을 떠나려고 해야 떠날 수가 없기 때문에 문지기 일을 맡은 것입니다. 다윗이 일하라고 준 그 자리를 참 고맙게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우리가 본받아야겠습니다. 대접 받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월급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너무 감격이 넘쳐서 문지기라도 맡겨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감사함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주일 학교 반장이라도 너무 감사해서 하는 것이고 예배당에 나가서 다른 사람의 신을 신발장에 정리하는 것도 감사해서 하는 일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5. 하나님께서 레위 사람을 도와주심으로 무리가 언약궤를 운반함

본문 25-26절에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렸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라고 하였는데, 누가 도우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언약궤를 메어 오기는 사람이 메어 왔으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메어 왔다는 것입니다. 도와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안 됩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하는 것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므로 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하는 줄을 알아야지 자기가 뭔가 하는 줄로 알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루를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사는 줄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일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살 줄을 알아야 합니다. 또 무슨 일을 한 가지 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못 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사는 줄을 알고 도움을 받으려고 힘을 쓰고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본문 27-28절에 “다윗과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 두목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각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고 하였습니다. 언약궤를 메어 올렸습니다. 

6.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김

본문 29절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어다 보다가 다윗 왕의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심중에 업신여겼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 왕이 춤추면서 너무 기뻐하며 언약궤 앞에서 오는데 다윗의 아내 미갈이 창으로 내어보다가 다윗을 업신여겼습니다. 사무엘하 6장 20-23절에 “다윗이 자기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가로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찌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다윗이 거기에서 뛰논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어린 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하게 행동한 것입니다. 너무 즐거워서 뛰어 놀은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 아이만도 못합니다.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뛰논 것입니다. 그런데 미갈과 같이 믿음으로 하는 일을 멸시한 사람은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해산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어린 아이와 같이 순진한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는 일을 멸시하는 사람은 해산하지 못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창성하지 못하고 번성하지 못하고 생명의 역사가 없고 점점 쇠잔해 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겠습니다. 체면이나 위신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섬기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기쁨으로 해야겠습니다. 그것을 멸시하는 사람은 벌을 받아서 해산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든지 상관치 말고 다만 믿음으로 하는 일에 힘을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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