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합당한 생활
시편 17:1-15
1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내시며 주의 눈은 공평함을 살피소서 3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4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 5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 6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는고로 내가 불렀사오니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7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8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9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10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 11이제 우리의 걸어가는 것을 저희가 에워싸며 주목하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13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14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15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편 17:1-15
1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내시며 주의 눈은 공평함을 살피소서 3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4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 5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 6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는고로 내가 불렀사오니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7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8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9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10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 11이제 우리의 걸어가는 것을 저희가 에워싸며 주목하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13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14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15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1. 진실한 기도
본문 1절에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와 진실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거짓되지 않은 내 입술’은 진실한 말, 정직한 마음과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식(外飾)을 미워하시고 정직하고 진실한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회개하는 생활을 하며,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과 입술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2. 흠 없는 생활
본문 2절에 “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내시며 주의 눈은 공평함을 살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판단을 바로 해달라는 것입니다. 불의가 가득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바른 판단을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또 ‘주의 눈은 공평함을 살피소서’라고 하였는데, 주의 판단은 공평하기 때문에 그 판단으로 나를 판단하셔서 모든 불의한 세력에서 건져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공평한 자리에 있어야 하며, 의로운 자리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 양심도 평안하고 하나님께서도 기도에 응답해주십니다. 공평과 정직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길입니다.
본문 3절에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항상 흠 없는 생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에도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흠 없는 생활하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觸犯)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살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서 바로 하려고 힘을 쓴 것입니다. 흠과 점이 없도록 언제나 신앙 양심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자기 마음을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마음으로, 입으로, 행동으로 범죄하지 않기를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 앞에 옳게 생활하기를 작정하고 노력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습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어떻게 하든지 흠 없는 생활을 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범죄하지 않으려 힘을 쓰고, 여러 가지 시험이 들어올 때에도 마음으로나 입으로 흠과 점이 없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깨끗이 하고, 승리적으로 통과하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우리도 그런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입니다.
본문 4절에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입술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시는 것으로 믿었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자기의 생명으로 받아 그 명령대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강포하게 행하지 않으며, 제 고집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힘과 완력, 혈기로 무엇이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완악한 생각으로 제 힘을 써서 억지로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만 순종한 다윗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온유한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런 성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이런 다윗의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본문 5절에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자기의 발걸음이 주의 길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힘써 주의 말씀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발자국을 옮겨 놓으려고 힘을 쓰고, 주의 길을 굳게 지키며 실족하지 않은 다윗입니다.
우리도 주의 길에서 실족하지 않기 위해 말씀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굳센 결심을 가지고 나가야 실족하지 않지, 방심 부주의할 때에는 주의 길에서 떠나게 됩니다. 우리가 방심 부주의하지 않고 주의 길을 떠나지 않으려고 굳게 지켜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실족하지 않게 해주
시는 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기도함
주께 피하는 자를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님께 기도함
본문 6절에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는고로 내가 불렀사오니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주실 줄로 믿고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지 말고 ‘아버지의 원대로,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간구하는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7-8절에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라고 하였습니다. 주께 피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께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아무리 잘못하고 하나님께 매를 맞으며 징계를 받아도 주께로 피하면 주님은 쫓아 내지 않으시고 반드시 주의 오른손으로 그 사람을 건져내시고 보호해주십니다.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매를 맞을 때에도 다른 데로 도망치지 말고 주께로 도망쳐야 합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주께로 도망쳐 들어가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그 오른손으로 붙들어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이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잘못하여 매를 맞을 때에도 주께 피해 들어가야 함
그런데 매를 맞을 때 달아나면 더 맞습니다. 달아나고 하나님을 점점 떠나가면 더 맞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매를 때리실 때에도 주님 앞으로 점점 가까이 들어가야 합니다. 자복하며 가까이 들어가고, 전적으로 의뢰하며 회개하면, 주님께서는 오른손으로 반드시 붙들어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아이들도 말을 안 듣고 잘못 나감으로 부모가 막대기로 때릴 때에 부모 앞으로 점점 가까이 들어가면서 잘못했다고 하면 불쌍히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 아이를 때리지 않고 좋은 말로 타이르고 사랑으로 용납해주며 잘 인도해줍니다. 교역자들 중에서도 교회를 개척하
고 교회 일을 보면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럴 때 책망을 해보면 두 가지 종류가 나타나는데 하나는 점점 멀어져서 자기의 잘못한 것이 드러날까봐 변두리로 돌아다니며 불평이나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를 당해도 가까이 들어오는 사람입니다. 후자(後者)는 가까이 들어와서 인도를 좀 더 받아 바로 서려고 하고, 순종을 하려고 하며, 받들어 나가려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과거에 실수를 많이 했고 잘못한 것이 많다고 해도, 점점 더 가까이 오면서 인도를 받으려고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도 고치려 하고 바로 서려고 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며,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희망이 있어서 앞으로 잘 인도해주면 좋은 교역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하나님의 매를 맞을 때도 많지만, 그때에도 이렇게 주께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피해 들어가면 주님께서 오른손으로 붙들어주시고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주님을 피해서 다른데로 멀리 가고 기도도 하지 않고 점점 더 물러가면, 아주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께 피해 들어가는 사람은 주께서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주시고 오른손으로 붙들어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며 주의 날개 아래 품으시는 주께 기도함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눈동자를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주께 피해 들어가는 사람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10절에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눈동자같이 지켜주셨다는 것입니다.
주께로 피하면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십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는 것처럼 하나님의 날개 아래 품어주십니다. 원수가 침략치 못하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9절에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압제하는 악인이 많고, 죽이려고 하는 원수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께 피하며 자신을 압제하는 모든 원수들에게서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오른손으로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또 그것을 믿고 압제하는 자와 원수에게서 건져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4. 악인의 생활 상태
세상의 풍부한 생활에 잠겨 교만한 말을 함
본문 10절에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다’는 것은 이 세상의 불신자들이 윤택한 생활에 잠겨 있다는 뜻입니다. 원수들은 세상의 풍부하고 기름진 것,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에 빠져서 기름에 잠긴 것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주의, 세상 향락, 세상 물질, 세상 오락, 세상의 풍부한 생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입으로는 교만을 말하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입으로는 교만한 말을 하면서 하나님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부한 생활에 잠겨 교만한 말을 함
본문 10절에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다’는 것은 이 세상의 불신자들이 윤택한 생활에 잠겨 있다는 뜻입니다. 원수들은 세상의 풍부하고 기름진 것,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에 빠져서 기름에 잠긴 것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주의, 세상 향락, 세상 물질, 세상 오락, 세상의 풍부한 생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입으로는 교만을 말하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입으로는 교만한 말을 하면서 하나님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이제 우리의 걸어가는 것을 저희가 에워싸며 주목하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도가 걸어가는 것을 주목해 보다가 땅에 엎드러뜨리고 굴복을 시키면서 핍박을 합니다. ‘주목한다’는 것은 ‘네가 얼마나 걸어가는가 보자’하고 본다는 의미입니다. 악한 자들은 성도가 하나님을 향해서 걸어가는 것을 아주 싫어하여 못 가게 하려고 에워싸고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만 피해야 하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걸어가야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걸어가지 못하면 악한 원수를 뚫고 나갈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고 원수를 날마다 이기면서 전진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12절에 “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마귀와 마귀의 종들이 움킨 것을 찢는 잔인한 사자와 같이 은밀한 곳에 엎드려 성도를 잡아 삼키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기회만 되면 잡아서 찢어 먹으려고 우리를 엿보고 있습니다.
성도는 항상 깨어서 영혼을 건져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함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하였습니다. 대적 마귀는 언제나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습니다. 또 엎드려 기다리고 그 다음에는 움킨 것을 물어 찢으려는 사자와 같이 잔인한 태도를 가지고 엿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한 번 걸려들면 아주 망하고 말기 때문에, 항상 깨어 기도하고 언제나 주님께 피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13절에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원수가 사자와 같이 잡아 삼키려고 하니까, 여호와께서 일어나셔서 그 원수를 넘어뜨려주시고 악인에게서 영혼을 구원해달라는 것입니다. 주의 칼로 악인을 다 심판하시고 나의 영혼을 구원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지금도 원수들이 얼마나 악하고 잔인하게 잡아 삼키려고 하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그 원수를 다 이기시고 칼로 찌르시며 우리의 영혼을 건져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십니다. 성도를 오른손으로 붙들어주시고 강건케 해주십니다. 원수를 눌러주시며 거기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순교를 당할 때에는 순교를 당할 수 있는 힘까지 주십니다. 그런 기도를 하면 마음으로 다 이기게 해주시고 영적으로 모든 것을 정복하면서 순교를 당하게끔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면 반드시 영적으로 승리하게 만들어주시는 주님이신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영적으로도 원수를 물리쳐주시고 필요하면 외부적으로도 다 물리쳐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적으로 구원해주시는 것이 첫째이고, 외부적으로도 구원해주시는 것이 둘째입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영적으로 승리하면서 순교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외부적으로 다 눌러서 육체적으로도 구원을 받는 것이 둘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일 좋은 것으로 기도하는 자의 원수를 물리쳐주십니다. 그래서 승리하게 만들어주십니다.
본문 14절에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금생(今生)이라는 것은 이 세상을 가리킵니다. 세상 사람들, 불택자들은 내세의 분깃이 없고 금생에서만 분깃이 있습니다. 불택자들은 세상에서만 잘되는 것입니다. 금생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분깃을 가지고 잘 삽니다. 주님께서 주신 재물로 배를 채우며, 자녀들도 잘되어서 그 자녀로 만족하며 삽니다. 또 남은 산업은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한다고 하였습니다. 전해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택자들의 사는 생활입니다. 불택자들은 세상 물질, 세상 분깃, 자녀, 세상 산업을 가지고 사는데, 그것으로 만족하고 사는 것입니다. 자녀로 만족하고 물질로 만족하고 세상 것으로 만족합니다. 또 앞으로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삽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내세의 분깃, 오는 세상에 대한 분깃, 신령한 분깃이 있습니다. 성도는 불택자들과 같은 분깃을 바라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5. 성도의 신앙 생활과 소망
성도의 신앙 생활
본문 15절에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의(義)’ 가운데 사는 것이 성도입니다.
성도의 신앙 생활
본문 15절에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의(義)’ 가운데 사는 것이 성도입니다.
성도는 첫째 ‘의’로 즐거워하고 의를 이루어나가며 의를 자기의 기업으로 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의 가운데서 살고 의를 재산보다 중히 여기며 의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가장 큰 기업인줄 알고 나가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살 때 가장 즐거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주의 얼굴을 보는 것인데, 그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가리킵니다. 즉, 기도하는 생활, 주님과 더불어 신령한 교제를 하는 생활,주의 얼굴을 보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는 생활입니다. 먼저 장차 깰 때를 생각하는 것인데, 세상을 떠나 부활할 때가 그때입니다. 그리고 현재로 생각하면 우리의 심령이 깨어날 때를 말합니다. 즉, 심령이 깨어나서 이 세상에서 믿는 일을 하므로 주의 형상을 닮아가며 그 형상으로 만족하는 생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의 생활은 무엇입니까? 세상 분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로 배 불리고 좋은 자녀를 둔 것으로 만족하며, 기업을 자손에게 남겨주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세상의 부모들은 만나기만 하면 자기 아들 자랑, 딸 자랑을 합니다. 우리 아들이 무슨 학교 들어갔고, 우리 딸이 어디로 시집가서 뭘 하고, 사위가 뭘 하고, 작은 아들이 뭘 한다고 자랑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자녀 자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제 어떤 사람을 만났더니 자기 자녀들이다 잘됐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하여간 자녀 자랑, 사업이 잘되는 자랑, 주께서 주신 재물 자랑, 또 아이들에게 재산 물려주는 자랑 등이 세상 사람들의 자랑거리입니다.
그러나 믿는 성도는 ‘의’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 나라와 의가 천하보다 귀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들이 자기의 생명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천하를 준다고 해도 의 하나와 바꾸지 않고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그리고 주의 얼굴을 뵈는 것으로 만족하는 생활, 기도하는 생활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언제나 주의 얼굴을 가까이 하는 생활, 신령한 세계에서 주님과 교통하는 생활로 만족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깰 때에 주의 형상에 만족하도록, 거기에 소망을 두고 날마다 주의 형상을 이루어나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성도의 자세이며 삶입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갈 때에는 얼마나 주의 형상을 이루어갔느냐에 따라 상급을 받고 광채가 납니다.
성도의 소망
고린도후서 5장 2절에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 원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옷 입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생활, 빛의 옷을 입는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이 자기에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3절에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벌거벗은 구원으로 발견되지 않고, 좀 더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가기 위하여 사모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4절에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짐을 지고 가는 것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져야 할 모든 멍에를 벗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으로 덧입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매어준 멍에를 매고 나가며 힘을 써서 짐을 지겠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덧입기를 힘쓴다는 것입니다.
또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는데, 죽을 것이라는 것은 육신대로 사는 생활을 말합니다. 그리고 ‘생명에 삼킨다’는 것은 영의 생활에 희생당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영적 생활에 모든 것을 희생하여 생명에게 삼킨 바 되어 나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영적 생활에 육신의 생명까지 삼켜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영적 생활에 삼켜지는 것은 순교 생활입니다. 순교를 당하기까지 영적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순교를 당하는 것은 죽을 육체가 영적 생명에게 삼킨 바 되는 것입니다. 그때 유익이 제일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상급도 제일 많습니다. 이 다음에 부활할 때에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족하기 위해, 지금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형상을 이루어나가는 것에 목표를 두고 사는 것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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