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계시와 특별 계시
시편 19:1-14
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7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9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0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19:1-14
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7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9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10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1. 자연 계시의 조명(照明)과 전달
자연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음
본문 1절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은 천체(天體)들로 해와 달과 별을 가리키고, 궁창은 무한한 공간을 말합니다. 이것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무한하심, 그리고 영광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하
늘의 무수한 별을 보면서 창조자가 살아 계신 것을 알게 되고, 해나 달을 보고 창조자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우시며, 얼마나 능력과 지혜가 많은 분이신 줄을 깨닫게 됩니다. 몇 백 년, 몇 천 년에 이르도록 반짝이는 별을 보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원하심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자연 만물은 자연 계시로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하나님이신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신지, 얼마나 위대하시며 지혜가 많으시고 영광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신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 계시는 소리 없이 전달되어 내려감
본문 2절에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루가 가면 또 그 다음 날이 오고, 낮이 왔다가 또 밤이 오며, 밤과 낮이 바뀌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 한 세대가 가면 다음 세대가 오고, 하루가 가면 그 다음 날이 바뀌어 가면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하나님의 자연 계시는 계속 전달되는 것입니다. 파괴되거나 변하지 않고 계속 지속되며,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 지혜 및 모든 것이 전달되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고 하였는데, 언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의 모든 천체들과 궁창, 만물들은 세월이 흘러도 묵묵히 아무 소리 없이 지속되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원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주와 자연, 그 자체로 계시가 되어 전달되어 세계 끝에서도 만물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라고 하였는데, 천체 중에서도 해가 없어지면 사람은 일시에 다 죽을 수밖에 없고, 땅덩어리는 전부 얼음 덩어리가 되어 흑암에 싸이고 말 것입니다.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해가 천체 가운데 아주 아름답고 많은 혜택을 입혀줍니다.
본문 5절에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적 표현으로, 태양이 올라올 때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다는 것입니다. 해는 신랑과 같이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는 것을 장사가 길을 용맹스럽게 달리는 것에 비유한 것입니다. 해가 지구 한 바퀴 거리를 달려서 간다는 것입니다. 대략 낮이 24시간의 절반이니, 해는 12시간 안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집니다. 그만큼 빨리 달리는 것이 있습니까? 지구 덩어리 절반씩을 12시간 만에 달립니다. 24시간에 지구 한 바퀴를 달리니 얼마나 빨리 달립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알 수 있는 시적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만드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해가 24시간 동안에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것을 운행해나가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도 해와 같이 용맹 있게 달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해가 오늘 하루도 달려갔습니다. 계속 달려 나가는 것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을 다가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지켰다’고 하였는데, 우리도 자기의 달려갈 길을 다 가고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오늘도 구원 운동을 용맹 있게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연 계시를 영적으로 받아야 함
본문 6절에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해가 12시간 만에 동편에서 서편까지 가도록 운행해나가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라고 하였는데, 태양의 온기가 없다면 살 수가 없습니다. 태양의 온기 때문에 땅이 얼지 않고 초목도 소생하고 곡식도 소생하며 모든 것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태양이 조금만 멀어져도 얼었다가, 조금 가까워지면 모든 산천초목과 곡식이 다 소생하여 올라옵니다. 사람들도 태양 빛을 받지 못하고 방에만 있게 되면 건강하지 못합니다. 곡식이나 나무, 모든 것이 태양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힘이 없습니다.
우리 한국은 태양이 잘 비취니 태양 빛이 귀한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늘 비가 많이 오고 흐린 나라도 많고, 겨울에 매일 비가 내리고 눈이 와 해가 나는 날이 많지 않은 나라도 많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태양 하나만 봐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태양을 만들어놓으시고, 광선과 온기를 주셔서 모든 사람이나 만물, 짐승이나 동물이나 초목이나 식물을 길러나가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유익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그와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빛이 되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인하여 우리가 살게 되고 소생함을 얻게 되고 위안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강건함을 얻게 되며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우리에게 비추어주시는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 빛은 온 세상이 다 좋아합니다. 빛이 싫다고 숨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주시고 필요한 것을 주시며 생명 길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특별 계시의 존귀함과 유익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들에게 특별 계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심
본문 7-8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특별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범죄하기 전에는 자연 계시를 가지고도 하나님께서 어떠한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또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하므로 그 영혼이 죽었고 눈과 귀가 다 어두워져서 자연계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특별 계시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도 특별 계시이고 우리를 구속해주신 것과 성경말씀이 특별 계시입니다. 성령의 역사도 특별 계시입니다. 이러한 특별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중생시키시고 심령의 눈을 밝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분명히 알게 해주십니다. 즉, 예수를 믿으므로 비로소 심령의 눈이 밝아진 사람이어야 자연 만물을 보고 하나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더 깊이 알고 더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만물을 보고도 모릅니다
자연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음
본문 1절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은 천체(天體)들로 해와 달과 별을 가리키고, 궁창은 무한한 공간을 말합니다. 이것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무한하심, 그리고 영광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하
늘의 무수한 별을 보면서 창조자가 살아 계신 것을 알게 되고, 해나 달을 보고 창조자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우시며, 얼마나 능력과 지혜가 많은 분이신 줄을 깨닫게 됩니다. 몇 백 년, 몇 천 년에 이르도록 반짝이는 별을 보며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원하심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자연 만물은 자연 계시로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하나님이신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신지, 얼마나 위대하시며 지혜가 많으시고 영광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신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 계시는 소리 없이 전달되어 내려감
본문 2절에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루가 가면 또 그 다음 날이 오고, 낮이 왔다가 또 밤이 오며, 밤과 낮이 바뀌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 한 세대가 가면 다음 세대가 오고, 하루가 가면 그 다음 날이 바뀌어 가면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하나님의 자연 계시는 계속 전달되는 것입니다. 파괴되거나 변하지 않고 계속 지속되며,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 지혜 및 모든 것이 전달되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고 하였는데, 언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의 모든 천체들과 궁창, 만물들은 세월이 흘러도 묵묵히 아무 소리 없이 지속되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원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주와 자연, 그 자체로 계시가 되어 전달되어 세계 끝에서도 만물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라고 하였는데, 천체 중에서도 해가 없어지면 사람은 일시에 다 죽을 수밖에 없고, 땅덩어리는 전부 얼음 덩어리가 되어 흑암에 싸이고 말 것입니다.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해가 천체 가운데 아주 아름답고 많은 혜택을 입혀줍니다.
본문 5절에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적 표현으로, 태양이 올라올 때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다는 것입니다. 해는 신랑과 같이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는 것을 장사가 길을 용맹스럽게 달리는 것에 비유한 것입니다. 해가 지구 한 바퀴 거리를 달려서 간다는 것입니다. 대략 낮이 24시간의 절반이니, 해는 12시간 안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집니다. 그만큼 빨리 달리는 것이 있습니까? 지구 덩어리 절반씩을 12시간 만에 달립니다. 24시간에 지구 한 바퀴를 달리니 얼마나 빨리 달립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알 수 있는 시적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만드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해가 24시간 동안에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것을 운행해나가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도 해와 같이 용맹 있게 달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해가 오늘 하루도 달려갔습니다. 계속 달려 나가는 것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을 다가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지켰다’고 하였는데, 우리도 자기의 달려갈 길을 다 가고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오늘도 구원 운동을 용맹 있게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연 계시를 영적으로 받아야 함
본문 6절에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해가 12시간 만에 동편에서 서편까지 가도록 운행해나가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라고 하였는데, 태양의 온기가 없다면 살 수가 없습니다. 태양의 온기 때문에 땅이 얼지 않고 초목도 소생하고 곡식도 소생하며 모든 것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태양이 조금만 멀어져도 얼었다가, 조금 가까워지면 모든 산천초목과 곡식이 다 소생하여 올라옵니다. 사람들도 태양 빛을 받지 못하고 방에만 있게 되면 건강하지 못합니다. 곡식이나 나무, 모든 것이 태양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힘이 없습니다.
우리 한국은 태양이 잘 비취니 태양 빛이 귀한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늘 비가 많이 오고 흐린 나라도 많고, 겨울에 매일 비가 내리고 눈이 와 해가 나는 날이 많지 않은 나라도 많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태양 하나만 봐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태양을 만들어놓으시고, 광선과 온기를 주셔서 모든 사람이나 만물, 짐승이나 동물이나 초목이나 식물을 길러나가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유익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그와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빛이 되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인하여 우리가 살게 되고 소생함을 얻게 되고 위안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강건함을 얻게 되며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우리에게 비추어주시는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 빛은 온 세상이 다 좋아합니다. 빛이 싫다고 숨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주시고 필요한 것을 주시며 생명 길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특별 계시의 존귀함과 유익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들에게 특별 계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심
본문 7-8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특별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범죄하기 전에는 자연 계시를 가지고도 하나님께서 어떠한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또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하므로 그 영혼이 죽었고 눈과 귀가 다 어두워져서 자연계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특별 계시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도 특별 계시이고 우리를 구속해주신 것과 성경말씀이 특별 계시입니다. 성령의 역사도 특별 계시입니다. 이러한 특별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중생시키시고 심령의 눈을 밝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분명히 알게 해주십니다. 즉, 예수를 믿으므로 비로소 심령의 눈이 밝아진 사람이어야 자연 만물을 보고 하나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더 깊이 알고 더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만물을 보고도 모릅니다
특별 계시의 유익
1)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케 함 성경에 보면 율법, 여호와의 증거, 여호와의 교훈, 계명, 도, 규례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 진리의 말씀이 변함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무결하여 우리의 영혼을 완전히 소생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조금의 부족한 것이 없이 충분합니다.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버릴 것이 없고 전부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털끝만큼도 거짓된 것이 없는 진리, 헛된 것이 없는 진리, 전부가 다 실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므로 그 말씀을 믿고 나가는 사람은 그
영혼을 완전히 소생시켜 나가는 사람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곡절이 닥쳐도 여호와의 완전한 말씀을 믿을 때, 그 영혼이 벌떡 일어나서 소생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믿어야 힘이 납니다. 말씀을 믿지 않으면 힘이 나지 않습니다.
구약시대 성도들이 말씀을 믿고 힘이 나서 달음박질했습니다. 말씀으로 사자 굴을 이기고, 말씀으로 풀무를 이기고, 말씀을 믿고 독자(獨子)를 바쳤습니다. 말씀을 믿을 때에 소망이 생기고 쓰러지다가도 다시 일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믿으면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다시 일어서는 칠전팔기(七顚八起)가 되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에도 말씀을 믿고 하늘을 쳐다보니,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말씀을 믿고 소생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쓰러질 때에도 ‘성경말씀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는가’하면서 찾아 믿어야 합니다. 일이 다 틀어질 것 같고 이제는 죽을 것밖에 보이지 않고 살 가망이 없는 것 같으며 절망 가운데 빠진 것 같을 때에 후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자포자기하지 말고 성경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감당치 못할 시험은 주지 않으신다’고 하였으니 찾아보란 말입니다. 그리고 ‘감당할 힘을 주시옵소서’하며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가 되지 않는 것은 주지 않으시고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주시며 유익되는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 말씀대로, 유익이 될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같이 계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 떠날 날까지 항상 같이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으면 힘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같이 해주시는 것을 믿고 용기를 얻습니다.
한상동 목사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해주시는 것을 믿고 힘을 얻어 감옥에서 승리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떤 말씀을 믿은 것입니까?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그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힘이 났고 영혼이 소생하여 올라갔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다 죽을 것 같고, 살 가망이 없지만, 말씀을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혼의 소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지, 사람이 가서 아무리 위로를 해주어도 쓸 데가 없습니다.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다가는 그 사람에게 잡혀서 도리어 함정에 빠집니다. 사람은 믿을 바가 아니고 붙잡을 바도 아니고 사랑할 바입니다.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 영혼을 소생케 해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여 지혜롭게 함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라도
예수를 믿고 여호와의 확실한 증거인 말씀대로만 행하면, 지혜 있고 통달한 자를 앞서 나갑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는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를 택하여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 지혜로만 나가는 자는 가다가 실패하나, 이 말씀대로 나가는 자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말씀을 깨닫고 믿는 자는 그 말씀이 자기 지혜가 됩니다. 말씀대로 하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마귀는 인간보다 지혜가 있지만, 말씀이 하나님의 지혜이므로 말씀대로 하면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지혜 있고 통달한 자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 있고 통달한 자가 하나님의 일을 자기 지혜대로, 자기 방법대로 하다가는 실패하게 됩니다. 교역자들도 지혜 있고 통달한 교역자가 성공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실패합니다. ‘그저 말씀만 믿습니다. 난 모릅니다. 말씀만 믿고 나갑니다’라고 하며 나가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 동창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은 머리가 상당히 좋아서 성경도 많이 외우고 한 번 들으면 다 알았습니다. 또 무슨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도 잘 알았습니다. 머리가 좋고 말도 잘해서, 척 보면 뭐든 사리 판단이 훤하니 교회도 잘할 것 같지 않습니까? 또 생기기도 잘 생겼습니다. 노회나 총회에 가보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만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실패하였습니다. 자기 지혜로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지혜, 자기 방법, 자기 수단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지혜대로 하지 말고 ‘난 모릅니다. 하나님 말씀만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 자체가 지혜이니, 그렇게 나가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일이 잘되도록 해주십니다. 하여간 성경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라는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함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한 말씀이고 참된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해줍니다.
거짓이 없으므로 그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마음이 기뻐집니다. 영적으로 말씀을 믿기 때문에 그 말씀이 속에서 역사하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한다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참 감사합니다’하는 기쁨이 오고, ‘나와 같이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하는 기쁨이 생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생명이라고 하였으니, ‘그 생명으로 사니까 참 감사합니다’하는 기쁨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정직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말씀을 그대로 믿고 영적 신앙에 서는 사람은 마음이 기뻐집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 같은 죄인을 이렇게 사랑해 주셨는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늘나라에 가게 해주시고 하늘나라와 같은 좋은 나라를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렇게 말씀을 믿으면 마음이 기뻐진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함
또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을 믿고 그 말씀
을 새김질하고 말씀에 서는 사람은 눈이 밝아집니다. 말씀에 입각하여 말씀에 ‘이렇게 하라’고 하셨으니 ‘저것은 안 되겠다’, ‘이것은 옳은 것이다’라고 하며 눈이 밝아서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알 수 있고 바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떠난 사람은 눈이 어두워져서 어떤 것이 바른 것인지 모릅니다. 몰라서 이단도 따라가고 미혹시키는 세력에도 따라가고 잘못된 것도 따라갑니다. 말씀에 서 있는 사람은 척 보면 압니다.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잘못됐다. 이것은 이단이다. 이것은 신비주의이다. 이것은 사람을 미혹시키고 속이는 것이다’ 등, 척 보면 압니다. 다 알게 되어 있는데, 말씀에 서지 못한 사람은 몰라서 미혹되어 따라가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케 함 성경에 보면 율법, 여호와의 증거, 여호와의 교훈, 계명, 도, 규례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 진리의 말씀이 변함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무결하여 우리의 영혼을 완전히 소생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조금의 부족한 것이 없이 충분합니다.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버릴 것이 없고 전부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털끝만큼도 거짓된 것이 없는 진리, 헛된 것이 없는 진리, 전부가 다 실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므로 그 말씀을 믿고 나가는 사람은 그
영혼을 완전히 소생시켜 나가는 사람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곡절이 닥쳐도 여호와의 완전한 말씀을 믿을 때, 그 영혼이 벌떡 일어나서 소생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믿어야 힘이 납니다. 말씀을 믿지 않으면 힘이 나지 않습니다.
구약시대 성도들이 말씀을 믿고 힘이 나서 달음박질했습니다. 말씀으로 사자 굴을 이기고, 말씀으로 풀무를 이기고, 말씀을 믿고 독자(獨子)를 바쳤습니다. 말씀을 믿을 때에 소망이 생기고 쓰러지다가도 다시 일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믿으면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다시 일어서는 칠전팔기(七顚八起)가 되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에도 말씀을 믿고 하늘을 쳐다보니,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말씀을 믿고 소생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쓰러질 때에도 ‘성경말씀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는가’하면서 찾아 믿어야 합니다. 일이 다 틀어질 것 같고 이제는 죽을 것밖에 보이지 않고 살 가망이 없는 것 같으며 절망 가운데 빠진 것 같을 때에 후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자포자기하지 말고 성경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감당치 못할 시험은 주지 않으신다’고 하였으니 찾아보란 말입니다. 그리고 ‘감당할 힘을 주시옵소서’하며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가 되지 않는 것은 주지 않으시고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주시며 유익되는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 말씀대로, 유익이 될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같이 계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 떠날 날까지 항상 같이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으면 힘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같이 해주시는 것을 믿고 용기를 얻습니다.
한상동 목사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해주시는 것을 믿고 힘을 얻어 감옥에서 승리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떤 말씀을 믿은 것입니까?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그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힘이 났고 영혼이 소생하여 올라갔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다 죽을 것 같고, 살 가망이 없지만, 말씀을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혼의 소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지, 사람이 가서 아무리 위로를 해주어도 쓸 데가 없습니다.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다가는 그 사람에게 잡혀서 도리어 함정에 빠집니다. 사람은 믿을 바가 아니고 붙잡을 바도 아니고 사랑할 바입니다.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 영혼을 소생케 해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여 지혜롭게 함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라도
예수를 믿고 여호와의 확실한 증거인 말씀대로만 행하면, 지혜 있고 통달한 자를 앞서 나갑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는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를 택하여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 지혜로만 나가는 자는 가다가 실패하나, 이 말씀대로 나가는 자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말씀을 깨닫고 믿는 자는 그 말씀이 자기 지혜가 됩니다. 말씀대로 하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마귀는 인간보다 지혜가 있지만, 말씀이 하나님의 지혜이므로 말씀대로 하면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지혜 있고 통달한 자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 있고 통달한 자가 하나님의 일을 자기 지혜대로, 자기 방법대로 하다가는 실패하게 됩니다. 교역자들도 지혜 있고 통달한 교역자가 성공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실패합니다. ‘그저 말씀만 믿습니다. 난 모릅니다. 말씀만 믿고 나갑니다’라고 하며 나가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 동창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은 머리가 상당히 좋아서 성경도 많이 외우고 한 번 들으면 다 알았습니다. 또 무슨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도 잘 알았습니다. 머리가 좋고 말도 잘해서, 척 보면 뭐든 사리 판단이 훤하니 교회도 잘할 것 같지 않습니까? 또 생기기도 잘 생겼습니다. 노회나 총회에 가보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만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실패하였습니다. 자기 지혜로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지혜, 자기 방법, 자기 수단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지혜대로 하지 말고 ‘난 모릅니다. 하나님 말씀만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 자체가 지혜이니, 그렇게 나가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일이 잘되도록 해주십니다. 하여간 성경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라는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함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한 말씀이고 참된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해줍니다.
거짓이 없으므로 그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마음이 기뻐집니다. 영적으로 말씀을 믿기 때문에 그 말씀이 속에서 역사하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한다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참 감사합니다’하는 기쁨이 오고, ‘나와 같이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하는 기쁨이 생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생명이라고 하였으니, ‘그 생명으로 사니까 참 감사합니다’하는 기쁨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정직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말씀을 그대로 믿고 영적 신앙에 서는 사람은 마음이 기뻐집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 같은 죄인을 이렇게 사랑해 주셨는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늘나라에 가게 해주시고 하늘나라와 같은 좋은 나라를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렇게 말씀을 믿으면 마음이 기뻐진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함
또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을 믿고 그 말씀
을 새김질하고 말씀에 서는 사람은 눈이 밝아집니다. 말씀에 입각하여 말씀에 ‘이렇게 하라’고 하셨으니 ‘저것은 안 되겠다’, ‘이것은 옳은 것이다’라고 하며 눈이 밝아서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알 수 있고 바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떠난 사람은 눈이 어두워져서 어떤 것이 바른 것인지 모릅니다. 몰라서 이단도 따라가고 미혹시키는 세력에도 따라가고 잘못된 것도 따라갑니다. 말씀에 서 있는 사람은 척 보면 압니다.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잘못됐다. 이것은 이단이다. 이것은 신비주의이다. 이것은 사람을 미혹시키고 속이는 것이다’ 등, 척 보면 압니다. 다 알게 되어 있는데, 말씀에 서지 못한 사람은 몰라서 미혹되어 따라가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은 꿀과 송이꿀보다 단 것임
본문 9-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전도사가 성경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달아 말씀을 계속 읽었는데, 소리를 내서 읽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안 믿는 부모님이 자라고 해도 계속 읽으니 기름 다 없앤다고 기름을 치워버렸다고 합니다. 옛날호롱불은 석유를 치든지, 아주까리기름이나 콩기름이나 기름을 짜서
불을 켜놓아야 했는데, 아들이 자꾸 기름을 다 없앤다고 성경을 못 보게 한 것입니가. 그래서 그 전도사가 방앗간으로 갔다고 합니다. 밤에는 방앗간에 사람이 없어서 호롱불을 켜놓고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서 자꾸 불이 꺼져 사과 상자 같은 것을 세워서 호롱불을 켜놓고 거기에 성경을 들여다 놓고 머리를 넣은 채 요한계시록을 본 모양입니다. 그런데 열 두 진주 문이 나오고 홍보석, 녹보석, 정금 같은 것이 나오니까 그 전도사가 좋아서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석유통이 다 뒤집어지고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면 성도가 얼마나 말씀이 즐겁고 기쁘고 꿀보다 달고 꿀송이보다 달기에 그랬겠는가 짐작이 됩니다. 세월 가는 줄을 모릅니다. 어디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방앗간에 나가긴 나갔지만, 방앗간인지 집안인지, 거기가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좋아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전깃불을 이렇게 밝게 켜주는데도 성경을 안 보고 앉아서 딴 소리나 하니, 하나님 보시기에 한심하실 것입니다. 옛날에 전깃불이 없을 때에는 고생하며 바람을 피하여, 안 믿는 식구에게 쫓겨 다니면서 성경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환경이 좋은데도 잘
안 봅니다. 타락될 것을 정해놓은 것입니다. 성경을 안 보고 기도를 안하니 타락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금과 정금보다 귀합니다. 금과 정금으로 하늘나라에 가겠습니까? 또 영생을 얻겠습니까? 금으로 짓는다고 해서 모든 근심, 걱정이 없어지겠습니까? 네로 황제는 금으로 집을 짓고 살았지만, 자살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집을 금으로 짓고 살아도, 그 심령 속에 근심, 걱정, 외로움, 불만, 불안한 것을 금할 수 없어 자살한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기쁩니다. 그 말씀이 답니다. 지혜롭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심령이 소생하여 항상 평안합니다. 또 하늘의 위안과 평강이 오니까 즐거움으로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달음박질하게 됩니다. 금보다 낫고 정금보다 낫습니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6) 하나님의 말씀은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름 본문 11절에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앞 절인 본문 9절에서도 ‘여호와의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라고 하였는데, 성경말씀
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는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변함이 없는, 영원까지 이르는 도입니다.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의 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을 잘하는 성도로서, 자기보다 주님을 위해서 사는 성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는 하나님 말씀으로 늘 경계를 받는 생활, 말씀에 책망을 받는 생활을 합니다. 말씀에 경계를 받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언제나 말씀에 제재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을 잘 지키면 자기 인격이 커지고 영혼도 커지며 하늘나라의 상급도 커집니다. 그리고 그 상급은 영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9-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전도사가 성경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달아 말씀을 계속 읽었는데, 소리를 내서 읽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안 믿는 부모님이 자라고 해도 계속 읽으니 기름 다 없앤다고 기름을 치워버렸다고 합니다. 옛날호롱불은 석유를 치든지, 아주까리기름이나 콩기름이나 기름을 짜서
불을 켜놓아야 했는데, 아들이 자꾸 기름을 다 없앤다고 성경을 못 보게 한 것입니가. 그래서 그 전도사가 방앗간으로 갔다고 합니다. 밤에는 방앗간에 사람이 없어서 호롱불을 켜놓고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서 자꾸 불이 꺼져 사과 상자 같은 것을 세워서 호롱불을 켜놓고 거기에 성경을 들여다 놓고 머리를 넣은 채 요한계시록을 본 모양입니다. 그런데 열 두 진주 문이 나오고 홍보석, 녹보석, 정금 같은 것이 나오니까 그 전도사가 좋아서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석유통이 다 뒤집어지고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면 성도가 얼마나 말씀이 즐겁고 기쁘고 꿀보다 달고 꿀송이보다 달기에 그랬겠는가 짐작이 됩니다. 세월 가는 줄을 모릅니다. 어디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방앗간에 나가긴 나갔지만, 방앗간인지 집안인지, 거기가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좋아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전깃불을 이렇게 밝게 켜주는데도 성경을 안 보고 앉아서 딴 소리나 하니, 하나님 보시기에 한심하실 것입니다. 옛날에 전깃불이 없을 때에는 고생하며 바람을 피하여, 안 믿는 식구에게 쫓겨 다니면서 성경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환경이 좋은데도 잘
안 봅니다. 타락될 것을 정해놓은 것입니다. 성경을 안 보고 기도를 안하니 타락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금과 정금보다 귀합니다. 금과 정금으로 하늘나라에 가겠습니까? 또 영생을 얻겠습니까? 금으로 짓는다고 해서 모든 근심, 걱정이 없어지겠습니까? 네로 황제는 금으로 집을 짓고 살았지만, 자살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집을 금으로 짓고 살아도, 그 심령 속에 근심, 걱정, 외로움, 불만, 불안한 것을 금할 수 없어 자살한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기쁩니다. 그 말씀이 답니다. 지혜롭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심령이 소생하여 항상 평안합니다. 또 하늘의 위안과 평강이 오니까 즐거움으로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달음박질하게 됩니다. 금보다 낫고 정금보다 낫습니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6) 하나님의 말씀은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름 본문 11절에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앞 절인 본문 9절에서도 ‘여호와의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라고 하였는데, 성경말씀
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는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변함이 없는, 영원까지 이르는 도입니다.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의 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을 잘하는 성도로서, 자기보다 주님을 위해서 사는 성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는 하나님 말씀으로 늘 경계를 받는 생활, 말씀에 책망을 받는 생활을 합니다. 말씀에 경계를 받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언제나 말씀에 제재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을 잘 지키면 자기 인격이 커지고 영혼도 커지며 하늘나라의 상급도 커집니다. 그리고 그 상급은 영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3. 죄 짓지 않게 해주시기를 기도함
본문 12절에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허물을 깨닫기가 참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한 것은 무슨 특별한 것을 깨닫지는 못해도 숨은 허물이 많이 있는 줄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잊어버린 죄, 짓고도 알지 못하는 죄, 알지 못하는 결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민수기 15장 28-30절에 “제사장은 그 그릇 범죄한 사람이 그릇하여 여호와 앞에 얻은 죄를 위하여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할찌니 그리하면 사함을 얻으리라 이스라엘 자손 중 본토소생이든지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든지 무릇 그릇 범죄한 자에게 대한 법이 동일하거니와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릇 범죄한 자의 죄가 바로 고범죄(故犯罪)입니다.
또 ‘짐짓 짓는 죄’라는 것은 자기의 신앙 양심이 하나님 앞에 옳은 줄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그것에 반항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인 줄도 알고 옳은 줄도 알면서, 고의적으로 반항하되 죽을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 짐짓 짓는 죄입니다. 이 고범죄는 사실 불택자가 짓는 죄입니다. 택한 백성인 중생한 영혼은 옳다고 인정이 되는 신앙 양심이 있어서 중심으로 반항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불택자는 중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옳다고 인정하지 않고 계속 반항하다가 죽을 때까지 죄를 범하고 결국 지옥에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다가 회개하는 사람은 고범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 지어야 고범죄가 되는데, 중간에 회개하면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 나를 견고하고 굳건히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반석과 같이 나를 굳건하게 해주시고 견고케 해주시며 모든 것을 가려주시고 뜨거운 햇빛을 가려 시원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구속자이신 여호와,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悅納)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것은 말로 기도하고 묵상으로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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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절에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허물을 깨닫기가 참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한 것은 무슨 특별한 것을 깨닫지는 못해도 숨은 허물이 많이 있는 줄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잊어버린 죄, 짓고도 알지 못하는 죄, 알지 못하는 결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민수기 15장 28-30절에 “제사장은 그 그릇 범죄한 사람이 그릇하여 여호와 앞에 얻은 죄를 위하여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할찌니 그리하면 사함을 얻으리라 이스라엘 자손 중 본토소생이든지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든지 무릇 그릇 범죄한 자에게 대한 법이 동일하거니와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릇 범죄한 자의 죄가 바로 고범죄(故犯罪)입니다.
또 ‘짐짓 짓는 죄’라는 것은 자기의 신앙 양심이 하나님 앞에 옳은 줄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그것에 반항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인 줄도 알고 옳은 줄도 알면서, 고의적으로 반항하되 죽을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 짐짓 짓는 죄입니다. 이 고범죄는 사실 불택자가 짓는 죄입니다. 택한 백성인 중생한 영혼은 옳다고 인정이 되는 신앙 양심이 있어서 중심으로 반항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불택자는 중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옳다고 인정하지 않고 계속 반항하다가 죽을 때까지 죄를 범하고 결국 지옥에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다가 회개하는 사람은 고범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 지어야 고범죄가 되는데, 중간에 회개하면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 나를 견고하고 굳건히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반석과 같이 나를 굳건하게 해주시고 견고케 해주시며 모든 것을 가려주시고 뜨거운 햇빛을 가려 시원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구속자이신 여호와,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悅納)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것은 말로 기도하고 묵상으로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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