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욥기 19:1-29 친척과 친구가 욥을 멸시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친척과 친구가 욥을 멸시함
욥기 19:1-29

1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너희가 내 마음을 번뇌케 하며 말로 꺾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꾸짖고 나를 학대하고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4내가 과연 허물이 있었다 할찌라도 그 허물이내게만 있는 것이니 5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긍하며 내게 수치될 행위가 있다고 증명하려면 하려니와 6하나님이 나를 굴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은 알아야 할찌니라 7내가 포학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간구할찌라도 신원함이 없구나 8그가 내길을 막아 지나지 못하게 하시고 내 첩경에 흑암을 두셨으며 9나의 영광을 벗기시며 나의 면류관을 머리에서 취하시고 10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소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 11나를 향하여 진노 하시고 원수같이 보시는구나 12그 군대가 일제히 나아와서 길을 수축하고 나를 치며 내 장막을 둘러 진쳤구나 13나의 형제들로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구나 14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15내 집에 우거한 자와 내 계집종들은 나를 외인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16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청하여야 하겠구나 17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 18어린아이들이라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19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구나 20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꺼풀뿐이로구나 21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22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핍박하느냐 내 살을 먹고도 부족하냐 23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며, 책에 씌어졌으면, 24철필과 연으로 영영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25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 28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꼬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찐대 29너희는 칼을 두려워할찌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1. 친구들의 학대에 대한 욥의 답변

하나님께서 욥을 굴하게 하신 것임

본문 1-3절에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가 내 마음을 번뇌케 하며 말로 꺾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꾸짖고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자신을 번뇌케 하고 그 말을 꺾으면서 열 번이나 꾸짖고 학대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실패하여 불행한 가운데에 빠져 있고 게다가 몸에 병까지 났는데, 위로는 못해줄 망정 오히려 번민케 하며 말로 꺾고 꾸짖으며 학대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4-5절에 “내가 과연 허물이 있었다 할찌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는 것이니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긍하며 내게 수치될 행위가 있다고 증명하려면 하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허물이 있어도, 그 허물은 내게만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향해서 자긍하며 내게 수치가 될 만한 행위가 있다고 증명하려면 해보라는 것은 그렇게 수치가 될 만한 행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하나님이 나를 굴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은 알아야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포로 잡는 것처럼 잡으시려고 그물로 에워싸셔서 가두어놓으시고 또 하나님께서 욥을 굴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2. 욥이 하나님의 징계 받는 것을 깨달음

징계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토로함

본문 7절에 “내가 포학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간구할찌라도 신원함이 없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포학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고 간구할지라도 신원해주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욥이 심한 고통 가운데에 빠져서 하나님께 아무리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고 간구하여도 그 억울함을 신원해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빨리 응답해주시고 신원해주시면 평안하겠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또 핍박하는 자를 신원해주지도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지 못하게 하시고 내 첩경에 흑암을 두셨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첩경(捷徑)’은 ‘길’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에다 흑암을 두셨고 또 길을 막아서 앞으로 가지 못하게 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려고 해도 못가게 만드시고, 또 흑암을 두어서 앞 길이 보이지 않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앞 길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나의 영광을 벗기시며 나의 면류관을 머리에서 취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영광을 다 벗겨 내버리시고 또 욥의 면류관을 머리에서 취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욥에게 영광이 있었고 면류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욥에게 있던 영광을 벗겨 내버리시고 머리에 있던 면류관을 취하셔서 이제는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의 영광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욥에게 면류관이 될 만한 일이 과거에 많이 있었지만 그것을 하나님께서 다 취해버리셨기 때문에 이제는 영광이나 면류관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보잘 것 없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그렇게 존귀하고 영광스러우며 모든 사람 앞에 빛나던 욥이 이렇게 고난을 당하는 중에서 아주 낮아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것을 다 빼앗아 가시고, 면류관이 될 만한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것들도 다 취하셔서 이제는 아무 면류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치를 당할 만한 일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소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사면으로 허시니, 이제는 살 가망이 없어졌습니다. 이쪽을 봐도 살 만한 가망이 없고 저쪽을 보아도 없습니다. 앞, 뒤를 보아도 없습니다. 욥에게 소망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욥의 그 소망을 나무 뽑듯 뽑아버리셨다고 하였습니다. 고난을 당해서 죽게 되었으므로,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잘될 때에는 욥에게 여러 소망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동양의 일등 부자이고, 아들이 일곱, 딸이 셋이며, 동방의 의인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우러러 존경한 욥이었습니다. 욥의 말 한 마디면 다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 앞에 자선 사업을 많이 하고 혜택을 많이 입힐 때에는 소망과 영광과 면류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소망을 다 뽑으셨기 때문에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다 죽게 되었는데, 이제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아무 소망이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병이 나서 죽을 지경에 빠지면 소망이 없어집니다. 아들이 죽고 딸이 죽었으므로 자손에 대한 소망도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였는데, 그 소망도 없어졌습니다. 또 몸으로 무엇을 좀 하려고 했는데, 몸에 병이 나서 죽게 되었으니 그것마저도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무 뽑듯 다 뽑아버리셨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1절에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같이 보시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욥을 향해서 진노하시고 원수같이 여기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2절에 “그 군대가 일제히 나아와서 길을 수축하고 나를 치며 내 장막을 둘러 진쳤구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일제히 나와서 길을 막고 자신을 치며 그 장막을 둘러 진을 쳤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마치 군대와 같이 일제히 와서 욥의 앞 길을 막고, 욥의 집을 둘러 진을 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징계가 임한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꺼풀뿐이로구나”라고 하였는데, 욥의 피골(皮骨)이 상접하였다는 것입니다. 뼈에 가죽이 붙고 이제는 죽을 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 이런 큰 징계를 받아 소망이 나무 뽑히듯 뽑혀버리고, 그 면류관이 땅에 떨어지고 영광도 벗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앞 길은 딱 막히고 흑암만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원수같이 여기시고 진노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의 군대가 길을 수축하고 자신을 치며 장막을 둘러 진을 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욥이 ‘이제 죽었구나. 꼼짝 못하고 다 죽게되었구나.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죽었구나’하는 자리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소망을 잃지 말고 하나님을 더욱 의뢰하며, 고난을 믿음으로 통과하라

그런데 이런 상태에 빠진 욥이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낙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소망을 가졌습니다. 여기에 욥의 위대한 신앙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잘될 때에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고 몸에 병이 났으며 하나님의 징계가 무섭게 임해서 살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피골이 다 상접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며, 자신이 받는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징계인 줄을 알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간구하고 부르짖을 때에 응답이라도 있으면 조금 낫겠는데, 아무리 간구해도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원수같이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욥은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서 소망을 가졌습니다.

히브리서 12장 5-6절에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징계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올 때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증거인 줄로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사함으로 잘받아야 하겠습니다.

어저께 기도실에 가 있는데, 어떤 부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이병규 목사 좀 바꿔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병규 목사라고 하니까 자기는 전라도에 사는데 서울에 다니러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어떤 교회에 다니다가 큰 핍박을 당해서 그 교회에서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목사님이나 교인들이 다시 오라고 해서 도로 갔는데, 계속 핍박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방송을 듣는데, 하루는 핍박이 복이 있는 것이고 제일 좋은 것이라고 설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로를 받았지만 아직 자신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누구한테 물어봐야 되겠나?”하고 자기가 신임할 만한 사람한테 물어보았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서울에 가서 이병규 목사한테 물어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시간은 안 되고 해서 전화로 물어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부인이 “핍박이 어째서 복이냐?”라고 하기에 “연단시키고 영혼을 자라나게 만들려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인이 “그러면 그 교회에 나가지 말까요?”라고 하기에 “그 교회에 가라”고 했습니다. 계속 나가되 “핍박하는 이유가 있으면 그것을 고치고, 오는 말을 달게 받고 잘 참으면 된다. 기한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보고 교만하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교만한 것을 고치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욥은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천하에 제일 겸손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온유하고 겸손하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겸손하면서 잘 참고 견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부인이 어느 교회에 다니는 지는 물어보지도 않았고 누구인 줄도 모릅니다. 하여간 전화가 와서 답변해준 것입니다.
그 일을 보면 우리 방송을 듣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우리 방송을 듣고 해결하는 것 같습니다. 또 “거기에 가서 물어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 징계를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징계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주시고, 그것을 잘 참으면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시고 응답도 없고 신원도 안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억울함을 그냥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성경말씀대로 바로 서면서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욥은 끝까지 참고 한 마디의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지 않으신다고 섭섭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으로 이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을 믿고, 아무리 무서운 징계를 받아도 잘 참고 믿음으로 통과했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욥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조그마한 시험이 들어올 때에 원망하고 낙심하며 믿음이 떨어지면 안 됩니다. 더욱 견고하게 서서 하나님만 믿고 나가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고 끝까지 기도하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3. 친척과 친구들이 욥을 업신여김

주식형제(酒食兄弟)는 천개유(千個有)요 급난지붕(急難之朋)은 일개무(一個無)라
본문 13-14절에 “나의 형제들로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잘 살 때에는 형제들이 가까이 왔지만, 비참하게 되니 다 멀리 떠났습니다. 또 전에는 아는 사람이 많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버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친척이 버리고 가까운 친구는 잊어버렸습니다. 친구나 친척이 잘될 때에 친구이고 친척이지, 비참하게 되면 다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내게 말해준 시가 생각나는데, ‘주식형제(酒食兄弟)는 천개유(千個有)요 급난지붕(急難之朋)은 일개무(一個無)라’는 것입니다. 술 마시고 밥 먹을 때의 형제는 천 사람이나 되어도 위급할 때는 벗이 하나도 없다는 내용입니다. 이 문장이 명심보감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늘 알아야 합니다. 욥도 과거에는 친구가 많고 아는 사람도 많으며 친척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들이 욥을 다 잊어버리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내 집에 우거한 자와 내 계집종들은 나를 외인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욥의 집에 임시로 와서 붙어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욥에게 계집종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제는 욥을 외인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욥이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 닭 보듯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부르면 옵니까?

본문 16절에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청하여야 하겠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전에는 부르면 잘 오고 욥에게 잘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욥이 죽을 지경에 빠졌다고, 불러도 대답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겨우 간청을 해야 그저 물이나 한 사발씩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욥의 아내가 나왔습니다. 욥의 아내가 전에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욥기 2장 9절에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얼마 동안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욥이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욥의 아내가 “꼴 보기 싫다. 숨을 왜 그렇게 쉬느냐?”라고 하면서 욥을 핍박한 모양입니다. 아마도 욥이 병이 들어서 심히 고통스러우니까 껑껑하면서 숨을 쉬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왜 껑껑하느냐?”라고 하면서 숨 쉬는 것을 가지고 욥의 아내가 싫어하고 욥의 동포도 싫어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욥이 아내가 이렇게 못 되게 해도 욥이 자기 아내에게 잘해준 것 같습니다. 아내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고 아내를 욕하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자기의 할 바만 해나가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어린아이들이라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도 욥을 업신여기며, 욥이 일어나면 조롱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욥이 가면 어린아이들이 다 일어나고 인사하며 욥을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욥을 업신여기고 조롱합니다. 종들까지 불러도 대답도 안 하며, 욥을 외인같이 여기는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잘될 때에 친구도 있지, 죽을 지경에 빠져 사람이 비참하게 되면 이렇게 되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몇 년 동안 앓아누워 있으면 효자 아들이 되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연로하셔서 앓다가 정신이 희미해졌습니다. 그것도 병입니다. 그래서 대변을 봐서는 집에다가 다 발라놓습니다. 그러자 가족들이 방 바깥으로 문을 잠가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루에 몇 번 들어가서 그것을 치워주고 다시 방 문을 잠가두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노인이 감옥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 방에 다 발라놓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긴 병에 효자 아들이 없다는 말과 같이 욥이 지금 비참한 가운데에 빠져 있으므로, 형제들도 다 멀리 떠나고 아는 사람도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다 잊어버리고 계집종들은 외인으로 여기며 남종들은 불러도 대답지 않고 아내는 숨 쉬는 것까지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동포들도 다 싫어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업신여기고 조롱합니다.
그래서 욥이 “나의 사랑하는 자들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가 대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잘될 때에 다른 사람들이 잘해주어도 이렇게 죽을 지경에 빠지면 사랑하는 자들도 다 멀리 떠나 대적이 되며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위해 일하라

본문 20절에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꺼풀뿐이로구나”라고 하였습니다. 피골이 상접하였고 잇꺼풀만 남아서 조금씩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1-22절에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핍박하느냐 내 살을 먹고도 부족하냐”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친구들을 향해서 비참하게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죽을 지경에 빠지면, 대개 다 이렇게 되는 줄 알면 됩니다. 자녀들이라도 오랫동안 환난을 받으면 잘 돌봐줄 수 없습니다. 친구는 다 끊어지며 전에 사랑하는 자는 대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모두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건강할 때, 또 무엇이 좀 있을 때에 남을 도와주는 것이 제일입니다. 그리고 남을 도와주고 나서 다시 받으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남을 도와주고 선한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갈 예산을 하면 됩니다. 도와준 사람이 ‘이 다음에 알아주겠거니’하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도와준 사람이 도리어 대적이 됩니다. ‘먹여준 개가 발뒤꿈치를 문다’는 말과 같이, 자기가 도와준 사람이 마지막에는 발뒤축을 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대로 선을 베풀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한 것밖에는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도와준 것은 다 쓸데가 없습니다. 욥이 얼마나 남을 많이 도와주었습니까? 그러나 사람을 도와준 것은 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배반을 해도 선을 행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 하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일한 것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하고 가느냐? 또 자기 구원을 얼마나 이루어가지고 가느냐? 믿는 일을 얼마나 하고 가느냐? 영혼이 얼마나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고 가느냐? 복음 운동을 얼마나 하였느냐?’, 이러한 것들만 남고, 그 밖의 것은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던 것도 없어지고 가까운 사람도 없어지고 형제도 없어지고, 마지막에는 자기와 하나님밖에는 안 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 것과 선을 이룬 것밖에는 남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을 잘해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4. 욥이 구속자가 오실 것과 구원을 믿음

그리스도와 내세(來世)를 믿은 욥

본문 23-24절에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며,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연으로 영영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말’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욥이 죄가 없이 고난당한다는 말을 뜻합니다. 그리고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며,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鐵筆)과 연(鉛)으로 영영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고 하는 것은 욥이 지금까지 깨끗하고 정결하게 바로 살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돌에 기록하여 후대에까지 그 사실을 알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구속자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나는 지금 비록 죽을 고비에 빠졌지만, 구속자는 반드시 살아 계신다. 그 구속자가 오신다.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고 후일에 반드시 이 땅 위에 오셔서 서실 것이다. 또 그가 나를 구원해주실 것이다. 나를 구원해주실 이는 구속자 그리스도밖에는 없다’라고 욥이 확실히 믿었습니다.

본문 26절에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욥이 천국, 즉 내세를 믿었습니다. 욥이 육체의 가죽이 다 썩어진 다음에 육체 밖의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 거기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7절에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욥이 빨리 가서 주님 만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욥의 마음은 바울의 신앙과 같습니다. 빌립보서 1장 23절에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것이 더 좋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신앙이고 욥의 신앙입니다.

우리도 빨리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살기를 원하는 신앙, 또 후일에 구속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들을 구속해주실 것을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욥은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이므로, 주전1600∼2000년 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그리스도가 오시려면
멀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그리스도가 구속자로 오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 지금 육체를 떠나 하나님 앞에 가면 그를 보고 그와 같이 영생의 세계에 들어갈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도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것을 믿는, 그런 신앙을 항상 가져야 되겠습니다. 바울의 신앙도 차라리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것을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신앙을 늘 가져야 되겠습니다. 욥은 다음에 내가 친히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를 영접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다고 한 것입니다.

5. 욥을 대적하는 친구들이 받을 심판


믿는 사람도 받을 심판이 있음
본문 28-29절에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꼬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찐대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찌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을 칠 생각만 하는데, 욥을 공격하고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는 것은 고난 받는 원인이 욥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죄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고 하며 회개하라고 계속 욥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너희는 칼을 두려워할찌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라고 하며, 너희가 왜 분노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또 “너희가 심판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고 하였는데, 너희가 공연히 나를 치고 분노하며 공격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공격을 하며 분노하고 정죄하면서 함부로 모든 것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운 줄을 알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악 간에 행한 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8-10절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라고 하는 것은 믿는 사람 전체를 가리킵니다. 믿는 사람이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것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지옥가는 심판은 안 받습니다. 다 구원을 받지만 상 받고 상을 못 받는 심판, 상 받고 책망 받는 심판은 받아야 합니다. 선을 행한 사람은 선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으로 보상이 있고, 악을 행한 사람은 악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 있습니다. ‘선악 간에 각각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선악 간에 행한 것을 따라 갚아 주십니다. 그리고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몸에 거하든지 몸을 떠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언제나 힘써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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