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자들은 일시적으로 잘되는 듯해도, 반드시 망함
욥기 24:1-25
1어찌하여 전능자가 시기를 정하지 아니하셨는고 어찌하여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2어떤 사람은 지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3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잡으며 4빈궁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 가난한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5그들은 거친 땅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광야가 그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식물을 내는구나 6밭에서 남의 곡식을 베며 악인의 남겨둔 포도를 따며 7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위에 덮을 것이 없으며 8산중 소나기에 젖으며 가리울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9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미 품에서 빼앗으며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잡으므로 10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주리면서 곡식단을 메며 11그 사람의 담 안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틀을 밟느니라 12인구 많은 성중에서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 불의를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13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광명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 첩경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 14사람을 죽이는 자는 새벽에 일어나서 가난한 자나 빈궁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적같이 되며 15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하고 얼굴을 변장하며 16밤에 집을 뚫는 자는 낮에는 문을 닫고 있은즉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 17그들은 다 아침을 흑암같이 여기니 흑암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18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 산업은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행치 못할 것이라 19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곧 말리나니 음부가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은 것인즉 20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기억함을 다시 얻지 못하나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 21그는 잉태치 못하므로 해산치 못한 여인을 학대하며 과부를 선대치 아니하는 자니라 22그러나 하나님이 그 권능으로 강한 자들을 보존시키시니 살기를
욥기 24:1-25
1어찌하여 전능자가 시기를 정하지 아니하셨는고 어찌하여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2어떤 사람은 지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3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잡으며 4빈궁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 가난한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5그들은 거친 땅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광야가 그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식물을 내는구나 6밭에서 남의 곡식을 베며 악인의 남겨둔 포도를 따며 7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위에 덮을 것이 없으며 8산중 소나기에 젖으며 가리울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9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미 품에서 빼앗으며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잡으므로 10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주리면서 곡식단을 메며 11그 사람의 담 안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틀을 밟느니라 12인구 많은 성중에서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 불의를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13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광명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 첩경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 14사람을 죽이는 자는 새벽에 일어나서 가난한 자나 빈궁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적같이 되며 15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하고 얼굴을 변장하며 16밤에 집을 뚫는 자는 낮에는 문을 닫고 있은즉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 17그들은 다 아침을 흑암같이 여기니 흑암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18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 산업은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행치 못할 것이라 19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곧 말리나니 음부가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은 것인즉 20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기억함을 다시 얻지 못하나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 21그는 잉태치 못하므로 해산치 못한 여인을 학대하며 과부를 선대치 아니하는 자니라 22그러나 하나님이 그 권능으로 강한 자들을 보존시키시니 살기를
바라지 못할 자도 일어나는구나 23하나님이 그들을 호위하사 평안케 하시나 그 눈은 그들의 길에 있구나 24그들은 높아져도 잠시간에 없어지나니 낮아져서 범인처럼 제함을 당하고 곡식 이삭같이 베임을 입느니라 25가령 그렇지 않을찌라도 능히 내 말을 거짓되다 지적하거나 내 말이 헛되다 변박할 자 누구랴
1.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를 알지 못하여 욥이 탄식함
본문 1절에 “어찌하여 전능자가 시기를 정하지 아니하셨는고 어찌하여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욥이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때,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예정에 대하여 알지 못함으로 탄식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인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그것을 알지 못하여 탄식을 합니다. 사는 날과 죽는 날, 그외 하나님의 모든 예정된 그때를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앞날을 알지 못하니, 예정된 그때까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2. 악한 자들의 착취
본문 2-4절에 “어떤 사람은 지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잡으며 빈궁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 가난한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까? 악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계표를 옮기고’라는 것은 경계선을 옮긴다는 뜻입니다. 또 악한 사람이 양 떼를 빼앗아가고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고 빈궁한 자를 길에서 몰아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가난한 자가 다 스스로 숨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악한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어떤 사람은 지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잡으며 빈궁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 가난한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까? 악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계표를 옮기고’라는 것은 경계선을 옮긴다는 뜻입니다. 또 악한 사람이 양 떼를 빼앗아가고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고 빈궁한 자를 길에서 몰아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가난한 자가 다 스스로 숨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악한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입니다.
3. 악한 집권자에게 추방된 자의 생활
본문 5절에 “그들은 거친 땅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광야가 그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식물을 내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악한 집권자들과 악한 정치가들에게 쫓겨난 사람들이 거친 땅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광야가 그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식물을 낸다는 것입니다.
악한 집권자들에게 추방된 사람들과 악한 정치가들에게 쫓겨난 사람들이 들나귀와 같이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면서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가 그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식물을 내는구나’라고 하였는데, 광야에 나가서 먹을 것을 구하여 자식을 위하며 그 자식과 같이 먹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그들은 거친 땅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광야가 그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식물을 내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악한 집권자들과 악한 정치가들에게 쫓겨난 사람들이 거친 땅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광야가 그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식물을 낸다는 것입니다.
악한 집권자들에게 추방된 사람들과 악한 정치가들에게 쫓겨난 사람들이 들나귀와 같이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면서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가 그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식물을 내는구나’라고 하였는데, 광야에 나가서 먹을 것을 구하여 자식을 위하며 그 자식과 같이 먹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6-8절에 “밭에서 남의 곡식을 베며 악인의 남겨둔 포도를 따며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위에 덮을 것이 없으며 산중 소나기에 젖으며 가리울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밭에서 남의 곡식을 베며’라고 하였는데, 쫓겨난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쫓겨난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 남겨둔 찌꺼기와 남겨진 못쓸 것을 따 먹으며 지낸다는 것입니다. 또 쫓겨났기 때문에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추위에 덮을 것이 없으며’라고 하였는데, 추워도 덮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산중 소나기에 젖으며 가리울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가릴 것이 없기 때문에 바위를 안고 있다는 뜻입니다.
본문 9절에 “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미 품에서 빼앗으며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잡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잡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또 아이를 빼앗아다 고아로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0절에 “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주리면서 곡식단을 메며”라고 하였습니다. 쫓겨난 사람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먹지 못하고 곡식단을 메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그 사람의 담 안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틀을 밟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먹지 못하고 이런 일만 한다는 것입니다. 기름을 짜고 술틀을 밟고 곡식을 메지만 자기는 굶으면서 일한다는 것입니다. 일꾼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이렇게 일을 시키는 악
한 사람들과 나라가 있습니다. 악한 정치가들이 백성들을 굶기면서 일만 시킨다는 것입니다. 강제로 노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은 먹지도 못하고 나와서 정치가들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먹지도 못하면서 곡식을 메야 하고 포도도 따야 합니다.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안 주고 강제 노동을 시키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들과 나라가 있습니다. 악한 정치가들이 백성들을 굶기면서 일만 시킨다는 것입니다. 강제로 노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은 먹지도 못하고 나와서 정치가들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먹지도 못하면서 곡식을 메야 하고 포도도 따야 합니다.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안 주고 강제 노동을 시키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과거 왜정 말단 때에도 일본 사람들이 곡식을 전부 다 빼앗아가고, 볏가마니를 지고 날라서 한 10리 밖에 가져다 두라고 일을 시켰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을 시키면서 먹을 것을 안 준 경우가 많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백성들이 굶고 있는데, 정치가들은 일을 시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굶으면서 일을 했습니다. 이런 악한 정치가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인구 많은 성중에서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 불의를 보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인구 많은 성읍에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들이 신음하며, 또 매를 맞아 상한 자가 부르짖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가만히 내버
려두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들을 그냥 내버려두셔서 그들이 계속 사람들을 학대하고 못살게 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에 답해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내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려두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들을 그냥 내버려두셔서 그들이 계속 사람들을 학대하고 못살게 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에 답해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내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언제 권고하시는 것입니까? 사람은 하나님께서 권고하실, 그 예정한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본문 1절에 “어찌하여 전능자가 시기를 정하지 아니하셨는고”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욥은 얼마의 시간의 지나면 악한 자들이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며,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굶고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먹을 수 있겠는가를 탄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그들을 건져주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그 불의를 보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불의한 일을 보지 아니하시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4. 악한 자들의 행동과 모습
본문 13절에 “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광명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 첩경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은 광명을 배반하는 자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광명의 길을 알지 못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은 광명의 길을 알지 못하고 어둠 속을 달리며 그 첩경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른 길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당한 길에 머물지 않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4절에 “사람을 죽이는 자는 새벽에 일어나서 가난한 자나 빈궁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적같이 되며”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자는 새벽에 일어나서 죽인다는 것입니다. 또 밤에 도적질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변장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간음하는 자의 눈은 아는 체하는 눈과 같으며, 그가 떳떳하게 철면피가 되어서 다닌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밤에 집을 뚫는 자는 낮에는 문을 닫고 있은즉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밤에 집을 뚫는 자는 어떻게 한다고 하였습니까? 낮에는 문을 닫고 잔다는 것입니다. 밤에 집을 뚫고 다녀야 하니까 낮에는 문을 닫고 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광명을 알지 못합니다. 밤에만 다니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그들은 다 아침을 흑암같이 여기니 흑암의 두려움을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장 20-23절에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찐저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5. 악한 자는 일시적으로 흥하지만, 반드시 망함
본문 18절에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 산업은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행치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악인들은 일시적으로 잘되지만 가다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일시적으로는 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 같아도,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빨리 흘러가 결국 저주를 받고 그만 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은 비참한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 산업은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행치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악인들은 일시적으로 잘되지만 가다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일시적으로는 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 같아도,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빨리 흘러가 결국 저주를 받고 그만 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은 비참한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곧 말리나니 음부가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은 것인즉”이라고 하였습니다. 눈 녹은 물이 아무리 많이 흘러 내려와도 가뭄과 더위가 다 말린다는 것입니다.
우즈베키스탄에 큰 산이 있는데, 거기서 눈 녹은 물이 계속해서 내려옵니다. 그 눈 녹은 물은 겨울에도 내려옵니다. 겨울이 와도 눈은 녹으니까 물이 흘러내리고, 그것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물이 아주 넉넉합니다. 이렇게 큰 산이 있는 곳에서는 대개 물이 내려옵니다. 큰 산이 있는 곳에는 눈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눈 녹은 물이 강과 같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 물을 가지고 많은 일을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물이 많이 내려오지만 가뭄과 더위가 그 눈 녹은 물을 곧 말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물이 많이 내려와도 날이 가물고
내내 더우면 그 눈 녹은 물도 마른다는 것입니다. ‘음부가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은 것인즉’이라고 하였습니다. 범죄자도 눈 녹은 물과 같이 계속 잘될 것처럼 보이고 창성해서 내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뭄과 더위가 물을 말리는 것처럼 음부도 그 범죄자들을 꺾어버리고 말리며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우즈베키스탄에 큰 산이 있는데, 거기서 눈 녹은 물이 계속해서 내려옵니다. 그 눈 녹은 물은 겨울에도 내려옵니다. 겨울이 와도 눈은 녹으니까 물이 흘러내리고, 그것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물이 아주 넉넉합니다. 이렇게 큰 산이 있는 곳에서는 대개 물이 내려옵니다. 큰 산이 있는 곳에는 눈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눈 녹은 물이 강과 같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 물을 가지고 많은 일을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물이 많이 내려오지만 가뭄과 더위가 그 눈 녹은 물을 곧 말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물이 많이 내려와도 날이 가물고
내내 더우면 그 눈 녹은 물도 마른다는 것입니다. ‘음부가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은 것인즉’이라고 하였습니다. 범죄자도 눈 녹은 물과 같이 계속 잘될 것처럼 보이고 창성해서 내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뭄과 더위가 물을 말리는 것처럼 음부도 그 범죄자들을 꺾어버리고 말리며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기억함을 다시 얻지 못하나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고 하였습니다. ‘태가 그를 잊어버리고’라고 하였는데, 모친이 그를 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또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을 구더기가 달게 먹을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기억함을 다시 얻지 못하나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불의한 일이 반드시 나무처럼 꺾여버림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은 비참하게 다 꺾여버린다는 것입니다.
본문 21-22절에 “그는 잉태치 못하므로 해산치 못한 여인을 학대하며 과부를 선대치 아니하는 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 권능으로 강한 자들을 보존시키시니 살기를 바라지 못할 자도 일어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잉태치 못하므로 해산치 못한 여인을 학대하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악한 자들이 잉태치 못하므로 해산치 못한 여인을 학대한다는 말입니다. 또 악한 자들은 외로운 자를 학대하고 과부를 선대치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권능으로 강한 자들을 보존시키시니 살기를 바라지 못할 자도 일어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강한 자들을 보존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살기를 바라지 못할 자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고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하나님이 그들을 호위하사 평안케 하시나 그 눈은 그들의 길에 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핍박 받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호 하신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에게 멸시를 받고 조롱을 당하며 빼앗기고 쫓겨난 자를 하나님께서 호위하사 평안케 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눈은 그들의 길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4절에 “그들은 높아져도 잠시간에 없어지나니 낮아져서 범인처럼 제함을 당하고 곡식 이삭같이 베임을 입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가 일시적으로는 잘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다 베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6. 욥이 당하는 환난에 대하여 변박할 자가 없음
욥은 죄가 있어서 고난당하는 것이 아님
본문 25절에 “가령 그렇지 않을찌라도 능히 내 말을 거짓되다 지적 하거나 내 말이 헛되다 변박할 자 누구랴”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가령 그렇지 않을찌라도’라는 말은 죄가 있어서 고난을 당하는 일, 악한 자에게 핍박을 받는 일, 죄를 짓고 망하는 일이 있는데, 그렇지 않을지라도 능히 욥의 말을 거짓되다 지적하거나 헛되다 변박할 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보통은 죄로 인해서 고통을 당합니다. 악한 정치가들이 와서 빼앗아 가며, 죄를 짓고 나가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다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찌라도’라고 하는 것은 욥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욥은 죄가 있어서 고난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욥은 악한 자들이 와서 빼앗아 감으로 당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내 말을 능히 거짓되다 지적하거나 헛되다 변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고난은 죄 값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악한 자가 많아서 그 악한 자로 인하여 세상이 다 곤고해졌다는 것입니다. 또 죽을 지경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욥은 그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욥은 죄가 있어서 고난당하는 것이 아님
본문 25절에 “가령 그렇지 않을찌라도 능히 내 말을 거짓되다 지적 하거나 내 말이 헛되다 변박할 자 누구랴”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가령 그렇지 않을찌라도’라는 말은 죄가 있어서 고난을 당하는 일, 악한 자에게 핍박을 받는 일, 죄를 짓고 망하는 일이 있는데, 그렇지 않을지라도 능히 욥의 말을 거짓되다 지적하거나 헛되다 변박할 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보통은 죄로 인해서 고통을 당합니다. 악한 정치가들이 와서 빼앗아 가며, 죄를 짓고 나가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다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찌라도’라고 하는 것은 욥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욥은 죄가 있어서 고난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욥은 악한 자들이 와서 빼앗아 감으로 당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내 말을 능히 거짓되다 지적하거나 헛되다 변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고난은 죄 값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악한 자가 많아서 그 악한 자로 인하여 세상이 다 곤고해졌다는 것입니다. 또 죽을 지경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욥은 그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 값으로 고난당하는 경우가 있고,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와서 “네 죄 값으로 네가 고난당한다. 그러니 죄를 회개하면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욥이 죄가 있다고 계속 공격을 합니다. 그러나 보통은 죄값으로 고난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욥은 죄 값으로 고난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연단시키셔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고난을 겪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단련 후에 정금같이 나오게 될 욥
욥기 23장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단련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으로 정금같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와서 계속 욥을 공격할 때에 욥은 죄 값으로 고난당하는 것이 있고 세상에서 오는 고난이 있지만 자신은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자신은 죄 값으로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단련시키셔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해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단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단련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으로 정금같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와서 계속 욥을 공격할 때에 욥은 죄 값으로 고난당하는 것이 있고 세상에서 오는 고난이 있지만 자신은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자신은 죄 값으로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단련시키셔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해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단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고난당하는 경우, 세 가지 - 각 경우에 맞게 몸과 마음을 바로 가져야 함
애매히 고난당하는 경우가 있고 선을 행하다가 고난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20절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애매히 고난당하는 경우가 있고 선을 행하다가 고난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20절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난당하는 것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애매히 고난당하는 것이 있고, 죄가 있어서 고난당하는 것이 있고, 또 선을 행하다가 고난당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애매히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참으면 아름다운 것입니다. 고난당할만한 일을 행하지 않았는데 애매히 고난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왜 이 고난을 당하는지 하나님 앞에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애매히 고난당할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잘 참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아름다운 일이고 하나님께 복 받는 일입니다.
그리고 죄가 있어 매를 맞을 때 즉시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회개하면 예수님께서 피로 그 죄를 다 사해주시고 매를 거둬주십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다가 고난당한다고 했습니까?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를 위해서 핍박 받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그 상급이 크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의를 위해서 핍박 받는 사람은 하늘나라의 상급이 큽니다.
또 애매히 고난을 당할 때가 있는데 그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것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을 때는 회개하면 됩니다. 보통은 다 죄가 있어서 매를 맞고 고난당합니다. 우리는 고난당할 때에 죄 없다고 하지 말고 우리의 지은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욥과 같은 사람이 얼마 없습니다. 욥은 의인입니다.
욥이 어떤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욥기 1장 1절에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격인 것입니다. 욥이 당하는 환난은 죄 때문에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연단을 시키셔서 정금과 같이 좋은 인격을 만들어 하나님 앞에 데려가 상급을 많이 주시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고난당할 때에 죄 때문에 고난당하는 줄 알고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또 가다가 애매히 고난당할 때도 옵니다. 고난당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다른 사람이 나를 애매하게 핍박할 때가 옵니다. 다른 사람이 내가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하여 애매히 고난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참으면 됩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자기는 안 했는데 했다고 하며 거짓말로 자기를 정죄하는 일이 많이 있는데, 너무 속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며,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믿는 일을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섭섭하고 억울하게 생각하고 변명하며 속상해 하는 것은 벌써 마귀에게 진 것입니다. 아무리 마귀가 거짓말을 하고 비방하며 각종 죄를 만들어 뒤집어 씌워도 내가 안 했으면 되는 것입니다. 안 했다고 한 마디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참으라는 것입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여 맡기고, 자기는 하나님께서 잘해주실 줄로 믿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또 가다가 애매히 고난당할 때도 옵니다. 고난당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다른 사람이 나를 애매하게 핍박할 때가 옵니다. 다른 사람이 내가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하여 애매히 고난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참으면 됩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자기는 안 했는데 했다고 하며 거짓말로 자기를 정죄하는 일이 많이 있는데, 너무 속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며,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믿는 일을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섭섭하고 억울하게 생각하고 변명하며 속상해 하는 것은 벌써 마귀에게 진 것입니다. 아무리 마귀가 거짓말을 하고 비방하며 각종 죄를 만들어 뒤집어 씌워도 내가 안 했으면 되는 것입니다. 안 했다고 한 마디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참으라는 것입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여 맡기고, 자기는 하나님께서 잘해주실 줄로 믿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세계에 좀 더 들여보내시려고 고난을 받게 하시는 수가 있습니다. 믿는 일을 하지 않고 돌아가는 사람은 고난을 당해봐야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려고 힘을 쓰기 때문에, 그런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좀 더 가까이 하여 구속의 세계로 들여보내시려고 우리가 고난당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당할 때에 고난당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줄을 알고, 그 원인을 찾아봐야 합니다. 첫째는 죄가 있어 내가 고난당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보통은 내 죄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좀 더 연단을 받아 정금과 같이 만들어지게 하기 위하여 고난당하게 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구속의 세계에 좀 더 깊이 들여보내시며 좀 더 기도를 많이 하게 하시려는 이유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지 않고 교만하니까, 낮추시고 또 낮추어서 기도를 많이 시키시려는 뜻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는 좀 더 그리스도의 구속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게 하시려고 고난당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해보고 회개하며 바로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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