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욥기 25:1-6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람의 비천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람의 비천함
욥기 25:1-6

1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2하나님은 권능과 위엄을 가지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3그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 그 광명의 비췸을 입지 않은 자가 누구냐 4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5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6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1. 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께서는 권능과 위엄을 가지시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심

본문 1-2절에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은 권능과 위엄을 가지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는 욥의 친구 빌닷이 말한 내용을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 중 처음에는 엘리바스가 말하였고, 욥기 20장에서는 소발이 말하였으며, 여기서는 빌닷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욥의 친구들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이고 어느 정도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들어서 욥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욥의 친구가 몇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욥기 2장 11-13절에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그에게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상약하고 오더니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칠 일 칠 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 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친구가 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욥기 32장 2절에서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노를 발하니 그가 욥에게 노를 발함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라고 한 것으로 보아, 욥의 친구는 엘리후까지 모두 네 사람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세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엘리후라는 자가 또 하나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멀리서 욥을 찾아온 것만 보아도 나름의 정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친구들은 소리를 질러 울며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칠 일 칠야를 욥과 함께 땅에 앉아 있었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보면 보통 친구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욥이 고난당하는 것에 동참하는 정성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욥과 신앙이 맞지 않습니다. 아주 정성이 있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님의 진리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에 대해서는 욥과 맞지 않았습니다. 욥이 사는 신앙의 세계와 욥의 친구들이 믿는 신앙의 세계는 달랐던 것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믿는 신앙의 세계는 본문 2절에 나와 있습니다. 본문 2절에 “하나님은 권능과 위엄을 가지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권능과 위엄을 가지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 능력과 위엄을 가지신 하나님,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맞습니다.

본문 3절에 “그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 그 광명의 비췸을 입지 않은 자가 누구냐”라고 하였습니다. ‘그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는 말은 천사와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천사를 계수(計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천군 천사이기 때문에 능히 계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광명의 비췸을 입지 않은 자가 누구냐’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광명, 즉 해를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에게 다 비춰주신다는 것입니다. 너그러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열왕기하 6장 14-17절에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그 천사가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내려와 산에 가득하게 둘렀다고 하였습니다. 능히 셀 수 없는 하나님의 천군 천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광명의 혜택을 입지 않은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연 은총을 입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2. 사람의 비천함

인간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며,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임

본문 4절에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고 하였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죄가 있습니다. 또 로마서 3장 4절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3장 10-12절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였습니다. 로마서 7장 18절에도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하였습니다. 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전적 부패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의롭다고 할수 없고 깨끗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본문 5-6절에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달과 별을 그다지 깨끗하게 보지 않으십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제 하늘나라에는 달빛과 햇빛이 쓸데없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3절에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환하게 비칩니다. 달과 해는 이 세상에서는 필요하지만 하나님 앞에 가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환하게 밤낮 비치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고 하였습니다. 시편62편 9절에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천한 자나 귀한 자나 다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 103편14절에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또 이사야 2장 8-9절에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한다고 하였는데, 인간은 모두 헛된 것에 굴복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욥기 4장 19절에도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엘리바스가 한 말인데, 인간이라는 것은 흙집에 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 안개와 같은 인간, 티끌과 같은 인간입니다. 아브라함도 자기가 티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티끌과 같은 자가 감히 하나님께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안개와 같이 잠깐 지나가는 존재이고, 그 육체는 흙과 같고, 흙집에 산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루살이와 같고 구더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겸손하여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함

인간이 아무것도 아닌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로, 잘 아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아야지, 되지 못한 것을 된 줄로 알면 하나님 앞에 교만한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면 망하게 됩니다. 한국이 금년에 금메달을 많이 못 딴 것이 좋은 것입니다. 왜 좋으냐 하면, 금메달을 많이 따고 교만한 것보다 좀 못 따고 겸손한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좀 더 겸손해야 합니다. 되지 못하였으면서 된 줄로 알고 떠들썩하게 돌아다니고,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하고 다니면 안 됩니다. 한국 백성이 1등 백성이라고 써 붙인 것을 보았는데, 저 혼자만 하는 것 누가 1등을 못하겠습니까? 시합을 해봐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합해보니까 무슨 1등입니까? 교만입니다. 되지도 못하였으면서 된 줄로 알고, 조금 되니까 굉장히 올라간 것처럼 들썩합니다. 우리가 전부 다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참으로 실력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지, 아무것도 없으면서 들썩하면 안 됩니다. 인간이 아무것도 아닌 줄 아는 생활, 우리가 그 자리에 언제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교만을 없이하여주시려고 가시를 주셨습니다. 바울에게 가시가 없으면 교만해지겠으니, 눈병이 나게 하신 것입니다. 사탄이 사자가 되어서 계속 쿡 찌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겸손해졌습니다. ‘내 능력은 약한 것에서 온전하여진다’고 하였습니다. 또 바울이 약한 것을 자랑하고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약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잘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물리침을 받고 또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은 대적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약할 때에 하나님만 의지하니까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머물게 하시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잘한 것을 자랑하지 말고 약한 것을 자랑해야겠습니다.
자기는 되지 못한 줄로 알고 약한 줄로 알아 자신이 실수한 것을 붙들고 자신은 늘 실패자인 것을 깨달아 하나님 앞에서 늘 자기를 부인하며 나가야겠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 속에 와서 머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잘한 것만 생각하고 남을 무시하고 나가면 결국 망하게 됩니다. 자신이 제일인 줄 알고 나가는 사람은 불쌍한 자이고 얼마 안 가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믿는 사람과 성경말씀을 가지고 성도를 시험할 때에 끝까지 신앙의 비밀을 지켜나가야 함

앞서 말한 대로 본문은 빌닷이 말한 내용입니다. 빌닷이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제대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욥에게 안 맞는 말입니다. 진리를 말하긴 했지만, 그 진리가 욥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빌닷이 그러한 진리를 말한 목적은 욥이 의와 순결과 믿음을 지
키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리고 정직히 행하는 것을 무시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한 것은 좋은데, 여기서 그 말을 쓸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욥은 순결과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나가고자 합니다. 정직하게 행하면서 의를 지켜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닷은 그것을 무시하고 꺾어버리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빌닷을 포함한 욥의 친구들의 목적입니다. “너도 구더기와 같은 자인데 무엇을 가지고 순결하다, 정직하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느냐?”라는 것입니다. 욥이 믿음을 지키고 의를 세워나가고 순결을 지키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데, 빌닷의 이 말은 그러한 욥의 순결한 행동을 꺾어버리고 포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리를 가지고도 다른 사람이 신앙 생활하는 것을 얼마든지 꺾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에 꺾이면 안 됩니다. 우리가 진리 지키는 것을 버리면 안 됩니다. 인간은 빌닷이 말한 것과 같이 약합니다. 그러나 진리 지키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붙든 옳은 진리를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포기하며 항복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마귀가 욥의 친구들을 이용해서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욥이 순결을 지키고 의를 세워나가는 것을 꺾어버리고 그 길을 걷지 못하게 하려는 시험입니다. 하나님 공경하는 사람을 시험하기 위하여 마귀는 때로 믿는 사람을 이용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 마귀가 성경을 가지고 시험합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성경을 가지고 시험했습니다. “성전에서 내리뛰라”고 하였는데, 이때 마귀는 구약성경 시편을 들어 “주께서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라고 하며 예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예수님께서는 “또 가라사대”라고 하시며 성경을 가지고 그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마귀가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데, 그 말만 듣고 항복을 하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욥은 친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욥은 친구의 말을 듣고도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그 사람들의 진리도 다 인정하였으나, 자신은 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 들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들의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세계 안에 조금 더 들어가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 앞에 순결과 의를 지켜나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믿음과 정직을 지켜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럴때에 하나님께서 욥과 동행해주시고 욥을 기뻐하시며 인정해주셨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외부적인 초등학문과 같은 수준에서 욥을 꺾어 비밀의 신앙을 무너뜨리려고 하는데, 욥은 그 신앙을 양보하지 않은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욥기 19장25-26절에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욥의 신앙입니다. 욥은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고 말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친구들은 믿지 못했지만 욥은 믿었습니다. 또 욥은 가죽이 죽어서 썩은 다음에 육체 밖의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보고, 그 하늘나라에서 살 것이라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귀한 신앙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욥의 신앙 세계와 친구들의 신앙 세계는 차원이 다릅니다. 친구들도 자신들의 신앙 세계에서 진리를 말하긴 하는데, 그들의 신앙 정도는 얕은 물가에서 사는 고기와 같기 때문에 얕은 물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욥의 신앙은 그들보다 더욱 깊은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진리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순결, 경외, 정직,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 영적 교통하는 일, 구원의 소망, 부활의 소망, 구속주가 오실 것에 대하여 알았습니다. 우리도 많은 시험이 오고 여러 가지 말로 유혹을 받아도 끝까지 신앙의 비밀을 지켜나가고 생명의 세계에서 걸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