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욥기 26:1-14 은밀한 가운데 만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은밀한 가운데 만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욥기 26:1-14

1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 도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 구원하였구나 3지혜 없는 자를 참 잘 가르쳤구나 큰 지식을 참 잘 나타내었구나 4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을 내었느냐 뉘 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5음령들이 큰 물과 수족 밑에서 떠나니 6하나님 앞에는 음부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가리움이 없음이니라 7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8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9그는 자기의 보좌 앞을 가리우시고 자기 구름으로 그 위에 펴시며 10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 11그가 꾸짖으신즉 하늘기둥이 떨며 놀라느니라 12그는 권능으로 바다를 흉용케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쳐서 파하시며 13그 신으로 하늘을 단장하시고 손으로 날랜 뱀을 찌르시나니 14이런 것은 그 행사의 시작점이요 우리가 그에게 대하여 들은 것도 심히 세미한 소리뿐이니라 그 큰 능력의 우뢰야 누가 능히 측량하랴

1. 욥이 빌닷의 도움은 유익이 못된다고 함

본문 1-4절에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 도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 구원하였구나 지혜 없는 자를 참 잘 가르쳤구나 큰 지식을 참 잘 나타내었구나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을 내었느냐 뉘 신이 네게서 나왔느냐”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욥기 25장에서 욥의 친구 빌닷이 욥에게 충고한 데 대한 욥의 평입니다. 즉, 빌닷의 말이 진리의 말이긴 하나 욥 자신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로가 되지 못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리의 말씀이라고 해도 그 사람에게 맞지 않는 말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더구나
빌닷은 욥을 책망하며 죄 값으로 고난을 받는다고 공격하는 말을 함으로써, 도움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 도왔구나’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힘 없는 욥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력 없는 팔을 참 잘 구원하였구나’라고 하였어도, 그것은 병이나 기력 없는 욥의 팔을 구원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지혜 없는 자를 참 잘 가르쳤구나 큰 지식을 참 잘 나타내었구나’라고 하였는데, 지혜와 지식으로 가르치려는 말이 욥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였고, 도리어 손해만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해도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 말 해주는 방법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게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약해서 쓰러진 상한 심령의 사람에게 다가가, 싸매주고 붙들어주고 위로하는 말을 해주면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러
나 책망만 하면 유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책망을 할 때는 책망을 해야 하지만,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 싸매주고 붙들어주고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됩니다.

2.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엄위하신 하나님

본문 5-6절에 “음령들이 큰 물과 수족 밑에서 떠나니 하나님 앞에는 음부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가리움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음령(陰靈)’에 대해서는 큰 물고기, 지옥에 간 사람, 또 물에 빠져 익사한 사람의 시체 등 여러 가지의 해석이 있습니다. 하여간 큰 물과 수족 밑에 있는 음령들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다 들여다보고 계시므로 아무것도 하나님 앞에 숨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음부까지, 무덤까지, 바다 밑까지, 지옥까지, 멸망의 구렁텅이까지 감찰하십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장래에 성도를 무덤에서 부활시키시고, 물에 빠져 죽었어도 바다에서 부활시키십니다. 폭탄에 맞아 가루가 되었어도, 불에 타 연기가 되었어도, 이 다음에 능력으로 그 가운데서 부활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7절에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북편 하늘’이라고 한 것은 그때에 욥이 산 우스 땅이 에돔 땅 북쪽이었던 것을 감안한 표현입니다. 욥이 북반구에 살고 있으므로 그가 바라보는 쪽이 북편 하늘인 것입니다. 즉, 욥이 북두칠성, 북극성 등을 보고 하나님의 지혜와 위대하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창조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땅을 공간에 다시며’라고 하였는데, 그때 벌써 하나님께서 욥에게 땅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땅은 평평하고 하늘은 반구형(半球形)으로 지붕과 같이 땅을 덮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늘과 땅이 붙은 곳을 찾아 가보려고 쇠 지팡이를 들고 떠났는데, 그 지팡이가 다 닳도록 다녀도 그 붙은 곳을 못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유교에서는 땅이 네모반듯하다고 했습니다. 동서남북으로 네모나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매달아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계시로 욥에게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오늘에 와서 다 밝혀졌습니다.
그러면 지구가 공중에 매어 달려 있다는 것, 이것을 욥이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욥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니, 우주 공간도 하나님께서 넓게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주 공간도 넓게 하셨으니 한정
된 땅은 공중에 매어 단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 가장 완전한 지식이라는 것을 여기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이 아무리 훌륭한 것 같아도 결국에는 빙빙 돌아 가다가 성경으로 돌아오고 맙니다. 진화론자들도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했지만, 요새 와서는 그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을 알고 진화론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종의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종자의 변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종자 안에서 발전은 있을 수 있으나 짐승의 종자가 사람의 종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동물은 염색체가 있고, 진(gene)이라고 하는 우리말로 유전자가 있는데, 유전자의 숫자와 염색체의 숫자는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개, 원숭이가 되는 염색체의 개수가 다 다르고, 그것은 절대 변할수 없어 옛날에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짐승이 사람으로 될 수 없음이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염색체의 수는 사람이 46개, 원숭이가 54개, 개는 78개로 정해져서 절대 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유전되어 이후로도 절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종류와 교합을 시키면 다른 짐승이 나오지만, 그것이 그 다음 대에 새끼를 못 낳습니다. 말과 나귀는 염색체 숫자가 다른데, 그것들을 교합시키면 노새를 낳지만 노새는 새끼를 못낳아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의 변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인류가 다 한 족속이라는 것은 이 사실로도 알 수 있습니다. 세계 인류가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이 모여 다 한 족속이라고 떠들썩하지 않습니까? 한 족속입니다. 결혼하면 아이를 낳을 수가 있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국제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을 수 있습
니다. 다 한 족속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과 교합하면 못 낳습니다. 짐승끼리도 다른 짐승과 교합하면 그 다음 새끼는 새끼를 못 낳습니다. 종의 변화는 있을 수 없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과학만으로 교만하여 돌아가도 결국은 성경에서 밝힌 대로 다 돌아가고 맙니다. 우주 공간에 매어 달았다는 것, 땅을 공간에 매어 달았다는 것, 그대로 다 맞는 것입니다.

3. 은밀한 곳에 계신 하나님

본문 8-9절에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는 자기의 보좌 앞을 가리우시고 자기 구름으로 그 위에 펴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적 표현입니다. 구름에 물이 담겨 있어도 구름이 찢어지지 않고 멀리까지 운반한다는 것입니다. 요새 과학적으로 비를 오게 하는 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은 물을 가진 구름이 임의로 흘러가는 것을 인간이 원하는 지점에서 쏟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구름을 어떤 매개체를 통해 중간에 비로 내리게 만드는 것이 인간의 기술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싸움이 난다고 하는데, 가뭄에 비구름이 오는 것을 어느 한 쪽이 임의로 쏟아지게 하므로 원래대로라면 저쪽에서 쏟아질 비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오는 것을 미리 떨어뜨려 너희가 먼저 빼앗았다’고 하며 서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즉, 아예 구름 한 점 없이 비를 만들어 내리게 하는 기술은 지금까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름에 많은 비를 싣고 운반해 가는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큰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신 법칙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보좌 앞을 가리우시고’라는 것은 은밀한 곳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은밀한 곳에 계셔서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사람에게는 필요한 것만 알게 해주십니다.

4. 큰 능력으로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본문 10절에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 정을 세우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수면에 경계를 놓으셔서 그 이상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라는 것은 주야가 계속되는 날까지, 밤과 낮이 계속되는 날까지 지면에 하나님께서 경계를 정해놓으신 것이 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야가 계속되는 날까지 하나님의 정한 법칙대로 거기에 머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욥의 이 말은 하나님은 최고로 위대하셔서 모든 일에 법칙과 한계를 정해놓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사에 당신의 법칙과 한계를 정하여 놓으시고, 은밀한 것을 살피시며, 상 줄 자에게 상을 주시고, 벌할 자를 벌하십니다. 그리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법대로 운행하게 해놓으셨습니다. 주야의 법칙, 물이 바다로 내려가는 중량의 법칙, 수평의 법칙 등의 내셨습니다. 또 하늘의 별을 내시고 법칙대로 유지하도록 만들어놓으셨습니다. 또 법칙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법, 즉 말씀의 법칙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법칙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무조건 욥이 잘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법이 있는데 왜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느냐? 하나님의 법칙인 말씀에 위반되었으면 죄이고, 말씀대로 하였으면 의이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복을 주실 것이다’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욥의 신앙입니다. 말씀대로 하면 복을 받고, 말씀에 어긋나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법칙대로 하시는 하나님, 음부까지 들여다보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므로 그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으면 그것도 알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욥은 심령골수(心靈骨髓)를 통찰하시고, 그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친구들에게 말해주려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본문 11-12절에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떨며 놀라느니라 그는 권능으로 바다를 흉용케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쳐서 파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뇌성벽력으로 꾸짖으시면 높은 산이 놀란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시적 표현입니다. 바람을 불게 하시면 바다가 흉용해집니다. ‘라합’은 악의 세력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하나님께서 지혜와 권능으로 악의 세력을 쳐서 파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30장 7절에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고 하였는데, 애굽과 같은 나라를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으로 쳐서 파했다는 것입니다. 홍해에서 애굽 사람들이 침몰케 된 것도 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된 역사라는 것입니다. 침몰 당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그 신으로 하늘을 단장하시고 손으로 날랜 뱀을 찌르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신’은 바람을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흐렸던 하늘을 바람으로 맑게 하시어 일월성신을 잘 보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랜 뱀’과 관련하여 이사야 27장 1절에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 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날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신다는것은 앗수르를 멸망시키신다는 뜻입니다. 애굽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 치셨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가 하룻저녁에 멸망한 일처럼 손으로 날랜 뱀, 앗수르 나라 군대를 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천사를 보내셔서 하룻저녁에 18만 5천명을 멸망시키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4절에 “이런 것은 그 행사의 시작점이요 우리가 그에게 대하여 들은 것도 심히 세미한 소리뿐이니라 그 큰 능력의 우뢰야 누가 능히 측량하랴”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안다고 해도 시작점같이 조금 밖에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급에 지나지 않는, 적은 분량밖에는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모래 한 알 만큼의 분량입니다. 그 정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몇 억만 분의 일 밖에 모르고,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뜻도 다 알지 못합니다. 성경에 나타내어 주신 것만 우리가 알 뿐입니다.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권능과 지혜는 한량이 없습니다. 무한합니다. 그리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다 모르는 것입니다. 세미한 소리같이 지극히 작은 분량밖에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미한 소리를 엘리야에게 들려주셨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2절에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고요한 가운데 지극히 가늘고 작게, 하나님의 감동으로 주시는 그 말씀대로 생명을 살려 나가시고 인도해나가시며, 구원 운동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큰 능력을 나타내실 때에는 측량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큰 능력의 우뢰’처럼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역사가 나타날 때는, 그 누구도 측량하지 못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심판도 하시고 구원도 하시는 것을 그 누구도 측량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측량을 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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