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욥기 27:1-23 순전을 지킨 욥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순전을 지킨 욥
욥기 27:1-23

1욥이 또 비사를 들어 가로되 2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3(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이 오히려 내 코에 있느니라) 4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리라 5나는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6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 7나의 대적은 악인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8사곡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하실 때에는 무슨 소망이 있으랴 9
환난이 그에게 임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10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불러 아뢰겠느냐 11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의 뜻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12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
주 허탄한 사람이 되었는고 13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강포자가 전능자에게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14그 자손이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 후예는 식물에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15그 남은 자는 염병으로 묻히리니 그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16그가 비록 은을 티끌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같이 예비할찌라도 17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눌 것이며 18그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상직군의 초막 같을 것이며 19부자로 누우나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없어졌으리라 20두려움이 물같이 그를 따라 미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빼앗아갈 것이며 21동풍이 그를 날려 보내며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 22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쏘시나니 그가 그 손에서 피하려 하여도 못할 것이라 23사람들이 박장하며 비소하고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

1. 욥이 시험 중에 순전함을 굳게 지킴

고통 중에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며, 하나님으로 살 것을 맹세함

본문 1-2절에 “욥이 또 비사를 들어 가로되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비사(譬詞)를 들어 말한다는 것은 시적으로 말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이라는 것도 시적 표현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욥이 의의 길을 걸어갔지만 하나님께서 욥에게 재앙과 고난을 주셨기 때문에 의를 빼앗긴 것처럼 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의를 행하는 자에게 평강과 번영을 주셔야 의 행한 빛이 드러나겠는데, 정반대로 욥이 하나님의 징계로 고난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의를 빼앗긴 것처럼 되었다고 시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라는 것은 욥이 고난 가운데에서 심령의 괴로움을 많이 당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의와 순전을 잘 지켜나갔습니다.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란 욥이 의를 빼앗긴 것 같고 자기가 고난 받는 원인을 알지 못해 심령이 고통 중에 있음에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며 그 하나님으로 살 것을 맹세하는 것입니다(히 6:16). 이렇게 일이 잘 안될 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본문 3절에 “(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이 오히려 내 코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생명이 있는 날까지 믿음으로 순결과 의를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2장 22절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하였는데, 욥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날까지, 즉 죽는 날까지 의와 순결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굴복하여 자기가 불의를 행했다고 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리라’는 것도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고난
과 환난이 많아도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즉, 욥은 다른 사람들이 욥을 죄인이라고 정죄해도, 자기의 신앙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볼 때 자기는 죄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옳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불의이며, 그러한 말은 궤휼한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 “나는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옳지 않은 친구들의 말을 옳다고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욥의 친구들이 보편적인 진리를 말하고는 있으나 그 진리를 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남을 정죄하는데 이용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을 옳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옳지 않은 주장을 듣고 그것이 옳다고 말하면, 불의와 궤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옳은 것은 끝까지 옳다고 말해야 하며, 옳지 않은 것은 끝까지 옳지 않다고 말해야합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순전함이란 순수한 신앙, 진실성, 섞은 것이 없는 참된 진리, 선한 양심을 가리킵니다. 욥이 죽기까지 참된 진리를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이와 같이 욥은 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죽기까지 자기의 신앙을 지켜나가려고 하였습니다. 환난과 고난을 당할 때에 참 신앙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참 신앙을 지켜나가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권고해주십니다.

본문 6절에 “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자기가 깨달은 옳은 진리를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양보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의를 죽기까지 굳게 잡고 놓지 않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옳은 진리를 양보하면 영적 생명이 죽습니다. 그리고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고 하였는데, 욥이 일평생 양심에 가책되는 길을 걷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사람은 담대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양심에 가책 받는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고전 4:4). 성도가 신앙 양심에 가책 받는 것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아무리 고난이 심해도 굶어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신앙 양심에 가책되는 길을 걸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도가 신앙 양심에 가책되고 말씀에 위반되는데로 나가면, 하나님의 역사가 떠나고 영적 힘이 없어집니다.

2. 의로운 성도를 대적하는 자는 희망이 없음

본문 7-8절에 “나의 대적은 악인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사곡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하실 때에는 무슨 소망이 있으랴”라고 하였습니다. 욥과 같이 신앙 양심을 써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와 순결을 지켜 나가는 사람을 대적하는 자는 불의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의를 대적하는 것이 불의이고 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사곡한 자’는 악한 사람을 가리키며, 또 믿는다고 하면서 진리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곡한 사람은 이익을 얻어 쌓아 두고 그것으로 잘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불러 가실 때에는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눅 12:21). 하나님을 위해서 부요하지 못하고,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쌓은 자는 다 이와 같습니다. 물질이 우상이 된 자는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취해 가실 때 그 물질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본문 9절에 “환난이 그에게 임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랴”라고 하였습니다. 사곡한 사람은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잠언 28장 9절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죄를 지으며 기도하는 것은 가증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기도는 안 들어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소에 늘 기도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섬기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본문 10절에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불러 아뢰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멀리하다가 환난 때에 부르짖는 자는 그것이 그가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증거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성도는 평안할 때나 환난 때나 쉬지 않고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본문 11-12절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의 뜻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주 허탄한 사람이 되었는고”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일을 다 보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들었으나 지금 허탄한 말과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28장 10절에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진리를 몇 번이든지 반복해서 가르쳐주는 것이 좋습니다. 

3. 악인은 그 자신과 자손이 망함

본문 13-15절에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강포자가 전능자에게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그 자손이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 후예는 식물에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그 남은 자는 염병으로 묻히리니 그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악인들은 그 자손이 번성해도 칼에 망하게 되고, 식물에 배부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악을 심는 자는 반드시 악을 그 열매로 거둡니다. 또 악인이 망하게 되면 그 자손은 먹을 것이 없어 배부를 수 없게 되는데, 여기에는 영적 배가 부르지 못한다는 뜻도 있습니다(학 1:6). 또 악을 행하다 남은 자는 실지로 전염병에 죽기도 하고 또 악한 사상에 미혹되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을 잃고 울지도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6-17절에 “그가 비록 은을 티끌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같이 예비할찌라도 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눌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행하면 은과 의복을 많이 쌓아놓았어도 자기가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약 5:2-3; 잠 13:22, 28:8; 전 2:26). 죄를 짓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쌓아놓았어도, 그것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쌓아놓은 것이 되어 그것을 다 취하지도 못하고 사용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롬 6:23).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나 순종함에 부족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절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모두 죄입니다. 또 로마서 13장 13절에 나온 방탕과 술 취함, 음란과 호색, 쟁투와 시기도 죄입니다. 

물질에 대해서 하나님께 바로 하지 못하는 것도 죄입니다. 따라서 십일조를 드리더라도 하나님께 올바로 드려야 하며, 물질은 정당하게 벌어 정당하게 써야 합니다. 물질을 정당하게 취하지 않은 것은 더러운 이를 취한 것으로, 사기, 횡령 등의 방법으로 남을 속여서 물질을 취한 것은 모두 더러운 이를 취한 것입니다. 하여간 물질을 벌기만 하고 바로 쓰지 못하는 것도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실 때에는 그것으로 먹고 살고, 그것을 가지고 믿는 일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가옥에 가옥을 더하고, 전토에 전토를 더하는 것은 죄입니다. 이사야 5장 8절에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쓸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약한 사람을 위해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8절에 “그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상직군의 초막 같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상직군(上直軍)은 파수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보초 서는 초막이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그러므로 악인이 아무리 집을 잘 짓고 산다고 해도, 파수 보는 사람의 초막과 같아서 얼마 후에는
그것이 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부자로 누우나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없어졌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이 부자로 화려하게 모든 것을 꾸며놓고 잠자리에 눕지만, 깨어보면 없어지고 안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이 갑자기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일을 하지 못하면 다 헛것입니다.

본문 20-21절에 “두려움이 물같이 그를 따라 미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빼앗아갈 것이며 동풍이 그를 날려 보내며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에게 무슨 바람이 들어와서 다 몰아낼지 모릅니다. 폭풍, 동풍, 북풍, 동남풍 등 여러 가지 바람이 불어서, 즉
하나님의 여러 가지 환난과 징계가 옴으로 다 날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쏘시나니 그가 그 손에서 피하려 하여도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활로 쏘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쏘아 징벌하시므로, 악한 자는 하나님의 활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이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망하게 됩니다.

본문 23절에 “사람들이 박장하며 비소하고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악한 사람이 망할 때에 박장(拍掌)하고 비소(誹笑)하며 그 처소에서 몰아낸다는 것입니다. 잠언 11장 10절에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 죽으면 사람들이 아까워하고 애석해 하나, 악인이 죽으면 잘 죽었다고 하며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하나님께 바로 하고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우며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사람이 죽은 후에도 존경을 받습니다. 믿음을 잘 지키다가 세상을 떠나면, 모든 사람이 존경합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은 다음에 모든 사람이 존경하였습니다. 우리도 죽은 다음에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 믿음에 덕, 덕에 지식, 지식에 절제, 절제에 인내, 인내에 경건, 경건에 형제 우애,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벧후 1:5-7). 이것들은 죽은 다음에도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며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것들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서도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잘 지켜야겠습니다. 욥은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그러면 욥의 신앙이 모두 몇 가지입니까? 욥기 1장에 네 가지, 욥기27장에 여섯 가지입니다. 즉, 전부 열 가지입니다. 1장에서는 욥이 순전하였고 정직하였고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악에서 멀리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7장에서는 그가 불의를 말하지 않았고, 궤휼을 말하지 않았고, 악한 자를 옳다고 하지 않았고, 순전함을 버리지 않았고, 의를 굳게 잡았고, 일평생 마음이 책망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욥의 신앙을 배워야겠습니다. 그리고 욥과 같은 신앙의 길을 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아끼시며, 악한 자가 손도 대지 못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지 않고 불의만 행하며 나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아끼지 않으시고, 다 불어 버리십니다. 또 죽을 때에 사람들은 박장하고 비소하며, 그 처소에서 몰아냅니다. 우리가 이것을 늘 잊지 말고, 욥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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