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3일 월요일

역대하 24:1-27 여호야다의 죽음과 요아스 왕의 타락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여호야다의 죽음과 요아스 왕의 타락
역대하 24:1-27

1요아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칠 세라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2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며 3여호야다가 왕으로 두 아내에게 장가들게 하였더니 자녀를 낳았더라 4그후에 요아스가 여호와의 전을 중수할 뜻을 두고 5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해마다 너희 하나님의 전을 수리할 돈을 거두되 그 일을 빨리 하라 하였으나 레위 사람이 빨리 하지 아니한지라 6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레위 사람을 시켜서 여
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의 회중이 법막을 위하여 정한 세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거두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7이는 그 악한 여인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전을 깨뜨리고 또 여호와의 전의 모든 성물을 바알들에게 드렸음이었더라 8이에 왕이 명하여 한 궤를 만들어 여호와의 전 문 밖에 두게 하고 9유다와 예루살렘에 반포하여 하나님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정한 세를 여호와께 드리라 하였더니 10모든 방백과 백성들이 기뻐하여 마치기까지 돈을 가져다가 궤에 던진지라 11언제든지 레위 사람들이 궤를 메고 왕의 유사에게 가서 돈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관과 대제사장에게 속한 아전이 와서 그 궤를 쏟고 다시 그 처소에 갖다 두었더라 때때로 이렇게 하여 돈을 많이 거두매 12왕과 여호야다가 그 돈을 여호와의 전 간역자에게 주어 석수와 목수를 고용하여 여호와의 전을 중수하며 또 철공장과 놋공장을 고용하여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게 하였더니 13공장들이 맡아서 수리하
는 역사가 점점 진취되므로 하나님의 전을 이전 모양대로 견고케 하니라 14필역한 후에 그 남은 돈을 왕과 여호야다의 앞으로 가져온 고로 그것으로 여호와의 전에 쓸 그릇을 만들었으니 곧 섬겨 제사 드리는 그릇이며 또 숟가락과 금, 은 그릇들이라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여호와의 전에 항상 번제를 드렸더라 15여호야다가 나이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일백삼십 세라 16무리가 다윗 성 열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저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 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17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18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 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19그러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저에게 보내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저에게 경계하나 듣지 아니하니라 20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 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 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 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21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22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비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니 저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23일주년 후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 하여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그 모든 방백을 멸절하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내니라 24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 손에 붙이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25요아스가 크게 상하매 적군이 버리고 간 후에 그 신복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인하여 모반하여 그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26모반한 자는 암몬 여인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모압 여인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더라 27요아스의 아들들의 사적과 요아스의 중대한 경책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전 중수한 사적은 다 열왕기 주석에 기록되니라 그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 제사장 여호야다가 생존한 동안 요아스가 여호와 앞에 정직히 행함

사는 날 동안 가르치라

본문 1-3절에 “요아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칠 세라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며 여호야다가 왕으로 두 아내에게 장가들게 하였더니 자녀를 낳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요아스가 칠 세에 왕이 되어 오랫동안 치리하였습니다. 또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야다와 같은 좋은 제사장, 좋은 지도자가 사는 날 동안 왕이 정직히 행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지도자가 사는 날 동안 정직히 행하는 일이 많습니다. 요아스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믿음을 잘 지키고 성전 수리도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 앞에 선한 일을 많이 잘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에 그 신앙을 유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좋은 인도자가 살아 있을 동안은 정직히 행하고 믿음을 잘 지키지만 죽은 다음에는 정직히 행하지 못하고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때에도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에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그 신앙을 다 버렸습니다. 여호수아 24장 31절에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떠난 다음에는 그 신앙을 다 떠났고 그렇기 때문에 큰 환난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사는 날 동안이 중요합니다.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 그 영향으로 많은 사람이 신앙을 잘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생존 시에 모든 것을 본 장로들의 사는 동안이 또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는 날 동안 우리는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깨달은 것, 본 것, 들은 것, 겪어본 것을 가르치고 바른 진리 받은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좋은 신앙의 선조가 죽은 다음에는 그 신앙을 계속 유지하기가 힘이 들므로 사는 날 동안 어떻게 하든지 가르칠 수 있는 대로 잘 가르쳐 놓아야 되겠습니다. 

한국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6.25 사변을 통해 공산당을 겪어본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공산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공산주의를 몰라서 ‘사상과 이념을 초월해서 통일하자’고 하고 공산주의와 통일해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아이들이 요새 아주 많습니다. 공산주의는 그대로 둔 채 통일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캐나다 밴쿠버 안 상엽 목사 있는 교회에 장로가 두 사람이 있는데 참 안 되었습니다. 윤 장로와 김 장로인데, 둘 다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고 하여 나는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내가 돌아오는 날 그 김 장로가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여 윤 장로도 같이 와서 인 경수 목사와
다 같이 앉아서 먹다가 신문사 사장인 김 장로가 우리 교회에 대해서도 광고를 많이 내주었다고 하여서 감사하다고 하고 계속 담소가 오갔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이북하고 무조건 하나가 되어야 된다는 말이 쓱 나옵니다. 그래서 내가 “공산주의 체제를 그대로 두고서 그럴 수 없다”라고 하니까 윤 장로라는 분의 말이 “목사님이 몰라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공산주의와 하나가 되겠느냐?”고 하니까 “감정들을 다 버려야 된다”고 합니다. 옛날 감정, 6.25 때 감정들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감정을 다 내버리면 그들도 우리 민족인데, 같은 민족인데 왜 못 합하느냐는 것입니다. 감정만 버리고 합하면 된다고 하길래 내가 이북에서 공산당 겪은 경험을 한참 말해주었습니다. “공산당들은 자기 아버지도 죽이는 잔인한 자들이고 정신적인 면이나 민족도 없이 형제도 죽이고 남편도 죽이는데 무슨 민족을 갖다 대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목사 같은 사람이 있어서 한국이 통일이 안 된답니다. 난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 사람이 참 안 되었는데 여기 운동권 학생들과 똑같은 말로 “공산당이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보시오. 당신이 공산당을 지내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자 자기가 6.25 사변 때에 강원도 인제 원통 전투에 참여해 전투를 하여 자기가 공산당을 제일 많이 겪어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을 버리면 피는 진하므로 이제는 우리 민족끼리 하나가 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안 된다. 공산주의를 그대로 두고 합치면 우리 민주주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다 먹히게
되고 그 사상이라는 것은 안 변한다”고 하니 그 장로의 말이 나 때문에 통일이 안 되니 한국에 가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참 나하고 실갱이를 하다가 나도 또 다른 곳으로 떠날 계획이 있었는데 시간만 많이 가서 가자고 나섰는데 서로 헤어지면서도 “목사님, 한국에 가서도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런 사람이 장로가 되어 교회가 어떻게 되겠나’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신문에도 그런 말을 자꾸 해대면 카나다에 있는 사람들을 다 버리겠으니,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요새 젊은 사람들이 대개 그런 사상입니다. “이북하고 이남하고 같은 민족이다. 피는 진하다”라고 하면서 하나가 되면 괜찮을 줄 압니다. 공산당이 어떻게 괜찮은가 말입니다. 지금 김일성이 한국하고 합하면 이남과 이북을 통틀어 ‘자유주의 물 먹은 사람들 천오백만 명을 죽여야 공산주의가 일사천리로 싹 된다’라고 했다는 소식을 알고 있는데, 정신들이 없습니다. 사천 만에서 천오백만을 죽이면 이천오백만 명이 남는데 그것도 많고 그래도 그렇게 하면 한국에 땅도 좁은데 집도 넉넉해지므로 이북과 이남이 합해지면 천오백만을 죽일 생각을 해놓았답니다. 자유주의의 철저한 우익들만 다 죽이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이 통일을 빙자하여 이런 식으로 한국을 점령하려고 하는데도 여기서는 이렇게 반공사상을 해이하게 하여서 ‘통일하자. 통일하자. 하나가 된다’라고만 하면 어떻게 우리가 아는 평화민주주의 체제의 통일이 되겠는가 말입니다. 

이승만 박사가 다시 와야 되겠습니다. 그래도 이승만 박사 때가 반공사상이 제일 철저했었는데 차차 묽어져 요새는 아예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다 잡아서 치워야 되는데 여전히 선전 문구를 내붙여놓고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또 대학 교수 중에도 공산주의자가 많다고 합니다. 이런 좌익 사상의 교수를 다 발본색원(拔本塞源)하고 대학생들을 다시 제대로 교육시켜야 합니다. 대학교가 공산당 선전 기관이 되어 버려 아이들을 대학교에 보내려니 큰 염려입니다. 대학교에서 왜 공산당 선전하는 것을 가만히 두는지, 참 큰 문제입니다. 가만히 보면 속이 상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참 문제입니다. 

우선은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자꾸 전해야 합니다. 겪어본 우리가 사는 날 동안이 중요합니다. 그래도 우리 시대까지는 조금 낫고 우리 다음 세대가 될 지금 젊은 사람들이 도무지 무엇을 모르고 돌아가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지금보다 더 한심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는 날 동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또 하나님을 반대하고 오직 물질을 숭상하는 유물론의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젊은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겪은 세월을 가르쳐야 합니다. 여호수아 다음 생존한 장로들이 자기의 겪은 것을 가르친 동안에는 괜찮았다고 하였고 여호수아와 그의 당시 장로들이 다 죽은 다음에는 아주 타락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한국도 이제 이렇게 점점 전락되어 내려가면 결국은 공산주의를 막기 힘이 듭니다. 다른 나라와는 다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첫째 이북에서 간첩을 많이 내보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더 보내어 지속적으로 공산당을 선전하면 한국 백성들은 사상적인 무장이 안 되어 있어서 잘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일례로 학생들을 보십시오. 또 그나마 기본 질서를 유지하는 사상만 있으면 낫겠는데, 본래 그들 사상은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사상입니다. 공산당 마음이 법이라서 질서가 곧 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사람 같으면 천황의 질서라든지 하는 절대적으로 전해져가는 근본적 질서에 의해 절대 공산주의를 안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은 안하무인(眼下無人)입니다. 부모도 없는 시대이고 아무도 없이 자기만 옳다고 하면서 들이대기 때문에 한국에 공산 사상을 자유로이 선전하면 금방 공산주의가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많은 젊은 사람이 넘어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막
겠습니까? 

요새 투표 한다고 하지만 학생회나 어디나 의식화된 사람들이 빈틈 없는 점조직과 막강한 돈으로 뒤에서 뿌려주고 앞장서서 ‘악악’거리므로 그 의식화된 사람들이 뽑히게 됩니다. 다른 일반 사람들은 조직이 없기 때문에 총학생회 회장을 하러 나와도 의식화된 사람들이 당선 된다고 합니다. 노조도 다 그런 식이어서 보통 사람이 노조 책임자가 되지 못하고 의식화된 사람들이 공작을 통해 앞장서서 노조 조합장도 되고 간부도 되므로 나머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다 따라간답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앞날이 한심하게 될 것이니 반공법을 강하게 만들어 공산당을 잡는 정부가 되어야겠습니다. 어물쩍하다가는 금방 공산주의가 될 것 같습니다. 요새 대학생들 만나보면 한심합니다. 김재준 목사는 카나다에 있을 때에 “김일성은 수상이고 박정희는 도당”이라고 하면서 다녔다고 합니다. 목사가 되어 어떻게 자국의 대통령을 도당이라 하고 세계적으로 악독하다고 정평난 사람을 수상이라고 합니까? 김 일성이 더한 독재인데도 그 보다 훨씬 덜 독재하는 박 정희가 독재자라며 김일성은 찬성하고 박정희는 반대하고 나서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형국이니 우리가 사는 날 동안이 중요하고 사는 날 동안 바른 진리를 세우고 가르쳐야겠습니다. 개척교회를 세울 수만 있으면 세우고, 가르칠 수 있는 길만 있으면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여기에 있습니다.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이 중요한 것처럼 오늘날 우
리가 사는 날 동안이 중요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떠난 후에 어떻게 될지를 모릅니다. 바울도 ‘내가 떠난 후에 이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올 줄을 안다’고 하였고 베드로도 ‘내가 떠날 날이 가까워서 장막에 얼마 못 있게 되겠는데 임박한 이때에 내가 너를 일깨워준다’고 하였습니다. 떠나기 전에 할 일을 계속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야다가 떠난 다음에는 여지없이 진리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떠나기 전에 가르치기를 잘 가르쳐놓아서 장로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단단히 서게 만들어놓았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2절에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주와’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주님을 의뢰하는 신앙,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신앙을 전달해준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잘 가르쳐서 그 말씀이 그 사람들을 인도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울이 한 일이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되 젊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잘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과 주만 바라보고 주만 의지하고 주의 능력으로 나가는 신앙을 전달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른 진리를 떠나기 전에 잘 전하여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여야 되겠습니다. 말씀 안에서 살고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게 해놓아야 우리가 떠난 후에라도 인본주의를 쓰지 않고 주님만 의뢰하므로 그 말씀이 보호해주고 주님께서 보호해주십니다. 

2. 요아스 왕이 수리비를 모아 성전을 수리함

하나님의 일을 즉시로 하라

본문 4-7절에 “그후에 요아스가 여호와의 전을 중수할 뜻을 두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해마다 너희 하나님의 전을 수리할 돈을 거두되 그 일을 빨리 하라 하였으나 레위 사람이 빨리 하지 아니한지라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레위 사람을 시켜서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의 회중이 법막을 위하여 정한 세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거두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는 그 악한 여인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전을 깨뜨리고 또 여호와의 전의 모든 성물을 바알들에게 드렸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달랴가 성전을 다 더럽혀 놓았습니다. 그래서 요아스가 성전 중수할 뜻을 가지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전을 수리할 돈을 거두되 신속히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요아스도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려고 힘을 쓰고 하나님의 전을 수리하려고 한 것이 귀하고 기특합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빨리 거기에 응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책망을 한 것입니다. 열왕기하 12장 6절에 “요아스 왕 이십삼 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오히려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였습니다. 이 일이 요아스 왕 삼십 세 때의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이렇게 지체하면 안 되고 즉시로 해야 합니다. 여호야다나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빨리빨리 해야 되고 아무리 연기될 여러 가지 사정과 조건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일은 즉시로 해야지 이 다음에 하겠다고 미루면 안 됩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젊은 왕의 말이라도 왕의 말을 듣고 책망을 달게 받으며 일해야 되겠습니다. 즉시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너무 욕심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전이 퇴락하고 우상이 가득하므로 수리를 빨리 해야 되겠는데 지체를 하고 있으므로 빨리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요아스 왕이 성전 수리하는 일에 직접 나섬

본문 8-11절에 “이에 왕이 명하여 한 궤를 만들어 여호와의 전 문 밖에 두게 하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반포하여 하나님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정한 세를 여호와께 드리라 하였더니 모든 방백과 백성들이 기뻐하여 마치기까지 돈을 가져다가 궤에 던진지라 언제든지 레위 사람들이 궤를 메고 왕의 유사에게 가서 돈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관과 대제사장에게 속한 아전이 와서 그 궤를 쏟고 다시 그 처소에 갖다 두었더라 때때로 이렇게 하여 돈을 많이 거두매”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을 수리할 돈 모으는 일을 요아스 왕이 처음에는 레위 사람과 제사장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태만하여 안 하기 때문에 이제는 왕이 궤를 만들어 직접 나서서 한 것입니다. 열왕기하 12장9절에 보면 시켜서 하였다고 했는데, 그것이 좋습니다. 직접 나서서 하되 책임자를 시켜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책임자가 안할 때에는 책임자를 비켜놓고 자기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책임자를 불러 “이것을 하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돈을 많이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돈이 궤에 찬 다음에는 가져다가 왕의 서기관과 대제사장에게 속한 아전이 와서 그 궤를 쏟고 다시 그 처소에 갖다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2-14절에 “왕과 여호야다가 그 돈을 여호와의 전 간역자에게 주어 석수와 목수를 고용하여 여호와의 전을 중수하며 또 철공장과 놋공장을 고용하여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게 하였더니 공장들이 맡아서 수리하는 역사가 점점 진취되므로 하나님의 전을 이전 모양대로 견고케 하니라 필역한 후에 그 남은 돈을 왕과 여호야다의 앞으로 가져온고로 그것으로 여호와의 전에 쓸 그릇을 만들었으니 곧 섬겨 제사 드리는 그릇이며 또 숟가락과 금, 은 그릇들이라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여호와의 전에 항상 번제를 드렸더라“고 하였습니다. 전의 수리를 다하고 전을 원상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성전기물들을 장만하여 여호야다의 사는 모든 날에 여호와의 전에 항상 번제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제사장의 인도를 받아서 요아스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이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므로 온 백성이 복을 받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나라가 되었고 오래간만에 성전이 회복되었습니다. 유다 나라가 요아스 왕의 아버지, 할아버지 때부터 우상을 섬겨 왔고 또 아달랴 왕 때에는 더욱 더 악하게 되었다가 이제는 다 원상회복이 되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3.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음

본문 15-16절에 “여호야다가 나이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일백삼십 세라 무리가 다윗 성 열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저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 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야다가 죽었는데 나이는 일백삼십 세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제사장, 유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성전을 정결케 하고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로 섬기게 만들어놓은 선한 제사장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4. 요아스 왕이 여호야다의 은혜를 배반하고 그 아들 스가랴를 죽임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한 요아스 왕

본문 17-19절에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 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저에게 보내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저에게 경계하나 듣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지도자인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에 요아스 왕이 일백팔십 도로 변하여 진리를 다 내버리고 하나님을 말씀대로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좋은 교역자가 죽은 다음에 이렇게 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여호수아 생존시에 있던 장로들이 죽은 다음에도 이렇게 되었고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에도 요아스 왕의 신앙이 이렇게 변절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모두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입니다. 요아스는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속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왕이 되어 단지 순종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저 훌륭한 제사장 여호야다의 영향력으로 아무 깨달음 없이 신앙 생활을 따라하다가 여호야다가 세상을 떠나고 시험이 들어오자 바로 넘어간 것입니다. 여러 방백들이 와서 절하고 자기를 높여주는 시험이 들어오자 그들의 원대로 곧장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로 경계하셨으나 요아스 왕이 듣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멸망 시키려고 하시는 데도 안 듣고 거역하며 나갔습니다. 도대체 여호야다 때에 배우고 받은 신앙이 다 어디 갔습니까? 성전 수리하던 신앙이 다 떠나고 도리어 성전을 어지럽게 만드는 가운데 빠지게 되었습니다.

선한 선지자 스가랴를 돌로 쳐죽임

본문 20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 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라고 하였는데,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자기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아 담대히
나가서 전했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면 형통하지 못하게 되고 여호와를 버리면 하나님께서도 너희도 버리시므로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자가 복을 받고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는 자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아스 왕이 여호야다의 은혜를 생각지 않고 그 아들을 돌로 쳐죽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행동입니까? 요아스 왕이 이리 경망하고 아무 생각을 못해도 왕 노릇은 사십 년 간이나 오래 하였습니다. 경솔하고 생각이 얕고 과거의 은혜를 생각지 않는 감정주의 기분파이므로 여호야다가 살았을 때에는 잘하려고 바짝 달려들어 성전을 수리하고 하다가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에는 다른 사람의 말에 넘어간 것입니다. 과거에 여러 왕들도 선지자에게 책망을 많이 받았지만 자기에게 책망을 한다고 당장에 선지자를 돌로 때려죽이는 악을 행한 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아주 경솔하고 생각이 너무 얕고 성격이 잔인하며 변덕이 심한 사람입니다. 여호야다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기를 죽을 가운데서 살려서 왕으로 세웠는데, 배은망덕해서 그 아들을 성전에서 돌로 때려 죽였으니 그 죄가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죽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 35절에 “그러므로 의인 아벨(첫 순교자)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마지막 순교자)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사가랴는 스가랴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바라갸의 아들이라고 하였는데, 바가랴는 여호야다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요아스가 큰 죄를 졌습니다. 

본문 22절에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비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니 저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는데 그를 하나님께서 신원해주신다는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5. 요아스가 아람 군에게 부상을 받고 자기 신복들에게 살해됨

죄를 지어 하나님의 보호가 떠난 요아스 왕의 최후

본문 23-24절에 “일주년 후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 하여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그 모든 방백을 멸절하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내니라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 손에 붙이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죄를 짓고 형통하겠습니까? 요아스 왕이 여호야다에게 받은 신앙에서 완전히 떠나 하나님으로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선지자가 책망을 해도 안 듣고 여호야다의 아들이 책망을 할 때에 그를 잡아 죽였는데 이쯤 되었으면 앞날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일 년 후에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를 보내셔서 요아스를 치게 만드셨습니다. 일 년도 사실 많이 산 것이고 본 신앙에서 떠나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지 않습니다.
신앙이 떨어진 다음에는 적은 무리가 왔지만 아무리 큰 군대라도 당하지 못합니다.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신앙에 섰을 때에 힘이 있고 양심을 쓸 때에 힘이 있고 또 옳은 진리를 붙들고 나갈 때에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고 나갈 때에 힘이 있지, 하나님의 책망도 안 받고 우상이나 섬기는 데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보호가 떠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내셔서 치게 만드시므로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선지자는 자기가 잡아서 죽일 수 있었지만 원수는 전부 잡아 죽일 수가 없습니다. 선지자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계신 줄을 알아야 되고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내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징벌할 때에 그만 망하고 말았습니다. 

본문 25-27절에 “요아스가 크게 상하매 적군이 버리고 간 후에 그 신복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인하여 모반하여 그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모반한 자는 암몬 여인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모압 여인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더라 요아스의 아들들의 사적과 요아스의 중대한 경책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전 중수한 사적은 다 열왕기 주석에 기록되니라 그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인 것에 대해서 신복들이 아주 마땅치 않게 생각하다가 원수가 되어 왕이 부상을 당하고 들어올 때 쳐죽였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죽인 악한 왕으로서 열왕의 묘실에 둘 만한 자가 못 된다고 그곳에 묻지 않았습니다. 요아스 왕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요아스 왕이 처음에는 믿음을 잘 지키고 성전 수리를 한 좋은 왕이었는데, 여호야다가 떠난 다음에 타락이 되어 여호야다의 교훈과 신앙에서 떠났습니다. 그래도 또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책망하시며 바로 세워주시려 했는데, 그때에 오히려 그 선지자를 죽이더니 자기도
신하들에게 모반을 당하여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이면 자기도 죽습니다. 본문 25절에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라고 한 것으로 보아 요아스 왕이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이외에 다른 아들도 죽인 모양입니다. 얼마나 악한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신세진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신세진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짐승과 같은 사람입니다. 

미국 LA에 사는 최 희선 선교사가 옛날 한국에 나와 고생을 많이 하였는데 그분의 사모님이 살아 계시다고 하여 한 번 방문을 하였습니다. 10여 년 전에 최 희선 선교사가 병이 났을 때 방문하여 양말 한 켤레를 드렸더니 대단히 감개무량해하셨는데 그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사모님을 찾아가 뵈니 연세가 93세이시고 소아마비인 딸이 차를 몰고 다녔는데 대단히 반가워하셨습니다. 제가 선물 하나를 드리니 감개무량해하시며 눈물을 다 글썽글썽하셨습니다. 최 희선 선교사는 의학박사로 선천에서 젊어서 나와 산골로 다니면서 많은 고생을 하다가 해방 후에 부산에 나와서 전도하느라 또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때에 저도 같이 하였고 포로 수용소 전도도 같이 하였습니다. 6.25사변 때에 상당히 고생을 많이 할 때였는데 한 번은 사모님과 같이 “이조사, 들어오라”고 하셔서 들어가니 밀감을 딱 한 개 주시는데 그때 미제 오렌지를 처음 받아서 먹었습니다. 이번에 가서 그 얘기를 하자 당신도 웃으셨습니다. 이미 잊어버린 것을 제가 아직 기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오렌지 하나가 요새 오렌지 한 상자보다 더 귀한 것이었습니다. 요새도 감사한 생각이 나서 그 은혜를 잊지 못하고 동생 용규 목사와 함께 찾아가 옛날 얘기를 한참하고 사진을 찍고 왔습니다. 옛날에 신세진 사람들을 잊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요아스 왕의 역사를 보고 이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배은망덕하고 자기가 신세진 사람의 아들을 죽이며 좋은 제사장이 자기에게 가르쳐준 진리의 말씀을 다 내버리면 안 됩니다.
그 신앙을 떠나면 결과는 너무도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좋은 신앙의 전통을 이어 받아 계속 이 신앙을 잘 유지하여야 되겠습니다. 레갑 족속 요나답의 자손들은 자기 조상들에게로 부터 내려오는 좋은 전통을 몇 백 년이 되도록 계속 이어갔습니다. 술을 먹지 않고 장막에 거하며 포도를 아예 재배조차 하지 않는 경건한 전통을 계속 잘 계승해 내려간 사람과 요아스 왕의 배반한 일은 아주 대조적입니다. 우리는 요아스 왕과 같이 되지 말고 레갑 족속처럼 대 대손손이 좋은 신앙의 전통을 계승하여야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같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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