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3일 월요일

역대하 25:1-28 아마샤 왕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아마샤 왕
역대하 25:1-28

1아마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호앗단이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2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 3그 나라가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4저희 자녀는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 율법책에 기록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5아마샤가 유다 사람을 모으고 그 여러 족속을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을 세우되 유다와 베냐민을 함께 그리하고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여 창과 방패를 잡고 능히 전장에 나갈 만한 자 삼십 만을 얻고 6또 은 일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 만을 삯내었더니 7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로 왕과 함께 가게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하지 아니 하시나니 8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대적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9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일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꼬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10아마샤가 이에 에브라임에서 자기에게 나아온 군대를 구별하여 본곳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니 저희 무리가 유다 사람을 심히 노하여 분연히 본곳으로 돌아갔더라 11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 백성을 거느리고 염곡에 이르러 세일 자손 일만을 죽이고 12유다 자손이 또 일만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 몸이 부숴지게 하였더라 13아마샤가 자기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돌려보낸 군사들이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성읍을 엄습하고 사람 삼천을 죽이고 물건을 많이 노략하였더라 14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15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나아가 가로되 저 백성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16선지자가 오히려 말할 때에 왕이 이르되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선지자가 그치며 가로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17유다 왕 아마샤가 상의하고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오라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18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9네가 에돔 사람을 쳤다 하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편히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20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저희가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붙이려 하심이더라 21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로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22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23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여호아하스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
지 사백 규빗을 헐고 24또 하나님의 전 안에 오벧에돔의 지키는 모든 금은과 기명과 왕궁의 재물을 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아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25이스라엘 왕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을 생존하였더라 26아마샤의 이외의 시종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7아마샤가 돌이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 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8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그 열조와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더라

1. 아마샤가 선정(善政)을 베풂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는 못함

본문 1절에 “아마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호앗단이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마샤가 이십오 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을 치리하였습니다. 아마샤는 대체로 평가할 때 선한 왕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처음에 잘하고 믿음으로 잘 나가다가 나중에 그만 교만해져서 죄를 짓고 실패하였습니다. 선한 왕이요 믿음으로 나가던 사람도 교만해지면 이렇게 죄를 짓고 가다가 실패하게 됩니다. 아마샤의 말년이 좋지 않았는데, 아무리 믿음을 잘 지켜 나가던 사람도 교만해지면 이렇게 망하는 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조심하며 겸손해서 믿음을 잘 지켜야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2절에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정직히 행했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바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보통은 바로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점이 조금 있다는 것입니다. 끊어버릴 것은 깨끗하게 완전히 끊어버리고 좀 더 겸손하게 충성을 했더라면 좋았겠는데, 결점을 제거하지 못하고 나갔기 때문에 나중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있는 성도들도 결점이 있기 십상이므로 한 구석의 결점을 온전히 없애지 못하면 후에 그것으로 인해 실패하고 함정에 빠질 날이 옵니다. 따라서 결점을 제거하려고 힘을 쓰고 옆 사람에게도 자기 결점에 대해 물어서 고치도록 해야 합니다. 혹시 윗사람이 결점을 고치라고 말해줄 때면 그 말을 감사히 받아서 고쳐야 합니다. 자기의 결점을 말해주면 싫어하고 “누가 목사님한테 보고했느냐?”고 하며 그 사람한테 찾아가서 싸우는 사람은 고쳐질 희망이 없는 사람으로 그 결점 때문에 장차 망합니다. 지적을 받아 고치면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는 말은 믿음으로 잘 나가는 사람이고 정직한 사람인데 결점 때문에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고 결점들을 미리 잘 고쳐 나가야 되겠습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바로 한 아마샤 왕

본문 3-4절에 “그 나라가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저희 자녀는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 율법책에 기록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마샤의 부왕은 요아스 왕인데, 그는 신하들의 반역으로 죽었습니다. 그것을 아는 아들 아마샤는 왕이 되어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은 처형하였으나 그들의 자녀들은 보존하여 줌으로 모세의 율법을 잘 지켰습니다.
신명기 24장 16절에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처벌하는 일에 아마샤가 하나님 앞에 옳게 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양심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하였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고 하는 것은 신앙 양심을 쓰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신앙 양심을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행하고 무슨 일을 하나 처리해도 성경말씀대로 처리하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또 죄는 미워하고 사람은 사랑해야 합니다. 죄를 미워하다가 사람까지 미워하면 안 됩니다. 죄는 다스려도 사람은 사랑하고 모든 일을
성경대로 해나가야 합니다. 

2. 고용한 이스라엘 용병을 선지자의 말을 따라 돌려보냄

에돔 사람과 싸우러 전쟁에 나갈 준비를 한 아마샤 왕

본문 5-6절에 “아마샤가 유다 사람을 모으고 그 여러 족속을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을 세우되 유다와 베냐민을 함께 그리하고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여 창과 방패를 잡고 능히 전장에 나갈 만한 자 삼십 만을 얻고 또 은 일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 만을 삯 내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일 사람들이 유다를 침략해 오므로 아마샤가 그들과 싸우려고 군사 삼십 만을 모집했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 숫자로는 세일 자손을 감당하지 못하겠으므로 북 이스라엘에서 군사 십만 명을 은 일백 달란트를 내고 용병으로 데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에 순종한 아마샤 왕

본문 7-8절에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로 왕과 함께 가게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하지 아니하시나니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대적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나라와 함께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도 성경을 어기는 나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래는 다 함께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고 이스라엘 한 나라이었는데,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남북이 갈라져 북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을 섬기되 성경말씀과는 어긋나게 섬기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드릴 예배를 자신들이 정한 곳, 벧엘과 단에서 드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으로 섬겼습니다. 또 성경에 정한 칠월 절기를 팔 월 절기로 바꾸어 지키고 레위 사람만 되는 제사장을 아무 사람이나 원하는 대로 값을 받고 세워주었습니다. 성경대로 하지 않고 제 맘대로 편리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는 요즘의 성경대로 믿지 않는 교회와 같습니다. 교회는 교회이고 하나님을 섬기기는 섬기나 ‘어떻게 성경 그대로 다할 수 있겠나’라고 하면서 말씀을 양보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어기고 나가는 타락된 교회와 타협하면 같이 하시지 않습니다.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상당히 선한 왕이고 믿음으로 나간 왕이지만 북쪽 나라와 교제를 하였습니다. 역대하 20장 35절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이었더라 두 왕이 서로 결합하고 배를 지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지었더니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항햐여 예언하여 가로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는 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지은 것을 파하시리라 하더니 이에 그 배가 파상하여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북쪽 왕과 교제하다가 여호사밧이 실패하였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양보하고 타협주
의로 나가는 타락된 종교가들과 같이 연합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같이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말씀대로만 하려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같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아마샤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북 이스라엘 용병을 돌려보내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전쟁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왕이 전쟁에서 질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샤 왕은 그 사람의 말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직접 자기에게 해주시는 말씀으로 받아 그대로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믿음이 상당히 좋은 믿음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성경말씀을 가지고 권면할 때에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으면 안 되고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직접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고 순종해야 합니다. 아마샤의 그런 믿음이 참 좋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순종하려니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물어서 해결한 아마샤 왕

본문 9절에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일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꼬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북쪽 나라에 은 일백 달란트라는 큰 돈을 이미 주어 다시 받을 수도 없으니 큰 문제입니다. 이미 돈을 다 주었는데 북쪽 이스라엘 군대를 돌려보낸다면 하나님의 말씀 순종하느라 요새로 말하면 몇 억 대 손해가 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이스라엘 군대가 섭섭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샤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그가 하나님께 순종만 하면 은 일백 달란트가 문제가 아니고 그보다 더 많은 것으로 주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마샤 왕은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한 것을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몇 배나 더 채워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순종하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면 좋은 것들로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음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과 그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손해를 본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희생한 것에 대하여 백 배나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손해 볼까 봐 순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손해를 보고 희생을 당해야 합니다. 돈을 손해 볼 뿐만 아니라 아비나 어미나 형제나 자매나 자식이라도 과념치 말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말씀을 따라가면 모든 주변이 백 배나 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 버리면 그것이 백 배나 악해집니다. 

예전에 심 목사가 자기 어머니가 백 배나 더 나아진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신사참배 문제로 감옥에 들어갔다 와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감옥에 갇혀있을 때에 어머니가 오셔서 우시며 “네가 그냥 신사참배하고 감옥에서 나오면 나도 예수를 믿겠다. 내가 지옥 가면 되겠냐? 네가 그냥 신사참배하고 나도 예수를 믿어 같이 천당 가자”라고 말하시니 우상만 섬기시던 어머니가 예수를 믿겠다는 말에 잠깐 ‘그럴까’하는 시험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른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된다’는 것이 생각나서 “제가 다른 것은 순종을 해도 그것은 순종 못합니다”라고 하여 “나는 지옥 간다, 지옥 간다”라고 하면서 어머니께서 가셨답니다. 그랬더니 형사들이 심 목사를 구두 발로 차면서 “대가리가 공구리 통 같은 놈의 새끼, 어머니도 모르고 돌짝에서 나왔느냐?”라고 하면서 형편없이 고문을 하였답니다. 그러다 8.15 해방이 되어 심목사가 출감하자 “야, 네가 감옥에서 나오는 것을 보니 진짜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나도 깨달았다”라고 하시며 그 어머니가 예수를 믿으셨답니다. 전에는 우상만 섬기고 하나님을 반대하시던 어머니가 이제는 하나님을 잘 섬기시는데 그 전의 어머니 백을 주어도 안 바꿀 정도로 좋더라는 것입니다. 어머니라는 인정도 끊어버리고 말씀만 지켰더니 어머니가 백 배나 나아진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백 배나 받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백 달란트를 손해 보았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것보다 더 많이 주실 수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지킬 때 당하는 손해를 아까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몇 억대를 손해 보아도 말씀만 지키면 백 배나 더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말씀을 지키도록 전적으로 힘써야 합니다. 

또 말씀 지키느라 신용이 떨어졌어도 앞으로 백 배나 신용 있는 사람이 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신용이 떨어졌지만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이랬다 저랬다 한 것은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그 신용을 전보다 백 배나 더 있게 만들어주십니다. 한 번 작정한 것은 안 바꾸
는 것이 물론 좋지만 성경말씀에 위반될 때에는 바꿔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절대가 되어야지, 작정한 것이 우상이 되면 안 됩니다. 헤롯 왕이 한 번 작정한 것을 변경하지 않으려다가 세례 요한의 머리를 자르는 죄를 지었습니다. 헤로디아에게 “원하는 것은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작정하였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의인이고 하나님의 사람인 줄을 알면서도 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작정한 것보다 말씀이 큽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은 작정을 했어도 “미안 하지만 전에 작정한 것이 잘못되었으므로 그대로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고 말씀대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10절에 “아마샤가 이에 에브라임에서 자기에게 나아온 군대를 구별하여 본곳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니 저희 무리가 유다 사람을 심히 노하여 분연히 본곳으로 돌아갔더라”고 하였습니다. 곤란한 입장에도 북 이스라엘서 데려온 군대를 돌려보내고 아마샤는 유다의 군대 삼십 만만 가지고 에돔 사람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3. 아마샤가 세일 자손을 쳐서 이김

‘과불급(過不及)’이 죄임

본문 11-12절에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 백성을 거느리고 염곡에 이르러 세일 자손 일만을 죽이고 유다 자손이 또 일만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 몸이 부숴지게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마샤가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만 듣고 담력을 내어 여호와께서 이 전쟁을 이기게 해주실 것을 믿고 나가서 세일 자손과 더불어 싸웠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셔서 전쟁에서 대승리하였습니다. 세일 자손을 격퇴하고 포로로 잡은 일만 명을 바위 꼭대기에서 밀쳐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일만 명을 죽인 것은 정당하나 사로잡은 포로를 죽인 것은 잘못한 것 같습니다. 시편 79장 11절에 “갇힌 자의 탄식으로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라고 하였고, 또 시편 102장 20절에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라고 하였습니다. 포로 잡은 자를 죽이지 않고 잘 보존하여 돌려보내야 되겠는데 그들을 바위 꼭대기에서 밀쳐 몸이 다 부숴 지게 한 것은 지나친 행동입니다. 우리가 처벌을 해도 적당한 처벌을 해야 합니다. 지나치고 가혹한 처벌을 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과불급’이 죄입니다. 죄를 다스리지 않아도 안 되고 죄를 다스릴 때에 너무 지나치게 다스려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몇 대 때리면 될 것을 너무 많이 때리면 도리어 잘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치실 때가 있었는데 원수가 너무 가혹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칠 때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원수를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징벌을 해도 적당하게 징벌을 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징벌의 심부름을 할 때에 적당하게 해야겠습니다. 지나치게 징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4. 해고된 이스라엘 군병들의 폭행

우상을 섬기던 유다 북방 성읍을 노략함

본문 13절에 “아마샤가 자기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돌려 보낸 군사들이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성읍을 엄습하고 사람 삼천을 죽이고 물건을 많이 노략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북쪽 나라 군대가 돌아가다가 분이 나서 보복을 하였습니다. 북쪽 장군들이 전쟁으로 명예와 부, 즉 승리 후 얻을 노획물을 기대하였다가 얻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분했으며, 나아가 약속 어긴 것을 분히 여긴 것 같습니다. 유다의 북쪽 사람 삼천 명을 죽이고 많은 물건을 빼앗아 갔습니다. 

언제나 자신들과 가까운 데서 벌어지는 것을 본받는 일이 많습니다. 지금 이 일은 북쪽 이스라엘 나라가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많이 본 국경선 근처의 유다 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따라 섬기므로 하나님께서 징벌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즉, 유다 사람들을 회개시키시려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북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죄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5. 아마샤가 세일 자손의 우상을 가지고 돌아와 그 앞에 경배함

아마샤 왕의 우상 숭배로 인한 타락

1)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와 자기의 신으로 세움

본문 14절에 “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아마샤가 타락되는 것이 이제 나옵니다. 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도륙하고 돌아올 때에 그들이 섬기던 우상을 다 불태우고 하나님께 찬송하면서 돌아왔어야 되는데, 오히려 우상을 가지고 와서 그 우상에게 제사를 하였습니다. 아마샤가 진리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이 없이 그저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신앙 생활을 했던 것 같은데, 이런 사람은 언젠가는 뒤로 돌아갑니다. 에돔 사람들이 패전하여 죽거나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하여 아마샤가 많은 물질을 노획하던 중 아름답고 복을 받을 만하게 만든 그들이 섬기던 우상을 보고 맘에 들고 좋아서 그것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망할 길을 걷는 것입니다. 무섭게 만든 우상은 눈을 크게 뚱딴지 사발 같이 만들고 이도 마귀 같이 보이게 만들어 보기만 해도 질겁하고 뒤로 넘어가게 하지만 어떤 절간에는 예쁘게 만든 우상도 있습니다. 전에 자기 조상들이 섬기던 우상을 아버지 대와 자기 대에 이르러 다 철폐하였는데 아마샤가 이 에돔 사람의 우상을 보니 눈에 쏙 들고 마음에 쑥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면 좋음직하고 복을 받음직하여 그 우상들을 가져다가 예루살렘에 두고 거기에 제사를 하였습니다. 마치 성도들이 과거에 섬기다 버린 우상을 도로 취한 것과 같습니다. 

2) 우상 숭배를 철저히 멀리 해야 함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전에 자랑하던 모든 세상 풍속, 습관, 부귀 영화는 복도 아니고 생명도 없는 줄을 알고 못쓰겠다고 여기며 분토와 같이 여기고 다 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만 생명과 복이 있는 줄을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여기고 행하던 사람들이 전에 버렸던 그것을 다시 하나씩 하나씩 집안에 들여다 놓고 우상화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그들이 아마샤 왕과 같은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자랑하던 것을 다 분토와 같이 내버렸습니다. 빌립보서 3장 5-8절에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에 자랑하고 좋아하며 보배로 여기던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바라보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예수님 한 분을 모시고 사는 것을 즐거워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처음에는 돈을 따라가지 않고 예수만 따라가다가, 돈 마귀가 살살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속에 들어옵니다. 전에는 하나님으로 살려고 하고 예수님만 모시고 살려고 했는데, 이제는 돈으로 살려고 합니다. 또 우상이 하나씩 하나씩 들어와서 세상이 우상이 되고 자기가 우상이 되고 사람이 우상이 되고 학식이 우상이 됩니다. 또 사치, 향락, 명예 영광심이 들어와서 모세처럼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와 명예, 애굽의 모든 재산을 다 버리고 하나님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로 ‘그래도 재산이 좀 있어야 되겠다.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도 괜찮다’고 하면서 버렸던 것을 도로 하나씩 들여옵니다. 아브라함처럼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다 버리고 말씀만 따라가지 않고 본토가 들어오고 친척이 들어오고 아비 집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전에 못쓰겠다고 버렸던 것들이 집안에, 또 마음속에 하나씩 하나씩 들어오는 것은 없습니까? 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던 것들이 이제는 좋아 보이고 그것을 해야만 되겠고 그것을 의지하려고 하나씩 가져다가 놓고 사는 것이 없습니까? 다 겪어보고 못쓰겠다고 버린 것들을 도로 가져와 살려고 하는 사람은 바로 어리석은 아마샤 왕과 같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마샤 왕이 우상을 끌어들인 것처럼 우리의 신앙이 여전한 신앙인지, 아니면 변질되었는지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전에 안 한다고 내버렸던 것을 끌어들인 것이 없는지 잘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만 나가야 합니다. 과거에 말씀대로만 나갈 때에 얼마나 좋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히 13:8). 우리가 변함이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요새 한국 사람들은 양반을 자랑합니다. 과거에는 양반을 헌신짝같이 여기고 예수님만 따라갔는데 요새는 양반이 살살 하나씩 들어와서 “나도 양반이다. 경주 김 씨다. 전주 이 씨다. 무슨 씨다”라고 하나씩 들어오는 것입니다. 전주 이 씨가 왕의 후손이며 이성계의 자
손이라고 하지만 요즘 역사가들은 이성계가 고려를 배반하고 나온 바람에 만주 땅을 잃었다고 그를 ‘졸자(拙者)’라고 한답니다. 사람들을 죽이고 왕을 반역한 사람으로 내놓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자랑하던 것을 다 내버려야 합니다.

아무튼 과거에는 애굽의 모든 재산,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다 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서 모세가 나갔는데, 이제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가 살살 들어오고 애굽의 재산, 돈 사랑하는 마음이 살살 또 들어오면 모세가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그런 것이 들어오면 안됩니다. 자꾸 돈 우상이 들어오고 세상 우상이 들어오고 명예 영광 우상이 들어오는데, 그것은 헐었던 우상을 다시 속에 갖다 놓는 것입니다. 생사화복(生死禍福)이 하나님께 있지 그것들이 사람을 살리고 복을 주는 것이 아닌데, 왜 버리고 간 것이고 저도 버렸던 것을 다시 가져오는가 말입니다. 교회에서도 전에 인본주의를 싹 다 끊어버렸던 것인데, 인본주의가 다시 들어오면 그것도 우상이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과거에 신비주의를 잘못된 줄로 알고 버렸는데 그것이 또 들어오면 그것도 우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신비주의자들이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우상을 본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 환상, 하나님 환상, 십자가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예수님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고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우상들입니다. 그냥 우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예수를 믿다가 신비주의로 돌아가는 것은 버렸던 우상을 다시 들여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다 틀렸다고 하다가 할렐루야 기도원에 가는데, 그것이 우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시는 것이지 손톱이 낫게 해줍니까? 성경에 어긋난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 신체를 훼상하라고 하였습니까? 또 어떤 이는 물이 생명수라고 박태선이 손 씻은 물, 코 푼 종이, 기도원에 있는 물이 생명수라고 하며 받들고 나가는데, 그런 것들은 생명수가 아니라 우상이 들어온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우상이 말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독교 안에 우상이 들어와서 거룩한 강단에서 기독교 사회주의, 해방 신학을 떠드는데 이것이 다 교회에 우상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해방 신학은 공산주의와 같은 것인데 그것을 들여오는 사람들은 정신 나간 자들입니다. 소련에서 공산주의를 72년 동안 하다가 아무리해도 안 되겠으니 지금 다 내버렸는데, 그것을 이제 와서 뭐하러 가지고 들어옵니까? 이제는 소련에서도 개인 재산을 인정하고 토지는 세금만 물면 영구 임대해줘서 자기의 토지가 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장사해서 돈을 벌면 자기가 다 가질 수 있고 농사해서 얼마든지 잘하면 자기의 개인 재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심히들 일을 한다고 합니다. 개인 재산을 이렇게 인정한 것은 벌써 공산주의가 무너진 것입니다. 그래서 동구에서 요새 자유주의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남이 다 해보고 버린 것을 요새 한국 기독교에서 해방신학이나 기독교 사회주의, 도시 산업 선교 같은 이름으로 들여와 가지고 교회와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한심합니까? 다 우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공산주의를 안 버리려고 하는 나라가 이북인데, 이북도 조금 있으면 버릴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어 살 수가 없으니 마지막에는 고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사람들을 내실 때에 자기 삶을 영유할 자유를 주셨고 또 자유로이 일하여 먹고 살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모든 것을 국가의 소유물로 삼아 좌지우지하고 통제하며 백성들에게는 일체의 개인 권리나 재산에 대한 자유를 없이 하는 것은 성경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것으로 판별된 것을 다시 끌어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뒤로 돌아가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 말씀만 따라가고 예수님만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아마샤가 북쪽 나라와 타협하지 않고 용병들을 돌려보냈기 때문에 어려운 전쟁에서 이긴 것처럼 말씀을 순종할 때에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타협할 때에는 안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상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우상이 들어오면 망합니다. 돈이 우상이 되어도 망하고 세상지식이 우상이 되어도 망합니다. 

요새 학생들의 경우에는 공부하는 것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데까지 공부하는 것은 좋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 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 세상은 공부한 사람만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 해 전에 어떤 집에 심방을 갔더니 그 집 아이가 입학 시험에서 떨어져서 아이 어머니가 큰 병이 난 사람처럼 밥도 못 먹고 다 죽게 되어 이불을 쓰고 드러누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에 떨어졌으면 떨어졌지, 왜 이렇게 죽어 갑니까”라고 말하여주었습니다. 그것이 아이를 죽이려고 드러누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지, 학교가 생명입니까? 아이가 떨어졌어도 다시 용기를 주고 힘써서 앞으로 다시 해보라고 한다든지, 사람 사는 것이 공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를 믿는 것에 있다고 해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생명이 있다고 말해주고 앞으로 말씀대로 바로 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것이니 용기를 내라고 해야지, 어머니가 드러누워 있으니 아이도 아버지도 드러눕게 생겼습니다. 학교에 한 번 떨어졌다고 온 집안이 몰살당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아들을 학교에 붙게 해달라고 고기를 가지고 바다에 나가서 풀어놓는 짓을 하다가 어머니되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기가 짝이 없습니다. 고기가 어떻게 학교에 붙게 해줍니까? 또 숨도 못 쉬고 말도 못하고 밥도 못 먹는 부처 돌덩이가 어떻게 학교에 붙게 해줄 수가 있습니까? 사람도 못하는 일을 사람이 만들어놓은 물건 따위가 어떻게
합니까? 어리석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상을 하나도 우리 안에 들이면 안 됩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상이 없어야 됩니다. 요즘은 돈이 우상이고 사람이 우상이고 직장과 세상이 우상입니다. 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지배 받으면 그것이 다 우상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무슨 일이든 되도 좋고 안 되어도 좋다는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바라는 것이 우상이 되어 그것을 하면 살고 그것을 못하면 죽는다고 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악한 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은 아마샤 왕

본문 15-16절에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나아가 가로되 저 백성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선지자가 오히려 말할 때에 왕이 이르되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선지자가 그치며 가로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마샤 왕이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나아와서 담대히 우상 섬기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마샤가 과거와 달리 선지자에게 말을 그치라고 합니다. 과거에 아마샤 왕은 선지자가 말할 때에 그대로 순종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선지자의 말씀에 용병도 손해와 난관을 무릅쓰고 돌려보내고 하나님만 믿으라는 말을 듣고 순종을 잘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순종을 안 합니다. 그때와는 180도로 달라져서 선지자에게 도리어 “네가 왕인 나의 모사냐”고 하며 강퍅하게 굴고 반항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왕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해도 이렇게 안 들으니 하나님께서 이제 왕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신 줄 내가 알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자이고 하나님의 모사인데, 하나님의 모사가 크지 왕의 모사가 큽니까? 하나님의 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권면하는데, 그 말을 겸손히 받지 않고 대항하며 도리어 반항하는 사람은 멸망하기로 작정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벌벌 떨면서 복종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복을 받기로 작정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여 보면 그 사람이 복 받을 자인지 멸망할 자인지 압니다. 

아마샤가 전에는 까딱하면 전쟁 마당에 나가서 죽느냐 사느냐 하므로 마음이 약해져 있었고 전전긍긍했었습니다. 환난 가운데 있고 죽을까 봐 벌벌 떨고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때를 보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살고 안 도와주시면 죽을 줄을 알고 하나님의
사람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산다고 할 때에 그 말씀을 잘 받아 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죽을까봐 겁낼 것이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말을 하여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돔
에서 보암직한 우상을 보고 맘에 너무 들어 그것을 통해 복을 받으려고 가지고 와서 그것에 목숨을 걸어놓은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고 섬기지 말라고 하니 그 말을 안 듣는 것입니다. 

아마샤 왕에게 승리한 데 대한 자만심, 자기 밖에 세상에 없는 줄 아는 마음, 자기가 뭘 다할 줄로 아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합니다. 죽을 지경에 빠졌을 때에는 하나님을 찾고 잘될 때에는 하나님을 무시하며 하나님의 사람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르호보암 왕이 노인의 교도와 젊은 사람의 교도가 있었을 때에 노인의 교도(바른 교훈, 성공하는 길)은 버리고 자기와 같이 자라난 젊은 사람의 교훈을 따라가다가 그만 망해서 이스라엘 나라가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기에 바른 교훈은 복을 받기로 예정된 사람만 받지, 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바른 교훈을 안 받고 제 고집대로 나가고 제 우상을 가지고 나가면 망하기로 예정된 사람인 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바른 교훈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6.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예루살렘을 침략함

북쪽 이스라엘 나라에 감정을 품은 아마샤 왕

본문 17-18절에 “유다 왕 아마샤가 상의하고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오라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백향목’이라는 것은 고귀하고 존귀한 사람을 가리키고 가시나무는 비천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이는 백향목처럼 고귀한 북쪽 나라 왕에게 왜 가시나무 같은 자가 대면하자느냐는 말입니다. 또 ‘짐승이 지나가다가 짓밟았다고 하는 것은 군대가 가서 짓밟아 치울 것’이라는 뜻으로, 남 유다를 멸시한 말입니다. 즉, 교만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본문 19-20절에 “네가 에돔 사람을 쳤다 하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편히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저희가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 적의 손에 붙이려 하심이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네가 에돔 사람을 이겼다고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구나’라고 북쪽 나라 왕을 통해서 경고하신 것인데, 아마샤 왕은 원체 교만해졌기 때문에 그 말이 귀에 안 들어오는 것입니다. 보복할 마음만 가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요아스가 ‘망하려고 하느냐. 가만히 있거라. 참아라. 다 풀어라. 네가 분이 나도 잘 참고 다 풀면 평안히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평안히 잘 사는 것이 좋지 망하면 무엇이 좋겠느냐. 싸우자고 하지 말라’고 타이른 것인데, 아마샤가 교만하므로 그 말을 안 들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람의 충고를 받고도 아마샤 왕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겸손해지지도 않고 여전히 교만한 마음으로 이제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줄 알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망하기로 예정된 사람입니다. 

언제나 무서운 것이 하나씩 있어야 합니다. 자기 윗사람이 있어야 하고 윗사람이 말할 때에 순종해야 합니다. 아마샤 왕에게는 윗사람도 없고 제가 제일입니다. 세상도 없고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어 아무리 충고해주어도 ‘소귀에 경 읽기(牛耳讀經)’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고집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제 생각대로 세상이 될 줄로 알고 여전히 저 하고 싶은 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복하려는 정신은 성경에 어긋나고 잘못된 것입니다. 삼천 명이 죽은 것을 보복하려고 싸우면 첫째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전쟁의 결과가 몇 만 명, 몇 십만 명이 죽었다고 하였으니 손해가 막심합니다. 전에 것을 꺼내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현재를 망하게 하는 일이 됩니다. 또 현재가 중요하지, 전의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서 달음박질하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것을 꺼내서 그것 때문에 서로 싸워대고 계속 물고 찢으면 둘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에 어떠한 일이 있었어도 이제는 지나간 사건으로 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의 남은 생을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야 합니다. 여생을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달란트 장사를 잘하고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 구원을 잘 이루어야 합니다. 또 전에 잘한 것도 자랑하면 안 됩니다. 전에 잘한 것을 자
랑하면 교만입니다. 또 전에 자기가 못한 것을 자꾸 불평하면 낙심이 되고 다른 사람의 잘못도 자꾸 들춰대면 싸움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잘한 것도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인 줄을 알아 다 뒤에 돌려 세워놓아야 합니다. 자기의 못한 것도 뒤에다
놓고 회개하고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도 들추지 말고 다 잊어버리고 이제부터 잘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오늘에 지키는 것이고 오늘에 바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하나님께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믿음을 잘 지킬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습니다. 자기의 구원을 잘 이루고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 자기도 사는 길입니다. 또 하늘나라에 가서도 보람이 있는 일입니다. 전에 것을 가져와서 오늘에 섞어 놓으면 온통 흐려져서 오늘의 일을 못하게 됩니다. 내일 또 한 바가지 부어놓으면 내일 일도 못하고 또 모레 한 바가지를 섞으면 모레의 믿는 일도 또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고 마귀에게 다 빼앗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것은 다 뒤에다 세워놓고 잊어버리되 오늘의 자기 신앙에 유익이 되는 것은 써먹어야 합니다. 오늘의 신앙 생활에 유익이 되는 것을 써먹되 바울과 같이 써먹어야 합니다. ‘전에는 내가 훼방자요 핍박자요 죄인 가운데 괴수였다. 그러므로 사도라 칭함을 감당치 못하고 모든 믿는 성도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하면서 전에 지은 죄를 늘 회개하며 겸손히 오늘의 믿는 일을 바로 해나가야 합니다. 오늘의 자기 신앙에 유익이 되도록 모든 것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전에 다른 사람들이 내게 아무리 잘못했어도 그것은 다 용서하되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얼마든지 용서해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용서해주지 않고 내내 싸우면 피차간에 망합니다. 국가적으로도 또 교회적으로도 서로 물고 찢지 말고 과거에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다 용
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용서해주고 오늘부터 새 출발이다 하고 새 사람을 만난 것처럼 새로 나가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늘 새 살림을 차린 것처럼, 자기 부인을 늘 새 신부같이 영감님도 새 신랑같이 맞아들이며 언제나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과거에 흐린 물로 오늘 냄새를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옛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다’고 찬송가에 있듯이 옛것은 지내 보내고 새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일생 신앙 생활에 유익이 하나도 없고 실패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익이 없는 일을 하는 것은 마귀
에게 속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귀는 옛날 것들을 한 바가지씩 갖다가 퍼부어서 물을 흐리게 하고 믿는 일을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옛날 것을 한 바가지씩 받아놓으면 마귀의 종밖에 될 것이 없습니다. 마귀의 종노릇을 하다가 자기 일생은 실패하고 자녀들에게도 실패이고 하늘나라에 가서도 책망이나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 것은 다 잊어버리고 감정을 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에 바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귀중한지 모릅니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못합니다. 왜 옛날 흐린 물을 퍼다놓고 흐리게 만들어서 오늘의 믿는 일을 못 합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마귀에게 매일 속아 돌아가는 것입니다. 결과는 다 망하는 것입니다. 살 길이 환하게 있는데 살 길을 걷지 않고 망할 길을 걸을 필요가 무엇입니까? 언제나 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로 사로잡혀 간 아마샤 왕

본문 21-24절에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로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여호아하스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또 하나님의 전 안에 오벧에돔의 지키는 모든 금은과 기명과 왕궁의 재물을 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아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고 하였습니다. 상대가 과거에 삼천 명을 죽였어도 이제부터 잘할 생각이어야 하는데, 감정을 가지고 싸우다가 쫄딱 망했습니다. 선지자의 말도 안 듣고 북쪽 나라 왕이 교만하면 망한다고 하여도 안 듣고 여전히 분풀이만 하려고 달려들다가 유다 나라가 망했습니다. 전에 에돔 나라는 이겼는데 이제 북쪽 이스라엘에게는 실패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아마샤 왕의 마음에 우상이 들어왔고 하나님의
종이 하는 바른 권면을 안 들었기 때문입니다. 분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므로 하나님께서 북쪽 나라에 붙여놓으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헐리고 백성들이 다 포로로 잡혀가고 자기도 도망 가다가 잡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삼천 명을 죽인 것을 보복하려다가 유다 나라가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아마샤 왕은 북쪽 군대가 북방 나라 사람 삼천 명을 죽이고 돌아갔을 때 자신이 용병을 데려오지 않았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 여기고 다 자기에게 책임이 있는 줄을 알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지 말았어야 합니다. 보복은 보복을 일으키기 때문에 보복하는 자는 반드시 보복을 당하고 결국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오벧에돔은 그의 가족과 함께 성전 문을 지키는 사람입니다(대상 26:4-8, 15). 오벧에돔이 예전에 하나님의 궤를 자기 집에 모셨다가 다윗 성으로 궤를 모셔온 뒤로는 성전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로 하여금 금과 은을 지키도록 만들어 놓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대가 그가 지키던 것을 다 빼앗아 가고 왕의 재산을 많이 취해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마샤 왕은 포로로 잡아 갔다가 도로 놓아주었습니다. 북쪽 나라가 무던합니다. 북쪽나라는 전에 용병이 왔다가 돌아간 다음에도 아무 소리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고 아마샤가 싸우자고 할 때에도 싸우지 말자고 하였잖습니까? 북쪽 왕이 ‘싸워야 안 될 것이니 가만히 있어라. 네 궁에 편하게 살다가 죽을 것이지, 왜 제 명에 못 죽으려고 너 같은 가시나무가 백향목을 보고 혼처하자고 하느냐 가만히 있거라’고 말해주어도 아마샤가 그 말을 안 들었습니다. 빡빡 달려들다가 그만 쫄딱 망하고 만 것입니다. 

예전에 다른 왕들은 예루살렘 성을 쌓았는데, 아마샤는 예루살렘 성을 다 헐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믿음으로 나갈 때는 성을 쌓는 사람이 되지만 감정으로 나갈 때에는 하나님의 성을 무너뜨리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감정으로 성을 무너뜨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성을 무너뜨리면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옵니다. 또 하나님의 교회의 권면을 언제든지 잘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손해가 나더라도 성경말씀대로 하면 살 길이 생깁니다. 그러나 감정으로 해치우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망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마귀에게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7. 아마샤의 만년(晩年) 배교와 최후

도망쳐 간 라기스에서 죽임을 당함

본문 25-28절에 “이스라엘 왕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을 생존하였더라 아마샤의 이외의 시종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마샤가 돌이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 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그 열조와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아마샤 왕을 포로로 잡았다가 놔주어서 돌아온 후 그가 십오 년을 더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마샤 왕이 회개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종의 말을 안 듣고 모든 것을 감정으로 해나가므로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때 아마샤 왕을 놔주신 후에도 그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교만한 마음을 그냥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신복을 시키셔서 반역을 일으키게 하사 아마샤 왕으로 죽게 하셨습니다. 

아마샤 왕은 살려고 라기스로 피난을 갔지만 사람들이 라기스로 따라와서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이시고자 하는 사람은 도망쳐도 쓸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바로 해야지, 도망친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서울에서 잘못해놓고 부산에 도망치면 살까 하지만 부산까지 따라가서 잡아 죽이시고, 한국에서 잘못하고 미국으로 도망치면 살까 해도 거기까지 따라가서 죽이십니다. 미국에 가서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 가면 살까 해도 그 사람 역시 죽이십니다. 도망칠 구멍을 아무리 잘 뚫어놓아도 쓸데가 없습니다. 아무리 도망을 잘 쳐도 안 됩니다. 

루마니아 대통령은 지하 터널을 많이 만들어놓고 대통령 궁에 있다가 위험하게 되면 지하 터널로 가서 대기해 놓은 헬리콥터를 타고 아무도 모르게 도망칠 구멍을 잘 뚫어놓았다고 합니다. 정규군 15만에 자기를 보호해주는 보안군이 70만으로, 그들에게 돈도 많이 주었다고 합니다. 자기의 신복들이 한국 군대, 60만보다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소련 국경에 갔는데 소련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소련을 믿고 공산주의 국가들이 사는데 소련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니 할 수 없이 헬기가 내려앉았고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가만히, 겸손하게 있었으면 안 죽었을 것인데, 루마니아 대통령이 보안군에게 싸우라고 명령을 내리자 빨리 대통령을 사형시키자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보안군들이 그것을 모른 채 계속 공격할까 봐 텔레비전에서 대통령이 눈 뜨고 죽은 사진을 공개한 것이 우리 한국 신문에까지 났습니다. 나는 죽은 사람을 신문에 내는 것은 보다가 처음 보았습니다. 

강하게 반격을 하면 강하게 죽습니다. 사람이 이기지, 이렇게 강하게 대적하는 사람이 이기지 않습니다. 언제나 온유해야 합니다. 강하게 반격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아마샤 왕이 라기스로 도망쳐도 그곳이 피난처가 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이 피난처입니다. 세상에 무슨 피난처가 있습니까? 자기가 믿음을 안 지키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종의 말을 안 듣고 감정으로 모든 일을 해치우는데, 무슨 피난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밖에는 피난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밖에는 피난처가 없는 줄을 알고 언제나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종의 권면을 바로듣고 언제나 바로 서서 감정으로 나가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것은 다 잊어버리고 용서해주며 오늘부터 믿음으로 매일 매일을 사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에는 실패했어도 남은 생을 바로 살 수 있습니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아무리 실패했어도 이제부터 바로 하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믿음을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의 구원을 잘 이루어 다른 사람에게도 많은 유익을 주고 하나님 앞에 가서 잘했다는 칭찬과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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