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시야 왕의 선정(善政)
역대하 26:1-10
1유다 온 백성이 웃시야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륙 세라 2왕이 그 열조와 함께 잔 후에 웃시야가 엘롯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3웃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륙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골리아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4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5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6웃시야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가드 성과 야브네 성과 아스돗 성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 가운데 성읍들을 건축하매 7하나님이 도우사 블레셋 사람과 구르바알에 거한 아라비아 사람과 마온 사람을 치게 하신지라 8암몬 사람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심히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 9웃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성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과 성굽이에 망대를 세워 견고하게 하고 10또 거친 땅에 망대를 세우고 물웅덩이를 많이 팠으니 평야와 평지에 육축을 많이 기름이며 또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를 두었으니 농사를 좋아함이더라
역대하 26:1-10
1유다 온 백성이 웃시야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륙 세라 2왕이 그 열조와 함께 잔 후에 웃시야가 엘롯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3웃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륙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골리아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4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5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6웃시야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가드 성과 야브네 성과 아스돗 성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 가운데 성읍들을 건축하매 7하나님이 도우사 블레셋 사람과 구르바알에 거한 아라비아 사람과 마온 사람을 치게 하신지라 8암몬 사람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심히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 9웃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성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과 성굽이에 망대를 세워 견고하게 하고 10또 거친 땅에 망대를 세우고 물웅덩이를 많이 팠으니 평야와 평지에 육축을 많이 기름이며 또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를 두었으니 농사를 좋아함이더라
1. 웃시야의 선정
아마샤 왕에 뒤이어 웃시야가 왕이 됨
본문 1절에 “유다 온 백성이 웃시야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륙 세라”고 하였습니다. 열왕기하 14장21절에 “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륙 세라”고 하였는데, 여기는 웃시야를 아사랴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 왕의 또 다른 이름이 아사랴인 것입니다. 아무튼 온 백성이 그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웃시야 왕이 선한 왕이고 좋은 왕이고 유력한 왕입니다. 이사야 6장에 웃시야가 죽던 해에 이사야가 성전으로 중대한 것을 해결 받기 위하여 들어간 것을 보면 웃시야 왕이 아주 유능한 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샤 왕에 뒤이어 웃시야가 왕이 됨
본문 1절에 “유다 온 백성이 웃시야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륙 세라”고 하였습니다. 열왕기하 14장21절에 “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륙 세라”고 하였는데, 여기는 웃시야를 아사랴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 왕의 또 다른 이름이 아사랴인 것입니다. 아무튼 온 백성이 그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웃시야 왕이 선한 왕이고 좋은 왕이고 유력한 왕입니다. 이사야 6장에 웃시야가 죽던 해에 이사야가 성전으로 중대한 것을 해결 받기 위하여 들어간 것을 보면 웃시야 왕이 아주 유능한 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하고 유능한 웃시야 왕도 그만 교만해져서 향단에 분향하는 한 가지 잘못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한 가지를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웃시야 왕이 남은 생 동안 문둥병을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해나가다가 한 가지라
도 실수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겠습니다. 마귀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모든 것을 바로 하여야 되겠습니다. 웃시야가 십륙 세에 왕이 되어서 오십이 년을 치리하고 68세까지 오래 살았습니다.
본문 2절에 “왕이 그 열조와 함께 잔 후에 웃시야가 엘롯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고 하였는데 웃시야가 성을 건축해서 유다 나라에 돌렸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의 말씀은 1절의 말씀과 같은 말씀의 반복인데,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로 인해 형통한 웃시야 왕
본문 4-5절에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가 이렇게 좋은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람 스가랴의 인도를 잘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훌륭한 스승을 둔 것처럼 그렇게 자기를 인도해주는 사람이 훌륭하면 실패하지 않고 좋은 왕,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앞으로 형통하게 될 수 있습니다. 스가랴라고 하는 유명한 선지자가 인도해주는 날까지는 웃시야가 하나님을 구하였으며 여호와께서 형통하게 해주셨습니다.
본문 4-5절에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가 이렇게 좋은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람 스가랴의 인도를 잘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훌륭한 스승을 둔 것처럼 그렇게 자기를 인도해주는 사람이 훌륭하면 실패하지 않고 좋은 왕,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앞으로 형통하게 될 수 있습니다. 스가랴라고 하는 유명한 선지자가 인도해주는 날까지는 웃시야가 하나님을 구하였으며 여호와께서 형통하게 해주셨습니다.
역대하 24장 2절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며”라고 하였는데, 요아스 왕도 여호야다 제사장의 인도를 받는 동안에는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웃시야 왕도 스가랴가 인도해주는 날까지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믿음을 잘 지키고 형통해나갔습니다. 이처럼 인도를 잘 받는 것이 큰 복입니다. 제일 불쌍한 사람이 인도해주는 사람이 없는 사람, 선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인도를 잘 해주고 인도를 잘 받는 것이 제일 큰 복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인도를 잘 받을 때에는 자기는 좀 부족하더라도 형통하게 되며 하나님께 큰 복을 받고 모든 일을 믿음으로 잘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인도를 따라가며 믿는 일을 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귀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잘 인도 받은 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우리가 늘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해주는 인도에 잘 순종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웃시야가 십륙 세에 왕이 되어 오십 이 년을 치리했다고 하였습니다. 웃시야가 오랫동안 치리한 왕인데, 그가 좋은 아버지 아마샤에게서 물려 받은 좋은 신앙을 따라서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2. 웃시야가 블레셋 사람과 암몬 사람을 쳐서 이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자와 이리를 이긴 웃시야 왕
본문 6-8절에 “웃시야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가드 성과 야브네 성과 아스돗 성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 가운데 성읍들을 건축하매 하나님이 도우사 블레셋 사람과 구르바알에 거한 아라비아 사람과 마온 사람을 치게 하신지라 암몬 사람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심히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가 블레셋과 싸웠는데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가는 데마다 승전하였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신앙 양심을 쓰고 좋은 인도자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께 바른 길로 걸어 나갈 때에는 원수를 정복하며 가는 데마다 승리하고 형통하게 됩니다. 웃시야 왕도 원수에게서 조공을 받았습니다. 원수가 잡아먹으러 왔지만 도리어 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에게서 먹을 것이 나왔습니다. 신앙의 승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오게 됩니다. 삼손이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한 사자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고 사자의 주검에 벌이 모아놓은 꿀을 먹은 것처럼, 믿음으로 사자를, 마귀를 이기므로 거기에서 단 것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자와 이리를 이긴 웃시야 왕
본문 6-8절에 “웃시야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가드 성과 야브네 성과 아스돗 성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 가운데 성읍들을 건축하매 하나님이 도우사 블레셋 사람과 구르바알에 거한 아라비아 사람과 마온 사람을 치게 하신지라 암몬 사람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심히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가 블레셋과 싸웠는데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가는 데마다 승전하였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신앙 양심을 쓰고 좋은 인도자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께 바른 길로 걸어 나갈 때에는 원수를 정복하며 가는 데마다 승리하고 형통하게 됩니다. 웃시야 왕도 원수에게서 조공을 받았습니다. 원수가 잡아먹으러 왔지만 도리어 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에게서 먹을 것이 나왔습니다. 신앙의 승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오게 됩니다. 삼손이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한 사자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고 사자의 주검에 벌이 모아놓은 꿀을 먹은 것처럼, 믿음으로 사자를, 마귀를 이기므로 거기에서 단 것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삼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웃시야 왕에게도 해당이 되었습니다. 블레셋이 과거에는 유다 나라를 침략하고 잡아먹으러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하고 하나님의 선지 스가랴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나가므로 그들을 다 이기게 되었습니다. 또 그 사람들이 조공을 많이 바치므로 거기에서 먹을 것이 많이 나오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심히 강해졌습니다. 원수가 나를 먹으러 왔지만 그것을 이기기만 하면 거기에서 먹을 것이 나오고 또 심히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없던 것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내보내실 때에 “너희를 내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내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나가는 곳에는 온통 다 이리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도 세상에 나가면 잡아 먹으려는 이리가 많은데, 사회에 나가도 또 믿음을 지키려고 할 때에도 이리는 생기는 법입니다. 다 이리입니다. 집안, 마음에도 이리가 있고 교회 안에도 이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바리새교인들과 헤롯 왕 등 대적하는 무리들이 이리였습니다. 그리고 제자 가운데 베드로도 이리가 되어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리가 간교합니다. 베드로가 이리가 될 줄을 누가 알겠습니까? 육신의 연약한 사정을 봐주는 이리였습니다. 베드로의 “십자가를 멀리 하옵소서.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는 말은 사실은 예수님을 넘어뜨리게 하는 마귀의 역사였습니다. 마귀가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귀가 베드로 속에 들어가 예수님을 잡아먹으려고 한 것입니다. 또 한때 예수님의 어머니에게도 마귀가 들어가서 이리가 되어 예수님이 귀신 들렸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었습니다. 또 그때에 예수님의 형제들과 자매들도 이리가 되어서 어머니와 같이 왔었습니다.
이리가 오는 목적
성도로 하여금 신앙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하게 하려는 것임
우리에게 이리가 오는 목적은 와서 물고 찢고 상처를 주며 잡아먹고 넘어뜨려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신앙의 달음박질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이리의 역사입니다. 육신으로 사정을 봐주는 이리도 있고, 와서 싸우자고 하는 이리도 있고, 이리의 종류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이리를 이기면 자기가 자라나고 실력이 늘고 이리로 말미암아 얻는 큰 유익이 많습니다. 또 이리가 있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이리가 없는 데에 가려면 보따리를 싸서 산꼭대기에 혼자 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자기 속에도 이리가 있으므로 혼자 있는 그곳에도 이리는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이 세상에 사는 날까지는 없는 것 같아도 어디에나 이리가 다 있어서 하나 피하면 다른 일이 또 있고 하나 피하면 다른 일이 또 있는 것입니다. 곰을 피하니까 사자를 만나고 사자를 피해 집에 들어가니까 뱀을 만났습니다. 피해 가면 다른 형체의 이리가 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리를 허락하시는 이유
우리의 실력을 길러 나가시기 위하여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리를 두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실력을 길러 나가기 위함입니다. 성도가 이리를 이기면서 강해지고 그 과정 중에서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영적 유익을 보고 강성하게 만들어지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게 자라나게 하시려고 이리 가운데로 믿는 사람을 나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리 때문에 자라나고 이리 때문에 얻는 양식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리를 두시는 것입니다.
원수인 블레셋 나라, 암몬 나라, 마온 나라, 아라비아 나라와 대적하면서 웃시야 왕을 길러 나가시느라고, 또 웃시야 왕에게 사방에서 조공을 바쳐서 그 나라로 넉넉하고 풍성하게 만드시느라고 이리를 두신 것입니다. 너무 평안하고 너무 잘해주면 떡판에 넘어진 사람 같아서 할 것이 없습니다. 이리가 좀 있어야 기도도 하고 힘도 좀 씁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라고 물어도 보고, 애도 씁니다. 그러나 이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리가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이 낫습니다. 그래야 이리 때문에 힘을 써서 영이 자라나고 영의 소득이 많아집니다. 그러므로 이리를 자주 만나는 것이 이따금 만나는 것보다 좋습니다. 이리를 자주 만나는 사람은 이리 때문에 매일 기도하고 매일 수입이 생기는 것입니다. 쑥쑥 자라납니다.
처녀들이 시집갈 때에도 이리가 많은 집으로 가야 자라납니다. 시누가 대개 이리입니다. 시누라도 이리가 아닌 사람이 있겠으나 그래도 보통은 이리가 되기 쉬운데 이리를 이기기만 하면 이리가 없는 것보다 썩 낫습니다. 그러므로 시누가 많은 집으로 가야 합니다. 수입이 이리 때문에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리가 많은 동네가 좋은 동네입니다. 거기에 있는 양은 정신을 바짝 차립니다.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힘을 써나가므로 쑥쑥 자라납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리가 있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자라나게 하시고 유익을 주시려고 이리 가운데 양을 내보냈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리를 이기는 방법
그런데 이리한테 지면 즉살(卽殺)입니다. 물려 찢기고 상처가 나고 목에 피가 나서 생명이 위태해집니다. 그러다 망합니다. 그러나 이기기만 하면 썩 유익합니다. 대개 이리한테 물어뜯기고 다니는 사람은 인간의 생각으로 하다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방법, 인간의 생각, 인간의 힘으로 하려다가는 백발백중으로 다 집니다. 이리가 사람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으로 혈기를 부리고 분한 마음을 가지고 결사적으로 달려들면 안 됩니다. 양의 머리가 깨지면 깨지지, 풀이나 먹던 이빨이 어떻게 일생 동안 짐승을 잡아먹던 날카로운 이빨을 이기겠습니까? 이리는 이빨이 무기입니다. 양의 이빨같이 풀이나 먹던 뭉툭한 이빨로 이리를 백 번 물어도 이리는 하나도 안 아픕니다. 그러나 이리는 한 번만 물어도 살이 찢겨 나가고 뚝 떨어져 나가서 피가 줄줄 납니다. 그것도 모르고 완력으로 대들면 안 됩니다. 절대 인간의 방법(완력)으로 하면 안 됩니다.
1) 뱀 같은 지혜인 성경말씀으로 무장하라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된다고 하였습니까?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을 가지고 나가
면 됩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이리는 지금 외부에 있는 마귀의 지혜와 마귀의 힘으로 무장해 있는데, 양이 자기의 지혜를 가지고 마귀를 이기겠습니까? 사람의 지혜보다 마귀의 지혜는 몇 만 배 더 앞섭니다. 힘도 앞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
다. 이리를 이기려면 이리처럼 자기 밖에 있는 신의 지혜를 받아야 되는데, 하나님의 지혜를 받으면 이리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마귀의 지혜와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지혜이므로, 마귀가 그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리가 어디에 있든지 자기 지
혜로 절대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이리와 더불어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는 성경말씀이므로 성경말씀대로 해야 이리를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가 와서 잡어 먹으려고 할 때에 세 번 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기셨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지혜로 마귀를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성경말씀이 아니면 마귀를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하면 이리를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이리, 나보다 백 배나 더 힘이 센 이리가 와도 나하고 일대일로 하면 지지만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나가면 그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리가 아무리 와서 나를 물어뜯고 괴롭게 하고 잡아 먹으려 하더라도 우리는 성경말씀대로만 해야 합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합니다. 성경에 무엇이라고 했는가를 생각하고 성경말씀대로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대로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성경말씀대로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까지 미워하면 마귀에게 지는 것이고 성경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리는 미워해도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성경말씀대로 바로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된다고 하였습니까?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을 가지고 나가
면 됩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이리는 지금 외부에 있는 마귀의 지혜와 마귀의 힘으로 무장해 있는데, 양이 자기의 지혜를 가지고 마귀를 이기겠습니까? 사람의 지혜보다 마귀의 지혜는 몇 만 배 더 앞섭니다. 힘도 앞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
다. 이리를 이기려면 이리처럼 자기 밖에 있는 신의 지혜를 받아야 되는데, 하나님의 지혜를 받으면 이리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마귀의 지혜와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지혜이므로, 마귀가 그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리가 어디에 있든지 자기 지
혜로 절대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이리와 더불어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는 성경말씀이므로 성경말씀대로 해야 이리를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가 와서 잡어 먹으려고 할 때에 세 번 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기셨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지혜로 마귀를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성경말씀이 아니면 마귀를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하면 이리를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이리, 나보다 백 배나 더 힘이 센 이리가 와도 나하고 일대일로 하면 지지만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나가면 그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리가 아무리 와서 나를 물어뜯고 괴롭게 하고 잡아 먹으려 하더라도 우리는 성경말씀대로만 해야 합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합니다. 성경에 무엇이라고 했는가를 생각하고 성경말씀대로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대로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성경말씀대로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까지 미워하면 마귀에게 지는 것이고 성경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리는 미워해도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성경말씀대로 바로 하여야 합니다.
2) 비둘기같이 순결하라(성령의 인도를 받으라)
그 다음에는 비둘기 같이 순결하면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다는 것은 마태복음 10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너희가 잡혀갈 때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염려하지 말아라 너희에게 말씀할 것은 주실 분은 성령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비둘기는 온유 겸손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제 고집, 제 완력을 다 내버리고
온유 겸손하여 성령의 인도대로 모든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이리는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왼뺨을 치는 자에게는 온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오른뺨도 돌려 대고 억지로 오 리를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십 리를 동행하면서 성령의 인도 가운데 하나님과 교통하며 화평한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면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마음의 화평을 빼앗기면 마귀한테 집니다.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한때 베드로가 이리가 되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하시고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성령의 인도대로 베드로를 바로 인도하셨습니다. 또 어머니가 마귀 노릇할 때에도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마귀 노릇 하는 것을 끊어버리게 하셨지만 어머니를 끝까지 공경하였습니다. 나아가 십자가 위에서도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성경대로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비둘기 같이 순결하면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다는 것은 마태복음 10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너희가 잡혀갈 때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염려하지 말아라 너희에게 말씀할 것은 주실 분은 성령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비둘기는 온유 겸손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제 고집, 제 완력을 다 내버리고
온유 겸손하여 성령의 인도대로 모든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이리는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왼뺨을 치는 자에게는 온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오른뺨도 돌려 대고 억지로 오 리를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십 리를 동행하면서 성령의 인도 가운데 하나님과 교통하며 화평한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면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마음의 화평을 빼앗기면 마귀한테 집니다.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한때 베드로가 이리가 되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하시고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성령의 인도대로 베드로를 바로 인도하셨습니다. 또 어머니가 마귀 노릇할 때에도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마귀 노릇 하는 것을 끊어버리게 하셨지만 어머니를 끝까지 공경하였습니다. 나아가 십자가 위에서도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성경대로 하신 것입니다.
마귀 노릇을 했다고 해서 죽은 사람 내버리듯이 새끼 묶어서 내버리면 안 됩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사랑해야 합니다. 마귀 역사만 미워하고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건져내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권(능력)으로 성령의 인도대로만 하고 말씀대로만 하면 그들을 다 건져낼 수 있는데 그러면 자기에게 큰 유익이 되어 영이 많이 자라납니다.
그리고 영이 많이 자라나면 이리가 물러납니다. 이리만 빠져나가면 좋은 베드로, 좋은 어머니, 좋은 형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리 노릇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다 내버리면 안 되겠습니다. 이리에게 손해를 보지 말고 잘 이기면 자기가 자라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리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웃시야 왕에게도 이리가 왔습니다. 그리고 이리가 왔을 때에 웃시야가 비둘기 같이 순결한 성령의 능력과 또 스가랴에게 배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 이겼습니다. 이기니까 이리들이 많은 조공을 바쳐서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이리로 인해서 얻는 유익
웃시야가 많은 이리를 믿음으로 이겼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심히 강성하여 천하에 다 퍼졌습니다. 이리 때문에 강해지고 이리 때문에 이름이 천하에 퍼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리를 이기기만 하면 거기에서 많은 영적 소득이 생기고 심히 강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강건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이리를 나오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웃시야 왕이 원수를 이겼습니다.
3. 웃시야가 강성하여 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
망대를 쌓은 이유
본문 9-10절에 “웃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성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과 성굽이에 망대를 세워 견고하게 하고 또 거친 땅에 망대를 세우고 물웅덩이를 많이 팠으니 평야와 평지에 육축을 많이 기름이며 또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를 두었으니 농사를 좋아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이겼다고 마음을 놓으면 안 됩니다. 또 다시 올 염려가 있으므로 망대를 사방에 쌓고 앞으로 다시 원수가 오지 않겠는가를 늘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한 번 이기면 원수가 다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리가 또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삼가 조심해서 언제 어느 시간에 원수가 올지 모르므로 항상 망대에서 살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웃시야 왕도 망대를 세워놓았습니다. 예루살렘에도 망대를 쌓고 거친 들에도 망대를 쌓았는데, 항상 망대에 올라가서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를 마귀를 살펴 공격을 받지 않도록 사전에 늘 삼가 조심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농사와 육축에 힘쓴 웃시야 왕
그 다음에 웃시야 왕이 물웅덩이를 많이 팠습니다. 지하수를 개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평야와 평지에 육축을 많이 길렀습니다. 그리고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사를 많이 했습니다. 전쟁만 잘하면 안 됩니다. 싸움만 잘한다고 해서 잘되는 것이 아니고 싸움을 잘하는 동시에 농사와 건설도 잘해야 합니다. 농사를 잘하지 못하고 싸움만 잘하면 무엇을 먹고 살겠습니까? 그러므로 농사를 잘하고 건설을 잘하고 목축도 잘해야 합니다.
요새 국회는 싸움을 잘해야 국회의원 노릇을 잘하는 줄로 아는 모양입니다. 싸움이야 깡패를 데려다가 세우면 누가 못하겠습니까? 싸움 잘한다고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잘못된 것은 밝히는 것이 좋지만 그것보다 나라를 잘 건설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는 싸움 잘하는 국회의원을 뽑지 말고 제대로 일할 사람, 일할 만한 실력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겠습니다. 싸움이나 하고 공격이나 하는 사람을 뽑아 무엇을 하겠는가 말입니다.
아무튼 농사를 잘하고 육축을 잘하고 지하수를 개발해야 나라가 견고해집니다. 양식이 많고 경제가 부흥해야 나라가 제대로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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