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시야 왕이 범죄하여 문둥병에 걸림
역대하 26:11-23
11웃시야에게 또 싸우는 군사가 있으니 서기관 여이엘과 영장 마아세야의 조사한 수효대로 왕의 장관 하나냐의 수하에 속하여 떼를 지어 나가서 싸우는 자라 12족장의 총수가 이천육백 명이니 모두 큰 용사요 13그 수하의 군대가 삼십만 칠천오백 명이라 건장하고 싸움에 능하여 왕을 도와 대적을 치는 자며 14웃시야가 그 온 군대를 위하여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물매 돌을 예비하고 15또 예루살렘에서 공교한 공장으로 기계를 창작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살과 큰 돌을 발하게 하였으니 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 16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17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 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18웃시야 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19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20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21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22이외의 웃시야의 시종 행적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더라 23웃시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저는 문둥이라 하여 열왕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 열조의 곁에 장사하니라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역대하 26:11-23
11웃시야에게 또 싸우는 군사가 있으니 서기관 여이엘과 영장 마아세야의 조사한 수효대로 왕의 장관 하나냐의 수하에 속하여 떼를 지어 나가서 싸우는 자라 12족장의 총수가 이천육백 명이니 모두 큰 용사요 13그 수하의 군대가 삼십만 칠천오백 명이라 건장하고 싸움에 능하여 왕을 도와 대적을 치는 자며 14웃시야가 그 온 군대를 위하여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물매 돌을 예비하고 15또 예루살렘에서 공교한 공장으로 기계를 창작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살과 큰 돌을 발하게 하였으니 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 16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17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 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18웃시야 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19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20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21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22이외의 웃시야의 시종 행적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더라 23웃시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저는 문둥이라 하여 열왕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 열조의 곁에 장사하니라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 웃시야가 강성하여 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
웃시야가 많은 군대를 양성하고 많은 무기를 준비함
본문 11-13절에 “웃시야에게 또 싸우는 군사가 있으니 서기관 여이엘과 영장 마아세야의 조사한 수효대로 왕의 장관 하나냐의 수하에 속하여 떼를 지어 나가서 싸우는 자라 족장의 총수가 이천육백명이니 모두 큰 용사요 그 수하의 군대가 삼십만 칠천오백 명이라 건장하고 싸움에 능하여 왕을 도와 대적을 치는 자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강한 정병이 삼십만 칠천 오백 명이나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나가면 강한 그리스도의 정병이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이 생깁니다.
본문 14절에 “웃시야가 그 온 군대를 위하여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물매 돌을 예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군사가 많이 있는데, 무기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무기 없는 군사를 데리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방패, 창, 투구, 갑옷, 활, 물매 돌 등의 무기를 많이 예비해서 그 군사가 많이 강해졌습니다. 무기가 있고 강한 군사가 있습니다. 무기를 많이 준비해서 악한 날에 마귀와 더불어 싸우기 위해 충분한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성도들도 영적 무장을 잘해야 함
에베소서 6장 10-18절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장 10-18절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성도는 많아졌습니다. 삼십만 칠천 오백 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무엇이 필요합니까? 무기가 필요합니다. 무장을 해야 합니다. 무장을 하지 않은 성도는 수가 많아도 맥을 못 춥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무엇을 팔아서 검을 사라고 하셨습니까? 겉옷을 팔아서 검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검으로 무장해야지, 무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검을 사라고 하셔서 무장을 시키신 것처럼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숫자만 늘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 무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겉옷을 팔아야 합니다. 겉옷을 팔아야 검을 살 수 있습니다. 겉옷을 팔지 못한 사람은 못 삽니다. 돈이 있어야 사지 않겠습니까? 하나를 사려고 해도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겉옷을 팔지 못하면 살 밑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겉옷을 팔아야 합니다. 그러면 겉옷이 무엇입니까? 영적 무장하는 것 이외에는 다 겉옷입니다. 또 검은 무엇입니까? 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영적 무장입니다. 다른 것을 다 희생하더라도 영적 무장을 하라는 것입니다. 희생이 없이는 무장을 못합니다. 겉옷도 입고 검도 사려고 하면 무엇을 가지고 사겠습니까? 영이 희생을 해야 합니다. 내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힘이 있어서 영적 무장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무장을 잘했습니까? 여기에 영적 무장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전신갑주, 허리띠, 흉배,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성령의 검, 투구, 이런 것들이 전부 무장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아야 합니다. 생명 내놓는 것이 겉옷 파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내놓고, 생명까지 내놓고, 말씀을 위해서 결사각오를 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검을 사는 것입니다. 생명보다 말씀이 더 귀하여 말씀을 가지려고, 매일 생명을 내놓고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겉옷을 팔아서 검을 사는 것입니다. 생명 내놓고 말씀을 가졌습니까?
진짜 검을 샀는가 안 샀는가를 보려면 환난에 들어가 봐야 합니다. 그러면 압니다. 죽인다고 할 때에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네가 말씀을 양보하면 살고 말씀을 양보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할 때에도 목을 내놓고 ‘나는 말씀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냥 죽어도 좋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검을 산 사람입니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검을 샀습니까? 그들은 검을 샀습니다.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풀무 불에 집어넣는다고 할 때에도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풀무 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우상에게 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기쁜 마음으로 내어놓고 풀무에 들어가려는 것은 겉옷을 팔아서 검을 산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 무장을 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다들 빈털터리입니다. 이제야 검 살려고 조금씩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생명을 내놓고 사야겠는데, 생명이 다 우상이 되었습니다. 목숨이 우상이 되고, 생명이 우상이 되고, 돈이 우상이 되어 이것을 내놓지 못합니다. 그것 하나 못 내놓습니다. 아이 하나 내버려두지 못해서 교회에 못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검을 팔아서 겉옷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거꾸로입니다. 말씀이 뭐라고 하든 편하게 살아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삼십만 칠천 오백 명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총 소리 한번만 ‘빵’해도 다 도망갈 텐데 말입니다. 그런 식이면 몇 백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예 내놓고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웃시야 왕이 군대를 많이 모집한 다음에 무기 준비를 잘한 것과 같이 우리들도 교인이 생긴 다음에는 영적으로 무장하는 교인들이 생겨나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누구부터 해야 되겠습니까? 교역자부터 해야 합니다. 죽일 때는 교역자부터 죽일 것입니다. 그러므
로 교역자부터 무장해야 합니다. 결사각오하고 나가야 합니다. 교역자가 무장을 해야만 교인들이 무장을 할 수 있습니다. 목사부터 무장하고 그 다음엔 조사, 전도 부인들이 무장해야 합니다. 칼 하나 없어서 다니다가 맞아 죽을 사람들은 쓸 데가 없습니다. 아예 무장하지 못 한 사람들은 제외시켜야 합니다. 무장한 사람만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 누가 무장해야 되겠습니까? 장로입니다. 장로부터 먼저 무장해야 합니다. 에스겔 9장에 다음에 죽일 때 누구부터 죽인다고 했습니까? 장로부터 죽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장로될 사람은 생명 내놓을 사람으로 세워야 합니다. 죽을 때 즐거운 마음으로 먼저 나갈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또 누가 무장해야 합니까? 집사입니다. 그 다음에는 권찰입니다. 다 무장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주일학교 반장들, 교인들, 다 무장해야 합니다. 이제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마귀가 꼼짝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견고해지는데 마귀가 어디를 들어오겠습니까? 마귀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렇게 나라가 견고하게 되어 나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교회, 그런 교단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하고자 하시는 일을 다 해나가시는 것입니다. 원수의 도성을 다 정복할 수 있고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 나가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실 수 있습니다. 웃시야 왕이 이런 좋은 일을 했습니다. 다음으로 기이한 도우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준비가 없으면 이단의 공격에 넘어가게 됨
본문 15절에 “또 예루살렘에서 공교한 공장으로 기계를 창작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살과 큰 돌을 발하게 하였으니 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공장은 기술자입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기계를 창작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살과 큰 돌을 발하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망대와 사방에다 기계를 많이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원수가 들어오면 기계를 통해 살을 쏘고 돌을 가져다 던지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았습니다. 언제든지 원수가 일어났다고 하면 쏘는 것입니다. 사방의 기계를 다 고쳐놓은 것입니다. 만반의 준비가 다 된 것입니다. 원수가 하나라도 나타나면 즉시 쏘는 것입니다. 나타났다 하면 즉살입니다. 이런 교회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단의 하나라도 나타났다 가는 다 넘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전체가 다 화살과 기계를 가지고 쏘니까 교인들이 그만큼 무장을 하면 이단들이 명함도 못 내밀고 대문간에 왔다가 혼나서 도망가는 것입니다.
예전에 전도하러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니까 성경 공부하러 왔다고 합니다. 성경 공부하러 왔다고 하는 것을 보니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당신네들 여호와의 증인 아니냐고 물으니까 여호와의 증인이 맞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이 “여호와의 증인, 이 악독한 이단이여 가라!”고 소리치니까 그 사람들이 바로 달아 났다고 합니다. 아예 대문간에 명함도 못 내미는 것입니다. 악독한 이단이라고 큰 소리를 치니까 어떻게 들어오겠습니까? 도망가야지 별 수있습니까? 여호와의 증인은 집으로 들이지도 말고 보내어 치우라고 했습니다. 오면 없애치우는 것입니다. 망대에다 기계를 준비한 것이 이것입니다. 모든 이단과 잘못된 것들을 잘 구별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단들에 대하여 잘 준비해놓아야 합니다. 무엇이 잘못되고 틀린지 가르쳐 놓으니까 즉시 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달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말씀이 무기니까 달아나는 것입니다.
삼선 교회 강 권찰이라고 하는 젊은 과부가 있었습니다. 새벽 기도에 오는데 어떤 남자가 따라오더라는 것입니다. 빨리 걸었더니 빨리 따라 왔다고 합니다. 더 빨리 걸었더니 더 빨리 따라와서 거의 다 잡히도록 되었습니다. 이제 큰 소리를 쳐야겠다고 결심하고 ‘하나님께로 난 자는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는데 누가 오느냐!’라고 소리치니까 그 남자가 도망을 갔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지 않아서 잡혔으면 끌려갔을 것입니다. 끌려가서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당할 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즉시 대적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오는 것은 이런 말씀으로 대적하고, 저기에서 오는 것은 저런 말씀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무기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모두 다 준비해서 다녀야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오면, ‘악독한 이단’이라고 하며 대적해서 해치워야 합니다. 즉시 대적하기 위해서 기계를 사방에 배치해놓았다고 했습니다. 돌 던질 때는 돌을 던져야 합니다. 그러면 어림도 못합니다.
와도 못 걸어갑니다. 잘 무장을 시켜놓고 기계를 잘 배치해놓은 교회는 교회를 이단에게 안 빼앗깁니다. 그러나 방비가 없는 교회는 이단에게 많이 빼앗깁니다.
교인들에게 성경을 안 가르치고 영적 무장을 안 시켜놓으면 이단에게 많이 넘어가게 됩니다. 박태선 파에게 교인의 절반이 간 교회, 삼분의 이가 간 교회, 또 목사까지 한꺼번에 다 간 교회가 있습니다. 목사까지 간 그 교회는 그때 작살이 났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계통에서는 거의 안 갔습니다. 성경말씀을 가르쳐서 무장을 잘 시켜놓았으니까 그렇게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조사일 때 한 번은 어느 장로가 와서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지금 한강에 불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왔다 갔다 하니까 불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불을 보았는지 물어보니까 자신은 못 봤지만 사진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진을 가지고 오시게 했습니다. 사진을 보니까 새까만 사진에 흰 것이 왔다갔다 합니다. 그 장로님이 성령의 불이 왔다 갔다 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장로님도 못 봤는데 사진기의 렌즈보다 장로님의 눈이 못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카메라 렌즈가 어떻게 성령을 보겠습니까? 성령은 영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영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진기 렌즈로 어떻게 영의 문이 열리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것은 가짜니까 아예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것을 우리 교인들에게 가르쳐놓으니까 그후에 다른 데에서 누가 사진을 들고오면, 교인들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무슨 영의 문이 열리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장을 시켜놓으면 즉시 대적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비디오를 가지고 예배 인도하는 교회도 있다고 합니다. 비디오를 틀어놓고 예배를 인도한다고 합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비디오입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죽은 사람의 비디오를 틀어놓고 예배 시간에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 잘못되었습니까? 비디오는 기계입니다. 기계에 성령이 감동하십니까? 기계에 성령이 감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에게 성령이 감동하는 것이지 기계에 감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데 사람인 줄 알게 하는 것, 죽은 사람이 나와서 말하고 있는 것은 우상화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의 비디오를 틀어놓고 예배드리는 것은 우상화된 것입니다. 또 그것에 성령이 감동하시지 않습니다.
영에서 영으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나와서 전달하면 그 사람을 성령이 감동시키셔서 전달하게 하고 받는 사람도 성령의 감동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계에서 성령의 감동이 있겠습니까? 또 죽은 사람이 천당에 가 있는데 그 사람이 나와서 입을 열며 말하는 것은 분명히 우상화된 것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나중에 그런 비디오를 틀어놓고 예배드리는 것은 우상화, 우상 종교인 줄 알고 절대 가담하면 안 됩니다. 잘못된 것인 줄 알라는 것입니다. 살았을 때 한 마디만 하고 갔으면 안 할 것인데, 그 한 마디를 못하고 가서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비디오를 틀어놓고 하는 것입니다. 생전에 한 마디 바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은 사람의 비디오를 틀어놓고 예배하는 것은 우상 섬기는 것이니까 하지 말라고 한 마디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것을 못 하고 갔습니다.
웃시야가 진리의 말씀대로 준비를 잘해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기묘한 도우심으로 역사하심
아무튼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으니까 하나님께서 기묘한 도우심으로 웃시야 왕을 강하게 만드셨습니다. 웃시야 왕이 강성해졌습니다. 믿음으로 나가고 신앙 양심을 정직하게 쓰며 모든 것을 준비해 나간 웃시야 왕입니다. 그가 진리의 말씀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스가랴 선지에게 바른 진리를 배워서 바른 진리대로 하고, 모든 것에 양식을 풍족하게 만들었습니다. 원수를 잘 막고, 군대들에게 무장을 시켰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다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기쁘셔서 웃시야 왕으로 아주 강성하게 해주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교회, 이런 교단을 하나님께서 강성하게 해주십니다. 그런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겠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2. 웃시야가 교만하게 행하다가 문둥병이 들림
웃시야가 성전에 들어가 직접 향단에 분향하려 함
본문 16-18절에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 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 왕이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이 들어가서 “웃시야여 이것은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이다”라고 했습니다. 성소에서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웃시야 왕이 실수를 했습니다.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라고 했습니다.
웃시야가 성전에 들어가 직접 향단에 분향하려 함
본문 16-18절에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 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 왕이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이 들어가서 “웃시야여 이것은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이다”라고 했습니다. 성소에서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웃시야 왕이 실수를 했습니다.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라고 했습니다.
웃시야 왕의 잘못
1) 교만함
교만이 멸망의 선봉(先鋒)입니다. 강하여지고, 여러 열방이 와서 조공을 바치니까, 자기 위에는 다른 강한 것이 없다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자기 명령 한 마디에 일이 다 되니까 교만해진 것입니다. 웃시야가 자기가 성전에 들어가 분향을 하려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전에 들어가서 분향하려고 한 자체가 왜 잘못되었습니까? 구약성경에 하나님께 들어가서 제사하는 것은 레위 족속 아론 자손의 제사장들의 고유 직무였습니다. 그 사람들만이 분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웃시야 왕은 성경말씀대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는 정신이 없어졌습니다. 교만하게 되면 이렇게 됩니다.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을 성경대로 바로 섬기려는 정신이 없어집니다. 교만하면 자기가 하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해야겠다는 것이 벌써 교만입니다. 웃시야가 제가 분향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왜 망했다고 했습니까? ‘나’소리 세 번 하다가 망했다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큰 바벨론을 내가 건설했다, 내 것이다, 내 영광을 위해서 나타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나가다가 망했습니다.
2) 하나님을 성경대로 바로 섬기려는 정신이 없음
아무튼 교만해진 다음에는 성경대로 바로 섬기려는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바로 섬기려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만하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자신이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할 수 없는 자인 줄을 먼저 알아야겠는데, 자기가 다 할 수 있는 자인 줄 알고 날뛰는 것은 교만하다가 망할 징조입니다.
3)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제도를 무시함
그 다음에는 웃시야가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제도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제도는 무엇입니까? 아론 자손의 제사장만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할 수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제도입니다. 그런데 웃시야가 그것을 무시했습니다. 제사장을 보니까 시원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왕이 볼 때에 제사장들이 초췌하지 않습니까? 제사장들이 잘 먹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왕위에 앉아 보면 제사장들이 장관 같은 사람보다 못합니다. 차관만도 못하고 과장만도 못합니다. 초췌한 것들을 시켜서 할 바에 내가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을 한 것입니다. 자기가 제사장 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더 낫지, 못하겠습니까? 왕이 제사장보다 말 한마디라도 제대로 할 것이고, 하나님께 기도해도 제사장보다는 잘할 것
같습니다. 제사장은 아무 권세가 없으니까 검소하게 모든 것을 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하며 조용히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렇게 했겠습니까? ‘하나님이시여! 이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굉장하게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사장을 시키면 하는 것 같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원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하는 것보다 자기가 하는 것이 낫겠다며 집어치우고 자기가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사장들을 시키면 속상해서 못해 먹겠으니 자신이 나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교만입니다. 제사장보다는 물론 왕이 낫겠지만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제도가 있는데, 아무리 자신이 나아도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제도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 제도에 순종 안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교만이고 하나님께 벌 받을 죄입니다. 언제나 제도를 순종해야 합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보다 다 나은 것이 아닙니다.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이 나은 경우도 많습니다. 군대도 그렇지 않습니까? 군대도 부대장이 아랫사람보다 다 나은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사관학교를 나왔고 제도도 잘 배웠겠지만 아랫사람 중에 나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도를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제도가 아무리 자신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해도 무시하면 안 됩니다. 말하는 것이 시원치 않아도, 하나님께서 아론 자손을 세워서 분향을 하게 해놓으셨는데 왜 하나님의 제도를 무시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제도에 순종해야 함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제도를 무시하는 것은 웃시야 왕이 문둥병에 걸린, 그 죄 가운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도 목사를 세우고 장로를 세우지 않으셨습니까? 그 제도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제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교단에도 노회가 있고 총회가 있고 총회 임원들이 있습니다. 다 제도가 있지 않습니까? 제도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제도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도를 내놓으시고 그 제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제도에 순종하지 않으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뒤집어 지는 것입니다. 일이 다 파괴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도를 세우시고, 선지자를 세우시고, 교사를 세우시고, 예루살렘 공회를 만드시고, 공회의 교리를 순종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제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 지키는 것입니다. 자신이 낫다고 해서 제도에 순종하라고 할 때에 자기가 나서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도 순종을 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하고 싶어도 윗사람이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 이상은 없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만 끝까지 관철하려고 하며 내 고집만 내세우고 나가는 것은 웃시야 왕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제도에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그렇고, 교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도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웃시야 왕은 교만해서 제도를 무시하다가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교만이 원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제도를 무시하는 것이 교만 아닙니까? 그 다음에 웃시야 왕에게도 윗사람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웃시야가 윗사람도 무시했습니다. 윗사람의 인도를 받지 않았습니다. 선배의 인도를 받지 않았습니다. 웃시야 왕의 윗사람이 누구입니까? 지도자입니다. 역대하 26장 5절에 보면 나옵니다. 누구입니까? 스가랴입니다. 스가랴가 자신의 선생입니다. 스가랴에게 성경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선생을 무시하고, 선배를 무시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스가랴가 이때까지 살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이때는 죽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스가랴가 죽었다고 해도 스가랴 다음으로 가는 선생이 또 있었을 것 아닙니까? 이전에 유명한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누가 또 선지자가 되었습니까?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입니다.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또 선지자가 되어 요아스 왕을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그때 요아스 왕이 어떻게 했습니까? 여호야다는 선생으로 모시고 잘 순종했는데 요아스는 선지자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여호야다나 요아스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여호야다는 순종을 했지만 그 아들은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을 대적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제단 사이에서 죽였습니다. 그러다 그가 망했습니다. 지금 웃시야 왕이 잘못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인 윗사람, 선배, 선생을 무시하다가 망한 것입니다.
웃시야 왕이 제단 앞에 가서 분향하겠다고 하며 왜 나선 것입니까? 왜 자기가 들어갔습니까? 제사장들이 하는 것이 눈에 안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면 굉장히 잘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성경대로 하나님을 바로 섬길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잘하기 하면 되는 줄로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 맞출 생각을 안 하고, 잘하면 되는 줄 아는 것입니다. 제사를 굉장하게 드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성경대로 바로 섬길 생각을 하지 않고 교회가 부흥되면 되고, 일이 잘되면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 이런 종류입니다.
아무튼 웃시야 왕이 여러 가지로 잘못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제도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워놓으신 제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세워나가시고, 구원 운동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런데 그 제도를 무시한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둥병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무엇을 무시했습니까? 윗사람, 인도자, 선생,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했습니다. 자신 이상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였습니다. 자기가 제일입니다. 그렇게 나가다가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그만 망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3절에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상과 국가 제도, 교회의 제도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제도는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가 노를 발할 때에 그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성경을 가지고 권면할 때에, 노를 발하면 영적으로 문둥병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잡으려고 할 때에 노를 발하는 사람, 교만한 사람은 문둥병이 들어서 썩어져 들어가는 것처럼, 심령 상태가 썩어져 들어가서 다시 고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하여간 웃시야가 이렇게 교만하게 나갔습니다. 윗사람도 무시하고 선배도 무시하고 선지자도 다 무시하고 성경대로 바로 하겠다는 정신도 없습니다. 제도도 다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신 제도를 다 무시하고 나간 것입니다. 또 노를 발했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자신의 뜻을 관철하겠다는 것입니다. 외고집입니다. 고집불통입니다. 이렇게 노를 발하고 완력으로 일을 끝까지 하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내려치셔서 문둥병이 들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치시면 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안 나가고 완력으로 제사하려고 했지만, 제사를 무슨 완력으로할 수 있습니까? 못하게 되면 그만 둬야 합니다. 제사장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노를 발하면서 혈기를 부리며 끝까지 완력으로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완력으로, 억지로, 혈기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다가 안 되면 그만 두는 것입니다. 그것을 완력으로, 고집을 부리며 제가 끝까지 하겠다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문둥병에 들만 합니다. 하다가 그만 둘 때가 되면 잘 그만 두는 것이 좋습니다.
대통령도 그만 둘 때가 되어 잘 그만 두면 죽지 않습니다. 루마니아 대통령이 잘 그만 두었으면 안 죽었을 텐데 끝까지 하겠다며 남을 죽이면서 하겠다고 하다가 자신이 죽고 만 것 아닙니까? 만사가 다 완력으로 할 바가 아닙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도 하다가 못하게 되면 그만 두고, 다른 사람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완력으로 하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머리가 깨져나가도 하겠다는 사람은 결과가 비참합니다. 하다가 못하면 또 다른 데 가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 동네에서 핍박하면 다른 동네로 가라고 했습니다. 갈 때가 많은데, 그 동네에서 싸우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 저 동네에서 핍박하면 어디로 가라고 했습니까? 다른 동네로 가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동네를 다 다니기 전에 인자(仁者)가 온다고 했습니다. 갈 길이 막히기 전에 하나님의 권고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웃시야 왕도 완력으로 혈기를 부리면서 끝까지 제사를 드리려고, 분향하는 것을 그만하라고 해도 끝까지 혈기를 내면서 하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것입니다. 즉시로 징계하셔서 문둥병이 들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전에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어서 나갔습니다.
웃시야가 문둥병이 들어 죽는 날까지 별궁(別宮)에 홀로 거하게 됨
본문 21절에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문둥이는 별궁에 거하게 됩니다. 동네 가운데 살지 못합니다. 다른 곳에 나가서 따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가 끝까지 완력으로 자기 고집으로 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못하게 만들어놓으셨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문둥병이 들어 쫓겨나고, 별궁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 요담이 섭정으로 정치를 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 22-23절에 “이외의 웃시야의 시종 행적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더라 웃시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저는 문둥이라 하여 열왕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 열조의 곁에 장사하니라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웃시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저는 문둥이라 하여 열왕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 열조의 곁에 장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웃시야가 일생 동안 문둥병이 들어서 별궁에 거하다가 죽었습니다. 몇 년 동안 앓다가 죽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해 동안 문둥병 환자로 있다가 죽지 않았겠는가’라고 생각됩니다.
웃시야가 문둥병을 몇 년 앓았을 것 같습니까? 그가 52년 동안 치리했는데 그 중 몇 년 동안 문둥병을 앓았겠습니까? 한 12년 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40년은 제대로 하다가 12년은 문둥병 때문에 별궁에서 처참하게 지냈을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앓다가 죽었고 죽은 다음에도 문둥병 때문에 열조의 묘실에 못 들어갔습니다. 그 옆에 장사되었습니다.
교만이 무섭고 큰 죄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 고린도 교인들이 교만함 때문에 망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8절에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을 제쳐 두고 자기들이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 제쳐 놓고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까?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순종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혼자 왕 노릇하지 말고 다 같이 왕 노릇하라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누가 왕 노릇을 못하겠습니까? 다 함께 일등을 해야 합니다. 다 함께 영권이 있어서 영적 왕 노릇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는 왕이 되어 영권으로 해야 합니다. 다 내버리고 자기 혼자 와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 없이 왕 노릇한것 입니다. 성경은 우리 없이 왕 노릇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모든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웃시야 왕이 잘한 것은 배워둬야 합니다. 그가 상당히 좋은 왕이었습니다. 유능한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이만한 왕 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사야 6장을 보면 웃시야 왕이 죽은 다음에 이사야가 큰 걱정을 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이제 어떻게 해야 좋겠는지를 물어본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웃시야 왕이 있을 때는 나라가 아주 평안하고 잘되었는데, 그가 죽은 다음에는 나라가 큰일이 났습니다.
아까 웃시야에게 선생이 없었다고 했지 않습니까? 윗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았었습니까? 그러나 스가랴는 죽었어도 이사야가 있지 않았습니까? 이사야 6장을 보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그때에 선지자가 여러 사람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웃시야가 그들을 다 무시하고 나간 것입니다. 제 마음대로만 하는 것입니다. 인도를 안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 그가 망했습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은 교만하지 않도록 힘을 써야 함
우리가 아무리 유능하고 잘하는 것이 많아도, 가다가 교만하면 망합니다. 사실은 유능하니까 교만합니다. 실력이 없는 사람은 교만할 것이 없습니다. 실력을 배경으로 교만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유능한 사람이 교만합니다. 아예 실력이 없는 사람은 교만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잘하는 것이 있어야 교만한 것입니다. 잘하니까 하나님께 교만합니다. 그러므로 잘하면 벌써 교만이 따라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전에 평양에서 성경학교에 다닐 때에 그 학교로 미끈하게 생기고 번뜻하게 생긴 여자들이 많이 왔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인가 알아봤더니 대개가 이혼하고 쫓겨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쫓겨나온 것입니까? 뻔한 것입니다. 자기가 좀 괜찮고 미끈하고 잘났고 유명하니까 남편을 깔본 것입니다. 깔보니까 남편에게 쫓겨나고 할 것이 없으니까 성경학교에 뛰어온 것입니다. 아예 못난 사람은 남편에게 마땅히 잘할 것 밖에 없습니다. 남편 하나 얻은 것 만 해도 감개가 무량한 것입니다. 남편 하나면 족하고 남편을 잘 받들어 나가서 남편이 그 사람 없으면 못 살겠다고 안 내어 놓습니다. 가겠다고 해도 안 내어 놓습니다. 그러나 미끈한 여자들은 남편의 의견에 안 된다고 하면서 사니, 이렇게 가다가는 집안이 다 망하겠다고 생각하고 남편들이 다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들이 쫓겨나온 것입니다. 하여간 실력이 있는 것만큼 교만한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실력 없는 것이 좋은 면도 있습니다. 약할 때 강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약한 자가 강하고 강한 자가 교만하다가 망합니다. 잘하는 사람은 교만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실력이 있는 사람은 배나 더 힘을 써야 합니다. 좀 잘하는 사람은 배나 힘을 써야 교만하
지 않게 됩니다. 바울은 은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교만할까 봐 어떻게 하셨습니까? 가시를 주셨습니다. 가시가 없으면 바울을 버립니다. 망합니다. 바울도 실력이 있으면 교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별 것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아예 가시를 주셔서 낮추어놓으신 것입니다. 머리를 들지 못하게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이 항상와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가게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아예 교만한 사람은 가시가 와야 합니다. 그래서 교만하지 않게 되어야 살지 교만하면 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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