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7일 금요일

에스더 3:1-15 굴하지 아니한 모르드개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굴하지 아니한 모르드개
에스더 3:1-15

1그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 2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3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복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4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더라 5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6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 고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7아하수에로 왕 십이 년 정월 곧 니산 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십이 월 곧 아달 월을 얻은지라 8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도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보다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9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저희를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부쳐 왕의 부고에 드리리이다 10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11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는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12정월 십삼 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어 하만의 명을 따라 왕의 대신과 각 도 방백과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곧 각 도의 문자와 각 민족의 방언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치니라 13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부쳐 왕의 각 도에 보내니 십이 월 곧 아달 월 십삼 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노소나 어린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14이 명령을 각 도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날을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 15역졸이 왕의 명을 받들어 급히 나가매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

1. 모르드개의 굴하지 않는 신앙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음

본문 1-2절에 “그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일은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그곳에 거하는 동안 왕도 몇 번 바뀌고, 나라도 메데 바사로 바뀌는 동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모르드개가 포로로 잡혀간 때는 아하수에로라는 사람이 왕이 되었던 때입니다. 이 왕은 주전 485∼465년까지 즉위한 왕이고, 인도에서부터 구스까지 127도를 치리하여 자신의 나라를 제일 크게 만든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은 그전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에 나라의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큰 잔치를 베풀어 왕후 와스디를 잔치 석상에 청하였는데, 와스디가 왕의 명을 거절하고 오지 않아서 왕의 심중이 불붙는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대신들이 왕후가 왕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부인들이 남편들의 말을 듣지 않게 될 것이므로 굉장히 큰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왕후 와스디를 폐하게 되었고, 이후 다른 사람을 왕후로 세우게 되었습다. 그리하여 전국에 있는 아름다운 여자들을 뽑아다가 몸을 정결케 하는 물품들을 주며 단장하게 했습니다. 그중에 모르드개의 삼촌의 딸, 즉 모르드개의 사촌 동생인 에스더가 여러 처녀들 가운데 왕후로 당선되었습니다. 에스더는 본래 유다 족속입니다. 모르드개 삼촌의 딸이니까 유다 족속이며, 유다 자손으로서 왕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어렸을 때부터 자기 딸과 같이 길렀다고 했습니다. 또 모르드개가 왕궁 문에 있었다고 하였는데, 아마 문지기와 같은 일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을 사람들의 위에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총리의 자리에 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하만에게 전부 굴복하라는 명령이 내려와 대궐에 있는 신복들이 다 그에게 절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만은 왕 다음으로 높은 지위에 있
었고 또 왕이 그에게 꿇어 절을 하라고 하였으니, 모든 사람들이 하만 앞에 꿇어 절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하만도 자기가 왕 다음 가는 지위에 있으니 모든 신복들과 관리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지기 가운데 한 사람인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절도 하지 않고 꿇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만이 심히 노했습니다. 자신은 왕의 명령대로 왕의 나라를 통치하고 있으며 모든 대신들은 자기에게 꿇어 절하고 있는데, 일개 문지기가 꿇지도 않고 절도 하지 않으니 얼마나 원통했겠습니까? 상당히 원통히 여겼을 것입니다.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이유 -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함

본문 3-4절에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복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모르드개가 자신은 유다인이기 때문에 하만에게 절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고 꿇지 않는 것은 자신이 유다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8절에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 사람을 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7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의 대적이기 때문에 천하에서 도말하라는 것입니다. 또 창세기 36장 12절에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족속입니다.
그러면 모르드개는 왜 절을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고 절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말렉을 제하라고 하셨는데, 하만은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만에게 절하는 것은 아말렉에게 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 사람은 이스라엘의 원수이므로 아말렉에게 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믿음을 지키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느라고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총리급의 사람은 높은 지위이고 왕 다음으로 높은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절을 하지 않으면 가만 두겠습니까? 왕의 명령을 어긴 사람을 가만 둘 리가 없습니다. 왕이 처벌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죽이면 죽자. 내가 믿음을 지키다가 죽음을 당한다면 죽는 것이 마땅하다. 믿음과 신앙을 양보하는 것보다 신앙의 정조를 지키다가 죽는 것이 낫다. 신앙의 정조를 양보하고 사는 것보다 신앙의 정조
를 지키다가 죽는 것이 낫다’라고 결심을 하고 절하지 않은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절을 하지 않았을 때에는 죽을 각오를 한 것입니다. 

생명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모르드개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육신의 생명보다 귀해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양보하게 되면 영적 생명이 죽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시라도 양보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5절에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번 양보하면 생명이 끊어 집니다. 마귀는 언제나 한 번만 절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을 다 준다고 합니다. 한 번만 절하라는 것입니다. 옳은 것을 양보하라는 것입니다.
신앙 양심을 양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그것이 아닙니다. 정조를 지키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입니다. 변절자가 많은 세상이지만 절대로 변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조를 지키다 죽는 것이 변절하는 것보다 낫다는 결심을 가지고 굴하지 않았습니다. 굴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거나 죽을 수 있습니다. 사형을 당하거나 큰 환난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죽이면 죽자.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살리시면 못 죽일 것이다. 생명이 하나님께 있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있으니까 하나님 말씀을 지키다 죽는 것이 양보하고 사는 것보다 낫다’라는 결심을 가지고 하만에게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신앙이 참된 신앙입니다. 자기 육신의 생명을 위해서 양보하고 나가는 것은 벌써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양보하는 것은 벌써 죽은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축복이 떠납니다. 생명은 말씀을 지키는데 있습니다. 떠나는데 무슨 생명이 있습니까? 벌써 죽은 생명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떠나 사는 것보다 말씀을 지키다가 죽자는 결심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생명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일시라도 복종하지 않고 생명을 내놓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렇게 모르드개가 생명을 내어놓게 되면 문지기 일도 할 수 없게 될지 모릅니다. 직장에서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만은 총리인데, 문지기가 자신에게 절을 하지 않으면 가만히 두겠습니까? 말 한마디면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직장에 떨어질 각오를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죽게 하실 수 있다. 그리고 오히려 신앙을 지키다가 죽는 것이 영광이다’라고 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보통은 직장이 상당히 큰 우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신랑, 신부가 결혼을 하려고 예식장을 예약하고 바로 어제가 결혼하는 날인데, 다시 해약을 하고 결혼하지 않았답니다. 왜 그랬는지 물어보니까 신랑이 직장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랑이 직장에 떨어졌다고 식장을 해약하고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면 무엇을 보고 결혼을 하는 것입니까? 신랑을 보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고 직장을 보고 결혼한다는 말입니까? 결혼을 했어도 이 다음에 직장에 떨어질 수가 있는데, 이런 사람은 그때 가서 이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예 잘됐다고 했습니다. 직장을 보고 결혼하는 여자는 그것만 보고 산다는 것입니다. 직장에 떨어졌어도 결혼할 것은 하고, 먹을 것이 없으면 죽을 쑤어 먹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직장이 있으면 결혼하고 직장에서 떨어지면 파혼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돈도 많이 썼을 텐데, 결혼하기 전에 마침 직장에 딱 떨어진 것입니다. 떨어지기를 잘했습니다. 결혼했어도 그런 사람하고는 못 살 것입니다. 살면서 내내 어떻게 좋은 직장만 가지고 살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실패할 때도 있고 성공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데 여러 가지 굴곡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다시 재출발을 하고 소망을 가지며 살 생각은 하지 않고 끝을 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튼 모르드개는 직장에서 떨어져도 ‘할 수 없다. 나는 믿음을 양보할 수는 없다. 감옥에 가고 고난을 받아도 믿음은 양보할 수 없다.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 것이다. 나는 죽어도 믿음을 양보할 수 없다. 믿음을 양보하고 사는 것보다 믿음을 지키다가 죽는 것이 낫다’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성경대로 절하지도 않았고, 굴하지도 않았습니다.

2. 하만이 모르드개와 모든 유다 사람들을 학살하고자 함

본문 5-6절에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 고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이 심히 노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자신이 유다인이기 때문에 절할 수가 없다고 바로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만에게 보고된 다음에 그가 심히 노하여 유다인들 모두를 죽이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핑계를 대면 안 됩니다. 유다 사람이기 때문에 절하지 않는다는 것보다, 성경말씀을 지키기 때문에, 예수를 믿기 때문에 절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주일날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저기 간다고 합니다. 성경, 찬송가는 조그만 것을 사서 보이지 않게 주머니에 넣고, 저기에 간다는 것입니다. 

요즘 성경과 찬송가가 같이 붙어 있는 것을 많이 사는데, 따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을 보는데 찬송가가 붙어 있으면 펼치는데 편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합본 성경책을 보지 않습니다. 성경을 많이보려면 합본이 오히려 큰 방해입니다. 그러나 성경, 찬송을 따로 들고 다니려면 번거로운데 합본 성경책으로 하나만 들고 다니면 편리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찬송가 중에 해설 찬송가도 좋지 않습니다. 해설 찬송가는 사다 두고 집에서 참고 할 수는 있지만 찬송을 부를 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찬송을 부르다가 해설을 보면 찬송이 됩니까? “주 안에 있는 나에게”라고 부를 때에 진심으로 주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하지, 누가 언제 작사, 작곡했는지는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 “내 주를 가까이”라는 찬송을 부르는데, 정말로 내 주를 가까이 하는 것만 필요하지, 이것을 누가 지었는지는 필요가 없습니다. 또 찬송할 때에 입만 들썩이고 있으면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가 되지 못합니다.
또 성경 아래에 주석이 달려 있는 것이 있는데, 무턱대고 그것부터 보면 안 됩니다. 톰슨, 만나, 라이프, 셀프, 오픈, 제자 성경들은 집에서 성경을 연구할 때에 바른 진리를 확실히 깨달은 다음, 참고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확신도 없는데, 그것을 먼저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바로 된 것도 있지만 잘못된 것도 많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옳은 줄로 알면 바른 성경을 배우지 못합니다. 어떤 교인은 잘못된 것이 표준인 줄로 알고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그것에 맞으면 고개를 끄덕끄덕한답니다. 목사가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데도 그것에 맞으면 오케이(okay)고, 맞지 않으면 노(no)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 나가면 무슨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 밑에 달려 있는 주석은 한 사람이 한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하였기 때문에, 그 가운데는 신 신학자도 있습니다. 또 인본주의 해석도 있고, 이단적인 해석도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맞으면 좋고, 안 맞으면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일생토록 바른 성경을 배울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주석을 먼저 보지 말고, 바른 성경을 다 배운 다음에 그것이 옳은지를 봐야 합니다. 우리는 바른 성경을 받았으므로 옳고 그른 해석을 바르게 판단하며 나가야 하겠습니다. 자기가 바른 진리를 먼저 안 다음에 비판적으로 나가야지, 주석에만 얽매어 나가면 바른 진리는 못 배워 나갑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와서 그것만 보지도 말고, 예배 시간에도 참고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가르치는 것을 확실히 믿고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담배 하나 붙이십시오”라고 하면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으니까 못 붙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주일에 동전 하나 달라고 하면 “나는 예수를 믿으니까 못 줍니다”라고 대답을 해야 옳은 것입니다. 괜히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말고 딱 잘라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주일날에 있는 약속에 핑계를 대려고 비나 오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과 예수를 믿으니까 가지 않는 사람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마찬가지로 우상의 제물을 먹으라고 할 때 배가 아파서 못 먹는다거나, 지금은 배가 불러서 못 먹는다고 하는 사람과 우상의 제물이라서 먹지 않겠다는 사람과는 다릅니다.
6.25 사변 때 피난을 가는데 인민군들이 어떤 목사님을 보고 목사냐고 물었답니다. 그래서 그 목사가 목사라고 하면 잡아죽일까 봐서 호주머니를 뒤적이며 “담배 하나 붙이시오”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인민군들이 담배 붙이라는 것을 보고 목사가 아닌 줄 알고 그 목사를 보냈답니다. 이것이 바로 되었습니까? “목사입니다”라고 해야지, 담배는 무슨 담배입니까? 또 인민군들이 어떤 목사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양 치는 사람이라고 했답니다. 목회 일도 양을 치는 것이니까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목사입니다. 예수 믿습니다”라고 해야지, 양을 친다고 대답하는 것이 옳습니까?

목사라고 대답했어도 산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신도림 교회 목사님인데, 그 목사님이 피난 갈 때에 인민군들이 그 목사님을 보고 경찰 공무원처럼 생겨서 경찰인 줄 알고 잡았답니다. 인민군들은 경찰을 제일 먼저 죽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목사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런데 자꾸 경찰이 아니냐고 하니까 목사라고 증거를 댔답니다. 그런데 그리고 난 다음에 인민군들이 그 목사님에게 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목사가 아니라고 했으면 죽었을 텐데, 목사라고 했기 때문에 살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예수 믿어서 못합니다. 주일이라서 못합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 못 먹습니다. 절 못 합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운동 선수가 주일날 운동하러 가지 않고 “떨어져도 못갑니다”라고 하면 하나님께 합격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짜가 여기 있다. 내가 도와주어야겠다“하시면서 살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3. 하만이 유다인 진멸할 것을 왕에게 허락 받음

본문 7절에 “아하수에로 왕 십이 년 정월 곧 니산 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십이 월 곧 아달 월을 얻은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이 심히 노해서 유다 백성들을 다 잡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언제 죽일지 제비를 뽑았는데, 12월로 나와 법률을 세우고 그것을 왕 앞으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제 왕이 도장만 찍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본문 8-11절에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도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보다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저희를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부쳐 왕의 부고에 드리리이다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는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이 법률을 꾸며서 왕 앞에 갔는데, 그 법률이 만민보다 다르다고 했습니다. 법률이 다르다는 것은 성경말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왕의 법률을 성경에 위반되면 못 지킨다는 것입니다. 즉, 한 민족이 있는데 그들이 왕이 명령을 내려도 자기 법에 어긋나면 복종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는 것입니다. 그 민족을 진멸해야 나라가 잘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만이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에게 준다고 하니까, 왕이 그 말을 듣고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는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고 하였
습니다. 여기서 왕의 반지를 빼준다는 것은 도장을 빼주는 것입니다. 당시에 왕의 옥새는 잃어버릴까봐 왕이 반지에 새겨서 끼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빼주어야만 도장을 찍을 수 있는데, 지금 반지를 내어줬다는 것은 다 허락해준 것입니다. 왕의 옥새를 찍어야만 법률이 성립되는데, 왕이 하만의 말을 듣고 도장을 주며 하만의 소견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2-15절에 “정월 십 삼 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어 하만의 명을 따라 왕의 대신과 각 도 방백과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곧 각 도의 문자와 각 민족의 방언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치니라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부쳐 왕의 각 도에 보내니 십이 월 곧 아달 월 십 삼 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노소나 어린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이 명령을 각 도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날을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 역졸이 왕의 명을 받들어 급히 나가매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왕의 도장을 찍어 각 도의 방언대로 문자를 써서 전국에 반포하였습니다. ‘12월 하루 동안에 유다 백성들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 진멸한다. 도륙한다. 재산을 탈취한다’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이제 12월이 되면 유다 백성들이 다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믿음을 지키다가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다 죽이시겠습니까? 유다사람들은 지금 비록 포로로 잡혀가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모르드개는 성경말씀을 지키려고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두실 리가 없습니다. 이일로 유다 백성들은 재를 무릅쓰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하나님께 통곡하면서 금식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에스더 왕후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왕후의 사촌 오빠이고 자기를 길러준 아버지와 같은 사람인데, 그가 대성통곡하며 재에 앉아 굵은 베옷을 입고 기도한다는 말을 듣고 에스더가 사람을 불러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하만의 법률로 12월이 되면 유다 민족이 다 죽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왕 앞에 들어가 이 내용을 말하려고 했는데, 그 당시에는 왕이 부르지 않을 때에 들어가면 죽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금 홀을 들어주면 죽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3일 동안 유다인과 금식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왕 앞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다가 죽이면 죽임을 당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왕 앞에 들어가니까 왕이 금홀을 내밀어주었습니다. 또 왕이 “네 소청이 무엇이냐?”고 하니까, 에
스더가 잔치에 하만과 같이 오기를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에스더가 다시 가니까 왕이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네게 준다. 네 요구가 무엇이냐?”라고 하여, 에스더가 “내 민족이 망하게 되었는데 내 민족을 망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왕이 어떤 사람이 그런 계획을 세웠느냐고 묻게 되었고, 에스더가 그 악한 사람은 하만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을 듣고 왕이 하만에 대해 노하였습니다. 왕은 하만이 유다 민족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을 모르고 속은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분하여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는 50규빗이나 되는 나무에 하만을 달아서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의 다음 가는 하만의 직위를 모르드개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가 유다 사람들을 보호하며 그들의 권리를 찾아 잘 지켜주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때에 하나님께서 믿음을 지키는 모르드개와 멸망 받게 된 유다 사람들을 멸망 받지 않도록 건져주셨습니다. 믿음을 잘 지키고 나갈 때에 인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역사로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왕후를 통하여 유다 민족을 건져주시고 하만을 멸망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 사람이 모르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다가 고난을 당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건져주십니다. 또 뒤에 가면 하나님께서 유다 사람들을 그 나라에서 번성토록 만드셔서 유다 나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어주셨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말씀에 위배되는 것에 절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말씀과 신앙 양심을 양보하면 죽습니다. 양보하지 않고 지켜야 하나님이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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