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3일 목요일

시편 33:1-22 여호와로 즐거워하는 신앙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여호와로 즐거워하는 신앙
시편 33:1-22

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2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찌어다 3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찌어다 4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5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6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 7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8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찌어다 9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10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11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12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13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14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15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16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17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18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19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20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21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 22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1. 의인들은 여호와를 즐거워함

본문 1절에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인들, 정직한 자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오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또 정직히 행하는 자가 성도인데, 성도가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찬송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여 구속의 은혜를 늘 찬송하며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 2절에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기는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악기로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찬송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송하는 것은 성도를 늘 즐겁게 합니다.

본문 3절에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새 노래’라는 것은 새로 지은 노래, 성도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부르는 노래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서 부르는 노래는 늘 부르는 찬송이라고 해도, 그 심령이 새롭게 되었기 때문에 새 노래가 됩니다. 요한계시록14장에 보면 14만 4천 명이 시온 산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고 하였는데, 그것도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찬송 부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찬송을 부를 때에 심령이 새롭게 되어서 새 사람으로 새로운 역사가 있는 심령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새 노래가 됩니다. 그리고 성도가 새 노래 부르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새 노래를 부르는 자는 시온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2. 진실하신 여호와의 말씀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짐

본문 4절에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고 또 그 행사는 전부 진실 합니다. 한 말씀이라도 헛된 말씀이 없습니다. 일점일획이라도 천지가 변하기 전에는 바뀌지 않습니다. 한 번 말씀하신 여호와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본문 5절에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사랑하시고, 공의를 사랑하십니다. 불의한 일과 정직하지 않은 일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성도는 언제나 원리 원칙대로 하고, 진리대로 하며,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행하면서, 양심대로 해야 합니다. 언제나 옳게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인자를 충만히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6절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하늘을 지으셨습니다. 만상(萬象)이라는 것은 삼라만상(森羅萬象)입니다. 하늘에 있는 모든 천체, 일월성신, 땅에 있는 모든 만물, 그 전부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 위대하고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고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능입니다. 천지가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니까 빛이 있었고, 새와 물고기가 있으라 하니까 새와 물고기가 있었고, 짐승들도 있으라 하니까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또 빛이 갈라져서 해와 달과 별로 나뉘어라 하니까 갈라지게 되었고, 땅과 물이 갈라져라 하실 때에 땅과 물이 갈라져서 물은 깊은 대로 내려갔고 땅은 그대로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크고 진실하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실현성이 얼마나 확실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파도가 일어날 때는 깊은 물이 무더기같이 쌓여서 올라갑니다. 태풍이 올 때에 파도가 10m이상 올라갔다고 합니다. 10m면 전봇대만큼 올라간 것입니다. 파도가 그만큼 높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을 무더기와 같이 쌓아 올리기도 하십니다. 또 깊은 창고에 두었다는 것은 바다 밑 깊은 곳이 물이 잠겨 있다는 뜻입니다. 바다 밑이 깊지만, 그 깊은 곳까지 하나님께서 물을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파도가 일어날 때에는 무더기같이 높이 쌓아서 올라가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감히 측량하지 못합니다. 막을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가 큽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온 땅에 있는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동물들까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고, 사람들, 세계의 모든 거민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공경해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자이시므로, 창조자를 공경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심판자이시므로, 앞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다 심판하셔서 멸망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밖에는 두려워할 자가 세상에 없습니다.

본문 9절에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주 만물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사람도 살게 되었고, 바다물이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창조되었습니다. 물은 바다에서 육지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다 해놓으셨습니다. 자연 법칙도 하나님께서 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신 법칙대로, 우주 만물이 다 운행되고 있습니다. 바다 물이 육지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지구의 인력의 법칙, 또 달의 인력의 법칙, 이러한 여러 법칙들을 통해 자연 만물들이 다 붙잡혀서 그 자리에 견고히 서 있는 것입니다. 법칙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명령대로 모든 만물이 견고히 서 있게 되었습니다.

3.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와 사상을 폐하심

본문 10절에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즘에도 열방의 도모가 많습니다. 세계 열국에서 여러 가지 계획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모략을 많이 베풉니다. 그리고 여러 민족들에게 여러 가지 사상이 많이 있습니다.
민족 사상, 단체에 대한 사상, 종교에 대한 사상, 철학 사상, 유물주의 사상, 유실론주의 사상 등,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여러 가지 계획과 도모가 이루어지며, 많은 사람들이 음모와 참모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열방의 모든 도모를 다 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계획을 세워놓고 훌륭한 도모를 세워놓아도, 하나님께서는 다 폐하실 수 있습니다.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일의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여호와께 달려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찌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을 많이 세웁니다. 그러나 잠언16장 1절에도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여러 가지 경영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도모를 많이 하고 계획을 많이 세웁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되게 해주시면 되고, 여호와께서 안 되게 하시면 안 됩니다. 결국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도모와 열국의 모든 도모도 하나님께서 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바 하나님의 섭리만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사상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상을 무효케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사상을 위해서 사람이 죽기도 하고 생명보다 자기 사상을 더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상은 하나님께서 폐하려고 하시면 하루아침에 폐하실 수 있는 것들입니다. 사람이 사상대로 아무리 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안 되게 하시면 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그 사상은 하루아침에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사상도 하나님 앞에 옳은 사상은 변치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사상, 성경에 맞지 않는 사상은 하나님께서 다 폐하셔서 언젠가는 하나도 없이 사라집니다.

인간의 계획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인간이 계획을 천 가지, 만 가지 해놓았어도 일은 하나님의 계획대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사상이 아무리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상만이 최후에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거슬리는 사상, 하나님께 맞지 않는 사상은 다 깨뜨려 내버리시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사상으로 통일시키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하나님을 공경하게 될 날이 옵니다. 하나님 앞에 마지막에는 다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건설될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마귀를 잡아 가둘 때에 마귀의 사상은 싹 다 빠져나가고, 하나님의 사상만 온 천하에 가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4. 여호와로 자기의 하나님을 삼는 사람은 복이 있음

본문 12절에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빼낸 백성, 그 백성이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28장 21-22절에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자다가 꿈에 하늘에 닿은 사다리를 보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 위에 앉아 계셨는데, 말씀해주신 계시를 받고 그 이튿날 아침에 깨어서 서원을 하였습니다. 세 가지 서원을 하였는데, 첫째는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주 좋은 서약입니다. 좋은 서원인데,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일생 섬기겠습니다. 또 앞으로 성전을 짓겠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하나님께 반드시 드리겠습니다’라는 소원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이것들을 실행하였습니다.

하여간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는 나라, 즉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빼신 바 된 백성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나의 아버지로 삼고 나의 주로 섬기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빼신 바 기업인 줄 알고, 하나님을 언제나 자기 하나님, 자기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백성은 하나님 앞에 복 받은 백성입니다. 복이 있는 백성입니다.

본문 13-15절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하늘에서 다 살펴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에 있고,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 위에 계시고, 또 만물 안에 계시며, 만물을 초월해 계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에 있고,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하감하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모시고 사는 백성에게는 복을 주시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나가는 사람은 심판하십니다. 또 우주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우주를 운행해나가시는 대주재가 하나님이십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의로운 자에게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여간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자연히 되어져나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전부 다 섭리하시고 운행하시기 때문에 이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운행됩니다. 세상 만국의 흥망성쇠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전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운행되는 것입니다.

5. 구원은 많은 군대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

본문 16-17절에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용사가 아무리 힘이 커도 스스로 구원치 못하고, 말이 아무리 많아도 마병으로 구원을 얻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많은 군대를 가진 나라가 전쟁에서 늘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 무기 없이 애굽에서 맨 손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애굽 나라는 많은 군대와 병거와 마병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홍해에서 애굽은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나라는 18만 5천 명의 많은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했지만, 히스기야왕 때에 하룻밤 사이에 다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또 기드온 때에 미디안 군대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았지만, 그들이 기드온 300명 용사에게 다 패하고 말았습니다. 성경 역사적으로 볼 때에 군대가 많다고 해서 전쟁에서 다 이긴 것이 아닙니다. 그 많은 군대로 구원을 얻은 왕이 하나도 없습니다. 바벨론 군대도 당시에 세계적으로 강했지만, 벨사벨 왕 때에 방탕하며 성전 기명으로 술을 마시다가 하루 밤에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많은 군대에 있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7절에“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칼과 창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또 용사들이 아무리 힘이 크다고 해도 자기 힘으로 구원하지 못합니다. 삼손이 힘이 컸지만, 그 힘으로 자기를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에 눈알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다가 마지막에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군대가 많으니까 이길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돈이 많다’고 하면서 앞으로 잘 살 것으로 생각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또 ‘지식과 기술이 많으니까 앞으로 잘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힘이 많다고 해서 그 힘으로 성공할 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지 아니하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셔야 이기고, 또 무엇이든지 되게 해주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셔야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서 안 해주시면 아무리 많은 군대, 많은 힘, 많은 재산, 많은 기술, 많은 학식이 있다고 해도, 안 됩니다.

전도서 9장 11절에 보면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빨리 뛴다고 해서 선착(先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다가 사고가 나거나 또 불편한 데가 있으면 떨어지고 맙니다. 또 사람이라는 것은 실수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착하도록 만들어주셔야 선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는 그 모든 능력이라는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여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셔야 됩니다. 맞아 떨어지게 만들어주시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셔야 합니다. 또 좋은 일을 만나게 해주셔야 되고, 좋은 때를 만나게 해주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지 않으시면, 안 될 것만 돌아옵니다. 안 되는 일만 닥칩니다. 아무리 장사를 해도 일이 안될 때에는 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무엇을 할 줄 안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될 줄로 생각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무언가 좀 있다고 해서 그것을 믿고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되고, 안 도와주시면 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바로 된 것입니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구원함에 말은 헛것이며 아무리 마병이 많고 무기가 많아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헛것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큰 힘으로 구원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지 않으시면 무기를 아무리 많이 쌓아 두어도, 그것들이 오히려 원수에게 돌아갑니다. 도리어 안 쌓느니만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모든 것이 되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무기나 군대나 자기 힘이나 기술이나 재산을 의지하고 사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는 도와주지 않으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시기와 우연이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고 하였는데, 시기라는 말
은 심판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서 될 것 같지만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경외하는 자의 영혼을 구원해주시는 하나님

본문 18-19절에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어떤 자를 건져주십니까? 어떤 자를 승리케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여기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늘 그 앞에서 사는 자를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그런 사람에게 힘을 주시고 이김을 주시며,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 늘 하나님의 사랑의 권고를 바라는 자를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먼저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구원 받는 것이 첫째입니다. 또 ‘기근에서 살게 하신다’는 말도 영적 기근에서 먼저 우리 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영이 사는 것입니다. 자기 영이 새 생명의 양식을 얻어먹고 영적기근을 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다른 신학교에 다니시는 분이 있는데, 전도부인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 교인인데 신학교는 이 다음에 할 계산을 하고 쉬고, 전도부인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신학교를 쉬면 큰 일이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보시오,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요?”라고 물어봤습니다. 신학교가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영이 사는 것이 첫째입니다. 신학교를 나오고, 신학 박사이고 석사이고 해도 자기 영이 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박사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기 영이 사는 데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를 믿을 때에 자기 영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이 살지 못하고 죽은 믿음으로 10년을 교회를 다녀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영이 사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이 사는 것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로 무엇이 중요합니까? 둘째는 자기 맡은 바 사명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학교는 셋째, 넷째라고 했습니다. 자기 영이 먼저 말씀을 받아먹고 영이 살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기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둘만 하면 신학교는 안 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신학교 안 해도 영이 살고 자기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께로 가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신학교를 아무리 여러 개 나오고 석사, 박사 지위를 받았다고 해도, 자기 영이 살지 못하고 자기 맡은 바 사명을 다하
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가서 책망이나 받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일밖에 하지 못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믿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첫째가 자기 영이 사는 것입니다. 교회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 드릴 때에 새로운 꼴을 얻어먹어야 하고,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며, 영이 새 힘을 얻어서 소생하여 올라가야 합니다. 산 영을 가지고 살아서 영적인 일을 하다가
그 다음에 나가서 자기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맡은 바 사명이 다 있는데, 그 사명을 해나가야 합니다. 영이 살아나가는 일, 신령한 양식을 충족하게 먹는 일,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본문도 이 말씀인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영혼이 사는 사람을 건지신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를 기근 가운데에서 먼저 영부터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심령에 기근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 시들어지고 메마를 때에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는 것이 아주 귀한 일입니다. 아모스 8장 11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 참된 신령한 양식을 나눠 먹여주는 사람이 없는 때가 바로 모든 사람의 기근입니다. 심령에 기근이 왔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힘이 없습니다. 참된 양식을 받아먹어야만 영이 새 힘을 얻고 영적 충만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힘입어서 달음박질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건짐을 받은 자에게 육신의 양식도 주심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영적 양식을 풍성히 먹은 사람에게 육신의 양식도 덤으로 주셔서 살리십니다. 영의 양식을 먹고 영이 잘 자라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육신의 양식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영적 양식, 신령한 세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를 구하면, 세상의 물질적인 면은 덤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언제나 영이 사는 일,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는 일에만 전력을 다해서 그것을 추구해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 양식을 주셔서 우리 영을 살려주십니다. 그리고 육신의 모든 것도 필요하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0절에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자를 하나님께서 건져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간절히 바라보는 자에게 방패가 되시며,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를 바라보고 사모하며 찾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도와주십니다. 방패가 되어주셔서 악한 자의 화전을 막아주시고, 그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1절에 “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건져주십니까?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사람, 또 여호와의 성호를 의지하는 사람, 하나님을 절대 반석과 같이 의지하고, 그 든든한 반석의 힘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힘이 없어도 건져 주시고, 군대가 없어도 건져주십니다. 살 길을 열어주시고,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고 담대히 선한 싸움을 싸워서 정복해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본문 22절에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보는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구원의 팔을 펴시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주십니다. 그리고 먼저 영혼을 살려주시고 그 사람의 육신도 살려주십니다. 신령한 양식을 먼저 주시고 또 모든 필요한 양식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세상 군대나 세상의 어떤 힘, 물질, 자기의 기술이나 지혜, 재능을 의지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인자하심을 바라고 하나님을 간절히 기다려야겠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며 나가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채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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