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9일 일요일

욥기 33:1-33 계속되는 엘리후의 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계속되는 엘리후의 말
욥기 33:1-33

1그런 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나의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2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동하는구나 3내 말이 내 마음의 정직함을 나타내고 내 입술이 아는 바를 진실히 말하리라 4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5네가 할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6나와 네가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7내 위엄으로는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권세로는 너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8네가 실로 나의 듣는데 말하였고 나는 네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이르기를 9나는 깨끗하여 죄가 없고 허물이 없으며 불의도 없거늘 10하나님이 나를 칠 틈을 찾으시며 나를 대적으로 여기사 11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12내가 네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네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13하나님은 모든 행하시는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시나니 네가 하나님과 변쟁함은 어찜이뇨 14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15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16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17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 19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20그의 마음은 식물을 싫어하고 그의 혼은 별미를 싫어하며 21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22그의 혼이 구덩이에, 그의 생명이 멸하는 자에게 가까와지느니라 23그럴 때에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일찐대 24하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이르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25그런즉 그 살이 어린아이보다 연하여져서 소년 때를 회복할 것이요 26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27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전에 범죄하여 시비를 바꾸었으나 내게 무익하였었구나 28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29하나님
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생명의 빛으로 그에게 비취려 하심이니라 31욥이여 귀를 기울여 내게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32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너를 의롭게 하려 하노니 말하라 33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너를 가르치리라

1. 엘리후가 욥에게 자기 처지를 말함

본문 1-3절에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나의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동하는구나 내 말이 내 마음의 정직함을 나타내고 내 입술이 아는 바를 진실히 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32장에서부터 엘리후가 욥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오랜 침묵 뒤에 숙고하여 신중히 말하는 것이며 진실하게 말해주겠으니 자기의 변론에 귀를 기울여 들어달라고 합니다. 

본문 4-5절에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네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서로 할 말을 다 하고 허심탄회하게 변론하자는 것입니다. 

본문 6-7절에 “나와 네가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내 위엄으로는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권세로는 너를 누르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후가 흙으로 지음 받은 욥과 같은 피조물의 자리에서 겸손하게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욥을 강압하지 않고 아주 겸손한 태도로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2. 엘리후가 욥의 말과 신앙을 이해하지 못함

본문 8-11절에 “네가 실로 나의 듣는데 말하였고 나는 네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죄가 없고 허물이 없으며 불의도 없거늘 하나님이 나를 칠 틈을 찾으시며 나를 대적으로 여기사 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후가 욥이 한 말을 듣고 욥의 잘못된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욥기 9장 21절에 욥이 “나는 순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라고 하였고, 욥기 34장 6절에는 “내가 정직하나 거짓말장이가 되었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내 상처가 낫지 못하게 되었노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욥기 13장 24절에서는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우시고 나를 주의 대적으로 여기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들에 대하여 엘리후는 욥이 말한 내용과는 아주 다른 시각에서 욥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께 전혀 죄가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징계를 받을 만한 특별한 죄를 찾지 못하여, 깊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자기의 받는 모든 징계의 원인을 찾으려 겸손히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뿐입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을 향하여 대적하는 말을 했다고 하고, 또 욥이 자신을 가리켜 아무 흠도 없다고 말한 것으로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오해를 바탕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욥의 말들에 담긴 근본 정신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여, 본 뜻과 달리 해석하고 욥을 나무라는 것입니다.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의 말을 보통 신앙을 가진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며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나아가 정죄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욥은 그러한 오해가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해서 하는 말인 줄 알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믿음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12절에 “내가 네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네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주권의 역사 앞에서 사람이 감히 무어라 변론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하나님은 모든 행하시는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시나니 네가 하나님과 변쟁함은 어찜이뇨”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권대로 행하시고 누구에게도 그 행하시는 것을 진술하지 않는 분이시므로, 욥이 하나님께 고난 받는 원인을 알려고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잠히 고난을 받아야 하며 하나님과 변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사람을 교훈하시는 방법

구약시대에 교훈하신 방법

본문 14절에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께서 모든 행하시는 일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알리지 않으시나 특별한 경우에는 당신의 뜻을 한, 두 번 계시를 해주신 다음에 성경대로 행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계시를
다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꿈이나 환상 등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셨고 또 사람의 귀에 음성으로 말씀해 주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계시 방법입니다.

신약시대에 교훈하신 방법

1) 예수님 재림 이후로 특별 계시는 끝이 남

신약시대에는 구약시대와 같은 방법으로 계시하지 않으십니다. 구약시대의 방법은 구약시대부터 사도시대까지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다 기록해주셨기 때문에 그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던 구약시대의 꿈이나 환상, 음성, 비의적 현상, 우림과 둠밈 등의 여러 가지 특별 계시 방법은 예
수님 때까지 내려오다가 사도시대에 종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기록된 성경을 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꿈이나 환상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지 않으십니다. 

2) 오늘날 비의적 현상은 성경대로 판단해야 함

그러나 요새도 꿈이나 환상, 음성으로 계시를 주시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표준이 아닙니다. 때로 마귀가 주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생각하던 것이 밤에 꿈으로 나타나거나 음성으로 들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나 환상, 음성 등이 만약 성경에 딱 맞으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맞느냐, 안 맞느냐가 문제입니다.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전화로 우리 교회 극동 방송 설교를 듣고 나를 안다며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뭘 알고 싶으냐고 하였더니 자기는 방배동 총회 신학생인데 요새도 진동의 은사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진동이나 방언, 꿈이나 음성을 듣는 것, 또 환상이 오는 것과 관련하여 세 가지 경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 있고, 둘째 자기가 배워서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있고, 셋째 혹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도 있을 수는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경우는 성경에 맞아야 하고, 성경에 맞다 할지라도 그것을 좋아하지 말고 성경말씀만 따라가야 한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고맙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마 자기들끼리 많은 변론을 하다가 나한테 물어본 것 같습니다. 내가 그런 것들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하였는데, 우리가 꿈을 따르거나 진동하는 것, 방언이나 환상, 음성을 들으려고 따라가면 잘못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혹시 그런 것이 있었더라도, 그러한 것이 없었던 것같이 여기며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보통 꿈은 제 꿈 아니면 개꿈입니다. 꿈이 딱딱 맞아도 다 집어치워야 합니다. 주사야몽(晝思夜夢)으로, 낮에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밤에 꿈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우리 기도원과 신학교 짓는 문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신학교와 기도원을 지어야겠다고 마음을 가졌는데, 며칠 전 밤에 큰 집 두채가 마주 보고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이 주사야몽인 것입니다. 낮에 생각하던 것이 밤에 꿈으로 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낮에 생각을 했더니 밤에 그런 꿈을 꾸었나보다’하고 하나님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구약시대에는 꿈이나 음성, 환상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셨지만, 신약시대에는 그렇게 알려 주지 않으십니다. 성경에 전부 다 기록이 되었으므로, 성경을 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계획을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 가심

본문 16절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인은 치는 것처럼 심령 속에 인이 박히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꾀를 많이 베푼다고 해도 그 꾀로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꾀를 내고 계획을 세워서 그대로 일이 되게 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되는 것이지, 사람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계획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일해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계획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또 사람의 교만도 버려야 하는데, 자기가 뭘 하는 줄로 알면 안 됩니다. 자기가 계획한 대로 될 것 같아서 자기가 꾀를 내어 밀고나가도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되는 것이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그저 순종하는 정신과 믿음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계획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야고보서 4장 13-14절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계획을 잘 세웠더라도 오늘 밤에 하나님께서 네 영혼을 불러 가시면 내가 세운 계획대로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할머니 한 분이 75세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할머니가 금년 겨울을 대비하여 연탄과 쌀을 전부 다 사다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겨울도 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불러 가신 것입니다. 그러니 사다 놓은 연탄과 쌀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내일 어떻게 될 지는누구도 알지 못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한 날 괴로움 주신 것을 족한 줄로 알고, 현재에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만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만사를 다 작정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계획은 근본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작정과 예정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 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것을 전부 계획하셨습니다. 우주 창조에 대한 작정, 해와 별과 달, 춘하추동을 다 작정하셨습니다. 인간의 창조를 비롯하여 모든 것, 전체를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전부 작정해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작정해놓으신 대로 되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정은 사람이나 천사, 예수님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시기로 한 예정, 또 구속하시기로 한 예정, 천사를 심판하시기로 한 예정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중심으로 인간 구원, 하나님의 심판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여간 하나님의 작정대로 되는 것이지, 사람이 계획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나라의 왕도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사람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또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도 하나님의 작정대로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이만큼 된 것도 하나님의 작정대로 된 것이고 하나님께서 해주셔서 된 것입니다. 나에게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고 하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작정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예수를 믿고, 교회 발전에 이바지하며, 선교 사업도 도와주고, 신학교 허가도 내줘서 일꾼을 많이 양성하며, 복음 전파를 도와줄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워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로 이만큼 살게 해주신 것은 그 목적이 복음 전파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사업을 밀어주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나와야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좀 강하게 나가고 유능한 사람이 나와서 우리 한국이 전 세계 선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또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기도원을 다 철거하다가 망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절만 세워놓고 전국에 있는 기도원을 몇 개 안 남기고 많이 철거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장소를 다 없앴는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습니까? 나는 박 대통령이 자기 부인 말만 듣고 절간만 세우다가 망했다고 봅니다. 또 전두환 대통령은 왜 망했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은 신학교는 가만히 놔두었는데, 전두환 대통령은 신학교를 전부 탄압하였습니다. 신학교를 다 없애라고 탄압하다가 그만 몰락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일 도와주는 것에 중점을 두며 살아야 함

우리가 앞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일 도와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살면 잘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로 행하면 잘될 것이고, 하나님께 바로 하지 못하면 나라가 잘못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복을 받도록 행하였으면 복을 받고, 하나님께 잘못하였으면 가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선교 사업과 신학교를 도와주고, 기도원도 도와주면서 하나님의 일이 잘되게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신학교하지 말아라. 기도원도 하지 말고 다 철거해라. 선교 사업하는 것도 하지 말아라’고 하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나와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으로 얼마 가지 못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교회 복음 전도를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만큼 한국을 세워주셨는데, 그 일을 못하게 만들면 그런 대통령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하여간 앞으로 우리가 복음 전도하는 일에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되도록 관련한 여러 가지 일들을 잘해나가야겠습니다. 기도도 다 같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을 다하고 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원도 짓고, 신학교도 지어서 신학생이 많이 오게 해야 되겠습니다. 또 남, 북 통일이 되면 우리 교단에서 교역자를 한 백 명은 북쪽으로 들여보내야 하는데, 지금 보낼 사람이 마땅치 않습니다. 교역자를 많이 길러야 되는데, 사람이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세워놓으셨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잘되도록 어떻게든 우리가 협조하고 받들어나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 해나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 일을 하다가 하나님께 가면 ‘잘하였도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택한 백성을 다 건져내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드리고 가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것입니다. 

이북에도 복음 전파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습니다. 지금 공산권이 문을 열어서 각 나라, 여러 지역으로 교회가 들어가고 있는데, 이북에만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월남에도 교회가 들어갔고, 중국에도 들어갔습니다. 저, 동부권에도 다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이북에만 못 들어가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열어놓으셨습니다. 과거에 이북에 교회가 많았고 성도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기만 못 들어가게 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반드시 이북에 교회가 서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또 이북의 많은 택한 백성들을 불러 모으셔서 믿게 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줄 믿습니다. 우리가 조금 있으면 이북에 일꾼을 보내고 그들을 후원해서 교회를 세워야 하는데, 앞서 말한 대로 사람이 없습니다. 한국 교회 전체로 생각하면 교역자를 약 삼천 명은 들여보내야 합니다. 또 거기서 제대로 일할 만한 사람을 들여보내야지, 가서 잘못하면 쓸데없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모든 일이 사람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는 것을 믿고 나가야겠습니다. 인간의 교만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준비와 순종을 하여야겠습니다. 또 인간의 꾀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대로, 문을 열어주시는 대로 순종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받들어나가는 정신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징계로 교훈하심

본문 18절에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9-22절에 “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그의 마음은 식물을 싫어하고 그의 혼은 별미를 싫어하며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그의 혼이 구덩이에, 그의 생명이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뼈가 늘 쿡쿡 쑤시는 징계를 받는 사람도 있고 거의 다 죽게 된 상태에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대속적 구원을 찬송함

본문 23-24절에 “그럴 때에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일찐대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이르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는 라는 것은 중보자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천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해석자’라는 말은 하나님의 대언자라는 뜻입니다. 또 대속물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하심을 그 사람에게 입혀주심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징계를 받아 거의 다 죽게 됐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바르고 정당한 길을 걸어가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속의 공로로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멸망에서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주시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그 사람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엘리후가 오실 구속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고 생명의 세계에 들어갈 것을 말하였습니다.

징계가 임할 때에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의지하며, 주님께만 모든 것을 맡기고 나가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내주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먼저 영혼을 구해주시고, 육신도 건져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데려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데려가실 것입니다.

아무튼 그 사람이 십자가의 대속을 바라보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대속자의 구속을 기초로 그 사람을 용서해주십니다. 회개하는 것을 들어주시고 소년 때와 같이 회복시켜주시며 하나님의 얼굴을 즐거이보게 해주십니다. 또 의를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에 징계 받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편 49편 20절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과 같도다”라고 했고, 잠언 29장 1절에는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징계를 받을 때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죄를 찾아서 회개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불순종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인간의 계획대로 하려고 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는 하나님 앞에 무(無)요 공(空)이 되어야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 겸손히 자기 죄를 찾아야 합니다. 회개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건성으로 왔다 갔다 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징계가 임할 때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죄를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용서해주십니다. 또 소년 때를 회복시켜주시며, 의를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리고 자기 얼굴을 하나님 앞에서 기쁘게 보게 해주십니다.

본문 27-28절에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전에 범죄하여 시비를 바꾸었으나 내게 무익하였었구나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결국에는 찬송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29-30절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생명의 빛으로 그에게 비취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도 재삼 가르쳐주시고, 징계도 계시의 말씀도 재삼 가르쳐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영혼을 타락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셔서 처음 믿음, 처음 은혜 가운데로 다시 인도하시며 생명의 빛으로 인도해주시려고 재삼 말씀과 징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5. 엘리후가 욥에게 잠잠하여 말을 들으라고 함

본문 32절에 “욥이여 귀를 기울여 내게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너를 의롭게 하려 하노니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욥이 말을 해도 이 사람과는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 엘리후가 하는 말들은 진리이긴 하나 보편적인 진리여서 욥이 처한 특수한 처지에는 맞지 않습니다.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보편적인 원리로 따지면서 욥에게 자꾸 말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너를 가르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진리를 가지고 그 안에서 믿는 사람의 신앙 세계는 보통 정도로 믿는 사람이 아무리 따지고 물어봐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바른 진리를 받은 사람은 끝까지 그 진리를 붙들고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하고 정죄해도 그냥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진리를 양보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욥이 그와 같은 경우입니다. 욥은 끝까지 참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욥을 반대하는 친구들도 믿는 사람들이고 엘리후도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지만, 그들은 보편적인 진리만 깨닫고 있어서 깊은 진리 안에 서있는 욥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욥은 하나님 앞에 양심적으로 끝까지 바르게 나가고자 하며, 자기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 가운데에서도 잘 참으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욥의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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