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9일 일요일

욥기 35:1-16 엘리후의 비방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엘리후의 비방
욥기 35:1-16

1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2네가 이것을 합리하게 여기느냐 네 생각에 네가 하나님보다 의롭다 하여 3이르기를 유익이 무엇인고 범죄한 것보다 내게 이익이 무엇인고 하는구나 4내가 너와 및 너와 함께 있는 네 동무들에게 대답하리라 5너는 하늘을 우러러 보라 네 위의 높은 궁창을 바라보라 6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7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 9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세력 있는 자의 팔에 눌리므로 도움을 부르짖으나 10-11나를 지으신 하나님 곧 사람으로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며 우리를 교육하시기를 땅의 짐승에게 하심보다 더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지혜 주시기를 공중의 새에게 주심보다 더하시는 이가 어디 계신가 말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구나 12그들이 악인의 교만을 인하여 거기서 부르짖으나 응락하는 자가 없음은 13헛된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 하심이라 14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시비는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하는 너랴 15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횡포를 심히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16이제 너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1. 엘리후가 욥을 또 비방함
본문 1-3절에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네가 이것을 합리하게 여기느냐 네 생각에 네가 하나님보다 의롭다 하여 이르기를 유익이 무엇인고 범죄한 것보다 내게 이익이 무엇인고 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엘리후가 욥기 34장에서 했던 말을 이어서 계속 욥을 비방합
니다. 욥은 자기가 하나님보다 의롭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보다 자신이 의롭다고 말하였다며 거짓말을 갖다 붙여 욥을 비방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욥이 자기 의를 말하긴 했어도 하나님보다 자신이 의롭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범죄한 것보다 내게 이익이 무엇인고’라고 한 것은 욥의 말이 아니고 친구들의 말입니다. 그 말은 욥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친구들도 하나님을 섬기며 어느 정도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사람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를 부리며 욥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의 선과 악이 하나님께 유익이나 손해를 주지 못한다고 함

본문 4-6절에 “내가 너와 및 너와 함께 있는 네 동무들에게 대답하리라 너는 하늘을 우러러 보라 네 위의 높은 궁창을 바라보라 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높고 무한이 넓은 궁창에 비
하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엄위하신 하나님께 욥이 범죄한들, 또 죄악이 관영한들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말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구원 역사는 모
두 빼고 한 면만 들어내어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한 면만 말하고 다른 여러 면은 도외시하는 것입니다. 한 면만 들어서 말한 이 진리가 맞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사랑, 자비를 제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욥을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사람이 감히 무엇을 드리지도 못하며, 하나님께서 받지도 않으신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면에서 볼 때 사랑과 구원,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늘 높이 멀리 떨어져 계신 하나님인 동시에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고 모든 것을 받으시며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후자의 하나님은 제외하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욥을 반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성경말씀의 한 면만 들추어 바로 믿는 사람을 비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말씀을 억지로 갖다 붙여서 “네가 하나님보다 의롭다고 했다. 죄를 지은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했다”라며 거짓말로 비방하는 사람들이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비방은 이렇게 거짓말을 보태서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면의 진리만을 가지고 거기에 맞지 않는다고 비방하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악은 하나님을 해할 수 없고, 사람의 의가 하나님께 유익을 끼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엘리후의 이 말도 맞습니다.
그러나 이 말 역시 다른 면에서는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을 간섭하시고 징계하십니다. 또 의로운 사람은 돌봐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시험하지도 않으시는 한 쪽 면이 맞기는 맞습니다. 사람의 악이 하나님께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에 대하여 상을 주시며 악은 징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엘리후는 한 면만 보고 다른 쪽을 빠뜨린 것입니다. 

이렇게 나가는 진리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제대로 믿는 사람이 전부 잘못되어 보입니다. 그래서 비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어느 정도까지의 보편적인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구원 도리를 모르고, 상선징악(賞善懲惡) 즉, 하나님께서 선은 상 주시고 악은 벌하신다는 것을 제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3. 잘못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고 함

본문 9절에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세력 있는 자의 팔에 눌리므로 도움을 부르짖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왕과 방백들이 백성들보다 위에 있어 세력을 부리며 살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선거를 통해 우리 손으로 시장이나 대통령을 뽑습니다. 예전 같으면 왕이 명령하는 대로 다 했지만, 요새는 과거와 다릅니다. 민주주의 면에서 나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뽑을 만한, 제대로 된 사람이 없어서 선거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일면 맞기는 하나 일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래도 옛날보다는 나아졌다는 생각을 가지고 투표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한 정치가, 의로운 정치가,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정치가가 나와야 하겠습니다. 지금 본문에는 세력가의 학대로 인해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10-11절에 “나를 지으신 하나님 곧 사람으로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며 우리를 교육하시기를 땅의 짐승에게 하심보다 더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지혜 주시기를 공중의 새에게 주심보다 더하시는 이가 어디 계신가 말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구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밤중에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가르치시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셨어도, 그것을 다 깨닫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 깨닫지 못하고 치우쳐서 곁길로 가고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12-13절에 “그들이 악인의 교만을 인하여 거기서 부르짖으나 응락하는 자가 없음은 헛된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력으로 잘못 기도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는 바른 기도만 들어주시고, 맞지 않는 기도는 아무리 해도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히려 자기 생각대로 일이 안 되는 것이 잘되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안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면도칼을 달라고 하면 안 주고 양잿물을 달라고 해도 안 줍니다. 그러나 합당한 것을 구하면 다 주고
더 좋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엘리후가 ‘헛된 부르짖음은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한다’고 욥에게 말한 것은 성경의 바른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욥에게는 잘못 적용된 것입니다. 즉, 바른 말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입니다. 내용은 진리이나, 욥을 정죄하는데 사용하였으므로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4. 엘리후가 하나님께서 욥에게 합당한 벌을 주셨다고 함

본문 14절에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시비는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하는 너랴”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뵈올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욥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뵈올 수 없으며, 옳고 그름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시니 기다릴 뿐이라는 것입니다. 욥의 신앙이 바른 신앙입니다.

욥의 신앙은 엘리후의 신앙과 아주 다릅니다. 욥은 신령한 신앙이고, 친구들은 그저 상선징악하시는 하나님 정도까지만 아는 신앙 정도입니다. 그들은 보편적인 진리만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신령한 신앙을 깨달아 나가는 사람과 보통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욥의 깊은 신앙을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신앙의 정도가 다른 것입니다.

본문 15-16절에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횡포를 심히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이제 너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하나님께 합당한 벌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이것도 잘못되었습니다. 욥이 잘못한다는 비방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으셔서 벌을 주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횡포를 살피지 아니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믿는 신자의 삶이 보편적으로 나가는 신자들이 볼 때에 다 잘못되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악평하고 비방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오인하여 하지 않은 말도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욥의 신앙을 인정하셨고, 오히려 이 사람들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른 신앙, 신령한 신앙을 인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부적으로, 법적으로만 따지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욥이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을 뵈올 수 없고 일의 시비는 하나님께 있으니 나는 기다릴 뿐이다’라는 이 신령한 신앙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도 이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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