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후가 자기 지식을 따라 말함
욥기 36:1-33
1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2나를 잠간 용납하라 내가 네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오히려 할 말이 있음이라 3내가 먼 데서 지식을 취하고 나를 지으신 자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4진실로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지식이 구비한 자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 5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아무도 멸시치 아니하시며 그 지능이 무궁하사 6악인을 살려두지 않으시며 고난 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7그 눈을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에 앉히사 존귀하게 하시며 8혹시 그들이 누설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9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이사 그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10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시나니 11만일 그들이 청종하여 섬기면 형통히 날을 보내며 즐거이 해를 지낼 것이요 12만일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13마음이 사곡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께 속박을 받을찌라도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14그들은 젊어서 죽으며 그 생명이 남창과 함께 망하려니와 15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할 즈음에 구원하시며 학대당할 즈음에 그 귀를 여시나니 16그러므로 하나님이 너를 곤고함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넓은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네 상에 차린 것은 살진 것이 되었으리라 17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네게 가득
하였고 심판과 공의가 너를 잡았나니 18너는 분격함을 인하여 징책을 대적하지 말라 대속함을 얻을 일이 큰즉 스스로 그릇되게 말찌니라 9너의 부르짖음이나 너의 세력이 어찌 능히 너의 곤고한 가운데서 너로 유익하게 하겠느냐 20너는 밤 곧 인생이 자기 곳에서 제함을 받는 때를 사모하지 말 것이니라 21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네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22하나님은 그 권능으로 큰 일을 행하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23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24너는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찌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 25그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26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년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 27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되어 비를 이루고 28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29구름의 폐임과 그의 장막의 울리는 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30그가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에 두르시며 바다 밑도 가리우시며 31이런 것들로 만민을 징벌하시며 이런 것들로 식물을 풍비히 주시느니라 32그는 번개 빛으로 그 두 손을 싸시고 그것을 명하사 푯대를 맞추게 하시나니 33그 울리는 소리가 풍우를 표시하고 육축에게까지 그 올라오는 것을 표시하느니라
욥기 36:1-33
1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2나를 잠간 용납하라 내가 네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오히려 할 말이 있음이라 3내가 먼 데서 지식을 취하고 나를 지으신 자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4진실로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지식이 구비한 자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 5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아무도 멸시치 아니하시며 그 지능이 무궁하사 6악인을 살려두지 않으시며 고난 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7그 눈을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에 앉히사 존귀하게 하시며 8혹시 그들이 누설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9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이사 그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10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시나니 11만일 그들이 청종하여 섬기면 형통히 날을 보내며 즐거이 해를 지낼 것이요 12만일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13마음이 사곡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께 속박을 받을찌라도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14그들은 젊어서 죽으며 그 생명이 남창과 함께 망하려니와 15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할 즈음에 구원하시며 학대당할 즈음에 그 귀를 여시나니 16그러므로 하나님이 너를 곤고함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넓은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네 상에 차린 것은 살진 것이 되었으리라 17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네게 가득
하였고 심판과 공의가 너를 잡았나니 18너는 분격함을 인하여 징책을 대적하지 말라 대속함을 얻을 일이 큰즉 스스로 그릇되게 말찌니라 9너의 부르짖음이나 너의 세력이 어찌 능히 너의 곤고한 가운데서 너로 유익하게 하겠느냐 20너는 밤 곧 인생이 자기 곳에서 제함을 받는 때를 사모하지 말 것이니라 21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네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22하나님은 그 권능으로 큰 일을 행하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23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24너는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찌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 25그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26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년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 27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되어 비를 이루고 28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29구름의 폐임과 그의 장막의 울리는 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30그가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에 두르시며 바다 밑도 가리우시며 31이런 것들로 만민을 징벌하시며 이런 것들로 식물을 풍비히 주시느니라 32그는 번개 빛으로 그 두 손을 싸시고 그것을 명하사 푯대를 맞추게 하시나니 33그 울리는 소리가 풍우를 표시하고 육축에게까지 그 올라오는 것을 표시하느니라
1. 엘리후가 자기 지식을 따라 말하기 시작함
본문 1-2절에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나를 잠간 용납하라 내가 네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오히려 할 말이 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환난을 당할 때에 욥의 세 친구가 와서 욥에게 여러 가지 말을 많이 해줬습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욥에게 해당하지 않는 보편적인 진리에 근거한 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욥의 친구들이 말한 것이 보편적인 진리이긴 하나 욥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들 중에는 진리에 맞지 않는 말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말이 도리어 욥을 핍박하며 괴롭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나름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할 말이 있다고 나선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취하고 나를 지으신 자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는 하나님께 의를 돌려보내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진실로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지식이 구비한 자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후는 자기 스스로 지식이 구비 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식이 많기는 합니다. 하여간 자기 말이 거짓되지 아니하며, 자신은 지식을 구비하였다는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엘리후는 신령한 믿음은 없는데 보통의 믿음을 가진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해서 여러 가지 학설을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대학교를 나온 셈입니다. 또 신학교도 여러 곳을 나오고 박사 학위도 많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의 일부는 자기가 자기 분야에서 제일 잘하는 줄 알고 바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멸시합니다.
예전에 어떤 미국 선교사가 하나 있었는데, 그이가 여기 나와서 얼마 있다가 미국으로 도로 들어갔습니다. 지금은 미국 어떤 신학교 교수를 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이병규 목사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신비주의라고 그러더랍니다. 그 사람 보기에는 우리가 신령한 진리를 말하니까 신비주의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 사람은 신령한 것을 모르고 지식적으로만 아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책도 더러 낸 모양인데 순전히 지식적으로 낸 것 같습니다. 하여간 그이가 우리의 신령한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신비주의라고 말한 것인데, 그러한 사람이 바로 엘리후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도 신학 박사이고 교수인데, 지식적으로만 많이 아는 것입니다. 신령한 신학으로 나가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신비주의는 “성경에 없는 말을 묵시 받았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방언과 예언을 하는 것이 신비주의입니다. 그런데 신령한 진리를 신비주의라고 해놓으면,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그것밖에 모른다는 것을 간접적
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닌 지식밖에 모르니까 신령한 진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요새 그 사람이 회개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라고 하였는데, 그 사람도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칭 유대인도 믿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바로 믿는 사람들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또 흰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고 핍박했던 것입니다.
하여간 엘리후가 그런 종류의 사람입니다. 보통 신앙을 가지고 보편적인 진리면만 아는 것입니다. 그가 스스로 지식이 구비한 자라고 하였고 말도 잘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보는 관점에서 욥이 잘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닌 지식밖에 모르니까 신령한 진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요새 그 사람이 회개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라고 하였는데, 그 사람도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칭 유대인도 믿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바로 믿는 사람들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또 흰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고 핍박했던 것입니다.
하여간 엘리후가 그런 종류의 사람입니다. 보통 신앙을 가지고 보편적인 진리면만 아는 것입니다. 그가 스스로 지식이 구비한 자라고 하였고 말도 잘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보는 관점에서 욥이 잘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의 행위에 따라 갚아주시는 하나님
본문 5-6절에 “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아무도 멸시치 아니하시며 그 지능이 무궁하사 악인을 살려두지 않으시며 고난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분이시라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고 아무도 멸시치 않으시며
지능이 무궁하시고 악인을 살려두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고난 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5-6절에 “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아무도 멸시치 아니하시며 그 지능이 무궁하사 악인을 살려두지 않으시며 고난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분이시라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고 아무도 멸시치 않으시며
지능이 무궁하시고 악인을 살려두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고난 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7절에 “그 눈을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에 앉히사 존귀하게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에 앉히사 존귀하게 하신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맞는 말이긴 합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 의인을 돌아보시며, 그 눈을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항상 의인을 향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눈입니다.
본문 8절에 “혹시 그들이 누설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이사 그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누설에 매였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환난의 줄에 얽혀서 나갈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성도가 환난의 줄에 얽히면 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시고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맞는 말입니다.
본문 10절에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누설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매인 사람을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허물을 알게 해주시고 회개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잘되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만일 그들이 청종하여 섬기면 형통히 날을 보내며 즐거이 해를 지낼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쇠사슬이나 어떤 누설에 얽매여서 엉켜 나올 수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 허물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를 깨닫게 해주시고 회개하며 돌아오게 해주신다는 말입니다. 또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진리, 교훈을 듣게 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열어주시고 해를 즐거이 보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만일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지식에 얽매이거나 어떤 사슬에 얽매여 나갈 길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죄를 깨닫게 해주시고 회개시키신다는 것입니다. 또 회개하면 길을 열어주셔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청종치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이 말들은 전부 욥에게 하는 말입니다. 엘리후가 욥이 지은 죄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네가 죄 때문에 이런 환난에 빠진 것인데 만약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살려주실 것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죄 때문에 환난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연단을 시키셔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욥이 죄 때문에 환난을 당하는 것이니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보통은 죄 때문에 망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보통은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욥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누설이나 쇠사슬, 올무에 걸려서 얽매였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회개시키시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심으로 바로 서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또 형통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으며 그냥 나가면 망하게 된다는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이 욥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본문 13-14절에 “마음이 사곡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께 속박을 받을찌라도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젊어서 죽으며 그 생명이 남창과 함께 망하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사곡(邪曲)한 자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외식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마음이 사곡한 자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욥이 외식(外飾)함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쌓고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지금 속박을 받았어도 욥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4-15절에 “그들은 젊어서 죽으며 그 생명이 남창과 함께 망하려니와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할 즈음에 구원하시며 학대당할 즈음에 그 귀를 여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곤고한 자를 구원 하신다’는 것은 순종하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를 곤고한 가운데서 구원해주시며, 그가 학대당할 즈음에 그 귀를 열어 깨닫게 해주셔서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를 구원해주시는 하나님, 의인에게서 눈을 돌이키지 않으시는 하나님, 회개하면 형통한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회개하고 의에 서며,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징책을 대적하지 말라고 함
엘리후가 특수한 사정으로 고난당하는 욥에게 일반적인 진리를 들어 계속하여 말함
본문 16-17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이 너를 곤고함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넓은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네 상에 차린 것은 살진 것이 되었으리라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네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공의가 너를 잡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후가 특수한 사정으로 고난당하는 욥에게 일반적인 진리를 들어 계속하여 말함
본문 16-17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이 너를 곤고함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넓은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네 상에 차린 것은 살진 것이 되었으리라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네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공의가 너를 잡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8절에 “너는 분격함을 인하여 징책을 대적하지 말라 대속함을 얻을 일이 큰즉 스스로 그릇되게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에 회개하면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대속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엘리후는 욥에게 대속함을 얻을 일과 구원 받을 일이 크므로 징책을 대적하지 말고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는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며 깨닫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지금의 욥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일반적인 진리인 것입니다.
욥은 지금 특수한 사정으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욥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고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욥이 죄 때문에 환난을 받은 것으로 알고 회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
들은 대부분 죄 때문에 고난당하는 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에 대적하지 말고 회개하며 바로 서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본문 19절에 “너의 부르짖음이나 너의 세력이 어찌 능히 너의 곤고한 가운데서 너로 유익하게 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력을 알아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또 부르짖는다고 해서 알아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회개하며 바로 서야 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며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야만 알아주십니다.
본문 20절에 “너는 밤 곧 인생이 자기 곳에서 제함을 받는 때를 사모하지 말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자기 곳에서 제함을 받는 때’라는 것은 죽는 때, 절망의 밤을 가리킵니다. 즉, 죽는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살 길을
열어주시는데 회개하지 않고 나가는 것은 죽는 길을 사모하면서 나가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21-22절에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네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하나님은 그 권능으로 큰 일을 행하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환난 때에 순종을 하면 더욱 복이 있겠는데, 욥은 환난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환난 때에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공의의 심판을 택하시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여간 우리는 늘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낮아져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계속하여 욥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말을 합니다. 욥이 계속 회개하지 않으니까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이 물론 맞는 말이긴 하지만, 욥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말씀인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왜 그렇게 하셨느냐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완전하시고 의로우시며 다 선한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왜 그렇게 했느냐? 누가 그렇게 정하였느냐?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다’고 할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절대 불의가 없습니다. 전부 다 의롭고 공평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적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또 순종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4.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
본문 24절에 “너는 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찌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며 찬송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행하신 것을 두고 왜 그렇게 했느냐고 하면 되겠습니까? 또 불의하다고 하면 되겠습
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완전하고 선하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찬송만 하고 감사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을 행하시든지 감사와 찬송만 해야만 합니다. 손해가 되는 것은 주지 아니하시고 불의한 일도 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게 왜 이렇게 주실까?’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할 것뿐입니다. 제일 유일한 것으로 골라주시고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주시며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는데, ‘왜 그렇게 하십니까? 불의하지 않습니까?’하는 생각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좋은 일이고 제일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주시며 유익이 되는 것만 주십니다. 살 길로만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모든 일을 두고 감사와 찬송만 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25-26절에 “그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년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고 먼 데서도 본다는 것입니다. 징계를 하셨어도 먼 데서 보면 참 잘하셨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고훈영 목사가 이번에 미국 사람들이 테러 당한 일에 대해 다 회개 한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교회에 안 나오던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먼 데서도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을 떠나고 방탕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징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멀리서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령을 깨우치고 회개하며 바로 세우시려 하신 것을 멀리서도 다 안다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년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셔서, 사람이 그 년수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계산할 수 없습니다. 별을 언제 만드셨는지, 별빛은 얼마나 먼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창세 이후로 별빛이 계속해서 내려오는데, 아직도 지구에 도달하지 못한 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별이 지구로부터 얼마나 멀겠습니까? 태양빛이 지구에 내려오는 시간이 8분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빨리 내려오는 빛이 6천년이나 지난 지금도 지구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가히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먼지 계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어떻게 계산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년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셔서, 사람이 그 년수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계산할 수 없습니다. 별을 언제 만드셨는지, 별빛은 얼마나 먼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창세 이후로 별빛이 계속해서 내려오는데, 아직도 지구에 도달하지 못한 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별이 지구로부터 얼마나 멀겠습니까? 태양빛이 지구에 내려오는 시간이 8분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빨리 내려오는 빛이 6천년이나 지난 지금도 지구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가히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먼지 계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어떻게 계산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27-28절에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되어 비를 이루고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수증기를 위로 올라가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또 비가 돼서 땅에 쏟아지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게 하시니까 비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때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셨는데, 그 다음에 엘리야가 기도를 하니까 비를 내려주셨습니다.
금년에 이북에 흉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여름에는 가물어서 곡식이 안 되고 얼마 전에는 창수(漲水)가 와서 곡식이 다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참 신기합니다. 남, 북이 얼마 멀지 않은데, 한국에는 풍년이 들어서 많은 것들이 넘칩니다. 하나님께서 한국에는 비도 많이 주셔서 곡식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주셨고, 태풍도 오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안개가 올라가는 것,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장하시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달려있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에 “구름의 폐임과 그의 장막의 울리는 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라고 하였습니다. 장막의 울리는 우레 소리도 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주장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일기 예보가 맞는 때도 있지만 안 맞는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기예보가 왜 안 맞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기 예보를 하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기상 상황대로 판단을 해서 보도를 했는데, 갑자기 비구름이 오다가 옆으로
가면 비가 안 오게 됩니다. 또 비를 가지고 오는 구름이 사라지는 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몰아가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이 측량하지 못합니다.
한 2, 3년 전 식목일에 기도원에서 나무를 심었는데, 산 너머에서 불이 났습니다. 그런데 기도원 쪽으로 바람이 불어서 불이 기도원에 붙어 뜨끈뜨끈해졌습니다. 그때 나무 심으러 갔던 사람들이 불을 끄려고 했지만, 바람이 휙휙 날아오는 바람에 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원에 야단이 났는데, 갑자기 올라오던 바람이 반대로 가니까 불붙을 데가 없어서 꺼져버렸습니다. 당시에 헬리콥터도 왔었는데, 하여간 하나님께서 주장하신 것입니다. 바람이 한 반 시간만 더 불었더라면 기도원이랑 나무들이 다 탈 뻔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람을 돌려 주신 것입니다. 왜 돌리셨겠습니까? 바람이 조금 더 올라왔으면 기도원 뒷산에 교역자 기도실이 몇 십 개 있어서 다 불에 붙을 뻔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원을 사랑하시고 기도하는 것을 귀히 여기셔서 보호해주시려고 그 바람을 싹 돌리신 것 같습니다. 기도원을 타지 않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바람을 돌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본문 30-31절에 “그가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에 두르시며 바다 밑도 가리우시며 이런 것들로 만민을 징벌하시며 이런 것들로 식물을 풍비히 주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번개 빛으로 만민을 징계 하신다는 것입니다. 번개 빛으로 식물을 주시고, 또 번개 빛으로 만물을 징벌하기도 하시며,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을 두르시며 바다 밑도 가리우신다는 것입니다. 번개가 치면 많은 사람이 죽기도 하고 집이 무너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징계 받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 32절에 “그는 번개 빛으로 그 두 손을 싸시고 그것을 명하사 푯대를 맞추게 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번개 빛은 하나님의 손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손으로 번개 빛을 인도하셔서 푯대를 맞추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치실만한 벼락이 있으시면 번개 빛으로 인도하셔서 벼락을 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또 번개빛을 바로 인도하셔서 비를 주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번개 빛을 통해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그 울리는 소리가 풍우를 표시하고 육축에게까지 올라오는 것을 표시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번개 빛으로 울리는 소리가 풍우(風雨)를 표시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표시한다는 것은 예표(豫表)한다는 뜻입니다. 즉, 번개 빛으로 울리는 소리가 비 내릴 것을
미리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번개가 번쩍번쩍하면 육축들도 비가 온다는 것을 압니다. 모든 짐승들도 번개 불이 나면 비가 올 줄 압니다. 사람은 미련해서 번개가 날 때 알지만, 육축들은 미리 아는 것입니다. 오늘 해가 나도 개미는 내일 비가 올 것을 이미 압니다. 개미들이 줄을 매는데 왜 매는지 아십니까? 비가 올 줄 미리 알고 자기의 알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느라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짐승들이 미리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짐승은 지진이 날 것을 미리 알고, 발로 땅을 파며 야단을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미련해서 지진이 날 것을 모르고 있지만, 짐승들은 먼저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번개 빛으로 풍우를 예표하고 짐승들도 그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일하십니다. 예표로, 표시로 번개 빛을 주셔서 모든 것을 예비시키시는 것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