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9일 일요일

욥기 37:1-24 엘리후가 일반 계시로 욥을 정죄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엘리후가 일반 계시로 욥을 정죄함
욥기 37:1-24

1이로 인하여 내 마음이 떨며 자기 처소에서 떠나느니라 2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3그 소리를 천하에 퍼치시며 번개 빛으로 땅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4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위엄의 울리는 음성을 내시고는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 빛을 금치 아니하시느니라 5하나님이 기이하게 음성을 울리시며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6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그같이 내리게 하시느니라 7그가 각 사람의 손을 봉하시나니 이는 그 지으신 모든 사람으로 그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8짐승들은 숨는 곳으로 들어가서 그 굴에 머물며 9남방 밀실에서는 광풍이 이르고 북방에서는 찬 기운이 이르며 10하나님의 부시는 기운에 얼음이 얼고 물의 넓이가 줄어지느니라 11그가 습기로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 번개 빛의 구름을 널리 펴신즉 12구름이 인도하시는 대로 두루 행하나니 이는 무릇 그의 명하시는 것을 세계상에 이루려 함이라 13혹 징벌을 위하며 혹 토지를 위하며 혹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구름으로 오게 하시느니라 14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15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 빛으로 번쩍번쩍하게 하시는지 네가 아느냐 16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과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을 네가 아느냐 17남풍으로 하여 땅이 고요할 때에 네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네가 아느냐 18네가 능히 그와 함께하여 부은 거울 같은 견고한 궁창을 펼 수 있느냐 19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너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어두워서 진술하지 못하겠노라 20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어찌 삼키우기를 바랄 자가 있으랴 21사람이 어떤 때는 궁창의 광명을 볼 수 없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 22북방에서는 금빛이 나오나니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23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24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마음에 지혜롭다 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느니라 

1. 뇌성과 번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성을 보여줌

본문 1-4절에 “이로 인하여 내 마음이 떨며 자기 처소에서 떠나느니라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그 소리를 천하에 퍼치시며 번개 빛으로 땅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그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위엄의 울리는 음성을 내시고는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 빛을 금치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말은 엘리후가 욥에게 하는 말입니다. 뇌성과 번개 빛은 하나님께서 내시며, 그것을 보고 사람이 하나님의 위대성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일시에 진동시키시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
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엘리후의 마음이 떨리고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하나님이 기이하게 음성을 울리시며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뇌성, 우레 소리, 번개 빛처럼 우리는 헤아릴 수도 없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보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중생한 사람이라야 가능합니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영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자연을 보고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보면 욥의 세 친구도 중생한 것 같습니다. 뇌성과 번개를 보고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중생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가를 번개와 우레가 날 때마다 발견하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2. 눈, 비, 바람, 구름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보여줌

본문 6-7절에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그 같이 내리게 하시느니라 그가 각 사람의 손을 봉하시나니 이는 그 지으신 모든 사람으로 그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시적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심으로 눈이나 비가 땅에 내린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눈이 많이 오면 꼼짝을 못합니다. 사람들이 손을 봉하고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잘 다니지도 못합니다. 금년에 눈이 많이 와서 교통이 두절되는 데도 많았습니다. 또 미국과 캐나다에도 눈이 많이 왔다고 하는데, 이처럼 눈이 많이 오면 나가서 다니기가 어렵습니다.

본문 8-9절에 “짐승들은 숨는 곳으로 들어가서 그 굴에 머물며 남방 밀실에서는 광풍이 이르고 북방에서는 찬 기운이 이르며”라고 하였습니다. 짐승들은 눈이 많이 오면 굴에 들어갑니다. 남방에 광풍이 이르고 북방에 찬 기운이 이르는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태풍은 언제나 남방 필리핀 옆에서 시작해서 올라오는데, 남방에서는 광풍이 이른다는 것입니다. 또 북에서는 찬바람이 내려오는데, 칼바람이 불면 아주 추워집니다. 오늘 아침이 영하 12도라고 하는데, 북쪽에서 찬바람이 내려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북쪽에서 찬바람을 내려 보내시면 추워지는 것입니다. 또 하늬바람은 북서풍인데, 하나님께서 하늬바람으로 불게 하시면 날이 추워집니다.

본문 10절에 “하나님의 부시는 기운에 얼음이 얼고 물의 넓이가 줄어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찬바람이 내려오면 얼음이 얼고 물의 넓이가 줄어진다는 것입니다.

본문 11-12절에 “그가 습기로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 번개 빛의 구름을 널리 펴신즉 구름이 인도하시는 대로 두루 행하나니 이는 무릇 그의 명하시는 것을 세계상에 이루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구름 위에 물을 실어 비가 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구름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갑니다. 

본문 13절에 “혹 징벌을 위하며 혹 토지를 위하며 혹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구름으로 오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을 통해 비가 많이 오게도 하시고 조금 오게도 하시는데, 어떤 경우에는 징벌을 위해서 내리시는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비가 많이 오는 것에는 몇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징벌을 위하여, 
둘째는 토지를 위하여, 
셋째는 긍휼하심을 위한 것입니다. 비가 와야 모든 것이 잘됩니다. 사람도 비가 와야 식수를 마실 수 있으며, 농사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3. 천체와 기상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다 알 수는 없음

본문 14-15절에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 빛으로 번쩍번쩍하게 하시는지 네가 아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엘리후는 이런 모든 것들을 욥은 알지 못하고 자신만 알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욥에 대해 엘리후가 제대로 알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엘리후도 천체와 뇌성과 풍우 등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성을 어느 정도 발견하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문제는 욥을 무시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자신만 아는 줄 알고 “네가 이것을 아느냐”라고 하면서 욥을 무시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본문 16-18절에 “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과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을 네가 아느냐 남풍으로 하여 땅이 고요할 때에 네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네가 아느냐 네가 능히 그와 함께하여 부은 거울 같은 견고한 궁창을 펼 수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엘리후는 초보적인 진리를 가지고 깊은 신앙의 세계에서 연단 받고 있는 욥을 정죄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욥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언제나 초보적인 진리에 선 사람들이 깊은 신앙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을 정죄합니다. “무슨 예수를 그렇게 믿느냐? 율법주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얕은 신앙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깊은 신앙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죄하며 이기려고 합니다. 연보를 많이 하는 것을 보고 믿음 없는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 바치느냐?”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 산에 기도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정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일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보고 정죄하며 우상의 제물 먹지 않는 것을 보고도 정죄합니다. 이처럼 초보적인 진리에 선 사람들은 높은 진리에 선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엘리후의 몰이해(沒理解)와 잘못된 태도가 오히려 욥을 더욱 괴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이 사람들이 욥이 믿음 지켜나가는 것을 도와주려고 와서는 “이것을 아느냐”라고 하면서, 오히려 괴롭게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욥이 잘 참고 나갔습니다. 예전에 욥의 아내가 남편인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면서 죽으라고 해도 잘 참고 믿음을 지켜 나갔습니다. 네 사람의 친구가 와서 욥을 괴롭게 하고 계속 거듭 거듭 정죄해도 욥은 잘 참고 나가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욥의 신앙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본문 19-22절에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너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어두워서 진술하지 못하겠노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어찌 삼키우기를 바랄 자가 있으랴 사람이 어떤 때는 궁창의 광명을 볼 수 없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 북방에서는 금빛이 나오나니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엘리후는 욥의 죄로 말미암아 지금 그에게 하나님의 빛이 가리어진 상태이니 회개하여 죄를 제거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흑암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광명이 비취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23-24절에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마음에 지혜롭다 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후가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 공의가 무한하신 하나님, 그리고 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욥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니, 그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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