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욥의 부정함과 무능을 드러내심
욥기 40:1-24
1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는 대답할찌니라 3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4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5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 6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7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 8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 9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를 내겠느냐 10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찌니라 11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12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13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둘찌니라 14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15이제 소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볼찌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16그 힘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17그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18그 뼈는 놋관 같고 그 가릿대는 철장같으니 19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은 자가 칼을 주었고 20모든 들짐승의 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식물을 내느니라 21그것이 연 줄기 아래나 갈밭 가운데나 못 속에 엎드리니 22연 그늘이 덮으며 시내 버들이 둘렀구나 23하수가 창일한다 할찌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강이 불어 그 입에 미칠찌라도 자약하니 24그것이 정신차리고 있을 때에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욥기 40:1-24
1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는 대답할찌니라 3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4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5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 6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7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 8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 9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를 내겠느냐 10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찌니라 11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12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13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둘찌니라 14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15이제 소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볼찌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16그 힘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17그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18그 뼈는 놋관 같고 그 가릿대는 철장같으니 19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은 자가 칼을 주었고 20모든 들짐승의 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식물을 내느니라 21그것이 연 줄기 아래나 갈밭 가운데나 못 속에 엎드리니 22연 그늘이 덮으며 시내 버들이 둘렀구나 23하수가 창일한다 할찌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강이 불어 그 입에 미칠찌라도 자약하니 24그것이 정신차리고 있을 때에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1. 여호와께서 욥에게 대답하라고 하심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는 대답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변박하는 자는 변론하는 자라는 뜻으로, 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변박하는 너는 전능자 하나님과 다툴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2. 욥이 여호와께 자기는 말할 수 없는 자라고 함
자신의 미천함을 깨달은 욥
본문 3-4절에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므로 욥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감히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다 자기 미천함을 깨닫고 부족함을 깨닫고 무지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욥도 ‘입을 가리울 뿐이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한, 두 번 말을 했지만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감히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답하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자기가 너무 미천하고 무
지하고 무능하며 부족한 것을 깨달아서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지하고 무능하며 부족한 것을 깨달아서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3. 여호와께서 욥의 부정함과 무능을 증거하심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통해 사람에게 유익을 주시며 공의(公義)를 나타내심
본문 6절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라고 하였습니다.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여 가라사대’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지금 큰 능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통해 사람에게 유익을 주시며 공의(公義)를 나타내심
본문 6절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라고 하였습니다.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여 가라사대’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지금 큰 능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7-8절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대답해보라는 것입니다. 욥이 의롭다고 하고 재앙을 받을 만한 일이 없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불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의로운 사람에게 재앙이 내려오는 것이 불의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이 재앙을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불의한 일이 아니고 더욱 더 복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이 이해를 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전부 다 유익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될 만한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죄가 없는데 왜 고난을 당하느냐?’, 이것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불의하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불의하다고 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내셨느냐? 또 왜 택자와 불택자를 내셨느냐? 또 왜 가룟 유다를 예수님의 제자로 택하셨느냐? 등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사람들에게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선악과를 내신 것도 사람에게 유익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택한 백성을 내신 것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내신 것입니다. 불택자를 내신 것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시는 데에 필요하기 때문에 내신 것입니다. 지옥을 만드신 것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세토록 나타내시려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너무 짧은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불의하다. 왜 그렇게 했느냐?’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욥이 ‘자기는 재앙을 받을 만한 죄가 없는데 왜 이런 재앙을 받느냐?’라고 하였는데, 그것도 짧은 지식에서 비롯한 생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왜 벌하시느냐?’라고 하나님께서 잘못하시는
것같이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불의가 없습니다. 전부 다 선이고 전부가 다 의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 일을 그렇게 하여야 되겠기 때문에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유익이 되겠기에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순종할 뿐입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것같이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불의가 없습니다. 전부 다 선이고 전부가 다 의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 일을 그렇게 하여야 되겠기 때문에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유익이 되겠기에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순종할 뿐입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더러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느냐?’하고 생각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왜 병이 나게 하시느냐? 왜 아들이 죽느냐? 왜 남편이 죽느냐? 또 왜 집안이 쫄딱 망하느냐? 왜 전쟁이 나느냐?’ 등등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잘 믿어보려고
힘을 많이 쓰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집안이 망하는 것처럼 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두고 하나님께서 잘못하신다고 생각하고 그가 불의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야 되겠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없어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징계하셨는데, 그것은 모세의 아내 십보라를 바로 세우시려고 남편 모세를 징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선한 일이고 의로운 일이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불의 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힘을 많이 쓰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집안이 망하는 것처럼 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두고 하나님께서 잘못하신다고 생각하고 그가 불의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야 되겠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없어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징계하셨는데, 그것은 모세의 아내 십보라를 바로 세우시려고 남편 모세를 징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선한 일이고 의로운 일이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불의 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
본문 9절에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를 내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욥이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또 하나님처럼 우레 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겠느냐고 하는 것으로, 욥이 하나님처럼 능력의 역사를 나타낼 수 없고 하나님처럼 우레 소리와 같은 큰 소리를 낼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18장 27절에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 앞에는 티끌과 같은 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 10장 8-9절에는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이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그 말소리를 들었는데 그 말소리를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이 이렇게 다 설 수 없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레 소리를 한 번 낼 때에 천지가 진동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레 소리를 내게 하셨기 때문에 나는 것입니다. 우레 소리를 내게 하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다 하나님께서 내게 하셔서 나는 것입니다. 우레 소리는 구름이 가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번개는 구름이 부딪히는 빛입니다. 구름이 가는 소리를 처음에 내신 분도, 구름이 부딪혀서 빛이 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놓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욥이 ‘나의 미천함을 깨닫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자신은 하나님 앞에 지극히 부족하고 천하며 무능하고 무지몽매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죄악이 가득한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엎드러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과 같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를 내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불의하다고 하겠느냐 너는 스스로 의롭다 하려느냐’고 하였는데, 사람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불의하다고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왜 이렇게 하느냐? 이렇게 할 만한 이유가 없는데 왜 이렇게 하느냐?’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이유가 있으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불의가 없습니다. 다 선하고 다 의롭습니다. 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징계하시는 것과 고난 주시는 것이 다 선한 일입니다. 사람에게 병이 나게 하시는 것과 죽는 것도 불의한 일이 아닙니다. 죽음을 통해서 하늘나
라로 데려가시고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선한 일이고 불의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해하지 못할 만한 일들이 많이 오고, 해석하지 못할 만한 사건이 많이 닥치지만, 하나님께서 불의하신 것이 아니고 사람이 미천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일을 주셔야 되겠기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을 통하여 우리를 연단시키셔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잘못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라로 데려가시고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선한 일이고 불의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해하지 못할 만한 일들이 많이 오고, 해석하지 못할 만한 사건이 많이 닥치지만, 하나님께서 불의하신 것이 아니고 사람이 미천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일을 주셔야 되겠기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을 통하여 우리를 연단시키셔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잘못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날 때에는 욥과 같이 거꾸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다 거꾸러지고 자기 부족과 무능과 미천함이 발견되어서 엎드러지는 것입니다.
위엄과 존귀로 꾸미시고 영광과 화미(華美)를 입으신 하나님
본문 10절에 “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시고 영광과 화미로 스스로 옷 입으셨다는 뜻입니다. ‘화미’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시고 영광과 아름다움으로 스스로 옷 입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 말은 네가 하나님처럼 이렇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위엄과 존귀로 꾸미고 계시며 영광과 화미를 입으셨다는 것입니다. 욥이나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욥기 13장11절에 “그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 위엄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엄과 존귀가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0절에 “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시고 영광과 화미로 스스로 옷 입으셨다는 뜻입니다. ‘화미’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시고 영광과 아름다움으로 스스로 옷 입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 말은 네가 하나님처럼 이렇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위엄과 존귀로 꾸미고 계시며 영광과 화미를 입으셨다는 것입니다. 욥이나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욥기 13장11절에 “그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 위엄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엄과 존귀가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
본문 11-14절에 “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둘찌니라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나 욥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넘치는 노를 쏟으셔서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욥 너도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너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그 처소에게 밟으셔서 티끌에 묻으시는 하나님이신데, 욥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둘찌니라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고 하였는데, 욥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 7절에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신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 물리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악인을 처소에서 밟아서 진토에 묻으시는 하나님이시고, 악인의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두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되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이시고 교만한 자를 밟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진토에 묻으시고 어둑한 곳에 두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본문 14절에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고 하였는데, 욥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오른손이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본문 11-14절에 “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둘찌니라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나 욥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넘치는 노를 쏟으셔서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욥 너도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너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그 처소에게 밟으셔서 티끌에 묻으시는 하나님이신데, 욥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둘찌니라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고 하였는데, 욥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 7절에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신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 물리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악인을 처소에서 밟아서 진토에 묻으시는 하나님이시고, 악인의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두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되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이시고 교만한 자를 밟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진토에 묻으시고 어둑한 곳에 두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본문 14절에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고 하였는데, 욥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오른손이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4. 하마를 두고 여호와의 위대하심과 능력을 증거하심
풀을 먹는 하마의 강인함
본문 15-20절에 “이제 소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볼찌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그 힘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가릿대는 철장 같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은 자가 칼을 주었고 모든 들짐승의 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식물을 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마가 풀을 먹지만 들짐승 중에 하마가 으뜸이라고 하였습니다. ‘칼을 주었고’라고 한 것은 이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를 가지고 모든 것을 잘라서 먹는 것입니다.
풀을 먹는 하마의 강인함
본문 15-20절에 “이제 소같이 풀을 먹는 하마를 볼찌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그 힘은 허리에 있고 그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가릿대는 철장 같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은 자가 칼을 주었고 모든 들짐승의 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식물을 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마가 풀을 먹지만 들짐승 중에 하마가 으뜸이라고 하였습니다. ‘칼을 주었고’라고 한 것은 이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를 가지고 모든 것을 잘라서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풀을 먹으면 힘이 없을 것 같지만 풀을 먹는 것이 이렇게 강합니다. 소는 풀을 먹고 사자는 육식을 합니다. 그런데 풀을 먹는 소와 짐승을 잡아먹는 사자나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소가 이깁니다. 고기 먹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풀을 먹는 소가 이깁니다. 그리고 풀을 먹는 하마가 짐승 중에 힘이 제일 셉니다. 짐승 가운데 하마를 당할 짐승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마는 꼬리를 치면 그 힘이 굉장히 강한 모양입니다. 하마의 꼬리가 짧으나 한 번 맞으면 다 넘어갑니다.
본문 16-18절에 “그 힘은 허리에 있고 세력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가릿대는 철장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당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철장(鐵杖)은 쇠 지팡이를 말합니다.
본문 19-20절에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은 자가 칼을 주었고 모든 들짐승의 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식물을 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식물을 다 내셔서 하마로 하여금 먹고 살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마 앞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하물며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랴
본문 21-24절에 “그것이 연 줄기 아래나 갈밭 가운데나 못 속에 엎드리니 연 그늘이 덮으며 시내 버들이 둘렀구나 하수가 창일한다 할찌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강이 불어 그 입에 미칠찌라도 자약하니 그것이 정신차리고 있을 때에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마가 물가에 사는데, 연줄기 아래나 갈밭 가운데나 시내 버들 나무 속에 사는 것입니다. 또 못 속에 엎드려 있고 강에 엎드려 있습니다. 그런데 하마는 요단 강물이 불어서 그 입에 미칠지라도 태연자약하다는 것입니다. 강물이 많아지면 다 떠내려가고 죽습니다. 그러나 하마는 아무리 비가 많이 와서 창수가 나고 강물이 많아져도 까딱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물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언제나 든든합니다. 꼼짝도 안 합니다.
본문 15절에 ‘내가 너, 욥을 지은 것처럼 그것, 하마도 지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네가 아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견고하고 강하며 어떤 것이 와도 다 이길 수 있는 강한 하마를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런 강한 하마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강하시고 능력이 많으신가를 한 번 생각해 보라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마가 많은 것들을 이겨 물리치는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이기시고 모든 것을 다 정복하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물이 많아 넘쳐도 하마처럼 태연자약하시며 그런 불리한 상황으로부터 아무런 해도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뒤집어진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까딱하지 않으십니다. 태연자약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람의 힘을 가지고 어떻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만능이시며 강하시고 견고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마를 내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강한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마도 모든 것이 당할 수 없는데, 하나님을 어떻게 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많고 그 능력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 사람
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줄을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하마 앞에서도 아무것이 아닌데, 하나님 앞에야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줄을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하마 앞에서도 아무것이 아닌데, 하나님 앞에야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마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본문 24절에 “그것이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에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마가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에 사람이 손으로 그것을 잡을 수 없고 짐승들도 와서 하마에게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짐승, 모든 사람이 다 와서 하마를 칠 수 없고 하마의 코를 꿸 수 없습니다. 사람이 무슨 기계를 가지고서 동물원에 잡아다 놓은 것이 있는데, 기계가 아니면 사람 몇 백 명, 몇 천 명이 와도 손으로는 못 잡습니다. 한 번 꼬리를 치면 다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마를 이렇게 강하게 하셨으므로, 하마 앞에서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야 사람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것을 알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언제나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시고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으신 하나님이시므로, 그 하나님 앞에 인간은 미천하고 연약하고 부족한 것뿐임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욥기 4-5절에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그렇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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