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9일 일요일

욥기 41:1-12 악어에 대한 질문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악어에 대한 질문
욥기 41:1-12

1네가 능히 낚시로 악어를 낚을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2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3그것이 어찌 네게 연속 간구하겠느냐 유순한 말로 네게 이야기하겠느냐 4어찌 너와 계약하고 영영히 네 종이 되겠느냐 5네가 어찌 새를 놀리는 것같이 그것을 놀리겠으며 네 소녀들을 위하여 그것을 매어 두겠느냐 6어찌 어부의 떼가 그것으로 상품을 삼아 상고들 가운데 나눌 수 있겠느냐 7네가 능히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로 그 머리를 찌를 수 있겠느냐 8손을 그것에게 좀 대어 보라 싸울 일이 생각나서 다시는 아니하리라 9잡으려는 소망은 헛것이라 그것을 보기만 하여도 낙담하지 않겠느냐 10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용맹이 없거든 능히 나를 당할 자가 누구냐 11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12내가 악어의 지체와 큰 힘과 훌륭한 구조에 대하여 잠잠치 아니하리라

1. 여호와께서 욥에게 악어(鰐魚)를 들어 질문하심

강한 악어를 사람이 잡을 수 없음

욥기 41장은 악어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악어를 다 압니까? 악어를 보았습니까? 악어는 크기가 보통 한 2, 3m됩니다. 장지뱀과 비슷한데, 장지뱀과 같은 발이 악어에게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악어도 이름에 고기 어(魚)자가 들어간 것을 보면, 물고기 가운데 하나인 모양입니다. 악어는 물에서 삽니다. 도마뱀과도 비슷합니다. 물에 살고 육지에도 올라오곤 하는데, 보통은 물에서 살지만 몸뚱이만 물에 잠그고 머리로는 공기 호흡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악어는 바다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강이나 늪지대 같은 데에서 삽니다. 

본문 1절에 “네가 능히 낚시로 악어를 낚을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악어 중에 큰 악어는 몸뚱이가 송아지만 합니다. 그리고 보통 악어들은 얼마나 성질이 사나운지 모릅니다. 이빨 또한 얼마나 강한지 악
어한테 이길 만한 짐승이 없을 것입니다. 악어의 길이가 한 2, 3m가 되고 굵기는 송아지 몸뚱이만 하므로 그것을 낚시로 낚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줄로 그 코를 꿸 수 없는데, 악어의 코를 꿰려다가 칼날보다 강한 악어의 이빨(아래30개, 위 36개)에 한 번 물리면 물린 곳이 뚝뚝 떨어져 나갑니다. 악어가 말도 잡아먹습니다. 한 번 물면 놓지 않고 결국은 말 같은 것도 잡아먹고 고기도 잡아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낚시로 도무지 그것을 꿸수 없고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없습니다.

본문 2절에 “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수 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줄로 코를 꿰려고 하다가 악어의 날카로운 이빨과 긴 주둥이에 한 번 걸리면 다 죽습니다. 또 갈고리로 아가미를 꿰려고 옆에 갔다가 그 이에 다치면 거기에서 쓰러지고 맙니다.

악어는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는 짐승임

본문 3절에 “그것이 어찌 네게 연속 간구하겠느냐 유순한 말로 네게 이야기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소나 말 같은 것은 아주 유순하지만, 악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생김새도 강퍅하게 생겨서 보기만 해도 무섭습니다. 그 옆에 함부로 못 갑니다.
전에 미국 플로리다 주에 조영엽 목사랑 갔었는데,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옆에 저수지 같은 호수에 악어들이 여러 마리 나와 엎드려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다보면 또 한 마리가 있고 또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갔다가 한 번 물리는 날에는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동차를 타고 가니까 그것들이 차에는 못 올라옵니다. 그런데 그곳의 악어가 아주 사정없이 생겼습니다. 또 무섭게 생기고 무자비하게 생기고 강퍅하게 생겼습니다. 그때 이것은 보통 짐승이 아니고 강퍅한 짐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사정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어찌 너와 계약하고 영영히 네 종이 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 악어와 계약하고 악어를 종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어와 계약을 하려고 해야 사람의 말이 그 속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해도 악어는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는 짐승입니다.

애완품도 상품(商品)도 될 수 없는 악어

본문 5절에 “네가 어찌 새를 놀리는 것같이 그것을 놀리겠으며 네 소녀들을 위하여 그것을 매어 두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악어는 새를 놀리는 것같이 놀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딸들을 위하여 악어를 매어서 아이가 가지고 놀게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악어가
입으로 한 번만 물면 아이가 죽겠는데, 어떻게 함부로 놀리겠습니까?
 
본문 6절에 “어찌 어부의 떼가 그것으로 상품을 삼아 상고들 가운데 나눌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어부의 떼가 그것들을 잡아다가 수산 시장에서 팔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악어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 고기도 먹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져다가 고기를 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악어를 잡을 수 없음

본문 7절에 “네가 능히 창으로 그 가죽을 찌르거나 작살로 그 머리를 찌를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악어가 비늘이 있는데 그것이 마치 철갑 옷과 같은 것이므로, 아무리 좋은 창으로도 능히 그 가죽을 찌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비늘이 쇠 갑옷과 같으므로 창으로 찔러도 안 들어갑니다. 또 머리에도 비늘이 있으므로 작살로 그 머리를 찔러도 안 들어갑니다. 즉, 악어가 갑옷을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이 와서 아무리 물려고 해도 이가 안 들어갑니다. 또 창살도 안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악어를 만드셨습니다.

본문 8절에 “손을 그것에게 좀 대어 보라 싸울 일이 생각나서 다시는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악어에게 손을 대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어가 싸울 것이므로 다시는 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려고 하다가 악어가 한 번 머리를 쳐들면 그 다음에는 무서워서 손을 댈 수가 없고 손을 댔다가 악어한테 물리면 손이 잘릴 것입니다.
바다에는 상어 떼가 있어서 사람을 잡아먹는데, 호수나 강에는 큰 악어가 있습니다. 큰 악어를 한 번 만나면 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악어가 와서 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을 먹는 식인 상어가 있다고 하는데, 보통 상어는 유순한 편입니다. 그런데 악어는 상어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더 강퍅한 짐승입니다.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본문 9절에 “잡으려는 소망은 헛것이라 그것을 보기만 하여도 낙담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악어를 잡으려는 소망은 헛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몇 백 명이 가서 잡으려고 해도 악어는 못 당합니다. 한 번 악어가 물어치우면 다 쓰러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악어는 보기만 해도 낙담합니다.

악어를 만드신 하나님을 사람이 능히 당할 수 없음

본문 10절에 “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용맹이 없거든 능히 나를 당할 자가 누구냐”라고 하였습니다. 악어를 아무나 격동시킬 용맹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악어를 기계가 아니면 잡을 수 없습니다. 동물원에 있는 악어는 기계나 전기를 가지고 잡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계가
아니면 몇 백 명, 몇 천 명이 들러붙어도 못 당합니다. 그 날카로운 이로 한 번씩만 사람을 스치고 지나가도 다 쓰러질 만큼, 악어가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악어도 사람이 못 당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강하심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순종할 것밖에는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악어도 사람이 못 당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당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하라는 대로 순종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갖가지 짐승을 내신 것처럼,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람을 만드심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을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욥기 39장에서부터 보면 갖가지 하나님께서 만드신 짐승들이 나옵니다. 욥기 39장 1-2절에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 수 있느냐 그것이 몇 달 만에 만삭되는지 네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소는 10개월, 토끼는 한 달에 한 번 새끼를 낳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낳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그러므로 노루나 산 염소나 암사슴이 몇 달 만에 새끼를 낳는지 지내보고야 알지, 사람이 하나님께서 해놓으신 것을 지내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쥐는 새끼를 한 달에 한 번씩 낳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은 한 달에 한 번, 어떤 것은 석 달에 한 번 낳고, 어떤 것은 일 년에 한 번 새끼를 낳는데, 그것도 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욥기 39장에 보면 들나귀, 들소, 타조, 말, 매, 독수리와 같은 짐승들이 나옵니다. 그것들도 하나님께서 다 각각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사랑이 없는 것은 타조입니다. 타조가 제일 무정합니다. 알을 낳아놓고는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내버리고 달아납니다. 그 다음에 욥기 40장에는 하마, 41장에는 악어가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여러가지 종류로 만들어놓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사람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타조와 같은 사람도 있고, 말과 같이 차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독수리처럼 남을 잡아먹는 사기꾼과 같은 사람도 있고, 들 나귀처럼 제멋대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마처럼 엎드려가지고 풀을 먹고 사는 사람도 있고, 악어처럼 강에 엎드려가지고 물고기나 짐승을 잡아먹는 강퍅한 사람도 있으며, 유순한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도 그와 같이 여러 가지 종류로 만드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타조를 사랑이 있게 만들 수 없고 악어를 의논의 대상자로 삼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놓으셨기 때문에 만들어놓으신 대로 사는 것입니다. 다 데려다가 길을 들이고 계약을 하고 종을 삼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여러 가지 종류로
만들어놓으신 것처럼, 사람도 여러 가지로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고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도 생긴 그대로 나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고쳐주시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고쳐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사람을 고칠 수 없습니다. 악어와 같이 무서운 사람도 있는데, 아주 강퍅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도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해주시면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아무리 악어와 같은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면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리와 같은 사람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면 이리가 와서 물고 찢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러 가지 험악한 이 세상 가운데에서 보호해주시므로 오늘까지 살게 해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용맹이 없거늘 능히 나를 당할 자가 누구냐”라고 하였습니다. 악어를 만들어놓으신 하나님을 당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악어나 하마와 같은 것들을 사람이 당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그것들을 만들어놓으신 하나님을 어떻게 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못 당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겸손하게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들어놓으신 것도 못 당하는데, 창조자 하나님을 어떻게 당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여러 가지 종류로 만들어놓으신 것처럼, 이 세상에 여러 가지 사건, 여러 가지 시험, 여러 가지 고난, 여러 가지 환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것들을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짐승도 잘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운영하
시는 일,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시는 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난, 고난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보호만 받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는 것뿐입니다. 하나님 밖에는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변경시킬 수도 없으므로, 그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면 살고 보호해주지 않으시면 못 사는 것입니다. 또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들이 많이 있는데, 무슨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이러한 상황을 주시는가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줄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들도 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기 때문에 내신 것입니다. 그것들이 무엇에 필요할지 사람은 잘 모르나, 하나님께서 필요 하시기 때문에 내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오는 고난도 하나님께서 필요하기 때문에 다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이 다 알 수도 없고 또 사람이 당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저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서 하나님께서 이기게 만들어놓으시면 이긴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기게 만들어 놓지 않으시면 이기지 못합니다. 하여간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모든 짐승들을 제어하고 어거하며 그것들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살리고 죽이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오는 갖가지 사건들과 시험들을 어거하시고 섭리하시며 주장하시고 인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악어를 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악어를 죽이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셨기 때문에 그것이 살고 또 하나님께서 죽이시면 죽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기르시면 자라나는 것입니다. 악어와 같은 것도 하나님의 수하에 있습니다. 악어를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면 가만히 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없애시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악어와 같은 험악한 고난이 온다고 해도, 그것도 하나님의 수하에 있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것을 없애시면 없앨 수 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거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야 합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

본문 11절에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슨 공로를 세우고 받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무슨 선을 행했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일을 했다고 해도 그것을 한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욥이 자기가 늘 의롭다고 했지만 그 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즉, 네가 의를 행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갚아주셔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를 행한 자체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욥이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한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므로,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욥기 1장 1절에 보면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가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무엇으로 갚아주실 것이 있습니까?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것 자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으로 갚음을 받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나왔으므로 사람이 갚음을 받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만사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좀 잘한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좋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선을 행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 11절에서처럼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는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연보를 바쳤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주시느냐? 내가 십일조를 일생 동안 드렸는데 왜 이렇게 못살게 되었느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연보도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바친 것이며, 바친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연보 바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왜 잘되게 해주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므로 ‘왜 이렇게 하느냐?’라고 하면 안 됩니다. ‘왜’라는 소리가 들어가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하시는 것으로 믿고 또 하나님만 바라보며 참고 견딤으로 이겨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잘해주시면 일이 됩니다. 악어도 하나님께서 제어해주시면 제어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악어를 죽이시면 그것이 아무리 강해도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알고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나가야 합니다.

본문 9절에 “잡으려는 소망은 헛것이라 그것을 보기만 하여도 낙담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악어를 보기만 해도 무서워서 낙담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어를 만나면 악어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해주시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어도 제어하실 수 있으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내가 뭘 좀 했다고 해서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즉 ‘내가 뭘 잘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느냐? 내가 믿느라고 일생 동안 힘을 썼는데 왜 이렇게 되었느냐? 내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쳤는데 왜 이렇게 되었느냐?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뭘 어떻게 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느냐?’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참고 견디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사를 다 바로 처리해주시기를 기다리며 나가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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