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9일 일요일

욥기 41:12-34 악어를 통한 하나님의 교훈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악어를 통한 하나님의 교훈
욥기 41:12-34

12내가 악어의 지체와 큰 힘과 훌륭한 구조에 대하여 잠잠치 아니하리라 13누가 그 가죽을 벗기겠으며 그 아가미 사이로 들어가겠는고 14누가 그 얼굴의 문을 열 수 있을까 그 두루 있는 이가 두렵구나 15견고한 비늘은 그의 자랑이라 서로 연함이 봉한 것 같구나 16이것, 저것이 한데 붙었으니 바람도 그 사이로 들어가지 못하겠고 17서로 연하여 붙었으니 능히 나눌 수도 없구나 18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광채가 발하고 그 눈은 새벽 눈꺼풀이 열림 같으며 19그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똥이 뛰어나며 20그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솥이 끓는 것과 갈대의 타는 것 같구나 21그 숨이 능히 숯불을 피우니 불꽃이 그 입에서 나
오며 22힘이 그 목에 뭉키었고 두려움이 그 앞에서 뛰는구나 23그 살의 조각들이 서로 연하고 그 몸에 견고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 24그 마음이 돌같이 단단하니 그 단단함이 맷돌 아래짝 같구나 25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라도 두려워하며 경겁하여 창황하며 26칼로 칠찌라도 쓸데없고 창이나 살이나 작살도 소용이 없구나 27그것이 철을 초개같이, 놋을 썩은 나무같이 여기니 28살이라도 그것으로 도망하게 못하겠고 물맷돌도 그것에게는 겨같이 여기우는구나 29몽둥이도 검불같이 보고 창을 던짐을 우습게 여기며 30그 배 아래는 날카로운 와륵 같으니 진흙 위에 타작 기계 같이 자취를 내는구나 31깊은 물로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로 젖는 향기름 같게 하고 32자기 뒤에 광채나는 길을 내니 사람의 보기에 바닷물이 백발 같구나 33땅 위에는 그것 같은 것이 없나니 두려움 없게 지음을 받았음이라 34모든 높은 것을 낮게 보고 모든 교만한 것의 왕이 되느니라 

1. 악어의 힘과 몸의 구조

큰 힘, 날카로운 이와 견고한 비늘

본문 12-13절에 “내가 악어의 지체와 큰 힘과 훌륭한 구조에 대하여 잠잠치 아니하리라 누가 그 가죽을 벗기겠으며 그 아가미 사이로 들어가겠는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어에 대하여 잠잠치 아니하시고 말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 가죽을 벗기겠으며 그
아가미 사이로 들어가겠는고’라고 하였는데, 악어의 입 사이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들어갔는데, 악어가 물면 죽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에 “누가 그 얼굴의 문을 열 수 있을까 그 두루 있는 이가 두렵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얼굴의 문’은 입을 가리킵니다. 악어의 이가 아주 날카롭습니다. 악어의 이가 아래에 30개 있고 위에 36개가 있는데, 날카로운 창과 같은 이가 삥 둘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어가 그 이로 사람을 한 번 물면, 즉 사람이 그 이를 한 번 거쳐 가면 창에 찔린 것처럼 째어집니다. 이런 이가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5-17절에 “견고한 비늘은 그의 자랑이라 서로 연함이 봉한 것 같구나 이것, 저것이 한데 붙었으니 바람도 그 사이로 들어가지 못하겠고 서로 연하여 붙었으니 능히 나눌 수도 없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악어에게 견고한 비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거북이도 비늘이 있습니다. 두 짐승이 다 파충류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악어에게 견고한 비늘이 있어서 사람이 칼로 찔러도 안 들어가고 창으로 찔러도 안 들어갑니다. 철갑옷과 같은 비늘입니다. 비늘이 몸에 딱 붙어있기 때문에 칼로 찔러도 창으로 찔러도 다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람도 안 들어갑니다. 

2. 악어가 보여주는 동작의 두려움

본문 18절에 “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광채가 발하고 그 눈은 새벽 눈꺼풀이 열림 같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악어가 한 번 재채기를 할 것 같으면 물이 광채가 발하는 것처럼 나오고 그 눈은 새벽 눈꺼풀이 번쩍임과 같이 기운차게 번쩍인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자동차가 지나
가도 깜짝 안 합니다. 그냥 눈을 뜨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라는 곳에 갔는데, 거기는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곳입니다. 부근에 가서 인공위성 발사된 곳에 가보자고 했더니, 버스를 타라고 합니다. 이동하기 전날 밤에 거기에서 잤는데, 호텔들이 조그마한 1층짜리들이었습니다. 호텔 프론트에서 나보고 어디에서 자겠느냐고 물어봅니다. 암스트롱이 잔 방에서 자겠느냐, 다른 방에서 자겠느냐 하고 묻습니다. 그래서 같은 값이면 암스트롱이 잔 방에서 자겠다고 했습니다. 암스트롱은 달나라를 처음 간 사람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하룻밤을 잤는데, 거기에서 자도 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인공위성 발사한 곳으로 가는데, 길가에 조그마한 저수지와 같이 물이 고인 곳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악어들이 나와서 엎드려있었습니다. 늪과 같은 곳이었는데, 악어들이 한 3, 4m되는 것들로 여러 마리가 나와 엎드려있습니다. 차로 가는데 또 있고 또 있는데, 특히 눈이 아주 무섭게 생겼습니다. 버스가 가도 눈 깜짝도 안 하고, 새벽별 같이 반짝반짝 하면서 보는 것입니다.
무엇이 와도 무서워하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강하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그 생각이 납니다. 악어의 눈이 새벽 눈꺼풀이 열림과 같이 아주 기운차게 반짝거립니다. 

본문 19절에 “그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똥이 뛰어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입에서 물을 뿌리면 그 물이 마치 횃불이 나오는 것처럼 활기차게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불똥이 뛰어난다는 것은 물방울이 뛰어난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그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솥이 끓는 것과 갈대의 타는 것 같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콧구멍에서 연기가 나온다는 것은 콧구멍에서 기운을 내불면 물들이 다 끓는 것 같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연기를 내뿜는 것처럼 물을 내뿌린다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그 숨이 능히 숯불을 피우니 불꽃이 그 입에서 나오며”라고 하였습니다. 숨을 한 번 훅 내쉬면 물이 쫙 하고 뿌려진다는 것입니다. 불꽃이 나오는 것과 같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3. 악어의 강한 체력과 성질

본문 22절에 “힘이 그 목에 뭉키었고 두려움이 그 앞에서 뛰는구나”라고 하였는데, 악어의 힘은 목에 뭉키어서 그 목에 힘이 있고 모든 짐승들이 무서워서 악어 앞에서 뛴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이 무서워서 악어 앞에서 뛰어 달아나는 것을 ‘두려움이 그 앞에서 뛰는 것’이라 표현하였습니다. 악어에게 잡히면 죽습니다.
악어가 조랑말을 잡아먹는 것을 보니까 말이 어리석습니다. 악어가 오는 것을 살펴보았으면 안 죽었을 텐데 살펴보지 않고 물에다 입을 대고 먹다가 악어가 갑자기 오니까 그만 후덕덕 뛰다가 잡아먹히는 것입니다. 뒤로 뛴 놈은 살았는데, 이놈은 강으로 들어가서 죽었습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살피지 않고 먹는 데에만 도취가 되어 가지고 있으면 죽습니다. 기드온 삼백 용사는 물을 떠서 핥아 먹는 사람들로 이루어 졌습니다. 언제나 경계하지 아니하고 조심하지 아니하며 이렇게 먹는데에만 도취되어 나가면 악어와 같은 마귀에게 잡아먹힐 수 있습니다. 악어 앞에서 두려움으로 짐승들이 다 뜁니다. 그런데 육지로 뛰었으면 잡아먹히지 않았을 것인데, 강으로 뛰어 들어갔으니 말이 맥을 못 추고 잡아먹히게 된 것입니다. 악어는 강에 익숙한 짐승입니다. 

본문 23절에 “그 살의 조각들이 서로 연하고 그 몸에 견고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악어의 살이 땅땅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그 마음이 돌같이 단단하니 그 단단함이 맷돌 아래짝 같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돌같이 단단하다는 것은 아무리 무엇이 와도 꼼짝도 안 하고 가만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무엇인가 오면 물어치우려 하는 것입니다. 맷돌 아래짝과 같이 단단하여 무엇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악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싸워서 다 이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4. 악어 행동의 위엄과 교만

위엄 있고 강퍅한 악어

본문 25-26절에 “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라도 두려워하며 경겁하여 창황하며 칼로 칠찌라도 쓸데없고 창이나 살이나 작살도 소용이 없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악어에게는 견고한 비늘이 있으므로 찔러도 안 들어갑니다. 

본문 27절에 “그것이 철을 초개같이, 놋을 썩은 나무같이 여기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어가 쇠를 풀같이, 놋을 썩은 나무와 같이 여겨서 한번 치면 다 부러진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강한지 꼬리로 한 번 치면 웬만한 것은 다 부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 28절에 “살이라도 그것으로 도망하게 못하겠고 물맷돌도 그것에게는 겨같이 여기우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화살을 쏴도 악어가 도망하게 않고, 물맷돌을 아무리 던져서 쳐도 그 비늘에 턱 맞고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겨와 같이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9절에 “몽둥이도 검불같이 보고 창을 던짐을 우습게 여기며”라고 하였습니다. 몽둥이를 가져가서 때려도 검불과 같이 여기고, 창을 가져다가 찔러도 비늘이 막으므로 창들이 쓸데가 없어 우습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어를 얼마나 견고하게 내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본문 30절에 “그 배 아래는 날카로운 와륵 같으니 진흙 위에 타작기계 같이 자취를 내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악어의 배에 비늘들이 있어서 그 비늘로 움직이며 가는데, 악어가 진흙 땅으로 한 번 지나가면 기왓장 같이 자리를 내면서 간다는 것입니다. 즉, 마치 불도저가 지
나간 것처럼, 악어가 간 자리에는 기왓장과 같이 줄이 서면서 진흙 위에 자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본문 31절에 “깊은 물로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로 젖는 향기름 같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악어가 한 번 지나가면 깊은 물도 물이 설설 끓는 것처럼 하얀 물결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깊은 물로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깊은 물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
니다. 하여간 악어가 한 번 갈 때에는 강의 물이 하얗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어가 너무 빨리 가고 너무 힘 있게 저으니까 바다도 젖는 향기름 같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32절에 “자기 뒤에 광채 나는 길을 내니 사람의 보기에 바닷물이 백발 같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악어가 가면 그 뒤에 광채가 나는 길을 내니 사람이 보기에 바닷물이 하얗게 일어난 자취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땅 위에는 그것 같은 것이 없나니 두려움 없게 지음을 받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땅 위에는 그와 같이 강한 것이 없는데, 악어는 두려움 없이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모든 높은 것을 낮게 보고 모든 교만한 것의 왕이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어는 모든 높은 것을 다 낮추어 보고 교만한 것의 왕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악어가 바다의 왕과 같습니다. 악어를 당할 사람이 없고 짐승도 없습니다.
욥기 41장 1-2절에 “네가 능히 낚시로 악어를 낚을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요새는 기계를 가지고 악어를 잡지만 옛날에는 기계가 없으므로 손으로도 못 잡고 낚시로도 못 잡고 창으로도 못 잡았습니다. 악어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악어가 얼마나 강퍅한지 모릅니다. 아주 강퍅합니다. 또 욥기 41장 3-5절에 “그것이 어찌 네게 연속 간구하겠느냐 유순한 말로 네게 이야기하겠느냐 어찌 너와 계약하고 영영히 네 종이 되겠느냐 네가 어찌 새를 놀리는 것같이 그것을 놀리겠으며 네 소녀들을 위하여 그것을 매어 두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악어와 계약하여 영영히 그를 종으로 삼을 수 없고, 또 새를 놀리는 것처럼 사람이 악어를 놀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소녀들을 위하여 매어서 아이들에게 가지고 장난하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참새와 같은 것은 아이들이 매어서 가지고 장난합니다. 그러나 악어를 매가지고 장난할 수는 없고, 어부들이 그것을 잡아서 수산시장에 가져다가 상품으로 팔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욥 41:5-6). 그런 악어입니다. 그리고 보기만 해도 낙담한다고 하였습니다(욥 41:9).
또 욥기 41장 10절에 “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용맹이 없거든 능히 나를 당할 자가 누구냐”라고 하였습니다. 악어를 보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능력이 많으시고 위대하신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어도 그렇게 강한데, 악어를 내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지혜가 많으시고 얼마나 강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악어를 당할 수 없는데, 어떻게 악어를 만들어내신 하나님을 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어나 하마 등의 여러 가지 짐승들을 내셨는데, 사람은 그저 그것들을 보고 하나님을 알뿐인 것입니다.

갖가지 짐승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심

욥기 39장에는 산 염소, 암사슴이 나옵니다. 욥기 39장 1절에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수 있느냐”라고 하였고, 욥기 39장 5절에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하게 하였느냐”라고 하였으며, 욥기 39장 9절에는 “들소가 어찌 즐겨 네게 복종하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욥기 39장 13-16절 상반절에는 “타조는 즐거이 그 날개를 친다마는 그 깃과 털이 인자를 베푸느냐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모래에서 더워지게 하고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 새끼에게 무정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러 짐승들 가운데 타조가 제일 무정합니다. 알을 낳아가지고 내버리고 달아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다 알을 낳고는 달아 납니다. 그러면 모래가 더워서 타조의 알을 까는 것이고, 타조는 내버려두고 가서 알 까는 데에 와보지도 않습니다. 사람 중에 제일 무정한 사람이 바로 타조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타조와 같이 아주 무정하게 생긴 사람도 있고, 악어와 같이 강퍅하게 눈을 깜박깜박하면서 까딱도 안 하고 마음이 돌같이 굳어서 맷돌 아래짝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 욥기 39장 19절에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내셨기에 그렇지,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욥기 39장 26절에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방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라고 하였고, 39장 27절에는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의지함이냐”라고 하였습니다.
독수리가 뾰족한 곳, 험준한 데, 낭떠러지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칩니다. 그런데 그 짐승이 왜 거기에 둥지를 트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거기에다 틀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왜 매가 남쪽으로 날아가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남쪽으로 날아가게 하셨기 때문에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입니다.
비둘기는 잡아가지고 멀리 가서 놔주면 본래 자기 있던 집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참 재간이 있습니다. 자기 집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있던 비둘기를 잡아서 부산에 가서 놔주어도 자기 집을 찾아오는데, 그것도 하나님께서 찾아오게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산 염소가 일 년에 한 번씩 새끼를 치는 것, 토끼가 다달이 새끼를 낳는 것, 그것들도 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하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소는 10달에 한 번, 말은 12달에 한 번 새끼를 낳는데, 그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낳게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낳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타조가 무정한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또 하마는 물 속에서 아주 힘이 셉니다. 하마의 꼬리는 철장과 같은데, 하마는 창조물 중에 으뜸이며 그 세력을 당할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힘이 세게 만드셨기 때문에 힘이 센 것입니다. 그래서 강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짐승들을 각각 다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강한 것도 만드시고 약한 것도 만드시며 여러 가지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종류를 구별되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각각 구별되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해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각 다르게 해나가십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만 봐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지를 잘 모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이것이다 했는데, 저기에 가면 또 저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데에 가면 또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분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잘 모릅니다. 그저 모른다고 할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묻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왜 그렇게 되는가는 알 수 없습니다. 왜 암사슴이 열 달 만에 새끼를 낳느냐고 물어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낳게 하셨기 때문에 낳는 것이지, 왜 낳는가는 모르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것은 왜 석 달 만에 낳느냐, 또 어떤 것은 한 달 만에 낳느냐고 하는데, 사람은 모릅니다. 그런데 무엇을 보고 좀 아는가 하면 새끼 낳는 것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낳기 전에는 전혀 모르다가 본 다음에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드셨구나 하는 것입니다. 본 다음에 아는 것이지,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다양하며, 사람은 그 사정을 잘 알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서는 이런 역사를 하시고 저기서는 다른 역사를 하십니다. 또 죄로 인해서 고난을 주시는 경우도 있고, 죄가 없지만 고난을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욥은 죄가 없어도 고난을 받은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연단하시려고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는 여러 면, 여러 가지 종류로 역사하십니다.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 성도를 보호하시는 하나님

또 사람도 타조와 같이 무정한 종류, 악어와 같이 강퍅한 종류, 하마와 같이 자기의 힘만 믿고 사는 종류, 말과 같이 싸움을 잘하는 종류, 암사슴과 같은 종류, 들 나귀와 같은 종류 등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하나님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서워서 어떻게 사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악어와 같은 것들, 하마와 같은 것들이 있는데, 어떻게 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다 제재하시고 어거하시며 그것들을 다 인도해주십니다. 

그 이상은 못 온다, 못 한다는 한계를 정해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그것에게 다 잡아먹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마나 악어는 물에서 살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육지에 뛰어 올라와서 다 잡아먹으러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너는 물에서 살아라. 너는 너한테 오는 것이나 잡아먹어라’고 하시며 한계를 정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술집에서나 살아라’하고 악한 자들에게도 한계를 정해놓으셔서 그 이상은 더 못 나오게 하셨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정해진 한계 너머로 오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한계를 정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안에 악어와 같은 사람이 하나 있으면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인데, 그 사람도 하나님의 수하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거라’고 하시면 가만히 있습니다. 아무리 이가 날카로워서 한 벌 걸리면 다 죽을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아예 입을 벌리지 말아라’고 하시면 입을 벌리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간섭하십니다. 한계를 정해주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것들을 눌러주심으로 우리들을 보호해주십니다. 상함이 없도록 성도를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위에 아무리 악어와 같은 무리가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므로 우리는 안전합니다. 그것들이 아무리 물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못 물게 해주십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 사자가 다니엘을 못 잡아 먹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밤새도록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의 입을 봉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자의 입과 다리를 봉해주셔서 사자가 다니엘을 못 잡아먹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악어도 봉해주시고 하마도 봉해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아무리 하마와 같은 것들과 악어와 같은 것들이 많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다 제어해주시고 성도를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한계와 기한을 정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내 시험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리가 변하여 성도가 되고 타조가 변하여 성도가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해나가시므로 하나님만 믿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또 악어와 같은 시험, 하마와 같은 시험, 독수리와 같은 시험, 말과 같이 후덕덕 뛰어와서 하는 시험, 들 나귀와 같은 시험, 들소와 같은 시험, 환난과 어려움이 많이 와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악어와 같은 시험, 들 나귀와 같은 시험이 뛰어 들어오고 독수리와 같이 휙 하고 날아오고 하마와 같은 강한 시험이 왔다고 해도,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제어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들이 다 하나님의 수하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할 아래에 있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다 다스리시고 주장하시며 성도들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 많이 온다고 할지라도, 성도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담대해야 합니다.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까? 이미 말했듯이 그것들이 다 하나님의 수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면 가만히 있고, ‘입을 벌리지 말아라’고 하시면 입을 벌리지 못하고 꼼짝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며 하나님께만 충성하면, 여러 가지 어려움들, 위협들은 전부 다 하나님께서 제어해주시고 눌러주십니다. 그러니까 아무 시험이 와도 겁낼 것이 없습니다. 찬송가에 ‘어디를 가든지 겁낼 것 없다’는 가사가 있는데, 그것이 맞습니다. 이 세상에 이리와 같은 자들이 많고 사자와 같은 자들이 많고 곰과 같은 자들도 많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기 때문에 예수님과 동행만 하면 겁낼 것이 없습니다.

욥이 여러 가지 짐승을 들어 교훈해 주신 하나님을 통해 자신의 무능과 무지를 깨달음

우리가 악어에 대해서 늘 생각해야 합니다. 악어가 아무리 강퍅한 짐승이고 또 내게 악어와 같은 시험이 왔어도 악어도 하나님의 수하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눌러주시면 꼼짝을 못한다. 또 성도는 보호해주신다’는 것을 믿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악어뿐 아니라 다른 종류들이 많이 있어도, 그 한 가지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러 가지를 하나님께서 내셨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는 악어와 같은 시험이 오고, 저 사람에게는 하마와 같은 시험이 오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타조와 같은 시험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들 나귀와 같은 시험이 오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독수리와 같은 시험이 옵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를 가지고 다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다 ‘죄가 있으면 망한다’는 한 가지를 가지고 욥에게 회개하라고 내내 얘기합니다. 그런데 욥기 42장에 가보면 욥의 친구들이 잘못했음이 드러납니다. 그들이 욥과 같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또 욥은 지금까지 자신이 죄가 없는데 왜 고난을 당하느냐에 대하여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짐승들을 들어 말씀해주신 다음에 자기의 무능한 것과 자기의 연약한 것과 자기의 부족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을 보고 하나님 앞에 깨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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