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6일 일요일

시편 44:1-26 은혜를 추억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신뢰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은혜를 추억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신뢰함
시편 44:1-26

1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열조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저희가 우리에게 이르매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2주께서 주의 손으로 열방을 쫓으시고 열조를 심으시며 주께서 민족들은 괴롭게 하시고 열조는 번성케 하셨나이다 3저희가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저희 팔이 저희를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저희를 기뻐하신 연고니이다 4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5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려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6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 7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 8우리가 종일 하나님으로 자랑하였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영히 감사하리이다(셀라)
9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0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11주께서 우리로 먹힐 양같게 하시고 열방 중에 흩으셨나이다 12주께서 주의 백성을 무료로 파심이여 저희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13주께서 우리로 이웃에게 욕을 당케 하시니 둘러 있는 자가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14주께서 우리로 열방 중에 말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케 하셨나이다 15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16나를 비방하고 후욕하는 소리를 인함이요 나의 원수와 보수자의 연고니이다 17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우리 마음이 퇴축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19주께서 우리를 시랑의 처소에서 심히 상해하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20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21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22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23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고 우리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에 구푸리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

1. 열조에게 나타내주신 은혜를 추억하고하나님을 신뢰함

본문 1절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열조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저희가 우리에게 이르매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듣고 그것을 잊지 않고 늘 추억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일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늘 추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본문 2절에 “주께서 주의 손으로 열방을 쫓으시고 열조를 심으시며 주께서 민족들은 괴롭게 하시고 열조는 번성케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애굽에서 인도해주시고 가나안 7족속을 쫓아내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심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방해하며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모든 열방으로 괴롭게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은 내내 지켜서 보호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번성케 해주셨습니다.

본문 3절에 “저희가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저희 팔이 저희를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저희를 기뻐하신 연고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하나님의 은혜로 땅을 얻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른손’은 능력의 손입니다. 그리고 ‘팔’은 주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얼굴의 빛으로 하셨다’는 것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저희를 기뻐하신 연고니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뜻대로 예정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승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옛날과 같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구원해주셨고 또 광야와 같은 세상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통과케 하셨습니다. 또 가나안 7족속을 하나님께서 다 멸하게 해주셨습니다. 물론 가나안 땅을 얻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신 것입니다. 자기 칼과 자기 팔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순전히 은혜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역사를 듣고 오늘날도 그렇게 역사해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주의 오른손과 팔로서, 주의 빛으로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뜻대로 예정하신 그 뜻을 이루시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 폐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다 이루어져나갑니다. 택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열방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의지함

본문 4절에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주장하시고 또 이 세상을 주관하십니다. 또 우리를 위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자는 언제나 든든합니다. 안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왕이 계시다. 우리 왕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왕이시다’, 이렇게 든든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본문 5절에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려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용맹 있는 신앙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왕이 계시므로, 우리가 그를 의지하고 나가면 대적을 다 누르고 발로 밟을 수 있습니다. 개가 자기 주인을 의지하고 집을 잘 보며 도적을 쫒습니다. 짐승도 주인을 의지하면 힘이 나고, 주인이 없을 때는 힘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들도 자기 부모를 의지하고 나가서 힘을 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서 대적을 누르고 또 원수를 발로 밟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므로 어떤 것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본문 6절에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활이나 칼은 자기의 무슨 힘이나 배경, 세상의 것 등을 말합니다. 그러한 것들을 의지하지 않고 왕 되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과거에 어려움 가운데서 구원해주신 것과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오히려 수치를 당케 해주신 것, 또 원수 앞에서 상을 베풀어주신 것을 믿고 의지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우리가 종일 하나님으로 자랑하였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영히 감사하리이다(셀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것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의 체험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울 때에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든든한 신앙을 가지고 대적을 반드시 밟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또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나감으로, 결국 언제나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영히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현재의 고난과 능욕을 하나님께 보고함

본문 9-16절에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먹힐 양 같게 하시고 열방 중에 흩으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무료로 파심이여 저희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이웃에게 욕을 당케 하시니 둘러 있는 자가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열방 중에 말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케 하셨나이다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나를 비방하고 후욕하는 소리를 인함이요 나의 원수와 보수자의 연고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셔서 마치 버리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욕을 당하게 하시고, 군대가 전쟁에 나갔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심으로 전쟁에서 실패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갔다는 것입니다. 지금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빠졌습니까? 전쟁에서 실패하여 군대는 다 돌아서고 많은 물건은 탈취를 당했습니다. 또 많은 백성이 아무 유익을 보지 못하면서 그 사람들에게 팔려가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웃에게는 욕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며 조소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방 중에서는 말거리가 되고 민족들은 머리를 흔들게 됐습니다. 종일 능욕을 당하고 수치가 얼굴을 덮었으며 비방하고 후욕하는 소리가 계속됩니다. 원수가 와서 보복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회개시키시고 바로 세우셔서 앞으로 더 좋은 것을 주실 줄로 믿고 낙심하지 않고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 상황을 마땅히 받아야 할 것으로 알고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보고하는 것입니다.

4. 고난 중에도 주의 길에서 떠나지 않음

믿음을 지킬 수 없을 때에 믿음을 지킴

본문 17절에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비참한 상태에서도 주를 잊지 않은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않은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외부적으로 환난이 오고 핍박이 오고 멸시와 능욕이 오며 조롱이 많이 와도, 자기 양심이 하나님 앞에 깨끗하며 자기는 여전히 믿음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우리 마음이 퇴축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하였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잘될 때 ‘하나님, 하나님’하는 것은 누가 못하겠습니까? 믿음을 지킬 수 없을 때 믿음을 지키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이렇게 어려울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패전(敗戰)하여 많은 사람이 잡혀가고 재산은 다 빼앗겼습니다. 사방에서 멸시와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머리를 흔들며, 형편없이 원수한테 밟히고 종일 능욕을 당합니다. 수치가 얼굴을 덮고 있고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말할 데도 없습니다. 그리고 말해야 알아줄 사람도 없습니다. 이때에 얼마간 마음이 약해지기 쉽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라고 생각하기 쉽니다. 도리어 원수가 잘되고, 믿음 지키는 사람이 원수에 점령당하고 다 빼앗기고 발로 밟히고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얼굴을 들지 못할 만큼 형편없이 된 것입니다. 얼굴에 수치가 덮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에 마음이 약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퇴축(退縮)지 아니하고’라는 것은 그 마음이 실족하지 않고 약해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왜 이렇게 하셨을까’하고 의심하지 않으며 원망도 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열방 중에서 말거리가 되게 하시고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케 하셔도, 나를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고 나를 완전히 버리신 것도 아님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왕이시고 나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나를 안 버리신다. 이것은 내게 유익을 주시려는 것이지 손해를 주시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확실히 믿고 주님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왕이 되신 주님, 나에게 반드시 복이 될 것, 은혜가 될 것, 유익이 될 것만 주시는 주님인 줄 믿고, 그 마음이 퇴축지 않으며, 주의 언약을 지키고, 발걸음으로 주의 길에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 앞에 바른 걸음을 걸어 나갔다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주의 길에서 떠나지 않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행하기가 아주 힘이 듭니다.

주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언약을 어기지 않으며 마음이 퇴축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마음, 의지하는 마음, 담대한 마음을 버리지 않고, 더욱 굳세게 나가야 합니다. 시종일관(始終一貫), 처음 같은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걸음을 주의 길에서 떠나지 않고 여전히 주의 길로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원수에게 밟혀서 다 빼앗기게 만들어 놓으셨고, 하나도 안 돌봐주시고 다 잊어버리신 것처럼 되어 수욕만 당하게 되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가 비참하게 아주 희망 없는 것처럼 내버려두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든든히 믿고 그 길에서 떠나지 않고 잊어버리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꿋꿋이 언약을 지켜나간 것을 보면 하나님 앞에 합격입니다.

우리도 여기서 합격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가고 충성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합격입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에 충신(忠臣)을 알 수 있고, 집이 가난해질 때에 현처(賢妻)를 알 수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가 잘되고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대접을 받을 때에는 전부 다 애국자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어지러워져서 충성할 수 없게 됐을 때에 충신이 드러납니다. 그때에 생명을 내놓고 국가와 왕을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이 나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참된 충신입니다. 그리고 집이 잘되고 남편이 돈을 많이 가져다주고 잘 해줄 때에는 누구나 다 좋은 부인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이 어려워 셋방하나 얻지 못해서 쫓겨 다니고 생활비도 남편이 못 갔다 줘서 굶고 헐벗을 때에 어진 부인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어려울 때에 참된 신자를 아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잘해주실 때에 하나님한테 누가 못하겠습니까? 그렇지만 형편없는 때, 전쟁에 실패하고 쫄딱 망했을 때, 그때에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사람, 신앙의 정조를 변치 않는 사람이 귀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할 일을 여전히 해나갑니다. 언약을 지키고 주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마음이 퇴축지 않습니다. 그 걸음이 주의 길에서 떠나지 않고 여전합니다. 주님께서 보실 때에 그러한 사람이 진짜입니다. 어려울 때에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참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잘될 때 ‘주여, 주여’하는 것은 누가 못하겠습니까? 어려울 때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욥과 같은 신앙

욥기 2장 9절에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부인이 보통 여자입니다. 나쁜 여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해서 복을 받아야지, 이게 무엇입니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다 죽고, 재산은 하루아침에 다 없어졌습니다. 몸이라도 건강하면 그나마 괜찮겠는데, 몸에는 독창이 나서 아주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그래서 ‘남 보기 부끄럽지 않느냐? 죽지, 살아서 무엇 하겠느냐’고 여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한 것입니다. 욥의 아내가 보통 여자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욥은 여전히 믿음을 지켜나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온 신앙이 바로 욥과 같은 신앙입니다. 어려울 때에 하나님을 잊지 않고 언약을 계속 지키며 마음이 퇴축지 않습니다. 그리고 걸음으로 주의 길에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잘될 때와 같은 여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여전히 힘 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어려울 때에 마음이 퇴축되어 ‘이런 상태인데, 내가 무엇을 하겠느냐?’하고 뒷걸음질 쳐서는 안 됩니다. ‘내가 왜 환난을 당했을까?’라고 하며 자포
자기(自暴自棄)하면 안 됩니다. ‘과거에 바로 믿으려고 했던 것이 쓸데 없다. 바로 믿으려고 했으면 좀 잘되어야 할 텐데, 바로 믿으려고 했는데 이런 결과를 초래했으니, 바로 믿을 필요가 있겠는가? 도리어 안 믿는 사람이 더 잘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안 믿는 사람보다도 못한데, 무엇을 믿는다고 할 수 있겠나?’,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나오면 그 마음이 퇴축한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의지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평안할 때나 잘될 때나 환난 당할 때나 여전히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또 ‘나는 이제 하나님께서 버리셨나보다’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으로 주시고 은혜로 주신 것이다. 반드시 유익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배워서 앞으로 어떤 환난이 올지 모르는데, 환난이 올 때 이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평안할 때에 이 말씀을 잘 배워뒀다가, 환난이 올 때 이 말씀을 써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보면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언제나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언제나 전쟁에서 승리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 앞에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을 받고 언제나 물질이
넉넉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도 가다가 때때로 이런 큰 환난을 당합니다. 형편없이 비참한 상태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안 믿는 사람은 하루 종일 조롱을 합니다. “네까짓 것들이 무엇을 믿는다고 하느냐? 나는 안 믿어도 너보다 낫다. 믿는다고 하면서
요새 그 꼴이 되었느냐?”라고 하면서 비방을 하는 것입니다.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양심은 깨끗하지만 사태가 이렇게 되었을 때, 성도는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때에 우리가 네 가지를 믿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왕이시요 나의 신랑이시요 나의 생명이시다’라고 해야 합니다. 주님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언약을 어기지 않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여전히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쫄딱 망하고도 여전히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 왜 환난을 받는지 생각해봅시다. 믿음 나쁜 사람만 환난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성도는 아주 비참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주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언약을 지키며 그 마음이 퇴축지 않았습니다. 그 걸음이 주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그가 욥과 같은 신앙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도도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좋은 사람도 환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조금도 마음이 약해지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여전히 처음 믿음을 가지고 나가는것이 중요하고 귀합니다. 그러한 믿음이 보배로운 신앙입니다. 우리가 다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보면 예수님 믿는 사람이 언제나 다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 욥과 같은 성도라도 큰 환난을 당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참한 상태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여전히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깨끗한 신앙 양심을 가지고 믿음을 지켜나감

본문 19절에 “주께서 우리를 시랑의 처소에서 심히 상해하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상태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리와 같은 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손해를 많이 보게 하셨습니다. 다 죽게 되었고 살 희망이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20-21절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린 적도 없고 이방신에서 손을 편 적도 없다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라고 하였는데, 양심 상으로 하나님께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께만 향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환난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잘못 지키는 사람만 환난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이 이만큼 깨끗하고 주의 언약을 이만큼 지키고 발걸음을 주의 길에서 이만큼 떠나지 아니하였어도, 이런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성도가 신앙 양심을 써서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을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지금도 그것을 믿고 깨끗한 양심, 깨끗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리를 해보면, 고난 중에 주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첫째는 아무리 환난이 많아도 주를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마음이 퇴축지 않은 것입니다. 
넷째는 걸음이 주의 길을 떠나지 않은 것입니다. 
다섯째는 깨끗한 신앙 양심을 가지고 믿음을 지켜나갔다는 것입니다. 
청결한 양심을 가지고 양심에 가책이 없을 만큼 자기가 이 믿음을 지켜 나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래서 환난을 이기고 여러가지 시험을 이기며 나가야겠습니다. 언제나 진리는 진리입니다. 언제나 옳은 길은 떠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주님께서 나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말씀 지키는 것에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지켜나가다가 잘못되면 ‘내가 잘못 지켜나갔나?’하는 생각이 들어오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성경대로 해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환난이 오고 잘못되어도, 조금의 다른 것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옳은 것은 옳은 것대로 나가야 합니다. 환난이 들어오면 겪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주의 일에서 떠나지 않고 깨달은 양심을 지키며 계속 나가야만 합니다. 그러면 죽어도 됩니다. 그렇게 하다가 죽으면 하나님 앞에서 상급이 더 큽니다. 또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건져주십니다. 반드시 건져주실 때가 옵니다.

5. 사경(死境)에서도 주의 인자를 바라보고 기도함

본문 22절에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로마서 8장 36절에도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변함없이, 믿음을 잘 지킨 사람이나 잘못지킨 사람이나 종일 주을 위해서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가 환난 들어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다. 모든 환난을 다 달게 받고 환난 가운데서 믿음을 계속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23-24절에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고 우리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가리우시고 고난과 압제를 다 잊어버리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영영히 잊어버리신 것과 같은 상태이십니다.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께서 나를 안 버리실 것을 믿으며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태는 마치 버리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안 버리신다. 나의 하나님이시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우리 영혼은 진토에 구푸리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형편없이 거꾸러졌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5가지를 행하였습니다. 즉, 주를 떠나지 않고, 언약을 지키고, 마음이 퇴축지 않으며, 주의 길을 떠나지 않고, 깨끗한 신앙 양심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대망(大望)하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해주실 것을 믿고 땅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며 용기를 얻는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건져주실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아주 좋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잘될 때에만 감사하고, 환난이 들어오면 낙심하고 원망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다 죽을 것 같고 땅에 엎드러졌어도, 하나님의 인자를 바라보고 구원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는 생활, 그것이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금보다 귀한 진짜 믿음입니다. 잘될 때 ‘주여, 주여’하다가 잘못 될 때 ‘주여, 주여’ 소리가 다 없어지고 낙망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처음 믿음을 끝까지 계속 가지고 나가는 것이 얼마나 보배롭습니까? 그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느니라’고 하였는데,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살 수 없는 데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살 수 없는 데에서 하나님께서 나의 왕이신 것을 믿고 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고, 하나님을 자기의 힘으로 삼고 살고, 도와주실 것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고, 과거에 열조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구원해주실 것이다”라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주신 체험이 다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 역사를 믿고 ‘과거에 건져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구원해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나를 반드시 건져주실 것으로 믿고, 처음 믿음을 끝까지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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