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8일 수요일

역대상 9:1-17 포로 귀환 후 예루살렘에 거한 자들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포로 귀환 후 예루살렘에 거한 자들
역대상 9:1-17

1온 이스라엘이 그 보계대로 계수되고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2먼저 그 본성으로 돌아와서 그 기업에 거한 자는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과 느디님 사람들이라 3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 4유다의 아들 베레스 자손 중에 우대니 저는 암미훗의 아들이요 오므리의 손자요 이므리의 증손이요 바니의 현손이며 5실로 사람 중에서는 장자 아사야와 그 아들들이요 6세라 자손 중에서는 여우엘과 그 형제 육백구십 인이요 7베냐민 자손 중에서는 핫스누아의 증손 호다위아의 손자 므술람의 아들 살루요 8여로함의 아들 이브느야와 미그리의 손자 웃시의 아들 엘라요 이브니야의 증손 르우엘의 손자 스바댜의 아들 무술람이요 9또 저의 형제들이라 그 보계대로 계수하면 구백오십륙 인이니 다 그 집의 족장된 자들이더라 10제사장 중에서는 여다야와 여호야립과 야긴과 11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아사랴니 저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손이며 12또 아다야니 저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바스훌의 손자요 말기야의 증손이며 또 마아새니 저는 아디엘의 아들이요 야세라의 손자요 므술람의 증손이요 므실레밋의 현손이요 임멜의 오대손이며 13또 그 형제들이니 그 집의 족장이라 하나님의 전의 일에 수종들 재능이 있는 자가 모두 일천칠백륙십 인이더라 14레위 사람 중에서는 므라리 자손 스마야니 저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며 15또 박박갈과 헤레스와 갈랄과 맛다냐니 저는 미가의 아들이요 시그리의 손자요 아삽의 증손이며 16또 오바댜니 저는 스마야의 아들이요 갈랄의 손자요 여두둔의 증손이며 또 베레갸니 저는 아사의 아들이요 엘가나의 손자라 느도바 사람의 향리에 거하였더라 17문지기는 살룸과 악굽과 달몬과 아히만과 그 형제들이니 살룸은 그 두목이라


1. 포로 귀환 때 먼저 귀환한 자들

본문 1절에 “온 이스라엘이 그 보계대로 계수되고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족보는 궁중 문서인 열왕기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보고 확증한 다음에 재차 기록한 것으로, 성경은 확실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 가서 칠십 년간 포로 생활을 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던 이유는 ‘범죄한 죄의 값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혀놓았습니다. 즉,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지은 죄 값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죄 값으로 나라가 망하고, 죄 값으로 다른 나라에 포로가 되고, 죄 값으로 종살이하게 된 사실을 여기서 다시 한 번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는 그런 죄 가운데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이렇게 죄 값은 하나님의 징계요, 사망이요, 패전이요, 포로요, 종살이하는 것입니다. 죄에서 떠나야만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본문 2절에 “먼저 그 본성으로 돌아와서 그 기업에 거한 자는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과 느디님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언급된 사람들이 유다 인들이 포로 생활을 멈추고 귀환할 때 제일 먼저 돌아온 자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다 성전에서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본국으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인도하기 위하여 앞장서서 돌아왔고 그 다음에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 사람들과 성전 심부름을 맡은 느디님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 

이와 같이 앞장설 자가 늘 앞장서야 하며, 먼저 돌아올 자가 먼저 돌아와야 합니다. 언제나 책임을 맡은 사람이 앞장서 나가야 할 것을 여기서 배워야 합니다. 앞장서야 할 자들은 직분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목사가 제일 먼저 앞장서고, 장로가 앞장서고, 집사가 앞장서고, 권사가 앞장서고, 주일학교 반사가 앞장서야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2. 예루살렘에 거한 자들

본문 3-9절에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 유다의 아들 베레스 자손 중에 우대니 저는 암미훗의 아들이요 오므리의 손자요 이므리의 증손이요 바니의 현손이며 실로 사람 중에서는 장자 아사야와 그 아들들이요 세라 자손 중에서는 여우엘과 그 형제 육백 구십 인이요 베냐민 자손 중에서는 핫스누아의 증손 호다위아의 손자 므술람의 아들 살루요 여로함의 아들 이브느야와 미그리의 손자 웃시의 아들 엘라요 이브니야의 증손 르우엘의 손자 스바댜의 아들 무술람이요 또 저의 형제들이라 그 보계대로 계수하면 구백 오십 륙 인이니 다 그 집의 족장된 자들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구백 오십 육 인이 올라왔습니다. 

성전 일을 할 때 제일 앞장서 나가야 할 사람은 앞장서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거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올때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이 앞장서서 돌아 왔습니다. 열 두 지파 가운데 유다 자손이 먼저이고 둘째가 베냐민 자손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왜 앞장을 섰습니까?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열 지파로 된 북 이스라엘과 유다와 베냐민 지파로 된 남 유다로 갈라진 후, 베냐민 지파는 언제나 유다 지파를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유다지파와 함께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갈 때도 같이 잡혀간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 열 지파는 남 유다보다 먼저 나라가 망해서 호세아 왕 구 년, 즉 주전 칠백 이십 일 년에 앗수르 나라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앗수르 왕이 북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서 할라와 하볼과 고산 하숫가 여러 지방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리고 남쪽 유다 나라는 주전 육백육 년, 즉, 북쪽 나라가 망한 다음 약 백 여 년 후에 망했습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이 망할 때 한 민족이던 유다로 넘어온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또 북 이스라엘 나라가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 간 후에도 남쪽 유다 나라가 계속 있었으므로 앗수르로 끌려간 사람들 중에서도 도망쳐 남쪽 유다 나라로 많이 왔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 또 다른 지파들도 도망 왔습니다. 그래서 유다 나라는 여러 지파 사람이 많이 와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남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때에는 원래의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 외의 여러 지파 사람도 잡혀갔습니다. 또 유다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간 뒤에도 유다에는 빈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벨론 왕이 다 잡아간 것이 아니라 미약하고 가난한 빈민들은 유다 나라에 두고 유능한 사람만 잡아갔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유다 나라가 지속되는 동안 북쪽의 여러 지파들이 도망쳐서, 혹은 국경을 넘어서 유다 나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칠십 년 후에 바벨론에 포로 되었던 유다 사람들이 돌아올 때에 유다와 베냐민 사람과 함께 다른 지파 사람들도 섞여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포로 생활을 접고 돌아온 다음에는 열 두 지파 사람들이 전부 유다 나라에서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37장 22절에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찌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한 나라를 다시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또 한 임금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왕국 건설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후에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 고향에서 살고 예루살렘에 살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는 원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자꾸 쳐들어오려고 하여 아주 위험하였고, 성전을 지어야 하므로 공사도 커서 일을 많이 해야 했습니다. 포로 생활하면서 가져온 것을 성전 짓는 데에 다 받쳐야 하니 예루살렘에서 사는 것은 큰 고역이었던 것입니다. 

보통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면 시골에서 살기를 좋아했는데, 시골에서 살면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원수가 쳐들어오지도 않고, 성전 지을 노력과 수고가 없어도 되고, 성전 짓는 일에 연보를 바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시골에서는 편안하게 농사를 짓고 잘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편안하게 살기 원하는 사람은 시골로 가십시오. 그리고 시골에서도 하나님을 섬깁니다. 제사장이 각 지파에 섞여서 살고, 제사장이 거할 성읍도 각 지파에서 제비를 뽑아 주었기 때문에 어느 지파나 어느 지방에나 제사장이 다 있었습니다. 각 지역의 제사장이 율법을 가르쳐주었고, 하나님 섬기는 법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서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신앙 생활을 하려고 시골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살기 원하는 사람은 생명을 내놓고, 있는 것 다 바칠 각오를 하고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보통은 못갑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살겠다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축복해주었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 11장 2절에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들은 가서 수고하지 못하지만, 위태로운 곳에 가서 성전 지을 각오를 하는 사람에게 축복은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는 사람은 원수와 싸워야 하고, 생명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래도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시골에 있어야 될 사람이 있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은 개척교회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것은 다른 사람이 다 지어놓은 큰 교회에서 편안히 신앙 생활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새는 어떤 사람이 많습니까?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서 개척교회하러 나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예배당 다 지어놓은 곳으로 가자고 하며 뒷자리에 섞여 앉아 있습니다. 이유는 개척교회에 나가면 연보하라는 것과 예배당 지으라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다 빼앗을 것 같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누구를 기뻐하시겠습니까?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생명 운동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성전을 건축하는데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 물질도 바치고, 원수와 싸우며 생명 운동하는 것이 예루살렘을 짓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입니다. 후대에도 남는 일이고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편안하게 있으면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십 년, 삼십 년 있어도 성전 하나 짓지 못하고, 봉사도 못하고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입니다. 편안하게 사는 것은 썩어진 생활입니다. 또 연보 안하고 뭐하겠습니까? 자기가 갈 때 돈을 지고 가겠습니까? 다 내놓고 가는 것입니다. 연보 안하고 돈 묶어놓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면 오늘 저녁에라도 빈손 들고 가야 합니다. 돈도 자기 것이 아니고, 자손도 그 돈을 다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가장 가치가 있습니다. 당시에 이것을 위해 살 결심을 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백성들이 그런 사람을 축복해주었다고 했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며칠을 살아도 예루살렘 생활을 하다가 죽는 것이 좋습니다. 시골에서 썩어진 생활 백 년 하다가 죽으면 뭐합니까? 얼마를 살아도 예루살렘 생활을 하며 할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 의미 있습니다. 성전을 짓고, 봉사를 하고, 대적과 싸우고, 이스라엘을 건설하는데 앞장 서 나가는 일을 하는 것이 더욱 가치 있습니다. 언제나 일할 곳을 찾아 가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 많이 할 곳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편안할 곳 찾아다니는 것은 죽은 것이고 썩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생을 많이 하고, 선한 싸움을 많이 싸워야 하고, 많이 참고, 봉사 많이 하고, 희생을 하고, 노력할 곳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영원한 집을 지어놓고 가는 사람입니다. 

또 봉사할 때도 앞장서서 해야 합니다. 지난 주 중․고등부, 청년부 강습기간 중, 창광교회 청년부 학생들이 칠백 개 정도나 되는 많은 식판을 앞장서서 닦아주어서 집사님들이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잘했다고 하였습니다. 같이 기도원 생활을 하여도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 생활, 또 어떤 사람은 시골 생활을 하고 옵니다. 어디를 가나 우리는 예루살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미국에 이민을 가야 할지, 안 가야 할지를 물어보는데, 내게 묻지 말고 한국에 있
어야 예루살렘 생활을 할지, 미국에 있어야 예루살렘 생활을 할지는 본인이 더 잘 알 것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어디로 가야 영적 성전을 잘 지을 수 있는지 판단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도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이 귀하므로 먼저 기록한 것이고, 백성들도 축복해준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전(殿)에서 시종드는 제사장들

본문 10-13절에 “제사장 중에서는 여다야와 여호야립과 야긴과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아사랴니 저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손이며 또 아다야니 저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바스훌의 손자요 말기야의 증손이며 또 마아새니 저는 아디엘의 아들이요 야세라의 손자요 므술람의 증손이요 므실레밋의 현손이요 임멜의 오대손이며 또 그 형제들이니 그 집의 족장이라 하나님의 전의 일에 수종들 재능이 있는 자가 모두 일천 칠백륙십 인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을 맡아 봉사할 많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시중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시중드는 데 재능이 있어서 그 재능을 다 사용할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시중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재능)대로 하나님의 일에 시중들고 봉사해야 합니다. 각자가 교회와 성도에 대해 봉사할 것을 찾아 해야 합니다. 예배당에도 봉사할 일이 많고, 사경회 때도 봉사할 일이 많고, 식당에서도 봉사할 일이 많습니다. 청소라든지 지방에서 오는 교인들에 대한 봉사, 환자들에 대한 봉사 등, 일이 많이 있습니다. 기도원의 일도 태산같이 밀려있기 때문에 계속해도 일이 많습니다. 지금은 기도원 물받이 통로 만드는 공사가 한창인데, 나는 거기서 가운데는 높아지고 양쪽 물매가 잘되도록 봐주고 있습니다. 하여간 기도원에 일이 많은데 천막 치는 일도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립니다. 
성도가 일을 많이 하는 교회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봉사가 많은 교회,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고, 연보도 많이 하고, 성전 짓는 것도 많이 하고 가면 하나님 앞에 가서 상급이 많이 있습니다. 편안하게 예수 믿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썩어진 생각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잘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도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본문에 거론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재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에 시중들게 하신 것입니다.


4. 성전 일을 도운 레위인들

본문 14-16절에 “레위 사람 중에서는 므라리 자손 스마야니 저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며 또 박박갈과 헤레스와 갈랄과 맛다냐니 저는 미가의 아들이요 시그리의 손자요 아삽의 증손이며 또 오바댜니 저는 스마야의 아들이요 갈랄의 손자요 여두둔의 증손이며 또 베레갸니 저는 아사의 아들이요 엘가나의 손자라 느도바 사람의 향리에 거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베레갸는 향리에 거하였는데, 자기 고향에서 평범하게 살면서 거기에 있는 제사장을 도와주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상급도 더 많이 받을 것입니다. 믿는 일도 잘했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습니다. 향리에 거한 사람은 편안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데는 이런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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