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8일 수요일

역대상 8:1-40 베냐민의 족보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베냐민의 족보
역대상 8:1-40

1베냐민의 낳은 자는 맏아들 벨라와 둘째 아스벨과 셋째 아하라와 2넷째 노하와 다섯째 라바며 3벨라에게 아들들이 있으니 곧 앗달과 게라와 아비훗과 4아비수아와 나아만과 아호아와 5게라와 스부반과 후람이며 6에훗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저희는 게바 거민의 족장으로서 사로잡아 마나핫으로 가되 7곧 나아만과 아히야와 게라를 사로잡아 갔고 그가 또 웃사와 아히훗을 낳았으며 8사하라임은 두 아내 후심과 바아라를 내어 보낸 후에 모압 땅에서 자녀를 낳았으니 9그 아내 호데스에게서 낳은 자는 요밥과 시비야와 메사와 말감과 10여우스와 사갸와 미르마라 이 아들들은 족장이며 11또 그 아내 후심에게서 아비둡과 엘바알을 낳았으며 12엘바알의 아들들은 에벨과 미삼과 세멧이니 저는 오노와 롯과 그 향리를 세웠고 13또 브리아와 세마니 저희는 아얄론 거민의 족장이 되어 가드 거민을 쫓아내었더라 14아히요와 사삭과 여레못과 15스바댜와 아랏과 에델과 16미가엘과 이스바와 요하는 다 브리아의 아들들이요 17스바댜와 므술람과 히스기와 헤벨과 18이스므래와 이슬리아와 요밥은 다 엘바알의 아들들이요 19야김과 시그리와 삽디와 20엘리에내와 실르대와 엘리엘과 21아다야와 브라야와 시므랏은 다 시므이의 아들들이요 22이스반과 에벨과 엘리엘과 23압돈과 시그리와 하난과 24하나냐와 엘람과 안도디야와 25이브드야와 브누엘은 다 사삭의 아들들이요 26삼스래와 스하랴와 아달랴와 27야아레시야와 엘리야와 시그리는 다 여로함의 아들들이니 28이는 다 족장이요 대대로 두목이라 예루살렘에 거하였더라 29기브온의 조상 여이엘은 기브온에 거하였으니 그 아내의 이름은 마아가며 30장자는 압돈이요 다음은 술과 기스와 바알과 나답과 31그돌과 아히오와 세겔이며 32미글롯은 시므아를 낳았으며 이 무리가 그 형제로 더불어 서로 대하여 예루살렘에 거하였더라 33넬은 기스를 낳았고 기스는 사울을 낳았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 34요나단의 아들은 무립바알이라 므립바알이 미가를 낳았고 35미가의 아들들은 비돈과 멜렉과 다레아와 아하스며 36아하스는 여호앗다를 낳았고 여호앗다는 알레멧과 아스마웻과 시므리를 낳았고 시므리는 모사를 낳았고 37모사는 비느아를 낳았으며 비느아의 아들은 라바요 그 아들은 엘르아사요 그 아들은 아셀이며 38아셀에게 여섯 아들이 있어 그 이름이 이러하니 아스리감과 보그루와 이스마엘과 스아랴와 오바댜와 하난이라 아셀의 모든 아들이 이러하며 39그 아우 에섹의 아들은 이러하니 그 장자는 울람이요 둘째는 여우스요 셋째는 엘리벨렛이며
40울람의 아들은 다 큰 용사요 활을 잘 쏘는 자라 아들과 손자가 많아 모두 일백오십 인이었더라 베냐민의 자손들은 이러하였더라 

1. 베냐민의 자손들

역대상 8장은 베냐민의 자손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본문 앞 장 역대상 7장 6-7절에 “베냐민의 아들들은 벨라와 베겔과 여디아엘 세 사람이며 벨라의 아들들은 에스본과 우시와 웃시엘과 여리못과 이리 다섯 사람이니 다 그 집의 족장이요 큰 용사라 그 보계대로 계수하면 이만 이천 삼십 사 인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인 8장에는 후손들이 더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베냐민 자손을 특별히 기록한 것은 하나님께서 베냐민 자손을 통하여 크게 역사하신 것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베냐민 자손들의 수가 상당히 많았는데, 사사기 20장에 보면 나중에 많이 죽었습니다. 사사기 20장 35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 일백을 죽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사사기 20장 44절에 “베냐민 중에서 엎드러진 자가 일만 팔천이니 다 용사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사사기 20장 45-46절에 “그들이 몸을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 길에서 이스라엘이 또 오천 명을 이삭 줍듯 하고 이날에 베냐민의 칼을 빼는 자의 엎드러진 것이 모두 이만 오천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총 칠만 여명이 죽고 겨우 육백 명이 남았습니다. 사사기 20장 47절에 “베냐민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
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 달을 지내었더라”고 하였는데, 베냐민 지파와 이스라엘 지파가 전쟁을 여러 차례 하는 가운데 베냐민 자손이 거의 다 망하게 된 것입니다. 베냐민의 족속이 전쟁에서 전멸 하다시피 했습니다. 그 전에 이렇게 번성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약한 가운데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심

이렇게 다 망하다시피 했던 베냐민 족속이지만, 열두 지파 가운데 한 지파가 없어지면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성하게 해주셨습니다. 특별히 베냐민 자손 중에 전쟁에서 다 망하게 된 후에 남은 자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교만했던 죄를 많이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사실 전쟁을 하지 않아야 했었는데,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싸우자고 하여 거의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만한 죄를 철저히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섭리로 다시 번성케 해주셨습니다. 베냐민 자손 가운데 특별히 에훗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6-7절에 “에훗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저희는 게바 거민의 족장으로서 사로잡아 마나핫으로 가되 곧 나아만과 아히야와 게라를 사로잡아 갔고 그가 또 웃사와 아히훗을 낳았으며”라고 했습니다. 사사기 3장 15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베냐민 사람, 왼손잡이 에훗을 사사로 세우셔서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모압 나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 시켜주셨습니다. 베냐민이 이렇게 훌륭한 지파였는데, 거의 다 망해서 다 죽고 칠만 오천 명 중에 육백 명 정도만 남았으니 결국 백 명 중 한 명 정도만 남은 것입니다. 백 명 중 아흔 아홉은 죽고 하나 정도만 남게 되어 비참한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러나 미약한 베냐민 자손이 회개하므로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고, 또 그 베냐민 자손 가운데서 유명한 에훗이라는 사사가 나게 하셔서 대적, 모압 나라 왕 에글론을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에훗의 아들들은 게바 주민들을 정복하고 그들을 마나핫으로 다 이민시켰는데, 이렇게 강한 자들이 많이 나오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셨습니다. 거의 다 망해서 백분지 일도 남지 않은 미약한 존재라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번성케 해주시고 강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유명한 사사도 나오게 해주셔서 다른 나라 사람을 정복하고 이민까지 시킬 수 있는 큰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이렇게 미약한 가운데서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그런 성도들을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8-12절에 “사하라임은 두 아내 후심과 바아라를 내어 보낸 후에 모압 땅에서 자녀를 낳았으니 그 아내 호데스에게서 낳은 자는 요밥과 시비야와 메사와 말감과 여우스와 사갸와 미르마라 이 아들들은 족장이며 또 그 아내 후심에게서 아비둡과 엘바알을 낳았으며 엘바알의 아들들은 에벨과 미삼과 세멧이니 저는 오노와 롯과 그 향리를 세웠고”라고 하였습니다. 후심을 쫓아 낼 때 후심이 낳은 아이와 함께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쫓겨난 자의 자손이 이제는 잘됐습니다. 쫓겨난 자의 아들들이 잘돼서 오노와 롯과 그 향리를 건축할 만큼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쫓겨난 자도 이렇게 잘되게 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하갈을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축복하시고 큰 민족이 되며 강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마엘 자손이 큰 민족이 돼서 강하게 됐습니다. 이스마엘 자손은 오늘날의 아랍 족속입니다.

김정규 목사님이 호주에서 사경회를 하고 돌아와서 기도원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보고를 하셨습니다. 호주 사람들은 백인종으로 영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인데, 인구가 얼마 안 되어 꽤 많은 수의 다른 나라 사람들을 이민자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 중에 아랍 사람 십만 명을 여러 해 전에 받아 들였는데, 그들이 아주 장사들이라 힘이 세고 아이는 보통 여섯 씩 낳는데 여섯 낳고도 끄떡 없이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건강이 백인종이나 황인종보다도 낫다는데, 처음에는 십만 명이던 아랍 사람들이 한 명이 여섯 씩 낳아 지금은 몇 십만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일하기를 싫어해서 그저 정부에서 보조만 받아 살다보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호주에 이민 가서 일을 잘하는데 그 사람들은 안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주 나라가 땅은 넓은데 한국보다 많이 뒤떨어졌다고 합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고 게다가 호주에 온 백인종들이 대개는 영국에서 죄 짓고 쫓겨 온 사람들이라는데 근로성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도 옛날에 제주도로 귀양살이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근로성이 좋지 않고 일을 잘 안 한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무슨 기계 문명이나 경제적으로 한국 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지금 소련도 경제적으로 한국보다 못 합니다. 그 사람들이 한국에서 돈 좀 얻어 가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한국 경제가 소련보다 나아진 것입니다. 또 멕시코 사람들은 아주 건강합니다. 하루 종일 일해도 피곤하지 않다고들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조금만 일해도 “아이고, 피곤하다, 피곤하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은 하루 종일 나와서 노동을 해도 피곤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돈 있으면 그 날로 다 쓰고, 또 돈 있으면 일을 안 하고 나간답니다. 그리고 월급을 준 다음에는 다 쓸 때까지 일을 안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월급을 주고 나서가 문제하고 합니다.

아랍 사람들, 즉 이스마엘 자손들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난 여종 하갈의 아들들인데, 종의 근성이 있어서 일 하기를 싫어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일을 안 하고 말썽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몸이 건강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후삼의 아들들이 쫓겨났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하게 해주시고 잘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오노와 롯 두 성읍을 건축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쫓겨났다고 해도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쫓겨났어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믿음으로 나가면 쫓겨난 사람들의 아들이 안 쫓겨나서 안이한 사람보다 더 번성하고 잘될 수 있습니다. 믿는 일을 잘하면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시고, 믿는 일을 못해서 하나님께서 축복을 거두어가시면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이 알 수 없음

본문 13절에 “또 브리아와 세마니 저희는 아얄론 거민의 족장이 되어 가드 거민을 쫓아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브리아와 세마니라는 사람을 낳았는데, 저희는 아얄론 거민의 족장이 되어서 가드 거민을 쫓아냈다고 했습니다. 가드 거민을 쫓아 낸 이유는 역대상 7장 21절 상
황에 대한 보복입니다. 역대상 7장 21절에 “그 아들은 사밧이요 그 아들은 수델라며 저가 또 에셀과 엘르앗을 낳았더니 저희가 가드 토인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내려가서 가드 사람의 짐승을 빼앗고자 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가드 사람들이 에브라임 자손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짐승들을 다 빼앗아갔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가드 사람에게 많이 죽임을 당하고 짐승을 다 빼앗겼는데 누가 그 원수를 갚아주었습니까? 베냐민 자손이 갚아주었습니다. 에브라임 자손은 제일 큰 지파입니다. 열두 지파 가운데 제일 큰 지파가 에브라임 자손인데 에브라임 자손이 가드 사람에게 많이 죽임을 당하고 다 빼앗겼지만 제일 약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가서 그 가드 사람을 죽이고 보복을 했습니다. 다 쫓아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에브라임이 제일 크지만 가드 사람 앞에 꼼짝 못하고 다 빼앗기고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제일 미약한 베냐민 지파 사람이 가서 그것을 보복하고 가드 사람을 쫓아낼 줄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가 조금 큰 지파라고 해서 자랑하면 안 되고 또 작은 지파라고 해도 마음을 약하게 먹으면 안 됩니다. 쫓겨난 사람이라고 해도 믿음만 바로 지키면 도리어 안 쫓겨난 사람보다 더 잘되는 수가 있고 아무리 미약한 베냐민 지파라고 해도 큰 지파를 정복한 가드 사람을 다 치고 에브라임 사람들을 도와주는 그런 큰 역사가 있게 됩니다. 이스라엘 장사들이 골리앗 대장을 당하지 못했지만, 누가 나가서 골리앗을 물리치고 도와줬습니까? 제일 미약한 다윗이 나가서 골리앗을 치고 이스라엘을 건져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하여 구원 역사를 이루실 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큰 교단들이 하지 못하고 미루며 돌리는 일을 지극히 작은 교단들이 하나님 말씀에 바로 서서 나감으로 해낼 수 있습니다. 큰 교단을 정복했던 원수들을 작은 교단에서 치며 그로부터 이스라엘을 건져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는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작다고 해서 낙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같이 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커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께서 같이 하는 믿음, 하나님께서 같이 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같이 하는 가정, 하나님께서 같이 하는 교회, 하나님께서 같이 하는 교단이 되면 큰 것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힘이 있다고, 또 크다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면 되고 같이 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언제나 바로 서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힘쓰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기를 늘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서 역사하실 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작다고 할지라도 그 작은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심

본문 15-28절에 “스바댜의 아랏과 에델과 미가엘과 이스바와 요하는 다 브리아의 아들들이요 스바댜와 므술람과 히스기와 헤벨과 이스므래와 이슬리아와 요밥은 다 엘바알의 아들들이요 야김과 시그리와 삽디와 엘리에내와 실르대와 엘리엘과 아다야와 브라야와 시므랏은 다 시므이의 아들들이요 이스반과 에벨과 엘리엘과 압돈과 스그리와 하난과 하나냐와 엘람과 안도디야와 이브드야와 브누엘은 다 사살의 아들들이요 삼스래와 스하랴와 아달랴와 야아레시야와 엘리야와 스그리는 다 여로함의 아들들이니 이는 다 족장이요 대대로 두목이라 예루살렘에 거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거한 사람들이 아주 귀한 사람들입니다. 

역대상 9장 1절에 “온 이스라엘이 그 보계대로 계수되고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먼저 그 본성으로 돌아와서 그 기업에 거한 자는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과 느디님 사람들이라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 유다의 아들 베레스 자손 중에 우대니 저는 암미훗의 아들이요 오므리의 손자요 이므리의 증손이요 바니의 현손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을 다 원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는 대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포로 되어 갔다가 돌아온 다음에 예루살렘에는 대적이 많았습니다. 또 예루살렘 성을 쌓는 일, 성전을 짓는 일 등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시골 가서 사는 것이 제일 편안합니다. 시골 가서 살면 대적도 없고, 나와서 무슨 봉사하라, 성을 쌓아라,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라, 연보를 해라 하는 것도 없습니다. 편안합니다. 편안히 가서 농사해서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가서 살려면 나가서 중노동을 매일 해야 하고 또 연보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적이 많기 때문에 매일 나가서 대적과 싸워야 합니다. 싸우다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서로 있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셨습니다. 또 사람들도 누구든지 예루살렘에 있겠다, 가겠다고 하면 축복해주었습니다. 

느혜미야 11장 2절에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원하는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서로 안 가려고 하니까 예루살렘에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나오면 백성들이 복을 빌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려면 무슨 각오를 하고 가야 합니까? 가서 예루살렘 성 쌓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또 성전 지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원수와 싸울 각오, 즉 전쟁 마당에 나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또 연보도 많이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시골에 가서 살면 그런 것 다 안합니다. 다 안 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골 가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자원해서 가겠다는 사람이 혹시 나오면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거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습니까? 시골 가서 편안하게 농사나 해먹고 원수도 없고 중노동도 안하고 연보도 별로 안하고 쉽고 편안하게 잘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예루살렘은 전쟁 마당입니다. 그리고 중노동 판이어서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바쳐서 일해야 하는 곳입니다. 시험이 만만치 않습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디로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습니까?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시골 가서 가만히 편안하게 앉아서 밥이나 먹고 앉아서 살다 죽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것은 썩어진 생활입니다. 10년 살면 뭐하고 20년, 30년 살면 뭐하고 50년 살면 뭐합니까? 다 썩어진 생활인데,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가서 원수와 싸우면서 중노동을 하고, 또 돈이 있으면 바치고, 어떻게 하든지 일을 해놓으려고 애를 쓰고, 피땀을 흘리면서 몇 년 만 있으면 성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다 물리치는 것입니다. 할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새 교인들은 편안하게 예수님 믿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금 개척 교회 여러 개를 하는데, 건물의 2층이나 3층을 얻어서 하는 교회는 사람들이 잘 안 나온다고 합니다. 대신 예배당을 번듯하게 지어 놓은 곳에 간다고 합니다. 어느 곳에 이사를 가면 ‘어느 교회 나갈까’하고 한 번 생각해 본다고 합니다. 개척 교회하는 곳에 나가면 ‘이거 연보하라고 할 것이다. 또 예배당 짓자고 하겠구나. 돈 좀 있는 것 다 빼앗기면 어떡하겠나. 아예 큼직한 곳에 나가서 뒷전에 앉으면 연보하라는 소리 안하겠지. 그런 교회 나가서 예수님 믿지, 무엇하러 개척 교회 나가서 예배당 짓고 연보하고 봉사할 필요가 있나’라고 해서, 아예 예배당 지어놓은 곳으로 많이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물 2층이나 3층을 얻어서 하는 교회는 사람들이 많이 안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복 받게 생겼습니까? 편안하게 예수님 믿고 연보도 안하고 나가서 봉사도 안하겠다는 것인데, 복 받겠습니까? 어디 나가는 것이 복 받겠습니까? 개척 교회라도 하나님 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영이 사는 교회를 가서 고생을 하고 연보를 하라면 하고 예배당 지을 생각을 하면서 나갈 때 복을 받습니다. 편안한데 가서 뒤로 자빠져서 예배당이나 그저 한 시간씩 갔다 오면 무슨 복을 받겠습니까? 다 죽은 것입니다. 고생할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이 목사님은 고생을 만든다고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고생을 안 할 것인데 괜히 일을 자꾸 만들어서 고생을 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가만히 듣고 내가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보니까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기도원도 이것저것을 하려고 하니 고생이 많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고생을 안 할 것인데 기도원, 교회 등 무엇을 하려니까 고생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또 개척 교회하려니까 고생이 많습니다. 연보도 해야 합니다. 우리 개척 교회가 여러 개입니다. 지방에도 여러 교회가 있고 금년에도 하나 했는데 또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에 우리 교회가 11개입니다. 거기에 다 우리 고생이 들어간 것입니다. 우리가 대개는 다 도와주고 신학을 가르쳐주면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생을 하며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전쟁 마당에 올라가야 합니다. 피난 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피난 갔다 해도 다시 와야 되겠는데 하물며 예루살렘에 있다가 내려가면 되겠습니까? 시골에 있는 사람도 올라와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요새 그렇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전쟁이 날만 하면 세계 각국에 나갔던 사람이 다 돌아온다고 합니다. 전쟁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지켜야 된다고 하며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쟁 안 할 때에는 다른 나라에 가서 살다가 전쟁할 때에는 다 모여들어서 나라를 지키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나온 정신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망하지 않게 해주시는 것 아닙니까? 그런 정신을 가지고 나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할 때에도 편안하게 믿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다가 내려가는 사람은 고기가 물로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골에 있다가 예루살렘에 올라오는 사람은 진짜 산 고기입니다. 올라가면 편안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시험과대적이 많고 일도 많으며 연보도 해야 합니다. 안하면 못 견딥니다. 시골에 있으면 연보하라는 소리 안합니다. 그래도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사는 보람이 있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그것이 사는 보람이 있는 것이지, 시골에서 백 년을 살면 뭐합니까?

이번에 우리 중·고등, 청년부가 기도원에 모였는데 학생들이 한 650명 됐습니다. 돼지를 두어 마리 사다가 고기를 해주고 밥 해주고 하느라 아주 수고가 많았습니다. 목사님들도 많이 오셨는데 교역자들까지 합하면 한 700여명이 밥을 먹었습니다. 한꺼번에 700명 모두에게 식사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8월 집회보다 규모가 더 큽니다. 8월 집회는 몇 천 명 모여도 자취하는 사람이 많고, 또 점심시간이 2시간이니까 먼저 와 먹은 사람이 나간 후에 다음 사람에게 주고, 먹고 나가면 또 주고 하면서 자꾸 사람들이 바뀌므로 한꺼번에 다 주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중·고등, 청년부 학생 집회 때는 점심시간이 한 시간이므로 한 번에 다 먹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으로 해서는 한꺼번에 다 못 먹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 한 번 가보자’고 해서 나도 거기 가서 아이들 틈에 끼어 한번 얻어먹어 봤습니다. 자장밥을 했는데 고기도 조그마한 것 몇 개씩이 있는 것 같고 아주 맛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꺼번에 다 먹게 하기 위해서 가스버너 두 개를 더 샀습니다. 큰 가스버너를 두 개 사서 밥을 한꺼번에 200명 먹을 것을 찌는데 두 통하면 400명 먹을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더 하면 600명 먹을 것을 할 수 있으니 아주 좋습니다. 불이 장작불보다 훨씬 더 셉니다. ‘확’하고 올라오는데 밥이 금방 됩니다. 그것 외에도 일들이 여간 많지 않습니다. 또 돈은 창광교회에서 많이 내고 다른 교회에서도 좀 더 냈습니다. 또 한꺼번에 밥을 받아먹으려니 전에 식판이 350개가 있었는데 이번에 200개를 더 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플라스틱으로 된 식판에는 안 먹는다고 합니다. 스테인리스로 된 것을 가져간다고 합니다. 스테인리스로 된 것이 전에 100개가 있었고 이번에 200개를 샀으니까 300개가 있는데 나머지는 플라스틱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플라스틱에는 안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다음에는 차차 스테인리스로 바꿀 테니까 이번에는 그냥 먹어라. 나도 플라스틱으로 먹었다. 그러니 너도 먹어라”고 했습니다. 이제 차차 바꿔줘야겠는데, 그러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이렇게 일이 많습니다. 학생 집회를 예전에는 안했는데 괜히 해서 일을 또 하나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일을 만들어놓으니까 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지고 돈도 많이 들어가고 복잡하고 분주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도 예루살렘에서 사는 것이 복된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기도원도 자꾸 건설하고, 주차장을 만들고, 집을 지을 수 있는 대로 짓고, 천막을 넓게 치고, 우물도 계속 파고, 연보를 하고, 어떻게 하든지 계속 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또 그 일을 하는 것이 믿는 일이 됩니다. 믿는 일이 되어서 영혼이 자라납니다.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본문에서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사람에게 축복해주었습니다. 그것이 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힘들지만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자기의 것을 가져다가 바치고 예루살렘에 가서 성전을 지으며 노동하고 나가서 원수와 싸우는 일이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싸우다 죽으면 죽는 것입니다. 또 죽으면 천국 간다는 계산을 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결심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또 살 만한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괜히 시골에 가서 편안히 안일주의에 빠져 육신이나 편안히 살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물론 시골에 가서도 하나님께 제사 드릴 수 있습니다. 역대상 6장에 보면 각 지방, 각 지파에 제사장이 거할 성읍을 줬다고 하였습니다. 여러 지파에 다 줬습니다. 레위 지파 제사장이 각 지파에 다 퍼져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을 섬기며 성경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시골 어디를 가도 레위 지파가 다 있고 제사장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골 가서도 성경을 배울 수 있고 어디에서나 하나님께 제사 드릴 수 있습니다. 편안히 믿으려면 얼마든지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안됩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사는 것이 복이 많은 것입니다. 산 보람이 있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또 하나님의 일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되어 나가지 시골에서부터 되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당시에도 그랬고 사도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사도 시대에도 구원 운동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이루어져 나갔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구원 운동을 이루어 나가시는 곳이 있습니다. 편안한 곳에서 이루어 나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많고, 핍박이 들어오고, 십자가가 있고, 믿음 지키기가 어려운 곳,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죽이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 죽인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다 있습니다. 그래도 결사각오하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2. 기브온에 거한 사울의 조상들

본문 29-32절에 “기브온의 조상 여이엘은 기브온에 거하였으니 그 아내의 이름은 마아가며 장자는 압돈이요 다음은 술과 기스와 바알과 나답과 그돌과 아히오와 세겔이며 미글롯은 시므아를 낳았으며 이 무리가 그 형제로 더불어 서로 대하여 예루살렘에 거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형제가 다 예루살렘에 거하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본문 33절에 “넬은 기스를 낳았고 기스는 사울을 낳았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의 족보에 대해서 특별히 기록을 했습니다. 왜 이렇게 특별히 기록을 했느냐면, 사울은 이스라엘의 제1대 왕이 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 나라를 블레셋에서 건져낸 역사가 있습니다. 후에 사울이 범죄해서 하나님께 벌을 받았지만 그래도 사울이 제1대 왕으로서 블레셋 나라로부터 이스라엘을 건져낸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가 아말렉을 쳐서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 왕으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왕으로 세우신 사울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실수해서 하나님께 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울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왕, 기름을 부으셔서 세워주신 왕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족보에서도 귀하게 기록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한 것을 잊지 않으십니다.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징벌하십니다. 그러나 그래도 잘한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잘한 것도 알아야 하고 못한 것도 알아야 합니다. 못한 것만 알고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잘한 것도 알아줘야 합니다. 또 잘한 것만 알고 못한 것을 용납하면 안 됩니다. 죄를 용납해도 안 됩니다. 

요새 전두환 전 대통령을 죽일 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던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전두환 씨가 잘한 것이 많습니다. 물론 못한 것도 많습니다. 못한 것은 못한 대로 우리가 지적을 하고 회개를 시켜야 되겠고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알아줘야 합니다. 그것을 몰라주면 안 됩니다. 무조건 독재했다고 하면 다 죽이고 모든 것을 잘못한 것으로 만들어놓으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공로를 알아주면서 잘못한 것은 잘못한대로 지적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잘못한 것 몇 가지 때문에 전부 다 뒤집어서 모두 다 못한 사람으로 만들어놓으면 그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백성들이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나 아무 사람이나 제대로 못할 수 있습니다. 다 잘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느 대통령이 나와도 그 사람이 못하는 것을 가지고 뒤집어 씌워서 죽일 놈으로 만들어놓으면 내내 역대 대통령은 다 죽일 놈이 되고 맙니다. 미국도 대통령이 잘한 것도 있지만 못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퇴임 이후의 전 대통령을 죽일 놈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이므로 다윗 왕도 사울 왕을 죽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신다, 하나님께서 쓰신다고 했습니다. 결국 사울도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역사가 사울을 알아줬습니다. 

3. 요나단의 자손들

본문 34-39절에 “요나단의 아들은 무립바알이라 브립바알이 미가를 낳았고 미가의 아들들은 비돈과 멜렉과 다레아와 아하스며 아하스는 여호앗다를 낳았고 여호앗다는 알레멧과 아스마웻과 시므리를 낳았고 시므리는 모사를 낳았고 모사는 비느아를 낳았으며 비느아의 아들은 라바요 그 아들은 엘르아사요 그 아들은 아셀이며 아셀에게 여섯 아들이 있어 그 이름이 이러하니 아스리감과 보그루와 이스마엘과 스아랴와 오바댜와 하난이라 아셀의 모든 아들이 이러하며 그 아우 에섹의 아들은 이러하니 그 장자는 울람이요 둘째는 여우스요 셋째는 엘리벨렛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4절에 요나단의 아들은 무립바알이라 했는데 이 무립바알은 므비보셋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사무엘하 4장 4절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절뚝발이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의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 나이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하더니 급히 도망하므로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므비보셋의 아들이 미가인데, 무립바알와 므비보셋은 같은 사람입니다. 이름이 둘인지 모르겠습니다. 요나단은 사울 왕의 아들로 다윗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도와주다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요나단을 사랑하셔서 그 자손을 많이 번성케 하셨고, 또 큰 용사가 많이 나게 만드셨습니다. 

본문 40절에 “울람의 아들은 다 큰 용사요 활을 잘 쏘는 자라 아들과 손자가 많아 모두 일백오십 인이었더라 베냐민의 자손들은 이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들과 손자가 일백오십 명이나 됐다고 했습니다. 요나단이 평소에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가 잘
못하여 다윗을 죽이겠다고 했지만, 다윗을 죽이지 말라고 하면서 다윗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왕 세우실 것을 알고 진정으로 그를 도와주는 등 선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요나단이 하나님의 뜻을 많이 순종했는데, 그만 세상에서는 햇빛을 보지 못하고 전쟁 마당에 나가 죽었습니다. 아무 상급도 받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아들 절름발이 므비보셋의 자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해주시고 번성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용사가 많이 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요나단의 아들을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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