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인정함
욥기 9:1-35
1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내가 진실로 그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3사람이 하나님과 쟁변하려 할찌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4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스스로 강퍅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 5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찌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6그가 땅을 움직여 그 자리에서 미신즉 그 기둥이 흔들리며 7그가 해를 명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봉하시며 8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9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10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11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12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누가 물을 수 있으랴 13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아래 굴복하겠거든 14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 무슨 말을 택하여 더불어 변론하랴 15가령 내가 의로울찌라도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하였을 뿐이며 16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찌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17그가 폭풍으로 나를 꺾으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많게 하시며 18나로 숨을 쉬
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으로 내게 채우시는구나 19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호출하겠느냐 20가령 내가 의로울찌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순전할찌라도 나의 패괴함을 증거하리라 21나는 순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22일이 다 일반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순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23홀연히 재앙이 내려 도륙될 때에 무죄한 자의 고난을 그가 비웃으시리라 24세상이 악인의 손에 붙이웠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리워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이뇨 25나의 날이 체부보다 빠르니 달려가므로
복을 볼 수 없구나 26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움킬 것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27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원통함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찌라도 28오히려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무죄히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29내가 정죄하심을 입을찐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30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할찌라도 31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32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함도 불가하고 대질하여 재판할 수도 없고 33양척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34주께서 그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 하시기를 원하노라 35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런 자가 아니니라
욥기 9:1-35
1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내가 진실로 그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3사람이 하나님과 쟁변하려 할찌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4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스스로 강퍅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 5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찌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6그가 땅을 움직여 그 자리에서 미신즉 그 기둥이 흔들리며 7그가 해를 명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봉하시며 8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9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10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11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12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누가 물을 수 있으랴 13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아래 굴복하겠거든 14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 무슨 말을 택하여 더불어 변론하랴 15가령 내가 의로울찌라도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하였을 뿐이며 16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찌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17그가 폭풍으로 나를 꺾으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많게 하시며 18나로 숨을 쉬
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으로 내게 채우시는구나 19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호출하겠느냐 20가령 내가 의로울찌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순전할찌라도 나의 패괴함을 증거하리라 21나는 순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22일이 다 일반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순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23홀연히 재앙이 내려 도륙될 때에 무죄한 자의 고난을 그가 비웃으시리라 24세상이 악인의 손에 붙이웠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리워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이뇨 25나의 날이 체부보다 빠르니 달려가므로
복을 볼 수 없구나 26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움킬 것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27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원통함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찌라도 28오히려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무죄히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29내가 정죄하심을 입을찐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30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할찌라도 31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32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함도 불가하고 대질하여 재판할 수도 없고 33양척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34주께서 그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 하시기를 원하노라 35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런 자가 아니니라
1.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내세울 수 없음
본문 1-2절에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진실로 그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앞 장에서 빌닷이 말한 것에 대한 욥의 대답입니다. 빌닷은 욥에게 ‘사람이 죄가 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이므로 너는 회개하고 의인이 되어야 하며, 그러면 재앙이 떠날 것’이라고 권면했습니다. 본문은 그에 대한 욥의 답변인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그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라는 것은 빌닷의 말처럼 사람이 죄가 있어 고난당한다는 말이 옳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라도 옳은 것은 옳다고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자기 원수라도 옳은 것은 옳다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욥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죄 때문에 고난당하고, 회개하면 고난이 없어진다는 말도 옳은 말이지만,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사람 중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고,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임을 욥이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10-12절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는 자도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본문 3절에 “사람이 하나님과 쟁변하려 할찌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천 마디에 한 마디도 자기가 옳다고 대답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다 의롭고 선하지만, 인간의 하는 일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한 마디도 자기가 잘했다고 대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 행한 것은 죄 밖에 없다’는 찬송가 가사처럼 말입니다. 또 혹 잘 한 것이 있다고 해도 자기가 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잘하게 해주신 것이므로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 뿐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삼층 천에 갔던 일이 나옵니다. 삼층천에 가서 말로 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곳에 자기가 갔다고 하지 아니하고 ‘그가 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울이 말한 것입니다.
본문 4-10절에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스스로 강퍅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찌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그가 땅을 움직여 그 자리에서 미신즉 그 기둥이 흔들리며 그가 해를 명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봉하시며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측량할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하며 그 힘은 만능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하나님을 거역해서 형통한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항할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대항한 자는 다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산을 무너뜨리고 옮긴다는 것은 산과 같이 큰 세력을 옮기고 무너뜨리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또 ‘남방의 밀실’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는 남방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곳까지 별들을 만드신, 모든 것을 만들어놓으신 위대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측량할 수 없는 큰 일과 이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대항할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대항한 자는 다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산을 무너뜨리고 옮긴다는 것은 산과 같이 큰 세력을 옮기고 무너뜨리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또 ‘남방의 밀실’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는 남방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곳까지 별들을 만드신, 모든 것을 만들어놓으신 위대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측량할 수 없는 큰 일과 이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1절에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인간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위대하시기 때문에 자연 만물에 나타나서 역사하시고 모든 우주에 충만히 계시지만 그 하나님이 지나가시는 것, 계신 것을 사람으로서는 잘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누가 물을 수 있으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빼앗으시면 천하에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안 내어 놓겠다고 해도 안내어 놓을 수 없고, “왜 가져가십니까?”라고 말해도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말할 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저녁에라도 우리 생명을 가져가시면 막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대로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3절에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아래 굴복하겠거든”이라고 하였습니다. 라합은 용이라는 뜻이 있는데, 용은 마귀를 가리킵니다(계 12:3-5, 12:9). 라합을 돕는 자들이 최종적으로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그만 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를 돕는 마귀의 종들, 마귀의 군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모든 역사는 최종적으로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다 그만둘 것이라는 것입니다. 굴복할 때까지 하나님의 진노는 돌이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악한 자를 심판하십니다.
2.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온전하고 인간은 다 부족함
본문 14-15절에 “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 무슨 말을 택하여 더불어 변론하랴 가령 내가 의로울찌라도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하였을 뿐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욥 자신의 양심에는 의롭다 생각이 들어도 하나님 앞에는 의롭다고 대답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표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표준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하나님이 의롭다고 생각해 주실 것 같지만, 하나님의 표준에 맞춰볼 때는 의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대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4-5절에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표준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셔야 알 수 있습니다. 그날에 자기 모든 것이 불꽃같은 눈 앞에 드러날 것인데, 그때에 자기가 의롭게 되겠는지, 부족한 면이 많이 드러나겠는지, 그 앞에 가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보기에 옳아야 하고, 자기 양심에 옳아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옳다고 해주셔야 합니다. 자기가 옳다고 해서 다 옳은 것이 아닙니다. 표준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표준에서 ‘네가 의롭다’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가 되어봐야 옳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아무리 자기가 양심에 옳다고 해도, 다음에 가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옳다는 말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본문 16절에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찌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더라도 자기의 기도한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해도,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응답을 해주셨다고 해도, 자기 기도한 것이 하나님 앞에 공로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받은 것에 대한 대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기도는 언제나 부족한 것뿐인데, 하나님께서 대가 없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기도했기 때문에 주셨다고 말하며 받은 것에 대한 공로를 내세우고, 기도한 것을 무슨 대가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자기가 한 기도의 공로 때문에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셔야 되니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줘야겠으므로 기도를 시키시고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자기가 잘해서 기도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무슨 기도한 공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을 가지고 공로를 세우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면 “나는 너를 위해서 매일 기도해 준다”고 말하면서 기도해 주는 것을 무슨 공로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 위해서 매일 기도해 준다고 하니까, 상대방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기도해준 사람에게 대접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자기를 좀 알아달라는 말과 행동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매일 기도해 줬다고 해도, 또 기도해준 것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것은 기도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기로 창세 전에 예정하셨고, 줘야겠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그 기도도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이고, 기도했어도 부족한 것뿐이므로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욥이 말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주십니다. 그래도 그것이 기도의 공로는 아닙니다. 기도해서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순전히 은혜로 받는 것인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언제나 부족한 줄 알며 감사하는 신앙만 가져야 하겠습니다.
본문 17-19절에 “그가 폭풍으로 나를 꺾으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많게 하시며 나로 숨을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으로 내게 채우시는구나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호출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까닭 없이 고난을 크게 당하는 것을 두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자기가 당하는 고난은 마땅히 당해야 하는 고난인 것으로 믿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까닭 없이 고난당한다고 생각되는 때가 혹시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반드시 이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내게 그 시험을 주신 줄로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왜 이렇게 하셨느냐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죄 값으로 고난당하
는 것을 언제나 알고, 자기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난당할 만한 까닭이 없는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이 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까 반드시 이 고난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에게 주셔서 나를 연단시키시고 나를 온전케 만드시려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본문 20절에 “가령 내가 의로울찌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순전할찌라도 나의 패괴함을 증거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현재 고난을 받는데, 스스로 죄 없고 순전하다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는 부족한 것밖에 말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 죄인이요, 패괴한 자라고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욥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입니다. 지금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지만 그래도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고 패괴한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증거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과 인간의 부패성을 잘 알고 겸손하게 나간 것입니다.
3. 악인이나 선인이나 세상에서 다 고난을 받음
예수 믿는 사람도 세상에서 고난을 겪음
본문 21-22절에 “나는 순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일이 다 일반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순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자기가 순전하다고 여기지만 자신의 영혼의 상태는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순전한 자, 악한 자 다 멸망시키시는 것이 일반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23-24절에 “홀연히 재앙이 내려 도륙될 때에 무죄한 자의 고난을 그가 비웃으시리라 세상이 악인의 손에 붙이웠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리워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이뇨”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악한 사람도 죽고 선한 사람도 죽게 되어 있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또 홀연히 재앙도 만날 수 있고, 무죄한 자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이 아니고, 고난을 안 받는 것도 아닙니다. 악한 사람이 죽고 고난을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외부적으로 보면 다 일반입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차이가 많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고난당하다가 죽으면 지옥에 가는 것이고, 죄값으로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고난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회개시키셔서 온전하게 만드시고 연단시키셔서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시려는 것입니다. 고난당하는 것과 죽는 것은 같지만, 그 내용이 다릅니다.
운명론과 예정론의 차이
운명론과 예정론이 외부적으로는 비슷한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다릅니다. 운명론이라는 것은 사람의 운명이 사주팔자(四柱八字)에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는다는 것을 다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예정론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다가 언제 죽을지 다 예정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아주 다릅니다. 운명론, 사주팔자는 우연히 그렇게 진행되어 가다가 우연히 운명대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목적도 없고 사랑도 없습니다. 냉랭한 불가항력에 의해서 일이 진행되어 나가다 결국 운명대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정론은 다릅니다. 첫째, 목적이 있습니다. 왜 이러한 고난들을 당해야 하는가? 왜 그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왜 그런 환경이 오늘 필요한가? 그것을 하나님께서 정해주셨고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사랑이 있습니다. 뜨끈뜨끈한 하나님 사랑으로, 그 사람을 온전하고 구비한 자로 만드셔서 하늘나라로 데려 가시며 상 주시려는 것입니다. 목적과 뜨끈뜨끈한 사랑과 하나님의 배급의 역사가 있는 것이 예정입니다. 그러므로 운명론을 믿는 사람은 늘 울면서 살다가 울면서 죽게 되어 있고, 예정론을 믿는 사람은 늘 감사하면서 살다가 기쁨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밥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을 먹는다고 합시다. 죽 먹을 팔자여서 죽을 먹게 되면 계속 울면서 죽을 먹게 됩니다. ‘나는 무슨 놈의 팔자가 죽 먹을 팔자인가? 죽만 먹는 팔자구나’라고 하면서 살다가, 죽을 때에는 ‘나는 이렇게 죽을 팔자구나’하면서 울며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정론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이 죽을 먹게 해주셨으니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시고 회개시키셔서 내가 세상에 소망 두고 살지 않도록 하시려고, 세상에서 너무 잘 먹으면 세상에 빠질까봐 죽을 먹게 해주시는구나. 비록 배는 고프지만 나를 영광의 자리에 데려가 주시려고 연단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하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데려 가실 때에는 예정대로 가지만,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정론과 운명론은 다릅니다.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병들고 죽는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아주 다릅니다. 믿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뜨끈뜨끈한 사랑이 충만하게 와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이루어나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악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악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악한 것을 이용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어나가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생이 빨리 지나감
본문 25-26절에 “나의 날이 체부보다 빠르니 달려가므로 복을 볼 수 없구나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움킬 것에 날아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일생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체부(遞夫), 즉 우체부보다 빨리 가고, 독수리와 배보다 빠르다고 했습니다. 독수리도 먹잇감을 향해 내리꽂는 독수리는 얼마나 빠른지 볼 새도 없이 내려갑니다. 그와 같이 인생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욥이 앞으로 자신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빨리 세상이 지나가니 세상에서 복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낙을 누리고 복된 생활을 해보고 싶어도 너무 빨리 지나가므로 복을 볼 새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침 안개와 같이, 풀의 꽃과 같이 잠깐 지나가는 세상입니다. 날아가는 세상입니다. 시편 90편 9-10절에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은 잠깐 지나가는 것입니다. 날아가는 것처럼 빠른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을 면할 수 없음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시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로 세우시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심
본문 27-28절에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원통함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찌라도 오히려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무죄히 여기지 않으실 줄을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내가 원통함을 다 잊어버리고 얼굴빛을 즐겁게 해볼지라도 고통의 두려움이 온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는 내가 무죄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다 잊어버리고 즐거움으로 나가보려고 해도, 자기 양심에는 의롭다 생각이 들어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고난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에는 무죄히 여기지 않으시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나를 무죄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고난으로 내게 주시더라도 그 하나님의 인도가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29-31절에 “내가 정죄하심을 입을찐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할찌라도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는 죄인이니까, 정죄함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결과적으로 또 더러운 곳으로 빠진다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부패성이 있기 때문에 빠집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살려고 하는 자를 고의적으로 더러운 곳으로 빠뜨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본래 부족한데 부족한 가운데서 아무리 힘써보려고 애를 쓰고 눈 녹은 물을 가져다가 목욕을 하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씻는다고 해도, 너무 부족하니까 다시 죄의 구렁텅이로 빠진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빠진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개천의 빠지게 하신다’고 했는데, 개천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빠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개천에 빠치지 않으면 바로서지 못하고, 연단이 안 되고 제대로 안 되기 때문에 개천에 빠뜨려서 바로 세우고 연단시키셔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개천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빠지는 것입니다.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씻어서 ‘깨끗하다, 깨끗하다’하는 사람은 개천에 한 번 빠질 날이 와야 합니다. 안 빠진 것보다 한번 빠진 것이 낫습니다. 자기를 눈 녹은 물로 씻어서 아주 깨끗하게 한 후에 자기는 깨끗하다며 돌아다니는 것을 그대로 두면 교만해서 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개천에 한 번 빠뜨려 놓아야 교만이 다 떨어져 나가고 깨어져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개천에 빠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개천에 빠진 다음에는 입이 백 개라도 말을 못합니다.
어느 할머니 한 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예배 시간에 자꾸 존다고 비방을 했습니다. 자기는 안 존다는 것입니다. 그 할머니가 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안 조는 것은 좋은데, 남이 조는 것을 자꾸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은 그 할머니가 예배당 맨 앞에 앉았다가
뒤로 ‘꽝’하고 넘어갔습니다. ‘꽝’ 소리가 났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 할머니가 졸다가 넘어간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할머니가 남 존다는 소리를 일절 하지 않습니다. 졸다가 두 사람 사이로 넘어갔는데, 어떻게 남보고 존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제 조금 겸손해진 것입니다. 개천에 빠지게 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깨끗하다, 깨끗하다, 잘한다, 잘한다 하고 돌아다니다가도 한 번 개천에 빠지면, 콧대가 다 깨져 나가고 목이 쏙 들어가고 교만이 다 깨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깨끗하기 때문에 그 사람 근처도 못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줘야하기 때문에 개천에 빠지도록 그 사람을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5. 고난을 거두어 주시기를 주께 기도함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함
본문 32-35절에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함도 불가하고 대질하여 재판할 수도 없고 양척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주께서 그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선하시기 때문에, 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완전하기 때문에 재판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재판해 줄 자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왜 이런 고난을 받나 깨닫지 못해도 거기에 대해서 재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재판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마땅하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재판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십니까?’라고 하지 말고 ‘마땅합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시편 51편 4절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할 것 밖에 없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라고 말할 것 밖에 없습니다. 감히 하나님 앞에 뭘 좀 따져보려고, 재판해보려고 하는 자는 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인간은 다 어리석고 죄인이며 부족한데, 어떻게 하나님과 감히 대결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의롭고 순전하고 마땅합니다’라고 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본문 34-35절에 “주께서 그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런 자가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은 기도할 것 뿐입니다.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에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여기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할 것뿐입니다. ‘내가 연약하오니,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고, 건져주시옵소서. 또 두려움을 없애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할 것뿐입니다. ‘악에서 구하옵소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하고 기도할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해주시면, 사람은 거기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 건져달라고 늘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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