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식하며 기도하는 욥
욥기 10:1-22
1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2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 3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취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4주의 눈이 육신의 눈이니이까 주께서 사람의 보는 것처럼 보시리이까 5주의 날이 어찌 인생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날과 같기로 6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사실 하시나이까 7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8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9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10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것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1가죽과 살로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뭉치시고 12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13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은 줄을 내가 아나이다 14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유치 아니 하시나이다 15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찌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올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목도함이니이다 16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사자처럼 나를 사랑하시며 내게 주의 기이한 능력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17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갈마들여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갈마들어 치는 것 같으니이다 18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찜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19있어도 없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겼으리이다 20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저으기 평안하게 하옵시되 21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22이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
욥기 10:1-22
1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2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 3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취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4주의 눈이 육신의 눈이니이까 주께서 사람의 보는 것처럼 보시리이까 5주의 날이 어찌 인생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날과 같기로 6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사실 하시나이까 7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8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9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10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것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1가죽과 살로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뭉치시고 12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13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은 줄을 내가 아나이다 14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유치 아니 하시나이다 15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찌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올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목도함이니이다 16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사자처럼 나를 사랑하시며 내게 주의 기이한 능력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17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갈마들여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갈마들어 치는 것 같으니이다 18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찜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19있어도 없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겼으리이다 20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저으기 평안하게 하옵시되 21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22이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
1. 욥이 자신이 고난당하는 이유를 알기 원함
고난 받을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 해결 받는 것이 중요함
본문 1절에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영혼이 곤비 하여졌고 마음이 괴로워졌다고 하였습니다. ‘원통함을 발설하고’라는 것은 영혼이 곤비하며 수심이 그 속에 있는 것은 발설하리라, 말하리라
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괴로움 있는 것을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연고로 나를 징계하시고 무슨 연고로 나에게 고통과 곤고를 주시는 것인지, 알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해결하는 것이 제일 좋은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내가 무슨 까닭으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내게 이런 고통이 왔습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문
제의 해결을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자기의 곤고한 것과 괴로운 것과 수심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서 하나님 앞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이 아주 귀한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취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너무 크기 때문에 마치 주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는 것과 같고 멸시하시는 것과 같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학대하시는 것도 아니고 멸시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욥이 지금 고난이 너무 심한 가운데 처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는 것과 같고 멸시하시는 것과 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취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악인들이 기뻐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이 학대를 당하고 멸시를 받는 처지에 내려간 것을 보고 악한 사람들이 도리어 기뻐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환난을 당하고 징계를 받고 멸시를 당하게 될 때에 악한 사람들이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그런 처지에 놓였을 때에 ‘어떻게 되겠습니까?’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함
본문 4-6절에 “주의 눈이 육신의 눈이니이까 주께서 사람의 보는 것 처럼 보시리이까 주의 날이 어찌 인생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날과 같기로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사실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인생과 같지 아니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사람의 보는 것과 같지 않아서,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나타난 것만 보지 아니하시고 근본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욥의 말은 나에 대해서 다 아시는 주님이신데, 구태여 시험을 하실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하시지 않아도 욥에 대해서 다 아시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왜 시험을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또 ‘주의 날이 어찌 인생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날과 같기로’라고 한 것은 인생은 잠시 동안이지만 주님은 잠시 동안만 보시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주님이시므로 영원토록 모든 것을 아시고 계획하시며 이루어나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의 근본과 미래를 아시는 주님이시니, 시험을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인생처럼 한 편만 아시는 주님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인생과 같이 짧은 토막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중까지 아시고 중심까지 아시고 근본까지 아시는 주님이신데, 이렇게 오랫동안 시험하시니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욥이 지금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내가 악하지 않은 줄도 아십니다. 주의 손에서는 벗어날 자가 없습니다. 절대적 주권을 가지신 주님이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중심과 근본을 다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내가 악하지 않은 줄 아시면서 무슨 연고로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시느냐는 것입니다. 욥이 지금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애쓰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간절한 기도입니다.
2. 욥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으시고 생명과 은혜 주신 것을 고백함
생명과 은혜를 주시고, 권고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함
본문 8-11절에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사지백체(四肢百體)라는 말이 있는데, 인간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께서 인간의 전체, 모든 것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흙으로 창조하시고 젖이 엉긴 것처럼 창조하셨는데, 나를 왜 멸하시나이까? 기억하옵소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라고 하며 탄원하고 있습니다.
생명과 은혜를 주시고, 권고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함
본문 8-11절에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사지백체(四肢百體)라는 말이 있는데, 인간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께서 인간의 전체, 모든 것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흙으로 창조하시고 젖이 엉긴 것처럼 창조하셨는데, 나를 왜 멸하시나이까? 기억하옵소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라고 하며 탄원하고 있습니다.
본문 11절에 “가죽과 살로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뭉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이렇게 귀하게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백체를 완전케 창조하셨고 흙으로 창조하셨으며 젖을 쏟는 것처럼 엉키는 것처럼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죽과 살로 내게 입히시고 뼈와 힘줄로 나를 뭉치셨다고 했습니다.
본문 12절에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나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생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은혜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또 내 영을 지켜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욥은 이러한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이목구비(耳目口鼻)와 사지백체를 창조하시고 내 모든 전체를 흙으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그 은혜를 감사하며,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 은혜를 주신 하나님, 권고해주시는 하나님, 영을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지켜주시고, 장래에도 지켜주시며 은혜 베풀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욥은 그 하나님 앞에 나가서 간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환난 가운데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하라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내게 은혜 베풀어주신 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육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목숨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앞에 확신 있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낙심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게 됩니
다. 마태복음 6장 25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라고 하였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왜 염려하지 않아야 합니까? 목숨이 음식보다 중한 것을 알면, 목숨을 주시고 지켜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염려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의복이 중하냐 몸이 중하냐 할 때 몸이 중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숨을 누가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내셨습니다. 우리 몸은 누가 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내셨습니다. 우리의 몸을 내신 하나님께서 몸에 입고 살 의복을 내시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 목숨을 내신 하나님께서 목숨을 연장할 음식을 안 주실 리가 없습니다. 목숨을 하나님께서 내셨는데 목숨을 연장할 먹을 것을 안 주실 리가 있겠습니까? 또 몸을 내신 하나님께서 몸을 보호할 의복을 안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미련하고 악한 사람이라도 소를 사다놓고는 잘 먹여 기릅니다. 소를 300만원 주고 사다놓고 그 소에게 먹을 것을 안 주겠습니까? 또 10만원에 돼지를 사다놓고 돼지가 벌벌 떨고 있으면 돼지에게 집을 안 지어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돼지가 얼어 죽지 않도록 따뜻하게 해줄 짚을 안 깔아 줄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안 깔아 주어 돼지가 죽으면 그 주인은 미련한 자입니다. 누가 손해입니까? 주인이 손해입니다. 우리 기도원에 돼지 새끼 두 마리를 사다놨는데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짚 풀을 많이 깔아주라고 하였습니다. 돼지를 사다놓고 추워서 얼어 죽으면 얼마나 손해입니까? 또 소를 사 놓은 집에서 소 여물을 안 주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목숨을 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안 주실 리가 없고, 우리의 몸을 내신 하나님께서 입을 것을 안 주실 리가 없습니다. 반드시 주십니다. 그것을 믿으면 염려가 다 없어집니다. 욥은 내 몸을 내신 분, 백체를 내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내 생명을 내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내게 은혜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권고하시고 영을 지켜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므로, 그 하나님을 든든히 믿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나를 내시고 생명을 내신 하나님, 내게 은혜를 내려주시고 나를 권고하시고 오늘까지 지켜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 내가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왜 안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환난을 당하고 곤궁에 빠졌고 괴로운 가운데 있지만, 나를 창조하신 분이 계시니까 그 분이 반드시 내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욥은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여러 가지 환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인내로써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에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은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만드시고 창조하신 모든 인생들을 마음에 품고 계시다는 것을 욥이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3. 욥이 고난 중에서 부르짖음
본문 14-15절에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유치 아니하시나이다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찌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올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목도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죄 값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죄 값은 반드시 사망인데, 범죄하면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마음으로 악한 일을 했거나 범죄한 일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머리를 들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왜 머리를 들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본문 14-15절에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유치 아니하시나이다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찌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올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목도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죄 값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죄 값은 반드시 사망인데, 범죄하면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마음으로 악한 일을 했거나 범죄한 일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머리를 들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왜 머리를 들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환난을 목도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환난이 크기 때문에, 그 앞에서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지금 큰 환난이 와서 꼼짝을 못하고 기왓장으로 헌데를 긁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곤란에 빠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난이 너무 심하니까 마음에 부끄러움이 가득해졌습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도 잘돼야 부끄러움이 없고 머리를 들고 다니겠는데, 그렇지 못하니 부끄러움이 생긴 것입니다. 육체에 병이 나고 곤궁에 빠지며, 세상에서 너무나 고난을 당하니, 머리를 들 수 없고 마음에 부끄러움이 가득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보통 이렇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멸시를 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밤낮 예수 믿는 자가 왜 그 꼴이 되었느냐? 재산은 다 없어지고 자녀들을 죽고 몸은 병이 나고 보기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참한 상태가 되었는데, 믿는 자가 왜 그렇게 되었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욥은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자기 마음에까지 부끄러움이 들어올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욥이 여기서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큰 환난이 들어와서 그 환난을 목도하고 마음에까지 부끄러움이 들어왔어도, 하나님을 의뢰하고 거기서 위로를 받는 욥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간구하는 생활을 하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면서 하나님의 권고를 기다리는 신앙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기이한 능력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조금 머리를 들면 하나님께서는 사자처럼 사냥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사자처럼 사냥한다’는 것은 용서 없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자가 약한 짐승을 사냥할 때에 용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욥이 머리를 조금만 들면, 사자처럼 빨리 오셔서 덮쳐누르고 꼼짝 못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아주 죽여 놓으시는 것입니다. 머리를 들면 사자처럼 와서 죽여 놓습니다. 그리고 ‘기이한 능력을 다시 나타내신다’는 것은 여러 가지 재앙과 징계를 다시 내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머리를 조금 들면 하나님께서 가만 안 두신다는 것입니다. 사자처럼 빨리 오셔서 죽이듯 기이한 능력으로 여러 가지를 재앙을 내리심으로 그 사람을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겸손해야겠습니다. 겸손한 것이 중요합니다. 머리를 들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뢰하면서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닌 줄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면 살고, 하나님께서 오늘 저녁이라도 죽이시면 죽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자처럼 사냥하실 때에는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줄로 알고 하나님만 의뢰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17절에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갈마들여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갈마들어 치는 것 같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증거하는 자’는 여러 가지 재앙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갈마들여’라는 것은 서로 번갈아 들이친다는 것입니다. 한 패가 치면 다른 패가 들어오고, 그 패가 치면 다른 패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번갈아 들어와서 나를 치는데 이런 재앙이 들어오는가 하면 이번엔 또 다른 재앙이 들어와서 나를 치는 것입니다. 번갈아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날 만하면 다른 것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군대가 번갈아 교대해서 들이치는 것과 같이, 주님의 재앙이 번갈아 들이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환난이 얼마나 큰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원망이 아닙니다. 어떤 환난이 하나 들어 왔는데 좀 괜찮아졌다 하자, 다른 것이 또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번갈아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번갈아 환난이 들이치고 있습니다. 욥이 지금 심한 환난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환난이 번갈아 들이칩니다. 그러나 욥은 원망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본문 18-19절에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찜이니까 그렇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있어도 없던 것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겼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차리리 태에서 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욥이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태에서 나지 않았다면 좋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난 것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고, 차라리 태에서 나지 아니하고 태에서 죽어 무덤으로 바로 갔더라면 이런 고난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4. 욥이 하나님께 생전에 평안 주시기를 구함
여러 가지 환난 중에서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소망을 가지고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권고를 기다리며 끝까지 기도하라
본문 20절에 “내 날은 적지 아니하나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저으기 평안하게 하옵시되”라고 하였습니다. 짧은 인생, 즉 일생은 짧은데, 이 짧은 세상에 재앙을 끊어주시고 조금만 평안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내 날은 적지 아니하나이까’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일생은 짧지 않습니까, 하는 말입니다. 앞으로 여생이 얼마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가만 내버려두셔서 조금만이라도 평안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죽기 전에 나를 좀 놓아 주셔서 평안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얼마 동안만이라도 그렇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이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다음에는 무덤으로 들어가고 무덤이 있는 땅은 광명도 흑암 같습니다. 육체가 죽으면 무덤 속에 들어가고 영혼이 구원 받을 것을 욥은 믿습니다. 그러니까 죽기 전에 하나님께서 용납하셔서 생전에 평안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에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고 고난이 올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해결 받도록 해야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것이 왔습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만 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바로 되겠습니까?’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 되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해결 받는 신앙을 우리가 가져야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백체를 지으시고 생명과 은혜를 주시며 권고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나의 영혼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지금은 내게 환난을 주시지만 이것도 반드시 유익이 되기 때문임을 믿고 낙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참는 신앙, 그 신앙을 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현재는 잘못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고난이 많이 옵니다. 그러나 그 고난만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내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 내 백체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혼을 살려주시고 지금까지 은혜를 베푸시며 권고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비록 현재는 고난을 당하지만 앞으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권고해주실 것을 믿고 참고 견뎌야겠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근심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환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으며 오히려 소망을 가지고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권고를 기다리면서 끝까지 기도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