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4일 화요일

시편 119:33-64 말씀을 의뢰하며 곤란 중에 위로를 얻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말씀을 의뢰하며 곤란 중에 위로를 얻음
시편 119:33-64

33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34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35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36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37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38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39나의 두려워하는 훼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는 선하심이니이다 40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41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42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훼방하는 자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뢰함이니이다 43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44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45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46또 열왕 앞에 주의 증거를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겠사오며 47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48또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 49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50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51교만한 자가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52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53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을 인하여 내가 맹렬한 노에 잡혔나이다 54나의 나그네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55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56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57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58내가 전심으로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59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 60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 61악인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62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63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의 동무라 64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1. 말씀을 깨닫게 해달라는 기도

본문 33-34절에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을 깨닫게 해달라고 전심으로 기도합니다. 주의 말씀, 복, 증거, 계명, 율례, 규례, 훈계, 법도, 판단은 다 같은 것입니다. 말씀을 여러 가지로 불렀습니다.
아무튼 말씀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깨닫게 해주시면 전심으로 행하기를 작정하는 것입니다.

본문 35절에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에서 ‘첩경(捷徑)’은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계명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할 때에는 주의 계명이 즐거움이 됩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행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길은 즐거운 길입니다.

본문 36절에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대로 행하게 하시고 탐욕을 따라가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탐욕을 따라가면, 야고보서1장 15절의 말씀대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욕심과 이(利)를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서 바로 살려고 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본문 37절에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허탄한 것은 진리에서 어긋난 것입니다. 진리에서 어긋난 것은 보지 말게 하시라는 것입니다. 또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소성케 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38-39절에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나의 두려워하는 훼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는 선하심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두려워하는 모든 훼방이 많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행하면 하나님께서 다 물리쳐주십니다.

본문 40절에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말씀에서 소생하고 의에 의해서 소생합니다. 아무리 비방하는 사람이 많아도 말씀대로 바로 나가고 옳은 데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붙들어 세우십니다.

2. 말씀에 거하는 자는 자유와 즐거움이 있음

본문 41-42절에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훼방하는 자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뢰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을 의지하는 사람은 훼방하는 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 사람들 앞에서 대답할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훼방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굳게 서서 말씀만 의지하고 나가면 아무리 훼방하는 사람이 많아도 하나님께서 담대하게 해주시고 붙들어 일으켜 세우십니다.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본문 43-44절에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영영히 그 말씀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듣고 보기만 하며 그저 지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실행하고 사모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본문 45-48절에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또 열왕 앞에 주의 증거를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겠사오며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또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때에 자유롭게 행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서면 어디를 가나 자유롭게 행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어겨서 죄를 지으면 자유롭게 행보할 수 없습니다.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대로 행하는 성도는 어디를 가나 자유롭게 행보할 수 있고,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이 즐겁고 힘이 되고 노래가 됩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늘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만 행하려고 힘쓰게 됩니다.

3. 말씀을 지키는 것은 영원히 내 소유, 기업이 됨

본문 49-50절에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살려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서면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서 있는 자를 살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51절에 “교만한 자가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가 말씀에 선 사람을 조롱합니다. 말씀에 선 까닭에 조롱합니다. 교만한 자는 말씀을 반대하니까 성경대로 믿는 사람을 조롱하지만, 조롱당하는 자는 더욱 더 말씀에 굳게 서 나가는 성도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조롱한다고 해서 그 말씀을 조금이라도 양보하는 자는 마귀 시험에 넘어간 것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말씀대로 바로 하는 것을 비방하고 조롱해도, 언제나 말씀에만 계속 굳게 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편이 되시고, 도와주십니다.

본문 52절에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옛 규례를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옛 규례’라는 것은 옛날부터 진리로 인정이 되고 옛날부터 하나님께서 진리대로 역사해주신 그 말씀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옛적에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으므로, 앞으로도 구원해주실 것을 믿고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본문 53절에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을 인하여 내가 맹렬한 노에 잡혔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율법을 버린 사람이 벌 받을 것을 생각할 때에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씀을 버리고 거역할 때에 안타까운 마음이 생겨 그 사람에게로부터 맹렬한 노에 잡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버리고 나가는 사람을 볼 때에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배은망덕하게 나가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을 생각하고 자기도 노에 잡힌 것입니다.

본문 54절에 “나의 나그네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나그네된 집’이라고 하였는데, 바로 ‘육체’가 나그네된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전체가 다 나그네된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그네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노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본문 55-56절에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소유’라는 것은 산업, 기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기업입니다. 세상 기업은 잠시면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을 지킨 것은 영원한 기업이 됩니다. 주의 말씀을 많이 지켰으면 기업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세상 것이 아무리 많아도 자기 기업이 아니라 다 남의 것입니다. 결국 다 날아갑니다. 자기 기업이 아닌 것은 바람에 날아가고 좀이 먹고 동록(銅綠)이 슬고 도적질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 떠날 때에 다 내놓고 빈 손으로 갈 것이 때문에 자기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으면 그것은 영원히 자기 소유가 됩니다. 말씀을 하나 지켰으면 그 말씀 하나가 영원히 자기 소유가 되고, 말씀을 둘 지켰으면 그 두 개가 영원히 자기 기업이 됩니다. 말씀 열 개를 지켰으면 그것이 영원히 자기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말씀 가운데에서 자신이 지킬 수 없는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자기 기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실 때에 그곳을 떠나야 자기의 기업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독자를 바치라고 하실 때에는 독자를 바쳐야 자기의 기업이 됩니다. 우상 숭배하는 시험이 들어올 때에는 그것을 하지 않아야만 자기의 기업이 됩니다. 자기가 지켜야 할 말씀,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진리, 그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면, 그것이 영원히 자기 소유가 됩니다. 그러나 세상 것은 아무리 많아도 자기 소유가 못 됩니다. 이 세상 떠날 때에 다 내놓고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 것을 만들어놓아도 결국 누구 것이 될지 모릅니다. 세상 것은 다 바람에 날아가는 것입니다. 자손이 다 지킬 수도 없습니다. 자기는 빈 손 들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말씀 하나 지킨 것만 자기 소유가 됩니다.

4. 말씀을 신속히 행하는 자의 복

본문 57-60절에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내가 전심으로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라고 하였는데, 말씀이 나의 분깃이시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분깃입니다. 그것을 신속히 지키는 사람에게 큰 복이 있습니다. 말씀을 깨달은 다음에는 신속히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본문 61절에 “악인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라고 하였는데, 악인들이 와서 나를 얽혀 매고 죽이려고 할지라도, 언제나 말씀에 굳게 서서 말씀을 붙들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62절에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말씀이 의로운 길이기 때문에 아무리 악한 사람이 둘러서 나를 친다고 할지라도, 나는 밤중에 일어나서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63절에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의 동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자기 동무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사귀고 말씀으로 사귀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가 동무입니다. 세상 동무는 마음이 맞지 않습니다. 말씀을 바로 깨닫는 사람이어야만 성도와 마음이 맞고 신앙이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동무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귄 동무, 진리로 사귄 동무가 귀합니다. 그리고 진리가 같아야 사상과 의견이 같습니다, 그래서 진리 안에서 사귄 동무가 참된 동무인 것입니다, 동창생, 고향 사람 등은 다 육신 중심으로 사귄 동무이고, 참된 동무가 못 됩니다. 신앙으로 말씀 안에서 사귄 동무가 참된 동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64절에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인자하심, 사랑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로 가르쳐달라는 것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