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4일 화요일

시편 119:65-80 고난당하는 것이 유익이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고난당하는 것이 유익이라
시편 119:65-80

65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66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7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68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69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70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1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72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73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74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니이다 75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 76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 77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나로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78교만한 자가 무고히 나를 엎드러뜨렸으니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이다 79주를 경외하는 자로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저희가 주의 증거를 알리이다 80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에 완전케 하사 나로 수치를 당치 않게 하소서

1. 고난당하는 것이 유익이 됨

선대(善待)하시는 하나님

본문 65절에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우리를 선대해 주신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선대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많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그 말씀대로 선대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면 짐승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며, 신령한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하셔서 같이 해주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어 주시니, 우리를 얼마나 선대해주신 것입니까? 신령한 면과 육신의 면, 물질 면과 여러 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대해주신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한 번 찾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선대해주신 것이 몇 가지가 되겠습니까?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몇 천 가지, 몇 만 가지입니다. 그 이상입니다. 큰 것만 해도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로 삼아주신 것만 해도 얼마나 선대해주신 것 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같이 해주시고 만나 주셨습니다. 만나주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선대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본문 66절에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믿는 사람에게는 명철과 지식을 더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곧 명철이고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유익

본문 67-68절에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고난을 당하면서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고난당할 때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귀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때에 회개하고 말씀을 지키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당하는 것이 큰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지 않으면 체험적인 신앙을 갖지 못하고, 나아가 실제로 깊이 깨닫지도 못합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으려고 애써봐야 하며,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면 못 살 지경에 빠져서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해봐야 합니다.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께서 가까이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시고 또 말씀이 생명이 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십니다. 성도는 그 과정에서 체험적으로 알아나가고 깨닫게 되고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당하지 않은
사람은 이 모든 것을 깊이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지만 고난이 유익입니다.

본문 69절에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서 성도를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 즉 성도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가 와서 해하지 못합니다. 교만한 자가 와서 성도를 치려고 하고 또 미혹하는 자가 와서 성도를 미혹하려고 하고 악한 자가 와서 성도를 엎드러뜨리게 하고 망하게 하려고 하지만, 성도가 전심으로 하나님의 법도만 지키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큰 일도 많고 어려운 구렁텅이도 많고 태산과 같은 난관도 많습니다. 그러나 전심으로 주의 법도만 지키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셔서 악한 자가 손도 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전심으로 말씀만 지키면 마귀의 여러 가지 시험과 여러 가지 고난과 여러 가지 역사를 하나님께서 물리쳐주십니다. 그리고 말씀 안에는 악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말씀을 지키는 것은 승리하는 길, 성공하는 길입니다. 전심으로, 말씀대로만 해나가면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말씀으로 이깁니다. 자기의 수단과 방법, 성내는 것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1장 20절에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성내는 일이 많이 와도 말씀만 지키라는 것입니다. 도적이 와서 빼앗아가려고 해도 말씀만 지키면 됩니다. 죽이려고 해도 말씀만 지키면 됩니다. 굶어서 죽게 되어도 말씀만 지키면 하나님께서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였습니다. 말씀만 지키면, 하나님께서 살 길을 열어주시고 모든 것을 이기게 해주십니다. 마귀의 권세를 막아주기도 하시고 피난처로 인도해주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만 지키면 다 이기게 됩니다.
따라서 ‘무엇 때문에 걱정이다. 누구 때문에 걱정이다’라고 하지 말고 ‘말씀 못 지킨 것이 걱정이다’라고 하면서 말씀만 지키면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나 안 지키나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핍박을 한다. 거짓으로 나를 치려고 한다’라고 해도 말씀만 지키면 그것들은 말씀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본문 70절에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들과 악한 자들은 그 마음에 살이 쪘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살이 쪄서 비둔하고 감각이 없으며 죄를 거침없이 지어나갑니다. 그들이 성도를 핍박하지만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71절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난당하는 것이 유익입니다. 많은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많은 고난을 당한 사람이여야 하나님 의 율례를 배우게 됩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고난을 겪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4장 22-23절에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고난을 겪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율례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고난을 겪는 가운데에서 인간의 무능을 깨닫고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전에는 자기가 괜찮은 줄 알았는데,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인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때에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역사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것입니다. 여러 가지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고 반석에서 물도 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는 증거가 확실히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많은 고난을 당하고 보니 ‘하나님밖에는 의지할 이가 없다. 나를 나되게 하신 분은 하나님뿐이시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대로 반드시 다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성경대로, 약속해주신 것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함없이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여간 고난을 당해야 율례를 바로 배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습니다. 체험을 해서 체험적인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 고난 없이 온실의 꽃과 같이 나가는 사람은 맥을 못 씁니다. 여러 가지 고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다가 망하는 사람도 보고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실패하는 사람도 보고, 하나님께 바로 해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도와주시는 것도 봐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다 됩니다.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되는 것을 체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하고 나면, 말씀이라면 벌벌 떠는 사람이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배우되, 지식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경험적으로 배워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를 살려주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잘못 나가면 반드시 가다가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안 지키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율례를 배운 것입니다. 율례를 안 지키면 하나님께서 내버리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거기서 70년간을 지내고 백성들이 회개하자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지 않았습니까?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배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는 말씀에 맞는 경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회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들로 돌아오게 해주실 때에 그들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포로로 잡혀가기 전보다 상당히 많이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율례를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고난 가운데에서 연단 받은 사람이어야만 하나님의 율례를 제대로 압니다. 연단 받지 못한 사람은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율례를 깨닫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환난을 통과해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본문 72절에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입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금보다 낫고 은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금이 천천이면 백만입니다. 금 백만 개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말씀 하나가 금메달 백만 개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금메달은 생명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 목에 금메달을 걸어놓아야 자기 무덤도 유지하지 못합니다. 도둑이 금메달을 가져가려고 무덤을 다 파헤쳐서 그것을 뽑아 가기 때문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의 입의 법, 즉 말씀이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말씀이 이만큼 귀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금 백만개보다 말씀이 더 중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귀중한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주의 판단을 달게 받으며 긍휼을 기다림

의로우시고 성실하신 하나님

본문 73절에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라는 것은 나를 만들고 세워주신 분이 주님이시고, 주의 손이시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오늘날까지 걸어가게 하셨고 활동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계명을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본문 74절에 “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왜 기뻐합니까? 주의 말씀을 바라기 때문에 기뻐합니다. 주의 말씀을 바라는 사람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보고 기뻐합니다. 예전에 이기선 목사님을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기뻐하였습니다. 목사님은 하루 종일 성경책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경건한 사람들이 다 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을 배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75절에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라는 것은 주의 징계하시는 것이 의롭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정죄하시고 징계하시는 그 판단이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징계를 통하여 나를 괴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징계하시는데 나를 징계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주께서는 성실하십니다. 주께서 성실하시므로 이렇게 하셨습니다. 주의 징계는 의로우십니다. 범죄는 내가 했기 때문에 징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님의 심판은 의로우십니다. 주님께서 괴롭게 하심은 주의 성실하심 때문이고 잘못된 것(원인)은 다 내게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판단이 의로우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왜 이렇게 해주십니까?’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도적맞게 하셨습니까? 도적 안 맞게 해주셔도 되는데 왜 도적맞게 하셨습니까?’라는 말이 이사야에 있습니다. 도적맞은 것을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2장 24절에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라고 하였습니다. 도적맞은 다음에 여호와께서 도적에게 부치셨기 때문에 도적맞은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십니다. 성실하심으로 징계하셨습니다’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적맞은 다음에 분해서 ‘도적놈 잡아 죽여야 되겠다. 하나님이여, 도적놈이 벼락을 맞아 죽게 해주시옵소서’하고 도둑맞았다고 고춧가루 먹은 사람처럼 밤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자기가 애초에 도둑맞게 해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둑맞도록 하셨으므로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줄로 알고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도둑맞은 것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하면 밤잠이 안 옵니다. 도둑맞은 것들은 내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질 자격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둑 맞게 하신 줄 알고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마땅하다’라고 하면서 회개하고 바로 서서 말씀대로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바로 서 나가야지, 도둑맞은 것 때문에 원통하게 생각하고 밤잠을 자지 못하며 도둑을 미워하는 것은 마귀에게 걸려든 것입니다.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일단 도둑을 맞았으면 끝난 것이고, 그것을 더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둑맞았어도 안 맞은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남은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다 가져갔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남은 것이 있을 것 입니다. 남은 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인 줄로 알고 잃어버린 것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은 것을 가지고 말씀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앞으로 또 주십니다. 도둑맞은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억울해 하며 신경을 쓰다가는 혈압이 올라갑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 없애야 될 것이기 때문에 없애신 줄을 알고 남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다 의로우시고 성실하신 것입니다. 원인은 전부 자기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마땅합니다. 옳습니다’라고 하며 나가야 합니다. ‘우상을 제거해주신 것도 옳습니다. 내가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제거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우상을 제거시켜 주십니다’라고 회개하며 나가야 합니다.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성실하십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재물을 의지하고 살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재물을 의지하고 나가다가 망할까봐 재물을 다 제거시켜주십니다. 그때에 ‘재물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져도 옳습니다’라고 하면서 남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면서 사십시오. 욥은 자녀 10남매가 하루아침에 다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다 데려가신 것으로 믿고, “하나님께서 주셨다가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재산이 다 없어졌을 때에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남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자기 몸 남은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부인도 남지 않았습니까? 욥의 처가 믿음이 없고 변변치 못한 사람입니다. 욥을 보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한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악처(惡妻)라도 효자 10명보다 낫다고 하였으니,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해도 효자 10명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잡아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몸은 하나 남았으니까 남은 것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또 몸에 병이 났다면 병든 목숨은 남아 있는 것 아닙니까? 병난 몸, 그것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가죽이 썩은 후에 나는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뵈오리이다. 하늘나라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는 못 뺏어갑니다’하고 사는 것입니다. 욥기19장 26절에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의 가죽은 다 썩어 가지만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는 신앙입니다. 욥에게 하늘나라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하여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다 의로우시고 성실하신 것입니다.

본문 76-77절에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나로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법이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법으로 즐거워하는 자
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이 임합니다.

본문 78절에 “교만한 자가 무고히 나를 엎드러뜨렸으니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가 나를 무고히 엎드러뜨렸지만, 그래도 나는 주의 법도를 묵상하겠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가 와서 엎드러뜨리고 거꾸러뜨려도,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그리고 나는 전심으로 주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본문 79절에 “주를 경외하는 자로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저희가 주의 증거를 알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로 하여금 돌아오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저희가 주의 증거를 알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돌아오면, 고난 받은 성도가 그들에게 주의 증거를 알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본문 80절에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에 완전케 하사 나로 수치를 당치 않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으로 주의 율례를 완전히 사모하면 수치를 당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사모하며 그 말씀대로 바로 하려고 하면, 수치를 당치 않습니다. 로마서 10장 11절에 “나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사모하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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