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에 소망을 두라
시편 119:81-104
81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82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83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 84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를 주께서 언제나 국문하시리이까 85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86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87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를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88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로 소성케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증거를 내가 지키리이다 89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90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91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92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93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94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 95악인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를 생각하겠나이다 96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니이다 97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98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99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100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101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3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104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시편 119:81-104
81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82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83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 84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를 주께서 언제나 국문하시리이까 85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86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87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를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88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로 소성케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증거를 내가 지키리이다 89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90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91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92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93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94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 95악인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를 생각하겠나이다 96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니이다 97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98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99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100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101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3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104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 박해 중에 말씀의 소망을 가지고 참음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함
본문 81절에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므로 아주 피곤해졌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사모하나 주님께서는 구원해주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계속 사모해나가므로 영혼이 피곤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건져주지 않으셨지만 결국 말씀대로 해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소망이 견고합니다. 주의 구원을 바라보다가 피곤해졌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자포자기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주께서 주의 말씀대로 역사해주실 것을 믿고 소망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본문 82절에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눈도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해졌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83절에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연기 중의 가죽병’이라는 것은 연기를 많이 쏘였다는 뜻입니다. 가죽병이 연기를 많이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시꺼매가지고 얼마나 한심하겠습니까? 손으로 만지면 그 새까만 것이 다 묻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연기 중의 가죽병처럼 되었다는 것은 한심하고 비참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얼굴도 시꺼멓게 형편없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싫어합니다. 이제 아무 쓸모도 없게 되었습니다. 보잘 것 없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말씀으로부터 생명을 공급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쁨이 있고 심령에 위안과 평안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 소망이 든든한 것입니다.
게달의 장막 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아가서 1장 5-7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찌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너의 양 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 내가 네 동무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같이 되랴”라고 하였습니다. ‘게달의 장막’과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같이 되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햇볕을 쬐어서 얼굴이 거무스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연기 중의 가죽병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지혜는 무엇과 같다고 하였습니까? 솔로몬의 휘장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에는 생명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성령의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비록 외부는 게달의 장막 같고 연기중의 가죽병 같다고 할지라도, 속에는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아가서 1장 5-7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찌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너의 양 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 내가 네 동무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같이 되랴”라고 하였습니다. ‘게달의 장막’과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같이 되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햇볕을 쬐어서 얼굴이 거무스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연기 중의 가죽병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지혜는 무엇과 같다고 하였습니까? 솔로몬의 휘장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에는 생명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성령의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비록 외부는 게달의 장막 같고 연기중의 가죽병 같다고 할지라도, 속에는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넘치고 평화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솔로몬의 휘장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입니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외부는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번쩍이게 잘 차리고 다닌다고 합시다. 옷을 사 입어도 몇 천만 원짜리를 사 입고, 번쩍번쩍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얼굴에도 불란서 화장품을 바르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아무리 잘하고 다
녀도 속에 말씀이 없으면 시꺼먼 것입니다. 평안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얼굴만 번뜩해가지고 자랑하러 돌아다니는 것이지, 속에는 깡통들입니다. 다 텅텅 빈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믿음을 지키다가 게달의 장막과 같이 되고 연기 중의 가죽병과 같이 됐다고 할지라도, 소망이 있습니다. 말씀을 바라보므로 즐거움이 있습니다. 희망적입니다. 다른 사람이 몰라줘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봐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외부는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번쩍이게 잘 차리고 다닌다고 합시다. 옷을 사 입어도 몇 천만 원짜리를 사 입고, 번쩍번쩍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얼굴에도 불란서 화장품을 바르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아무리 잘하고 다
녀도 속에 말씀이 없으면 시꺼먼 것입니다. 평안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얼굴만 번뜩해가지고 자랑하러 돌아다니는 것이지, 속에는 깡통들입니다. 다 텅텅 빈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믿음을 지키다가 게달의 장막과 같이 되고 연기 중의 가죽병과 같이 됐다고 할지라도, 소망이 있습니다. 말씀을 바라보므로 즐거움이 있습니다. 희망적입니다. 다른 사람이 몰라줘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봐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소생케 해주시는 하나님
본문 84-85절에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를 주께서 언제나 국문하시리이까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아무 연고(緣故)도 없이 성도를 괴롭히며 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께 그들을 국문(鞫問)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본문 84-85절에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를 주께서 언제나 국문하시리이까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아무 연고(緣故)도 없이 성도를 괴롭히며 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께 그들을 국문(鞫問)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본문 86-88절에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를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로 소성케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증거를 내가 지키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나를 무고히 핍박하므로 내가 거의 멸해지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를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 죽게 되었지만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고 그 말씀을 믿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거의 멸해지게 되었으므로 희망이 없고 절망 가운데 빠질만한 상태에 이르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말씀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소생케 해주십니다. 본문 88절에‘소성케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나가는 사람은 거의 멸해지게 되었어도 하나님께서 소생케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소생케 해주실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소생케 해주십니다. 본문 88절에‘소성케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나가는 사람은 거의 멸해지게 되었어도 하나님께서 소생케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소생케 해주실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2. 말씀의 견고성(堅固性)과 영속성(永續性)
본문 89-92절에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고난 중에 벌써 멸망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법 때문에 살았습니다. 주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소망을 두고, 말씀의 힘과 말씀의 생명을 의지하여, 말씀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서 주의 법을 즐거워하지 않았다면 벌써 멸망했을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왜 멸망하지 않았습니까? 주의 법도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망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 주의 말씀을 붙들고 나가야 합니다. 거의 다 망하게 될 정도의 고난 중에도 주의 말씀만을 잘 붙드는 것입니다. 주의 법도가 아니면 멸망하게 될 것인데, 말씀 하나를 붙들고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말씀의 소망, 말씀의 생명, 그 말씀을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해주실 것을 믿고 나가므로 고난 중에 망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주의 법이 즐거움이 되었기 때문에 고난 중에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3. 지혜와 명철의 말씀
항상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에 힘써야 함
본문 97절에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 주의 법을 종일 묵상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므로 종일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음 절에 보면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의 원수보다 지혜롭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혜를 얻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어느 말씀대로 할까?’ 라고 하며,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묵상하고 그 말씀에서 나갈 길을 찾아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말씀에서 해결할 방도를 찾고 묵상하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보다 더 지혜로워집니다.
항상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에 힘써야 함
본문 97절에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 주의 법을 종일 묵상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므로 종일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음 절에 보면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의 원수보다 지혜롭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혜를 얻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어느 말씀대로 할까?’ 라고 하며,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묵상하고 그 말씀에서 나갈 길을 찾아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말씀에서 해결할 방도를 찾고 묵상하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보다 더 지혜로워집니다.
본문 98-100절에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증거, 즉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므로 내가 원수보다 지혜롭게 되고, 그 명철함이 스승보다 낫고 노인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항상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그 말씀을 지키려는 사람은 젊어도 그 지혜가 노인보다 낫습니다. 노인들이 보통 명철합니다. 경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노인이나 스승보다 지혜가 낫습니다. 성경이 스승입니다. 예수님이 스승입니다. 세상의 스승보다 낫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하여간 항상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그 말씀을 지키려는 사람은 젊어도 그 지혜가 노인보다 낫습니다. 노인들이 보통 명철합니다. 경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노인이나 스승보다 지혜가 낫습니다. 성경이 스승입니다. 예수님이 스승입니다. 세상의 스승보다 낫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루에 10장 이상 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인들 중에서 성경을 읽기 힘든 사람은 듣는 성경을 이용해서 따라 읽으면 됩니다. 요새 성경을 읽어주는 테이프가 나와 있습니다. 그것을 사다가 틀어놓고 속으로 따라 읽으면 됩니다. 테이프를 틀어놓으면 한 시간이
가기 전에 10장을 다 읽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하는가 봤더니 비싼 것은 5만원짜리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은 좀 싼 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노인들은 “난 성경 볼 줄 모른다. 눈이 잘 안보인다”라고 하지 말고, 들을 수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아야 합니다. 틀어놓으면 거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잘 읽지 못한다고 한 주일에 성경책 몇 장도 보지 않고 아예 내버려두고 돌아다니면 믿음이 다 타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일날 설교 시간에 들은 말씀을 매일 들어가면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들은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말해주고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어야 본인도 생각이 잘 납니다. 또 심방을 가서도 그 말씀을 가르쳐주면 됩니다. 들었어도 또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심방 가서 할 것이 없으면 주일날 들은 것을 전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하여간 말씀을 늘 묵상하는 사람, 그런 자가 지혜롭습니다. 말씀을 매일 10장씩 읽고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신학교 학생들은 하루에 2시간을 하라고 하는데, 보통 교인들은 1시간을 하십시오. 50% 카운트해서, 1시간씩 기도하십시오. 왜 한시간을 기도하라고 하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에게 오셔서 “한 시간도 나와 같이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시간은 매일 깨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세례 문답할 때에 “하루에 기도를 얼마나 하느냐?”라고 물어보면 “5번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이 기도를 굉장히 많이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5번을 하느냐?”고 물어보니까, 하는 말이 잘 때, 깰 때 2번 하고, 밥 먹을 때 3번, 그렇게 해서 5번이라고 합니다. 5번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시간으로 얼마나 하는가 하면 15분이나 할까 쉽습니다. 전부 합해서 10분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공력을 들여야 합니다.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기도를 매일 1시간 이상하도록 힘을 쓰십시오. 그리고 교역자들은 매일 2시간 이상씩 기도하라고 합니다. 무조건 2시간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2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마귀의 종이 됩니다. 하나님 종이 못됩니다. 매일 2시간 이상 기도하고,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로워집니다. 그래서 스승보다 나아지고 원수보다 나아지는 것입니다. 명철해지고 지혜롭게 됩니다.
기도를 매일 1시간 이상하도록 힘을 쓰십시오. 그리고 교역자들은 매일 2시간 이상씩 기도하라고 합니다. 무조건 2시간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2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마귀의 종이 됩니다. 하나님 종이 못됩니다. 매일 2시간 이상 기도하고,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로워집니다. 그래서 스승보다 나아지고 원수보다 나아지는 것입니다. 명철해지고 지혜롭게 됩니다.
지혜롭게 된다는 것은 일 처리를 바로 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렇게 하므로 갈 길을 바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자기 갈 길을 바로 가고 일 처리를 바로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지혜롭다고 해도, 안 믿는 사람들이 갈 길을 바로 갑니까? 일 처리를 바로 합니까? 믿는 사람이 성경대로 하면 그것이 갈 길을 바로 가는 것이고 일처리를 바로 하는 것입니다. 또 가다보면 형통하는 길이 열립니다.
본문 101-102절에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달아야 함
본문 103절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답니까? 꿀보다 달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답니다. 말씀이 쓴 사람은 믿음을 판 사람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달면 생명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달아야 합니다. 꿀보다 달고 꿀송이보다 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먹어야 합니다. 달게 받고 좋아하며 그 말씀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그 말씀이 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의 양식인데, 그 말씀을 영으로 먹어야 단 것입니다.
본문 103절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답니까? 꿀보다 달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답니다. 말씀이 쓴 사람은 믿음을 판 사람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달면 생명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달아야 합니다. 꿀보다 달고 꿀송이보다 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먹어야 합니다. 달게 받고 좋아하며 그 말씀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그 말씀이 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의 양식인데, 그 말씀을 영으로 먹어야 단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이 말씀이 아무 재미가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보다가 잠만 잡니다. 재미가 없으니까 억지로 보다가 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교인이 자기 교회 목사님께 가서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하니까, 그 목사님이 잠이 안 오면 성경을 보라고 하더랍니다. 그런
데 교인은 목사님이 시킨 대로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밤에 잠이 안 올 때 일어나서 성경을 보다가는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다가 깨어보니까 자신이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목사님 말씀이 딱딱 맞구나. 신약, 구약이 무슨 약인가 했더니 잠 오는 약이로구나’라고 생각하고 목사님한테 가서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을 사람이 한 배에 탄다고, 그 목사와 교인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 둘이 같습니다. 성경을 잠 오는 약으로 쓰는 교회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데 교인은 목사님이 시킨 대로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밤에 잠이 안 올 때 일어나서 성경을 보다가는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다가 깨어보니까 자신이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목사님 말씀이 딱딱 맞구나. 신약, 구약이 무슨 약인가 했더니 잠 오는 약이로구나’라고 생각하고 목사님한테 가서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을 사람이 한 배에 탄다고, 그 목사와 교인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 둘이 같습니다. 성경을 잠 오는 약으로 쓰는 교회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말씀이 달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 재미가 있고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힘이 나고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정신이 또렷또렷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 한 마디라도 바로 깨달으려고 해야, 그 말씀이 꿀보다 달고 꿀송이보다 더 달게 됩니다. 하여간 말씀이 달지 않으면 병이 난 것입니다. 병이 난 사람은 밥이 달지 않습니다. 밥이 쓰고 맛이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밥이 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달지 않으면 자기가 병이 난 줄을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병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또 말씀이 쓴 사람은 영이 죽었기 때문에 쓴 것입니다. 성경을 보다가 잠자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는 말씀을 묵상하고 성경을 읽고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쓰는 것도 좋긴 좋은데, 시간이 너무 많이 갈 것 같습니다. 구약을 한 번 쓰는 데에 2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2년 걸렸다는 것도 하루에 몇 시간씩 써서 그만큼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구약을 한 시간씩 읽어서 다 읽으려면 며칠이나 걸리겠습니까? 하루에 10장씩 읽으면 구약을 1년 전에 다 읽을 수 있습니다. 빨리 읽을 수 있습니다. 여러 번 읽을 수 있습니다. 들어도 빨리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은 쓰는 것도 괜찮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하다고 하였습니다. 맛을 잃어버린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죄가 있어서 맛이 없어진 것입니다. 죽어서 맛이 없어지고 병이 나서 맛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이제부터 주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주께로 돌아오면 주의 말씀이 꿀보다 달게 됩니다. 말씀이 달므로 심령이 소생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04절에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대로 행하는 성도는 명철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그 사람에게 지혜와 지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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